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48)
148. The King Of Prison
이안은 노숙자였다.
어느 나라가 안 그렇겠냐만 미국에서 노숙자 이미지는 좋지 않았다. 길거리를 뒹구는 위험한 약쟁이들이 늘어날수록 더욱 그랬고.
그런데도 한 번도 긴 세월 노숙자로 지냈다는 꼬리표를 떼어내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시궁창 같은 곳에서 이렇게 성공했다는 자부심 때문이 아니지.’
이안 프라이스라는 배우는 노숙자로 지내며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만큼 남들이 멸시하는 길바닥 생활도 이안은 유익하게 보냈고 그중 가장 도움이 됐던 걸 하나 꼽자면 사람을 관찰하기 좋다는 점이다.
‘노숙자는 사람들에게 먼지 같은 존재야.’
노숙자를 불쾌하다는 듯이 보는 사람들도 있으나 대다수는 신경도 안 쓰고 지나가며, 어느 날 항상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 사라져도 잘 모른다.
열심히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해도 ‘동전이라도 던져주길 바라나.’ 그저 이렇게 생각하고 넘긴다는 뜻이다.
매일 수백 명이 넘는 사람을 살핀 경험은 배우 생활에 가장 큰 자산이 됐고 많은 깨달음을 안겨줬다.
그중 하나가 얼핏 볼 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도 적어도 당사자에겐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이다.
-고맙습니다! 꼭 교주님의 위대함을 널리 알리도록 할게요. 선댄스에서 알게 된 다른 감독님들도 관심을 보이거든요!
감독이 아니라 선교사로 직업을 바꾼 거 같은 정신 나간 이메일도 고민하면 이해할 수 있다.
“확실히 선댄스에서 대상은 충격적인 성과긴 해.”
농담 안 하고 감독 중 선댄스 대상을 탈 수 있으면 사이비 포교가 아니라 악마 숭배도 할 수 있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첫 장편에서 성공한 레이먼이 기뻐 날뛰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선댄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교주 제이 안. 영화 관계자들의 폭발적인 관심! Who is J Ahn?!
그럼 이런 기사가 올라오고.
-이 자식들아. 제이 안이 누구냐고 Quiver에 그만 물어봐. 우리도 모른다고!
└불경하게 그분의 이름을 부르지 마시죠.
└리딧이든 4챗이든 미친 사이비 좀 데려가고!
└그곳이요? 이미 저희의 놀이터죠.
└돌아버리겠네.
-???: 흥행작을 맞추는 건 지겨워졌으니 한 번 만들어볼까?
└이게 어떻게 진짜냐고.
└…잠시만 이번 대통령까지 맞췄잖아.
└???: 대통령을 맞췄으니 이번엔 만들어볼까.
└제발, 다음에는 정상인으로 골라주세요.
그랜트의 당선을 맞힌 게 잊히기 전이라서 그런지 온갖 글이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게 호들갑일까?
‘그건 아니지.’
선댄스는 저예산 독립영화가 모이는 영화제인 만큼 투자를 받기 힘든 젊은 감독이 두각을 나타내는 게 드문 일은 아니다.
근데 대상을 받은 작품이 갓 대학을 졸업해서 만든 첫 장편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엄청 대단한 감독이 튀어나왔군.’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보단 ‘어떻게 이게 가능했지?’라는 생각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고 어렵게 찾을 것도 없었다.
엔딩 크레딧에 떡하니 두 명의 프로듀서가 찍혀 있었으니까.
“그래서 요즘 상황은 어때요?”
-말도 마라. 감독뿐만 아니라 영화 관계자들까지 얼마나 많이 찾아온 줄 알아? 명함으로 가방이 다 차겠다.
유쾌하게 너스레를 떠는 올리버에게 이안은 사과했다.
“제이 안이 관심을 더 크게 받아서 미안해요. Happy Homeless는 저보다 올리버의 노력이 더 많이 들어갔잖아요.”
-신경 쓸 거 없어. 가장 중요한 작품 발굴과 투자는 네가 했잖아. 내가 한 일은 프로듀서보단 감독에 가까운 일이었고.
“그래도요.”
-이번에 내가 안면을 튼 사람들만 해도 고생한 값을 치르고도 남아. 그건 신경 쓸 거 없고. 만나자는 요청이 엄청 들어오는 건 어떡할래?
일단 제이 안의 정체를 당장 밝힐 생각은 없다.
그럴 필요성도 못 느끼고 ‘I am J Ahn.’이라고 외쳤을 때 어떤 반응이 돌아올지 감당이 안 됐다.
‘겨우 가수 딱지를 떼고 본업이 배우가 됐는데 직업란에 사이비 교주가 추가된다고?’
그런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끔찍했다.
“어차피 직접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요청한 건 아닐걸요. 그냥 혹시나 하고 요청한 거겠죠.”
-그렇지.
“그럼 만나자는 요청은 거절하시고 함께 작업하자는 제안만 받아주세요. 아, 그리고 새로 접촉해야 할 감독들도 알려드릴게요.”
-감독들?
“Happy Homeless라는 괜찮은 커리어도 생겼겠다. 소심하게 움직일 필요는 없잖아요. 배급권을 팔면서 생길 돈도 있고요.”
원래 프로듀서는 감독과 달리 여러 작품을 같이 진행하니 이상한 결정은 아니지만.
-당장 배급권으로 얻는 수익을 기대하긴 힘들 텐데. 선댄스는 시작이잖아. 칸 영화제부터 오스카까지 가봐야 하니까.
맞는 말이다. 선댄스 수상작은 보통 칸 영화제와 오스카에서도 좋은 결과를 받곤 했으니까.
“우리가 전부 투자할 필요가 있나요. 높아진 이름값은 이럴 때 쓰는 거죠.”
-하하하, 그렇긴 해. 그럼 명단을 보내줘. 내가 한 번 알아볼 테니까.
“고마워요.”
-아, 그리고 레이먼이 널 꼭 보고 싶다는데 어떻게 할까?
광신도 레이먼에게 제이 안은 은인이다. 이런 요청이 오리라 생각했다.
“모든 시상식이 끝나고 만나자고 하죠.”
-오스카가 마지막일 테니 1년은 기다려야겠네. 알겠어. 그렇게 전해둘게.
1년이면 꽤 긴 시간이니 광신도 물도 꽤 빠지지 않을까?
그런 기대와 함께 이안은 통화를 종료했고 어느새 도착한 데미안의 문자를 확인했다.
-이안, 제이 안의 종교 상징은 공작새를 넣는 게 어때?!
-시안을 한 번 만들어봤는데 체크 좀 해줄래?!
금색으로 찬란히 빛나는 공작새 모양을 보며 이안은 눈을 감았다.
고민하면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고 앞서 말했던가.
이해하려고 노력했더니 정신이 오염되는 기분이었다.
***
제이 안이라는 아바타를 둔 건 잘한 일 같다.
아무리 그 이름으로 떠들썩해도 이안에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으니까.
기껏해야 제이 안의 정체를 아는 사람들에게 축하 연락과 감탄사를 들었을 뿐이고.
-이안, 우리 교수님… 아니지. 제이 안은 진짜 대단하지 않아? 존경하는 사람이라니까.
양심을 쿡쿡 찌르는 벨라의 연락이 왔을 뿐이다.
앞서 그녀의 연락을 받은 도로시는 ‘제이 안? 당연히 존경하지!’ 이 말을 듣고 ‘…스톡홀름 증후군인가. 이건 약도 없는데.’라며 걱정한 일이 있긴 하지만 도와줄 방법은 없었다.
사실 제이 안은 이안이라는 깜짝 발표할 배짱은 없었으니까.
아무튼, 제이 안과 거리를 둔 덕분에 Holy Love의 촬영도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가짜 연인인 엘라와 수많은 사건을 거치며 어느덧 도미닉은 사랑에 빠진 걸 깨달았고, 꿈과 사랑을 사이에 두고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사랑을 선택하는 결말이었다.
누구나 예상한 뻔한 결말.
‘하지만 대다수 시청자가 원하는 결말이라는 게 중요하지.’
모두의 예상을 깨는 게 꼭 좋은 선택은 아니다. 시청자가 원하는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게 중요한 법이지.
후두둑
가볍게 비가 쏟아졌다.
엘라가 도미닉의 서투른 위로를 받았을 때와 비슷한 풍경.
무심하게 헤어졌던 그때와 달리 두 사람은 소나기 속으로 기꺼이 한 발을 내디뎠다.
“나중에 신부를 포기한 걸 후회할지도 몰라.”
“이런 고리타분한 사람을 좋아했다고 후회하는 게 아니고?”
“…그럴지도.”
몸을 흠뻑 적시는 비처럼 둘은 순탄한 미래를 꿈꾸진 않았다. 그러기엔 둘은 너무나 달랐으니까.
당장 내일 사소한 일로 대판 싸울 수도 있겠지. 그런데도 둘은 망설이지 않았다.
진하게 이어진 키스를 끝낸 둘은 활짝 웃었다.
“컷!”
감독의 외침과 함께 스태프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준비 기간을 포함하면 1년 가까운 시간이 걸린 드라마 제작이 끝났다는 뜻이니까.
오드리와 함께 수건을 덮은 이안은 주변을 둘러봤다.
지난 시간 익숙해진 촬영장 풍경이 두 눈에 들어왔다. 뿌듯함과 섭섭함. 항상 촬영이 끝날 때쯤 되면 밀려오는 감정이었으나 이번에는 더욱 각별한 느낌이었다.
단순히 배우가 아니라 프로듀서로 참여한 탓일 거다.
‘이래서 이렇게 많은 배우가 프로듀서로 도전하는 걸까.’
배우로 느끼는 보람과 프로듀서로서 느끼는 감정은 종류가 달랐다.
책임감이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현장을 정리한 사람들은 끝이란 아쉬움을 털어버릴 수 있는 간단한 파티에 몸을 던졌고 먹고 마시며 유쾌한 시간이 흘러갔다.
“뭘 그렇게 청승맞게 보고 있냐.”
다니엘의 물음에 이안은 장난스럽게 답했다.
“너희들이랑 언제 또 같이 촬영을 할까 고민하고 있었지. 그러고 보니 아멜리아가 쓴 작품 중에 괜찮은 게 있던데. 같이 할래?”
“싫어. 이 자식아.”
질색하는 그를 보며 이안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싫어하지 않아도 제이 안으로 벌여놓은 일 때문에 당장 새로운 작품을 제작할 여력은 없었다.
‘계약 맺은 작품이 다섯 개나 되던가.’
마르코 감독의 Minority Battle를 포함하면 여섯 개다. 전부 괜찮은 성과를 내는 작품이었고.
이 작품들이 완성되고 줄줄이 풀리면 아마 할리우드가 또 떠들썩하지 않을까.
조명과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들을 지켜보던 다니엘이 살짝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고마워.”
뜬금없는 말.
이안은 살짝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봤구나? 그 편지.”
허먼이 몰락하고 브라운 씨가 이안에게 보낸 감사편지.
성인이 되고 나면 보여준다는 편지를 결국 다니엘은 결국 읽었다.
“아버지가 왜 이렇게 네게 고마워했는지 알겠더라. 그리고 나도 고맙고.”
허먼은 이젠 몰락한 이름이지만 얼마나 끔찍한 괴물이었는지 편지에 절절히 담겨 있었다.
그런 사람을 당시 어렸던 이안이 무너뜨렸다는 말에 굉장히 놀랐지만 의심하진 않았다.
‘얘라면 충분히 하고도 남지.’
이안은 언제나 상식으로 규정하면 안 되는 존재였으니까.
“근데 왜 도와줬냐. 그때면 그렇게 힘들게 도와줄 필요도 없었는데.”
“왜 도와줬냐고?”
환상을 통해 다니엘을 잃고 절망하는 부모를 본 탓도 있지만.
“좋은 배우가 그렇게 망가지는 건 아쉬우니까? 왜 이상한 답변이야?”
“아니, 너답네.”
“그러니까 실망하게 하지 마. 특히 약 같은 걸 하면 진짜 나한테 죽는 거야. 알지?”
“하, 내가 그럴 사람이냐?”
응, 원래는 약 때문에 죽었어.
코웃음을 친 이안은 다니엘을 툭 쳤다.
“가자. 엄청 부르네.”
오드리와 놀고 있던 도로시가 손을 붕붕 흔들었다.
이상하다.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서 알코올이 들어간 건 아닐 텐데 평소보다 텐션이 미쳤다.
저게 바로 분위기에 취한 걸까.
“어쩔 수 없지.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해줄까?”
“…또 뭔 짓을 하려고.”
누가 들으면 항상 이상한 짓을 하는 줄 알겠다.
“도로시.”
“왜!”
“노래 불러줄까? 라이의 라이브 무대 어때?!”
정적.
누가 배우 아니랄까 봐 수많은 감정을 얼굴로 표현한 도로시가 입을 열었다.
“꺄아아아악! 싫어!”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흑역사의 트라우마는 쉽게 낫지 않는 듯했다.
***
Holy Love 촬영이 끝났다고 방영이 끝난 건 아니다.
-멍!
레오는 TV 화면에 나오는 크림이와 눈앞에 있는 크림이를 보며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화면을 발로 툭툭 치고 혀로 핥는 모습을 이안이 웃으며 봤다.
재방송이고 저 짧은 등장만으로도 크림이는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Holy Love의 주 시청자층인 여성의 마음을 녹이기엔 충분한 모습이었으니까.
시청자들의 강한 압박에 SNS에 두 반려동물의 사진을 여럿 올려야 했고 반응은 당연히 좋았다.
‘광고 요청도 들어오긴 했는데.’
이 둘로 돈을 벌 생각이 없는 만큼 거절했다.
둘을 지켜보며 코앞으로 다가온 SAT 시험을 마지막으로 준비할 때쯤 이안에게 연락이 왔다.
의외의 이름이었다. 넷플러스 콘텐츠 수석인 수잔이었으니.
-이안, 오랜만에 하는 연락이죠?
“에미상을 받았을 때 축하 연락을 받았으니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요.”
넷플러스 다큐로 나간 TellMe와 남매 작가의 팬픽으로 만든 Melted Moonlight로 인연을 맺은 상대였다.
“어쩐 일이에요? 혹시 Holy Love 때문에 전화하셨나요.”
-아, 좋은 작품이더군요. 저희 직원이 조슈아 골드만 프로듀서가 우리 회사 기둥을 뽑아간다고 하소연할 정도로요.
“기둥이라뇨. 문짝 정도겠죠.”
넷플러스가 작은 기업도 아니고 기둥까지 뜯기겠는가.
-문짝 정도는 얼마든지 내줘야죠. 아무튼 Holy Love는 조만간 넷플러스에서 볼 수 있을 거예요.
“좋은 소식이네요. 근데 Holy Love 때문에 연락한 건 아닌가봐요?”
-네, 제 본업은 그게 아니니까요. 판권 계약 전에 의사를 물어보려고 전화를 했어요. 익숙한 일이죠?
데자뷰처럼 느껴질 정도로 익숙한 일. 이안은 미소를 지었다.
“스텔라 작가님이 쓴 루의 외전을 말하는 거죠?”
-네, 이미 Melted Moonlight로 재미를 봤던 터라 놓치긴 아깝더라고요. 어때요?
“저야 참여할 생각 있죠.”
-좋아요. 마음 놓고 판권 계약을 맺을 수 있겠네요. 계약서에 사인할 때 만나죠.
통화가 끊겼다.
이번 외전은 감옥에 갇힌 루가 Melted Moonlight에서 나오는 로드를 데리고 탈출하는 이야기다.
「The King Of Prison」이라는 제목으로 본편 못지않은 인기를 끈 작품이었고.
이안은 벤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야?
“루의 외전 제작이 확정됐…”
뚝!
통화가 끊기자 이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의로운 자식 도둑이 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