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68)
168. I’m okay(2)
아이작 감독은 촬영 중 손자처럼 여기는 자신의 위험한 모습을 보고 놀라 심장마비가 왔다.
이 가설은 높은 적중률을 자랑하는 직감이 정답이라는 것처럼 머리를 간지럽혔으나 이안은 중요한 일인 만큼 가능성을 되짚어봤다.
‘우선 내가 위험한 큰 사고가 날 가능성.’
이건 가능성이 크진 않았다.
물론.
“옛날에는 가짜총을 구하기 힘들어서 실탄으로 전쟁 영화를 찍기도 했지. 아, 그렇게 놀랄 건 없단다. 반백 년 정도 된 일이니까.”
이런 남수가 들려준 어메이징 코리아 스토리를 굳이 예시로 들지 않아도 촬영 중에 위험한 일은 얼마든지 있긴 하다.
최근 나온 작품 중에서도 배우가 촬영 중에 익사, 질식사, 교통사고 등으로 죽다 살아난 일화가 가끔 나오니까.
그래도 이안이 크게 걱정하지 않는 이유는 주변만 봐도 알 수 있다.
‘…안전 조치는 확실하게 하고 있으니까.’
곧 불이 붙을 세트장 주변에는 소방차, 구급차는 기본이고 추가로 고용한 안전 요원들과 스태프 당 하나씩 돌아갈 정도로 많은 소화기가 깔린 상태였다.
솔직히 말하면 폭발광 게빈 감독님의 촬영장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았다.
당연히 이런 준비가 다 돈인 만큼 라인 프로듀서가 감독님에게 앓는 소리를 냈으나.
“이안이 다치는 것보단 낫지 않나. 이런 데 아끼라고 있는 촬영비가 아니라네.”
바로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아무리 안전 대책을 마련해도 사고는 날 수 있어도 이안의 안전을 끔찍이 생각하는 환경에선 문제가 일어나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노인의 심장에 무리가 갈 정도로 놀라거나 걱정되는 상황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나만 해도 지금 그러니까.’
곧 불이 붙을 세트장을 보니 심장이 요란하게 뛰었다.
화재는 이안에게 트라우마 덩어리였다.
오죽하면 엑스트라 자리조차 간절했던 시기에도 불이 나는 장면에는 좋은 제안이 와도 참여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비록 트라우마가 된 사건은 과거로 돌아오며 없던 일이 됐다고 해도 그 잔재는 불안감으로 남았다.
이 감정을 곱씹던 이안은 스태프들을 지휘하며 깐깐하게 막바지 촬영 준비를 하는 아이작을 봤다.
“내가 느끼는 불안이 고작 이 정도인데 죽을 정도로 걱정된다는 건 어떤 감정이었을까.”
심장을 움켜쥐면서도 정면을 또렷하게 응시했던 노인.
그 속에 감긴 걱정은 위태로운 자신의 목숨도, 중지될 은퇴작의 대한 것도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 심장을 움켜쥔 듯한 불안감이 씻은 듯 사라졌다.
마치 고작 이 정도에 불안을 느낄 때가 아니라는 것처럼.
“프라이스 군, 곧 촬영을 시작한답니다.”
스태프의 안내에 이안은 불구덩이가 될 세트장을 향해 망설임 없이 걸음을 옮겼다.
***
과학적 오류가 없이 현실적으로 만드는 게 좋은 영화일까?
‘꼭 그런 건 아니지.’
현실적?
그럼 SF영화의 엔딩 장면에서 임무를 마치고 지구에 돌아온 우주 비행사들은 멋들어지게 걸어 나오는 게 아니라 들것에 실려 나올 테고.
액션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쌍권총의 주인공은 miss만 실컷 띄우고 다음 장면에는 어깨에 붕대를 칭칭 감싸고 나올 거다.
침몰하는 배를 주제로 만든 영화의 명장면이자 많은 사람을 슬프게 했던 얼어 죽은 주인공이 바다에 가라앉은 장면도 과학적으로 따지면 사실 얼음처럼 물 위에 시체가 둥둥 떠다녀야 했고.
당연히 영화 제작자가 이런 오류를 모르는 게 아니다.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뜻이지.’
이건 I’m okay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만성적인 이인증 때문에 현실감이 없다고 해도 파커처럼 불구덩이에 들어갈 수 있을까.
아마 뜨거운 열기가 얼굴을 한 번 훑고 가면 집 나갔던 현실감도 헐레벌떡 돌아올 게 뻔했다.
한마디로 I’m okay는 인간의 생존 본능을 얕보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런 오류는 아무래도 상관없지. 이 영화에서 주목하는 건 이인증 자체가 아니니까.’
중요한 건 주인공이 가진 불안과 외로움이다.
영화 속 내내 파커가 하는 도전과 행동은 이 감정을 벗어나기 위한 발버둥이고 이번 화재 장면은 이런 계기가 되는 중요한 장면이었다.
“촬영이 잘 돼야 할 텐데.”
촬영을 앞두고 사람들은 그만큼 걱정을 내비쳤다.
이안의 연기가 훌륭한 것은 잘 알고 있으나 재촬영은 불가능한 악조건이 달린 상태였으니까. 연기가 아쉽다고 해서 비싼 세트장을 다시 지을 순 없는 노릇 아닌가.
하지만 이런 걱정은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가자 금방 사그라들었다.
이안이 연기하는 파커는 평소처럼 늦게 돌아와 침대에 몸을 던졌을 때 문제가 생긴 걸 깨달았다.
밖이 소란스러웠다.
싸움인가 싶어 무시하려던 그는 매캐한 연기가 문틈으로 스멀스멀 기어오자 몸을 일으켰다.
“화재?”
멍한 눈빛으로 방 밖으로 나간 그를 반긴 건 자욱한 연기와 스멀거리는 불길이었다.
파커는 다급히 도망치는 다른 주민처럼 몸을 돌려 빠져나가려 했으나 복도에서 울리는 기침 소리에 멈칫했다.
아직 못 빠져나온 사람이 있다.
“이봐! 빨리 안 도망쳐?! 정신 차려!”
멍청하게 서 있는 자신을 보고 한 말에 습관처럼 손등을 꼬집으려던 파커는 멈칫거렸다.
카메라에는 위험한 상황에도 무기질적인 파커의 시선이 담겼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가벼운 태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곤 계단이 아니라 몸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쿵쿵!
“사람이 있습니까? 불이 났습니다.”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침착한 목소리로 깊게 잠든 사람들을 깨우던 그는 우지끈하는 소리와 함께 불길이 앞을 막자 내려가려 했다.
“…살려… 살려줘.”
발을 붙잡는 희미한 목소리가 없었다면 그랬을 거다.
앞은 불로 막혔고 언제 자신이 있는 곳도 불길에 휩싸일지 모른다. 자신의 목숨조차 위태로운 상황.
“아무도… 아무도 없어요?”
불안과 공포를 담은 목소리에 그는 홀린 것처럼 불길을 뛰어넘었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 구조를 바라는 작은 신호를 되짚어갔고 파커는 기어코 죽을 위기에 놓인 사람을 찾아 구조해 밖으로 나왔다.
자신을 보며 쏟아지는 환호성을 흘려들으며 부축하고 나온 환자를 구급대원에게 넘긴 파커에게 한 여성이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기자인 에밀리입니다. 여기 명함도 있고요! 실례가 안 된다면 잠시 인터뷰 좀 해도 될까요?”
얼떨떨하게 인터뷰를 하던 파커에게 기자가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위험한 상황에서 어떻게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어떻게 용기를 낼 수 있었냐고요?”
파커는 고개를 내렸다.
이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느라 멍든 손등이 보였다. 잠시 물끄러미 보던 그는 평소처럼 꼬집는 게 아니라 조용히 손등을 덮었다.
“그러게요. 생각하기 나름이었나 봅니다.”
파커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고.
“컷!”
컷 소리가 울리고 이안은 깊게 숨을 내쉬었다.
촬영이 끝이 나고 소방차가 뿌리는 물에 시커먼 연기를 뿜어내는 세트장이 보였다.
“괜찮았어요?”
“말해 뭐하겠니.”
아이작 감독은 활짝 웃었다.
카메라에 담긴 이안의 연기에는 그가 원하는 바가 파커의 미묘한 괴리감이 잘 담겨 있었다.
“오늘은 많이 힘들었을 테니 이만 돌아가서 푹 쉬어라. 알겠지?”
“그렇게 할게요.”
사양하지 않고 감독에게 인사를 한 이안은 대본을 들고 차에 올라탔다.
지쳤다. 뜨거운 열기를 느끼며 하는 촬영이 쉬운 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쉴 순 없지.’
이안은 바로 대본을 펼쳤다.
머릿속으로 정리한 위험할 수 있는 촬영들을 하나하나 짚어가기 시작했다.
***
I’m okay에서 파커는 화재 사건을 통해 이인증이 다른 사람에게 용기로 보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때부터 이인증은 벗어나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용기가 필요한 순간에 사용하는 도구가 됐고.
자신을 괴롭히던 직장 상사에게 당당하게 엿을 먹이는 걸 시작으로 그는 여러 도전을 했고 그걸 통해 인기를 얻기 시작하는 게 초반부 이야기였다.
이 과정을 통해 이인증으로 얻은 불안과 외로움은 해소되기 시작했으나 반대로 인기를 통해 얻는 불안과 외로움을 느끼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이인증 증상까지 완화되며 이전처럼 관심을 받기 위해선 진짜 용기를 내야 하는 상황에 놓이자, 방황 끝에 주변 지인에게 자신의 상황을 솔직히 고백하면서 도움을 받아 용기를 내서 마지막 도전에 성공하는 이야기였다.
모두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으며 모든 불안과 외로움을 털어내는 게 영화의 엔딩이고.
“이런 영화니 자칫하면 위험할 수 있는 촬영이 많아.”
스카이다이빙도 있고 상어와 함께 하는 스쿠버다이빙 장면도 있고.
주인공이 자동차 스턴트 액션을 하기도하고 별의별 걸 다 하니까. 진짜 의심하자면 끝도 없으나 다행히도 반소매라는 힌트를 얻은 상태였다.
“스태프들이 반소매려면 최소한 촬영 중후반부쯤이겠지?”
이걸 위해서 스태프들에게 더위를 얼마나 타는지 물어보고 다녀야 했다.
추위를 잘 타서 어지간히 덥지 않은 이상 긴소매를 입는다는 몇몇 스태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추리를 바탕으로 중후반부에 있는 위험한 촬영들을 유심히 확인했는데 이안은 얼마 뒤 이 계산이 어긋난 걸 깨달았다.
그것도 공연 기획자인 로엔과 대화를 통해 알게 됐다.
“그럼 이번 콘서트에서 여러 굿즈를 무작위로 나눠주는 건 안 하시기로 한 겁니까?”
“네, 아쉽게도 그럴 여유가 없을 거 같아서요.”
원래 계획과 달리 한 종류의 굿즈를 나눠주는 거로 그냥 만족해야 할 거 같았다.
어쩔 수 없다. 아이작 감독님을 구하는 걸 먼저 해야 하지 않겠는가.
“팬들에겐 너무 미안하네요.”
…미안할 필요가 없어 보이던데.
로엔은 이안이 공지를 올린 팬카페를 떠올려봤다.
-와! 정신 나간 10종류 랜덤 뽑기를 안 한다고?!
└…진짜 다행이다. 그중 확률이 낮은 희귀 굿즈를 넣는다는 소문도 있었잖아.
└소문 아닐걸. 누가 빡쳐서 낸 아이디어인데 거기에 이안이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칭찬했잖아.
└응, 걔는 바로 사이트에서 벤 됐어. 제발 이안에게 이상한 말 좀 하지 말라고 공지까지 올라왔잖아.
└아무튼, 다행이다. 이안이 드디어 우리 마음을 알아준 거 같아!
분명 축제 분위기였다.
“그래서 이 계획은 팬미팅 때로 미룰까 생각 중이에요.”
“…오우.”
로엔은 이 소식을 들으면 바로 장례식이 될 팬 사이트를 생각하며 입을 다물었다.
팬미팅은 어차피 자신이 관여할 일도 아니고 주변에 정상인이 있다면 말려줄 거라 믿었다.
어쩔 수 없다. 촬영으로 바쁜 이안에게 팬들의 마음을 알려주기엔 그에게 주어진 시간을 많지 않았으니까.
“오늘 만나게 된 이유는 올해 날씨 때문입니다.”
“날씨요?”
“네, 혹시 뉴스를 못 보셨나요? 올해 엄청난 폭염이 예상된다고 하더군요.”
폭염.
이안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 미래에는 ‘올해는 폭염이 예상됩니다.’ 같은 말은 천박한 농담에 불과했다.
폭염이 아닌 해가 더 드물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 정도가 아니었다.
“지금 폭염이라고 했나요?”
“네, 벌써 평년보다 날씨가 덥잖습니까.”
이안은 빠르게 기억을 되짚어봤다. 2018년 날씨가 어땠는지 말이다.
간신히 어땠는지 기억해낼 수 있었다. 고작 몇 년도 안 돼서 깨질 기록이나 올해의 폭염은 역대 기록을 줄줄이 박살 내는 최악의 폭염이었다.
“콘서트가 6월에 열리니 아무래도 폭염 대비를 해놔야 할 거 같아서 불렀습니다.”
“…해야죠.”
“일단 공연장은 실내 경기장이라서 괜찮지만 입장하기 전이 문제입니다. 밖에서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과 티켓 없이 구경 나온 인파도 꽤 많을 테니까요.”
중요한 문제다.
올해면 6월에도 엄청난 땡볕일 테고 잘못하다간 픽픽 쓰러지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다.
힘들게 티켓팅에 성공한 사람도 아쉬움을 공연장 밖에서 달래는 이들도 전부 이안에겐 소중한 팬들이고.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지금부터 미리 대책 마련을 해둬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이안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폭염이라고?’
그렇다면 기존 예상이 전부 틀어진다는 뜻이다.
이안은 환상을 빠르게 떠올려봤다.
‘땀. 사람들은 얼마나 땀을 흘렸지?’
감독님 외에 다른 사람은 뿌연 모습이라서 확실하진 않아도 옷이 땀에 젖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여름에 가까운 촬영 후반부일 가능성은 낮았다.
‘특히 후반부는 LA보다 연교차가 큰 뉴욕에서 촬영이 예정되어 있으니까.’
후반부를 잘라내고 생각보다 일정이 가까울 수 있다는 걸 이안은 빠르게 머리로 정리했고 가장 가능성이 큰 촬영을 찾아냈다.
“…자동차 스턴트 장면.”
촬영 중 가장 사고가 자주 나는 자동차 촬영 장면이었다.
***
오늘따라 날씨가 더웠다.
곧 다가올 폭염이 벌써 기승을 부린다는 걸 의미했고 이안은 주변을 둘러봤다.
이 더위 때문일까 보이는 모든 사람은 전부 반소매를 입고 나왔고 촬영 전 차량 점검을 받는 차의 모터 소리가 곳곳에서 울렸다.
“이안.”
자신을 부르는 아이작을 본 이안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환상 속에서 봤던 그 복장이었다.
역시 오늘이 바로 그 날이었다.
환상이 경고해준 날.
‘오늘만 무사히 넘기면 된다.’
다짐한 그는 크게 심호흡하며 감각을 활짝 열었다.
수많은 가능성이 머릿속에 뒤엉켜 들어왔다.
이안은 운명을 비틀 준비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