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80)
폐막과 개막(1)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많다.
-해킹으로 작성된 글이 아니란 말이죠?
“네,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그냥 공약을 올렸을 뿐인데 정말 직접 쓴 글이 맞냐는 확인 연락이 오는 걸 보면 말이다.
물론 오해를 푸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인증 사진을 올리면 끝날 일이니까.
다만.
“푸하하하, 오죽하면 네 팬들이 그렇게 나왔겠냐. 안 그래?”
“아, 시끄러워요.”
놀림당하는 건 피할 수 없었다.
눈물을 흘릴 정도로 웃는 벤만큼은 아니어도 데미안, 게빈 감독님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트리긴 마찬가지였다.
‘왜 하필 시사회까지 함께 움직여서.’
이럴 줄 알았으면 따로 움직였을 텐데 괜히 같이 움직였다.
아니, 애초에 신고할 정도로 이상한 글은 아니지 않나? 공약이 엄청 특이한 것도 아니고.
뚱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내려보는 이안의 어깨를 벤이 장난스럽게 두들겼다.
“그러게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팬미팅을 거하게 연다고 한 거야?”
“어차피 매년 팬미팅을 열기로 약속했거든요. 하기로 한 거 공약으로 낸 거죠.”
“말이 공약이지. 약속을 지키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걸?”
“그렇긴 하죠.”
뮤지컬이 폐막하면 연말이다. 대관이 힘든 시기이니 반년 넘게 남은 지금도 시간이 넉넉한 건 아니었다.
“설마 공약으로 건 흥행 목표 달성을 못 이뤘다고 중간에 취소할 건 아니지?”
“에이, 그러겠어요?”
“잘 생각했다. 아무리 네 팬들이 온순하다고 해도 화냈을걸. 거기에 위약금도 만만치 않을 테고.”
벤의 말대로 사실상 결과가 어떻든 공약은 이뤄진다고 봐야 했다.
이건 바라던 바였다.
‘본격적 팬데믹을 바로 앞두고 마스크를 나눠줄 기회니까.’
공약으로 영화 홍보까지 할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규모를 늘렸다고 해도 어차피 올해가 지나면 언제 또 팬미팅을 열 수 있을지 모르니 미리 당겨서 했다고 보는 게 맞기도 하고.
이안은 주변을 쓱 둘러봤다.
외부에선 이안 패밀리라고 알려질 정도로 자주 만나는 얼굴들이 보였다.
‘내년 이후엔 한동안 이렇게 다 같이 모이기 힘들겠지?’
개개인이 조심스럽게 만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여럿이 한 곳에 모이면 손가락질당하는 시기가 찾아올 테니까.
강한 아쉬움에 자연스럽게 입이 열렸다.
“한적한 곳에서 한동안 다 같이 지내면 재밌을 거 같지 않아요?”
말을 하고도 순간 흠칫 놀랐다. 맥락도 없는 뜬금없는 말이었으니까.
서둘러 다른 말을 꺼내려고 할 때 게빈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음, 재밌긴 하겠구나. 칸 영화제 때를 생각하면 정신없을 거 같긴 하지만 말이야.”
“감독님이 그런 말씀 하시면 안 되죠. 감독님 방도 정상은 아니었잖아요. 근데 괜찮긴 하겠네요. 레이첼이랑 에반도 엄청 좋아할 테고요. 데미안, 넌 어때?”
“나? 나는 무조건 동의하지. 우리 딸이 대부 얼굴도 잊어버리겠거든. 그럼 집이 꽤 커야겠는걸. 사람이 꽤 되잖아.”
“건물이야 알아보면 될 일이지. 아이작, 은퇴하면 할 것도 없을 텐데 낄 텐가.”
“너희만 두면 불안하니 당연히 껴야지.”
…응?
어어, 하는 사이에 이야기가 순식간에 진행됐다. 벌써 촬영 중 어느 지역을 가봤는데 괜찮더라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봐선 당장 일을 진행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벤은 멍하니 있는 이안을 툭 쳤다.
“뭘 그렇게 놀라. 네가 말을 꺼내놓고는.”
“설마 진짜 하려고요?”
“그냥 다 같이 길게 여행 간다고 생각하면 될 일이잖아. 뭐 어려운 일이라고.”
확실히 그렇게 말하니 대수롭지 않게 느껴지긴 했다.
이안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하긴 여기엔 백수 상태인 사람들이 많았죠?”
“넌 대학만 졸업해봐라. 휴식기에 똑같이 돌려줄 거야, 요 녀석아.”
농담을 주고받으며 한동안 함께 지내는 상상을 해봤다.
‘진짜 정신없겠는데.’
데미안이 데려온 공작새들을 보며 벤은 질색할 테고 게빈은 방 곳곳에 십자가를 걸어놓다가 아이작에게 잔소리를 들을 게 뻔했다.
그때면 비비안은 한창 혼자 돌아다니며 말썽을 일으키고 에반은 아마 껌딱지처럼 자신에게 붙어있지 않을까.
칸에서 지낼 때처럼 시답지 않은 이유로 티격태격 싸울 수도 있고.
‘그래도 추억은 많이 쌓겠네. 여러모로 재밌을 거 같기도 하고.’
카메라에 담으면 하나의 시트콤처럼 보이지 않을까?
“아무튼, 여유 있을 때 한 번 고민해보죠.”
“그래. 일단 나갈까? 슬슬 시간이 됐네.”
기다리던 시사회 시간이 됐다.
일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중의 평가를 받을 시간이 찾아왔다.
***
영화가 얼마나 흥행할지는 스크린에 걸어보기 전에는 모른다.
한 편 제작하는데 엄청난 돈을 투자한 제작진으로선 그냥 냅다 개봉하기엔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할리우드에선 일부 관객을 받아 테스트 스크리밍을 진행하는 게 통과의례였다.
‘다만 장점만 있는 건 아니지. 흥행을 정확히 못 맞출뿐더러 영화의 스포일러나 평가가 흘러나오곤 했으니까.’
그래도 기자로선 좋은 기삿거리였는데, I’m okay는 얼마나 꼭꼭 숨겼는지 이런 이야기가 조금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시사회에 모인 기자나 평론가들은 얼마나 대단한 영화길래 이렇게까지 했나 살짝 삐뚤어진 마음으로 봤으나.
‘괜히 이안 프라이스를 주인공으로 삼은 게 아닌가.’
이 생각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뉴욕의 인파 사이를 걷는 주인공은 등장과 동시에 위화감을 줬다. 마치 멀쩡한 그림 위에 찍힌 검은 점처럼.
이 위화감의 정체는 금방 드러났다.
-파커! 파커! 정신 안 차려?!
-…네, 네!
손등을 꼬집는 행위로 파커의 얼굴에는 생기가 돌았다.
찰나의 순간에 극명하게 보이는 표정 차이는 주인공에게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걸 보여줬다.
-이인증입니다. 그것도 증상이 조금 심하군요.
차가운 의사의 선고.
관객에게 본격적으로 자신의 문제를 보여준 작품은 전개 속도를 조금씩 높였고 파커의 삶이 변하기 시작했다.
-살려… 살려줘요.
화재 속에서 사람을 구했고 파커의 겁 없는 도전이 이어졌다.
까딱하면 죽을 수 있는 위태로운 상황의 연속이었고, 이 아찔한 장면은 재미라는 감정으로 만들어냈다.
‘하지만 단순히 재밌는 영화를 만든 게 아니야.’
영화는 교묘하게 주인공뿐만 아니라 스턴트맨, 촬영 스태프 등을 카메라에 담아냈다.
거장이라는 명예의 마침표가 될 은퇴작에서 자신이 떠난 뒤에도 영화를 만들어낼 이들에게 영광을 돌리는 행위였다.
물론 의도는 좋으나 작품성을 해칠 위험은 있었다.
자칫하면 주인공의 존재감이 옅어질 수도 있는 편집 방향이니까. 하지만 이 작품에선 그런 걱정은 전혀 필요 없었다.
-끔찍하게 여겼던 정신병이 나았더니 웬 겁쟁이가 앉아 있으니 황당하긴 하겠지. 안 그래?!
이안이 연기하는 파커는 강렬한 존재감을 뽐냈으니 말이다.
정신없이 영화를 보다 보니 어느덧 눈앞에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무대 인사를 하는 이들에게 기꺼이 손뼉을 쳤다고 시사회 후 호평이 쏟아냈다.
-거장 아이작 그린버그가 우리에게 남기는 작별 인사, I’m okay!
-재미와 작품성을 함께 잡아낸 감독과 그걸 완성한 배우. I’m okay를 봐야 하는 이유.
특히 주목받은 건 걱정과 달리 영화가 오락성도 충분히 갖고 있다는 점이다.
속도감 있는 카 체이스, 아찔한 스카이 다이빙, 해저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하는 스쿠버 다이빙 등.
눈을 즐겁게 하는 장면과 작품 곳곳에 지루할 틈 없이 튀어나오는 유머는 재미를 추구하는 관객도 끌어모으기 충분했다.
이는 곧바로 흥행 결과로 나타났다.
-I’m okay, 첫 주말 4,300만 달러 수익! 제작비 절반 이상 회수.
개봉 성적만 봐도 손익분기점은 가볍게 넘을 수 있는 성적이 나왔다.
강한 IP로 만든 것도 아니고, 이안 외에는 별다른 스타 캐스팅도 없던 작품인 걸 생각하면 수익은 기대 이상이었다.
이 소식에 그 어디보다 떠들썩해진 곳이 있었다.
바로 이안의 팬 사이트였다.
-속보) 이안의 공약 달성.
└OMG! 그럼 우리 이제 이안이 투어 일정 도는 걸 볼 수 있는 거야?
└맞아! LA만 도시가 아니잖아. 우리 도시도 와줬으면 좋겠다.
└어딘데?
└나? 벤쿠버. 너희 51번째 주야.
└오! 우린 21세에 술을 마실 수 있고, 의료비로 파산할 수 있지만 얼마든지 환영이야.
└…지독한 놈들. 어떻게 그딴 곳에서 살 수 있지?
-근데 설마 해킹 신고를 했다고 공약을 취소하는 건 아니겠지?
└HAHAHA! 그땐 우리도 더는 신사가 아니겠지.
└뭘 그렇게 걱정해. 지금까지 거짓말한 적은 없잖아?
└끝까지 방심하지 마. 상대는 이안이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닥쳐! 말이 씨가 된다고.
-도대체 누가 신고한 거야?!
└솔직히 글을 본 Fianist들은 전부 신고 버튼을 누르지 않았을까?
└나는 꿈인가 해서 볼을 꼬집어 봤는데.
└오? 넌 신고를 안 했구나.
└아니, 현실인 걸 알고 바로 해킹 신고를 했지.
└lolol!
설마 공약을 취소하겠어? 라는 생각을 하는 한편 ‘이안이라면 모르지.’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기쁨과 불안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이안의 글이 올라왔다.
-I’m okay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약대로 여섯 도시에서 일정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자세한 일정은 결정되는 대로 따로 공지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역시 이안은 신인가.
└아니지. 이런 공약을 걸게 한 아이작 감독님이 신이지.
└…잠시만 감독님은 이번이 은퇴작인데.
└안 돼! 은퇴 멈춰!
└아아, 큰 별이 우리에게 선물 하나는 남기고 저버렸구나.
약속을 지킨다는 글을 남긴 이안은 엔딩 크레딧과 함께 우르르 나가는 사람을 곁눈질로 봤다.
설마 방금 본 영화의 주인공이 근처에 앉아 있을 거란 생각은 못 하고 다들 웃으며 떠나갔다.
이안은 옆자리에 앉은 노인처럼 빽빽하게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을 바라봤다.
자신을 인간 토템으로 사용했던 스턴트맨들, 함께 연기한 배우들, 농담을 주고받은 스태프들처럼 이름을 아는 사람들 외에도 마케팅팀처럼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 이름도 보였다.
‘다만 전부 이 작품을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지.’
이름만 봐도 촬영장에서 있었던 일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사람이 이 작품에 참여했다고 해도 엔딩 크레딧은 언젠가는 끝이 나는 법이다.
시커먼 배경에 올라가던 하얀 글씨는 어느덧 모습을 감췄다.
진정한 끝.
그걸 알려주듯 시커먼 스크린만 눈앞에 남았다.
“이안.”
“네, 감독님.”
처음부터 끝까지 말없이 영화를 보던 노인과 눈을 마주쳤다.
복잡한 감정이 느껴졌다. 후련함, 아쉬움, 그리고 기쁨 등 엉망진창 뒤엉킨 감정은 파르르 떨리는 눈가의 주름으로 표현됐다.
‘아쉽겠지. 앞으로 뭘 할지 감이 잡히지 않을 테고.’
평생 열정을 바쳐온 일을 그만둔다는 건 그런 느낌일 테니까.
어쩌면 속으로 은퇴를 번복하고 한 편 더 찍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없이 눈을 마주치던 그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즐거웠다. 그렇지?”
“네, 정말 즐거웠어요.”
맞잡은 손에서 노인의 탄력 없고 주름진 피부가 느껴졌다.
“그래, 그거면 된 거야. 미련을 갖기에는 너무나 즐겁고 설렌 작품이었거든. 마치 젊은 시절 첫 작품을 찍을 때처럼 말이야.”
손을 놓은 아이작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큼성큼 내딛는 그의 발걸음에 맞춰 상영관 밖으로 나갔다. 좁은 상영관과 달리 상쾌한 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뭐하실 건가요.”
“글쎄. 나도 게빈 녀석처럼 자서전이라도 써볼까. 제목으론, 그래. 나는 겁쟁이다 2. 어떻니.”
“괜찮은데요? 게빈 감독님 자서전도 다시 팔릴 테니까요.”
“하하하, 그렇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은 아이작은 청소를 시작한 상영관을 힐끔 돌아봤다.
머문 흔적까지 깔끔하게 치워지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영관에 나오는 영화도 바뀔 테고.
이렇게 다들 과거의 존재가 되어갔고 이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너는 원하는 만큼 실컷 즐기고 무대에서 내려오렴. 나는 이제 객석에서 네 활약을 지켜볼 테니까.”
“오랫동안 지켜봐 주세요.”
“그럼 당연하지.”
둘은 나란히 걸음을 옮겼다.
거장의 무대가 막을 내렸다.
***
조명 아래 시끌벅적한 소리.
이안은 그 앞으로 다가가 손을 흔들었다.
“저 왔어요.”
공연을 준비하던 배우들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왔네. 빈센트가 네 대역을 맡는다고 앓는 소리를 몇 번 냈는지 모르겠어.”
“너희가 내 부담감을 알기나 해? 아무튼, 잘 왔다. 옷이나 빨리 갈아입어. 바로 무대에 오를 수 있지?”
“물론이죠.”
이안은 무대 위로 올랐고.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