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03)
아웃사이더(2)
집 세트장을 스태프들이 누비며 촬영 준비를 서두른다.
이안은 그 풍경을 바라봤다.
세상에는 불변하는 건 없다.
미국을 상징하는 푸른 자유의 여신상도 처음 세워질 때는 붉은색을 띤 것처럼 촬영장 풍경도 세월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카메라 모델부터 공중 촬영을 담당하고 있는 촬영용 드론도 있겠고, 녹색 크로마키를 대신해 사용되는 LED 월도 그렇지.’
비용 절감, 영상 퀄리티 상승, 촬영의 편의성 등.
다양한 이유로 촬영 현장은 진화하고 바뀌어 간다. 하나하나는 작은 변화처럼 보여도 그 변화가 모인 회귀 전 촬영 풍경은 지금과 확연히 달랐다.
검은 눈동자가 촬영 현장을 넓게 담았다.
화상 입은 끔찍한 얼굴로 아득바득 배우로 성공한 시절 감성으로 본다면 이곳 풍경은 할리우드 박물관에서나 볼법한 모습이다.
현역으로 사용하는 카메라도 골동품 취급을 받았고, 열심히 활약하는 몇몇 직종은 역할이 축소되다 못해 사라졌으니 말이다.
모든 건 한때의 풍경이다.
‘이것 또한 말이지.’
이안은 쓰고 있는 마스크를 괜히 손으로 건드렸다.
마스크 너머로 희미하게 맡아지는 소독약 냄새도 숨을 크게 쉴 때마다 살짝 부푸는 마스크가 불편한지 고쳐 쓰는 스태프의 모습도 지금 같은 팬데믹 시기에나 볼 수 있다.
그리 생각하니 어색하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지금의 촬영장도 흥미롭게 다가왔다.
끝이 존재한다는 걸 명확히 아는 사람의 마음가짐이다.
삑-
희미하게 체온을 재는 소리를 들으며 이안은 라인 프로듀서에게 물었다.
“열이 있는 사람은 있나요?”
“없습니다.”
“문제가 있는 사람이 있으면 괜히 일정에 맞추겠다고 들여보내지 마세요. 나중에 그게 더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요. 알겠죠?”
“알고 있습니다.”
귀에 피가 날 정도로 말한 탓인지 라인 프로듀서는 일이 있다면서 도망치듯 떠났다.
‘고사도 지냈으니 만약 감염으로 촬영이 일시 중단될 상황이라면 미리 알 수 있겠지만, 혹시 모르지.’
사고가 나는 걸 미리 알려주는 등 고사가 원활한 촬영을 돕는 건 알아도 어떤 조건에서 도움을 주는지 명확히 아는 건 아니다.
그나마 뭔가 알법한 무당들이 저승사자 만난 것처럼 도망쳐다니니 알 수가 있어야지. 전염병에 대한 건 도움을 못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조심하는 게 옳았다.
퍼리 팬덤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하는 라일라의 생활과 산불에서 남주인공인 피어스와 처음 만나는 장면까지 무사하게 촬영했다.
지금부터 찍는 장면은 산불에서 무사히 도망쳐 그녀의 집으로 도피한 상황이었다.
촬영 세팅이 되는 동안 두 주연은 대본을 사이에 두고 한자리에 모였다.
촬영 전 연기를 맞춰보는 걸 넘어 일종의 디렉팅이라고 할 수 있고,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아멜리아와 함께 각본을 다듬고 두 감독님과 촬영 계획을 짠 이안은 누구보다 정확한 연기 지도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퍼리 팬덤이라면 알고 있죠? 안티 퍼리가 얼마나 많은지요.”
“네, 잘 알죠.”
원래 일반인의 감성으로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건 혐오의 대상이 되기 쉽다. 성소수자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자체적으로 가진 문제도 있고.’
같은 수인 팬들끼리도 취향에 따라 싸우고, 과도한 친목질을 하며, 눈살이 찌푸려지는 행동을 하기도 하지.
팬층을 이루는 이들이 1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젊은 계층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몇 번 말해드렸다시피 우리는 상업적인 작품을 만드는 중입니다. 물론 작품의 깊이를 위해 차별이라는 키워드를 넣긴 했지만, 이걸 부각하는 예술 작품이 아닙니다.”
당장 몇몇 할리우드 영화만 봐도 이념과 흥행을 다 잡겠다고 설치다가 가랑이가 찢어지는 작품들이 있지 않은가.
뭐, 사상을 담은 영화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진 않았다. 영화사에 그런 영화는 수두룩하니까.
‘다만 그로 인한 책임도 각자 지는 거지.’
아무리 좋은 뜻을 품은 작품이라도 대중은 재미없으면 안 본다. 훌륭한 예술 영화라고 극찬을 받아도 대중의 외면을 받는 작품이 발에 채는 이유다.
그러니 지금처럼 상업 작품을 만들 때는 재미를 추구해야 한다.
‘근데 착각하는 사람이 많아. 예술 영화가 재미를 추구하는 상업 영화보다 더 만들기 어렵다는 착각 말이야.’
코미디언이나 광대를 우습게 보듯 재미라는 것 자체를 너무 가볍게 여긴다. 재미 하나를 추구하는 것도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재미를 따지기 전에 일단 가성비가 나와야 하겠죠? 돈을 아낌없이 쏟아부어 화려한 폭발과 액션이 난무하는 재밌는 영화를 만들었다고 치죠. 덕분에 흥행도 잘 됐지만, 본전치기도 못 하면 그건 실패한 영화죠.”
영화 산업이란 땅 파서 장사하는 게 아니니 말이다.
“어쩌면 나름 개그 코드라고 넣은 장면이 구식 유머일 수도 있고, 작품 속 가벼운 농담이 혐오 표현이라면서 시위에 시달릴 수도 있고요. 재미라는 게 이렇게 쉽지 않습니다. 그럼 우리 작품에서 재미는 뭘까요.”
“초반에는 두 주인공의 감정교류 그리고 중후반에는 액션이겠죠.”
“중후반은 확실히 어떤 사람이 봐도 재밌겠죠.”
넷플러스에서 ‘우리가 퍼리 작품에 이렇게 투자하는 게 맞을까?’라고 고민할 정도의 돈을 뜯어냈으니 중후반은 블록버스터급 영화와 비슷했다.
이를 위해 스턴트맨들과 액션 시퀀스를 열심히 준비하고 폭발광 게빈이 성수 대신 화약을 준비했고.
“하지만 초반에 재미를 느끼는 건 힘들 수 있죠. 꽁냥거리는 둘 중 하나가 외견이 짐승이니까요.”
아웃사이더를 미녀와 야수에 많이 비교했지만, 둘은 명백한 차이점이 있다. 야수가 결국엔 왕자가 된다는 걸 모두가 안다는 차이 말이다.
미녀와 알콩달콩한 짐승 머리를 봐도 머리 한쪽에선 ‘저 자식은 언젠가 버터가 줄줄 흐르는 왕자가 되겠지.’라는 생각을 한다는 뜻이다.
이걸 해소하기 위해 이안, 게빈, 랜든이라는 상업 작품 경력이 많은 사람이 머리를 모았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니 피어스는 말하는 개라고 생각하며 연기하면 됩니다.”
“개요?”
“개는 인간의 친구죠. 이 작품을 보는 많은 사람이 개를 키워봤거나 함께 놀아본 경험이 있을 테고요. 거부감이 적다는 뜻입니다. 대본 속 피어스의 행동도 개와 유사하기도 하죠.”
괜히 오드리가 레아에게 조언을 준다면서 동물 행동학도 같이 들고 온 게 아니다.
이안은 장난스럽게 손에 든 펜을 빙글빙글 돌렸다.
“솔직히 말하면 퍼리 보고 어떻게 저딴 걸 좋아하냐고 거품을 물어도 막상 사람들은 키우는 개를 가족 혹은 사람처럼 여기잖아요.”
우선 피어스를 보며 인간과 같은 생물보단 자신들이 키우는 반려견을 떠올리게 할 생각이다. 그럼 불쾌한 골짜기를 느끼지 않고 거부감 없이 수인 캐릭터를 받아들일 테니까.
대본에 나온 두 주인공의 행동은 이걸 위해 철저히 계산됐다.
“맞는 말이야.”
끼어드는 말에 고개를 돌리니 게빈이 장난스러운 미소와 함께 손에 들고 있는 걸 내밀었다.
“그러니 우리 이안. 이제 개가 될 시간이란다.”
…검은 쫄쫄이가 보였다.
CG 촬영하는 할리우드 배우라면 피할 수 없는 끔찍한 물건이었다.
***
잿더미가 묻은 차가 한적한 동네에 멈춰섰다.
주변을 살핀 라일라는 조심히 뒷좌석을 열었고 뒷좌석에 구겨 탄 검은 짐승이 고개를 들었다.
“쉬잇! 들키면 안 돼. 조용히 따라와.”
피어스는 사사삭 걷는 레아를 따라 지하 계단을 밟았다. 거대한 덩치를 웅크려야 할 정도로 폭이 좁았다.
철컥이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고 좁은 실내가 보였다.
수인 캐릭터 장식품과 디자인 전공인지 직접 재단하며 제작 중인 옷이 보였다.
그 사이로 걸음을 옮기며 피어스는 꼬리를 살랑였고.
우당탕탕-
“아아앗!”
와르르 쏟아지는 물건에 짧게 소리를 내자 그는 줍기 위해 몸을 숙였고 까딱이는 꼬리에 반대쪽 물건이 쏟아졌다.
“크응…”
제 잘못을 알기라도 하듯 귀와 꼬리는 축 늘어졌고 시선은 다른 쪽을 향했다. 마치 혼나는 강아지 같은 모습에 라일라는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괜찮아. 쌓아놓은 짐이 많아서 그래.”
“…난 돌아가도 된다만.”
“안 돼. 기침을 엄청 했잖아. 불 사이를 뛰어나왔다며. 기관지에 분명 안 좋다고. 마음 같아선 동물 병원이라도 데려가고 싶은데.”
“안 간다.”
킁! 하고 단호히 말하는 피어스의 말에 라일라는 어깨를 으쓱였다.
수인은 일반 병원인지, 동물 병원인지 모르겠지만, 데려가서 좋을 거 같진 않았다.
“일단 씻자. 어휴, 발자국 찍힌 것 좀 봐.”
밖에서 돌아다니다 돌아온 강아지처럼 바닥에 검은 발자국을 찍어놨다.
“불에 그을린 털도 좀 깎고.”
“털을 깎는다고?”
미쳤냐는 듯이 털을 바짝 세우자. 라일라는 호기롭게 말했다.
“걱정 마. 예전에 키우던 강아지도 내가 깎아줬다니까. 가위 챙겨 올 테니 부엉이는 내려놓고 저쪽 샤워실에 들어가 있어.”
등을 미는 손에 얼떨떨하게 안으로 들어가자 그녀는 털을 깎을 준비를 하며 돌아왔고.
“…꺄아악! 멈춰!”
변기 물을 마시려고 고개를 처박은 피어스를 다급히 말렸다.
어제 깨끗이 화장실 청소를 해놔서 다행이다. 아니, 이게 아니고!
“그 물은 마시는 거 아니야! 목마르면 말을 해야지. 마신 건 아니지? 응?”
진이 빠진다. 가볍게 한숨을 쉰 그녀는 피어스를 앉혀놓고 가위를 들었다.
‘크다.’
키와 덩치가 크다는 건 알았지만, 앉혀놔도 같은 느낌을 줄지는 몰랐다.
주변이 신기하다는 것처럼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그를 힐끔 본 라일라는 가위를 들어 신중하게 그을린 털을 깎았다.
사각-
잘린 털이 바닥에 차곡차곡 싸여갈 때 그는 팔을 쓰윽 움직였다. 신기한 물건이라도 찾았나 싶었을 때.
-촤아아아
“크어어엉!”
“우, 움직이면 안… 아악?!”
갑자기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에 깜짝 놀란 피어스가 움직였고 가위는 끔찍한 결과물을 만들었다.
수북한 털 사이에 생긴 땜빵.
그녀는 조심히 손가락을 놀렸고 살이 매만져진 그는 고개를 돌렸다. 깜빡이는 짐승 눈동자와 눈을 마주한 그녀는 시선을 슬그머니 피했다.
“쏘, 쏘리?”
“…인간. 나도 뜯어도 되나?”
진저라고 놀림당하는 빨간 머리를 한 움큼 뜯으려는 손길에 라일라는 황급히 손을 휘저었다.
이대로는 원형 탈모형에 처할 수 있다. 이건 안 됐다.
“나, 나한테 방법이 있어! 응?! 일단 씻고. 씻고 말해줄게!”
겨우 진정시킨 그녀는 샴푸를 한 움큼 짜서 피어스를 씻겼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거대한 몸체에 거품을 만드는 것도 일이었고.
본능적으로 몸을 터는 그 때문에 사방에 거품 범벅이 되는 일까지 있었다.
겨우 그를 씻기고 털이 축 젖어 볼품없어진 그의 털을 드라이기로 말려 보송보송하게 만들었다.
물론.
‘이건 안 되네.’
풍성한 털 한가운데 뻥 뚫린 땜빵을 가려주진 못했다.
불만 섞인 눈동자에 그녀는 자리에 앉아 재봉틀을 쥐었다. 드드득- 규칙적으로 울리는 재봉틀 소리가 한참 울렸고 늦은 밤 꾸벅이는 피어스를 톡톡 두들겼다.
“다 됐어. 일어나봐. 과제로 준비하던 걸 바꿔서 생각보다 빨리 만들었어.”
비적비적 일어난 그에게 라일라는 옷을 입혔다.
땜빵 가려줄 셔츠와 억지로 입혀진 바지를 뚱한 시선으로 보는 그와 눈을 마주하며 그녀는 활짝 미소를 지었다.
“너무 잘 어울린다.”
외롭고 삭막했던 그녀의 집에 온기가 돌 정도로 따뜻한 미소였다.
“컷! 수고했어요!”
촬영 종료를 알리는 외침과 함께 이안은 머리까지 덮은 쫄쫄이를 벗었다.
꾹 눌린 머리에 레아는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어울리는데 왜 그렇게 빨리 벗어요.”
“웃음이나 멈추고 말씀하시죠?”
같이 연기를 하는 상황에서 농담을 던질 정도로 편안해졌다는 건 좋은 일이다.
그렇고 말고.
“아, 오드리가 촬영본을 보고 다시 한번 오라고 하던데요. 조언을 줄 부분이 있다고요.”
“…정말요?”
“정말요.”
절대 교수와 맞먹는 대학원생을 보고 꼰대처럼 심통을 부리는 게 아니다.
‘그러니 연기하면서 느낀 조언도 추가로 보내줘야겠네.’
이것도 좋은 작품을 위한 노력이다.
차도교육지계를 실행한 이안은 뿌듯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건 교육자의 마음이다.
***
아웃사이더 촬영은 순조롭게 이뤄졌다.
감정 몰입이 쉽지 않은 CG 촬영에서 레아가 감정 몰입을 잘 해준 탓이다.
이 작품에 대한 애정과 두 교수의 극진한 교육이 버무려진 결과였다.
방역을 철저히 한 덕분인지 촬영진 중에서 팬데믹에 걸린 사람도 없었고.
모든 게 순조로게 흘러갈 때.
이안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오스틴, 무슨 일이에요?”
촬영 시기에는 잘 전화하지 않는 에이전트의 전화에 고개를 갸우뚱했고.
-이안, 조금 곤란한 일이 생겼습니다. 아무래도 세금 정산을 준비하면서 소득과 관련된 정보가 조금 샜나 봐요. 당장 기사를 보내드릴게요.
소득, 세금.
할리우드 스타도 피할 수 없는 일이었고 빠르게 기사를 캡쳐한 사진들이 보내졌다.
-할리우드 최고 소득자는 이안 프라이스? 작년 엄청난 투자 수익을 거둔 거로 추정.
-이안 프라이스의 본업은 배우도 아니고, 가수도 아니었다. 그는 투자의 신이다. 월 스트리트 관계자들이 감탄하다.
조심한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벌었나 보다.
‘월가의 교주라.’
…자본주의 신앙의 맛이 느껴졌다.
투자의 신
유명한 스타의 사생활은 사소한 것이라도 관심을 받기 쉽다.
오늘 마신 음료가 뭔지, 어떤 옷을 입었는지, 누굴 만났는지 같은 사소할 수 있는 정보를 위해 파파라치가 잔뜩 달라붙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중 불륜 스캔들과 더불어 스타의 수입은 나름 스테디셀러라고 할 수 있다.
“와, 저렇게 잘 나가는데 얼마나 벌까?”
누구나 할 법한 생각이니 말이다.
영화 한 편에 수백억을 받았네, 콘서트 하루로 100억이 넘는 돈을 수입을 얻었네. 뭐, 이런 기사는 흔히 볼 수 있잖는가.
작년 폭풍의 핵이었던 이안의 수입에 대해 기자들이 흥미를 갖고 조사를 시작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팬데믹으로 큰 타격을 입은 연예계 때문에 좋은 기삿거리를 찾기 위해 머리를 쥐어뜯던 기자들은 머리를 맞댔다.
“아웃사이더 출연료로 얼마나 받았으려나.”
“흠… 공개된 출연료는 1500만 달러야.”
“생각보다 꽤 되네. 아닌가? 1인 2역이기도 하고, 근래에는 할리우드 스튜디오 영화보다 넷플러스에서 출연료를 더 준다고 들었으니까.”
이 정도 출연료면 절대 적지 않다. 올해 출연료 순위를 매겼을 때 아쉽게 열 손가락을 벗어나는 정도니까.
적어도 20대 초반 배우가 받을만한 몸값은 아니지만.
‘이안이면 받을만하지. 아니, 오히려 적지.’
왜 경력 있는 배우가 더 많은 출연료를 받겠는가. 경력만큼 유명세도 쌓아놨기 때문이다.
근데 이안, 이 돌연변이 같은 인간은 남들이 정상에서 십수 년은 쌓아야 할 인지도를 일 년 사이에 쌓아놨다.
미쳤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성장세였다. 거기에.
“출연료도 있지만, 프로듀서가 본인이라는 게 중요하지. 공동이라고 해도 제작사가 본인 소유잖아?”
“맞아. 출연료만 볼 게 아니야.”
배우 출연료를 보면 ‘이렇게 퍼주고, 뭐가 남습니까?!’라며 제작사의 재정 상황을 걱정하지만, 땅 파서 장사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주고도 남겨 먹을 자신이 있으니 주는 거다.
물론 계산이 삐끗해서 엄청 큰 손해를 보곤 일이 더러 있지만, 아웃사이더는 넷플러스 투자 작품이다.
이미 거하게 받았다는 뜻이다.
‘얼마나 남겼을지는 제작이 끝나고 소비된 제작비를 따져봐야 정확히 알겠지.’
그래도 폭발광 게빈이 바라는 대로 폭발 장면에 돈을 펑펑 쏟지만 않으면 출연료보다 훨씬 많이 남겨 먹을 거다.
“아웃사이더만으로도 많이 벌었을 텐데 가수로는 얼마를 벌었지?”
“글쎄. 코로나 때문에 콘서트는 못 열었지만, 앨범 판매량하고 상품 판매량은 오히려 늘어났을걸.”
보통 가수 수입의 반수 이상을 차지하는 게 콘서트 수익이다. 특히 만 단위 대형 콘서트를 전 세계에서 여는 가수라면 진짜 입이 떡 벌어지게 번다.
콘서트장 대여료부터 이것저것 한 움큼씩 떼어줘도 남는 건 천문학적이고.
그런 최대 수입원이 방역을 이유로 막혔으니 가요계 사람들은 미치고 환장할 일이겠지만.
“이안은 오히려 수입이 늘었네. 얘는 원래 콘서트 잘 안 열잖아.”
온갖 인간들이 모이는 연예계에서도 기행으로 보이는 이안은 콘서트를 잘 열지 않았다.
표를 사줄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고, 부를 노래가 적은 것도 아니고, 돈을 싫어하는 것 같지도 않다. 근데 콘서트는 잘 안 열었다.
원래도 음원과 상품 수입이 많았다는 걸 생각하…
“아니야! 이안은 월드 투어를 해줄 거라고! 투어 일정을 따라다니는 취재 기획안까지 마련했단 말이야!”
“으아아악! 그걸 입 밖으로 말하면 어떡해! 빨리 잡아! 야, 서류 던지지 말라고!”
“진정해! 월드 투어 해줄 거야! 그래미 수상까지 했잖아. 해줄 거라니까?!”
여전히 덕업일치를 꿈꾸는 이안의 가수 팬을 붙잡으며 기자들 사이에 잠시 소란이 있었다.
아무튼, 워낙 이곳저곳에 벌려놓은 일이 많아서 나름 이런 작업에 익숙한 기자들도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수입 자체에 집중한 기자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제이 안으로 벌여놓은 사업을 생각하면 중간에 탈세가 있진 않을까?”
“오! 탈세범 이안 프라이스. 좋은 기삿거리인데.”
방역과 브로드웨이 배우들을 위한 오디오북 제작 등으로 이미지가 굉장히 좋게 박힌 이안이다.
새하얀 눈밭에 발자국을 찍듯 깨끗한 걸 더럽히고 싶어하는 기자들까지 눈에 불을 켜고 움직였는데.
“…진짜 흠잡을 데가 없는 거 같은데.”
“아니, 실수 하나 정도는 할법하잖아. 다른 사람처럼 탈세와 절세 사이에서 줄타기라도 하던가. 이 정도면 국세청이 옆에서 총구라도 겨누고 다니는 거 아니야?”
미국 국세청, IRS가 어떤 조직이던가.
법보다 총이 가까이 있는 어메이징 아메리카에서 나약한 자는 납세를 받을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이다.
납세 거부자를 위해 필요하면 장갑차까지 끌고 오는 인간들이고, 미국에선 오죽하면 마약상도 세금을 낸다고 할까.
‘뭘 어떻게 하길래. 그 악명 높은 IRS에서도 이안은 훌륭한 납세자라고 평가하냐고.’
배불리 세금을 먹여주지 않았다면 나오지 않을 평가였다.
이안이야 배우 생활에 조금이라도 악영향을 주느니 세금을 두둑하게 내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탓이지만, 보통 아득바득 절세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기행이나 마찬가지다.
딱히 엄청 자극적인 기사는 없다. 그렇게 판단을 하며 기자들이 정보를 정리할 때, 예상치 못한 정보가 잡혔다.
“이안이 투자로 큰돈을 벌었다고?”
세계 금융시장의 핵심인 월가에서 들려온 소식이었다.
***
-투자의 귀재, 이안 프라이스. 1년 동안 재산을 배 이상으로 불린 것으로 추정.
이안은 기사를 보고 크게 놀라진 않았다.
‘언젠가 알려지긴 했겠지.’
나름 숨긴다고 했어도 월가에서 돈이 움직이는 걸 보는 사람이 한둘인가. 돈 냄새라면 지독하게 잘 맞는 인간들이니 이번 일은 그저 시간문제였고.
팬데믹이라는 사태에서 지옥과 천당을 오가는 롤러코스터 같은 주가 차트에 잘 올라탔으니 눈치채기도 딱 좋았겠지.
‘솔직히 배가 뭐야. 더 두둑이 벌었지.’
자신은 절제하려고 했다. 다만, 절제도 얼마나 잘 나가는지 정확히 알아야 할 수 있는 일이다.
‘노숙자가 주식은 무슨 주식이야. 투자할 돈으로 먹고살 걱정을 해야지.’
회귀 전만 해도 연기 때문에 소액으로 몇 번 투자해보고 만 게 끝이었다.
그럼 지금까지 투자는 어떻게 했냐고? 사실 그건 그렇게 안 힘들었다. 온갖 인간들이 다 모이는 노숙자 중에는 왕년에 잘 나가던 사람들도 종종 있었다.
거액을 벌던 펀드 매니저라던가, 사업가라든가. 그런 인간들 말이다.
“그런 사람들은 보통 하는 이야기가 뻔해.”
내가 이걸로 엄청 큰돈을 벌어 잘 나갔다. 그때 이런 투자를 해야 했다. 내가 이때 이것 때문에 지금처럼 개털이 됐다.
넋두리인지, 내가 이런 사람이니 너희 같은 노숙자들과 똑같은 취급하지 말라는 허세인지 몰라도 이런 잡담은 지금 와선 전부 큰돈이 되는 정보였다.
‘문제는 얼마나 돈벌이가 되는지 정확히 모른다는 점이야.’
그때 들은 정보를 떠올려 나름대로 가공해서 투자했는데. 다른 일로 바빠서 신경을 못 쓰는 사이에 ‘뭐야, 왜 이렇게 크게 올라?!’ 같은 종목들이 끼어 있었다.
덕분에 두둑하다 못해 지갑이 찢어질 정도로 벌었고.
-이안 프라이스, 어린 시절부터 투자에 실패한 적이 없었다. 그동안 연예계 수입보다 투자 수입이 더 많았을 정도!
-이안의 아버지, 딜런 프라이스. “나는 따로 가르친 게 없다. 그저 아들이 책임지도록 맡겼을 뿐.” 자신은 잘 모른다고 일축.
-이안 프라이스, 10년 동안 내로라하는 펀드들의 평균 수익을 훨씬 웃돌았다? 그 긴 기간 동안 꾸준히 수익을 올렸다는 사실에 월가 경악!
어떻게 했는지 몰라도 꾸역꾸역 과거 행적까지 긁어냈다.
‘독하다 독해.’
아무리 숨기기 위해 아득바득 노력하진 않았다고 해도 이렇게 꿀단지를 찾은 것처럼 빠르게 과거까지 파낼 줄은 몰랐다.
자본주의인 미국답게 돈이 걸린 일이라 그런지 그 반응도 엄청나게 빨랐다.
-이안, 월가에서 엄청나게 관심을 보이는데? 너도 알 법한 사람들이 한 번쯤 만나자더라.
월가의 거물들이 서로 견해를 나눠보자고 초청하는 건 그나마 낫다.
-수수료는 크게 챙겨줄 테니까. 자신의 자본 좀 운용해볼 생각이 없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아.
“제가 무슨 펀드 매니저에요? 그걸 왜 해요.
-안 그래도 네 이름으로 펀드 하나 만들자는 제안도 있더라. 분명 엄청난 자금이 모일 거라고…
“절대 안 해요.”
이안 프라이스라는 대형 펀드를 만들어보자는 제안부터.
-월가에서 광고 모델 제안이 엄청 들어오는데 어떡할까?
“전부 컷해주세요.”
‘이안 프라이스, 투자의 신이죠.’ 이딴 광고 문구를 포함하는 제안도 수두룩하게 들어왔다.
그나마 에이전트 선에서 거르고 거른 게 이 정도다. 이게 수면 위라면 그 밑에는 심연이 있는 법이다.
-나 월가에서 일하는데 요즘 사무실에 이안 MD 상품을 올려놓는 사람들이 있더라. 오늘 투자도 성공적으로 이뤄지게 해달라고 말이야.
└진짜?
└응, 장 시작 전과 끝나고 나서 한 번씩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어.
이안이 봤다면 ‘저런 사이비에 들리셨군요. 게빈의 엑소시즘을 받아야겠어요’라고 평가했겠지만, 월가 사람들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
하루에 정신 나갈 것처럼 큰돈을 운용하는 곳이 월가다. 삐끗하면 상상도 못 할 돈이 휘리릭 날아가고.
‘보통 정신으로 할 일이 아니지.’
다들 정신 불안과 같은 정신병을 품고 산다고 봐야 했다.
업무 중에 성인물을 봐도 ‘저 새끼, 더럽게 힘들구나.’라며 넘어가는 곳인데 사이비 신앙 정도는 놀랄 것도 아니다.
오히려.
“역시! 이안이야. 기도하고 났더니 오늘 대박 났다고!”
혹시나 하고 했다가 소 뒷걸음질 치듯 성공하기라도 하면 징크스가 만들어지듯 진짜 믿게 되는 법이고.
‘…나도 한 번 해볼까.’
‘믿어야 본전인데… Pryce’s MD에서 살 수 있다고 했던가.’
주변 사람들도 전염병처럼 슬그머니 시도하게 된다. 그러다가 또 일부가 잘 맞아 떨어지면 이게 또 징크스가 되는 법이고.
이 정도 되면 실패해도 ‘아, 내가 오늘은 성의가 부족했나 보다.’, ‘기도하다가 딴생각을 하긴 했지.’라며 아득바득 붙잡게 된다.
이게 더 심신 안정에 도움이 되니 말이다.
그러니.
-월가에서 찾아왔습니다. 여기가 투자 신의 팬 사이트인가요. 오, 홈 화면이 칙칙하군요. 황금색으로 칠해줄 수 있나요?
└방금 업무 시간에 황금 이안상 사진을 만들어봤습니다.
└훌륭하군요! Pryce’s MD에 실물로 만들어달라고 제안해 볼까요?
└이아아아안! 누가 또 정신병자들을 데려오래!
└오, 새로운 형제님이군요. 교주님의 예지력을 느끼신 겁니까?
└황금 이안 상. 수인 버전으로 만드는 것도 괜찮을지도.
└수상하게 돈 많은 퍼리든, 그냥 돈 많은 놈이든. 나가! 다 나가라고!
-이안이 왜 월드 투어를 안 도는지 알았다. 투자로 버는 돈이 더 많아서 그런 거 아닐까?
└아닙니다. 월드 투어를 돌면서 투자 이익을 얻으면 되는 일이죠. 약간의 투자 손실을 감안하고 제가 한 번 계산을 해보겠습니다.
└아니, 뭔 또 이상한 놈들이 추가됐어?!
└그것보다 저거로 이안을 설득하면 되지 않을까?
└돈으로 설득이 되면 진즉에 했지. 얘가 돈은 열심히 버는데 집착은 안 한다니까?
└오오, 돈을 벌되 집착은 하지 말라. 그게 고수익의 기본 원동력일까요.
└…진짜 돌아버리겠네. 운영자! 당장 수용소 하나 더 만들라고!
수익률만 괜찮으면 업무 시간에 뭘 하든 간섭받지 않은 월가 사람들이 팬 사이트에 눌러앉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돌아가는 상황을 살피며 이안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 정도면 곱게 미쳤네.”
신앙 콜렉터로서 수상쩍은 별명들을 수두룩하게 달고 있는 경험으로 판단하자면 양호했다.
다만, 앞으로 월가가 있는 뉴욕에 갈 때는 나름 각오를 하고 가야 할 것 같았다.
‘…아, 토니상 시상식 때문에 뉴욕에 가긴 해야 하는데.’
그때는 조금 이 상황이 진정되길 바랄 수밖에.
이안은 촬영장에 발을 디뎠다.
솔직히 말하자면 투자 수익이 까발려지고, 기사에서 어떻게 떠들든 크게 신경 쓰이진 않았다. 하지만, 두렵게 느껴지는 것도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까.’
돈이란 괴물과 같다. 아무리 많은 돈을 갖고 있어도 조금이라도 많이 벌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게 사람이고, 돈이 엮여 사람이 바뀌는 일이 많았다.
그런 경우를 이안은 지독하게 많이 봤고. 하지만, 이런 불안과 달리.
“이안, 왔니? 랜든, 이 인간이 괴물 피규어를 또 촬영장에 가져왔단다. 뭐라고 한 소리 좀 해주렴.”
“카메라에 십자가를 달아놓은 너보단 나아! 렌즈는 성수로 왜 닦는 건데?”
“심령 현상이 찍히면 어떡하나.”
“어떡하긴. 홍보할 때 써야지. 아니다. 지금이라도 심령 현상을 찍어보기 위해 노력해볼까?”
“미쳤군. 미쳤어.”
평소처럼 티격태격하며 싸우는 두 감독의 모습에 이안은 웃음이 나왔다.
이 둘만이 아니었다. 다른 친하게 지내는 사람 중 누구 하나 투자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어색할 정도로 말하는 걸 피하면 몰라도.’
작은 부담도 주지 않기 위한 노력이었다.
정말 좋은 사람이 주변에 많다는 걸 느끼며 이안은 두 감독님 사이에 끼어들었다.
“에이, 제가 있으면 귀신 같은 거 안 찍혀요.”
“진짜?”
“성수보다 제가 더 효과가 좋거든요. 한국에서 있던 이야기를 풀어줄까요?”
“됐단다. 촬영이나 하자고!”
웃고 떠들며 셋은 촬영 준비를 서둘렀다.
투자의 신이라며 시끄럽게 떠드는 기사 때문에 약간 소란스러웠던 촬영장은 순식간에 분위기가 잡혔다.
***
카메라 앞.
이안은 칼과 총을 끼고 서늘하게 눈을 빛냈다. 비릿한 피냄새가 물씬 풍기는 냉소적인 미소가 섬뜩함을 더했다.
팬들이 그렇게 기다린 두 번째 악역 연기가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