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07)
Pryce’s Production(2)
할리우드에서 이안이 설립한 Pryce’s Production은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었다.
설립된 기간이 길지 않고, 두 회사가 합병된 회사인데도 고용된 직원이라곤 개봉이 끝난 작품을 유통하고 회계를 담당해주는 몇몇 직원이 다라는 걸 생각하면 놀라운 관심이지만.
“중요한 건 결과지. 제작에 들어갈 스태프는 어차피 작품 들어갈 때 고용하면 그만이야.”
그런 면에서 PP는 차고 넘칠 정도로 증명해냈다.
배우가 제작사를 운영하는 건 종종 있는 일이다. 다만, 이럴 때는 자신이 참여하는 작품의 제작사를 맡는 경우가 보통이다.
유명 배우라면 출연 조건으로 자신이 설립한 제작사를 끼워 넣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나중이면 몰라도 보통 시작은 이렇게 시작하는데 PP는 행보 자체가 다르지.’
야생에서 컸달까.
정체를 제이 안으로 숨기고 프로듀서로 참여한 영화들은 진짜 맨땅에 헤딩하듯 제작했다.
첫 작품부터가 갓 졸업한 대학생 감독을 낚아와 각본도 다듬어주고, 촬영까지 도와주며 성공하지 않았나.
“이게 돌을 금덩이로 만드는 연금술이지. 뭐가 연금술이야.”
연예계에서 종종 깜짝 스타가 튀어나오곤 해도 대체로 대중에 잘 안 알려졌을 뿐이지 관계자들 사이에선 이미 실력을 인정받은 경우가 많다.
근데 당시 이안은 어디서 잘 알려지지도 않은 감독과 각본을 발굴해서 연타석으로 홈런과 안타를 만들어냈다.
상식 밖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제이 안으로 운영한 영화 제작사는 그렇다 치고, 직접 프로듀서 겸 배우로 참여한 드라마도 일반적인 절차는 아니지.”
Holy Love만 해도 위튜브로 선공개 영상을 만들어서 대중의 관심을 받은 다음에 방영할 방송국을 직접 선택하지 않았나.
적어도 일반적인 과정은 아니다.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는 정확히 몰라도 좋게 말하면 작품에 대한 자신감이고, 나쁘게 말하면 광기 어린 행동이다.
남들이 보통 가지 않는 변칙적인 길.
리스크는 크지만 리턴도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제작사로 보여줄 실력은 충분히 입증했다는 뜻이니까.
그리고 마지막 방아쇠를 당긴 게 두 감독이 제작한 트레이스였다.
이전 작품이 제작비 규모가 적은 독립 영화 수준이었다면 이번에는 넷플러스에서 넉넉한 제작비를 받아 규모 있는 상업 영화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증명했으니 말이다.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는 아웃사이더 성공도 영향을 줬을 테고.’
큰 제작비가 들어가는 작품도 잘 만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줬으니 이곳저곳에서 연락이 오는 것도 당연했다.
이유는 알았어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
“어느 정도 수준의 제안인데요.”
-어지간한 곳에서 제안이 다 들어왔다고 보면 돼. 다만, 종류는 다양하지. 협력 업체가 되는 걸 바라는 곳도 있고, 아예 자회사로 편입되길 바라는 곳도 있고.
“그 두 개는 크게 끌리진 않네요.”
-그럴 거 같았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굳이 지분을 넘겨 자회사로 들어갈 이유는 없다.
‘뭐, 협력 업체는 나쁘진 않지만.’
협력 업체의 최대 장점은 계약 기간에 안정적으로 작품 제작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본격적으로 제작사를 운영하기 위해선 지금처럼 프리랜서로 그때마다 스태프를 모으는 게 아니라 핵심 인력들은 직접 고용해야 했다.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선 계속 작품 제작에 들어가야 하고.’
협력 업체가 되면 안정적인 일거리를 맡을 수 있어 일반적으론 좋은 조건인데.
“제작 요청이 많다면 굳이 얽매일 필요는 없죠. 밑으로 들어가면 그만큼 간섭받는 것도 많으니까요.”
다른 사람이면 모를까 그렇게 간절히 바랄 기회는 아니다.
-하긴 넌 어디서 간섭받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
“뭐, 그런 성격이긴 하죠.”
전직 노숙자 성격이 어디로 가겠는가. 귀찮게 한다고 대선 후보까지 들이박을 정도면 말 다 했다.
올리버와 대화를 나누며 이안은 빠르게 계산을 돌렸다.
사업 확장이다.
리턴과 리스크를 잘 따져봐야 했다.
“일단 제작사를 본격적으로 운영하는 건 동의해요. 괜찮은 인력을 수급하기 좋은 시기잖아요.”
팬데믹 기간에 작품 제작은 지지부진해진 상태다. 관련 일자리가 줄어들었다는 뜻이고.
‘뭐, 실력자라면 놀고 있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안정적인 울타리를 찾으려는 움직임은 분명 있다. 남들이 힘들다고 골골거리는 상황에서 홀로 도약할 준비를 하는 PP는 분명 매력적인 선택지다.
올리버가 지금 시기에 사업 확장을 제안한 것도 이 때문이다.
-좋아. 본격적으로 운영하는 거로 알고 있을 게. 아, 촬영은 얼마나 남았어?
“막바지 촬영 중이에요.”
이안은 옆에서 꼬리를 살랑거리며 얼굴을 비비는 울프독의 머리를 쓸어줬다.
3월에 들어간 촬영은 2달이 넘었다. 분량으로 따지면 5화까지 촬영은 이미 끝났다.
태생적인 사냥꾼인 수인과 이들을 사냥해 나가는 악인 태너의 싸움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곤경에 빠지는 두 주인공.
촬영은 완성도 높게 진행 중이었다.
‘위험한 장면들도 무사히 흘러가는 중이고.’
인간을 초월하는 육체를 가진 수인과 첨단 장비를 사용하는 인간의 싸움은 화려한 볼거리만큼 고난도 와이어 액션을 비롯해 위험한 장면도 꽤 포함되어 있었다.
꼼꼼하게 안전 조치를 하고 고사 효과까지 곁들이니 가벼운 사고조차 안 났을 정도다.
적어도 일정이 미뤄질 이유는 없었다.
-다행이네. 받은 제안은 정리해서 바로 보내줄게.
“대본도요.”
-어휴, 그래. 대본도 보낼게.
그놈의 대본은.
구시렁거리며 통화를 끊는 올리버의 말을 들으며 이안은 유쾌하게 웃었다.
***
팔랑팔랑
수두룩한 제안을 빠르게 훑었다.
Pryce’s Production은 그동안 한 번도 제작한 작품이 실패하지 않았다. 그만큼 제안은 양질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유지될 명성도 아니지.’
그동안 성공도 솔직히 운이 좋았다. 나중에 제법 이름을 알리는 감독들을 발굴하고 각본을 최대한 다듬어줬다고 해도 그게 성공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작품 성공에는 그만큼 변수가 많고 운이 크게 작용하는 편이니 말이다.
“보통 안정적인 선택지는 이거겠지.”
이안은 속편 제작 제안서를 내려봤다.
‘아니, 영화가 무슨 사골이야! 적당히 우려먹어!’라고 욕을 해도 프랜차이즈 영화가 보통 영화보다 성공 확률이 높은 건 사실이다.
애초에 속편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는 전작이 크게 성공했다는 이야기니 팬덤이 따라오는 게 당연하다.
“그것보다 용케 우리한테 제작을 맡기려고 하네.”
속편은 대형 제작사들이 침을 흘리는 일이다. 제작비도 넉넉하고 손해 볼 가능성도 적으니까.
신기하다는 듯이 제안서를 본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곤 휙 제안서를 치워버렸다.
‘허허허, 당연히 우리 작품 제작에 들어갔지.’라며 자신만만한 사람들이 깜짝 놀라 정도로 가차 없는 행동이었으나, 이안으로선 당연했다.
‘이거 완전히 망하는 영화잖아.’
‘응, 속편이라고 항상 성공하는 건 아니야.’라는 걸 몸소 증명한 작품이랄까.
대본이라면 일단 맛부터 보는 누렁이 입맛의 이안이라도 ‘퉷’하고 뱉을 수준의 각본으로 악명이 높았다.
죄다 뜯어고칠 권리를 주지 않는 이상 삼키면 회사가 반쯤 사형 판결을 받을지도 모르는 흉물이다.
이후 제안을 넘기는 손길은 더 가차 없었다.
“확실하게 결정하기 힘든 제안이 많네.”
제작 준비 단계에 들어가는 작품인 만큼 제안이 온 작품들은 보통 간단한 줄거리 정도만 담겨 있었다.
아니, 그 정도면 다행이지. ‘감독이 누군데, 이 사람 알지? 같이 작업 한 번 안 해볼래?’ 같은 제안들도 있었다.
무슨 ‘오빠 믿지’도 아니고.
이안은 제작 제안보단 다음 작품에 투자하겠다는 투자 제안을 위주로 남겨놓고, 다른 곳에 집중했다.
바로 각본가들이 보내온 대본들이었다. 일종의 투고랄까.
“그러니 너희도 한 번 읽어봐.”
“…네?”
후드 남매는 눈을 깜빡였다.
오랜만에 이안이 찾아온다는 말에 올 게 왔다고 생각하며 바쁘게 움직인 둘이었다.
“우리 저번에 온 다음에 새로 쓴 작품이 얼마나 되지?”
“…습작까지 합치면 열 개 정도?”
“습작이면 거의 아이디어만 적어 놓은 것도 있잖아. 망했네.”
때가 되면 메뚜기 떼처럼 찾아와 그동안 쌓아놓은 작품을 뜯어가는 게 이안이다. 처음에야 놀랐지 이젠 그러려니 하는 일인데.
애석하게도 쌓아놓은 작품이 별로 없었고 대본에 굶주린 이안은 무서웠다.
“오빠가 연애해서 그런 거 아니야.”
“…미안하다.”
‘그래도 네가 말한 퍼리 소설을 쓰는 것보다 낫지 않겠니?’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으나 에이든은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참아냈다.
아무튼, 걱정하는 마음으로 이안을 맞이한 둘은 오히려 대본을 한 뭉치씩 받았다.
“제작사에 투고한 대본이라고?”
“네.”
“이걸 왜?”
의아해하는 둘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여기에 대본을 보낸 사람들의 롤모델이 둘이니까요.”
뜻밖의 말에 둘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기분 좋아지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예요. 아웃사이더까지 지금까지 저랑 두 작품을 만들었잖아요. 그 중 아웃사이더는 보통 제작되기 힘든 작품이고요.”
이를 갈고 쓴 대본이 아무런 관심도 못 받고 먼지만 풀풀 쌓이는 일? 정말 발에 챌 정도로 많다.
언제나 각본가를 꿈꾸는 사람보다 제작되는 작품이 적은 법이니까.
“아멜리아가 개성 넘치는 작품을 쓰긴 했죠? 그게 왜요?”
“아웃사이더 같이 독특한 작품도 되는데 나도 되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한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죠. 희망 편이랄까요.”
둘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성공한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비슷한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이렇게 투고한 작품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어때 흥미롭지 않아요?”
“흥미롭네.”
“한 번 봐야겠네요.”
당혹감으로 가득했던 둘의 눈에는 곧 생기가 돌았다.
“자, 같이 한 번 봅시다.”
퉁! 하고 테이블에 대본들을 올려놓자 둘은 자리에 앉아 진지하게 대본을 읽기 시작했다.
사락 종이 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이안은 작게 웃었다.
직접 말하긴 뭐하지만, 자신은 후드 가족의 은인이다. 그러니 둘뿐만 아니라, 둘의 부모님과도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였다.
‘요즘 글을 쓰는 시간이 줄었다고 했지.’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아멜리아는 눈을 회복했으니 세상에 흥미로운 게 얼마나 많겠는가. 다른 데 빠져 있을 만했다.
에이든은 여동생을 옆에서 보살펴 줄 필요가 없어졌으니 자유로운 생활을 즐길 수도 있고.
‘이게 나쁘다는 건 아니야. 먹고 살 돈은 충분히 벌었으니 두 분도 돈 때문에 걱정된다고 한 것도 아니고.’
다만, 옆에서 볼 때는 방향을 잃은 것 같았다.
원래 둘에게 글쓰기는 결핍을 채워주는 도구였다.
가족을 유지하는 돈을 벌 수단이며, 둘의 유대감을 유지하는 공동 작업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큰돈을 벌고 시력을 회복하며 결핍이 사라졌고 둘은 글을 쓸 이유를 잃었다.
차라리 새로운 꿈을 찾아서 둘이 나아갔다면 순수하게 축하해줬을 텐데 둘은 주변 사람이 걱정할 정도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번 일이 동기 부여가 됐으면 좋겠네.’
기왕이면 앞으로 글을 열심히 써줬으면 더 좋을 테고.
이안은 둘 옆에 앉아 대본을 들었다.
“전개가 너무 허술한데. 사건 몇 개를 더 넣는 게 더 좋을 거 같아.”
“악! 에이미! 네가 퍼리 각본 같은 걸 만드니까 퍼리 작품이 또 튀어나왔잖아.”
“그건 나 주고. 이거나 봐봐. 전쟁터에서 동료의 그림을 그리는 사람 이야기인데, 꽤 감동적이야. 이런 거 좋아하잖아. 근데 너무 사건이 밋밋하더라. 전쟁터 특유의 절망감이 안 느껴진달까.”
여러 대본을 보며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는 건 꽤 재밌었다.
비록 제작까지 갈 수준은 안 돼도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흥미로운 경우도 많았고.
글을 보던 이안은 고개를 가볍게 내젓고는 펜을 들었다.
“안 되겠다. 거절할 때 약간 의견도 첨부해서 같이 돌려보내 줘야겠는데.”
“어? 그래도 돼?”
“해주면 좋아하지 않을까. 너희 둘도 하던가.”
작품을 보고 간단하게 소감을 쓰는 건 셋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거기에 후드 남매에겐 여러 작품을 보고 새로운 작품을 쓸만한 아이디어가 계속 솟아났으니 절대 시간 낭비가 아니었다.
셋은 틈 날때마다 대본을 읽기 시작했다.
***
아웃사이더 제작이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며 PP의 행보에 시선이 집중됐다.
“일단 사업 확장은 확실하군.”
인력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투자로 큰돈을 번 이안이 든든한 자금줄로 있으니 흡수하는 속도가 심상치 않았다.
‘단순히 돈으로 움직이지 않는 사람도 움직이고 있고.’
왜 저 사람이 저기에? 같은 생각이 들 정도의 인물도 몇몇 합류했다.
그동안 쌓아온 명성이 얼마나 큰지 새삼 느낄 수 있는 일이다.
제작사의 정비가 이뤄질수록 어떤 행보를 밟는지 유심히 지켜볼 때 다음 행보가 드러났다.
“대본을 투고를 받는다고 알렸다고? 괜찮은 작품 발굴부터 할 생각인가.”
“그래 봐야 얼마나 투고하겠어.”
할리우드 업계는 처음에는 심드렁하게 반응했지만.
“…업무가 힘들 정도로 쏟아진다고 합니다. 그것도 꽤 유명한 각본가들도 다수 참여했다고 합니다.”
“왜?”
이어진 보고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까지 매력적이진 않을…
“프라이스와 베스트셀러 작가로 유명한 후드 남매가 투고한 대본에 양질의 피드백을 주고 있다고 하더군요.”
“…작품이 많다고 하지 않았나?”
“네. 그걸 어떻게든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말이 되나?
무슨 대본 읽는 기계도 아니고.
도대체 이 인간이 뭔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
중매인
자본주의에 사는 미국인은 작은 것도 돈으로 환산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안의 제작사에 대본을 투고하면 피드백을 준다고? 왜?”
이건 명백히 이상한 행동이었다.
입사부터 세상에는 수많은 당락이 결정되는 일이 있지만, 친절하게 탈락 사유를 알려주는 경우는 드물다.
탈락자로서는 답답할 따름이지만, 어쩔 수 없다. 그런 피드백을 남기는 것도 시간과 노력을 써야 하니 전부 돈이니 말이다.
근데 그걸 해준다네?
하물며 아무런 지식도 없는 밑에 직원이 대충 쓱쓱 쓰는 것도 아니다.
“아… 이게 좀 별로였구나. 진짜 이렇게 전개하는 게 훨씬 낫겠네.”
“아, 위기감을 몰아넣을 사건이 조금 부족하다고?”
간략하지만, 보는 순간 ‘이게 문제였구나.’라는 생각이 바로 들 정도로 핵심을 짚어주는 사항이었다.
아이디어의 참신함을 살리지 못한 건 아멜리아가, 전개를 매끄럽게 진행하지 못한 건 에이든이, 현실적으로 촬영에 들어가기 힘든 부분은 이안이.
셋이 각자의 관점에 따라 평가를 해주니 굉장히 양질의 피드백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각본가들 사이에서 금방 소문이 돌 정도로 말이다.
‘진짜 아무 돈도 안 받고 해준다고?’
‘빨리 넣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 사람이 엄청 모인다는데 이러다가 이번 기회를 놓칠 수도 있어.’
이름값은 확실한 셋이잖는가. 평소라면 돈을 준다고 해도 평가를 받기 힘든 사람들이다.
차라리 ‘언제까지 투고한 작품은 피드백을 해드리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공지를 올려놨으면 이렇게 조급하지도 않았다.
‘언제까지 이 말도 안 되는 일을 해줄지 몰라.’라는 생각이 들자, 쌈짓돈처럼 품어 놓은 작품을 냅다 투고하는 일이 빈번했다.
덕분에.
“이안… 우리 이거 언제까지 해야 해요?”
“…넌 안 힘들어?”
후드 남매는 전혀 줄어들지 않는 대본 뭉치에 빠져 살아야 했다.
대본 읽는 AI가 돼가는 기분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옆에는 진짜 대본 읽는 AI가 있었다.
“솔직히 도움이 많이 되잖아요.”
즐겁게 대본을 넘기며 평가를 쓰는 손은 재빨랐다.
‘대본을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재밌는 것도 계속하다 보면 질리지 않나.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 있을까. 신기함을 넘어 경이로울 정도였다.
그리고 이안의 말도 틀린 건 아니다. 돈이나 계약을 맺고 하는 일도 아니니 언제든 그만두면 되는데, 이걸 붙잡고 있는 건 진짜 도움이 돼서 그랬다.
“이렇게 단기간에 다양한 작품을 읽으니 도움이 되긴 하죠.”
창작의 기본은 인풋이다.
뇌가 ‘그만 넣어! 이 자식들아!’를 외치며 온몸 비틀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인풋의 효과는 확실했다.
수십 개의 대본과 자기 생각이 뒤엉켜 새로운 결과물을 머릿속에서 계속 뿜어내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표절은 아니다.
애초에 각본가 조합에 따로 저작권 등록을 하고 넘어온 대본들이니 표절을 하면 큰일 나기도 하고.
‘다만, 생각의 폭이 넓어지는 느낌이야.’
와,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왜 이 캐릭터는 이런 식으로 행동하게 했을까.
작품 수만큼 다양한 각본가의 생각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그게 곧 거름이 되었다.
분명 도움은 된다.
‘근데 이러다가 죽겠어.’
‘너도 그렇게 생각하니, 동생아?’
이안과 함께 오랫동안 알고 지낸 만큼 오드리나, 도로시, 다니엘처럼 그에게 연기를 배운 사람들과도 친분이 있었다.
얼마나 힘들게 배우는지도.
전사가 되지 못하는 나약한 자는 죽는 스파르타처럼 일단 무지막지하게 굴린다. 덕분에 실력은 쑥쑥 크지만, 그만큼 삶이 고달파지는 건 피할 수 없다.
에이든은 총대를 메고 이안에게 물었다.
“우리는 그렇다 치고 이게 너한테도 도움이 돼? 넌 대본을 쓸 생각도 없잖아.”
“흥미롭거든요.”
이안은 지금까지 읽은 대본을 내려봤다.
판권 구입을 고민할 정도로 완성도 높은 대본인데도 처음 보는 대본이다.
‘바뀐 미래로 인해 새롭게 나온 대본이겠지.’
나왔을 작품 대신 다른 작품이 세상에 나온다. 그리고 그걸 보고 영감을 얻은 각본가가 완전히 새로운 대본을 쓴다.
10년 넘게 이어진 흐름은 어느덧 미래에 보지 못한 결과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것들을 읽는 것 자체로 새로운 흐름을 느낄 수 있다.
“거기에 투고가 늘어날수록 탐이 나는 작품도 많아졌거든요.”
처음에는 찔러보기 식에 별 볼 일 없는 대본이 태반이었다면 소문이 돌고 있는 지금은 수준이 높아졌다.
실제로 세 개의 작품은 판권 구매가 이뤄졌을 정도다.
작품을 직접 제작하게 될지는 몰라도 좋은 대본을 선점했다는 게 중요하다.
실제로 양질의 대본을 집어삼키는 꼴을 보며 다른 제작사들도.
“…저 자식들 얼마나 해 먹으려는 거지?”
벌써 걱정 어린 시선으로 보고 있으니 말이다.
그만큼 블랙홀처럼 각본들을 집어삼키고 있다.
‘거기에 이번에 도움받은 각본가들하고 간접적으로 연을 쌓아두는 것도 좋지.’
피드백을 받는 건 큰 호의를 받는 일이다. 특히 투고할 정도로 간절한 각본가에겐 더욱 기억에 남는 일이고.
제작사나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이렇게 해서 뭐가 남는데?’라고 생각하겠지만, 세월이 지나면 사람이 남는 법이다.
둘에게 가볍게 설명한 이안은 둘의 어깨를 토닥였다.
“걱정하지 마요. 곧 촬영이 끝나는 거 알죠? 더 여기에 시간을 쓸 수 있을 거예요.”
…끝낼 생각이 없구나?
둘은 눈을 마주치고 한숨을 쉬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열심히 글을 써놓을걸.’
후회는 언제나 늦는 법이고.
즐거운 마음으로 첨삭하는 교수님 밑에서 한동안 조교로 활동하는 게 확실해졌다.
***
카메라가 돌아간다.
어느덧 아웃사이더 촬영은 끝물이 됐고, 촬영장은 배우들의 집중력을 깨지 않도록 사소한 잡담조차 흘러나오지 않았다.
악역 태너로 분장한 이안은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일반적으로 선역보다 악역이 다뤄야 하는 감정이 더 다양한 만큼 연기자로서 더 어렵다.
‘그래서 악역 연기가 매력적이지.’
착한 사람을 보고 지루하다고 평가하는 사람이 있지 않나. 틀에 박힌 선역보단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악역이 연기자로서 더 재밌었다.
천천히 뜨인 검은 눈동자는 냉정하게 가라앉았다.
음험함을 담은 것도, 지독한 분노를 품은 것도 아니다. 지극히 이성적인 모습.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소름 끼치는 눈동자였다.
콰아앙-
폭발음과 함께 피어나는 불꽃 그리고 사방에서 울리는 총소리가 멎어간다.
-빌어먹을! 태너! 그냥 짐승이나 마찬가지라고 했잖소!
“맹수도 짐승이지. 그러게 조심히 키우라고 유의 사항까지 붙여줬는데 말이야.”
태너는 영상에 중년이 비명 같은 고함을 지르자, 담배에 불을 붙였다.
밀리기 시작한 싸움에 초조함에 물든 부하들과는 명백히 달랐다.
무심한 대꾸에 분노로 물들었던 상대의 얼굴은 순식간에 공포에 질렸고, 비명과 함께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크르릉
“죽이진 않았군.”
뒤틀린 다리를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는 중년과 잡혀 있던 어린 제 동족을 끌어안고 낮은 울음소리를 흘리는 수인들이 화면에 보였다.
“어때 네가 넘긴 정보로 일어난 일인데.”
태너는 붙잡은 라일라를 바라봤다.
짐승과 사랑에 빠져 같은 사람의 정보를 넘긴 인간이다. 계획을 망친 주범 중 하나지만, 태너는 분노하지 않았다.
“인간이 사냥개라. 재밌는 꼴이야.”
커헝!
수풀에서 울프독이 뛰쳐나와 목덜미를 물기 위해 사납게 이를 벌렸고, 태너가 냉정하게 손을 휘둘렀다.
섬광처럼 휘두른 칼은 역으로 개의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축 늘어진 개가 바닥에 처박히는 묵직한 소리는 전투의 시작을 알렸다.
-커헝!
“죽여!”
매섭게 달려드는 개들과 다급히 총을 쏘는 인간.
매캐한 화약 냄새처럼 동물과 인간의 비명이 뒤엉킨 공간에 시커먼 그림자가 졌고, 태너는 총구를 위로 겨눴다.
-죽어라!
증오로 물든 샛노란 짐승의 눈동자가 번쩍였고 나무에서 뛰어내린 수인의 팔은 인간의 사지를 뜯을 수 있을 정도로 부풀었다.
유약한 인간의 피륙으로는 막을 수 없는 매서운 발톱이 내장을 찢는 것보다 방아쇠를 당기는 손이 더 빨랐다.
-캐앵!
태너가 몸을 피하자 가슴팍에서 피를 뿜은 수인이 굉음과 함께 바닥에 처박히는 소리가 울렸다.
확인 사살을 위해 총구를 겨누던 태너는 황급히 총으로 몸을 막아냈다.
-우드득
쇳덩이로 된 총기가 고철덩어리가 되며 바닥에 부스스 떨어졌고, 낮은 울음을 흘리는 존재를 보며 라일라가 크게 소리쳤다.
“피어스!”
무사한 그녀의 모습을 다행스럽게 본 피어스는 겨눠진 권총을 보며 황급히 몸을 피했다.
인간과 수인이 뒤엉킨 전쟁터에서 둘은 치열하게 맞붙었다.
육체 능력 차이는 명백하다. 바닥을 짓밟는 수인의 발에 땅이 한 움큼씩 파이고 내지른 팔에는 두꺼운 나무가 굉음을 내며 무너진다.
하지만 제 부하도 서슴없지 방패막이로 사용하는 태너로 인해 둘은 순식간에 피로 물들었다.
다만, 이 싸움에도 끝은 있었다.
“…빌어먹을.”
공격을 막느라 비틀린 팔을 움켜쥔 태너는 아가리를 벌린 짐승의 입에 이를 까득 물었다.
어느덧 총성은 멈췄다. 바닥에 널브러져 신음을 흘리는 인간과 거친 숨을 내뱉으며 전투로 지친 호흡을 다스리는 수인만 봐도 승패는 명확했다.
“죽여라.”
역으로 사냥당하는 순간임에도 태너는 절망스럽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 순간도 기회라는 것처럼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기묘한 압박감.
지금 이 순간 죽이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느낌이 드는 위압감에 피어스가 팔을 치켜들었을 때 따뜻한 손길이 그 팔을 붙잡았다.
“피어스, 죽이면 안 돼.”
그르릉- 다른 수인들 사이에서 불쾌한 울음이 흘러나왔다.
자신들을 돕긴 했으나 그래 봐야 적과 같은 인간이다. 상처 입은 짐승들의 눈에는 같은 인간 편을 드는 것으로 보였다.
“일이 너무 커졌어. 지금처럼 숨어 살긴 힘들 거야.”
일부 인간을 제외하곤 존재조차 숨겨졌던 수인이지만, 이 정도로 난리 법석이 일어났으면 정보 통제도 힘든 상황이다.
세상에 정체가 알려지는 건 피할 수 없다.
“이들을 죽여봤자 위험한 존재로 여겨질 거야. 배척당하고 위협당하겠지. 우리가 경험한 것처럼.”
소외된 경험이 있는 사람일수록 울타리 안에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잘 알았다.
“그리고 이 인간은 그걸 바라고 있을 테고.”
미세하게 얼굴을 구기는 태너의 얼굴만 봐도 제대로 짚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고?”
“피할 수 없다면 우리가 먼저 다가가죠. 그리고 일단 살려야 하잖아?”
그녀는 총상을 입고 힘겹게 숨을 쉬는 수인들을 바라보자, 다른 이들은 눈을 크게 떴다.
야생에서 저런 큰 상처는 죽음을 의미했다. 이건 수인들도 마찬가지였는데.
“빨리 들어요! 시간이 없다니까요.”
수인들은 그녀의 지시에 따라 숲을 내달렸다.
“컷!”
촬영 종료를 알리는 소리와 함께 이안은 깊게 숨을 내뱉었다.
-컹!
“어휴, 고생 많았다.”
꼬리를 열심히 팔랑거리며 머리를 들이미는 울프독들의 머리를 열심히 쓰다듬으며 촬영장을 봤다.
수십 명이 뒤엉킨 대규모 전투 장면 때문에 지친 기색이 역력한 스턴트맨들이 보였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프라이스 씨만 하겠습니까.”
“제일 고생하긴 했지. 지치도 않는지 원…”
스턴트맨이 너스레를 떠는 것처럼 말했지만, 진심이 가득했다.
솔직히 말하면 액션 스퀀스를 처음 봤을 때, 이게 되나 싶을 정도로 어려운 촬영이었다.
수인은 나무에서 뛰어내며 와이어 액션을 선보여야 했고, 스턴드맨은 총과 무술을 섞어 화려한 액션을 선보여야 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건 피어스와 태너의 싸움이고.’
다른 이들의 싸움은 어차피 배경이다.
카메라에 주로 담기는 건 둘이었고, 피어스 대역으로 참여한 실력 좋은 액션 스턴트맨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난이도였다.
‘근데 저 말도 안 되는 인간은 그걸 기어코 맞춰서 하네.’
시간과 예산이 더 있었다면 한 번도 끊지 않고 촬영하는 롱테이크도 가능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액션 촬영을 잘 끝낸 것도 모자라서 자신의 말 외에는 귓등으로 안 듣는 개들을 통제해서 촬영을 무사히 끝내기까지 했다.
별다른 사고 없는 건 덤이고.
“프라이스 씨, 나중에 촬영이 있으면 또 불러줘요.”
“다른 배우들이 프라이스 씨 같은 실력이면 우리는 다 굶어 죽었겠어. 대역이 필요 없을 테니까. 재밌었어요.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 줘요.”
스턴트맨들이 엄청난 호의를 보이며 다음을 기약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인사를 끝내고 돌아가기 싫다고 땡깡 부리는 울프독들까지 질질 끌어 돌려보낸 이안은 겨우 한시름을 놨다.
“이제 곧 끝이네요.”
“그러게 말이야.”
촬영을 시작한 지 두 달 반가량이 지났고, 달력은 벌써 6월을 가리켰다.
남은 촬영 일정은 이틀가량이고, 어려운 촬영은 아니었다. 인간과 수인이 함께 교류하며 일어나는 짧은 후일담이니까.
‘수인을 반기는 사람도 있고, 인간처럼 여길 수 없다고 차별하는 사람도 나오지.’
완벽한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없지만, 이게 현실적인 엔딩이었다.
다름이란 쉽게 이해받을 수 없고 인간 사회에서 차별이 사라진 적은 없으니까.
‘그런데도 조금이라도 나아지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게 삶이지.’
아웃사이더 대본을 덮는 이안을 보며 게빈이 물었다.
“그것보다 요즘 밤늦게까지 계속 대본을 본다고 들었는데 몸은 괜찮니?”
“보다시피 아주 멀쩡해요.”
지쳐보긴 하는데 오히려 눈에는 총기가 돌았다.
“그래, 네가 즐겁다니 됐다.”
머리를 긁적인 게빈은 본론을 꺼냈다.
“알다시피 내가 다른 제작자나 감독들하고도 연이 깊지 않니.”
“그렇죠?”
경력이 긴 만큼 당연한 일이다.
그걸 왜 굳이 꺼내나 싶었는데.
“요즘 괜찮은 작품이 있나 알아보면 너희 회사에 투고한 경우가 엄청 많다고 하더구나.”
‘제발 우리 먹을 것 좀 남겨달라고 할래?’라는 말을 곱게 포장한 게빈은 말을 이었다.
“혹시 괜찮은 대본을 연결해줄 생각은 없니?”
참한 대본을 소개해달라는 중매인 제안이 들어왔다.
이안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괴물
아웃사이더 촬영이 잘 마무리됐다.
수인 특유의 후각을 살려 마약단속국의 직원이 된 피어스와 세상에 존재가 드러난 수인을 패션으로 녹여내며 크게 성공한 패션디자이너가 된 라일라.
이 둘의 행복한 생활을 간략하게 보여주며 이야기가 끝이 났다.
정해진 촬영 일정이 끝나면 배우는 기껏해야 뭉개진 오디오를 다시 채워 넣는 후시 녹음에 참여하거나, 아주 부득이하게 재촬영 들어가는 장면을 소화하는 게 끝이다.
그나마 가장 큰 일정은 홍보인데.
‘넷플러스 작품은 영화에 비하면 홍보 일정도 그렇게 팍팍하지 않은 편이지.’
시사회하고 홍보 영상을 좀 찍으면 되니까. 전 세계로 홍보 투어를 다니는 할리우드 영화 일정을 생각하면 어렵지 않은 일이다.
물론 카메라가 꺼졌다고 제작자의 일이 끝난 건 아니다. 본격적으로 후반 작업에 들어가야 하니까.
-모든 촬영 영상이 플랫폼에 올라온 건 확인했다. 확실히 이렇게 통합으로 관리하니 일이 편하긴 하구나.
“그렇죠?”
넷플러스가 한 해에 쏟아내는 오리지널 콘텐츠는 거의 400개에 달한다.
이 숫자가 미국에서만 제작돼도 관리하기 힘들 텐데 전 세계에서 콘텐츠가 제작 중이다. ‘망할, 이걸 어떻게 관리해?!’ 욕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넷플러스는 통합 제작 프로세스 플랫폼을 구축해서 한 작품에 수백 명이 참여하며 발생하는 복잡한 행정과 기획 그리고 관리 업무를 줄이고, 유연성을 높이는 방식을 구성했다.
‘효율적인 제작 프로세스는 넷플러스가 가진 힘이지.’
후반 작업도 여러 협력 업체를 통해 대규모 협업도 깔끔하게 돌아가니 말이다.
할리우드와는 또 다른 환경이니 랜든은 이 과정이 꽤 흥미로운 듯했다.
-후반 작업은 크게 신경 안 써도 된단다. 이쪽은 내가 전문 아니겠니.
CG 작업은 기본적으로 할리우드 감독에겐 익숙한 일인데, 괴물이 나오는 작품의 대부로서 CG와 특수 촬영에 이골이 난 랜든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촬영을 이끈 중심축이 게빈이었다면 후반 작업을 계획대로 이끌어 갈 사람은 랜든이었다.
“수인 외형은 약속대로 해야 하는 거 알죠? 설정집처럼 최대한 멋있고 호감 가도록 해야 해요.”
-하하하, 이미 정해놓은 건데 내 취향대로 바꾸겠니. 그런 건 나중에 게빈하고 은퇴작을 할 때 하면 되는 거 아니겠니.
…게빈 감독님의 의견을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물어봐도 ‘사탄아 물러나라!’라며 성수를 뿌리겠지만.
“잘 부탁해요.”
-그래, 걱정하지 말렴.
어차피 든든한 두 감독님이 있는데 전문이 아닌 후반 작업에 관여할 생각은 없었다.
‘프로듀서로서 넷플러스와 소통 창구 역할만 제대로 해주면 되겠지.’
넷플러스가 지금처럼 대박이 나기 전부터 이어놓은 인연은 강력했다. 아웃사이더 같은 작품에 투자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아웃사이더 관련 업무를 끝낸 이안은 게빈 감독이 한 말을 떠올렸다.
“대본을 소개해달라고 했지.”
일반인이라면 ‘대본이 필요하겠구나.’로 넘어갈 일이겠지만, 할리우드 시스템을 생각하면 꽤 신기한 요청이다.
할리우드에서 영화가 제작되는 과정은 으레 이렇다.
영화사가 영화 기본 컨셉을 정하고 프로듀서는 여러 각본가를 구해 대본을 쓰도록 한다.
프로듀서는 도착한 대본 중 마음에 드는 부분을 섞어 대본 하나를 만들고 이걸 통해 영화를 만든다.
즉, 대본은 프로듀서가 원하는 가이드 안에서 제작된다는 뜻이다.
절대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다. 잠시 고민하던 이안은 뭘 원하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참신한 아이디어를 얻고 싶은 거겠지.”
참신함.
쉽게 내뱉을 수 있는 말이지만, 창작자에겐 이것만큼 끔찍한 단어도 없다.
“와… 이 정도면 신선하지 않나?”
자신 있게 내밀고 보면 ‘아, 그거 이미 비슷한 작품이 있는데.’라는 말이 돌아오는 게 태반이다.
돈 될 거 같고 괜찮은 소재는 이미 앞선 인간들이 열심히 만들어 냈다. 새로운 소재 찾는 게 얼마나 힘든지는 비슷한 할리우드 영화가 쏟아져 나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 면에서 Pryce’s Production의 행보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을 거다.
‘각본가들이 숨겨놓은 대본을 그렇게 많이 보내고 있다고? 그중에서 괜찮은 소재가 있지 않을까?’
‘저렇게 피드백해주면서 괜찮은 소재를 싹 쓸어가려고 하는 거 아니야? 괜히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피드백을 해주겠냐고.’
설마 대본 보는 것 자체를 좋아해서 열심히 피드백하고 있는 거라곤 상상하기 힘들 따름이고, 관계자들이 볼 때는 피드백이 미끼로 보일 수밖에 없다.
평소라면 ‘각본? 널린 게 각본이지.’라며 거드름을 피울 인간들도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고 왠지 괜찮은 꿀단지처럼 보이는 상태였다.
거기에 이번 일을 주도하는 사람은 이안이다.
다수의 영화를 성공시킨 것도 모자라서 두 번의 대선 흐름을 맞추고 어릴 때부터 말도 안 되는 투자 성과를 거둔 것까지 드러나며 뛰어난 안목을 이미 다방면에서 인정받은 인재였다.
‘큼큼, 괜찮은 작품이 있으면 나눠 먹는 게 어떻겠나.’
이런 제안이 들어오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이안은 테이블을 톡톡 두들겼다.
“나로서도 나쁜 제안은 아니야.”
Pryce’s Production가 대형 제작사도 아니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다른 곳과 비교하면 걸음마를 떼는 아이나 마찬가지다.
판권이 탐이 나는 작품이 있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삼킬 순 없다. 판권 구매는 영원히 이어지는 게 아니라 일정 기간동안 제작되지 않으면 계약이 파기되는 형태니까.
‘뭐, 판권 가격만 생각하면 그냥 구매해도 상관없긴 해.’
제작되지 않고 시간만 흘렀다가 파기되는 경우는 엄청 흔하니까.
근데 그건 원작자에겐 못 할 짓이다. 아멜리아를 통해 각본가로 지내본 경험이 있으니 더욱 그렇게는 못 하겠고.
“잘만하면 각본가들에겐 좋은 기회를 주고, 나도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을 거 같은데.”
애초에 제작사를 만든 계기부터가 바뀐 미래 때문에 빛을 못 보게 된 작품을 제작하려고 한 것 아니었나.
PP를 운영하는 건 애초에 돈이 목적이 아니었다. 돈이야 혼자 블록버스터 영화를 제작해도 될 정도로 충분히 있으니 말이다.
돈이 삶의 목적이었으면 오랫동안 길바닥 생활을 하면서 배우를 꿈꾸진 않았을 거다.
일반인에 비하면 비틀렸다 싶을 정도로 삶의 방향이 다른 이안으로선 할리우드 시스템에선 빛을 보지 못한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품은 대본을 소개하는 것은 괜찮은 일이었다.
‘다만 그냥 툭하고 던져주면 안 되겠지.’
아귀 같은 할리우드의 인간들에게 솜털이 보송보송한 각본가를 툭하고 던져놓으면 무슨 일이 생기겠는가.
‘아이고, 일용한 양식이 오셨는가.’라며 쓱싹 해먹을 게 뻔했다. 각본가들도 조합이 있긴 하지만, 그 정도 가시는 잘 발라 먹을 수 있는 인간들이니까.
“그럼 우리가 중간에서 조율을 해주면 되지.”
중간 수수료를 뜯어내게 되겠지만, 중매쟁이를 고용했으면 당연히 뜯겨야 하는 금액 아니겠는가.
이안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게빈을 통해 이안에게 연락했던 제작사와 프로듀서들은 사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진짜 좋은 작품이 있으면 직접 제작하겠지. 소개를 해주겠어?”
제이 안으로 활동할 때 영화 여러 편을 동시에 제작할 정도로 욕심을 보인 인물이다.
많은 사람은 여러 작품을 모두 성공한 것에 주목했으나, 프로듀서쯤 되면 그걸 꾸역꾸역 삼켰다는 데 더 주목했다.
한 마디로 못 먹을 거 같지만 그냥 찔러만 봤다는 뜻인데.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네, 따로 원하는 장르나 컨셉이 있는지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진짜 받았다고?
‘시답지 않은 작품을 소개해주려고 그러나.’
처음 든 생각은 합리적 의심이었으나, 이건 오래가지 못했다.
“이안이 직접 PP의 공지 사항을 올렸습니다. 투고된 대본을 제작사와 연결하는 일종의 에이전시 업무를 보겠다고 말이죠.”
공지 사항을 보면 ‘아, 이 인간 생각보다 진심이구나.’라고 딱 느낄 수밖에 없다.
투고된 작품을 피드백해주고, 수정된 양질의 대본을 다른 제작사에 소개한다.
이 소식에 각본가들은 환호할 수밖에 없었다. 제작사에 제 작품을 선보일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
-이안은 신이야!
└근데 이런 업무는 왜 하는 거래?
└인터뷰에선 지금보다 다양한 작품이 할리우드에서 제작되길 바라는 마음이라는데.
└하긴 지겹게 히어로 영화만 뽑아내고 있잖아. 제작 규모만큼 안전 지향적인 건 이해하는데 조금 도를 넘긴 했어.
└다양한…? 아웃사이더 같은 퍼리 작품?
└…으윽, 머리가.
-이거 잘못하면 이안만 손해 보는 거 아니야? 피드백 받고 PP를 안 거치고 다른 곳하고 계약할 수도 있잖아.
└기회가 닿으면 할 수야 있지. 대신 이안에게 찍히겠지만.
└우리 이안이 착하긴 한데 염치없는 짓을 그냥 두고 볼까?
└따로 보복은 안 해도 다신 피드백 받을 생각은 말아야겠지.
└이안의 피드백을 버려?
└솔직히 잘 안 돼도 이안과 인연을 쌓아두는 것만 해도 이득이지.
-얼마 전에 이안을 만났는데 내 이름 말하니까. 바로 내 작품을 말하면서 기억한다고 하더라.
└와, 엄청 좋았겠다.
└응, 바로 붙잡혀서 그 자리에서 대본 수정 작업 진행했어. 아직 제대로 수정이 안 됐는데 잠이 오냐고 하더라.
└…우리 교수님이 죄송합니다. 사람은 착해요.
어차피 팬데믹에서 회복 중인 단계라서 제작 중인 작품도 평소보다 적은 상태였다.
평소보다 여유가 있는 각본가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고 PP는 덩달아 바빠지기 시작했다.
“…내가 말한 사업 확장은 이게 아니었는데 말이야.”
일반적인 제작사에선 볼 수 없는 숫자의 대본이 회사 안을 돌아다니고 있다.
판권 계약 맺은 작품으로 제작 준비를 하느라 바쁜 사이에 회사가 이상한 방향으로 성장한 듯하자, 올리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원래 작은 회사는 사장의 성향을 따라가기 나름이긴 한데.
‘이건 너무 따라가는 거 아니야?’
직원들이 어버버 하는 사이에 이안은 혼자 저 멀리 달리며 일거리를 우수수 만들어내고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여러 제작사와 미팅이 줄줄이 잡혔다는 뜻이다.
“우리 측에 요청하신 장르는 코미디였죠?”
“그렇습니다.”
혹시나 하고 제안을 넣었던 제작사 앞에 이안은 여러 대본을 내밀었다.
“팬데믹 시기라서 제작비 규모는 넉넉하지 않겠죠? 그래서 장르도 코미디로 정했을 테고요.”
대체로 제작비가 큰 장르가 아니니 말이다.
힘 있는 목소리에 어느덧 제작사 사람들은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다면 이 작품은 어떻습니까? 만약 자신이 사람들에게 과할 정도로 큰 관심을 받기 시작한다면 이라는 발상으로 시작된 작품이죠.”
할리우드는 ~한다면으로 시작하는 하이 컨셉이 기본이다.
“연예계에서 활동하신다면 알죠? 사람들은 인기인이 되고 싶은 욕망을 흔히 갖고 있지만, 그게 마냥 좋은 일은 아니란 걸요. 이 작품은 그걸 코믹스럽게 풀어내고 있죠. 이 장면을 한 번 볼까요?”
오디오북으로 큰 사랑을 받았던 경력을 살려 맛깔스럽게 들려주는 스토리에 제작자들은 지루할 틈도 없이 이야기를 들었다.
도로시가 옆에서 봤다면.
“아오, 내가 이래서 어렸을 때 얘한테 사기꾼이 되지 말라고 한 건데!”
라며 혀를 찼을 테지만, 여기엔 그런 조언을 해줄 사람이 없었다.
얼마 후 줄줄이 이안을 통해 판권 계약이 맺어지기 시작했다.
***
-할리우드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있는 이안 프라이스. 다수의 제작사가 Pryce’s Production을 통해 판권 계약을 맺어.
-이안 프라이스, ‘할리우드에 다양한 작품이 제작되는 흐름이 만들어지길 기대.’
일반인이라면 크게 주목하지 않을 기사였으나, 업계 관계자들은 흥미롭게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다.
다양성이란 언제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만약 이안이 판권을 판 작품들이 흥행에 성공한다면 새로운 흐름을 만들겠지만, 성과가 좋지 못하면 기존의 할리우드 시스템이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일종의 갈림길이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흐름은 브로드웨이에서도 주목하고 있었다.
“토니상 시상식과 더불어 극장이 재개장하는 건 순조롭게 진행 중인가요?”
“9월에 재개장에 맞춰 다들 열심히 준비 중입니다.”
백신과 함께 끔찍한 팬데믹 기간이 끝이 나고 있다.
토니상 관리위원회는 여러 극장 조합에서 지명되는 이들이니 브로드웨이를 정상화하는 게 최우선이었다.
“이안 프라이스를 시상식에서 공연을 하게 만들어야 했는데 말이죠. 재개장할 작품의 공연이 올라오는 게 옳다고 사양을 하니 원.”
“지금이라도 압박을 주는 게…”
조심히 의견을 냈던 의원을 살벌한 시선을 마주했다.
“왜요? 공연에 안 서면 상 받을 생각은 말라고 협박이라고 하라고요?”
“미쳤습니까? 프라이스, 이 인간은 건드리면 안 돼요. 나이에 속으면 안 된다고요!”
토니상을 앞두고 브로드웨이 배우들과 빚을 지워둘 때는 일부러 했나 긴가민가했으나, 지금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브로드웨이에서 하는 것처럼 할리우드에서 똑같이 하는 걸 보세요. 지금 하는 일로 각본가들이 이안에게 큰 호감을 갖고 있다죠? 이게 다 영향력을 만드는 행위라니까요.”
“정치인보다 더한 인간이에요. 잠잘 시간도 팍팍 줄여서 대본을 보고 있다고 할 정도로 독한 인간이기도 하고요.”
“그러고 보니 드레이퍼 가문도 이안을 감싸고 돈다고 하더군요. 레아 드레이퍼를 캐스팅한 것도 둘이 밀약이 있는 게 뻔합니다.”
벌써 이렇게 사방에 영향력을 만들어놓는데 이제 나이가 고작 20대 초반이다.
10년 아니, 이대로 5년만 지나도 할리우드에서 괴물 같은 존재로 거듭날 게 뻔했다.
“괜히 심기를 건드리지 맙시다. 전 밤잠을 설치고 싶지 않습니다.”
토니상 관리위원회 사람은 진저리를 치며 마지막 말을 뱉었다.
“그럼 토니상 시상식은 재개장에 맞춰 9월 26일로 확정 짓도록 하겠습니다.”
깊어진 오해와 함께 회의는 빠르게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