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54)
154. 그림자 가족(2)
팬미팅은 짧은 준비 기간만큼 갑작스럽게 결정된 일이다.
다만 그게 이안이 팬미팅을 가볍게 여긴다는 뜻은 아니었다.
‘아무리 팬이라도 첫 만남은 중요한 법이니까.’
위튜브 덕분에 주머니도 두둑해졌겠다. 굿즈라는 새로운 문물을 선물로 주는 건 역시 좋은 아이디어 같았다.
-…굿즈는 뭘 줄 생각입니까?
└포토 카드, 에코백, 캐릭터 키링, 텀블러, 후드티. 다른 건 더 협의 중입니다. 🙂
└HaHaHa, 그쯤 하셔도 됩니다만.
└이미 배가 너무 불러서 그런데 나머지는 다음을 위해 남겨 두는 게 어떱니까?
└그다음이 언제 될지 모르니까요. 🙂
└OMG! 그만! 그만 말해! 당장 촬영이나 하러 가라고!
이것 봐라. 선물을 고봉밥으로 챙겨주는 따뜻한 마음에 촬영까지 신경 써주지 않는가.
한때 가수파라는 불순 종자가 있던 Fianist는 하나가 되어 배우 활동을 지지해주고 있다. 아주 마음이 따뜻해지는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음… 정말 괜찮아?”
“뭐가요?”
굿즈 제작을 도우면서 어느 정도 친분을 쌓았고 어차피 영화에서 남매 역할을 해야 하는 만큼 이안에게 편하게 말해도 된다는 말을 들은 하린은 잠시 고민했다.
정말 모르는 걸까.
‘한국에서 열어도 천 석은 순식간에 마감될 텐데.’
제대로 활동한 적 없는 한국이 그 정도인데 미국은 말할 것도 없는데 계속 장작을 쑤셔넣고 있었다.
이게 흔히 말하는 팬 조련이라면 너무 스파르타였다. 진짜 티켓팅하다가 죽겠다.
“굿즈는 괜찮을 거 같아?”
“네! 상품도 괜찮고 위튜브 쪽은 굿즈 제작 과정도 찍는다고 엄청 좋아하더라고요.”
“팬들은?”
“당연히 좋아하죠.”
음, 너무 좋아 죽으려고 하는 것 같지만 하린은 굳이 그걸 지적하진 않았다.
원래 티켓팅이란 전쟁이다. 그저 조금 더 끔찍한 전쟁이 벌어질 뿐이라고 생각하니 죄책감이 조금 덜어졌다.
‘덕분에 이안하고 꽤 친해지기도 했고.’
이안은 한국에서 황금 인맥으로 불린다.
벤, 데미안, 벨라, 오드리 같은 유명 배우는 물론이고 게빈, 랜든, 아이작 같은 거장들과도 막역하고 가수로는 아일라와 재스퍼 같은 팝스타들과도 친한 사이였다.
이안이 출연한다는 소리에 배역 경쟁률이 하늘로 치솟은 게 괜히 그런 게 아니었다.
이번 굿즈 제작에 소속사가 이번에 발 벗고 나선 것도 작은 인연이라도 쌓기 위해서였고.
딱히 미국 진출 생각이 없는 하린은 친해져서 덕을 볼 생각은 없지만 친분을 다지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지금 이안은 한국에서 연예인의 연예인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본격적인 촬영 전에 이렇게 친해지다니 뿌듯…
“아, 위튜브에 올라가는 다큐에 굿즈 제작을 도와줬다고 말해줄게요.”
하린은 기겁하며 양손을 내저었다.
“아니야. 안 해줘도 돼!”
“에이, 사양 안 하셔도 돼요. 고마운 마음은 표현해야죠.”
“괜찮아! 정말 난 괜찮으니까. 절대로 말하지 마. 알겠지?!”
피눈물을 흘리며 티켓팅을 준비하는 Fianist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받을뻔한 하린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글 같은 연예계에서 온갖 경험을 다 해봤지만 순수한 호의로 위험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도대체 미국에선 어떤 사람들하고 지내는 거지?’
하린은 진심으로 궁금했다.
***
한국에서 이안이 고사를 좋아한다는 건 유명했다.
본고장의 고사를 보겠다고 드라마 카메오로 참여하고 미국에서도 계약 조건으로 고사를 내걸 정도니 소문이 안 나면 이상하다.
그 탓인지 꽤 성대하게 열린 고사는 축문이 불타는 거로 끝이 났다.
“고사는 어때 괜찮았어?”
“그럼요.”
남편 역인 도윤의 말에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성대하게 할 필요는 없지만 해서 나쁠 것도 없다.
이안은 분주하게 스태프들이 움직이는 저택을 둘러봤다.
마당을 끼고 있는 저택은 영화 촬영에 많은 부분을 차지할 장소였다.
“대본에 맞는 저택을 찾느라 엄청나게 고생했다고 하더라. 세트장을 새로 지으려고 했다던데.”
“필요하다면 그렇게 해야죠.”
촬영 세트를 짓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다.
예를 들어 실내 세트장은 날씨 걱정도 덜 해도 되고 일반인 통제도 쉬운 장점이 있으나 광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아무리 조명이 좋아도 실제 태양을 이길 순 없으니까.
여기처럼 오픈 세트를 한다면 장소를 찾기 위해 제작부가 마땅한 장소를 찾기 위해 엄청 고생을 해야한다.
그렇게 장소를 섭외한다고 해도 기본적인 뼈대를 활용할 뿐이지 내부는 영화에 맞게 미술팀이 꾸며야 하고.
준혁 감독처럼 디테일에 신경 쓰는 사람이라면 전부 다 뜯어고치는 수준인 건 말할 것도 없다.
‘야외 조경까지 전부 신경 썼다고 했나.’
잔디부터 나무까지 싹 다 바꿨다고 미술 감독이 하는 말을 들었다.
이안은 햇볕이 잘 들어오는 저택 정면을 보다가 뒤로 돌았다. 그늘진 공간에는 창고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진영과 유진이 신혼부부로 위장해 사는 장소였다.
한 지붕에 살게 됐으나 정반대의 입구.
햇볕이 들어오지 않는 침침한 장소는 두 가족의 차이를 선명하게 보여줬고 그림자라는 이름에 걸맞았다.
계단을 내려가자 철문과 쇠창살로 가로막힌 창문이 보였다.
문을 벌컥 열자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바로 코앞을 가로막는 콘크리트 더미가 보였다.
“아, 신혼부부 집은 남양주 실내 스튜디오에 마련했다고 들었어. 자잘한 공간도 그쪽으로 마련했고.”
“여기서도 촬영을 하니 확인 좀 해볼게요. 잠시만 거기 서 있어주세요.”
도윤을 계단 위에 세운 이안은 문 안으로 들어갔다. 서 있는 게 고작인 좁은 공간에서 창밖을 보자 그늘 탓에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도윤이 내려보는 게 보였다.
영화 속에서 진영이 자주 마주할 모습이었다.
‘얼굴도 잘 안 보이는 사람이 내려다보는 건 어떤 기분일까.’
잠시 진영의 마음을 곱씹어 보고 올라오자 졸졸 쫓아다니던 도윤이 물었다.
“어때?”
“나중에 정리하는 데 고생하겠는데요.”
아무것도 없던 맨땅을 까서 만든 공간이니 촬영이 끝나면 전부 뜯어내야 했다.
그랜드 라인 때도 본 적 있는 미술팀 스태프가 괜히 ‘우린 워라밸 박살 난 노가다꾼이지.’라는 말을 내뱉은 게 아니었다.
어쩌겠는가.
누군가는 이렇게 수고해줘야 좋은 영화가 탄생하는걸.
세트장을 가볍게 구경하고 돌아오자 준혁과 남수가 손을 흔들며 불렀다.
“구경은 잘 했니?”
“신경 많이 쓰신 거 같더라고요.”
“우리 미술팀이 고생했지. 이번 영화를 준비하면서 귀가 얼마나 따가운지 모를 거야.”
가볍게 웃음을 터트린 준혁은 하린까지 불러서 말했다.
“오늘부터 며칠 동안 촬영 스케줄이 없잖아. 그렇지?”
“그렇죠.”
한동안 촬영은 시아버지 역할인 남수와 아기를 강요받는 선영 부부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덕분에 시간 여유가 생겼는데 준혁이 괜히 그 시간을 만든 게 아니었다.
“그 시간 동안 최대한 촬영을 함께 할 아기와 친해졌으면 좋겠어.”
준혁이 생각할 때 그림자 가족의 가장 큰 변수는 아기였다.
자신이 캐스팅한 배우들의 실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정말 공들여 캐스팅한 사람들이니까.
‘문제는 아기 촬영이지. 원하는 장면을 찍는 건 쉽지 않으니까.’
그림자 아기라는 모티브가 없었다면 준혁도 굳이 아기를 찍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차라리 동물은 연기 교육이라도 시킬 수 있지 돌도 안 지난 아기한테 큰 걸 바랄 순 없으니.
특히 아기와 끈끈한 혈연의 정을 보여줘야 하는 두 배우가 아기와 얼마나 호흡이 잘 맞느냐에 따라 촬영 기간이 크게 단축될 수도 넉넉히 잡은 기간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너무 끄는 것도 안 되고.’
스케줄은 둘째치고 아기가 그동안 부쩍 커버리면 괴리감을 줄 테니까.
“어떻게 할 수 있겠어?”
하린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세요. 아기와 친해지기 위해 엄청 준비해왔어요. 아기 있는 지인 집에서 보모 생활을 한동안 했거든요.”
기저귀 가는 것부터 아기가 좋아하는 것까지 최대한 준비했다.
“이안은?”
“저요? 전 괜찮을걸요.”
별달리 준비하지 않았다는 게 팍팍 묻어나는 대답.
‘하긴 가수 활동까지 하면서 나처럼 준비할 시간이 없었겠지.’
준비가 미흡하다고 나무랄 생각은 없다. 자신이 도와주면 되니까.
하린은 이해한다며 이안의 어깨를 토닥였다.
“나한테 맡겨. 내가 최대한 도와줄게.”
“아… 네. 잘 부탁할게요.”
그녀는 힘차게 장소를 이동했고.
“꺄아아아!”
“그래.”
자신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이안 품에서 해맑게 웃는 아기를 보며 좌절했다.
육아계의 스페셜리스트.
아기를 홀리는 마성의 남자.
하린은 그 거대한 벽을 체감했다.
***
이안은 아기와 촬영을 하는 건 처음이었다.
특히 지금처럼 6개월도 안 된 아기라면 말할 것도 없고.
‘6개월 미만이면 미국에선 많아 봐야 20분 정도 촬영할 수 있었나.’
잠깐 얼굴을 비추는 정도면 몰라도 지금처럼 영화에서 오랫동안 나오는 건 힘든 일이다.
이안은 시우라는 이름을 가진 아기의 말랑말랑한 볼살을 콕 찔렀다.
이렇게 아기를 보고 있으니 에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인종은 달라도 행동은 비슷했으니까.
‘연기 연습은 잘 하고 있나 모르겠네.’
조만간 오디션을 연다고 들었는데 말이야.
아기와 함께 있는 이안을 힐끔 본 준혁은 머리를 긁적였다.
“친해지길 바라긴 했습니다만 이 정도로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아니에요. 촬영에 도움이 될 테니 다행이죠.”
시우의 엄마는 어설픈 미소를 머금었다.
촬영을 위해 친해지길 바란 건 맞는데 이 정도로 친해지길 바란 건 아니랄까. 굉장히 복잡 미묘했다.
하린과 부모의 감정이 어떻든 이안 덕분에 촬영은 순식간에 탄력을 받았다.
준혁은 카메라에 담긴 장면을 봤다.
우는 아기 때문에 선영이 급하게 진영을 부르는 장면이었다.
서럽게 우는 아기가 진영이 안자마자 울음을 뚝 그쳐야 하는 어려운 장면이었다. 애를 억지로 울려서 웃게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적당히 타협 볼 수도 없다.
선영이 집에 진영을 들이게 되는 이유인 만큼 관객이 ‘저러면 어쩔 수 없지.’라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하니까.
우는 모습 따로. 웃는 모습 따로.
컷을 얼마나 쪼개야 원하는 그림이 나올지 골머리를 앓은 게 무색할 정도로 그냥 단 한 번의 촬영으로 끝내 버렸다.
아무리 영상을 봐도 감탄밖에 안 나왔다.
준혁은 이안에게 말했다.
“이거 하나로 반나절은 줄었을걸. 네 덕분에 촬영 일정이 꽤 줄어들 수도 있겠다.”
“그럼 좋죠. 빨리 돌아가서 팬미팅 준비에 조금 더 힘을 쓸 수 있으니까요.”
“하하하, 그럼 팬들이 엄청 좋아하겠네.”
팬을 열심히 챙기는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은 준혁은 이안에게 말했다.
“다음 촬영은 남양주 세트장인 거 알지?”
“네, 알고 있죠.”
잠시 머뭇거린 준혁은 혹시나 하고 물었다.
“귀신이나 뭐 이런 거 무서워하니?”
“귀신이요?”
“음… 이런 말 하기 좀 그렇긴 한데. 거기가 귀신으로 유명하거든. 특히 우리가 지낼 춘사관 말이야.”
이 말을 들은 도윤이 이안에게 다가와 말을 덧붙였다.
“그래, 거기 진짜 유명해. 오죽하면 성경하고 금강경이 항상 있다니까? 아는 배우 중에는 거기서 호되게 당한 다음에 외부 숙소를 쓰는 사람도 있었어.”
“안 믿으면 괜찮긴 한데. 혹시 신경이 쓰이면 다른 숙소로 잡아줄까?”
이안은 그런 곳이 있구나. 신기하다는 듯이 물었다.
“혹시 막 무당도 도망치고 그런 곳이에요?”
“응? 글쎄. 그런 이야기는 못 들어봤는데. 그건 왜 물어보니.”
왜긴 자신이 그 무당도 도망치는 사람이라서 그렇지.
‘내가 가도 괜찮으려나.’
물론 귀신이 말이다.
***
약 40만 평 부지에 야외 세트장과 실내 촬영 스튜디오를 포함한 남양주 종합촬영소는 많은 한국 영화가 촬영된 장소였다.
넓은 실내 세트장에는 카메라가 돌아갔다.
창고로 사용된 공간답게 시멘트가 고스란히 드러난 곳에 진영은 열심히 벽지를 붙였다.
“잘 좀 붙여봐. 거기 떨어지잖아.”
“…이것까지 해야 해? 우리가 지내면 얼마나 지낼 수 있다고.”
남편의 허락까지 받았으나 언제 쫓겨나도 이상하지 않다.
누나 유진의 지적에 진영은 손가락을 까딱였다.
“무슨 걱정이야. 내 조카가 위에 살고 있는데.”
“조카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차갑게 쏘아붙인 유진은 주변을 둘러봤다.
창고로 쓴 곳답게 샤워시설은커녕 화장실도 없었다.
“화장실은?”
“쪽문으로 들어가서 1층에서 쓰고 나오면 되지. 뭐 어렵다고. 아저씨만 없으면 마음껏 써도 상관없어. 선영 아줌마는 어차피 말도 못 꺼낼 테니까.”
진영은 능글맞게 말을 이었다.
“거기 욕실도 엄청 좋더라. 입욕제 같은 것도 있던데 거품 목욕도 하고 그럼 좋잖아.”
“…좋기는.”
선영의 집에 차근차근 침범하려는 동생에게 유진은 날카롭게 말했다.
“혹시 남편 쪽에 이상한 짓을 할 생각은 아니지?”
“뭐. 내가 죽이기라도 할까 봐? 그런 짓을 왜 해. 아저씨가 영영 사라져봐. 그 아줌마는 바로 내 조카랑 우리를 내쫓으려고 할걸.”
사다리에서 내려와 유진 앞에 선 진영의 얼굴엔 그림자가 졌다.
“우리는 서진 아저씨가 무탈하기만을 바라야 해. 누가 이상한 수작을 부리더라도. 알겠지?”
나지막하고 소름 끼치는 목소리에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컷!”
긴장감을 확 주는 이안의 연기에 준혁은 경쾌하게 외쳤고 하린은 닭살이 오돌토돌 난 팔을 손으로 쓸었다.
평소엔 잘생기고 선한 느낌의 얼굴이 휙휙 바뀌는 건 감탄밖에 안 나왔다.
왜 배우로 이렇게 잘 나가는지 이해가 될 정도였다.
“오늘 촬영 끝이죠? 저 먼저 숙소로 들어갈게요!”
다른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빠르게 숙소로 돌아온 이안은 바로 영상 통화를 걸었다.
얼마 안 지나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어쩐 일로 영상통화를 걸었니?
“아, 감독님 보여줄 게 있어서요. 짜잔, 여기가 제가 지내는 숙소에요.”
특별할 거 없는 숙소를 왜 보여주나 생각하는 게빈에게 이안은 웃으며 말했다.
“여기에 성경책도 보이죠? 여기 그렇게 귀신이…”
뚝!
어라,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아쉬운 마음에 이안은 문자로 생생한 귀신 이야기를 풀었고.
-…이안, 택배를 보냈단다. 보낸 성수로 꼭 세수를 하렴.
얼마 뒤 게빈의 엑소시즘 세트를 받았고.
퇴마 대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