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72)
두 번째 칸(1)
부채 예약이 미쳐 날뛴다.
누가 보면 사이트 방문 수수료로 부채를 강매하는 줄 알겠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 의외다.
마초이즘이 전반적으로 깔린 미국에선 뭐만 하면 남자답지 못하다며 욕먹기 딱 좋았다.
그런 미국에서 공작새 잠옷을 입은 남자가 새겨진 부채? 함정 상품 취급받아야 했다. 기껏해야 아시아권에서나 팔릴까 싶은 물건이었는데…
‘…왜 잘 팔리냐고.’
폭염을 이유로 들기엔 조금 부족했다.
아무리 흑백 사진으로 거부감을 줄였다 해도 대다수가 ‘너희 이거 밖에서 쓸 수 있어?’라고 묻는다면 고개를 내저을 테니까.
남자답지 못하다고 우산도 잘 안 쓰려는 걸 생각하면 더욱.
그 이유는 금방 찾았다.
-부채를 주문했다. 이러면 티켓팅 성공에 더 가까워진 거 맞지?
└후, 너의 용기에 찬사를 보내지. 분명 성공할 거야.
└부채로 티켓팅에 성공하고, 콘서트에 부채 들고 가면 딱 맞겠네.
티켓팅의 부적으로 사용하는 사람.
-양심적으로 투표한 사람은 부채를 사자. 실망하게 할 순 없잖아.
└어쩔 수 없지. 부채 하나는 비싼 것도 아니고.
└근데 우리 때문에 이안이 실망하면 더 삐뚤어지는 거 아니야?
└…여기서 더? 에이, 설마.
└이안을 상식으로 재단하지 말라고!
이안은 공작새를 좋아한다는 날조를 아직도 믿는 사람.
-이게 guilty pleasure라는 건가. 묘하게 두근거리는데.
└너도야? 나랑 같네.
└…난 부모님이 이게 뭐냐고 묻더라. 전부 이해해 줄 수 있다면서.
└lol! 여차하면 접으면 안 들키잖아.
└HaHaHA, 그건 남자답지 못하지.
Guilty pleasure. 죄책감이나 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만족감을 느끼는 물건이나 행위.
부채를 두고 그걸 느낀다는 이상한 사람들까지.
이 세 종류의 사람이 더해지니 부채가 불티나게 팔렸다.
이게 맞나 싶지만 현실이 이런 걸 어쩌겠는가.
‘아무리 그래도 소중한 팬과 싸울 순 없지.’
맞은 만큼 돌려주면 큰 싸움이 나는 법이다. 여기선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그냥 넘어가는 게 옳은 선택이다.
“어차피 내가 나설 필요도 없고.”
이안은 시간을 봤다.
슬슬 예고된 티켓팅 시간이 됐다. 이번에는 팬미팅 때처럼 수모를 당하지 않겠다고 티켓팅 사이트까지 단단히 준비한 상태.
그렇게 정각을 가리킨 분침이 옆으로 살짝 움직였고.
-으아아악! 왜 벌써 매진이야?!
└…이상하다. 적금까지 들어놓은 내 돈이 멀쩡한 이유가 뭘까.
└난 부채까지 샀다고. 왜 실패한 건데? 하나만 산 게 문제야?!
└후, 나처럼 다섯 개 정도는 사야지. 콘서트에서 나눠줘야겠네.
└차단! 운영자, 이놈 좀 차단해줘요!
-운영자 찾지 마라. 토, 일 둘 다 예매 성공했다고 기뻐 쓰러짐.
└내 몸에 흐르는 프랑스의 피가 혁명을 꿈꾸고 있다.
└운영자를 단두대로!
└빌어먹을! 무슨 비리가 있을 거야. 빨리 그렇다고 말해!
순식간에 매진된 티켓에 Fianist들의 아우성이 울렸고.
팬 사이트가 쏟아지는 비명에 또다시 터져나가는 건 예견된 일이었다.
“내 팬이지만 참 활기차네.”
먹통이 된 사이트를 보며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티켓팅 때마다 이건 전통이 될 거 같았다.
***
애석한 일이지만 티켓이 매진되며 Fianist들이 고통에 몸부림친 일은 언론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없는 기사도 만들어내곤 하는 기자들이 갑자기 태업을 선언한 게 아니다.
-이안 프라이스, 하버스 진학 확정.
-합격을 받은 다수의 명문대 중 이안이 하버드를 선택한 이유는?
-하버드 측, 면접 이후 교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이안과 긴밀한 소통을 했다고 밝혔지만, 자세한 내용은 비밀에 부쳐.
더 좋은 기삿거리가 튀어나온 탓이지.
이안이 대학을 선택한다고 명문대의 순위가 뒤바뀌는 건 아니지만, 언론에서 주목하며 대학 간 자존심 싸움으로 번진 상태였다.
그 승자가 하버드로 밝혀지니 언론의 관심이 안 쏟아지는 게 이상했다.
촬영하면서 친해진 I’m okay의 스태프와 배우들에게 엄청나게 축하 인사를 들은 이안에게 아이작은 웃으며 물었다.
“축하 인사는 많이 들었니?”
“엄청요.”
단순한 축하 인사부터 인터뷰 요청까지 정신이 없었다.
고등학교 지인 중 하버드에 진학하거나, 예정인 학생들에게도 오랜만에 연락이 왔고.
‘반대로 왜 자신들 학교는 포기했냐고 투덜거리는 전화도 많이 걸려왔지.’
자신이 좋아서 한 전화이니 매몰차게 끊을 수도 없고 오랜만에 진땀을 흘려야 했다.
“그러고 보니 진학하면 네이선하고 종종 만나기로 했다고 들었단다.”
“브로드웨이를 소개해주겠다고 하더라고요.”
빨리 놀러 오라고 재촉한 뉴욕대 삼인방을 떠올린 이안은 작게 웃었다.
뉴욕대는 위치 탓인지 연극과 뮤지컬의 성지인 브로드웨이에서 활약하는 동문이 가장 많았다. 셋이 자신 있게 브로드웨이에 초청할 만하다는 뜻이다.
“좋은 경험이 될 테지. 나도 영화감독으로 일하고 있지만, 가끔 연극과 뮤지컬을 보면서 영감을 얻곤 했으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똑같이 카메라 앞에 연기를 펼치는 드라마와 영화도 차이가 있는데 연기하는 곳 자체가 다른 연극과 뮤지컬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관객과 소통하는 것만 해도 그렇지.’
현실과 극 중 세계를 구분 짓는 제4의 벽을 깨는 시도는 스크린과 TV 프로그램에서도 종종 시도되곤 하지만, 연극이나 뮤지컬만큼 많이 시도되는 건 아니었다.
단순히 무대에서 말을 거는 걸 넘어서 직접 무대 위로 부르기도 하잖는가.
애초에 용어 자체가 연극 용어이니 벽을 깨려는 시도도 가장 활발한 탓이다.
그 외에도 다른 걸 꼽자면 손이 부족할 정도고.
‘기대되네.’
긴 세월 공연되는 명작이 있는가 하면 지금밖에 볼 수 없는 도전적인 작품도 있는 법이다.
같은 작품이라도 어떤 배우가 무대에 올랐느냐에 따라 크게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고.
이 모든 게 브로드웨이를 방문하는데 기대감을 심어주는 요소였다.
“촬영 준비가 마무리됐습니다, 감독님.”
두런두런 아이작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스태프가 보고했고 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길게 뻗은 활주로에는 출발 준비를 마친 40명 정도가 탈 수 있는 항공기가 멈춰서 있었다. 주로 단거리 화물이나 스카이다이빙에 활용되는 항공기였다.
“원래는 저도 저기에 타야 하는데.”
“절대 안 된다.”
“…알고 있어요.”
오늘 촬영은 파커가 하늘다람쥐에서 모티브를 얻은 윙슈트를 입고 뛰는 장면이었다.
물론 원래도 이안이 스카이다이빙을 직접 할 계획은 아니었다.
‘내가 직접 한다고 했으면 아이작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쓰러졌을 테니까.’
스카이다이빙도 위험하긴 마찬가지지만 윙슈트는 훨씬 위험하니 말이다.
맨몸으로 최대 250km/h 속도로 날아가니 나무나 바위에 스치기만 해도 운이 좋아야 중상이다. 오죽하면 삐끗하면 사망이니 부상자 확률이 가장 적은 스포츠라는 말을 들을까.
그래도 원래 계획은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 오르는 장면까진 찍기로 했는데, 저번 차 사고 이후로 조금의 위험이 있는 촬영은 전부 세트장으로 변경됐다.
이건 감독님뿐만 아니라 스태프들도 모두 동의한 일이다.
물론 이유는 달랐다. 이번 촬영만 해도 감독님은 혹시 비행기 위에서 사고라도 당할까 걱정했던 거라면 스태프들은.
“이안이라면 느낌이 안 좋다면서 하늘 위에서 뛰어내릴 수도 있지.”
라는 불신 가득한 모습이었다.
솔직히 사고뭉치를 보는 듯한 시선은 억울했지만 이미 해놓은 전적이 있으니 반박도 못 했다.
거기에 차 사고 이후 달라진 것 또 하나 있었다.
“아! 여기 있었네.”
윙슈트를 입은 사람들이 찾았다는 듯이 다가와서는 이안에게 손을 뻗었다.
이미 지난 촬영에서 몇 차례 경험한 일이니 손을 맞잡았다.
“오늘 촬영도 다치는 사람 없이 다 잘 되겠죠?”
“그럴 거에요.”
“오! 다행이네요. 자, 다음 사람.”
마치 무사고 토템이라도 된 듯한 느낌.
이안은 하면서도 이게 맞나 싶었지만, 스턴트맨들 사이에서 이안과 함께 촬영하면 사고가 안 난다는 미신이 퍼진 상태였다.
괜한 헛소문이라고 일축하기엔.
‘invisible children 때도 스턴트 액션 때 사람을 구하긴 했지. Melted Moonlight 때는 위험하게 넘어지려는 걸 잡아줬고.’
이번 차 사고 일까지 포함하면 벌써 세 차례다.
단순히 우연으로 치부하기엔 화려한 전적이고 좁은 스턴트계를 생각하면 소문이 나도 진즉에 날만 하다.
‘거기에 자칫하면 목숨이 달린 일이니 뭐라도 붙잡고 싶었겠지.’
목숨이 아닌 성적이 달렸을 뿐인 스포츠 선수들도 온갖 징크스를 달고 사는데 자칫하면 죽을 수 있는 스턴트맨이라면 오죽할까.
그리고 놀랍게도 아주 헛다리는 아니었다.
사고가 나기 전에 미리 경고해줄 수 있는 능력이 있긴 하니까.
이렇게 실력 있는 스턴트맨들하고 친분을 쌓아두는 것도 좋은 일이다.
배우든, 제작자든 앞으로 계속 활동을 한다면 분명 도움이 될 테니까.
“분명 무사할 겁니다.”
“믿습니다.”
강한 어조로 대답한 스턴트맨으로 묘한 의식은 끝이 났고.
“종교 행사인 줄 알았단다.”
애써 외면한 사실을 아이작이 들먹였다.
말이 좋아 종교 행사지 옆에서 보면 영락없는 사이비였다.
‘스턴트계의 사이비 토템이라.’
제이 안부터 시작해서 할리우드에 독을 푸는 느낌이다.
이게 맞나 싶었다.
***
5월이 넘어가며 폭염의 해답게 더위가 더 기승을 부리는 시기.
I’m okay 촬영은 뉴욕에서 막바지에 다다랐다.
‘오랜만에 삼인방을 만나는 것도 좋았지.’
요즘 인기 많은 상품이라며 부채를 도로시에게 선물로 줬다가 한 대 맞긴 했지만 말이다.
방학이라면서 도로시와 다니엘은 LA로 돌아갔기에 함께 한 시간은 짧았지만 여전하다는 걸 느낄 순 있었다.
하지만 촬영을 마무리하기도 전에 이안은 촬영장을 벗어나야 했다.
-요즘 바쁘다고 칸 일정은 잊지 않았지?
“당연하죠. 주연인데 빼먹을 순 없잖아요.”
-기억하고 있다니 다행이구나. 미국에서 잡아올 일은 없어서 말이야.
그림자 가족의 감독, 준혁의 농담에 이안엔 작게 웃었다.
‘그나저나 칸이라.’
그림자 가족 상영 일정은 12일가량 이어지는 칸 일정 중 뒤에 자리했다.
같은 경쟁 부문이라도 수상 가능성이 큰 작품일수록 뒤쪽에 배치되는 걸 생각하면 희소식이었다.
이안은 그림자 가족의 칸 수상을 떠올려봤다.
‘이전에는 감독상을 받았었지.’
내로라하는 감독들이 만든 스무 개 남짓한 초청작 중 수상의 영광은 최대 7개 작품만 누릴 수 있다.
“이번에는 수상하면 좋겠네요. 그렇죠?”
-저번에는 빈손으로 돌아갔으니 말이야.
그랜드 라인을 이야기하는 거다. 이안이야 원래 경쟁 부문에도 못 올랐던 작품인 걸 알고 있지만 준혁은 아니었으니까.
“이번에는 수상할 수 있을 거예요.”
-그래? 네가 한 말이면 믿을만하지. 남수 선생님이 어중간한 점집을 다닐 바에는 너에게 물어보라고 했거든.
이상하다. 퇴마면 모를까 점 같은 건 안 보는데.
‘그래도 이번에는 확실히 수상해야지.’
원래도 감독상은 탔던 작품인데 자신의 참여로 맨손으로 돌아간다?
이안은 절대 그럴 일이 없다고 확신했다. 이건 긴 세월 연기에 몰두하며 살아온 삶을 생각하면 오만이 아니라 자신감이다.
“믿어도 좋아요.”
-그 자신감 아주 좋아. 그럼 칸에서 보자고.
준혁과 통화를 끝낸 이안은 핸드폰을 톡톡 두들겼다.
‘두 번째 칸이라.’
이번에는 함께 방을 썼던 멤버들은 한 명도 없었지만, 칸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있었다.
할리우드 영화로 비경쟁 부문으로 초청받은 오드리와 벨라가 이미 칸에 가 있는 상태였으니까.
“결국 오드리가 칸에 초청받아서 갔네.”
칸에서 삶의 마지막을 장식하려던 여인은 어느새 당당하게 배우로 초청을 받았다.
이미 이걸 두고 칸에서 꽤 화제를 모으고 있다고 들었다. 그만큼 영화 같은 변화이니 말이다.
아마 칸에 들어가면 자신도 관련된 질문을 꽤 받을 테고.
‘거기에 벨라라.’
…슬슬 자신이 제이 안이라는 걸 알려줘야겠지?
눈치를 채라고 그렇게 힌트를 줬는데 대학원생답게 머릿속이 과제로 꽉 찼는지 도통 힌트를 알아듣지 못했다.
아직도 ‘라이의 정체를 보고 실신한 여배우.’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도로시가 LA로 떠나기 전에 당부하기도 했고, 이안도 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미 두 감독에게 정체를 밝힌 상황이니 말이다.
“어떻게 반응하려나.”
교수님의 정체가 알고 보니 친구라니.
샬럿에게 부탁해서 뇌물이라도 미리 준비해야 하나. 이런 고민을 할 때, 전화가 울렸다.
“로티?”
어떻게 마침 생각하고 있는 줄 알고 연락했을까.
신기하다는 생각으로 전화를 받았고.
-달링, 당장 여행 캐리어를 열어 봐. 뉴욕이라고 짐 검사를 안 받을 줄 알았지?
“…그냥 뉴욕에 가져온 짐을 그대로 가져가면 되지 않아요?”
-얌전히 열래. 아니면 내가 뉴욕으로 갈까?
그날 이안은 슬픈 눈으로 대본 더미를 네이선에게 맡겨야 했다.
여행 가방 절반을 채운 분량이었다.
이안의 두 번째 칸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