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49)
149. 데자뷔
이안은 품에서 꾸벅꾸벅 조는 에반의 머리를 쓸어줬다.
공작새 잠옷을 입고서 ‘이안!’을 외치며 매달리더니 잠들어버렸다.
‘2011년 5월에 태어났으니 곧 여섯 살인가.’
몸도 제대로 못 움직이고 방긋 웃기만 하던 아이가 어느덧 유치원에 다니고 있다니 기분이 묘했다.
에반은 이안에게 특별했다.
자신이 알던 미래에는 없던 아이였으니까.
벤과 아일라가 빨리 연을 맺도록 도운 덕분인지 아니면 레이첼을 바꾼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명백히 미래가 바뀌며 태어난 아이다.
여러모로 마음이 갈 수밖에 없다.
「The King Of Prison」 소설을 읽던 벤은 툴툴거렸다.
“누가 아빠인 줄 모르겠네.”
“백수 상태라 지겹게 보는 아빠보단 제가 더 반가울 수도 있죠.”
그리고 5년 넘게 이런 꼴을 봤으면 이젠 포기할 때도 되지 않았나. 참 질척거리는 사람이다.
“그것보다 소설은 어때요?”
“재밌네. 외전이라서 그런지 로맨스 느낌을 쭉 빼고 쓴 것도 괜찮아.”
“원작 여주인공이 있는데 감옥에서 다른 여자랑 로맨스에 빠지면 원작 팬들이 들고일어났을 걸요.”
너 때문에 탈덕했다는 도로시도 거품을 물고 욕을 내뱉었을 거다.
순애보는 루의 캐릭터성이니.
“로맨스를 뺀 대신 루와 리처드의 관계성을 살렸잖아요.”
리처드는 루의 첫사랑이 부탁하며 맡긴 아들이자, 뱀파이어 로드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그동안 감옥에 봉인된 아이였다.
KOP는 감옥에 갇힌 루가 리처드의 봉인을 풀고 함께 탈출하는 이야기고.
가장 중요한 두 주연이 무슨 관계냐 하면.
“…관계? 여기 아빠라고 부르며 따르는 장면을 말하는 거냐?”
이안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좋죠? 원작 팬들도 아빠라며 졸졸 쫓아다니는 리처드 모습에 끔뻑 넘어갔다니까요.”
“아오!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루 역할을 해야 했는데.”
양심도 없지 고등학생 역인데 잘도 됐겠다. 벤이 맡았으면 이런 외전이 나오지도 않았을 테고.
아무튼, 탈출이라는 긴박한 분위기를 녹여주는 육아 장면은 KOP의 인기 포인트였다.
이젠 아빠라는 명칭도 뺏어간다며 도둑놈 취급한 벤은 책을 휘리릭 넘기며 물었다.
“원작은 어느 정도 살리는데?”
원작이 있는 작품이라도 각색되는 정도는 천차만별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원작을 고스란히 따라가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그냥 껍데기만 가져온 수준일 때도 있다.
‘원작과 다르다고 욕먹는 일도 많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지.’
영상화할 때 기술과 예산에는 한계가 있는 탓이다.
특히 이런 문제는 게임이나 만화를 실사화할 때 자주 벌어지는데 각색 없이 진행하면 그저 코스프레 파티처럼 보이는 영상이 튀어나오기 딱 좋았다.
그래도 다른 장르에 비해 소설은 영상화하기 좋았다. 영화나 소설이나 스토리 구조는 똑같으니까.
“들은 건 최대한 원작을 살리는 방향으로 간다고 들었어요. 기본적인 스토리 라인은 똑같다고 봐야죠.”
“흐음, 그럼 아역의 역할도 꽤 크겠네.”
“제목부터 그렇잖아요.”
The King Of Prison, 감옥의 왕은 리처드를 의미하니까.
“확실히 오디션 경쟁이 심하겠어.”
비중도 있고 자본력이 있는 넷플러스에서 투자하는 작품이다. 관심을 보일 아역이 엄청 많을 게 뻔했다.
이안은 잠든 에반을 힐끔 내려보고는 말했다.
“제가 주는 도움은 남들보다 빨리 오디션 정보를 알려주는 것. 딱 여기까지예요.”
솔직히 마음만 먹으면 에반이 캐스팅되게 하는 건 어렵지 않다.
주연 배우가 캐스팅에 관여하는 경우가 드물지도 않고, 부모를 닮은 에반의 외모는 어지간한 아역을 압살할 정도였다.
‘벤과 아일라의 아들이라는 화제성도 좋지.’
제작사에 요청하면 오디션 없이도 합격 선언을 할 게 뻔했다.
이렇게 쉬운 길을 두고 굳이 오디션을 보게 하는 이유는 에반을 위해서였다.
“에반에겐 오디션을 보는 것 자체가 좋은 경험이 될 거예요.”
“그러다가 떨어지면?”
“당연한 걸 뭘 물어요. 에반보다 더 좋은 아역이 합격한 걸 테니 어쩔 수 없죠. 같은 생각 아니에요?”
“하긴 오디션에 떨어지는 게 특별한 일도 아니지.”
톱스타로 불리는 배우들도 오디션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탈락이 뼈아픈 좋은 작품일수록 그런 일이 많고.
‘다 그렇게 크는 거지.’
오디션 기회라도 얻는 게 어디인가. 자신은 기회도 못 얻고 탈락하는 일이 수두룩 했는데.
꼰대 같은 생각을 하며 이안은 벤에게 말했다.
“연기 연습은 벤이 맡아줄 거죠?”
“그래야지. 이것마저 뺏길 순 없잖아.”
아일라가 레이첼을 훌륭한 싱어송라이터로 키워낸 것처럼 자신도 에반에게 연기를 가르쳐주겠다.
벤은 열정을 불태웠고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다. 아쉽긴 하지만 양보할 건 양보해야지.
“들고 온 가방에 도움이 될 것들을 챙겨왔어요.”
“응?”
호기심을 자극하는 말에 벤은 묵직한 가방을 열었고 눈을 크게 떴다.
“…이게 뭐야?”
“이안 프라이스가 추천하는 세계 명작 대본 전집이요. 후, 그거 선정하느라 힘들었다고요.”
배우를 꿈꾸는 아역에겐 필독서 같은 대본으로 꾹꾹 눌러 담았다.
자부심 가득한 답변을 들은 벤은 망설임 없이 가방을 마당으로 휙 던졌다.
대본병을 막는 방역 조치였다.
***
Holy Love가 좋은 평가로 마무리되며 제발 시즌2 좀 내달라는 하소연이 인터넷을 떠도는 그런 날.
-이안! 나 대학에 합격했어!
“축하해!”
배우가 아니라 학업에 몰두하기로 한 래리를 시작으로 도로시, 다니엘, 네이선 등 인연 있는 사람들이 대학교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이어졌는데…
“뭐야. 셋이 같은 학교네?”
도로시, 다니엘, 네이선이 뉴욕 대학교의 단과 대학인 티시 예술대학에 합격했다.
물론 네이선은 학과가 다르긴 하지만 꽤 신기한 결과였다.
“그렇게 됐다.”
“어쩌겠어. 합격한 학교 중에선 여기가 제일 좋은걸.”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둘을 보며 재밌다는 듯이 이안은 웃었다.
“여기서도 붙어 다니더니 거기서도 마찬가지겠네?”
“끔찍한 소… 아악!”
“죽는다? 좋다고 하진 못 할망정.”
한 대 맞은 팔뚝을 문지르며 다니엘은 이것 보라며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 정도면 저 둘에겐 인사 같은 모습이라 가볍게 무시하며 궁금한 걸 물었다.
“티시 예술대학이면 브로드웨이로 동문이 강한 대학이잖아. 연극에 관심 있어?”
“없진 않지. 그리고 연극 연기도 도움이 많이 되고.”
하긴 카메라 앞에서 하는 연기랑 무대에 위에서 하는 연기가 발성부터 다르긴 해도 많은 도움이 된다.
연극배우는 몇 달 동안 한 배역으로 같은 대사를 펼치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캐릭터를 깊게 연구하게 되니까.
특히 연구한 결과를 관객들의 반응으로 바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장점이다.
“재밌겠네.”
“너도 연극을 할 생각이 있나 봐?”
“기회만 된다면?”
과거로 돌아오기 전 오페라의 유령을 불렀던 것처럼 연극도 준비했었다.
‘무대에 제대로 오른 적은 없지만.’
할리우드보다 동양인에 대한 벽이 더 강한 곳이 브로드웨이다. 가장 큰 이유는 동양인은 동양인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보수적인 이미지 때문이고.
물론 시간이 흐를수록 동양인에게 기회가 열렸지만 얼굴이 망가진 배우가 비집고 들어가기엔 힘들었다.
“나중에 좋은 기회가 있으면 알려줄게.”
“우리 앞가림이나 잘 하는 게 어떨까. 얠 걱정해주는 것보다 그게 더 나을걸.”
정곡을 찌르는 도로시의 말에 다니엘은 입을 꾹 다물었다.
하긴 누가 누굴 챙기겠는가. 지금 이안의 인기면 브로드웨이라도 오디션 정도는 얼마든지 볼 수 있을 텐데.
도로시는 이야기 주제를 바꿨다.
“그러는 너는 진짜 올해 대학에 안 가려고? SAT 시험 점수가 아깝다.”
AP 과목은 기사로까지 나올 정도였으니 말할 것도 없고 고등학교 내신인 GPA는 얘는 촬영 때문에 학교를 제대로 안 간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다.
SAT?
-이안 프라이스 SAT 시험 만점.
솔직히 기사를 보고 놀라지도 않았다.
SAT는 읽기와 쓰기, 수학으로 이뤄져 있는데 수학 난이도 자체는 쉬운 편에 속했다. 진짜 문제는 독해 능력인데…
‘어릴 때부터 대본을 손에 놓지 않는 애가 독해 능력이 떨어질 리가 없지.’
모의 테스트 때도 수두룩하게 만점을 받는 꼴을 보기도 했고.
“갈 수도 있지만 그게 지금 바로는 아닐 뿐이야. 나도 자유의 몸이 된 걸 조금 즐겨야지.”
자유롭다 못해 노숙자로 지내던 이안에게 학교는 진짜 족쇄였다.
대학을 갈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조기 졸업으로 자유의 몸이 될 걸 생각했더니 차마 대학 입학을 할 순 없었다.
“자유의 몸으로 가장 먼저 할 일은?”
“연기?”
“그래, 여행 같은 걸 기대한 우리가 바보지.”
뭐, 왜.
한숨을 내쉬는 둘의 모습에 이안은 할 말이 있었다.
“너희가 그렇게 말 안 해도 졸업하고 한국에 가봐야 하거든?”
“한국은 왜?”
“작품에 들어가니까.”
얼마 전에 캐스팅을 시작했는데 작품에 참여할 수 있겠냐고 고준혁 감독에게 연락이 왔다.
말할 것도 없이 동의했고.
‘6월 말부터 촬영에 들어간다고 했으니 대략 10월 정도면 촬영이 끝나겠고. 그다음에 바로 KOP 촬영이 들어가려나.’
간단하게 스케줄을 잡으면 그렇게 될 거 같다. 아직 각본을 준비 중이라는 아이작 감독님 작품은 내년까진 기다려야 할 테고.
대충 이안의 계획을 들은 다니엘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너무 작품 활동만 하는 거 아니야?”
“그런가?”
“그런가는 무슨. 그동안 지낸 스케줄을 생각해봐.”
어땠는지 잠시 고민해봤다.
생각해보니 쉴 틈 없이 작품에 들어간 거 같긴 하다. 힘들다는 생각은 전혀 안 해서 몰랐지만.
“적당히 쉬기도 해야지. 벤이나 데미안 씨도 너처럼 빡빡하게 작품을 들어가진 않잖아.”
“옆에서 보면 어떻게든 연기를 해야 한다고 집착하는 거 같기도 해.”
집착까진 모르겠지만 바로 다음에 참여할 작품이 없다면 불안하고 답답하긴 하다.
변성기를 이유로 2년의 공백기를 가졌을 때 그걸 여실히 느꼈고.
“그래도 나쁠 거 없잖아. 별로 지치진 않는데.”
“다작은 이미지 소모도 생각해야지. 이건 다른 분들하고 상담해보는 게 어때? 우리보다 더 잘 알걸.”
이미지 소모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다작을 해본 적이 없어서 쉽게 감을 잡기 힘들었다.
둘의 조언대로 이안은 도움을 구했고 돈 많은 백수 모임은 빠르게 모였다.
배우로는 벤과 데미안, 감독으로는 게빈.
셋 다 연예계에서 오랫동안 구른 사람들인 만큼 도움이 되는 조합이었다.
“이미지 소모? 하긴 그걸 걱정할 때가 되긴 했지.”
“오히려 지금이면 늦었지. 노아로 이미지 변신을 한 번 안 했으면 진즉에 이야기가 나왔을걸.”
빌런 노아는 파격적이긴 했다. 그동안 이안이 연기한 모든 배역과 달랐으니까.
“감독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흐음. 고민해서 나쁠 거 없는 주제구나. 너 정도면 인지도는 어느 정도 확보한 상태니까.”
다작이 도움이 되는 시기와 독이 되는 시기가 있다.
대중에게 이미 충분히 얼굴이 각인 된 이안은 작품을 신중하게 고르며 이미지 소모를 줄이는 게 나을 단계까지 왔다.
“퍼블리시스트를 고용하는 건 어때?”
“글쎄요.”
벤이 한 말이다. 아일라를 만나기 전에 배우의 이미지를 만들어주는 퍼블리시스트에게 톡톡히 신세를 졌으니 이런 말을 꺼낼만한데.
“제이 안도 있는데 절 감당할 수 있을까요?”
교주 제이 안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앞으로 관여한 영화 여섯 개가 쏟아지면 교주 타령이 더 심각해질 텐데 말이다.’
이안의 말을 들은 벤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힘들긴 하겠네.”
빌보드 가수이자 에미상 수상자인 이안과 교수, 교주 등으로 불리는 제이 안을 결합하는 건 연금술에 가까웠다.
어설프게 일을 벌이느니 안 하는 게 낫다.
데미안은 뭘 그렇게 고민하냐는 듯이 답했다.
“그냥 참여하는 작품을 줄이는 게 답이야. 이젠 진짜 괜찮은 작품 중에서 고르고 골라 들어가야지.”
가장 선택하기 싫은 답이 돌아왔다.
“연기를 안 하면 뭘 하라고요.”
“왜 할 거야 많지. 광고로 돈을 벌어도 되고 멈춘 노래라도 다시 하던가. 그러고 보니 재스퍼가 너랑 같이 곡을 내고 싶다고 하더라.”
공작새2가 된 재스퍼와 공동 작업이라.
“슬슬 널 찾는 라이 팬들도 많잖아.”
“그렇긴 하죠.”
배우 활동에 집중하겠다고 한지 시간이 꽤 지났고 에미상이라는 좋은 결과까지 얻었다.
그 탓인지 안 그래도 팬들이나 날이 갈수록 볼링핀 몸매가 되는 닉에게 언제쯤 복귀하냐는 압박이 들어오긴 했다.
“가볍게 생각해. 완전히 화해했다는 것도 보여줄 겸 곡 한 곡 정도 같이 내는 건 좋잖아.”
“음… 그럴까요.”
재스퍼에겐 Holy Love의 OST로 신세 진 것도 있으니까.
‘재스퍼랑 작업한다고 하면 레이첼이 투정 부리겠네.’
근데 어쩔 수 없다. 그녀는 지금 홀로서기에 집중할 시기니까.
“좋아요. 한 번 이야기해볼게요.”
조언을 받아서 재스퍼와 연락을 했고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수락했다.
‘역시 데미안 씨야!’라며 감탄하는 모습이 공작새 원시 신앙이 깊어지는 듯해서 영 찝찝하긴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렇게 디지털 싱글을 만들었고.
***
“축하합니다. 이안 프라이스 씨. 재스퍼와 함께 한 곡으로 또다시 빌보드 1위에 오르셨더군요!”
…데자뷔를 경험하게 됐다.
왜 이렇게 됐을까. 도로시에게 노래를 불러준다고 한 게 업보로 돌아왔나, 공작새의 제안을 받은 게 문제였을까.
“역시 본업이 가수라는 말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됐습니다.”
또다시 커뮤니티를 불태우는 본업 논란을 떠올렸다.
이게 맞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