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84)
그 시기(1)
사람은 희소한 것을 더 가치 있다고 여긴다.
하지 말라고 하는 것에 더 깊게 빠지는 것도 이런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주변에서 반대할수록 희소한 것이 되니 말이다.
‘로미오와 줄리엣도 어떻게 보면 그렇지.’
두 남녀가 철천지원수 가문이 아니고 평범한 사이였다면 이야기처럼 불꽃처럼 사랑했을까?
어쩌면 아니었을 수 있다.
“…얘네를 명작과 비교하는 건 양심에 찔리긴 하지만.”
이안은 팬 사이트를 봤다.
-공작새 잠옷 입은 부채는 다시 안 팔아?
└안 판다고! 이제 너희 집으로 돌아가!
└털 날린다고. 제발 나가라. 응?
└앞으로 같은 팬끼리 잘 해보자.
└싫어!
-배우 팬, 가수 팬에 이어서 퍼리 팬이라니. 이거 맞냐?
└사실 더 나뉘잖아. 배우 팬도 유입된 장르에 따라 다르고, 가수 팬도 장르나 목소리에 따라 갈리고.
└…우리 애가 하나인 게 문제 아닐까?
└그건 됐고. 제발 이상한 애들 좀 그만 데려와!
└Oh! 곧 팬미팅이 있더라. 퍼리의 구세주를 볼 수 있다니!
└너희한테 갈 티켓은 없다고… 이 자식들아.
혐오 당하는 만큼 열정으로 가득한 퍼리 팬덤이 호들갑을 떠는 게 보였지만 크게 신경 쓰진 않았다.
잘 나가는 배우와 감독들이 모여서 퍼리 작품을 만들어준다니 기쁜 마음으로 모였으나.
‘작품을 망치면 바로 들고 일어나겠지.’
농담 안 하고 이 작품이 망하면 10년은 비슷한 작품이 안 나오지 않을까?
구세주가 아니라 테러범으로 낙인 찍히는 건 순식간일 거다.
“망칠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괴식가나 마찬가지인 저들 입맛에 딱 맞출 생각도 없다.
이안은 밑그림 작업이 시작된 아웃사이더의 서류를 봤다.
아이작 감독은 작품성만으로 거장이라고 불린 인물이라면 게빈은 상업성만으로도 거장이라고 불릴 수 있었다.
할리우드의 상업성은 최대한 많은 관객을 끌어모으는 거고.
‘소수의 광적인 팬이 즐기는 작품보단 일반인들도 즐겁게 볼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선 거부감이 들 요소를 깎아내는 게 먼저지.’
그러니 로맨스라는 장르가 붙어도 성적인 요소는 최대한 배제하고 플라토닉 러브에 가까운 모습을 최대한 살린다.
거대한 늑대와 함께 노는 미녀의 느낌이랄까. 이 정도 느낌을 주는 게 목표였다.
이안은 서류를 덮었다.
어차피 지금은 가볍게 방향성만 잡을 뿐 급한 일은 아니다. 본격적인 작업은 내년 초부터 진행될 예정이었으니까.
-이안, 여기 어떠냐? 산하고 호수가 바로 붙어 있거든. 저택도 엄청 넓어서 서로 불편할 것도 없고.
벤이 보낸 문자에 예쁘고 넓은 저택 사진이 보였다.
저번에 이야기를 주변 지인들과 함께 놀러 가기로 하지 않았는가? 그 예정지였다. 기간도 넉넉히 잡은 만큼 작품 준비도 저기서 하기로 했고.
“그동안 다른 일부터 마무리해야지.”
뮤지컬과 팬미팅.
이 일정부터 끝낼 필요가 있었다.
***
7 Confessions of Love.
가뜩이나 브로드웨이에서 큰 관심을 받는 작품이 공연 실황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자, 이목을 다시 집중시켰다.
연일 매진을 일으키는 작품이 이 결정으로 어떤 이득과 손해를 볼지 궁금했으니 말이다.
폐막을 거의 앞두고 이 선택의 결과물이 나왔다.
-7 Confessions of Love, 공연장과 영화관 모두 매진!
-본 공연 3개월? 그 아쉬움을 단번에 날려버린 7 Confessions of Love 성공.
공연 실황이기에 보통 영화 티켓보다 2배 넘게 비쌌지만, 미국 전역에서 매진을 이뤘다.
영화관과 중간 업체 등 중간에 뜯겨나가는 돈이 많아도 단기 공연의 아쉬움을 달래고도 남을 큰 수익으로 돌아왔다.
브로드웨이 관계자들이 처음 느낀 감정은.
“…배가 너무 아프네.”
단기 공연이라고 이안은 배제했던 게 또다시 엄청난 후회로 다가왔다.
쓰린 속을 부여잡은 사람들이 그다음으로 주목한 건 공연 실황의 잠재력이었다.
“스트리밍 서비스에 관심을 가져볼 만할지도 모르겠는데.”
“에이, 몇 가지 상황이 맞아떨어져서 성공한 일이잖아. 단기 공연이고, 스타 마케팅으로 인기도 많았고.”
“대신 그 조건만 맞으면 된다는 뜻이잖아.”
보수적인 브로드웨이 관계자들이 고려할 요소로 포함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
팬데믹 시절 공연장들이 문을 닫으며 어쩔 수 없이 고른 선택지에 생각보다 일찍 관심을 끌게 된 꼴이었다.
이런 반응은 이안으로선 나쁠 게 없었다.
‘어쩌면 덕분에 팬데믹 시기에 한 명이라도 더 많은 배우가 무대에 설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누구보다 간절히 작은 배역이라도 얻길 바란 삶을 살아왔다. 그렇기에 배우가 설 수 있는 무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너무나 잘 알았다.
작게나마 도움이 됐다면 기쁠 따름이다.
이안은 불이 꺼진 무대 위에서 고개를 돌렸다.
“이제 곧 폐막이니 아쉽네요.”
“…그래, 너무 아쉽구나.”
지팡이를 짚고 선 스티븐은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
배우는 물론이고 스태프들까지 거의 출근하지 않은 이른 시간.
삭막한 무대에 두 사람은 아쉬움을 삼키며 섰다.
“다음 작품 제안은 들어왔어요?”
“음, 브로드웨이에는 자네 같은 괴짜는 별로 없는 것 같아.”
이안과 사연이 알려지며 큰 관심을 받았으나 마케팅에 활용할 정도는 큰 인기를 얻은 건 아니었다.
지팡이를 든 노인, 그것도 아시아계 노인을 굳이 고용할 공연은 없었다는 뜻이다.
농담으로 대답한 스티븐은 마지막 장면처럼 소품 위에 앉았다.
“이상할 거 있나. 원래 이 나이 먹고는 다들 은퇴하고 하는 법이야. 노후 준비가 안 됐으면 소일거리라도 어떻게든 하고 사는 법이고.”
“그래요?”
“그럼. 무대에 선 모든 배우가 주인공이 될 순 없어. 누구는 앙상블, 코러스로 끝이 나지. 나도 그렇게 사라질 뿐이야.”
냉정하지만 이름을 알리는 배우보다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배우들이 훨씬 많다.
이안과 스티븐, 배우를 갈망한 두 사람이 다른 결과물을 받아든 건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노인은 무대 배경을 손으로 쓸었다.
꿈 같던 시간이 지나고 관객으로 돌아갈 때가 됐다는 걸 알기라도 하듯 미련 없이 가벼운 손짓이었다.
“나는 운이 좋았지. 덕분에 배우로서 막을 내릴 수 있었으니 말이야.”
고마운 가득한 노인의 눈빛이 닿았을 때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또 혼자 왔어요? 같이 가자니까요.”
“에디, 왔니.”
툴툴거리며 올라온 에디를 봤다.
작년 이맘때쯤 만났던 그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수많은 인파 속에 묻혀도 찾을 수 없었던 그에겐 생기가 가득했다.
낯설지 않았다. 꿈이란 걸 품은 사람의 모습이니까.
“아, 프라이스 군.”
이안을 보며 잠시 멈칫한 그는 손을 뻗었다.
“그동안 정말 고마웠습니다.”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인연이다. 짧은 만큼 진심이 담긴 인사에 이안은 손을 맞잡았고.
새하얀 섬광이 눈을 가렸다.
차곡차곡 정리된 짐과 쓸쓸한 침대에는 낡은 지팡이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사랑하는 이가 떠나간 자리를 정리하는 손은 슬픔이 가득했다.
“…진즉에 잡지 좀 버리라고 했더니.”
브로드웨이 작품을 소개하는 잡지들을 뭉치를 묶던 그는 침대 옆 서랍을 열고 멈칫했다.
족히 수십 년은 된 잡지를 보고 그는 이상하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바로 옆 서랍에 뒀다는 건 그만큼 자주 봤다는 걸 의미하니까.’
왜 이렇게 오래된 잡지를 그렇게 자주 봤을까.
이 의문은 에디가 잡지를 펼치고 나서 해소됐다. 한 공연을 소개하는 페이지 사이에 끼워진 한 장의 사진.
아직 젊은 스티븐과 허리춤밖에 안 오는 어린 에디가 환한 미소로 티켓을 들고 있는 게 보였다.
공연이 조손 관계의 걸림돌이 아니라 연결고리가 됐을 시기의 사진이다.
“…할아버지.”
꾹꾹 누른 감정이 느껴지는 한 마디와 함께 이안은 눈을 깜빡였다.
환상이 사라지고 젊은 에디가 보였다.
“프라이스 군?”
의아한 듯한 부름에 맞잡은 손을 놨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에디가 정리한 잡지 더미만 봐도 수십 년동안 어떤 작품들이 브로드웨이에서 성공했는지 훤히 알 수 있었다.
빈약할 수밖에 없는 공연쪽 흐름을 훤히 알 수 있는 정보였으나 생각나는 건 마지막 장면이었다.
“콜라는 무슨. 공연을 앞뒀으면 물을 마셔야죠.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요.”
잔소리하고 물을 가지러 가는 에디의 뒷모습을 보는 스티븐을 바라봤다.
‘착각했네.’
회귀 전 자신과 스티븐은 닮은꼴이라 생각했다. 신체적 결함과 배우를 갈망하는 강한 마음을 가졌으니까.
하지만 큰 차이가 있었다.
‘연기보다 더 소중한 게 있었네.’
자신에겐 회귀가 행운이었으나 만약 그가 같은 기회를 받았다면 저주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긴 세월을 돌아온 대가로 가장 소중한 걸 잃었을 테니까.
어째서 그가 홀가분하게 배우를 내려놓고 관객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 깨달았다. 함께 객석에 앉을 사람이 있는데 슬퍼할 이유가 어디 있겠나.
“폐막에는 우리 힘 좀 써볼까요?”
“그것도 좋지.”
둘은 어느덧 하나둘씩 들어온 배우들과 스태프를 향해 걸었다.
이날 2019 브로드웨이에 한 획을 그은 한 공연이 막을 내렸다.
***
“독하다 독해.”
두 장의 티켓을 당당하게 흔드는 이안을 보며 도로시는 혀를 찼고, 다니엘은 동감하듯 한숨을 내쉬었다.
“기어코 당첨될 때까지 참여했구나. 그 노력이면 그냥 티켓을 사지 그러냐.”
“세상에는 돈과 명성으로 안 되는 일도 있는 거라고.”
“…누가 들으면 대단한 일이라도 이룬 줄 알겠다.”
기껏해야 할인 추첨에 성공한 것뿐이다.
‘저렇게 당첨 안 되는 것도 능력이지.’
아무리 인기 많은 공연이라고 해도 작년부터 노력했는데 이제야 당첨됐다니 참 놀랍다.
오죽하면 도로시가 그동안 지은 죗값을 치르는 거라고 했을까.
“폐막도 했는데 뭉그적거리더니 이제야 가겠네.”
“중요한 일이었다고.”
회귀 전까지 생각하면 진짜 지독하게 당첨이 안 된 티켓이었다. 폐막을 하자마자 이 티켓에 당첨된 걸 보면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고.
“그래서 누구랑 보려고?”
추첨으로 한 번에 살 수 있는 건 두 장이 끝이었다.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은 셋이고.
이 질문에 이안은 어깨를 으쓱였다.
“이거? 내가 안 볼 건데. 스티븐 씨랑 에디에게 주려고.”
그게 더 의미가 있을 테니까. 과거 에디와 만났던 극장을 눈에 담은 이안은 발걸음을 옮겼다.
옆에 나란히 걷는 둘의 발걸음부터 시끌벅적한 브로드웨이 거리의 소음이 귓가에 울렸다. 코로는 짙은 향수와 음식 냄새 따위가 뒤엉켜 맡아졌고.
아멜리아를 돕고 바뀐 예민한 감각 탓이다.
‘확실히 좋긴 좋아.’
예민한 청각은 음악을 하거나 언어를 배울 때 도움이 됐고, 후각과 미각은 음식을 더욱 즐길 수 있게 해줬다.
하지만 지금처럼 불필요한 예민함이 괴로움으로 다가올 때도 있었다. 그저 손익을 계산해서 감내하고 살아갔던 것뿐이지.
‘이젠 이런 고통을 겪을 필요가 없어.’
코를 마비시킬 것 같은 냄새가 옅어졌고 고막이 터질 것 같은 소음도 가라앉았다.
평범하게 돌아온 감각.
에디가 자신에게 준 선물이었다.
‘정확히는 얻은 능력을 제어하는 것에 가깝나.’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한 능력이긴 했다. 이런 예민한 감각뿐만 아니라 다니엘을 돕고 엄청나게 튼튼하게 바뀐 몸도 사실 문제가 될 때가 있었다.
정말 너무나 건강했다.
그게 무슨 문제야? 라고 물을 수 있지만.
‘배우에겐 문제지.’
배우는 연기를 위해 비만이 되도록 살을 찌우거나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다이어트를 해야 할 때도 있다.
한마디로 언제나 건강한 신체를 억제할 수 있는 건 이안에게 연기 스펙트럼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일시적으로 억제하는 것이니 정상으로 돌아올 때도 남들보다 건강 걱정을 할 필요도 없고.
“큰 도움을 받았으니 소중한 티켓을 줄 만하지.”
“뭔 도움?”
“그런 게 있어.”
두 조손이 옛날처럼 함께 공연을 보는 걸 떠올린 이안은 뾰로퉁한 표정을 지은 도로시를 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아, 그러고 보니까 마스크가 좀 남았거든?”
“근데?”
“너희 기숙사로 보내놨어.”
둘은 눈을 깜빡였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저번에 인사한 룸메이트분들이 잘 정리해서 넣어놔 준다고 하시더라. 걱정 안 해도 돼.”
“야!”
“미쳤냐.”
어허, 미쳤다니.
뉴욕에서 지내는 친구들의 건강을 이렇게 생각해주는 친구가 어디 있다고.
“나중에 엄청 고마워할걸. 내 마음이라니까.”
“필요 없어!”
“사양 말고 넣어둬. 넣어둬.”
원래 소매넣기는 강제고 반품 따위는 안 받는 법이다.
이안은 두 친구와 티격태격하며 뉴욕 거리를 걸었다.
***
뉴욕에서 돌아온 이안은 바로 연말 팬미팅을 준비했다.
든든하게 채워주는 선물꾸러미부터 무대 준비까지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중국 후베이성을 중심으로 정체불명의 폐렴으로 보이는 감염병이 발견됐습니다.
중국어로 된 기사를 보는 검은 눈동자가 차갑게 내려앉았다.
“드디어 시작됐나.”
할리우드를 비롯해 많은 곳에 큰 여파를 미칠 작은 날갯짓이 시작됐다.
오랫동안 준비한 시기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