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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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아이구나
미국 드라마라고 모두 사전 제작인 건 아니다.
보통 초반을 찍은 후에 방영을 시작하고 방영 중에 촬영과 편집을 해서 방송사에 납품하는 형태다.
방영 회차가 늘어날수록 납품과 방영일 간의 간격은 좁아져서 일정에 쫓기게 되고.
‘그렇다고 스태프 근무시간을 함부로 늘릴 수도 없지.’
주 5일, 하루 최대 12시간 근무에서 연장 근무를 하는 것도 제작사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연장 근무는 스태프들의 동의를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자칫하면 노조의 경고 섞인 전화도 받아야 했다.
1.5배로 늘어나는 임금은 덤이다.
이 모든 조건에서 좋은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 건 합리적으로 짜인 스케줄이다.
단 하루였지만 촬영이 중단된 게 참사처럼 다가온 이유였다.
“프라이스 씨.”
평소 서로 이름을 부르며 친하게 지내던 세컨 조연출이 이안을 진지한 얼굴로 불렀다.
“요즘 저희 촬영장에 철칙 아시죠? 무조건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그건 뉴욕을 가서라도 변하지 않아요. 아니다, 차라리 뉴욕을 안 가는 게 좋겠어요!”
“아니, 이 친구가?”
갑자기 폭주하는 조연출을 다른 스태프가 붙잡았다.
“놔봐! 뉴욕은 위험하다니까? 올해 비행기 사고도 일어났잖아.”
“올 초에 있었던 거? 그거 아무도 안 죽어서 허드슨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일이잖아.”
허드슨강에 안전하게 비상 착수하면서 기적이라는 명칭까지 붙은 항공 사고였다.
조연출은 굴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아무리 쇼라지만 콘도그를 파는 걸 돕다니. 말도 안 돼. 콘도그. 어쩐지 이름부터가 위험하게 느껴지잖아. 개처럼 물 거 같고.”
“우리 가게에서 파는 음식이 콘도그인데요.”
“아…”
그걸 깜빡했다는 듯이 눈동자를 또르르 굴리는 조연출을 한심하게 본 동료가 대신 사과를 했다.
“미안해. 얘가 배우 관리를 책임지잖아. 그래서 요즘 조금 예민해. 괜히 그런 촬영하다가 다치는 건 아닐까 걱정되기도 하고.”
“그래서 예정된 촬영일 수도 이틀로 줄였잖아요. 별일 없을 거예요.”
덕분에 한국 방송사에서 볼멘소리가 나오긴 했는데 완고한 쇼러너의 태도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다음 촬영 때 봐요.”
“그래, 잘 갔다 오렴.”
스태프들과 인사를 한 이안은 자신이 추락했던 건물을 돌아봤다.
이번 사고를 두고 여러 사람이 운이 좋았다고 떠들었지만 그런 게 아니었다.
망설임 없이 옥상으로 뛴 건 마일즈를 통해 이미 액션 동선을 알고 있던 덕분이고, 안전그물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망설임 없이 뛰지도 못했을 거다.
‘다만 사고가 일어난다고 확신한 것도, 목소리가 바뀐 것도 의문이야.’
기억은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돌이켜보니 이상할 정도로 확신하고 움직였다.
마일즈와 악수하고 경험한 기묘한 환상하고 연관이 있나 의심됐다.
목소리도 의문이다.
굵어진 것도, 음역이 바뀐 것도 아니지만 레이첼 덕분에 알게 된 변화는 체감할 수 있었다.
ADR 녹음에 불려가는 것도 확연히 줄었을뿐더러.
“신기하다. 요즘 이안하고 연기하면 NG가 덜 나는 거 같지 않아?”
“그지? 이안의 대사를 들으면 집중이 팍 된달까? 연기할 때 엄청 편해진 거 같아. 어떻게 한 거야? 응?”
“아하하, 발성이 좋아져서 그렇겠지.”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는 아역들에게 둘러싸여 변명할 때는 진짜 진땀이 났다.
의문과 변화를 얻었지만 진정한 수확은 따로 있었다.
“이안! 잘 다녀와!”
촬영에 들어가는 아역 무리에서 유독 반갑게 손을 흔드는 아이.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네.’
한 생명을 구했다는 뿌듯함은 상상 이상으로 컸다. 소방관이나 의사 같은 역할을 할 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손을 흔들며 화답한 이안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촬영장을 빠져나왔다.
소피아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운전에 집중하면서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번 뉴욕에는 네 엄마도 함께 간다고 하더구나. 낯선 뉴욕에서 힘들어하는 건 아닐까 어찌나 걱정하던지.”
“같이 가면 좋죠.”
그리 답하며 이안은 작게 웃었다.
낯선 뉴욕? 뉴욕은커녕 서부를 벗어난 적 없는 클로이보단 자신이 훨씬 익숙할 거다.
영국 웨스트엔드와 더불어 전 세계 연극과 뮤지컬의 성지인 브로드웨이가 있을뿐더러.
‘뉴욕 영화계도 대단한 곳이지.’
미국 영화라면 할리우드를 많이 떠올리지만 뉴욕도 미국 영화계에서 굉장히 중요한 곳이다.
상업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감독의 권한이 거의 없는 할리우드와 달리 감독의 독립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특징이 있다.
덕분에 예술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중심으로 발달했으며 할리우드와 비평과 상업성으로 경쟁하는 한편 상호교류도 활발했고.
‘나한테 여러 번 기회를 준 곳이기도 하지.’
상업성이라곤 쥐뿔도 없는 외모 때문에 외면당한 할리우드랑 달리 연기력에 주목해준 감독들이 있던 덕분이다.
물론 그것도 몇 번에 불과했지만 그 작품들이 좋은 디딤돌이 됐다.
사실 한국 쇼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고 한 이유에는 촬영장소가 뉴욕인 것도 컸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뉴욕을 가보기까지 꽤 오래 걸릴 테니까.’
연고도 없는 뉴욕에 초등학생이 언제 가보겠는가.
“빨리 가봤으면 좋겠네요, 뉴욕.”
이안은 설렘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
“PD님, 이번에도 오히려 좋다고 말씀해주시죠.”
작가의 말에 성원 PD는 앓는 소리를 냈다.
추석 특집으로 해외에서 한국 음식을 자랑스럽게 파는 계획은 우여곡절을 전부 이겨내고 다행히 결재가 떨어졌다.
-이번 프로젝트를 망치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국장의 살벌한 응원은 덤이었고.
허가를 받았을 때는 그래도 자신 있었다.
촬영에 협조적인 뉴욕답게 노점상 허가증도 제대로 받았고 장소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앞 광장으로 잡았다.
주변에 음식점이 제대로 없는 탓에 노점상들에게 좋은 입지로 꼽히는 곳이니 분명 장사가 잘 되리라 확신했다.
하지만.
“…나도 여기가 이렇게 전쟁터가 될 줄 알았겠냐고.”
성원은 주변을 둘러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 2개의 음식 카트만 있었다는 곳은 현재 여러 노점상으로 북적거렸다.
“당장 안 꺼져?! 누구 마음대로 여기서 장사하라고 했어! 당신 허가증은 있어?”
연간 5만 달러가 넘는 임차료를 내고 합법적으로 노점을 운영하던 노점상이 소리치자 상대는 절뚝거리는 다리를 들어 올렸다.
“나 다친 퇴역 군인이야. 다친 퇴역 군인은 아무 데서 장사할 수 있는 거 몰라?”
“지금이 20세기야?! 언제 만들어진 법을 지금 들이미냐고.”
합법 노점상이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방법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퇴역 군인을 고용한 노점상들을 강하게 단속하기엔 뉴욕시도 부담스러우니까.
말다툼을 조용히 듣던 작가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PD님, 여기서 진짜 장사할 수 있을까요? 싸움도 싸움이지만 경쟁도 너무 심한데요. 파리만 날리잖아요.”
예능 멤버들이 있는 푸드트럭은 벌써 3시간이 지났는데 제대로 팔지도 못한 상태였다.
“다른 장소는 어때?”
성원은 상황을 살피라고 했던 조연출에게 물었다.
“솔직히 장소를 옮긴다고 될지 모르겠어요. 금융위기로 실직자들이 많다고 이야기는 들었는데 이렇게 체감하게 될 줄은 몰랐거든요.”
실직자들이 카트를 끌고 나와 노점을 열었고 지금 뉴욕은 노점상 전쟁이 펼쳐졌다.
노점상은 배로 늘었고 200달러면 가능했던 면허증이 1만 달러가 넘는 프리미엄 가격에 불법 거래될 정도였다.
“…이러다 우리 손가락만 빨다 가는 거 아니에요?”
“손가락은 모르겠고, 국장님에게 머리통 깨지는 건 확실하겠죠.”
우울한 분위기가 넘실거릴 때 스태프 하나가 다가왔다. 공항으로 픽업을 다녀왔던 스태프였다.
“PD님, 프라이스 군이 도착했습니다.”
“그래?”
성원은 다가오는 이안과 그의 가족들을 애써 환하게 반겨줬다.
이미 차에서 마이크까지 다 차고 온 이안의 뒤를 카메라가 따라오고 있었다.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좋은 곳으로 자리를 잡으셨네요?”
“최대한 좋은 자리로 잡았는데, 경쟁이 심해서 그런지 장사가 잘 안되네. 아무래도 다른 장소를 찾아야 할 거 같아.”
애써 밝게 말하는 성원의 말에 이안은 주변을 훑어봤다.
확실히 자신의 기억과 달리 불법 노점상으로 보이는 이들이 많았다.
‘거기다가 낯선 동양인들이 잔뜩 모여서 촬영까지 하고 있으니 장사가 더 안되지.’
낯선 형태의 콘도그에 확신을 못 갖는 건 덤이고.
“뭐하러 장소를 바꿔요? 어차피 어딜 가든 여기보다 나은 장소를 찾긴 힘들어요. 어떻게든 장사가 잘되도록 노력해봐야죠.”
이안은 주변에서 장사하는 다른 푸드트럭을 가리켰다.
“요즘 미국에선 푸드트럭이 굉장히 잘 되거든요. 그 이유가 뭔지 아세요?”
“잘 모르겠는데.”
“인터넷하고 SNS로 홍보하는 덕분이죠. 그러니 우리도 그렇게 하면 돼요.”
성원은 희망이 보였다는 듯이 눈을 반짝였다.
“혹시 너도 SNS를 하니?”
“위튜브는 하는데 SNS는 아직 안 해요.”
그럼 왜 그런 말을 했냐는 듯이 성원이 바라보자 이안은 어깨를 으쓱였다.
“홍보하는데 굳이 제 SNS를 쓸 필요는 없잖아요. 잠시만요.”
이안은 핸드폰을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고 계속 이안을 찍고 있던 카메라맨이 물었다.
“지금 어디로 전화하시는 건가요?”
뭐라고 답해야 할까. 잠시 고민하던 이안이 답을 내놓았다.
“빚쟁이요. 저한테 신세를 많이 지는 사람이 있거든요.”
잠시 후 퉁명스러운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
올곧게 빛나는 푸른 눈동자를 가진 노인이 소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줬다.
“영화 촬영은 어땠니? 힘들었지?”
“네, 쉽지는 않았어요.”
“그랬을 거다. 벤, 그놈이랑 같이 영화를 찍었으니 힘들었겠지.”
노인은 혀를 찼다.
평생 해온 영화가 할리우드와는 거리가 있지만 그도 감독으로 일하는 사람이었다.
벤 로버츠가 아역을 어떻게 대하는지 그 악명을 듣고 남을 위치였다.
“성격이 꼬이긴 했지만 그것도 나름의 주관이지. 연기에 나이가 절대적인 건 아니니까.”
“정말 그런 거 같아요.”
진심으로 동의하는 손자를 노인은 의아하게 봤다.
쉽게 동의할 만한 생각이 아니었다. 연기는 삶을 담는 법이고 세월이 쌓이면서 그 깊이를 더 해간다.
‘정말 예외가 되는 천재를 보지 않는 이상 동의하기 힘들 텐데.’
노인의 의문을 곧 손자가 풀어줬다.
“사실 저 촬영장에서 엄청난 애를 봤어요. 촬영장에 구경 온 애였는데 모두 감탄하게 했거든요. 저한테 화를 내던 벤 로버츠도요.”
“…그랬니?”
놀란 노인에게 손자는 팬심까지 묻어나는 얼굴을 했다.
“제 연기를 대신하는 걸 보여줬는데 그걸 보고 엄청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아, 얼굴을 보여줄까요? 벤에게 콘도그를 준 거로 기사까지 났던 애거든요.”
소개해줄 수 있어서 즐겁다는 듯이 핸드폰을 꺼냈던 손자는 깜짝 놀랐다.
“여기 벤의 SNS 좀 봐요! 그 애가 한국 쇼 프로그램 때문에 센트럴 파크에 왔대요! 거기서 한국식 콘도그를 판다는데 저랑 같이 가면 안 돼요?!”
“한국의 쇼 프로그램이라고?”
한국식 콘도그는 뭐고, 한국 쇼 프로그램은 뭔지.
노인은 의아해하면서도 손자를 따라 몸을 일으켰다. 센트럴 파크 동부에 있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그리 멀지 않으니 산책 겸 갔다 오기 딱 맞다.
손자와 함께 광장이 있는 곳에 도착한 노인은 북적거리며 시끄러운 광장에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웃고 떠들고, 손님을 부르는 호객 소리, 꽉 막힌 도로에 시끄러운 차 소리까지.
온갖 소리가 뒤엉킨 공간.
흡사 소리의 무덤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정신없는 공간에서 하나의 목소리가 갑자기 뚜렷하게 들렸다.
“감자 콘도그 셋이요!”
변성기가 지나지 않은 아이의 유쾌한 목소리를 들은 노인은 입꼬리를 올렸다.
명확하게 전달되는 목소리에 노인은 손자에게 물었다.
“저 아이구나. 네가 만난 아이가. 맞지?”
“어라? 어떻게 아셨어요?”
어떻게 알긴.
목소리만으로 이목을 끄는 특별함.
우리는 이걸 스타성이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