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4)
────────────────────────────────────
────────────────────────────────────
오히려 좋아
예능 PD로 성공하기 위해선 이슈에 편승할 줄 알아야 한다.
빵 뜬 스타를 섭외하기 위해 노력하는 건 기본이고.
‘진짜 성공하려면 남들이 쉽게 못 하는 일을 해야지. 그게 비록 위험성 큰 도박이라도.’
얼마나 큰 도박이냐면 이 계획을 말하자 예능 국장이 기겁했을 정도였다.
“성원아! 너 진짜 미쳤냐. 왜 하필 지금 시기에 미국에서 촬영한다는 건데?! 지금 환율이 안 보여?!”
달러 환율이 1500원을 훌쩍 넘었다가 이제 조금 진정되는 추세였지만 여전히 손이 떨리는 금액이다.
해외 촬영? 누구는 하기 싫어서 처박혀 있는 게 아니었다.
“환율이 진정되길 기다리면 기회를 놓칠지도 모른다니까요? 그리고 촬영 때쯤 되면 지금보다 낮아지겠죠.”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근데 경제가 힘들다고 난리인데 해외 촬영을 가봐라. 무슨 말이 나오겠니?”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자긍심을 줄 수 있는 게 필요한 법입니다. 지금도 인터넷에서 핫도그를 괜히 국뽕으로 밀고 있는 게 아니잖아요.”
“…말이라도 못하면.”
IMF 시절 한국인 메이저리거로 열광했던 과거랑 맥락은 비슷했다.
영 틀린 말은 아니라서 미묘한 표정을 짓는 국장을 성원은 밀어붙였다.
“거기다가 그냥 핫도그를 팔자는 게 아니잖아요. 스토리가 있잖습니까? 스토리.”
해외 입양된 아이가 모국의 음식을 팔면서 성공한 이야기. 거기다가 그 과정에 벤 로버츠가 끼어 있는 것도 아주 좋은 포인트였다.
드라마가 따로 없을 정도로.
성원은 벤 로버츠와 이안 프라이스가 찍힌 사진을 쓱 내밀며 자신 있게 말했다.
“이 아이만 섭외할 수 있으면 무조건 성공할 수 있습니다.”
결국, 못 하면 두고 보자는 협박과 함께 LA까지 날아왔을 때는 나름대로 자신 있었다.
기껏해야 초등학생을 섭외하는 거니 힘들면 얼마나 힘들겠냐 싶었는데…
“배, 배우요?!”
이럴 줄은 진짜 몰랐지.
한국 방송국에서 왔다는 말에 만남은 쉬웠다. 근황을 묻는 말에 희망은 처참하게 박살 났지만.
어두워진 한국 제작진의 안색을 눈치 못 챈 딜런은 유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오디션을 보러 가더니 떡하니 합격해서 왔습니다! 오늘도 포스터 촬영이랑 대본 리딩을 하러 갔죠.”
“…그렇군요.”
놀랐지만 아직 포기하긴 일렀다.
시간이야 조율해보면 될 일이다. 일단 섭외에 성공하는 게 먼저였다.
‘빈손으로 돌아가면 국장님이 날 죽일지도 몰라.’
이번 출장비만큼 병원비가 나올지도 모른다.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은 성원에게 한 아이와 할머니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오, 아들! 잘 하고 왔니?”
“누구 아들인데 당연하죠. 그렇죠?”
“그래, 어찌나 잘하던지. 모두 깜짝 놀랐지.”
소피아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혼자 보고 온 게 미안할 정도로 잘 하고 왔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가족과 이야기를 나눈 이안은 가게 한구석에 앉아 있는 동양인 무리를 봤다.
오기 전에 연락을 받았기에 왜 왔는지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한국에서 오셨다고 했죠? 이안 프라이스에요. 이안이라고 불러주세요.”
“어? PD를 맡은 이성원이라고 해. 한국어를 잘 하네?”
“부모님께서 그렇게 교육하셔서요.”
유창한 한국어에 성원은 속으로 만세를 외쳤다. 기대도 안 했는데 로또에 당첨된 느낌이었다.
“절 쇼 프로그램에 초대하려고 오셨다고 하셨죠? 토크쇼 같은 건가요?”
“핫도그. 아니, 콘도그를 노점상에서 파는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어. 거기에 출연해줄 수 있나 해서 찾아왔지.”
“음, LA에서 노점상이 불법인 건 아시죠?”
나중엔 합법화되지만 적어도 지금은 불법이었다.
아이가 이걸 지적할 줄 몰랐던 성원은 살짝 놀라며 답했다.
“알고 있어. 그래서 뉴욕에서 할 생각이고.”
“뉴욕이라. 재밌긴 하겠네요.”
LA에서 비행기로 왕복 12시간에 가까운 시간이 걸리니 거절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긍정적이었다.
눈치를 살피던 성원은 슬쩍 물어봤다.
“그런데 아역으로 출연한다고 들었거든? 우리가 이런 쪽을 잘 몰라서 그런데 보통 미국에서 아역의 출연료는 얼마나 받는지 알 수 있을까?”
자신의 출연료를 알고 싶어하는 게 뻔히 보였지만 이안은 눈치 못 챈 것처럼 순진하게 고개를 갸우뚱했다.
“다른 아이들의 출연료는 잘 모르겠어요. 전부 다르다고만 들었거든요. 제 거라도 알려드릴까요?”
“알려준다면 좋지.”
기회를 놓칠세라 냉큼 답하는 성원을 향해 정답을 알려줬다.
“회당 3만 달러씩 받기로 했어요. 아, 이건 어디 가서 말하면 안 돼요?”
“호, 회당 3만 달러.”
지금 환율로 계산하면 4천만 원에 달하는 금액에 성원은 순간 어질어질해졌다.
한국에서 잘 나가는 성인 배우가 받는 출연료를 신인 아역이 받았으니까.
‘이게 할리우드?’
이런 진실은 알고 싶지 않았다.
메인 작가는 성원에게 속삭였다.
“PD님 이거 정말 감당 가능해요? 일반인 몸값으로 퉁치는 건 절대 안 되겠는데요.”
“…아니야. 좋게 생각하자. 일반인보다 곧 방영될 미드 아역인 게 훨씬 괜찮잖아? 요즘 미드 수입도 엄청 늘어났고.”
이안이 찍는 미드가 대박이라도 나면 무조건 이득이다.
“미드는 언제 첫 방송하지?”
“보통 9월이죠? 10월부터 시작하기도 하고요.”
“우리는 추석 특집으로 쓸 거잖아. 대충 시기도 맞아 들어가.”
작가는 계속 자기합리화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지만 그래도 설득은 됐다. 역시 예산을 따오는 PD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진 성원은 웃으며 물었다.
“큰 도움이 됐어. 혹시 우리가 알아야 할 게 더 있을까?”
“촬영 시간은 5시간을 넘으면 안 되고 보호자와 노동 감독관이 동행해야 해요. 아, 제 학기 중이라면 Studio teacher. 그러니까 교사를 고용해서 매일 3시간 수업을 듣게 해야 하죠.”
“어, 그렇구나.”
일이 생각보다 훨씬 까다롭다는 생각에 작가의 표정은 어두워졌지만 성원은 방긋 웃었다.
“오히려 좋아. 한국 아역과 차이를 방송에 내보낼 수 있잖아.”
“드라마국하고 멱살잡이하려고요? 진짜 미쳤어요?”
“하하하, 오히려 좋다니까?”
안 되겠다. PD가 망가졌다.
***
우여곡절 끝에 한국에서 온 제작진은 긍정적인 답변을 남기고 떠났다.
물론 가장 먼저 허락을 받아야 하는 상대는 쇼러너였지만.
-한국에서 온 방송사? 우리도 판권을 팔아야 하니 당연히 허가해줘야지.
미국 드라마는 방송사가 독점 방영권만을 가질 뿐이고 판권은 제작사에 있었다. DVD 발매와 수출 같은 2차 판권 수익에 도움이 된다면 쇼러너로선 환영이다.
-네가 나오지 않는 회차 촬영 기간에 맞추면 되겠네. 우리가 그쪽하고 알아서 조율해줄게.
보통 한 화 촬영에는 10일 남짓 걸리니 시간은 충분했다.
‘여러모로 괜찮은 기회야.’
얼마나 잘 될지는 몰라도 한국이 영화계에서 갖는 중요도를 생각하면 이번 기회에 얼굴을 알려두는 건 무조건 이득이다.
촬영지가 뉴욕인 것도 마음에 들었고.
이안은 차곡차곡 쌓일 자신의 출연료를 계산해봤다.
미국은 아역 배우의 수입을 부모에게서 보호하기 위해 수익 15%를 신탁에 따로 보관하게 하는 쿠건법이 있다.
이 15%를 제외해도 들어오는 출연료가 적지 않았고 이걸 부모님에게 맡기려고 했지만.
“네가 번 돈인데, 네가 써야지.”
“그래, 네가 올바르게 쓸 거라고 믿는단다.”
부모님이 믿고 맡겨줘서 출연료는 마음대로 쓸 수 있었다.
‘주식에 투자해도 좋고 뉴욕 같은데 분점을 차리는 것도 좋지.’
아무리 배우로 성공해도 부모님이 가게 일을 놓진 않을 것 같으니 할 수 있는 효도라곤 분점을 내주는 것밖에 없다.
미래 일이지만 지금부터 천천히 준비하는 게 좋았다.
계획을 세우고 위튜브 영상을 찍어 올리는 사이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어느덧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는 7월이 되었다.
운전하던 소피아가 말했다.
“다 왔단다.”
경비가 신분확인을 하자 세트장으로 가는 문이 열렸다.
주차장을 점령한 차들과 배우 대기실로 사용하는 컨테이너들이 늘어선 풍경 너머로 폐허가 되어 을씨년스러운 도시가 보였다.
‘좋다.’
솔직히 미래의 촬영장에 비하면 부족하다. 기술과 자본 모두 비할 바가 아니니까.
다만 배우가 되는 첫 촬영장이라고 생각하니 부족한 점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미 촬영이 진행 중인지 카메라와 스태프가 바쁘게 움직였다.
“나이스! 장소가 지하터널이니 목소리를 조금 더 조심히만 내주면 될 거 같아요. 혹시 좀비가 찾아오지 않을까 걱정되는 모습으로요.”
촬영감독의 부드러운 디렉팅과 함께 지하 터널처럼 꾸며진 세트장 속 배우들이 연기를 시작했다.
“벤자민, 엄마의 말을 기억하렴. 힘들어도 참아야 한단다. 너도 언젠가 어른이 되지 않니? 그때를 위해서 지금은 참아야 해.”
“…저 핏덩이들이 제 역할을 대신할 때까지요?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없어요. 우린 이 도시를 벗어나야 해요.”
“사막 한가운데 있는 이 도시에서 어떻게 벗어난다는 말이니. 정신 차려, 벤자민.”
엄마라고 불린 여인은 삐쩍 마른 손으로 벤자민이라고 불린 아이의 얼굴을 차갑게 쓸어내렸다.
“우리의 희망인 아이들을 허무하게 잃고 싶진 않구나.”
말과 달리 무미건조한 여인의 목소리는 아이를 도구로 보고 있다는 느낌을 줬다.
섬뜩한 모성애와 함께 감독이 손뼉을 쳤다.
“아주 좋았어요!”
‘invisible children’의 배경은 라스베이거스였고 어른들이 사는 곳은 실제로 노숙자들이 숨어 산다는 라스베이거스의 빗물 배수구였다.
세트장에 구현된 배수구는 물로 첨벙거리는 바닥과 가구를 10cm 남짓 떨어뜨려 놓는 등 최대한 그곳과 비슷하게 만들었다.
촬영을 구경하는 이안의 옆으로 세컨 조연출이 다가왔다.
“늦지 않게 왔네. 저기 스태프를 따라서 분장실로 가서 준비해줄래?”
조연출의 안내에 따라 이동한 이안은 분장을 마쳤고 후줄근한 옷을 입고 촬영을 구경했다.
라스베이거스 지상은 이미 좀비들에게 점령된 상태였고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건 좀비의 관심을 덜 받는 아이들뿐이다.
그렇다고 지하가 안전한 것도 아니다. 965km에 달하는 터널에는 생존자 무리들과 좀비에게 점령된 지역이 뒤엉켜 있으니까.
-캬아아아악
터널에서 소름 끼치게 울리는 울음소리와 첨벙거리는 물소리는 좀비물의 공포를 충분히 끌어냈다.
“이번엔 지상 장면을 찍겠습니다.”
조연출의 안내와 함께 좀비로 분장한 엑스트라들이 움직였다.
박살 난 네온사인 간판이 덜렁거리는 건물과 박살 난 차들이 즐비한 거리. 기괴하게 몸을 꺾은 좀비들이 어슬렁거리는 장소에서 맨홀이 들썩였다.
휙휙!
식량을 구하기 위해 하수구를 빠져나온 아이들은 말없이 수신호를 주고받았다.
공격성이 떨어진다는 뜻이지 좀비가 전혀 공격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기에 아이들은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다양한 컷을 찍는 걸 구경하던 이안을 조연출이 불렀다.
“이제 곧 네가 나올 차례야. 장면은 무리와 떨어져 좀비의 관심을 끌게 된 아이를 구하는 장면이고. 첫 촬영이지?”
“네.”
“긴장했겠지만 괜찮아. 처음은 다 그런 거니까. 일단 편한 마음으로 찍어보자 알겠지?”
심장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이건 긴장한 탓이 아니다.
드디어 있을 자리로 돌아왔다고 심장이 알려주는 거지.
“잘 부탁할게.”
“응! 잘 해보자!”
호흡을 맞출 벤자민 아역과 인사를 한 이안은 슬레이트를 치는 소리와 함께 집중했다.
천천히 배회하는 좀비 무리가 가로막은 길 너머로 발을 동동 구르는 친구들이 보였다.
빙 돌아서 친구와 합류하려고 건물 문을 열었던 벤자민는 바로 앞에 떡하니 서 있는 좀비와 눈을 마주쳤다.
“악?!”
깜짝 놀라 문을 쾅 닫자 좀비들의 고개가 일제히 돌아갔다.
“으아아악! 사, 살려줘!”
-캬아아아아악!
버려졌다. 친구들은 좀비들에게 쫓기는 모습을 보면서도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잡힌다.’
잡기 위해 팔을 휘젓는 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려왔다. 곧 있을 죽음을 예감한 벤자민은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누가 보더라도 희망이 없는 순간.
비좁은 틈에서 작은 손이 튀어나왔다.
“여기야!”
노란 피부의 검은 머리카락.
비좁은 틈에서 나타난 소년은 휙하고 벤자민을 끌어당겼다.
-캬아악?!
아이도 겨우 들어온 비좁은 틈.
좀비는 머리를 쑤셔 넣으며 위협적으로 울부짖었고 벤자민은 겁먹은 듯이 움츠러들었다.
“쫄 거 하나도 없어. 별거 아니라니까. 자, 봐봐.”
소년은 장난스럽게 좀비의 머리를 봉으로 툭툭 두들겼고, 우스꽝스럽게 좀비의 머리가 흔들렸다.
키득키득 웃은 소년이 물었다.
“이름이 뭐야?”
“베, 벤자민.”
“나는 노아야. 만나서 반갑다.”
환한 미소와 함께 둘이 악수하자 촬영감독은 크게 손뼉을 쳤다.
“아주 완벽해! 컷을 더 따야 하니까 지금처럼만 해줘요!”
지시대로 컷을 따기 위해 움직이던 이안은 걸음을 멈췄다.
“…저 사람이 왜 여기에?”
좀비 분장을 한 사람 중에 있을 리 없는 사람이 보였다.
오디션 후 불현듯 떠오른 기억 속의 남자였다.
-역시 파쿠르도 배워두면 쓸만하지? 잘 도망쳤어.
힘겹게 도망친 자신을 칭찬한 노숙자.
기쁨과 이유 모를 죄책감 어린 시선을 보냈던 그 사람이 지금 눈앞에 있었다.
그것도 멀쩡한 다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