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85)
그 시기(2)
정체불명의 폐렴.
세상을 크게 한 번 바꿀 뉴스였으나 관심 두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하다못해 뉴스가 나온 중국에서조차.
‘감염병이 툭 튀어나오는 건 그렇게 드문 일도 아니니까. 다들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아프리카에서 에볼라로 만 명이 넘는 사람이 죽어도, 과거 유럽 인구를 작살 냈던 흑사병이 현대에도 간간이 희생자를 만드는 데도 사람들은 잘 모르지 않나.
정체불명의 폐렴보다 오늘 먹을 점심밥이 중요한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문제는 내 일이 되는 게 생각보다 금방이란 점이지.”
12월에 첫 뉴스가 나왔는데 범세계적인 전염병이 되는 건 순식간이다.
이안은 그걸 잘 알고 있었고.
조급해진다.
당장이라도 소중한 가족과 지인이라도 챙겨서 어디론가 도망쳐 있고 싶다.
비록 남들이 손가락질하는 노숙자로서였으나 겨우 마련한 보금자리가 박살 났던 기억이 떠올랐으니 말이다.
“…그래도 아직 아니야.”
불안과 조급증을 내려놨다.
세상이 망할 것 같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전염병과의 전쟁도 끝이 존재했다는 걸 알고 있다. 그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폭풍이 지나가길 얌전히 기다리면 될 뿐이다.
길게 숨을 내쉬자, 주변에 소리가 들어왔다.
소리보단 소음.
귓가를 어지럽히는 소리에 이안은 오히려 작게 미소를 지었다.
똑똑똑
-슬슬 준비하셔야 합니다.
스태프의 안내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동안 직접 만날 기회가 없을 팬들과의 시간이다. 지금 가장 우선시해야 할 것이기도 하고.
이안은 환호성이 터져 나오는 무대 위에 올랐다.
***
이안의 팬덤은 크다.
최근에 수상한 퍼리 팬덤이 끼어든 것처럼 새로운 작품과 곡을 내면서 그 몸집을 계속 불린 탓이다.
그만큼 다양한 취향의 사람들이 모인 건 어쩔 수 없다.
이 때문에 이안은 이번 팬미팅을 기획할 때 정한 컨셉은 하나였다.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다 준비했어.
입맛 까다로운 팬들을 위해 하나라도 제대로 즐기고 가라는 의미였다.
배우 팬이라고? 다양한 당시 이야기와 연기를 준비해왔다. 가수 팬이라면 라이의 노래와 리메이크의 노래를 즐기고 가라.
뮤지컬로 팬이 된 사람? 그들을 위해 공연 넘버를 준비해왔다. 퍼리 팬? 되도록 안 왔으면 좋겠다.
‘인형탈은 왜 쓰고 오려는 거야.’
…아무튼, 가수 팬들이 주로 즐길 수 있는 콘서트와 달리 팬미팅은 대다수 이안 팬이 즐길 수 있는 무대였다.
당연히.
-이안 프라이스 팬미팅, 순식간에 매진.
티켓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누구냐. 여섯 도시 6만 석이면 할만하다고 한 놈이.
└빌어먹을! 무슨 이렇게 빨리 매진 돼?!
└뉴비의 맛이구나.
└과거 천 석과 비교하면 할만하지.
└지옥 같은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면 성공했을걸.
-어쩐 일로 이번엔 이안이 가만히 있었지?
└나도 걱정돼서 SNS를 계속 확인했잖아.
└???: 여러분을 위한 초특급 게스트를 소개합니다.
└하지 마! 필요 없다고!
└이번에는 게스트 없이 이안이 시간을 다 채운다고 하더라. 그것도 빠듯하다고.
땔감을 넣는 괴인이 없어도 티켓팅은 여전히 피 튀겼고 이안의 확고한 인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한 팬미팅은 LA부터 시작되었다.
-와아아아
귀가 아플 정도로 환호성을 지르는 만여 명 팬 앞에 서는 일.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는 상상도 못 할 일이 이제는 익숙해졌다는 걸 새삼 깨달으며 자연스럽게 무대에 올랐다.
뮤지컬을 하면서 본 공연만 100회 달하는 무대 경험을 쌓았다.
지금 서 있는 콘서트장 같은 무대와는 형태도 성질도 달라도 경험이 무의미할 정도의 차이는 아니다.
이걸 이안은 여실히 보여줬다.
“와…”
넓은 무대에 홀로 서 있는데도 텅 비었다는 느낌이 없다.
큼지막한 동작으로 자유롭게 무대를 누비는 모습은 오히려 꽉 찼다는 느낌을 줬다. 작년 콘서트를 경험한 팬들은 더욱 이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압도적인 무대 장악력.
‘역시 근본은 가수인가?’ 이미 한물간 논란을 떠올릴 정도로 이를 활용한 공연은 어지간한 가수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였다.
배우 팬들조차 열광적으로 좋아할 정도였다.
물론 순조롭게 일정이 진행됐다면 이안의 팬미팅이 아니었다.
일은 숨도 돌릴 겸 가볍게 소통하는 자리인 Q&A 시간에 있었다.
만 명이면 팬사인회도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수다. 당연히 일대일 소통은 불가능하고 입장할 때 받은 질문지에 답하는 시간이었는데…
“오! 하버드에서 한 수업이 궁금하다고 하신 분이 있네요.”
수업 평가 5.0을 받은 특별 강의.
기껏해야 풍문으로만 들려온 수업을 궁금해하는 팬들은 분명히 많았다. 다만.
“대본 수정을 위해선 다양한 상황에 따라 왜 이런 결정이 이뤄져야 하는 지 알아야 하죠. 그럼 팬들이 잘 알법한 Holy Love로 설명을 해볼까요?”
“이번엔 예산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수정한 예시를 들어볼게요.”
…이렇게까지 자세히 알고 싶었던 건 아니다.
-팬미팅에서 20분 동안 수업들은 썰 푼다.
└lololol! 스태프가 중간에 안 말렸으면 진짜 한 시간은 했을걸?
└오늘 모든 코너 중에서 가장 열심히 했던 거 같은데.
└‘점심시간이니까. 조금만 더 이야기해보죠. 중요한 내용이에요.’라고 말한 우리 교수님이 떠오르더라.
└5.0 드릴 테니 제발 멈춰주세요.
-근데 재밌긴 하더라.
└아, 정신 차리고 둘러보니까 다들 멍하니 수업을 듣고 있던데.
└집단 최면인 줄.
└수업을 잘하는 거야? 아니면 팬심 때문이야?
└몰라. 궁금하면 다음 팬미팅 때도 질문해보던가. 대신 팬미팅 끝날 때까지 수업 들을 수도 있음.
다행히 끝나고 난 뒤 팬들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혼자 좋아하며 열성적으로 설명하는 모습은 꽤 새롭게 다가왔으니까. 예정된 시간보다 더 길게 팬미팅을 이어간 덕분도 있었고.
LA를 시작으로 이안은 팬미팅 일정을 빠르게 소화했고 3주에 걸친 투어 일정을 끝으로 연말 연휴에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안!”
18개월 된 아이가 달려와 껑충껑충 뛰었다.
공작새 동물 잠옷을 입은 아이를 능숙하게 안아 들자, 아이 특유의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비비안, 많이도 컸네.”
에반 때도 느꼈으나 진짜 애들은 한두 달만 안 봐도 부쩍부쩍 크는 것 같다.
-멍!
자신이 오기 전에 비비안에 시달린 것처럼 보이는 레오의 머리를 쓸어준 이안은 집 안으로 들어갔다.
“왔어?”
“왔죠.”
크리스마스 며칠 앞둔 집에는 손님이 많았다.
모인 얼굴들만 봐도 연말을 맞아 열리는 어느 파티장을 가도 중심이 될 법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모인 이유?
“요리사는 따로 둘 필요 없겠지?”
“불편하게 뭐하러 둬. 여기 요리사 있잖아.”
“콘도그라면 맛있게 튀겨줄 수 있지.”
“야, 안 되겠다. 잘못하면 한 달 동안 콘도그만 먹을 수도 있겠어.”
누가 콘도그 체인점 주인이 아니랄까 봐 자신 있는 딜런의 대답에 벤은 농담을 던졌다.
유쾌한 분위기였다. 한 달 남짓 다 같이 놀러 가는 것에 기대하는 기색이 역력했고.
“게빈 감독님, 랜든 감독님도 오신다고 했죠?”
“그럼. 걔 때문에 나도 작품 제작에 참여하게 됐는데 당연히 와야지.”
아웃사이더 작품 제작도 겸할 예정이기에 처음보다 인원이 추가될 예정이나 괜찮았다.
‘많이도 가네.’
이안, 벤, 데미안, 게빈, 아이작, 아멜리아 남매, 오드리 그리고 각자 가족까지 모이면 정말 대인원이었다.
인원이 많다고 나쁠 건 없다. 지낼 공간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사람이 늘어난다고 돈이 부담되는 것도 아니니.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하는 걸 듣고 있자니 어느새 다가온 벤이 옆을 툭 쳤다.
“야, 나도 네 작품에 참여할까?”
“벤이면 남자주인공도 줄 수 있죠. 대신 쫄쫄이를 입고 연기를 해야 하는데 괜찮죠? 어차피 익숙하잖아요.”
“됐다. 안 해, 이 녀석아.”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는 손길에 이안은 그저 가볍게 웃었다.
벤을 만난 지 10년 가까이 됐다. 그때와 비교하면 외모부터 위상까지 많은 게 달라졌다. 그런데도 장난스러운 손길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세월에도 흔들리지 않은 관계처럼.
“그것보다 너도 의견 좀 내봐. 음식은 어떻게 할까?”
“따로 마트 갈 필요 없이 식재료나 필요한 물품은 넉넉히 채워놓죠.”
“굳이?”
“괜찮은 마트는 엄청 머니까요. 그냥 한 번에 주문하는 게 낫죠. 냉동실이나 그런 것도 크게 있어서 괜찮다고 했어요.”
중요한 문제였다. 본격적인 팬데믹이 시작되면 식재료를 사는 것도 힘들 테니까.
‘슬기로운 감금 생활을 위해선 뭐든지 넉넉한 게 좋지.’
지금이야 이해할 수 없는 의견이겠지만.
계획이 빠르게 정리되며 결과물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여행지로 가는 건 2월 초.’
이안은 말랑거리는 볼을 쓰다듬자 간지럽다는 듯이 웃는 비비안을 보며 미소 지었다.
빨리 그때가 왔으면 좋겠다는 마음 반, 이대로 안 왔으면 하는 마음이 반이었다.
흘러가는 시간을 보며 머릿속으로 해야 할 일을 정리했다.
***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한 폐렴은 점점 덩치를 불려나갔다.
WHO는 우한시의 폐렴을 경고했고, 최초 전파 장소인 우한시의 수산물 도매시장을 폐쇄하고 조사에 들어갔다.
‘폐쇄하고 소독을 해봤자. 이미 늦었지만.’
이미 바이러스는 중국을 떠나 싱가포르, 홍콩처럼 주변 지역에서도 감염자가 발견됐으니 말이다.
지구 반대편까지 하루도 안 걸리는 세상이다. 전파속도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우한 폐렴으로 중국 질병관리본부는 2단계 비상조치 선언.
-중국 당국은 우한 폐렴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것임을 확인.
현대에서 치명적인 코로나바이러스는 처음이 아니었다.
2000년대 초에 유행한 사스나 메르스도 일종의 코로나바이러스였으니 말이다. 그나마 치사율은 이 둘보다 확실히 낮았다. 대신 그 전염 속도는 엄청났다.
2달도 안 돼서 태국, 일본, 한국 등 인근 국가에서 전파가 확인됐고 중국 내에선 확인된 환자만 200명이 넘었으니 말이다.
문제는 본격적인 검사와 함께 훅훅 늘어나는 확진자 숫자와 인근 국가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할 것 없이 전 세계에서 의심 환자가 발견되는 상황이었다.
“…정말 빠르네.”
이안이라고 모든 미래를 아는 건 아니다. 정확히 어떻게 전파가 진행됐는지 상세히는 몰랐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순식간에 팬데믹에 휩쓸린 상태였으니까. 이후에는 굳이 뼈아픈 기억을 안겨준 그때를 들춰보려고 하지 않았고.
다만 진행되는 큰 틀은 알고 있다.
이안은 종이와 펜을 꺼냈다.
“할리우드와 브로드웨이는 곧 멈추겠지. 영화관도 문을 닫을 테고. 외출이 제한될 테니까.”
자연스럽게 넷플러스와 같은 OTT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대 OTT 시대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정도로.
지금 팬데믹이 가라앉고 회복되기까진 조금 시간이 걸릴 거다.
“반대로 나락으로 꽂힌 주식은 조만간 폭등할 테고.”
이안은 쓴웃음을 지었다.
사람들은 집 밖을 제대로 나오지도 못하고 갇혀 지내고, 알고 지내던 이웃은 죽어 냉동차에 실리는 끔찍한 상황인데 온갖 자산은 하늘 높은지 모르고 치솟는다.
정부에 돈을 펑펑 뿌린다는 이유로 말이다.
돈이 얼마나 비정한지 느낄 수 있다.
‘그래도 그냥 흘려보낼 순 없지.’
노숙자들끼리도 이때 돈을 벌었어야 한다며 한탄했을 시기다. 떼돈을 벌 생각은 없어도 손 놓고 있을 건 아니다.
기부하든, 좋은 작품에 투자하든 돈이란 유용한 도구다.
“대신 돈이 목적이 아니라 도구라는 건만 확실하게 기억하면 돼.”
가장 중요한 건 배우의 삶이다. 엄청난 자산을 얻는 것보다 배우로서 자신을 잃지 않는 게 더 중요했다.
자신의 행동은 이걸 기본으로 깔고 가야 하고.
투자 계획까지 정리한 이안은 팬 사이트를 힐끔 봤다.
아직은 평화로웠다. 여느 사람들처럼 심각성을 느끼진 못한다는 뜻이다.
‘그래도 그동안 뿌린 마스크가 있으니 도움은 되겠지.’
마스크를 뿌리는 건 분명 리스크가 있는 일이다. 마스크의 중요성이 대두될 때 ‘왜 마스크를 이렇게 뿌렸지?’라는 말이 분명 나올 테니까.
제법 귀찮은 시간과 말이 따라다닐 수 있겠지만.
“어쩌라고.”
스타란 따가운 시선이 따라붙는 직업이다.
거기에 불순한 시선이 추가로 붙는다고 해도 자신을 좋아하는 한 명의 팬에게라도 도움이 된다면 상관없었다.
괴물 같은 외모로 배우를 꿈꿀 때부터 타인의 시선은 중요한 게 아니기도 했고.
‘물론 멍청하게 쓸데없는 반감을 쌓을 이유는 없지.’
이안은 전화를 들었다.
***
Fianist들은 처음엔 이안이 마스크로 굿즈를 만드는 행동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쓸 일도 없는 마스크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팬들에겐 내용물이 중요한 건 아니었다.
-드디어 마스크 컬렉션을 다 모았다.
└너도냐? 이제 새로운 것 좀 내줬으면 좋겠는데.
└언제 새로운 게 오려나.
└듣기론 해외에서 이미 주문해서 찍고 있다더라.
굿즈로 확실히 자리매김했으니 말이다.
이제는 새로운 포장지를 한 마스크를 기다리는 팬들이 수두룩할 정도였는데.
-이안 프라이스, 굿즈로 생산한 마스크를 생산 공장이 있는 중국과 한국에 기부.
…뭐야, 우리 굿즈 돌려줘요.
팬들은 예쁘게 포장된 신상 굿즈 사진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신기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