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06)
Pryce’s Production(1)
이안은 초청받은 드레이퍼 가문의 집을 눈으로 훑었다.
동네마다 분위기 차이가 있는 것처럼 부촌끼리도 명백히 차이가 있다. 자신이 거주하는 곳이 베벌리힐스가 유명인의 호화 주택을 구경하러 사람이 모이는 관광지라면.
‘여긴 엄청 배타적인 분위기였지.’
거주자 외에는 허가 없이 들어올 수 없는 지역이다. 이런 동네는 돈이 있다고 해서 쉽게 들어올 수 있는 곳도 아니고.
비록 신분제는 없어도 우리는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르다는 분위기를 풀풀 풍기는 동네였다.
‘그래 봤자. 사람 사는 게 비슷비슷해서 골머리를 앓는 것도 마찬가지지.’
잘못 들었나 싶어 입을 뻐끔거리는 모습을 봐도 알 수 있다.
“…우리 레아가 퍼리 팬덤이라고?”
우리 딸이 그럴 리가 없다는 듯이 그녀의 부모님은 레아를 봤으나, 이미 빨간 머리카락처럼 불속성 효녀가 되기로 다짐한 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이번에 폭행 사건이 없었다면 바로 이렇게 충격받지도 않았을 거다. 사회생활로 바쁜 부모 세대에게는 퍼리라는 단어는 낯설기 짝이 없으니까.
기껏해야 길게 고민한 끝에 인형탈을 뒤집어쓴 사진을 떠올리며 ‘동물보호 단체니?’ 혹은 ‘나이 먹고 인형 놀이를 하는 사람이니?’ 이런 말을 했을 테니까.
‘하지만 이번 사건 때문에 퍼리에 대해 따로 알아봤겠지.’
그녀의 아버지인 로건은 상원 의원이었고, 보좌관 보고서를 통해 퍼리의 심연을 봤을 게 뻔하다.
안 그러면 저렇게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 설명이 안 됐다.
“레아, 농담이라면 지금이라도 취소하거라.”
“농담 아니에요. 그리고 이번 작품 찍고 제가 퍼리 팬덤이라는 것도 밝힐 거에요.”
이 말에 화를 낼 줄 알았던 로건은 오히려 냉정하게 시선을 가라앉혔다.
노회했다. 정치판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은 그는 딸의 생각을 파헤치듯 바라봤고, 그녀는 몸을 움츠렸다.
‘이 이상은 안 되겠네.’
그래도 이 정도면 레아가 할 만큼 했다. 이 집안사람이 어떤지 대충 감이 잡히기도 하고.
“드레이퍼 씨, 레아는 내보내고 이야기를 할까요?”
“손님을 모셔놓고 안 좋을 꼴을 보였군요. 좋습니다.”
레아의 걱정 어린 시선에 이안은 웃음으로 화답했고 그녀가 밖으로 나가자 다과상 앞에는 다섯이 남았다.
그녀의 할아버지, 부모님, 오빠 그리고 이안.
네 명의 드레이퍼를 앞두고 여유롭게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여유롭다 못해 기품이 느껴지는 모습은 살짝 얄밉기까지 했다.
‘응, 너희 조만간 드레이퍼리로 개명하게 될 거야.’라고 처음 말한 인간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굴고 있으니 말이다.
로건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언제부터 알았죠?”
“캐스팅할 때부터 알았습니다. 오디션장에서 저와 퍼리의 팬이라고 했거든요. 그때는 깜짝 놀랐지만, 지금은 좋은 동료 관계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초면에 I’m 퍼리를 외쳤다. 너희 같으면 이성으로 보이겠냐.’를 돌려 말하자 로건은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1등 신랑감으로 엮어보려던 계획은 파투를 냈다. 드레이퍼 가문도 이렇게 되니 질척거리진 않을 거다.
‘하지만 이대로 끝내면 레아가 곤란하겠지.’
더욱 강압적인 수단으로 그녀를 막으려고 할 테니까. 어쩌면 다른 신랑 후보를 머릿속으로 열심히 떠올리고 있을 수도 있다.
결혼하면 여성의 성이 바뀌니 적어도 드레이퍼리가 될 위험은 없을 테니까.
이안은 최대한 무해하고 편안하게 느껴질 미소를 지었다.
“갑작스러운 말에 놀라셨을지 모르지만, 이야기를 나눠보니 억압된 환경 때문에 튀어나온 반항심 같더군요. 일종의 늦은 사춘기랄까요.”
학부모님, 레아는 그저 잠시 일탈을 하고 있을 뿐이랍니다.
약간의 저음으로 신뢰감 있게 말을 했다. 조금 전 대놓고 퍼리 팬덤이라는 폭탄 발언을 한 인간이라곤 전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오히려 처음엔 충격을 주는 게 낫지.’
심리학 용어로 따지면 게인 로스 효과랄까(Gain-loss effect). 별거 아니다.
로맨스물 같은 거 보면 처음엔 싸가지 없던 상대가 나중에 자상하게 대할 때 큰 호감을 느끼는 장면 있지 않나? 이게 게인 효과다.
로스 효과는 반대로 처음엔 상냥했다가 나중에 냉정하게 굴어 더 큰 비호감을 느끼게 하는 걸 뜻하고. 쉽게 말하면 ‘첫인상은 좋았는데, 엄청 깬다.’ 같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제법 효과가 있었는지 아까보다 표정이 풀어졌다.
“그럼 크게 걱정 안 해도 되겠습니다.”
어허, 어딜 벌써 안심하려고.
“그래도 사람 일이란 건 모르는 일이죠. 자칫하면 크게 삐뚤어질 수도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언더힐 가문의 일도 있잖습니까.”
“아…”
할리우드의 악동, 언더힐 가의 문제아.
자식 교육이란 상류층 가문도 쉽지 않다는 걸 몸으로 증명해온 인물이 샬럿이다. 지금이야 과거를 세탁하고 잘 지내고 있지만, 그 전만 해도 상류층 가문의 훌륭한 반면교사였다.
“저번에 샬럿과 한 번 대화할 기회를 마련해봤는데 위태롭게 보인다고 하더군요. 옛날 자신처럼 보인다고요.”
“정말 그런 말을 했습니까?”
“네.”
샬럿은 그냥 파티광이었지, 레아는 잘못하면 퍼리 파티광이 될 수 있다. 아무리 상류층 가문이라고 해도 날뛰는 망아지가 된 자식은 관리하기 힘든 법인데.
“저보고 레아가 나중에 크게 후회할 수 있으니 신경 좀 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여기 놀랍게도 샬럿을 정상인으로 만든 경력직이 있다.
물론 샬럿이 옆에 있었다면 ‘얘가 나보다 더한 인간이야. 속지 마!’라고 외쳤겠으나, 애석하게도 여기엔 그녀가 없었다.
“방법이 있습니까?”
“일단 퍼리 팬덤이라는 걸 밝히는 건 최대한 막아보겠습니다. 만약 이번처럼 모임을 나가고 싶어하면 홍보 일정으로 속이면 될 테고요. 대신 그녀가 마음을 다잡을 때까진 너무 억압하지 말아 주세요.”
“억압이라.”
배우 활동을 막는 것부터 지금처럼 정략혼을 시도하는 일까지. 사실상 손을 떼라는 말이다.
속내를 캐내듯 차가운 시선이 꽂혔으나, 이안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급할 거 없잖아요. 그녀는 앞에서 잘 끌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더 좋은 배우가 될 겁니다. 드레이퍼 가문에도 큰 도움이 될 테고요.”
연예인과 정치인은 서로 비슷한 점이 많다. 그 때문에 서로 영향을 주는 경우도 많고.
그녀가 배우로 크게 성공한다면 분명 드레이퍼 가문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반대로 그만큼 가문 내에서 영향력도 커지겠지.’
여러 방면에서 성공하며 샬럿이 언더힐 가문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얌전히 대학원생을 내놓을래 아니면 드레이퍼리로 개명할래.
양자택일의 상황에서 로건은 이성적인 판단을 내렸다.
“도움을 준다면 고맙게 받아야지. 잘 부탁합니다.”
“걱정마시죠.”
훌륭하게 학부모 상담을 마친 이안은 밝은 미소를 지었다.
***
이안과 레아가 떠나고 상석에 앉은 노인은 식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로건, 어떻게 봤지?”
“아깝더군요. 솔직히 의회에서 만나는 품위 없는 일부 의원들보다 훨씬 나았습니다.”
“그래.”
주도권을 갖되 듣는 사람이 불쾌함을 느끼지 않게 하는 태도.
이것도 분명 훌륭했으나 단순히 그걸 말하는 게 아니다.
“줄 것은 주고, 받을 건 받았습니다. 제대로 거래를 하는 건 정치의 기본이죠.”
처음에는 레아와 이안을 부부로서 엮어주려고 했다. 한 가족이 되는 것만큼 확신한 인연은 없으니까.
‘그건 단호하게 거절했지. 하지만 끈은 일부러 남겨놨어.’
레아가 배우 생활을 이어나가는데 신경 써주기로 했다. 운이 좋아 연인이 되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이렇게 연을 맺어두는 건 나쁜 일이 아니다.
특히 이안은 자신의 인맥은 잘 챙기는 것으로 잘 알려지지 않나. 그 무리에 속하는 게 힘들어서 그렇지 들어가고 싶어하는 사람은 수두룩했다.
‘다만 우리에게 이득만 있는 건 아니야. 오히려 고삐는 저쪽에서 쥐었으니까.’
삐끗하면 레아가 제2의 샬럿이 될 수 있다. 상류층 가문에서 이것만큼 무서운 협박도 없다.
“냉정히 말해 프라이스는 레아가 삐뚤어져도 크게 상관없습니다. 제작 중인 드라마에 영향만 안 주면 그만이죠.”
“호의에 기대야 한다는 뜻이지.”
굳이 이렇게 나설 이유도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더 쉽지 않았다.
“따로 뒤에서 챙겨줘야겠군요. 적어도 연을 이어가는 게 훨씬 낫다고 느낄 정도로요.”
“언더힐 가문에서 그렇게 챙겨주는 이유가 역시 있었어.”
사교계에서 언더힐이 이안을 양자처럼 챙겨준다는 사실은 이미 유명했다. 처음에는 말괄량이를 바꿔준 고마움에 저렇게까지 하나 싶었는데.
‘오히려 훨씬 큰 이득으로 돌아왔지.’
지금 와서는 훌륭한 투자였다. 둘 사이는 더욱 끈끈해졌고.
이안이 정치인이 되려는 것도 아니니 자신들은 그렇게까지 이안을 챙겨줄 수단은 없으나, 도움을 줄 건 분명히 있었다.
“원하는 건 괜히 정치권에서 귀찮게 하지 않는 거겠지?”
“아직 연예계에 더 관심이 있는 듯하니 손이 닿는 대로 막아주면 될 듯합니다. 만약 나중에 정치에 뜻을 두면 그때 도와주면 될 테고요.”
일단 뭐라도 챙겨줘야 하는 상황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치사하게 자식을 엮어 왔으니 말이다.
“저 나이에도 저런 걸 보면 차라리 정치인이 더 맞는 거 같습니다.”
“하하핫, 나중에 정 뜻이 생기면 오겠지.”
“뭐, 그때가 되면 적어도 적으로는 만나고 싶지 않네요. 상대하기 힘들 거 같으니까요.”
어디로 튈지 모르는데 그 와중에 제 손익 계산까지 정확히 해놓는다.
정치권에 들어오면 폭탄도 이런 폭탄이 없을 거다.
로건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이안에게 안에 있던 일을 전부 들은 레아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알았어요. 제가 퍼리 팬덤이라고 알리는 건 보류할게요.”
“괜찮겠어요?”
“가족들 앞에서 말했더니 무섭기도 했지만, 속이 시원하기도 했거든요. 깜짝 놀란 표정 보셨어요?”
깜짝 놀라다 못해 저 빨간 머리털이 죄다 뜯겼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 여주인공이 탈모 논란에 빠지는 일은 곤란하지.’
CG로 머리카락을 채워 넣을 수 있는지 알아봐야 했을 거다.
“만약 진짜 밝힐 생각이라면 미리 말해줘요. 라이와 제이 안의 경험을 살려서 좋은 계획을 짜드릴게요.”
로건이 옆에 있었다면 뒷목을 잡고 쓰러질 소리를 서슴지 않고 말했다.
“아하하하, 그거 재밌겠네요.”
명랑한 웃음이 차 안에 울렸다. 응어리진 게 조금은 풀어진 듯한 목소리는 꽤 듣기 좋았다.
“그것보다 왜 이렇게까지 도와줬어요?”
“요즘도 가끔 정치권에서 귀찮게 해서요.”
정치인용 페로몬을 뿌린 것도 아닌데 지금도 심심하면 러브콜을 보낸다.
그냥 포기하면 좋겠는데 저러다가 흑화해서 ‘우리 사랑을 안 받아주다니 밟아버리겠어.’라고 나오면 진짜 귀찮아진다.
드레이퍼 가문이면 훌륭한 방패막이 될 수 있을 거다.
‘정치권 소식을 알려줄 빨대도 하나 필요했고.’
언더힐에서 자신과 연관된 소식은 전해준다고 해도 정계 가문보단 소식이 느릴 수밖에 없다.
혼자일 때면 굳이 이렇게까지 안 했을 텐데.
‘지킬 게 많아졌으니 관심을 두긴 해야지.’
배우 일만을 생각하고 미친 듯이 달릴 수 있던 회귀 전과 달리 그동안 쌓아온 것들은 족쇄처럼 달라붙었다.
손에 쥔 것이 많을수록 걱정도 늘어간다.
‘하지만 전혀 나쁜 기분은 아니야.’
그때와 달리 소중한 것들이 많다는 뜻이니까.
“정말 그것뿐이에요? 잘 풀려서 다행이지 잘못하면 안 좋은 악연을 쌓을 수도 있잖아요.”
“그냥 도울 수 있으니 도운 거예요. 저도 그런 도움을 받고 사니까요.”
회귀 초였다면 굳이 오지랖 넓게 행동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혼자 살아남는 것도 버겁다고 생각했으니까.
살면서 남을 도울 심적 여유를 제대로 가져본 적도 없었고.
‘지금은 다르지.’
이익을 위해 내밀었던 손길이 인연이라는 열매를 맺었고, 서로 계산이 필요 없는 사이가 됐다.
이게 얼마나 특별한 결과인지 아는 만큼 꼭 이런 보답으로 돌아올 거란 망상은 하지 않지만.
‘관계를 쌓다 보면 좋은 인연도 늘어나겠지.’
그거면 됐다.
자신이 바른길로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로써는.
“그것보다 오드리가 집으로 찾아오라고 하던데요.”
“…설마.”
“맞습니다. 목적지는 옛 우리 집, 현 오드리 집이랍니다.”
“내려줘요!”
“어허, 친구도 없잖아요. 쓸쓸하게 있는 것보단 누구라도 옆에 있는 게 낫죠.”
친구 같은 교수님이라. 아주 좋지 않은가.
‘응, 도망 못 가. 너희 부모님 공인까지 받았어.’
둘을 태운 차는 뻥 뚫린 길을 달렸다.
***
언제 폭행 사건 같은 흉흉한 일이 있었냐는 듯이 아웃사이더 촬영은 순조롭게 이어졌다.
촬영은 진행하는 사이 희소식이 전해졌다.
-레이먼 번즈, 마르코 디아즈 공동 감독 작품 ‘트레이스’ 넷플러스 런칭 후 주간 순위 1위.
-사이비와 사이비 종교의 다툼을 그린 영화 트레이스. 섬뜩함과 유머를 동시에 잡아 평론가 사이에서 호평이 쏟아져.
이안의 조언으로 사업의 방향성을 바꿔 OTT를 도전한 작품이 성공을 거뒀다.
제이 안으로 운영하던 영화 제작사와 이안이 세운 드라마 제작사가 합쳐서 만들어진 Pryce’s Production의 첫 번째 승전보였고.
이번 작품은 더 의미가 있었다.
‘미래에는 전혀 없던 작품으로 성공했으니까.’
두 감독이 공동 작품을 내놓는 미래는 원래 없었다.
-레이먼 감독 ‘트레이스는 제이 안 교주님을 생각하며 만들었다.’ ‘영화 OST인 데스메탈 풍 가스펠은 마르코 디아즈의 작품이다.’
…이 둘이 사이비가 되어 힘을 합치는 미래는 없는 게 옳았으니까.
그야말로 트레이스는 광기의 집합체였고 이안은 바쁘다는 핑계로 영화를 보지 않고 버티는 중이었다.
상황을 아는 올리버는 폭소를 터트리며 웃다가 본론에 들어갔다.
-그것보다 이제 프로덕션을 제대로 굴리는 건 어때?
“제대로요?”
-응, 이번 작품이 성공하면서 각본하고 제작 제안이 엄청나게 들어오고 있거든.
조만간 에이든, 아멜리아 남매의 집을 탈탈 털까 생각 중이었는데.
갑자기 대본이 하늘에서 우수수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