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43)
143. 은퇴작
브리더란 협회에서 정한 기준에 맞는 아름답고 건강한 동물을 키워내는 이들이다.
돈 때문에 무분별하게 새끼를 낳게 하거나 아마추어적으로 이뤄지는 가정 분양은 뒷마당 브리더backyard breeder라고 부르고.
이안이 찾아온 곳은 제대로 검증된 브리더였다. 깨끗한 환경과 유전 문제가 없도록 잘 관리된 성묘들이 여럿 있는 것만 봐도 확실하고.
이안은 다리에 달라붙은 새끼 고양이들을 봤다.
‘다 데려가면 이름을 붙일 때 무지개 색깔도 부족하겠네.’
물론 그럴 생각도 없었지만.
미국에서 동물 입양은 보통 유기되거나 학대당한 동물을 보호하고 있는 보호소나 브리더를 통해 이뤄진다.
이안이 그중 후자를 찾아온 건 품종 있는 고양이가 좋아서가 아니다. 가족들 전부 동물을 키워본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지.
‘사람에게 상처받은 동물을 보살펴주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내가 시간이라도 있으면 모르겠는데 촬영 때문에 그것도 아니고.’
건강하고 순한 아이를 가족들에게 데려가자. 이 생각으로 왔었다.
다리에서 뭉그적거리는 고양이들을 가볍게 쓸어주자니 브리더가 물었다.
“마음에 드는 아이가 있나요? 이 아이는 어떠십니까. 쇼 퀄러티죠.”
브리더는 새끼 중 한 마리를 들어 이안에게 안겼고 품에 안긴 고양이는 고롱고롱 소리를 내며 파고들었다.
보통 브리더는 고양이를 세 퀄리티로 분류한다. 펫, 브리딩, 쇼다.
펫은 외모가 협회 기준에 미달되거나 성향 혹은 건강문제로 번식에는 적합하지 않아 분양되는 아이들이고 브리딩은 번식에는 장점이 있어도 캣쇼에는 경쟁력이 부족한 고양이다.
쇼 퀄리티는 품종 기준에도 맞고 캣쇼의 경쟁력도 있는 고양이고.
브리딩은 말할 것도 없고 쇼 퀄리티도 일반인에겐 잘 분양해주지 않는 타입이다.
고양이들에게 단체로 간택 받은 게 인상적이었는지 브리더가 호의를 보여준 거지만.
“분양은 조금 더 고민해볼게요. 생각이 바뀌었거든요.”
이 대답이 의외였는지 브리더는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마음에 안 드십니까?”
“그럴 리가요. 새로운 가족이 생기는 건데 너무 제 생각대로 하려고 했다는 걸 깨달아서요.”
가족을 위해 건강하고 순한 고양이를 데려간다? 뭐 가족들이 기뻐해 주겠지. 하지만 오늘 고양이들을 보니 가족에게 선택지를 주는 게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잘 이해 못 하겠다는 브리더에게 이안은 장난스럽게 어깨를 으쓱였다.
“보다시피 전 어떤 동물을 데려와도 잘 지낼 수 있는데 제 가족은 아니잖아요. 입양할 동물을 정하는 건 가족에게 맡기려고요.”
브리더는 이안에게 껌딱지처럼 붙은 고양이들을 봤다.
어미 젖을 찾을 때도 저 정도는 아닐 거 같았다.
“하하하, 그렇긴 하겠네요.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연락해주세요.”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보다… 이제 좀 도와주시죠.”
…야, 어디까지 올라오냐.
인간 클라이밍에 도전하는 고양이들을 보며 이안은 한숨을 내쉬었다.
***
힘든 전투였다.
떨어질 때는 어찌나 서글프게 우는지 왜 고양이에게 간택 당한 사람들이 집사로 전직하는지 알게 됐달까.
집에 돌아오자 엄마인 클로이가 반겨줬다.
“바로 입양해서 올 수도 있다더니 혼자네. 무슨 문제가 있었니?”
“아뇨, 문제가 있던 건 아니고요.”
뭐라고 말하는 게 좋을까.
이안은 짧게 고민하곤 말을 이었다.
“동생이 생기는 건데 제가 아니라 부모님이 데려오시는 게 맞는 거 같더라고요.”
“응?”
“족보가 꼬이잖아요. 안 그래요?”
능청스럽게 농담을 던지자 클로이는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서 우리에게 맡기려고?”
“네, 막상 가보니 짧게 고민하고 결정할 일이 아니던데요. 전 촬영 때문에 바쁘니 부탁드릴게요.”
“그래, 새로운 가족을 들이는 건 깊게 고민하고 결정할 일이지.”
부드럽게 웃으며 이안의 어깨를 토닥인 클로이는 달력을 확인했다.
“으음, 딜런이 언제 쉬더라. 요즘 회사일 때문에 바쁘다고 했는데. 아, 어머니한테도 여쭤봐야지.”
“아버지는 다음 주쯤 시간이 나실걸요.”
“그랬던 것 같네. 아, 브리더가 아니라 보호소에서 데려오는 것도 괜찮니?”
“물론이죠.”
데려오는 동물이 공작새만 아니라면 뭐든지 상관없다.
“딜런의 일정은 오면 물어보면 되고. 일단 주변 보호소랑 동물을 키울 때 필요한 물품도 확인해야겠지? 또 뭐가 있을까.”
이안은 소파에 앉아 들뜬 얼굴로 이런저런 정보를 찾아보는 클로이를 바라봤다.
저렇게 좋아하는 일을 뺏으려 했다니 미안한 마음이 드는 한편.
‘내가 입양될 때도 마찬가지였겠지. 아니, 더 좋아했으려나.’
지금보다 어린 부부가 설렘과 불안을 안고 아이가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을 거다.
선명하게 그려지는 모습에 이안은 습관처럼 펼치던 대본은 쳐다보지도 않고 그녀를 지켜봤다.
전혀 기억에 없는 아기일 때의 일.
고작 상상으로 구현되는 과거지만 어쩐지 그립고 행복한 느낌이 들었다.
***
배우로 살다 보면 처음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
첫 촬영, 첫 방영, 첫 상영 등등. 배우로 사는 걸 멈추지 않는 이상 피할 수 없는 이름이다.
굳이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건 Holy Love가 첫 방영을 앞뒀기 때문이다.
방영을 앞두고 기대감이 여러모로 올라온 상황이었다.
-Holy Love? 이거 이안이 나온다고 하던데 괜찮음?
└아기 천사 이안이 드롭킥을 한 죄로 지상에 떨어져 신부를 꿈꾸는 내용이야.
└lol! (이안과 아기천사 합성사진) 이걸 알다니 좀 치는데?
└HaHa! 아역 전부터 팬이었다고. 사실 프로레슬러가 될 줄 알았지만 말이야.
이런 이상 글도 자주 올라오긴 했지만 이조차 관심이라고 생각하며 넘겼다.
아무튼, 방영을 앞두고 이안의 집이 북적거리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레이첼, 괜찮겠어? 오드리랑 이안이 애인 연기를 하는 거잖아.”
“응? 너도 했잖아.”
“꺄아악! 그 말 하지 마!”
괜히 레이첼에게 말을 걸었다가 오히려 얻어맞은 도로시라던가.
“내일 있을 촬영에 이 대사 말이야. 말투에 감정을 담는 것보다 행동에 담는 게 어떨까.”
“…그럴까요?”
“응, 그리고 이 장면 말이야. 여기서도…”
아빠의 피드백을 피해서 도망쳤더니 여자 이안에게 붙잡힌 다니엘도 있었다.
여기까진 이해하겠는데.
“셋은 어쩐 일로 왔어요?”
“하, 이거 섭섭하네. 이래 봬도 우리가 초창기 멤버잖아.”
“카메라 드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감독님도 바쁘셨잖아요.”
“음, 그랬지.”
돈 많은 백수 셋의 태도에 이안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 신경 써서 와준 거니 그러려니 해야지.
맥주를 한 모금 마신 벤이 물었다.
“동물 입양은 어떻게 됐어?”
“보호소에서 눈길이 가는 동물이 생겼다고 하더라고요. 애니멀 호더에게서 구출한 개와 새끼 고양이인데 개가 고양이를 자기 새끼처럼 품고 있다고 하던데요.”
“그래?”
애니멀 호더는 관리도 제대로 못 하면서 동물을 잔뜩 키우는 사람을 말한다. 동물 학대의 일종이고.
“일단 구출한 지 얼마 안 돼서 건강검진하고 이것저것 하는 중이라고 들었어요.”
“아무 탈 없었으면 좋겠네.”
“그러게요.”
이안도 위탁 가정에서 방치와 학대 끝에 도망쳐 노숙자가 됐으니 마음이 쓰였다.
대충 궁금증이 풀린 벤이 이야기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아까부터 우리끼리 하던 이야기인데 곧 있을 대통령 선거는 어떻게 될 거 같냐.”
“투표권도 없는 사람에게 그걸 묻는 거예요?”
“야, 이게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데. 넌 감이 좋잖아. 어느 쪽이 이길 거 같아. 역시 민주당 쪽이지?”
안 그래도 Quiver에서도 제이 안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많았다. 벨라도 마찬가지였고.
물어보는 이유는 알겠다. 2015년과 달리 2016년에는 예언도 안 했건만 아직도 제이 안은 교주 취급을 당하고 있었으니까.
‘가수, 배우, 초통령, 교수, 교주, 거기에 이젠 인간 캣닢까지인가.’
…이게 맞나 싶긴 한데.
과제를 해야 하는 대학원생조차 선거 타령을 하길래 짜증 나서 제이 안의 이름으로 답변을 내놨고, 이안은 같은 대답을 내뱉었다.
“공화당이 이길걸요.”
“왜?! 그쪽 후보 완전 이상한 놈이잖아.”
그 데미안이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공화당 후보는 일반적인 정치인은 아니었다. 애초에 할리우드에 민주당 지지자가 많은 것도 있고.
솔직히 이것보다 미래에서 온 이안은 ‘아, 이 시대에도 독특한 사람이 있었지.’ 정도의 감상이지만 이 시대 사람들에겐 중요한 일이었다.
‘공화당 승리는 의외긴 했어. 사후에 분석하니 그럴만하긴 했지만.’
승패를 결정지은 이유는 여러 개 들 수 있으나 가장 큰 이유는 승리를 확신한 민주당의 삽질이 컸다. 이 삽질에는 연예인도 포함됐고.
“그러게 왜 연예인들이 잔뜩 나서서 공화당 후보를 때려서 반발만 키워놔요? 해도 적당히 해야죠.”
“그게 그렇게 문제야?”
“제 주변 사람이 똑같이 하려고 했으면 제가 뜯어말렸을걸요.”
주류 언론하고 연예인의 편파 행동은 유권자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가 없었다.
다행히 주변 지인 중에 손가락을 함부로 놀리는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다. 결과 이후에 엄청 조리돌림을 당하니까.
“아무튼, 최대한 얌전히 있어요. 당당하게 의견을 내는 건 좋은데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때도 있는 법이에요.”
뭐 이미 늦었지만.
이안은 선거 결과를 생각하며 주판을 튕겼다. 미국 연예계는 거대한 사업이고 그만큼 정치의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미국이 중국의 스크린 쿼터제를 완화하면서 중국 시장을 노리는 영화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중국의 쿼터제 완화를 들먹이며 에이전시 계약에서 유리한 고점을 잡았을 때처럼 결과를 미리 알고 있다는 건 엄청난 장점이다.
“어휴, 난 모르겠다.”
“걱정 마요. 누가 대통령이 되든 할리우드가 망하진 않을 테니까요.”
원래도 온갖 사건·사고가 넘치는 할리우드다. 이번 선거도 그냥 그중 하나일 뿐이다.
‘아… 근데 제이 안으로 답변은 괜히 달았나.’
공화당 지지자로 여겨질까 봐 걱정되는 건 아니다. 최대한 객관적인 이유를 늘어놨으니까.
그것보다 이번에도 맞추면 이상한 사이비가 더 확장될까 봐 걱정됐다.
모르겠다.
이제 와서 지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덕분에 벨라가 괜한 헛바람이 들어서 손가락을 놀리지 않은 것만 해도 어디인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방영할 시간이 됐고 이안의 가족들도 전부 자리에 앉았다.
Holy Love 1화가 방영을 시작했다.
***
반짝이는 TV 불빛에 주름진 얼굴에 음영이 생겼다.
아이작은 옆에서 드라마에 빠진 손자, 네이선에게 물었다.
“재밌니?”
“네! 이안이 나오는 드라마를 보니까 그때가 생각나요.”
“그때?”
“invisible children이 처음 방영될 때요. 나이 때문에 못 보게 하셨잖아요.”
“하하하, 그때 말이구나. 나도 기억난단다. 못 보게 한다고 펑펑 울었지?”
마음에 드는 아이를 게빈과 필릭스에게 소개해준 날인데 어떻게 잊겠는가.
아마 지금쯤 게빈은 이안과 함께 드라마를 보고 있을 거다.
슬퍼하는 엘라를 짧게 위로한 도미닉이 떠나자 여우비가 하늘에서 내리는 장면이 나왔고 예쁜 그림에 네이선은 감탄하며 말했다.
“와, 저거구나.”
“응? 뭐가 말이니.”
“방금 저 장면이요. 인공으로 뿌린 비가 아니라 촬영 중에 진짜 비가 내린 거래요. 이안이 살짝 귀띔을 해줬어요.”
“그래?”
그저 예쁘게 잘 뽑힌 장면이다 싶었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방금 그 장면이 새삼스럽게 보였다.
Holy Love를 할아버지와 같이 보던 네이선이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어때요. 볼만해요?”
“재밌구나. 캐릭터는 살아 있고 대본과 편집은 짜임새가 있어. 이안이 공동으로 프로듀서를 맡고 있다고 했지?”
“네. 쇼러너에 가깝다고 들었어요.”
대본부터 편집까지 다 관여하고 있다, 라.
‘역시 대단한 아이야.’
아역 시절 첫 연기를 봤을 때부터 감탄했지만 제작자로도 훌륭한 능력을 선보였다.
아이작은 고개를 슬쩍 돌렸다. 어느새 훌쩍 큰 손자가 보였다.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드라마는 어느새 끝을 향해 달려갔다.
술에 취해 실수로 남자들에게 문자를 보낸 엘라가 도미닉의 집에 쳐들어가 가짜 연인이 되는 장면이었다.
이미 위튜브로 한 번 나온 장면이지만 TV 시리즈에 맞게 퀄리티를 높인 만큼 지루함이 전혀 안 느껴졌다.
오히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기대감을 품게 하면 몰라도.
“으아! 재밌었다. 시청률 잘 나올 거 같죠?”
“그럴 거 같구나.”
“이안하고 통화나 해야겠네요. 마실 거 필요하세요?”
“주면 좋지.”
가져오겠다며 네이선이 떠나자 아이작은 드라마가 끝나고 광고가 나오는 화면을 봤다.
끝이라. 기분이 묘한 단어다.
‘게빈은 자서전을 냈었지.’
그도 슬슬 끝을 생각한다는 뜻이다. 이건 아이작도 마찬가지였다.
아이작은 이안이 에미상을 들어 올리는 장면을 떠올려봤다. 어느새 이렇게 컸을까 감탄과 기쁜 마음이 들었다.
자신과 같은 감독이 되겠다고 대학을 준비하는 손자까지 떠올린 아이작은 핸드폰을 들었다.
“나도 두 아이에게 남기는 게 있어야겠지.”
익숙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필릭스, 나네.”
-아이작?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슬슬 나도 은퇴작을 찍어야겠어.”
-…그래?
은퇴작이라는 무게감에 짓눌린 짧은 시간.
온갖 감정이 뒤엉킨 한숨을 내쉰 필릭스가 물었다.
-그래서 투자라도 하라고?
“혼자서 감당이 되겠어?”
-독립 영화 하나 내가 투자를 못 하겠냐?
“누가 독립 영화라고 했나.”
-…뭐?! 잠시만잠시만! 지금 한 말 의미가 뭐야?!
기겁하는 친구의 목소리에 유쾌한 웃음을 터트린 아이작이 원하는 대답을 해줬다.
“은퇴작은 할리우드에서 할 생각이네.”
두 아이에게 보여줄 마지막 무대는 화려했으면 좋겠으니까.
아이작은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
Holy Love의 1화가 방영됐고.
-Holy Love! 1화 시청자 463만 명! 호평 속에 시작!
희소식이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