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53)
153. 그림자 가족(1)
이상하다.
동양권 문화에 빠삭하다고 할 순 없지만 사주를 보는 게 분명 위험한 일이 아니란 건 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무당까지 때려치웠을까.
이안이 할 말을 고르지 못해 입을 달싹이자 남수는 인자한 미소로 말했다.
“걱정 안 해도 된단다. 다행히 이번엔 안 쓰러졌거든.”
…다행 맞나?
“오히려 고맙다고 하더구나.”
“고맙다고요?”
“퇴송할 때 해야 하는 굿이 필요 없을 정도로 신이 깔끔하게 떠났다더라. 덕분에 편하게 끝났다고 했어.”
게빈이 이 말을 들었으면 감격하며 성수보다 자신의 사진을 들고 다니지 않았을까.
이안이 미묘한 표정을 짓자 남수는 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 이 말을 전해달라고 했단다. 그냥 원하는 대로 살아도 아무 문제 없다고 말이야. 다행이지 않니.”
모든 무당에게 거절당한 이안 때문에 큰 걱정을 하던 남수는 이 말에 크게 안도했으나.
‘그런 게 궁금했던 건 아닌데?’
얻게 된 능력에 대해 알고 싶었지 배우 생활을 계속 해도 되냐고 물은 게 아니었다.
나쁜 말은 아니니 기분 나쁘진 않은데 솔직히 위험하다고 배우를 그만두라고 했어도 상관없었다.
그딴 말에 휘둘릴 정도면 망가진 얼굴로 배우를 꿈꾸지도 않았을 테니까.
물론 도와준 남수에겐 고맙다는 마음을 듬뿍 담아 활짝 웃으며 물었다.
“다행이네요. 근데 그분은 어디 계셔요? 고맙다고 말이라도 전하고 싶은데.”
진짜 궁금한 건 직접 만나서 물으면 된다.
이 속뜻을 감춘 말에 그는 어색한 표정으로 답했다.
“절대 찾아오지 말라고 말하곤 바로 이사 가셨단다.”
…도대체 무당에게 이안 프라이스라는 인간은 뭘까.
이제는 이게 제일 궁금했다.
***
남수와 준혁을 보내고 호텔 방에 남은 이안은 이름 모를 무당의 말을 천천히 곱씹어 봤다.
과거로 돌아온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만 예언 같은 건 크게 믿지 않았다.
‘…솔직히 무당이란 사람들도 크게 믿음은 안 가고.’
뭔가 능력이 있는 거 같긴 한데 지금까지 본 모습이라곤 얼굴 보고 기절하고, 기겁하며 깃발을 내리고, 사주 한 번 봤다가 무당을 때려치우고 이런 것뿐이었다.
‘나보다 약한 녀석의 말은 듣지 않는다.’ 이런 말을 할 생각은 없지만 크게 신뢰가 안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빈말이 아니라고 가정하면 건진 게 있긴 하네.”
원하는 대로 살아도 된다.
좋을 대로 해석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위험한 액션 같은 걸 소화해도 괜찮다는 뜻 아닐까?
‘물론 팬들이 자연사를 꿈꾸는 어느 액션 배우처럼 진짜 목숨이 위태로운 액션을 찍을 생각이 없지만.’
하고 싶어도 그런 액션을 한다고 하면 배우 간판을 내리고 가수로 전업시킬 인간이 한둘이 아니다.
그냥 지금보다 마음 편히 액션 촬영을 할 수 있는 정도. 딱 그쯤이 아닐까.
대충 생각을 정리한 이안은 대본을 펼쳤다.
보통 사람이면 시차 적응도 제대로 안 끝났을 시간이나 바로 다음 날 대본 리딩이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일정이 너무 빡빡하다고 뭐라고 하기엔 이 일을 만든 원흉이 이안이었다.
세상에 Holy Love 제작도 끝났겠다 편히 쉬고 넘어올 줄 알았던 사람이 느닷없이 빌보드 1위에 오를 줄 누가 알았겠는가.
-빌보드를 휩쓴 「Make Up」! 한국 차트까지 점령.
-또 한 번 빌보드 1위를 찍은 이안 프라이스 「그림자 가족」 촬영을 위해 방한 예정.
이안이 잘 나가는 건 좋은 일이다.
촬영을 앞둔 영화 홍보가 자연스럽게 됐으니까. 이것까진 좋았는데.
“감독님, 예정대로 한국으로 부르면 안 되겠죠…?”
“…그걸 말이라고 해?”
빌보드 1위를 찍고 쏟아지는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사람에게 ‘대본 리딩도 있으니 예정대로 일찍 한국으로 들어와 주세요.’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있나.
그렇다고 주연인 이안을 빼놓고 대본 리딩을 할 수도 없고.
결국, 최대한 미룬 끝에 잡힌 일정이 지금이다. 누구에게 불평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사실 별로 힘들지도 않지.’
다니엘을 돕고 바뀐 몸은 시차 적응 따위는 가볍게 씹어 먹고도 남았다.
오히려 곧 촬영이라고 생각하니 몸의 활기가 돌 정도였다.
이안은 바로 「그림자 가족」이라고 적힌 대본을 펼쳤다.
이미 대본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본 상태여서 모든 대사가 눈에 훤할 정도였다.
‘소재는 알 던 대로 출생신고가 안 된 그림자 아이를 소재로 한 영화.’
당연히 사회 비판적인 영화였다.
이안은 흥미롭게 대본을 천천히 훑었다.
한·중·일 세 국가 모두 영화 시장 규모가 세계적인 국가다. 자체적으로 영화를 꾸준히 만들어내는 흔치 않은 국가 중 하나였고.
하지만 두 국가와 달리 한국은 정치, 사회 비판적인 영화를 비롯해 다양한 장르의 영화가 나온다는 특징이 있었다.
다른 셋에 비해 한국 대본을 보는 걸 좋아하는 이유기도 했고.
“확실히 잘 쓰긴 했어.”
미래를 몰랐어도 대본을 봤으면 작품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컸을 정도였다.
그림자 아이?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생기고 있다는 건 분명 큰 문제다.
이 소재를 사용하는 건 이안도 좋다고 생각하고.
‘문제는 보편성이지.’
단순히 그림자 아이가 중점이 되는 이야기라면 측은지심을 느껴도 크게 와닿진 않을 거다.
보통 사람 주변에는 이런 아이가 없을 테니까.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그림자 아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일을 끌어오는 거다.
그림자 가족에선 몰래 아이를 구해야 했던 출산 강요, 그림자 아이가 생기게 된 혼외 출산, 돈을 위해 아이를 넘겨야 했던 가난, 그런데도 작품 곳곳에 드러나는 가족애까지.
비교적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문제를 그림자 아이라는 소재를 통해 끌어왔고 많은 사람이 공감하며 볼 수 있는 작품이 될 수 있었다.
감독이 그림자 아이라는 주제에 매몰되지 않았다는 증거였고 이 대본이 훌륭한 이유였다.
“벌써 기대가 되네.”
선물을 받는 아이처럼 이안은 기대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가수로 활동하며 직접 환호성을 받는 것도 좋았지만 역시 연기를 할 때가 가장 즐거웠다.
***
그림자 가족의 대본 리딩장은 북적거렸다.
리딩을 준비하는 배우와 스태프들이 많은 것도 있지만.
“선배님, 이렇게 리딩장에 기자가 많이 오신 건 본 적 있나요?”
“나라고 봤겠니?”
그림자 아이를 낳은 유진 역할의 하린에게 돈을 주고 아이를 들인 선영 역의 지윤이 답했다.
배우 경력이 20년이 넘은 그녀도 이 정도로 많은 기자가 온 건 처음 봤다.
그랜드 라인으로 칸의 경쟁 부문까지 올라간 고준혁 감독의 신작인 것도 있지만 역시 가장 큰 이유는 이안 때문이었다.
“역시 대단하긴 대단하네요.”
“아무렴. 대단하지.”
“오빠 왔어요? 어쩐 일로 일찍 오셨네요.”
지윤은 자신의 남편 역할인 도윤을 의외라는 듯이 봤다.
리딩장에서 늦게 들어오면서 굳이 기 싸움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부지런한 성격은 또 아니었다.
제때 시간 맞춰 올 줄 알았는데 일찍 오다니 의외였는데.
“당연히 일찍 와야지. 어제 기대돼서 잠도 제대로 못 잤다고.”
“오빠가요?”
이미 두 차례 정도 함께 작품 촬영을 한 지윤은 코웃음을 쳤다.
배우로 일하다 보면 시골에서 촬영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당연히 외지인도 많이 안 오는 곳에 번듯한 호텔이 있을 리 없고 몸값 비싼 스타든 스태프든 공평하게 싸구려 모텔에서 지내는 경우도 많다.
‘그런 냄새나는 방에서도 침낭만 던져주면 잘만 자던 사람이 잠을 설쳤다고?’
길바닥에 던져도 잘 지낼 사람이 잠을 설쳤다니 웃길 따름인데.
“너는 옛날부터 사람 말을 안 믿더라. 진짜라니까? 얼마나 기대했는데.”
“진짜요?”
“그래. 이안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모르는구나. 내가 할리우드에서 작품 하나 찍은 건 알지?”
지윤은 ‘아, 이 오빠 또 이 이야기를 하네.’라며 지겹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하린은 눈을 빛냈다.
“알죠!”
“…영화가 잘 안 됐는데 그렇게 보면 조금 민망하잖아. 아무튼, 그쪽 생활을 경험해봤으니 아는 건데 아시아계 배우로 이렇게 성공하는 건 진짜 쉽지 않다고. 일단 배역부터 없으니까.”
도윤처럼 아시아에서 얻은 인지도를 갖고 할리우드에 도전한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이 아역부터 시작한 배우였고 이렇게 빠른 성공은 미국 내에서도 기적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하린, 너는 아이돌 출신이니까 알잖아. 너희보고 빌보드 1위를 찍으라고 할 수 있겠어?”
“…그걸 어떻게 해요?”
“거의 그 정도 수준이지.”
“근데 그 사람은 진짜 빌보드 1위도 찍었잖아요.”
…그러게?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배우로 성공한 건만 따져도 그렇단 말이야.”
그런 성공을 거둘 정도면 연기를 얼마나 잘해야 할까.
기대가 안 되면 거짓말이다.
‘물론 영어가 아니라 한국어 연기라서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
한국어 연기가 제대로 안 되는데 준혁 감독이 그냥 이름값으로 캐스팅했을 리는 없다.
도윤은 이런 확신으로 이안을 기다렸고 얼마 안 돼서 주변이 시끄러웠다.
“이안, 잘 지냈어? 아니, 왜 이렇게 컸어. 올려다보느라 목 아프겠네.”
“저야 잘 지냈죠. 그랜드 라인 촬영 이후에 또 만날 줄은 몰랐네요. 잘 부탁드려요.”
“리딩 끝나고 이야기하자고. 애들도 너랑 다시 촬영한다니까 엄청 좋아하더라.”
“저야 좋죠!”
이름까지 부르며 이미 안면이 있는 스태프들과 인사를 나누며 들어오는 이안을 보던 도윤은 다급하게 친한 지윤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지윤아, 오빠가 부탁이 있단다.”
“부탁요? 뭔데요.”
갑자기 무슨 부탁?
“나랑 자리 좀 바꾸자.”
왜 하필 옆자리인가.
잘못하면 리딩장의 오징어가 되게 생겼다.
도윤은 뒤따라 오는 감독을 살짝 원망하는 표정으로 봤다.
***
익숙한 대본 리딩이 굉장히 낯설 게 다가왔다.
모든 배우부터 스태프까지 전부 같은 아시아계 사람이었다.
‘아마 여기가 할리우드였으면 인종차별이라고 했겠지?’
어떻게 아시아계 사람만으로 영화를 찍냐면서 말이다.
진짜 한국 영화에 참여한다는 게 여실히 느껴졌고 대본 리딩은 순탄하게 이뤄졌다.
‘역시 실력이 다들 괜찮네.’
적어도 주연급은 전부 훌륭한 연기를 선보였고 이안도 마음 놓고 연기를 했다.
언제 아이를 가지냐는 압박에 선영은 불임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했고 장기 해외 출장을 간 남편에게 임신했다는 거짓말을 하는 거로 대본은 시작된다.
가짜로 부른 배와 초음파 사진 같은 자료를 거짓으로 보낼 수 있었으나 진짜 문제는 아이였다.
곧 돌아올 남편에게 보여줄 아이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돌아다니던 선영과 인연이 닿은 게 진영이었다.
“뭘 그렇게 망설여요? 혼외 출산이라면서요. 누나를 위해서도 이게 더 좋다니까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조카를 돈 때문에 넘기는 건 조금.”
“조카도 좋은 곳에서 살아야죠. 가난 지긋지긋하지 않아요?”
선영의 계속되는 설득에 조카를 넘긴 것까진 좋았는데.
“아니, 애가 계속 우는데 어떻게 해요?”
“얼마나 얌전한 애인데 무슨 소리예요?”
“빨리 도와줘요! 진짜 힘들어 죽겠단 말이에요.”
선영의 하소연에 진영은 집으로 찾아갔고 자신을 보자 울음을 뚝 그치는 아이를 품에 안고 집을 휙 둘러봤다.
자신이 살던 곰팡이와 얼룩으로 가득한 집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호화로운 집.
놀라고 신기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는 이안의 연기를 보며 다른 배우들은 감탄했다.
표정과 마치 비싼 물건을 만지는 듯한 행동은 진짜 호화 주택을 보고 있는 듯했고 놀란 얼굴이 점점 욕심으로 바뀌는 모습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이 욕심은 다음 대사를 통해 진득하게 묻어났다.
“흐음. 제가 가면 또 애가 울 거 같은데. 어떻게 하시려고요.”
“몰라요. 무슨 방법이라도 있어요?”
“있기는 한데… 계단을 올라오면서 봤는데 창고로 쓰는 반지하가 있더라고요? 돈만 제대로 챙겨주신다면 거기서 지내며 애를 봐줄 수도 있죠.”
선영은 바로 고개를 흔들었다.
“미쳤어요? 그리고 집에 남자를 들인다니 남편이 절대 허락을 안 해줄 거예요.”
“안타까운 신혼부부가 있다고 속이면 되죠. 제 누나랑 같이 들어와 살게요. 어때요?”
이거라면 허락받을 수 있지 않겠냐.
이 말에 선영은 오랜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였고 거대한 저택이 만드는 그림자에 한 가족이 스며들어왔다.
이어지는 대본은 블랙 코미디가 적절하게 섞였다.
진짜 자신의 아이가 맞는지 의심한 남편이 유전자 검사를 하려고 하자 진영은 아이의 생부를 찾아가 머리채를 붙잡으며 싸우며 모근이 있는 머리카락을 얻기도 했고.
친누나인 유진과 부부 연기를 하느라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코미디와 긴장감을 주는 서스펜스가 적절하게 섞인 그림자 가족의 대본 리딩은 3시간이 걸려 끝이 났다.
겨우 숨을 돌린 배우들은 이안을 보며 감탄한 얼굴을 했다.
이안이 맡은 진영은 영화의 분위기를 조율하는 캐릭터였다.
유쾌한 코미디의 주축이기도 하고 거짓말이 들통날 위기 때마다 긴장감을 불어넣는 역할도 함께 했다.
분명 쉽지 않은 역할인데.
‘그걸 그냥 숨 쉬듯 해버리네.’
감탄을 넘어 질린 표정을 지은 배우들은 칭찬을 쏟아냈고 그걸 받아주던 이안은 하린을 봤다.
“아이돌 출신이라고 하셨죠?”
“…그건 왜요?”
하린은 살짝 긴장했다.
혹시 연기에 부족한 게 있었나? 아니면 이안도 아이돌 출신이라는 것에 색안경을 끼나?
그녀의 걱정과 달리 이안의 입에서 나온 건 전혀 예상외였다.
“그럼 굿즈 같은 걸 만드는 것도 빠삭하게 아시겠네요?”
“…어? 그렇죠?”
“잘 됐다. 그럼 도움 좀 구할 수 있을까요? 영화 촬영이 끝나면 팬미팅이 있는데 그때 선물로 줄 것들을 만들고 싶거든요. 혹시 시간이 너무 부족할까요?”
역조공.
이안이 바라는 걸 깨달은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소속사에 바로 부탁할게요!”
하린의 소속사의 도움으로 업체까지 연결이 된 이안은 SNS에 글을 올렸다.
-기쁜 소식을 전하려고 합니다. 팬미팅 참여하시는 분들께 제 굿즈를 선물로 드릴 예정이에요! 모두 기대해주세요. 🙂
한 번도 나온 적 없는 이안의 굿즈.
이 소식은 빠르게 퍼졌고.
-으아아! 팬미팅 경쟁률이 다시 오른다!
└멈춰. 이러다 다 죽어!
└안 돼! 차라리 돈을 받고 팔란 말이야.
└도대체 우리가 뭘 잘못했는데 이러는 거야! 응?! 차라리 말로 하라니까!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이안의 팬들은 이 끔찍한 사실을 몸으로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