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67)
167. I’m okay(1)
화상이란 가족의 잔재를 얼굴에 뒤집어쓰고 발버둥 쳤던 시기와 지금의 삶은 많은 것이 달라졌다.
부와 명예, 인기 등 많은 변화 중에서 가장 큰 걸 이안에게 꼽으라고 하면 인연을 꼽을 것이다.
소중한 지금의 인연 중에는 그저 접점이 없었을 뿐인 사람들도 있었으나 죽음이란 장벽으로 가로막혔던 이들도 있었으니까.
과거엔 끝까지 성질 나쁜 노인으로 기억된 소피아를 비롯한 가족과 절망하며 약물에 손댄 다니엘이 그러했고.
‘아이작 감독님이 그러했지.’
이안은 감독의 팬이었다. 그가 카메라에 담는 외로움과 불안은 언제나 가슴 속 깊은 곳에 품고 있던 감정인 탓이다.
다만 실제로 만난 적은 없었다. 할리우드에 은퇴작을 남겨놓은 뉴욕의 거인은 심정지로 쓰러졌으니 말이다.
그래서 뉴욕에서 콘도그를 튀기면서 처음 그를 만났을 때 더욱 놀라며 반가워했고.
“…하지만 적어도 그게 지금은 아니었어.”
이안은 이해할 수 없었다.
시기도 안 맞을뿐더러 상황도 지금이 훨씬 나았다. 총기 난사로 큰 충격을 받았을 네이선은 멀쩡한 걸 넘어서 할아버지와 같은 감독이 되겠다며 뉴욕대에 진학한 상태였으니까.
만병의 근원이라는 스트레스도 그때보단 지금이 더 낮다는 뜻이다.
‘거기에 병원에서 검사도 주기적으로 받게 했고.’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있는데 그냥 내버려 뒀을 리가 없잖는가. 직접 결제를 해서라도 건강검진을 받도록 했다.
이안은 촬영팀에 지시를 내리는 아이작에게 다가갔다.
“감독님, 건강검진은 받으셨죠?”
“그래, 네가 작년에도 지겹게 말하지 않았니.”
“그럼 혹시 심장 쪽 결과는 어땠나요?”
“심장 말이냐.”
뜬금없는 질문에 아이작은 의아함을 느꼈으나 진지한 표정을 보곤 솔직하게 답을 내줬다.
“노인의 심장이 무슨 특별할 게 있겠니. 돌아오는 대답이야 항상 똑같은 법이지. 오히려 게빈, 그 녀석을 걱정해야 하지 않니?”
“게빈 감독님은 오히려 엄청 건강해요.”
괜히 공포 영화 같은 걸 같이 보자고 한 게 아니다. 빽빽 고함을 질러대도 문제없을 정도로 건강하다는 진단이 있으니까 그런 거지.
물론 몸이 약하다는 핑계조차 댈 수 없이 이안과 랜든에게 공포 영화 추천을 받는 게빈은 ‘쓸데없이 튼튼한 몸뚱이.’라는 한탄을 했지만 말이다.
이안은 아이작의 답변을 곱씹었다.
‘여느 노인과 같다, 라.’
이건 좋다는 의미가 아니다.
심장이 쉼표를 찍는 순간 인생의 마침표를 찍는 노인은 많으니까.
“그래서 심장 이야기는 왜 물어봤니?”
“아, 그냥 별 건 아니에요. 주변에 아는 분이 심장이 좋지 않아서 혹시나 하고 물어봤죠.”
“그랬구나.”
아이작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나는 보다시피 멀쩡하잖니.”
…환상으로 봤을 때는 안 멀쩡했으니 이렇게 묻는 게 아닌가.
봤던 걸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안은 쓴웃음과 함께 촬영 준비를 한다고 하며 물러났다.
‘그래 말해봤자 크게 도움이 안 될 거야.’
보통 사람이라면 믿어주기도 힘들뿐더러 믿는다고 해서 어떻게 할 건가.
명확한 시기 혹은 이유를 아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촬영을 접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촬영이 없다고 감독님의 심정지가 안 온다는 보장도 없을뿐더러.
‘…그렇게 무책임하신 분도 아니지.’
비록 시작은 감독님이 하셨더라도 지금 그 뼈대를 이루고 있는 수백 명이 넘는 사람의 시간과 열정이다.
그걸 잘 아시는 분이 포기를 선택할 리가 없다 그 대가가 자신의 목숨이더라도.
어차피 말을 해봐야 근심거리만 더해줄 뿐이라면 입을 다물고 홀로 준비하는 게 낫다.
“곧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이안은 이 외침에 걸음을 옮겼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삼키고 I’m okay의 촬영을 시작했다.
***
배우는 캐릭터가 가진 심리와 상태를 말과 행동으로 표현해내야 했다.
소설이었다면 ‘파커는 어느 날부터 현실감이 사라졌다.’처럼 짧은 문장으로 끝낼 수 있는걸 연기를 통해 풀어내야 한다는 뜻이다.
스태프와 배우들은 이안의 연기에 집중했다.
병원에서 파커가 이인증이라는 진단을 받기 전.
과중한 업무로 유명한 맨해튼의 초임 변호사라는 직업답게 주5일 동안 새벽의 별을 보고 출근해 새벽의 별을 보며 퇴근하는 삶이나 그 외에는 다를 게 없는 생활이었다.
하지만 이때 이안은 나중에 관객들이 이인증이라는 진단을 보고 이해할 수 있는 이상함을 연기해야 했다.
‘쉽지는 않겠지. 같은 정신병이라도 사이코패스 같은 거라면 모를까.’
칼 들고 설치는 놈은 딱 봐도 미친놈처럼 보이지만 이인증은 그런 것도 아니다.
이걸 어떻게 표현할지 지켜보던 배우들은 아이작 감독님과 상의해서 끝에 선택한 결과를 눈으로 확인했다.
새벽부터 울리는 알람을 끈 파커는 부스스하게 일어났다.
퀭한 얼굴로 일어난 그는 손등을 꼬집었다. 처음엔 그저 잠에서 깨기 위한 행동처럼 보였으나.
시퍼렇게 든 멍과 그런 곳을 꼬집으면서도 멍해 보이는 표정은 ‘아무리 봐도 정상인은 아닌데?’라는 느낌을 줬다.
이는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파커! 아직도 자료 준비가 안 됐어? 그래서 언제 제 몫을 해낼 수 있겠어.”
“이것들 빨리 인쇄부터 해와. 뛰어! 곧 있으면 클라이언트가 온다고!”
대형 로펌의 말단 부품으로 반복업무를 하면서도 파커는 손등을 꼬집었다.
“좋아요. 잠시 쉽시다.”
아이작의 신호와 함께 스태프들과 배우들은 다음 촬영 준비를 하면서 라인프로듀서와 이야기 중인 이안을 힐끔 봤다.
“헤이, 맥.”
“왜.”
“어떻게 생각해?”
이미 같은 조연으로 몇 차례 함께 촬영했던 위버의 턱짓을 따라간 맥은 짧게 답했다.
“괜히 주인공으로 삼은 건 아니더라.”
“그렇지?”
맥은 고작 손등을 꼬집는 단순한 행동에 의미를 불어넣는 이안의 연기력을 생각했다.
관객은 정답이 나오기 전에는 미친놈처럼 손등을 꼬집는 이유를 모를 수밖에 없다. 주인공이 이인증인지 아니면 피학적 성적 취향을 가져 고통을 즐기고 있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냥 이상하다는 것만 알려줘도 충분했는데 이안의 연기는 그걸 뛰어넘었다.
‘손등을 꼬집을 때마다 생동감이 달라졌지?’
멍한 느낌이던 파커는 손등을 꼬집을 때마다 짧지만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마치 순간적으로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보였고 보는 사람이 어렴풋이나마 행동의 의미를 깨닫게 했다.
‘물론 얼핏 보면 쉬운 연기처럼 보이긴 하는데.’
맥은 자신에게 해보라고 하면 자신이 없었다.
감정이 과하지 않도록 선을 잘 타면서 저렇게 감정을 자유재로 바꾸는 연기가 쉬울 리가 없으니까.
NG 한 번 안 냈다면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사람들도 다 비슷한 생각 아니야?”
“뭐 그렇긴 하지.”
다들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들인 만큼 보는 눈도 그만큼 있었다. 이안을 인정하는 속도도 빠를 수밖에.
“근데 저기서 라인 프로듀서랑 무슨 이야기를 저렇게 하나 몰라.”
“글쎄. 한 번 가볼까?”
계약, 스케줄 조정, 소품 대여, 예산 관리 같은 라인 프로듀서랑 길게 이야기를 하니 호기심이 들었다.
그것도 뭐 때문인지 몰라도 프로듀서가 쩔쩔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더욱.
‘혹시 꼬장이라도 부리고 있나.’
이안에 대한 소문을 떠올려 보며 맥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촬영 전에 함께 할 동료에 대해 수소문하는 건 기본이다. 관심이 없어도 캐스팅 소식을 들은 지인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기도 하고.
‘비가 온다고 하니 마른하늘에서 비가 내렸다.’라고 주장하는 Holy Love 관계자들이나 ‘온갖 사건 사고를 막아주는 촬영장의 수호신.’ 같은 민간신앙처럼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들리긴 했어도 스타병에 걸렸다는 말은 없었다.
오히려 말단 스태프에게도 친절하다는 말이 있었지.
그런 이안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거장인 아이작 감독님 작품에서 말썽을 일으킬 이유가 없었다.
호기심에 두 배우는 다가갔고.
“저기 프라이스 군. 저쪽 트레일러 보이죠? 저기에 AED가 준비되어 있다니까요.”
“혹시 모르잖아요. 망가졌으면 어떡해요. 몇 개 더 들여놓죠. 아니다. 그냥 제가 몇 대 살까요. 혹시 프로듀서도 한 대 필요해요?”
“…네?”
“요즘 다들 한 대씩 가지고 다닐걸요. 유행이에요.”
…언제부터 자동 심장충격기인 AED를 갖고 다니는 게 유행이 됐을까.
입이 턱 막힌 라인 프로듀서를 보며 두 배우는 문득 흘려들었던 이안의 평가가 떠올랐다.
-이안 군? 착하긴 한데 묘하게 특이한 구석이 있지.
저게 고작 특이?
새삼 할리우드의 포용력이 넓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중년의 두 배우는 감탄했다.
***
I’m okay의 촬영진들은 주인공인 이안을 중심으로 촬영이 순조롭다고 평가했다.
연기파들만 모인 덕분에 NG도 거의 없이 촬영 스케줄을 가볍게 소화하고 있으니 그렇게 생각할 만했으나 이안은 아니었다.
촬영 때마다 ‘혹시 오늘이 아닐까?’, ‘내가 없는 사이에 일이 벌어지면 어쩌지?’라는 불안과 초조함이 치솟는 걸 이안은 애써 억눌렀다.
‘…진정하자. 아직 벌어지는 일이 아니잖아.’
가까운 지인이 죽는다.
이건 이안에게 트라우마 같은 일이다. 특히 막을 수 있는 죽음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더욱.
다만 오랜 경험으로 이런 감정에 먹혀서 좋을 게 없다는 걸 아는 이안은 차분히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준비했다.
“여기. 그렇게 바라던 AED들이야.”
“감사합니다.”
“사는 것도 아니고 대여하는 거면 그렇게 비싸지도 않아. 물론 왜 이렇게 많이 빌려 가냐고 수상한 눈길을 받긴 했지만.”
기어코 라인 프로듀서를 설득해 여러 대의 AED를 준비한 것도 그중 하나였다. 무슨 수만 명이 모이는 콘서트장도 아니고 과할 정도로 많으나 필요할 때 눈에 안 띄는 것보단 낫다.
물론 노력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안, 넌 취미 생활이 뭐야?”
“취미요? 음, 취미보단 요즘에 관심 있는 활동이 있는데. 같이 가실래요? 오래 안 걸려요.”
“음? 그러지 뭐. 위버도 같이 가도 되지?”
“물론이죠.”
연기력 때문에 호감을 얻은 둘은 이안을 따라왔고.
“…응급처치 교육?”
“네! 저랑 같이 CPR부터 한 번 열심히 익혀보죠. 혹시 알아요? 쓸 일이 생길지.”
둘은 배신감을 눈으로 표현했으나 재밌는 활동이라곤 안 했던 만큼 이안은 당당했다.
여기까지 와서 도망도 못 친 둘은 응급구조사도 인정할 수준인 이안의 도움을 받아 응급처치를 반복 숙달해야 했다.
“다음엔 다른 분들도 같이 올까요?”
“그으래, 아주 좋지.”
나만 당할 순 없다. 어차피 이안과 친해지고 싶은 배우들은 많으니까.
맥과 위버는 기꺼이 이 다단계에 합류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배우들도 생명을 구하는 소중한 지식을 머릿속에 새길 수 있었다.
그 반작용으로 ‘수상할 정도로 심장에 진심인 배우.’ 같은 타이틀이 생겼으나 다행히도 다른 배우들은 이안의 행동에 불만을 품진 않았다.
재미없긴 해도 뿌듯하긴 했고 나중에 재밌는 이야깃거리로 삼을 수 있는 요소였으니까.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끝낸 이안은 수백 번 떠올린 환상을 다시 끄집어냈다.
이안은 해부하듯 영상을 파헤쳐 나갔고 몇 가지 결론을 내렸다.
‘감독님이 쓰러지기 전에는 엄청 크게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어.’
이걸로 유추할 수 있는 정보는 적어도 촬영 중은 아니란 뜻이다. 카메라가 돌아갈 때는 숨소리조차 함부로 못 내니까.
이뿐이면 큰 도움이 안 되겠으나 엄청 큰 소리를 냈다는 게 중요하다.
‘아이작 감독님의 촬영 현장에선 큰 소리가 잘 나지 않는 편이니까.’
촬영장 분위기는 감독을 따라가기 마련이고 온화한 거장의 공간에서 스태프가 목청을 높이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큰소리를 낼 만한 일이 있었다?
이건 소리로 한 추측이고 두 번째 힌트는 감독님 주변으로 모인 스태프의 복장이었다.
일 년 내내 온화한 LA라도 복장 변화는 어느 정도 있다.
지금과 같은 3월이면 긴 팔이나 가벼운 외투를 입은 사람들을 보는 건 어렵지 않은데 환상 속 사람들은 전부 반소매를 입었다.
적어도 지금보단 조금 더 뒤라는 뜻이다.
환상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여기까지였고 이안은 잠시 고민했다.
‘심장마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준비는 다 했지만.’
역시 최선은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 거다. 아무리 죽지 않더라도 CPR 중 크게 다칠 수도 있고 무탈하게 위기를 넘긴다고 해도 아이작은 노인이다.
그런 경험 자체가 건강을 크게 훼손시킬 수도 있다.
문제는 큰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욕심만으로 이뤄질 수 없다는 점이었다.
“…일단 할 수 있는 걸 해야지.”
이안은 촬영 세트장을 봤다.
이인증의 진단을 받은 파커가 화재 속에서 사람을 구해 나오는 장면을 찍기 위해 만든 야외 세트장이다.
세트장에 불을 지를 예정이기에 촬영 기회는 단 한 번 뿐이었고.
물론 혹시 모를 상황을 막기 위해 소방차부터 시작해 안전 요원도 여럿 준비된 상태였다.
“이안.”
“네, 감독님.”
이안의 손을 붙잡은 그는 걱정을 담아 단호하게 말했다.
“조금이라도 위험할 것 같다면 그냥 촬영을 포기하고 나오렴. 괜히 무리하지 말고. 저런 세트장이야 다시 또 지으면 되니까.”
세트장 제작을 위해 들어간 돈이 억 단위였으나 아이작에겐 제작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 마음을 눈치챈 이안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 문제 없을 거라니까요.”
“…어떻게 걱정을 안 하겠니. 괜히 늙은이가 가슴 졸이지 않도록 조심하거라.”
이 말을 들은 이안은 눈을 크게 떴다.
지겹게 본 대본과 각인되듯 새겨진 환상 그리고 자신을 생각하는 아이작의 마음이 하나로 뒤엉켰다.
‘…만약 촬영 중 나한테 무슨 문제가 생겼다면? 아니, 문제가 생기지 않아도 걱정할 만한 상황이 생겼다면?’
스태프는 혼란스럽고 아이작은 큰 충격을 받은 환상 속 같은 상황이 펼쳐지지 않았을까?
실마리를 찾은 이안은 머릿속으로 백 장이 넘는 대본을 촤르르 펼쳤다.
여기서 가능성이 있는 촬영 스케줄들을 찾아내야 했다.
그중에 정답이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