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97)
배우로서(2)
출판사에서 자기들 작품(대본 예정)을 들고 헐레벌떡 뛰어온 건 놀랄 일은 아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안이다. 올해 관련 기사만 해도 한 무더기이며, 곧 공개될 예정인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포함될 확률이 100%라고 평가받는 중이다.
옛날부터 인연이 깊은 언더힐 가문의 브랜드가 아니면 광고 계약도 힘든 상태고.
그런 인물에게 출판사가, 그것도 아동문학 홍보를 부탁하는 건 망상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안 프라이스, 브로드웨이의 동료 배우를 위해 아동문학 오디오북을 녹음해 위튜브 채널에 공개할 예정.
오죽하면 첫 기사가 떴을 때, 본인들끼리도 ‘하하하, 찌라시도 말이 되는 걸 해야지. 괜히 설렜네.’라며 웃고 넘겼을까.
하지만.
-오디오북에 관해 입을 연 이안 프라이스의 에이전트, 힘든 시기를 보내는 동료들을 위해 이안이 계획한 프로젝트가 맞다.
‘응, 꿈 아니야.’라고 확정 내리는 기사가 이어서 나오자 기겁하며 벌떡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냥 콘텐츠만 만드는 것도 입이 벌어지는데, 영상이 올라가는 곳이 천만 구독자인 위튜브 채널이고 본인 SNS에 따로 홍보까지 할 생각이라고 덧붙였으니 말이다.
얼마나 큰 홍보 효과를 거둘지 모른다면 정신 검증을 받아야 할 수준이다.
당연히 이안도 예상 못 한 상황은 아니다. 그런데도 놀란 건.
“우리 예상보다 엄청 빠르게 움직였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기사가 ‘오, 좀 빠른데?’ 정도라면 출판사들의 움직임은 ‘뭐야, 왜 이렇게 빨라.’였다.
못 해도 콘텐츠가 한두 편 정도 올라간 다음에 접근할 줄 알았더니 말이다.
“그래서 무슨 제안을 했는데요?”
-아직 정확한 제안이 오간 건 아닙니다. 그럴 시간도 없었을 테고요.
“왜 이렇게 빨랐네 했네요.”
어쩐지. 업계 동향을 서로 모르겠는가. 다들 일단 뛰어가는 상황에서 느긋하게 계약 조건을 준비하고 달려들 정신이 없을 만도 했다.
‘조건을 어느 정도 잡아야 할지 가늠도 안 갈 테고.’
몸값이 비싼 할리우드 스타로 아동문학 홍보를 하는 걸 상상이나 해봤겠나.
만약 홍보팀이 그런 기획안을 내놨다면 고용과 해고가 자유로운 미국답게 다음날 실업수당을 챙겨 받는 처지가 될 수도 있다.
-원하는 계약 조건이 있으십니까?
이건 깊게 고민할 것도 없다. 출판사 접근을 예상 못 한 것도 아니고 어떻게 행동할지 계산을 해둔 상태니까.
“오스틴에겐 조금 아쉽겠지만, 이번 계약으로 돈을 챙길 생각은 없어요. 그럼 브로드웨이 배우들을 챙겨준다는 기존 의미가 퇴색될 테니까요.”
-그건 맞는 말입니다.
“물론 공짜로 해줄 생각도 없죠. 홍보비로 들어오는 돈 일부는 참여하는 배우들의 출연료를 높여줄 생각입니다.”
아동문학에서 등장인물이 수십 명씩 될 리도 없으니 영상 하나에 참여하는 배우는 서넛 정도 될 것이다.
참여하고 싶어하는 배우들도 많을 테니 아무리 여러 작품을 찍어도 두세 출연이 끝일 거다. 적은 기회의 아쉬움이라도 달랠 수 있도록 돈이라도 넉넉히 챙겨주면 좋지 않은가.
“그리고 남은 돈으로는 아동 관련된 단체에 기부할 생각입니다. 저도 추가로 기부할 생각이고요.”
-좋은 생각입니다. 그쪽도 좋게 홍보될 수 있는 일이니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겠군요.
주판을 튕겨본 오스틴은 웃었다.
이안과 함께 기부하며 관심받을 기회라면 출판사에서도 계산적으로 나올 이유가 없을 거다.
“이게 가장 중요한 조건인데 콘텐츠로 만들 건 출판사에서 홍보를 원하는 작품 중에서 우리가 고를 겁니다.”
-중요하지만, 당연한 조건이군요.
이안의 이름으로 많은 사람에게 홍보될 작품인데 작가와 작품에 문제가 없어야 하고.
‘오디오북에 적합한 작품인지도 중요하지.’
예를 들어 글자가 얼마 안 되는 그림책 같은 건 콘텐츠로 만들 수 없잖는가.
“그 조건으로 계약을 잡아주세요.”
-알겠습니다.
통화를 종료한 이안은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예정보다 출판사가 일찍 미끼를 물었지만 해야 할 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어차피 신간보단 구작을 제안하겠지. 위튜브에 무료로 올라가는 영상이니까.’
나쁠 것 없다. 이미 작품 평가가 많이 올라왔을 테니 골라내기도 쉬울 테니까.
애초에 출판사끼리 경쟁하는 판을 깔아놨으니 하나라도 더 선택받으려면 괜찮은 작품들로 추천할 테고.
작품 선정은 어렵지 않았다.
‘책을 각본으로 바꿔줄 각본가들도 고용해야겠네.’
팬데믹으로 촬영 현장이 박살 났으니 손가락 빨고 있는 각본가들을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계약 맺고, 작품 선정하고, 각본을 수정하고, 참가 배우에게 연습할 시간까지 준다면 콘텐츠 촬영까지 시간이 꽤 걸리겠지만.
“어차피 당장 할 건 정해져 있으니 상관없으려나.”
출판사를 바로 낄 생각도 없었고, 가장 관심을 많이 받을 첫 번째 콘텐츠로 정해놓은 것도 따로 있었다.
이안은 작업 진행을 빠르게 살폈다.
녹음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
주기적인 업로드 따위는 연이 없었던 이안의 위튜브 채널에는 일명 대부 시리즈라고 불리는 동요가 꾸준히 올라오고 있었다.
왜 자신이 아역 시절 육아 치트키로 불렸는지 확실하게 보여주며 많은 부모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중이었다.
당연히 이 관심은 후속 시리즈인 오디오북으로 이어졌다.
-요즘 이안의 동요로 우리 아이가 말을 배우고 있어요!
└빨리 오디오북이 나왔으면 좋겠네요.
└저희도 그것만 기다리고 있어요!
특히, 언어를 한창 배우는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발성이 좋아서 그런지 아이들이 이안의 노래는 곧잘 따라부르곤 했으니 말이다.
관심이 가라앉기도 전에 관련 기사가 뒤를 이었다.
-WBE 에이전시, 오디오북 관련해서 이안 프라이스와 다수의 출판사가 계약을 맺었다. 계약금은 아동 관련 단체로 기부할 예정.
-이안 프라이스, 출판사 계약금 외에도 개별적으로 추가로 기부하기로 밝혀. 출판사들도 좋은 뜻에 동참하기로.
-이안의 기부에 벤, 데미안, 아일라, 레이첼, 오드리, 재스퍼, 벨라 등 이안과 친분 있는 스타들도 연이어 동참 의사를 밝혀.
다른 배우들을 위해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도 모자라 아동 단체로 기부까지 이어졌으니 호의적인 반응이 쏟아졌다.
관심도 한층 더 커졌고.
-이안 프라이스, ‘화제의 오디오북 콘텐츠 공개는 최대한 빠르게 이뤄질 예정.’
이런 인터뷰를 할 정도로 필요한 준비는 빠르게 이뤄졌다.
-이안, 잘 지낸 것처럼 보이네.
“그럼요.”
화면에서 공연의 여주인공이었던 엘리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반가운 얼굴은 엘리뿐만이 아니었다.
“스티븐도 잘 지내셨어요?”
-지팡이 놓고 걸어다녀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잘 지냈지. 누가 기념품이라고 마스크를 잔뜩 챙겨준 덕분일지도 모르고.
“누군지 몰라도 참 대단하네요. 그렇죠?”
자신의 노인 역을 맡았던 스티븐과 이안은 능청스러운 대화를 나누며 웃음을 터트렸다.
이 둘 말고도 앙상블 역할을 맡았던 두 배우와도 인사를 나누고 네 사람이 있는 공간을 보며 물었다.
“녹음실은 어때요?”
-시설은 아주 마음에 들어.
-말해 뭐하겠어.
“다행이네요.”
원래는 핸드폰 영상 촬영 같은 거로 간단하게 진행하려고 했으나, 규모가 꽤 커지면서 녹음실을 그냥 빌렸다.
어차피 자신만 여기 있지 다른 배우들은 전부 뉴욕에서 생활 중이잖는가.
‘감독이 지시를 내리고, 음향 세팅 같은 걸 하기도 더 쉬우니까.’
거기에 계획상으론 거의 이틀에 한 작품 꼴로 녹음이 진행될 예정이다. 시간은 없고 대본은 수북이 쌓였으니 기쁜 마음으로 마음껏 촬영하는 게 예의니까.
이걸 생각하면 녹음실을 빌리는 게 훨씬 나았다.
한 가지 불안한 점이라면 방역 문제인데.
“아, 그리고 촬영 전에 코로나 검사도 받고 있고, 녹음 전후로 녹음실 소독도 이뤄지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 녹음실도 다 따로 분리해놓기도 했고요.”
이 정도면 할 수 있는 만큼 했다. 이렇게까지 하고 걸린다?
‘적어도 녹음실에서 걸린 건 아니겠지.’
녹음을 담당하는 감독이 장난스럽게 자신이 방역 감독이냐고 농담을 던질 정도로 신경 쓴 상태였다.
혹시 모를 걱정을 덜 수 있게 미리 알려둔 사실을 재차 말한 이안은 감독에게 발언권을 넘겼다.
-자, 그러면 녹음에 들어가겠습니다.
감독의 지시와 함께 배우들의 얼굴에선 웃음기가 사라졌다.
비록 본인들이 활약하던 무대 위는 아니어도 배우로서 선 자리다. 금방 프로의 자세가 된 배우들은 열정적으로 자신들의 맡은 역할을 소화했다.
‘상반신이라도 나오게 하길 잘했네.’
기껏해야 영상에 나오는 건 머리와 상반신 일부다.
얼굴을 알릴 수 있도록 배려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제 연기를 드러낼 장소기도 했다.
표정과 손동작.
활용할 수 있는 도구는 이 정도라고 해도 감정을 전달하기엔 충분했다.
넉넉히 챙겨준 출연료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들을 보던 감독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다들 잘하는 건 맞는데. 역시 돋보이는 사람은 이안이군.’
괜히 두 개의 배우상을 탄 게 아니라는 것처럼 다른 배우보다 모든 부분에서 뛰어났다. 목소리에 담아내는 표현력부터 좁은 공간을 능숙하게 활용하는 것까지.
하지만 중요한 건 자신이 뛰어나다는 걸 보여줄 뿐이지 다른 배우를 압도하진 않는다는 점이다.
‘정확히는 뛰어난 리더라고 봐야겠지.’
분위기를 휘어잡고 자연스럽게 배우들의 연기력을 끌어올렸다. 연습 때보다 뛰어난 실력을 보이는데도 편안해 보이는 배우들의 태도만 봐도 알 수 있다.
저걸 보고 누가 21살의 배우라고 생각하겠는가. 닳고 닳은 노련한 배우라고 생각하지.
‘진짜 방역 감독 역할로 왔는지도 모르겠는데.’
그만큼 감독으로서 크게 개입할 것도 없었다.
작품 내적인 것보다 외적인 스케줄, 녹음실 관리 같은 것에 공을 들이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
이렇게 판단하는 사이 휴식 시간이 됐고 감독은 웃음기를 담아 말했다.
-이틀에 하나 꼴로 작업한다고 하길래 힘들지 않나 싶었는데 괜한 걱정이었습니다.
“지금처럼만 하면 충분히 하고도 남을 것 같죠?”
-네, 훌륭한 배우들이 모인 덕분에 가능할 것 같습니다.
칭찬하며 부드러운 분위기가 흐를 때, 엘리가 대본을 툭툭 치면서 말했다.
-그보다 이안, 혹시 첫 작품으로 이걸 고른 건 역시 그것 때문이지?
다른 배우들도 알만하다는 표정을 보자 이안은 능글맞게 웃었다.
“어허, 너무 깊게 알면 다쳐요.”
-너무 얕은 수작인 거 아니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충분히 쉬었나 봐요? 빨리 계속 녹음하죠.”
-미안! 좀만 더 쉬자!
-엘리 양만 먼저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
-스티븐 씨! 이럴 거예요?! 함께 공연한 우정이 있는데.
엘리의 장난스러운 울음과 함께 웃음이 터져나왔다.
얼마 후 이렇게 첫 오디오북 촬영이 끝이 났다.
***
팬 사이트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이안의 첫 오디오북 예정이 떴다!
이안이 하는 일이라면 콘서트 좌석을 줄이는 것 빼고는 전부 응원할 수 있는 팬들은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기쁨을 표현했다.
-세상에 이런 귀한 걸 무료로 풀다니. 도대체 그렇게 해서 뭐가 남죠?
└미래의 팬들이 남습니다.
└어릴 때부터 이안의 팬이 된 아이들? 쉽지 않은 길을 가려는군.
└괜찮아 10년 뒤에는 월드 투어도 해주겠지.
└월드 투어를 한다고 티켓팅이 쉬워진다는 건 착각 아닐까?
└…OMG
-그것보다 엄청 빠르네? 기사로 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준비됐나 모르겠네.
└배우들을 위해 최대한 빨리 준비했다고 하더라.
└생활이 급한 배우들한테는 먼저 출연료를 지급했던데? 엄청 고마워하면서 글을 올렸더라.
└브로드웨이 배우 출신도 아니고 기껏해야 한 작품 활동한 건데 이렇게까지 챙겨주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우리 애가 착하긴 착해. 가끔 심통을 부려서 그렇지.
└맞지, 심통(끔찍한 티켓팅, 심장을 들었다 놨다 하는 발언.)
└으윽… 머리가.
-여기가 이안의 팬 사이트인가요? 우리 아이가 가입을 부탁했는데.
└여긴 안 돼요! 끔찍한 놈들이 있다고요!
└새로운 신도가 찾아왔나.
└혹시 털 있는 생물을 좋아하시나요?
└이 자식들아, 왜 또 수용소에서 튀어나왔어! 너희 게시판으로 돌아가라고!
└운영자! 빨리 가입 나이를 15세 아니, 성인으로 올려!
여느 때처럼 시끌벅적하게 떠들던 팬들은 시간이 되자마자 이안의 위튜브 채널로 몰려갔고, 방금 막 업로드된 따끈따끈한 영상을 눌렀다.
화면에 작게 다섯 배우의 얼굴이 나왔고 가운데 빈 공간에 첫 번째 작품의 이름이 떠올랐다.
‘미녀와 야수?’
유명한 동화니 첫 번째로 나쁘지 않다.
훌륭한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있자니 어느덧 야수가 등장할 장면이 됐고, 이안이 입을 열 때 여백으로 둔 가운데 공간이 바뀌었다.
“…어?”
복슬복슬한 털과 튀어나온 주둥이.
유럽 풍의 고풍스러운 옷을 입고 있는 야수의 모습은 어쩐지 익숙했다. 그럴 만도 하다.
“야! 이거 아웃사이더에 나오는 주인공 피어스잖아!”
“이안, 원래 나오는 야수는 어디 가고 얘를 데려왔어?!”
괜히 미녀와 야수를 첫 번째로 고른 게 아니었다.
사람들이 이걸 깨달았을 때 화면 속 이안은 뻔뻔하게 가운데 있는 캐릭터를 손으로 가리켰고, 자막이 떴다.
-네, 접니다.
…사기 치지 마!
아니, 맞긴 한데.
혼란스러운 팬들과 달리.
프로듀서로서 PPL을 넣은 이안은 화면 속에서 능청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두 개
이안의 오디오북은 시작한 의도도 좋고, 동요로 미리 수요층도 확보해놓은 상태였다.
관심도가 높았고 많은 사람이 첫 번째 콘텐츠로 나온 미녀와 야수를 봤고 이안의 간접 광고를 두 눈으로 봤다.
그 결과.
-아니, 아웃사이더 주인공이 왜 나오냐고. 물 마시다가 뿜었네.
└퍼리인가(0), 로맨스의 주인공인가(0), 이안 프라이스가 맡은 역할인가(0)
└100점. 100점 드리겠습니다.
└???:접니다. (거짓말은 아님)
└이안이 얌전히 있을 리가 없지.
└하지만 멋있죠? (실제로 한 말)
└멋있긴 한데. 조금 어질어질하다.
└삐빅, 정상입니다.
-진짜 이렇게 간접 광고를 할 줄은 몰랐다.
└프로듀서 겸 배우도 모자라서 이제 직접 홍보까지 하네.
└이안, 이 녀석은 얼마나 아웃사이더에 진심인 거지?
└넷플러스, 싱글벙글.
└과연 그럴까. 넷플러스와 퍼리가 연관 검색어인데?
└OMGGGG! 진짜 미쳤냐고.
-어라, 왜 미녀와 야수를 검색했더니 피어스 이미지가 나오냐.
└음, 그것이 진짜 야수니까.
└디즈너 오열. 뭐야, 우리 야수 돌려줘요.
└마지막에 인간이 되는 가짜 퍼리보단 피어스가 더 낫잖아.
└머리통을 봐! 저게 미녀와 야수냐? 빨간 두건이지.
└???: 네, 다음으로 빨간 두건을 드리겠습니다.
└이아아아안!
업로드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관련 글이 쏟아져나올 정도였다. 언론에서도 잽싸게 기사를 올리는 중이고.
이게 다시 노이즈 마케팅이 되어 빠르게 조회수를 높이고 있었다.
-영리한 이안 프라이스의 간접 광고, 아웃사이더와 위튜브 콘텐츠 홍보 효과를 동시에 거둬.
덕분에 이런 평가를 받았다. 과장된 것도 아니다. 그만한 관심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아웃사이더의 감독 중 한 명인 랜든이 유쾌하게 웃으며 물었다.
“원작이 있는 작품도 아닌데 제작 전부터 이렇게 관심을 받는 건 쉽지 않은데 대단하구나. 그래서 빨간 두건으로도 홍보할 생각이니?”
“아뇨. 욕심나더라도 뭐든지 적당히 해야죠.”
첫 번째인 지금이야 재밌다는 반응이 대다수지만, 두 번째 했을 때도 비슷한 반응이 돌아올까?
‘시큰둥한 반응이 돌아오면 다행이지.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커.’
호불호가 큰 퍼리라는 소재를 다루는 것인 만큼 프로듀서로서 더 신중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다.
“거기에 미녀와 야수는 같은 로맨스 장르에 남주인공이 인간이 아니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빨간 두건에선 소녀를 잡아먹는 악당이잖아요. 이미지도 안 맞죠.”
“맞는 말이야. 이번 홍보로 피어스를 친근한 느낌으로 만든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네, 자주 보면 거부감도 무뎌지는 법이니까요. 지금처럼 밈으로 자연스럽게 얼굴을 비추는 정도가 딱 좋아요.”
디즈너가 만든 미녀와 야수 작품에 남주인공이 피어스로 바뀐 사진이라든지, ‘네, 접니다.’라며 툭 튀어나오는 피어스의 모습은 빠르게 밈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밈으로 수명이 얼마나 갈지는 몰라도 바람직한 상태였다.
게빈과 랜든.
아웃사이더 제작의 핵심 인물인 둘은 이안의 판단에 동의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언제 이렇게 컸는지 모르겠군.’
‘혼자 프로듀서 역할을 맡아도 충분할 거 같은데.’
보통 21살이면 배우로 자리를 잡아도 대단하다고 평가받을 나이인데, 이안은 프로듀서로도 딱히 흠잡을 곳이 없었다.
성장한 것에 흐뭇함과 아쉬움을 동시에 느끼는 둘에게 이안은 말을 이었다.
“오디오북 콘텐츠를 생각해도 이 정도가 좋아요. 아무리 욕심이 나도 시작한 계기를 잊으면 안 되죠.”
어디까지나 이 콘텐츠를 기획한 건 브로드웨이의 배우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이번 간접 광고는 노이즈 마케팅 역할을 톡톡히 했기에 윈윈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이상은 배우들에게 향할 관심을 흩트려놓을 뿐이다.
‘그러니 앞으론 아웃사이더는 물론이고 다른 광고도 영상에 넣을 생각은 없어.’
광고비? 좋긴 하다. 하지만 어설프게 욕심을 부려 일을 망칠 바에는 깔끔하게 포기하는 게 훨씬 낫다.
이안이 시작한 이유를 알고 있는 게빈이 물었다.
“그래서 배우들에게 도움은 조금 되는 거 같니?”
“물론이죠.”
만약 오디오북 콘텐츠 퀄리티가 떨어졌다면 간접 광고도 지금처럼 유쾌한 반응이 나오지 않았을 거다.
그만큼 기저에는 오디오북에 대한 호평이 뒤따랐고, 이건 오디오북에 참여한 배우들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참여한 배우들이 누군지 궁금해하는 사람도 많았고, 콘텐츠 밑에 개인 SNS 주소를 적어놨더니 팔로워 숫자가 빠르게 는다고 연락이 왔거든요.”
출연료를 주고서라도 참여하고 싶어할 배우들이 잔뜩 나올만한 성과였다.
당연히 그럴 생각은 없지만.
‘오디오북 콘텐츠로 얻는 이익은 이미 충분히 많아.’
오디오북 콘텐츠로 일정이 바빠지니 정치권의 플러팅도 줄어들었고, 배우들도 돕고, 이미지도 챙겼다. 아웃사이더 홍보는 덤이고.
이 이상 바라는 건 욕심이다.
오디오북 콘텐츠는 지금처럼만 하면 됐다.
“그럼 이제 아웃사이더 촬영 관련해서 이야기부터 하죠.”
“일단 스태프는 나랑 함께하던 제작진들을 모았단다. 에일리언 헌터 때 본 익숙한 얼굴도 여럿 있을 거야.”
“오, 오랜만에 반갑겠네요.”
“CG나 특수분장은 내가 추천할 만한 업체가 있어.”
게빈이 제작하는 블록버스터급 영화에 참여한 스태프들이나, 크리쳐물의 거물인 랜든이 추천하는 CG와 특수분장 업체라면 믿을만하다.
뭐, 인맥은 이안도 있었다.
“저도 I’m okay 촬영을 하며 친해진 스턴트맨들이 있어요. 다들 실력자들이고 참여하고 싶다는 대답도 들었고요.”
실력은 믿을 만한 이들이다.
‘…날 안전 토템처럼 사용해서 그렇지.’
촬영을 위해서 무사 촬영을 기원하는 토템 역할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 괜찮다.
세 사람이 아웃사이더 촬영 준비를 서두르는 사이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
배달되는 물품 외에는 외부와 단절된 저택.
잔잔한 호수와 넓은 숲이 펼쳐진 한적한 장소에서 이안은 여유라는 게 없을 정도로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럴 만도 한 게.
-이안은 무슨 오디오북 콘텐츠를 이틀에 하나꼴로 올리고 있냐.
└진짜 어디에 납치돼서 녹음만 하는 건 아니지?
└납치는 아니고, 갇혀 있긴 하지.
└…설마 아직도 그 저택에서 지내는 중이야?
└저번에 보니까 별장을 그냥 샀다고 하더라. 그 지역에서 나오지도 않는다던데.
└강제로 감금 중이면 당근을 흔들어!
-진짜 괜찮나 모르겠네. 영상에서 표정은 밝아 보이던데.
└참여할 작품이랑 배우들이 많아서 어쩔 수 없대. 시간도 별로 없고.
└브로드웨이 배우가 한둘도 아니고 어쩔 수 없지.
└그리고 본인은 마음껏 연기할 수 있어서 좋다더라.
└…그래, 네가 행복하면 됐다.
미녀와 야수를 시작으로 짧은 텀으로 꾸준히 올라오는 오디오북 콘텐츠만 해도 바빴다.
녹음 시간 자체도 긴데 가끔 예정과 달리 녹음 시간이 늘어나는 경우도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대신 노력에 대한 보답은 확실하게 돌아왔다.
-어린 자녀를 둔 미국 부모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이안의 오디오북. 자녀의 언어 교육에 큰 도움을 주고 있어. 일부 학교 저학년 수업에서 사용될 정도.
-영어 공부를 한다면 이안의 오디오북을 들어라? 해외에서도 큰 관심을 받는 중!
-이안의 선택을 받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출판사들, ‘오디오북에 나온 작품들의 판매량이 눈에 띄게 늘어.’
언어를 배울 때 귀에 잘 들리는 게 중요한데 특별한 힘이 있는 이안의 목소리를 또렷하게 들렸다. 다른 배우들의 딕션도 좋았고.
진즉에 이 효과를 느낀 사람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받고 있었다.
‘그래도 계속할 콘텐츠는 아니지.’
아웃사이더 촬영에 들어가면 오디오북을 녹음할 시간도 없을뿐더러 그때는 브로드웨이 배우들도 재개장에 맞춰 연습에 들어갈 시기였다.
그리고 11월인 지금은 그 시간이 그렇게 멀지 않았다.
-올린 공고로 프로필은 들어오고 있고 조만간 첫 번째 오디션에 들어갈 거야. 아, 그리고 추천해준 조연들은 어때?
“역시 아델리아의 추천은 믿을만하다니까요.”
-얘는. 그렇게 칭찬해줘도 뭐 나온다?
캐스팅 디렉터인 아델리아는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확실히 배우 보는 눈이 좋아.’
그녀는 얼굴이 흉측하게 망가진 배우에게도, 참여한 작품 하나 없는 아시아계 꼬마에게도 연기력만 보고 기꺼이 손을 내민 여성이었다.
당시엔 남들이 이해하기 힘든 선택은 결과로 증명되었고.
이제는 혼자만 기억하는 회귀 전 짧은 인연을 기억 속에서 밀어낸 이안은 일정을 정리했다.
“1월쯤 할리우드로 돌아갈 거에요. 그때 배우들은 확정 짓도록 할게요.”
-알겠어. 그럼 그때쯤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예정 촬영 일은 3월 말부터 3개월가량이었다.
이미 스태프 일부는 고용이 끝났고, 오디션을 볼 배우들을 선정하고 촬영 장소를 알아보는 등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안, 게빈, 랜든. 이 셋도 비록 장소가 저택일 뿐이지 일이 바쁜 건 매한가지였다.
최종 결정권자들이니 말이다.
“랜든! 다른 수인을 만들라고 했더니 왜 공포물에 나올 캐릭터를 만들어놨어?!”
“위험한 느낌을 줘봤지.”
“당장 다시 만들어와. 폭발 장면을 배우로 찍고 싶지 않으면 말이야.”
‘널 인간 폭죽으로 만들어버리겠다.’라며 티격태격하고 있긴 하지만, 크게 걱정할 건 없었다.
‘에일리언 헌터 때도 저런 느낌이었으니까.’
이런 다툼이야 너무나 익숙하다는 뜻이다.
그때와 한가지 차이라면.
“이안, 그래서 이 캐릭터는 수정할 생각이지?”
“빌런 캐릭터잖아. 이 정도 느낌은 들어야 하지 않아?”
“남주인공과 동족이니까 외모는 최대한 멀쩡하게 만들죠. 이건 광견병 걸린 거 같잖아요. 대신 행동을 조금 사납게 하는 쪽으로 해요.”
“좋은 선택이야.”
둘의 중재자 역할을 맡고 있다는 점이다.
에일리언 헌터를 제작 때는 배우로서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말을 들었던 걸 생각하면 큰 차이라고 할 수 있었다.
능력 좋은 셋이 함께하니 프리프로덕션 과정도 빠르게 이뤄졌다.
물주인 넷플러스에서도 기대한다는 말만 남길 정도로 일정은 순탄하게 흘러갔다.
오디오북과 아웃사이더 제작이 순조롭게 이뤄지는 동안 큰일이 있긴 했다.
-2020 대통령 선거! 역대급 사전참여율 기록! 1920년 이후 보통 선거 이후 가장 높은 투표율이 나올 것으로 예측.
11월 초에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었으니 말이다.
이안도 선거 결과 예측으로 인해 어느 정도 엮여 있는 투표였다.
‘뭐, 틀려도 상관은 없긴 하지만.’
정치인도 아니고 배우가 대선 예측에 실패했다고 크게 문제 생기게 뭐가 있겠는가.
다만 방역 문제를 꺼낼 때 이전처럼 강한 믿음을 주기 힘든 게 조금 아쉬울 따름이겠지.
-투표 결과! 선거인단 304명 확보한 민주당의 승리! 잭 보우만 대통령 당선.
괜한 걱정이었다.
전 대통령이 된 그랜트는 4년 동안 정치적으로 큰 성과를 거뒀다고 보기도 힘들고, 방역 실패에 대한 타격이 컸다.
민주당 후보가 마음에 들기 때문보단 그랜트가 싫어서 투표를 한 사람이 많을 정도였다.
28년 만에 재선 실패한 대통령이 탄생하며 많은 사람이 발빠르게 움직였다.
대선 캠프에 돈을 지원한 사람들은 계산서를 찾아올 테고, 내놓은 공약에 따라 움직일 주식 시장도 희비가 엇갈렸다.
온갖 기사가 쏟아지는 와중에서도 이안은 빠지지 않았다.
-이번에도 대선 예측에 성공한 이안 프라이스. 놀랍다는 반응이 쏟아져.
└솔직히 이번 결과 예측은 쉽지 않았어?
└응, 아니야. 공화당 대선 캠프에 돈을 밀어 넣은 사람이 한둘이야?
└지금 그랜트에 후원금을 넣은 기업은 이안을 믿었어야 했다고 땅을 치고 후회 중일걸.
└진짜 미쳤다고! 팬데믹 전에 지금 상황을 전부 예측했잖아.
└투자회사에서 도는 소문인데 배우보다 투자자로 버는 돈이 더 많다더라.
└…OMG!
2회 연속 대선을 맞췄다는 건 흥미를 끌기 충분했으니까.
덤이랄까.
-잭 보우만, 이안 프라이스를 백악관에 진짜 초청할까? ‘얼마든지!’라고 답해.
그렇게 바라지 않은 백악관 초청 공약이 현실화될 위기에 놓였고, 이안은 인터뷰로 정중하게 거절했다.
-백악관 초청에 입을 연 이안 프라이스. ‘백악관에 초청되면 아웃사이더를 홍보하겠다.’
└이안어 해석: 귀찮게 백악관에 초청하면 털을 날리겠다.
└만점 드리겠습니다.
└진짜 이런데도 초청을 해? 독하다 독해.
└그랜트였으면 ‘오히려 좋아’를 외치고 초청했을 듯.
└역사상 최초로 퍼리 입성.
└lolol! 미쳤냐고.
-친구라고 불렀는데 초청하라고!
└퍼리가 부끄러워?!
└백악관에서 홍보되며 부끄럽지 않을까.
└진짜 이안이라면 하고도 남는다. 조심하라고.
이 정도면 완곡한 거절이지 않을까?
이안의 팬들도 정치권과 엮이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만큼 그저 유쾌하게 반응했고 이안도 뉴스에서 관심을 끄려고 할 때쯤.
-이안! 당장 기사를 확인해봐!
“기사요?”
닉에 갑작스러운 연락에 이안은 자신의 이름을 검색했고 왜 전화한 지 깨달았다.
-그래미 어워드 후보 발표. 팝 솔로 퍼포먼스 부문 후보, 이안 프라이스의 Say Goodbye.
미국에서 가장 유서 깊은 대중음악 시상식에서 Say Goodbye가 후보로 올랐다.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후보 이안 프라이스 외 8인 Say Goodbye 편곡 버전.
그것도 두 개나.
폭발적인 반응이 쏟아져나왔다.
음모론
이안의 팬 구성은 다양하다.
팬 사이트에 따로 공간을 만들어 격리한 퍼리 팬덤과 사이비 종교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동요와 오디오북으로 유입된 부모와 어린아이들도 있다.
거기에 인종 구성과 국적도 다양하다.
-이안은 팬 수집병이 있는 게 확실하다. 안 그러면 이렇게 다양할 수 없음.
└해도 되니까. 제발 멀쩡한 애들만 모아!
└퍼리가 부끄러워?!
└교주님이 부끄러워?!
└너희 때문에 어디 가서 이안 팬이라고 하질 못하겠어.
└???: 이안 팬이라고? um… 혹시?
└아니야! 아니라고!
팬들 사이에서도 신기하게 여겨지는 부분이었다.
아무튼, 팬층이 다양해도 가장 큰 부류는 2가지였다. 바로 배우 팬과 가수 팬.
이안이 라이라는 게 밝혀지면서 한 지붕에서 생활하게 된 둘은 이젠 형제 사이처럼 싸우는 게 일상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게 둘 다 서로 형 노릇 하려고 하니 어쩔 수 없었다.
특히 최근에는 이런 싸움이 잦았는데 이건 Say Goodbye 영향이 컸다.
-빌보드 1위 4회면 솔직히 가수를 주력으로 해야 하지 않냐?
└이게 맞다. Say Goodbye 영상을 보면 한낱 짐승들도 인정한 부분이다.
└이안의 연기를 동물들이 못 봐서 그래.
└해외에도 Say Goodbye로 널리 알려져서 다들 가수로 알던데?
└가수 활동도 한다고? 이렇게 놀란 거겠지.
-솔직히 가수 활동이 돈은 더 되지 않냐? 앨범 팔고 콘서트를 열면 돈이 얼마인데.
└출연료라고 받아봤자 콘서트 수익에 비하면 아쉽지.
└이안은 아닌데? 제작사로 얻는 수익까지 생각하면 훨씬 많아.
└…그것보다 이안이 콘서트를 여는 게 먼저 아니냐?
└아니야! 월드 투어를 열어줄 거라고!
└응, 너희 틀니 낄 때쯤 해줄 거야.
└닥쳐!
이안이 칸 영화제에서 배우상을 받고 숨죽여 있던 가수 팬들은 이번이 기회라는 듯이 본업이 가수라는 걸 밀어붙였다.
그만큼 올해 가수로서 거둔 성과가 뛰어났다. 리메이크 앨범도 전부 다 잘 됐는데 화룡점정으로 Say Goodbye라는 글로벌 히트곡이 튀어나왔으니 말이다.
본업 싸움은 단순한 자존심 싸움이 아니다.
시간이 갈수록 팬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주니 주도권을 잡은 활동을 늘려줄 거란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게 비록 헛된 기대라고 할지라도 이들에겐 진지했다. 하지만 기세를 높이는 가수 팬이라도 한 가지 부분에선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안의 배우상: 에미상, 칸의 배우상 그 외에 자잘한 상 다수 수상. 가수상: …?
└가수는 무슨.
└이안이 조금만 활동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줬다면 받았을 거라고!
└응, 그래. 울지 말고 말해볼래?
바로 수상 부문이었다.
가수 팬으로서도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워낙 바쁜 나머지 다른 가수와 달리 활동 시간도 적었을뿐더러 심지어 빌보드 1위를 하고는 영업 중단 선언까지 한 적이 있다.
어떻게 쟁쟁한 가수들 사이에서 상을 받을 수 있겠는가.
물론 비겁하게 객관적인 결과를 들이미는 배우팬들에겐 씨알도 안 먹혔지만.
이런 상황이니 각종 시상식 후보 발표에 촉각을 곤두세웠는데.
-이안 프라이스, 그래미 어워드 후보로 2가지 부문 노미네이트! Say Goodbye 원곡과 편곡 버전으로 각각 팝 솔로와 그룹 부문.
다른 곳도 아니고 대중음악 시상식에서 가장 입지가 높은 그래미의 후보로 선정됐다.
올해의 노래상, 올해의 앨범상 등 여섯 개의 부문이 속한 본상이 아니고 장르 필드에서 후보에 들었어도 그 가치가 줄어드는 건 아니었다.
특히 가수 팬들로서는 오랜 수모 끝낼 좋은 기회였다. 축제 분위기인 가수 팬과 달리 배우 팬은 미묘한 감상을 느꼈다.
-후보가 2개인데 하나 정도는 타지 않겠어? 올해 이안이 거둔 성과도 있는데 말이야.
└그래미까지 수상하면 본업이 가수로 봐도 될 정도지.
어딜 고작 상 하나로 본업을 넘볼 생각인지 화가 났지만.
-배우 팬인데 솔직히 이번에 그래미를 수상했으면 좋겠다.
└가수 팬놈들이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EGOT을 생각하면 좋은 기회지. 언제 지금 같은 기회가 올지도 모르고.
에미상, 그래미, 오스카, 토니상.
대표적인 미국 대중문화계 상 4개를 전부 수상한 사람을 부르는 게 EGOT이다. 이중 고작 에미상만 받은 이안이니 설레발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솔직히 그래미만 받아놓으면 EGOT은 충분히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7 Confessions of Love로 토니상을 받을 가능성이 있으니까. 이번에 실패해도 브로드웨이에서 실력을 보여주기도 했고.
└하긴 아직 21살이잖아. 배우로 활동할 기간이 많으니 토니든 오스카든 충분히 나중에 수상할 가능성이 있긴 하지.
영화는 말할 것도 없고 뮤지컬로 이미 공연도 잘 소화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꾸준히 배우 활동을 하다 보면 오스카와 토니상을 받을 기회가 있을 거란 게 일반적인 의견이었다.
실제로 이번 그래미 후보에 오른 이안을 두고 EGOT에 관해 언급하는 기사도 더러 있을 정도였다.
모든 기사를 살핀 이안은 어깨를 으쓱였다.
“진짜 설레발이네요.”
지금까지 EGOT을 달성한 사람은 고작 16명이다. 이것만 봐도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다.
어지간한 사람은 1개도 수상하기 힘든 경력이기도 하고.
아이작은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흐음. 지금이야 그래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잖니. 혹시 조만간 은퇴할 생각이라도 있다면 모르겠지만.”
“당연히 은퇴할 생각은 없죠.”
아직도 배우로서 갈증은 전부 해소하지 못했다. 지금도 새로운 대본을 보면 설렘을 느끼는데 은퇴는 말이 안 됐다.
이안의 단호한 말에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도전해볼 만하지 않니. 네가 배우로서 지낼 시간은 기니까 말이야.”
“기회가 되면 받겠죠?”
조급함이나 설렘보단 평온하게 대답하는 이안을 보며 아이작은 작게 웃었다.
설레발에 흔들릴 법도 한데 전혀 그런 모습이 없었다. 물론 이렇게 반응할 걸 알았기에 이런 말도 편하게 할 수 있던 거였지만.
이안으로선 이런 반응이 당연했다.
남들은 배우로 살아남지도 못한다고 단정 지었으나 결국에는 꾸준한 노력 끝에 오스카를 움켜쥔 경험이 있었다.
상을 받겠다는 생각으로 연기한 것도 아니었고.
‘어차피 내가 하고 싶은 연기를 하며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 쥘 기회가 생기겠지.’
복잡하게 생각할 것은 전혀 없었다.
‘그나저나 이번 그래미는 논란이 있던 시상식 아니었나.’
후보 선정 문제로 그래미가 두들겨 맞았던 거 같은데 이상하게 관련 소식이 없었다.
그걸 어떻게 기억하고 있냐고? 흑인 인종 차별이라며 다른 노숙자들이 워낙 시끄럽게 굴어서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이래저래 미래에 영향을 많이 끼쳤는데 고작 후보 선정이 조금 바뀌었다고 놀랄 것도 없긴 했다.
정말 중요한 건 새로운 일거리가 하나 추가됐다는 점이다.
-그래미 측에서 Say Goodbye로 무대를 꾸며주길 바라고 있어.
“그래요?”
닉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섭외가 조금 늦은 거 아니에요?”
-그러게 말이야.
시상식이 1월 31일로 예정되어 있고, 무대 섭외라면 조금 더 빨리 이뤄져야 했다.
“어떻게 생각해요?”
-에이전트로서는 하는 걸 추천하지. 주목도가 높은 시상식에서 무대를 서는 건 그 자체로 가치가 있잖아. 괜히 거절해서 뒷말 나와서 좋을 것도 없고.
“하긴 이상한 소문으로 변질될 수도 있긴 하죠. 가수를 무시한다는 그런 이야기로요.”
비록 자신이 배우로서 활동하는 걸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해도 그걸 다른 사람들이 느끼게 해서 좋을 건 없었다.
‘가수들에겐 그래미가 후보로 선정되는 것도 기쁠 정도로 꿈의 무대일 테니 말이야.’
기본적인 예의라는 뜻이다.
-그럼 무대는 한다고 전할게.
“알겠어요. 그럼 전 무대를 어떻게 꾸밀지가 문제네요.”
Say Goodbye로 무대를 서 본 적이 하나도 없었다. 지난 콘서트에서도 리스트에서 빠진 곡이니 말이다.
‘안무 같은 것도 하나도 없고.’
거창한 퍼포먼스 같은 걸 기대하진 않겠지만 적어도 시상식에 걸맞은 무대를 꾸밀 필요는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이안은 결론을 내렸다.
“아일라 씨와 레이첼에게 한 번 물어볼게요. 괜찮은 무대 연출가와 안무가를 소개받든지 해야죠.”
-좋아. 나도 추천할만한 사람이 있는지 한 번 알아볼게.
통화를 종료한 이안은 바로 레이첼에게 전화를 걸었다.
-와! 그래미에서 무대에 선다고?! 축하해!
가수로서 탐이 날 수 있는 자리였음에도 그녀의 목소리에는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 마음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그만큼 진지하게 고민하고 답을 내놨다.
-소개해줄 사람이야 많지. 그럼 일단 생각해 놓은 무대 콘셉트는 있어?
“아니, 딱히?”
-일단 Say Goodbye가 사람들에게 어떤 이미지인지 생각해야지. 딱 떠오르는 게 있잖아.
Say Goodbye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라.
이안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드루이드?”
-응! 바로 그거 말이야.
…이거 맞구나.
노래를 부르니 몰려드는 동물로 관심을 끌었던 게 Say Goodbye다. 인기를 얻은 계기가 그랬으니 무대 컨셉은 사실상 정해져 있던 거나 마찬가지였다.
-비슷한 느낌으로 꾸며 봐야지. 음, 실제 동물을 데리고 무대를 꾸미는 것도 되려나.
“…글쎄다.”
-데미안 씨가 키우는 공작새들과 함께 무대를 꾸며도 재밌을 거 같은데.
…왜 하필 걔들이야.
노래를 부를 때 부채춤처럼 꼬리 깃털을 활짝 펼치는 공작새들?
상상만 해도 어지러웠다.
‘공작새 중 한 마리는 영화까지 찍었으니 무대에 오를 수도 있겠지. 관심도 많이 받을 테고.’
근데 굳이 그렇게까지 관심을 받을 필요가 있을까.
-아무튼, 자세한 건 연출가를 구하고 이야기하자. 언제쯤 돌아올 거야?
“이제 슬슬 갈 생각이야.”
이안은 고개를 돌려 지금까지 머물렀던 저택을 바라봤다.
이젠 너무나 익숙한 공간 한쪽에는 잘 정리된 짐들이 보였다. 왔을 때보다 배로 늘어난 짐만 봐도 얼마나 이곳에 머물렀는지 알 수 있었다.
떠나는 게 딱히 아쉽진 않았다.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저택을 그냥 구매한 탓에 언제든 다시 와도 상관없었으니까.
-거기 관리는 어떻게 하려고?
“관리인을 둬야지.”
-그렇구나. 돌아오면 바로 무대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해둘게.
“고마워.”
통화를 종료한 이안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차갑고 상쾌한 공기가 폐를 가득 채웠다.
“자, 이제 가볼까.”
이제 슬슬 제대로 움직일 시간이었다.
***
12월 연말.
원래라면 연말 연휴를 기다리며 미국 전역이 들뜬 분위기였을 테지만, 애석하게도 올해는 그렇지 못했다.
팬데믹이 안겨준 충격은 그만큼 컸고, 애석하게도 이건 아직도 진행 중이었다.
확진자 숫자는 겨울을 맞이해 더욱 늘어나고 있었고, 작년과 비교해 거리는 한산한 편이었다.
이건 뉴욕도 마찬가지였다.
“진짜 더럽게 힘들군.”
브로드웨이 관계자는 한숨을 쉬었다.
2019~2020시즌을 준비할 때만 해도 기대에 부풀었다. 작년만 해도 역대 최고의 수익을 거뒀고, 올해도 시작부터 많은 관객을 모았으니까.
‘빌어먹을 바이러스만 아니었어도.’
문을 닫은 극장들을 볼 때마다 한숨이 나왔다. 긴 세월 이곳에서 일했지만, 이렇게 힘든 적은 처음이었다.
아무튼, 지금 같은 시기에 24명의 사람이 모인 이유는 미루고 미룬 일을 마지막으로 결정하기 위해서였다.
“정말 올해처럼 토니상 후보 작품이 적은 건 처음인 것 같은데요.”
“후보 선정 바로 전에 개막하려던 작품들이 코로나 때문에 손가락만 빨게 됐으니 어쩔 수 없죠.”
토니상 후보 선정을 위해 모인 위원회에선 쓴웃음이 흘렀다.
6월에 열려야 했을 시상식을 열었어야 할 토니상마저 무기한 연기된 상태지 않나. 심지어 후보 선정도 예정보다 더 미뤄졌다.
원래는 10월 쯤에 후보 발표를 하려고 했는데.
“그래서 프라이스는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후보 발표도 이 배우 때문에 미뤄진 거 아닙니까.”
이안은 7 Confessions of Love의 주연 배우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들은 주연 수상 후보에서 뺄 걸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리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고 해도 본 공연은 3개월 남짓에 불과했고.
“다른 배우들의 반발도 생각해야 했으니 어쩔 수 없잖습니까.”
이것도 문제였다.
할리우드 배우가 쓱 와서 뮤지컬 부문 주연상을 얻고 사라진다면 박탈감을 느낄 배우들이 많을 테니까.
이건 이안의 연기력을 인정하는 것과 다른 일이다.
여기서 위원회 사람 간에 의견이 갈려서 선정 문제를 미루고 있었는데…
“솔직히 말하죠. 저는 이안 프라이스가 정치에 입문하면 투표할 겁니다.”
“타고난 정치인이죠. 설마 브로드웨이의 배우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모을 줄이야…”
동료 배우들을 위해서라고?
갑자기 오디오북이라는 콘텐츠를 만들어 브로드웨이 배우들을 도왔다. 그것도 후보 선정이 나와야 할 시기에 말이다.
‘이게 우연일 리 없지.’
‘괜히 고작 21살 나이에 정상급 배우가 된 건 아니란 뜻인가.’
아무리 날고 기는 인간이 많은 곳이 연예계라고 해도 이건 너무 돌연변이가 아닌가.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이안이 밟아온 수많은 과정이 전부 수상하게 여겨졌다.
‘만약 후보에 안 넣으면 어떻게 나올까.’
언론과 정계 그리고 이번에 인맥을 쌓은 배우들을 이용해 비난 여론을 만들 수도 있다.
이 모든 판을 만든 게 이제 막 술을 먹을 수 있는 어린 나이의 배우라니 두려움이 밀려왔다.
“…후우, 다른 의견은 없는 거로 알겠습니다.”
이안은 이상한 오해와 함께 음모론의 주인공이 됐고.
-토니상 후보 공개! 이안 프라이스, 뮤지컬 부문 남우주연상 후보로 선정!
그래미에 이어 새로운 소식이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