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00)
진심(1)
반짝이는 금발처럼 화려한 복장을 한 여성의 입가가 부드럽게 호선을 그렸다.
반가움과 장난기를 머금은 입은 익숙한 호칭을 내뱉었다.
“허니, 얼굴 보기 너무 힘든 거 아니야? 우리 가족들도 네 얼굴을 잊을 거 같다고 하더라.”
“나중에 상황이 좋아지면 한 번 뵈러 갈게요.”
“그래, 약속이다.”
샬럿의 말에 이안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본가인 언더힐 가문과 연이 닿은 지도 꽤 긴 기간이 지났고, 그동안 받은 도움이 한둘이 아니었다.
‘샬럿에게 부탁한 일 중 개인이 하기 버거운 일도 많았으니까.’
분명 언더힐에서 힘을 써줬을 텐데 대가를 요구하기는커녕 따로 내색한 적도 없었다. 마치 부담 갖지 말고 필요하면 도움을 요청하라는 것처럼 말이다.
비록 샬럿 일로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고 해도 이건 쉽지 않은 배려였다.
‘…그런 가문에서 어쩌다가 샬럿 같은 사람이.’
정말 가정 교육이란 건 쉽지 않구나, 새삼스레 느끼…
“허니? 눈이 아주 불순한걸?”
“아파요!”
“어머, 이런 미녀가 해주는 두피 마사지인데 고맙다고 해야지.”
네일아트를 한 손가락으로 장난스레 이안의 머리를 꾹꾹 누르던 그녀는 익숙한 향기를 맡고는 머리를 톡톡 두들겼다.
“일부러 내가 선물한 향수를 쓰고 왔지?”
“누구 회사에서 나온 제품인지 몰라도 향기가 아주 좋더라고요.”
“진짜 영악하다니까.”
평소에는 향수 같은 건 신경도 안 쓰는 애가 자신이 선물한 향수를 쓰고 온 이유는 뻔했다. 뻔한 술수가 얄밉기도 하고, 나름 신경 써준다는 게 기쁘기도 해서 눈을 살짝 흘긴 그녀는 마주 앉았다.
서로 바쁜 사람이니 아쉽긴 해도 본론에 바로 들어가는 게 나았다.
“네가 부탁한 대로 드레이퍼 가문 아가씨랑은 만나봤어.”
“어땠어요?”
“흐응… 네가 말한 대로 나랑 비슷하더라.”
직접 파악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지 않고 샬럿에게 부탁한 이유였다.
같은 상류층 출신이며 비슷한 학창시절을 보낸 공통점이 있으니 말이다.
대화도 잘 통할 테고, 여러 사람을 상대해온 샬럿이라면 레아를 단시간 안에 파악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고.
“굳이 따지자면 파티에 미쳐 살기 전 나랑 비슷하지.”
그녀는 이 믿음에 부합했다.
“터지기 직전이라는 말이죠?”
“그래, 집에서 배우 생활도 마땅치 않게 여긴다고 하던데? 괜히 더러운 소문과 엮여서 혼삿길 막힐까 봐 걱정하나 봐.”
진짜 역사와 전통이 있는 미국 상류층 가문들은 보수적인 걸 생각하면 마냥 호들갑으로 여길 수 없다.
이안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오디션에서 퍼리 팬덤이라고 밝힌 것도 내심 소문이 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했겠네요.”
“나도 엿 먹으라는 심정으로 파티장을 돌아다녔으니까. 아마 비슷할걸. 자기가 퍼리 팬덤인 걸 밝히겠다고 말하기도 했고.”
뒤늦은 사춘기도 아니고.
“그럼 퍼리 팬덤이라는 것도 반항심을 표현하는 도구일지도 모르겠어요.”
“그건 내가 뭐라고 말해줄 수가 없겠네. 만난 시간이 짧아서 말이야.”
이안은 빠르게 머리를 굴려봤다.
촬영 일정을 생각했을 때 여주인공 캐스팅 일정을 미뤄서 좋을 건 없고 손익을 계산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캐스팅은 어떻게 하려고?”
“감독님들하고 이야기를 해봐야겠지만, 전 레아로 캐스팅을 하려고요.”
“그래?”
샬럿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여러모로 불안정한 배우고 잘못하면 드레이퍼 가문하고도 안 좋게 엮일 수 있다. 꽤 리스크 있는 선택이지만, 곧 표정을 풀었다.
“어라, 이유는 안 물어보세요?”
“네가 알아서 잘 하겠지. 언제 손해 볼 행동을 했니?”
이안이 남들이 외통수나 답 없다고 판단할 상황에서도 괜찮은 답을 찾아낸 게 한두 번이었던가. 가장 나은 해답을 찾을 거란 믿음이 있었다.
그러니 그녀가 해줄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나중에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연락해.”
손을 살랑거리며 하는 말에 이안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역시 우린 좋은 비즈니스 파트… 웁…”
“그 말은 하지 말고. 응?”
입술을 붙잡은 샬럿은 고개를 내저었다.
도움을 주는 건 괜찮은데 그놈의 비즈니스 파트너라는 말은 질색이었다.
***
회의를 거친 후 여주인공으로 최종 발탁된 건 레아 드레이퍼였다.
끝까지 후보로 경쟁하던 둘에게 이 소식이 바로 전해졌다.
-꺄아아악! 정말요?
“네, 에이전트에게 계약 관련된 서류를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아, 대본은 미리 보내드리도록 할게요. 촬영까지 시간 여유가 많지 않으니까요.”
-꼭! 꼭 잘 준비해서 갈게요!
캐스팅됐다는 소식에 하이톤의 목소리를 내며 레아는 좋아했고.
“탈락이야?”
“응, 미안해.”
너덜너덜한 대본을 집어 든 오드리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책장에 꽂아 넣었다.
짧은 행동으로 아쉬움을 애써 털어낸 그녀는 손을 내저었다.
“미안할 게 뭐 있어. 감독님들도 동의했다며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그래? 섭섭하지 않고?”
적은 노력을 기울인 것도 아니고, 캐스팅될 자신도 있었기에 사람이라면 그런 마음이 없을 수 없겠지만, 그녀는 오히려 밝은 미소로 화답했다.
“그런 마음을 품는다고 결과가 바뀌진 않잖아. 그럼 더 좋은 기회를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걸 해야지.”
다른 오디션을 찾아보겠다며 자신 있게 대답하는 그녀 모습은 성숙함이 느껴졌다. 어지간한 시련이 찾아와도 크게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둘에게 결과를 전하고 나서 이안은 기자들에게 레아의 캐스팅 사실을 알렸다.
-넷플러스 아웃사이더 여주인공으로 레아 드레이퍼 선정. 의외의 선택이라는 평이 쏟아져.
-프로듀서 겸 감독 게빈 데이비스, ‘레아 드레이퍼는 훌륭한 배우고, 이 작품에 가장 어울리는 주인공.’
레아가 제법 이름을 알린 배우긴 하지만, 화제의 작품인 아웃사이더의 여주인공으로 선정될 정도인지는 의문이 달렸다.
다른 후보 중에 할리우드에서 핫한 배우로 꼽히는 오드리가 있었다는 게 알려지고 나서 더욱.
덕분에 타블로이드지에서 ‘드레이퍼 가문의 압박을 받은 결정이다.’ 이런 헛소리를 늘어놓기까지 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안이? 걔가 압박 같은 게 통할 인간이냐.
└대선 때 걔가 한 행동을 본 사람이라면 아무도 안 믿지.
└협박을 반대로 했으면 모를까.
하필 상대가 이안인 터라 지지를 받지 못했다.
애초에 이런 기사는 신경 쓸 것도 없었다. 원래 이런 시답지 않은 소리를 늘어놓는 게 그쪽 인간들의 일이니 말이다.
‘오드리를 캐스팅했으면 또 인맥 캐스팅이니, 사실 연인 관계라는 등 이상한 소리를 했겠지.’
이안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신경 쓰기에는 일거리가 한둘이 아니었다.
3월 중순으로 연기된 그래미의 무대도 준비해야 하고, 촬영이 임박할수록 일거리가 늘어나는 아웃사이더의 일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미 무대만 해도 연기되어 시간이 늘어났다고 좋아할 수도 없었다.
시상식에 맞춰서 바짝 연습해서 퀄리티를 높여야 하는데 촬영 일자와 겹치며 그럴 여유가 없었다.
‘공연 때문에 아웃사이더에 소홀히 하는 것도 말이 안 되고.’
수많은 가수가 꿈꾸는 그래미 시상식의 공연을 가볍게 여기는 게 아니라 가진 책임감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이럴 때 할 수 있는 건 하나였다.
“어후, 정말 괜찮은 거 맞죠?”
“괜찮아요.”
이안은 대수롭지 않게 손을 휘저었지만, 안무가는 걱정되는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조금 피곤해 보이는 걸 빼면 멀쩡해 보여도 그가 들은 하루 일정을 생각하면 언제 픽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무리 24시간이 모자란다고 해도 정도가 있지. 안무 연습도 힘이 꽤 들텐데 촬영 준비 때문에 몸까지 만들고 있다고 했던가.’
빡빡하기로 악명 높은 월드 투어 일정도 이 정도는 아닐 거 같다.
목 끝까지 차오른 걱정을 삼킬 때 문이 열리며 연출가와 낯선 사람이 들어왔다. 양손에 케이지를 들고 말이다.
케이지를 조심히 내려놓은 두 사람은 이안에게 다가와 인사를 했다.
“프라이스 씨, 이쪽은 이번 요청을 받은 마술사 맨디 몽고메리씨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안 프라이스입니다.”
“하하하,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사실 정말 뵙고 싶었거든요.”
이안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단순히 팬심으로 하는 말은 아닌 거 같았으니 말이다.
맨디는 그가 잘 모른다는 걸 눈치채고는 말했다.
“요즘 초보 마술사 사이에서 비둘기 핸들링할 때 프라이스 씨의 노래를 사용하는 게 유행이거든요. 스트레스받은 거 같을 때도 틀어주고요.”
“그래요?”
진짜 처음 듣는 소식이었는데, 생각해보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Say Goodbye가 인기를 끈 지도 꽤 시간이 지났고 몇몇 대학에서 관련 연구를 한 결과도 몇 개 나왔다고 해서 확인한 적이 있었다.
‘이상할 정도로 내 목소리에 반응을 더 잘한다고 했던가. 더 편안하게 듣기도 하고.’
초능력처럼 여겨질 부분은 아니라서 그냥 넘겼는데, 아무래도 사람들은 나름 활용도를 찾아 써먹고 있나 보다.
“네, 저희만 아니고 요즘에는 경마에 출전하는 목장에서도 틀어준다고 들었습니다. 진정시킬 때 나름 효과가 좋다고 하더군요.”
“재밌는 소식이네요.”
“저도 어쩌다 친분이 생긴 마주분께 들은 소식입니다. 이러다 켄터키 더비에 초청 공연을 가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켄터키 더비는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경마 대회다. 오죽하면 미국인이 사랑하는 최고의 풋볼 경기인 슈퍼볼 다음으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할까.
‘거기서 말들을 위해 노래를 불러준다고?’
…무슨 이상한 소리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이안은 이야기를 돌렸다.
“비둘기부터 볼 수 있을까요?”
“아! 시간이 없다고 하셨죠. 제가 보살피는 아이들입니다. 오랫동안 함께 해서 어지간한 공연 환경에선 놀라지도 않을 테고요.”
드루이드라는 컨셉에 맞게 동물을 참여시키자는 아이디어를 고민한 끝에 내놓은 게 마술에 사용하는 비둘기였다.
화려한 조명과 시끄러운 음악 소리 그리고 많은 관중 앞에서도 제 역할을 소화하도록 훈련받은 아이들이니까.
“근데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비둘기가 해야 하는 행동은 간단한데 프라이스 씨를 잘 따라줄지 확신이 안 서거든요.”
“괜찮습니다. 가능성만 확인해보려는 거니까요. 안 될 거 같으면 다른 무대 연출로 바꿔야죠.”
동물의 도움을 받으면 좋겠지만, 안 된다면 무리하게 진행할 생각은 없다.
부담을 낮춰주는 말에 맨디는 케이지를 열었다.
“그렇게 말해주시니 다행이네요.”
-구우
손가락에 폴짝 올라서는 비둘기를 조심히 꺼내며 말을 이었다.
“제가 8년 가까이 키운 아이라 남들 손을 꺼려하…”
푸드드득-
맨디는 황당하다는 듯이 눈을 깜빡였다.
잽싸게 날아오른 새하얀 비둘기가 이안의 어깨에 내려앉아서 털을 고르고 있으니 말이다.
“하하하, 메리가 프라이스 씨가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다른 애들도 소개해주죠.”
민망함을 숨기며 맨디는 다른 케이지 문을 하나씩 열었고.
“애들이 사람을 잘 따르네요.”
-구우우…
팔에 주르륵 앉은 여덟 마리 비둘기를 쓰다듬는 이안을 보며 맨디는 할 말을 잃었다.
‘정말 자식처럼 키운 녀석들인데.’
…자식 놈들은 키워봐야 의미 없다는 것까지 느끼게 할 줄은 몰랐다.
***
맨디의 도움을 받으며 그래미 공연 준비도 급물살을 탔다.
“이렇게 된 거 비둘기 마술을 살짝 가미해서 무대를 꾸미는 게 어떻습니까?”
마술사도 무대에 오르는 직업인 만큼 흥미가 생겼는지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놓기도 했고.
아웃사이더 촬영 준비도 문제가 없었다.
-배우들 캐스팅은 전부 끝났습니다. 대본 리딩 일정을 잡도록 하겠습니다.
-장소 섭외도 끝났고, 장비와 소품 대여 계약도 문제없습니다.
이런 프로듀서뿐만 아니라 배우로서 준비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전문 트레이너의 도움으로 몸은 단시간에 꽤 달라졌다. 우락부락하기보단 날렵하게 자리 잡은 근육은 세공했다고 표현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꽤 경험이 쌓인 액션 준비도 스턴트맨들과 함께 착실하게 이뤄지고 있고.
정말 정신없이 바쁘다.
“오셨어요?”
“네!”
그런 와중에 레아를 부른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퍼리 팬덤이라는 걸 밝힌다고 들었습니다. 맞나요?”
“네.”
“가족들에겐 이야기를 해봤습니까?”
이 물음에 레아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아뇨. 못 했어요.”
하긴 말했다면 당장 촬영을 그만두라고 난리가 났을 거다.
‘드레이퍼 가문이 드레이퍼리 가문이라고 불릴 수도 있는 일이니까.’
가문에 자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피를 토할만한 이름이었다.
이안은 그녀를 낱낱이 해부하듯 바라봤다.
이런 상황을 만든 게 자신인 만큼 이안은 신중하게 나가야 했다. 샬럿만 해도 삐뚤어진 태도로 가족과 큰 균열을 만들지 않았던가.
옆에서 봤기에 그걸 봉합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도 잘 알았다.
‘일단 속내가 어떤지 파악부터 해야 해.’
퍼리가 반항심을 표출하는 도구인지, 아니면 진심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걸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싶은지 말이다.
쓸데없이 오지랖을 부리는 게 아니다. 이걸 파악해야 최대한 이익을 얻도록 행동 방향을 정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걸 파악할 좋은 수단이 하나 있었다.
“제 팬 사이트에 가입해서 활동하신다고 하셨죠?”
오디션장에서 그런 말을 꺼냈다.
“네, 네.”
그걸 왜 묻지? 묘하게 불안해 보이는 그녀가 안심할 수 있도록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줬다.
팬이라면 반할 수밖에 없는 그림과 같은 미소로 이안은 요구사항을 말했다.
“아이디 좀 알려주시죠.”
“…네?”
“퍼리인 걸 밝힌다면서 아이디 하나 못 말하는 건 아니겠죠?”
“자, 잠깐. 딱 10분, 아니 5분만!”
“당장요.”
어허, 어딜 글 삭제를 하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