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50)
150. 근본?
인생은 대본처럼 개연성 있지 않다.
연례행사였던 할머니의 생신에 온 가족을 잃었던 일을 시작으로 살면서 경험한 수많은 사건·사고가 그걸 뼈저리게 느끼게 했다.
‘그래서 대본이 좋지. 인생을 담았어도 관객의 이해를 구할 복선이 깔렸으니까.’
그게 비록 사고 전에 접시가 깨진다던가 돌아오면 결혼을 하자는 클리셰 덩어리라도 느닷없이 일을 던져주는 못된 상사 같은 삶보단 낫지 않은가.
도로시가 들었으면 그놈의 대본 찬양은 그만하라며 질색하겠지만 사실인 걸 어떡하겠는가.
정말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그런 면에서 2번째로 달성한 빌보드 1위는 그래도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다.
일단 재스퍼와 함께 곡 작업을 들어갔을 때 한 가지 문제를 맞이했다.
“음, 나나 라이나 하이톤이 강점인 게 문제… 뭘 그렇게 봐?”
뭘 그렇게 보냐고?
이안은 작업실을 쭉 둘러봤다. 앨범을 4집이나 만들면서 다른 가수의 작업실에 온 건 처음이다.
분명 처음인데.
‘…왜 이렇게 익숙할까?’
아마 데미안이 칸에서 나눠준 공작새 인형을 필두로 해서 눈에 익은 공작새 굿즈가 잔뜩 있는 탓이 아닐까.
“혹시 다단계 해요?”
강매를 당하고 있으면 당근을 흔들어라.
이안의 말에 재스퍼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다단계? 농담도 잘하네. 아, 혹시 저 인형 때문에 그런 거야? 가끔 놀러 온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라고 데미안 씨가 줬어. 인기 많은데 너도 하나 줄까?”
…필요 없어, 이 인간아.
다단계인지 포교인지 모르겠지만 신경 써봐야 머리만 아프다는 건 확실했고 이안은 주제를 돌렸다.
“그래서 뭐가 문제라고요?”
“너랑 나는 하이톤이 강점인 가수잖아. 이대로 듀엣을 내면 매력이 덜할 거 같다고. 안 그래요, 지미?”
재스퍼의 물음에 프로듀서인 지미 스티븐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안 그래도 그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
“들었지? 이제 우리 노래가 망하면 지미 탓이라고.”
“…뭐?”
“우리는 완벽한데 노래가 망하면 프로듀서 탓이죠. 원래 프로듀서가 그런 역할 아니에요?”
재스퍼의 농담에 지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음악 프로듀서로 살면서 개성으로 똘똘 뭉친 아티스트들과 이견을 조율하는 건 피할 수 없는 숙명이지만 벌써 험난한 미래가 예상됐다.
‘그나마 다른 한 명은 이안이라서 다행이네.’
착실하고 착한 거로 유명했다. 대외 이미지의 절반만 돼도 그나마 평온한 작업이 되지 않을까 기대됐다.
마음을 다 잡는 지미는 이안의 질문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우리 둘 다 하이톤인데 어떡하자고요?”
변성기를 거친 재스퍼의 미성과 변성기를 거치지 않은 듯한 라이의 미성은 분명 차이가 있으나 듀엣으로 담기엔 아쉬움이 있다는 건 알겠다.
해법을 달라는 말에 재스퍼는 바로 답했다.
“라이 목소리가 아니라 지금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는 어땠어?”
“지금 목소리요?”
확실히 지금 목소리는 변성기 이후라 하이톤 느낌은 아닌데…
“한 번도 불러본 적 없는데요.”
“…뭐?”
“진짜 안 불러봤다고? 시험 삼아 불러보거나 기분 좋을 때 노래를 부른 적이 진짜 없어?”
놀라는 둘을 보며 이안은 이해할 수 없었다.
“흥에 겹다고 노래를 부르는 게 당연한 일은 아닌데요. 노래를 부를 여력이 있으면 대본 연습을 하죠.”
“말도 안 돼.”
기괴한 생명체를 보는 듯한 시선에 이안은 혀를 찼다.
이래서 가요계 사람들은 안 된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노래를 부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뮤지컬 연습이라도 했으면 모르겠는데 그런 것도 안 했으니까.’
진짜 지금 목소리로는 노래를 부른 적이 없다.
“으음… 계획이 조금 어그러졌는데. 어떡할래, 재스퍼?”
“뭘 어떡해요. 한 번 시켜봐야죠. 이안, 해봐.”
손에 덥석 쥐여주는 마이크.
그걸 받고 멀뚱멀뚱 서있는 이안에게 재스퍼가 물었다.
“아는 노래는 있어?”
“오페라의 유령 주제곡이요. 영어,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로도 부를 수 있죠.”
“아니, 그건 대단하긴 한데 그런 곡 말고 말이야.”
진짜 어지럽네.
지금 자신보고 크리스틴 역할을 하라는 건가? 고개를 내저은 재스퍼는 이안이 부를 수 있는 곡을 힘들게 찾아내야 했다.
“자, 한 번 불러봐.”
재스퍼의 말에 마이크를 들어 올린 이안은 살짝 낯선 느낌을 받았다.
노래 자체가 낯선 건 아니었다. 라이로 앨범을 준비할 때 허투루 한 것도 아니고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는 뮤지컬 준비부터 많은 걸 했으니까.
‘근데 지금 목소리는 완전히 다른데.’
사람들이 정체도 눈치 못 챈 라이는 당연하고 회귀 전 목소리는 오랜 노력 끝에 허스키한 느낌이 났다.
명백히 다른 목소리인 만큼 이게 정말 좋은 선택인지 의심하면서 반주에 맞춰 입을 열었고.
“…OMG.”
재스퍼와 지미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노래를 끝낸 이안은 둘에게 바로 물었다.
“괜찮았어요?”
“괜찮았냐고?! 그거 기만이야. 재스퍼, 어떻게 생각해?”
“조용히 해봐요. 미리 준비한 곡을 갈아치워야 할 판이니까요.”
“왜 그렇게 호들갑이에요.”
배우 활동을 하면서 잡아놓은 발성이 덕분에 나쁘지 않게 불렀다. 딱 이 정도 감상이었는데 왜 이렇게 호들갑인지 모르겠다.
이런 반응에 몇 번 입을 달싹거린 재스퍼는 겨우 진정하고 말을 이었다.
“당연히 좋았지. 솔직히 라이의 목소리도 좋긴 좋거든? 근데 호불호가 확실히 갈리는 목소리잖아.”
맑은 소년 목소리.
좋아하는 사람은 미친 듯이 좋아하지만 마초적인 남자를 비롯해 일부 사람들은 엄청나게 혐오했다.
괜히 라이의 정체가 밝혀지기 전에 팬과 안티팬 사이에 전쟁이 있었던 게 아니고.
“근데 지금 목소리는 확실히 대중적이야. 다 좋아할 만한 목소리랄까.”
“그렇다고 밋밋하거나 흔해 빠진 느낌도 아니지. 이상할 정도로 목소리가 귀에 착착 감긴달까.”
그 기묘한 느낌이 매력으로 또렷하게 묻어났다. 순간적으로 방금 부른 노래의 원곡이 잊혀질 정도로.
지미는 감탄하며 말했다.
“재스퍼, 네 말대로 진짜 가수를 해야 했을 인재였네.”
분명 칭찬으로 한 말인데.
“…하아.”
기분 나쁘다는 듯이 이안이 길게 한숨을 내쉬자 지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도 역시 가수였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니 확실했다.
***
재스퍼와 화해한다는 제목인 「Make Up」의 작업은 빠르게 진행됐다.
별로 자신 없다는 이안의 말에도 재스퍼가 작곡 작사에 참여시킨 곡은 지미의 호평을 바로 받았다.
R&B로 이미 큰 성과를 낸 둘의 조합은 생각보다 훌륭했고 지미는 갈림길에 섰다.
다름이 아니고 이안이 6월에 촬영을 들어가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했기 때문이다.
‘그래, 홍보 기간을 생각하면 영화 한 편 촬영 정도는 기다려 줄 수 있지.’
근데 돌아와서 드라마 촬영이 예약된 건 솔직히 너무하지 않나.
노래를 잘 만들면 뭐하는가? 발효식품도 아니고 푹 묵히게 생겼는데.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겠어? 선택지는 둘이야. 홍보가 부실할 순 있어도 일단 내놓는다. 아니면 홍보를 제대로 힘써서 내년에 내놓는다.”
홍보를 포기하던지 유행이 휙휙 지나가는 위험을 감수하던지.
양자택일해야 하는 순간에 둘은 전자를 선택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그냥 내놔야죠.”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둘의 결정이 내려진 이상 여유를 부릴 시간은 없었다. 최대한 빨리 음원을 내놔야 이안이 한국에 들어가기 전에 토크쇼든 라디오든 한 번이라도 더 홍보를 돌 테니까.
지미는 바로 기사를 내놨고.
-악연으로 시작한 재스퍼와 이안의 듀엣곡 「Make Up」. 기습 발표!
-재스퍼, 「Make Up」를 들으면 엄청나게 놀랄 거다.
-전성기를 달리는 둘의 듀엣은 어떨까. 팬들은 환호!
이 이야기로 순식간에 떠들썩해졌다.
확실히 흥미로운 주제였다. 지금은 화해했다고 알려졌으나 둘은 그만큼 살벌하게 싸웠으니까.
-와 진짜 둘이 듀엣을 낸다고? 그런 일이 있었는데?
└뭔 일?
└재스퍼 안티와 팬이 미친 듯이 싸우고 거기에 충격받은 이안은 라이 활동을 접고. 난리였잖아.
└솔직히 그 덕분에 빌보드 1위까지 했는데 남는 장사였지.
└아니지. 라이 활동으로 벌 수 있는 엄청난 돈을 포기할 정도였는데 보통 충격이었겠냐.
안티팬 때문이 아니라 본업이 가수가 된 것 때문에 충격을 받은 걸 모르는 사람들은 진짜 제대로 화해했다며 놀라기도 했고.
-와! 드디어 라이가 돌아왔다고!
└드디어 콘서트 적금을 깰 수 있는 시간이 찾아왔나?!
└???: 콘서트 계획은 당분간 없다. 내년까지 스케줄이 차 있어.
└…이아아아안!
└돌아온 게 어디야. 난 적금이 10년 만기가 안 되기만을 바라고 있다고.
-둘 다 좋아하는 팬인데 둘이 듀엣으로 하는 게 어울릴까?
└전문가들도 그게 걱정된다고 하더라.
└둘 다 능력이 있는데 어련히 잘 하겠지. 그리고 재스퍼가 기대할 만하다고 했잖아.
└기대가 아니라 놀랄 거라고 했는데? 안 좋은 쪽으로 놀랄 수도 있지.
└닥쳐!
라이와 재스퍼의 팬들이 기대와 우려를 함께 쏟아내기도 했다.
다행히도 관심은 확실히 끌었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수천만 명의 SNS 팔로워를 가진 재스퍼나 천만이 넘는 팔로워를 가진 이안이나 큰 팬덤을 가진 상태였으니까.
SNS 글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홍보 효과는 대단했다.
실물 앨범을 만드는 게 아니라 디지털 싱글로 곡을 내놓는 만큼 발매는 준비는 빠르게 이뤄졌고 4월 말로 발매를 확정 지었다.
그다음은 뭘 했냐고? 당연히 발로 뛰었다.
“이안! 이게 진짜 얼마 만인지 모르겠네.”
“오랜만이네요, 제리.”
첫 번째 에미상의 사회자면서 함께 콘도그를 나눠주는 이벤트를 한 제리 페레스는 훌쩍 큰 이안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언제 한 번 토크쇼에 나온다고 해놓고 이렇게 오랫동안 소식이 없기야?”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후… 그래, 이렇게라도 약속을 지켰으니 됐다.”
라이의 정체를 밝혔을 때나 기어코 빌보드 1위에 올랐을 때 정말로 초대하고 싶었으나 지금도 나쁘진 않았다.
그 사건의 주체인 둘을 한 자리에 앉혀둘 수 있었으니까.
제리와 사전 협의도 하고 당장 동원할 수 있는 홍보 수단을 사용하는 사이 음원이 공개됐고.
-「Make Up」. Where is Ra-I?!
전문가부터 노래를 기다리던 팬들까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이런 건 라이가 아닌데… 분명 아닌데… 왜 좋지?
└여자애 같은 라이 목소리보다 훨씬 좋은데?!
└닥쳐! 둘 다 그냥 좋은 거니까.
└근데 진짜 좋긴 하다.
-이안, 얘가 괘씸한 점. 라이인 걸 숨기고 4집까지 활동함. 이렇게 좋은 목소리로 지금까지 노래를 안 부름.
└아니! 당장 라이 커버를 내놓으라고!
└이 정도면 라이 활동을 접는 사이 열심히 준비해온 거 아니냐?
└???: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지금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봤다.
└…OMGGGG. 진짜 종잡을 수 없는 인간이네.
라이와 이안은 다르다는 듯이 기존 목소리로 부른 노래는 따로 마케팅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지금 음원 판매 4위입니다!
첫날에는 4위로 시작한 음원 판매는 바로 다음 날 입소문을 타고 1위에 올랐고.
이 관심은 이안과 재스퍼가 본격적으로 토크쇼를 비롯한 라디오 홍보를 시작하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빌보드에 오른 첫 주에 8위를 달성한 게 놀랍지 않을 정도였다.
‘…왜 이렇게 잘 됐지?’
환호성을 터트리며 공작새 인형을 사방에 흩뿌리는 재스퍼를 무시하며 고민한 이안은 내심 이유를 눈치챘다.
‘역시 목소리 때문인가.’
invisible children에서 추락하는 아이를 구해주고 바뀐 목소리는 톡톡한 역할을 했었다.
드래곤 빌리지에서 성우로 활약하기도 했고 아이작 감독님을 처음 만났을 때 사람을 끄는 힘이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물론 연기할 때도 상대방과 호흡을 맞추는 데 도움이 됐고 라이의 성공에는 큰 영향을 끼쳤다.
‘근데 그것도 사실 제대로 효과를 못 살린 거라면?’
그럼 이런 반응도 이해 못 할 건 아니다.
실제로 직접 「Make Up」를 들은 사람들은 하나 같이 음원보다 실제로 듣는 게 훨씬 매력 있다는 말을 했으니까.
새로운 발견이다.
뮤지컬이나 음악 영화 같은 곳에서 활약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으니까.
문제는 순수하게 기뻐하기엔…
-미쳤어! 빌보드 1위라고!
기어코 「Make Up」이 빌보드 1위에 올랐고.
“역시 본업이 가수라는 말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또다시 지긋지긋한 본업 논란이 튀어나왔다.
그래, 이해는 한다. 빌보드 1위를 두 번이나 차지했으니 이런 말이 나올 법도 하겠지.
“이안의 본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요? 당연히 가수죠.”
근데 1위를 축하하는 인터뷰 자리에서 당당하게 헛소리를 주장하는 재스퍼는 용서하기 힘들었다.
역시 공작새 놈들은 헛소리가 기본이라고 한탄하며 단호하게 말했다.
“무슨 소리를 해요. 내가 왜 배우가 아니라 가수가 본업이에요?”
“당연하잖아. 네 근본인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요.”
누구 마음대로 가수가 근본인가.
퉁명스러운 대꾸에 재스퍼는 여유롭게 손을 휘휘 흔들었다.
“네가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진 작품이 뭐야?”
“invisible children의 노아…”
야, 잠시만.
그거 이야기할 생각은 아니지?
입을 막아야 한다. 이안의 행동보다 재스퍼가 입을 여는 게 더 빨랐다.
“육아 치트키인 열 꼬마 인디언 노래로 먼저 알려졌잖아.”
그랬다.
invisible children의 방영보다 위튜브에서 열 꼬마 인디언이 인기를 끈 게 먼저였다.
“오늘로 근본 논란은 종결이네. 그렇지?”
…왜 그랬니 과거의 나야. 그깟 위튜브가 뭐라고.
이안은 인터뷰어가 적는 수첩을 힐끔 봤다.
-근본 가수, 이안 프라이스.
어허, 그거 아니야.
가수가 본업을 넘어 근본을 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