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11)
사칭범(2)
할리우드를 마비시킨 작가 파업이 AI 채팅 서비스를 계기로 일어났다면 배우 조합이 참여한 이유는 딥페이크 탓이다.
딥페이크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인간 이미지 합성 기술이고, AI 채팅과 달리 지금도 나날이 피해 규모가 커지는 문제였다.
배우와 같은 유명인은 주요 피해자였고.
‘배우는 자료가 될 영상과 사진이 많으니 인공지능을 학습하기도 쉽고, 안 좋은 방향으로 활용하기도 좋으니까.’
파업이 자기 집에서 쥐불놀이하는 위험한 짓인 걸 알면서도 배우 조합이 파업에 합류한 건 그만큼 큰 위협인 걸 이미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 만도 한 게 제작사들은 무명 배우를 스캔해서 만든 스캔본으로 영화나 드라마 배경에 붙여 쓰는 게 목표였다.
어차피 배경인데, 엑스트라에게 인건비를 쓸 필요가 있냐는 뜻이지만.
‘단역, 엑스트라 배우가 이렇게 실직자가 되면 연기 경력을 쌓을 방법도 없고, 오랜 엑스트라 경력을 통해 스타덤에 오르는 배우들도 사라지는 문제가 생기는 일이지.’
이안, 본인부터가 오랜 엑스트라와 단역 생활을 통해 오스카까지 쥔 배우가 아니던가.
배우로 성공할 수 있는 사다리를 치워버림과 동시에 배우의 생태계가 망가지는 큰일이고, 배우 일을 사랑하는 이안도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딥페이크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으면서 ‘이걸 사용할 방법은 없나.’라며 머리를 굴리는 모습이 괴상하게 보일 수 있다는 건 알겠다.
“나중에 사고 치기 전에 꼭 말해라. 알겠지?”
“그래, 미리 들어봐야 머리만 아플 테니 지금 묻진 않겠지만, 마음에 준비할 시간은 줘야지.”
‘우리 애가 착하긴 한데, 사고는 많이 치지.’라는 표정으로 지인들이 바라보고 있으니까.
솔직히 저렇게 볼 정도로 사고를 많이 친 것 같진 않아서 억울한 생각이 들었고, 마음 같아선.
“에이, 아무런 문제도 안 일으킬 테니 걱정하지 마요!”
라고 당당하게 외치고 싶지만.
‘불장난할 생각이라서 차마 그렇게 말은 못 하겠네.’
결국, 정직한 이안 프라이스로서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였다.
“일이 벌어지기 전에 꼭 말할게요.”
만점짜리 대답은 아니었다.
‘이안이안아, 여기서 긍정하면 어떡하니.’라며 한숨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으니 말이다. 그래도 지금 당장 묻지 않은 건 어련히 잘 할 거라는 믿음이 깔려 있는 탓이었다.
물론 아무것도 못 들은 척하고 있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티격태격하다가 양쪽 다리를 베고 잠든 에반과 비비안을 토닥여주며 조용히 있는 이안의 모습은 누가 봐도 머리를 열심히 굴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오랫동안 함께 했던 이들인 만큼 이게 폭풍 전 고요라는 건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얘가 또 뭘 하려고. 말릴 순 없겠지?’
‘말린다고 될 애가 아닌 건 알잖아.’
이안은 코뿔소 같은 인간이다. 돌진에 특화된 만큼 멈춰 같은 마법의 단어는 듣지 않았다.
그렇다고 직접 도울 수도 없다. 작품에 관련된 일이라면 모를까 이런 일에 도움을 요청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개입을 원하지도 않았다.
다만, 팬데믹 기간에 저택에서 지내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응?
“이안이 딥페이크 영상 관련해서 열심히 고민하고 있더라고. 도움을 청할 일이 생기지 않을까?”
이런 일은 샬럿의 도움을 받는다는 점이다.
전화 한 벤이야 ‘때가 되면 우리 이안 좀 잘 도와줘.’라고 미리 알려줬을 뿐이나, 비즈니스 파트너인 샬럿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받은 느낌이었다.
‘…이안아, 산타 사칭은 범죄란다.’
왜 이런 연말 선물을 주는 걸까.
샬럿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만간 허니의 볼을 쭉쭉 늘려야 할 듯했다.
***
이안이 가장 먼저 자신의 딥페이크 영상들을 확인했다.
“꽤 옛날부터 있네.”
가장 옛날 영상은 처음으로 빌보드 1위에 올랐을 때쯤이었다. 자신이 라이라는 게 밝혀지고 여러모로 큰 관심을 받을 때였다.
제법 옛날인 만큼 그냥 얼굴을 합성한 수준의 조잡한 영상이다. 최신으로 거슬러 올라올수록 영상 개수도, 질도 좋아졌다.
여기까지 영상을 보면서 이안은 몇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제법 괜찮은 수준인데도 대부분 가짜라는 걸 인식하고 있어.’
뭘 딥페이크 정도에 속겠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잘 만든 영상은 진짜와 구분하기 힘들다. 근데도 사람들은 닮았다는 말보다 딱 봐도 아닌 것 같은데? 같은 댓글을 주로 달았다.
덕분에 다른 연예인의 영상보다 관심을 덜 받았다.
두 번째는 비비안이 딥페이크 영상에 보인 격한 반응이랑 관련된 일인데.
‘옛날 영상에는 애들이 엄청 싫어한다는 댓글이 안 달렸어. 주로 달린 건 최근 영상들이야.’
영상 업로드 시기와 댓글 수를 파악해 대충 변화가 생긴 시기를 따져봤고.
“토니상 전후로 변화가 생긴 것 같은데?”
수상과 함께 묘한 보상을 받는 건 몇 차례 경험한 일이고 토니상의 보상은 과거의 환상을 보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보상이다. 행복한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며 부모님의 사랑도 느낄 수 있었고, 가물가물한 미래의 일도 다시 머릿속에 새길 수 있었으니까.
‘아무리 미래가 바뀌었다고 해도 참고할 만한 내용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니까.’
이걸 보상이라고 생각했기에 다른 변화가 생겼을 거란 생각조차 못 했다.
꼼꼼하게 영상과 반응을 살핀 결과 이안은 한 가지 사실을 더 깨달았다. 애들처럼 질색하는 것까진 아니나 어른들도 더 정확하게 딥페이크 영상을 구분해내고 있었다.
‘존재감이 다르다.’, ‘뭔가 부자연스럽다.’, ‘영상은 진짜 같은데 이상하게 이안처럼 안 느껴진다.’ 등 추상적인 표현으로 아니란 걸 느끼고 있었다.
“흥미롭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하네.”
별것도 아닌 변화라고 깎아내릴 일이 절대 아니었다. 정교한 가짜 영상에도 이렇게 반응할 정도라면 AI 기술이 발전해도 자신을 대체할 수 없다는 뜻이다.
미래에서 회귀한 만큼 대체할 수 없는 배우라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이안은 잘 알고 있었다.
‘다니엘을 돕고 바뀐 몸과 비슷한 수준의 보상이랄까.’
이안은 자신이 얻은 여러 보상에 큰 미련은 없었다.
사고를 막을 수 있는 고사? 없으면 촬영이 지체되거나 현장에서 안 좋은 사고가 일어날 수 있겠으나, 막을 능력이 없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저 최대한 안전에 신경 써서 촬영할 테지.
사람도 부족해서 이젠 동물도 홀리는 목소리? 묘한 매력을 잃으면 많은 팬이 떠날 수 있겠지만, 연예인이 팬을 얻고, 잃는 건 흔한 일이다. 아쉬워도 미련 가지진 않을 것이다.
그 외에도 품은 다양한 능력을 잃어도 크게 아쉽지 않았다. 주워진 모든 걸 잃는다고 해도 긴 세월 밑바닥에서 갈고닦은 연기력만큼은 자신의 힘으로 이룩한 것이니 말이다.
다만, 데미안을 돕고 바뀐 몸만큼은 크게 아쉬울 거 같았다. 쉽게 지치지 않는 몸의 혜택을 크게 봐왔으니까.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그런 능력과 동급으로 칠 정도로 중요한 변화였다.
상황을 정리한 이안은 테이블을 톡톡 두들겼다.
“지금 당장 중요한 건 아무리 내 딥페이크 영상이 돌아다녀도 큰 문제 될 게 없다는 거지.”
가짜 영상을 왜 만들겠나. 진짜로 속여서 뭔가 이득을 취하려고 하는 것이다. 근데 보자마자 ‘이거 가짜인데?’ 싶다면 어떻게 써먹겠는가.
훌륭한 도구가 주워졌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사무실에 노크가 들려왔고.
-허니, 나야.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허락과 함께 들어온 샬럿은 한껏 치장한 모습으로 들어왔다. 세월에도 쉽게 바래지지 않는 외모는 이목을 끌기 충분했다.
“왜 그렇게 봐? 내가 그렇게 예쁘니.”
“외모 관리에 돈을 얼마나 쓰고 있을까 생각을… 으으윽?!”
성큼성큼 다가온 샬럿은 네일아트를 한 손가락으로 이안의 머리를 꾹꾹 눌렀다.
세게 누르지도 않았는데 아픈 척을 하는 그를 보며 콧방귀를 뀐 그녀는 얄밉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었다.
“생각보다 얼마 안 쓰고 있거든? 아주 혼나려고 말이야.”
“달링은 언제나 어여쁘죠.”
“말이라도 못 하면.”
눈을 흘긴 샬럿은 이안의 맞은 편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그것보다 어쩐 일로 찾아오셨어요?”
“연말 연초에는 중요한 파티 때문에 못 만났잖아.”
파티광의 오명은 벗었어도 그때의 경험이 어디로 가는 건 아니었다. 사교계에서 펄펄 날아다니는 중이었고, 중요한 파티가 다수 열리는 시기에는 정말 바빴다.
겨우 숨을 돌릴 여유가 생겼다는 건 빈말이 아니었다. 다만, 직접 찾아온 이유가 따로 있었다.
“딥페이크로 영상으로 또 뭔가를 하려고 한다며. 신경쓰여서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야지.”
“어라, 이젠 자발적으로 도와주는 거예요?”
비즈니스 파트너라고 부르면 펄쩍 뛰던 샬럿이 직접 나서다니 놀라운…
“자발적은 무슨. 그래서 원래 내 도움을 안 받을 생각이었어?”
“…큰 건 아니고 사소한 도움을 받으려고 했죠.”
“그럴 거 같아서 매도 먼저 맞는 기분으로 왔어. 기다려도 도통 말을 안 해주니 이번엔 또 뭘 하려고 그러나 걱정돼서 편히 쉬질 못하겠더라.”
얄밉다는 듯이 볼을 꼬집는 행동에 어설픈 웃음을 흘렸다.
당장 진행할 일은 아니라서 굳이 말 안 한 건데, 이렇게 나오면 어쩔 수 없다.
“혹시 제 가짜 영상을 본 적 있어요?”
“아니. 그런 걸 뭐하러 보니. 마음만 먹으면 진짜를 볼 수 있는데. 그리고 나는 가짜라면 질색이야.”
다수 명품 브랜드를 소유한 가문이고, 본인도 브랜드를 운영하는 만큼 가짜라면 싫어할 만했다.
“그럼 한 번 볼래요?”
이안은 자신이 본 가짜 영상 중 가장 정교하게 만들어진 영상을 틀었고.
“제법 신경 써서 만든 건 알겠는데 역시 진짜하곤 차이가 있네. 그동안 안 보길 잘 했어.”
냉정한 평가를 받았다.
“그럼 이건요?”
“…음?”
샬럿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방금하고 똑같은 영상이다. 토크쇼처럼 꾸며진 스튜디오에서 같은 말을 하고, 같은 행동을 취했다.
그 모습에 웃은 이안은 두 영상을 함께 틀었다.
분명 데칼코마니처럼 똑같다. 누가 보면 똑같은 영상을 복사해서 재생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샬럿은 눈을 깜빡이다가 한 영상을 가리켰다.
“…혹시 이거 진짜니?”
“와, 역시 달링. 이 영상을 보고 똑같이 찍어봤죠.”
장난스레 손뼉을 치는 이안을 보며 샬럿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가짜 영상과 이렇게 똑같이 연기할 수 있다고? 말과 행동이 완전히 똑같은데?
이건 촬영을 도운 스태프들도 경악한 일이었다.
이안이야, 그림자 가족 촬영 때 비슷한 일을 했으니 대수롭지 않게 했으나, NG 한번 없이 똑같이 복사하는 모습을 보며 스태프들은 이게 현실인가 고민했을 정도였다.
이런 것도 연기력에 포함되나 기가 찬다는 듯이 헛웃음을 짓던 샬럿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네 연기력이 대단한 건 알겠는데. 이건 왜 찍은 거야? 사칭범을 도와주는 거잖아.”
저 영상이 풀리면 어떻게 될까.
‘뭘 어떻게 돼. 가짜 영상이 진짜로 둔갑하겠지.’
물론 무슨 투자를 권고하는 영상이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영상도 아니니 별다른 문제는 안 된다. 그 정도 생각은 하고 영상을 찍었을 테니까.
중요한 건 이유였다. 이렇게 노력해서 찍을 가치가 없는 영상이잖은가.
“제가 신기한 걸 알게 됐거든요? 로티가 바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해냈잖아요. 근데 다른 사람들도 잘 구분해내더라고요. 아, 물론 로티처럼 빠르게 구분한 건 아니었어요. 시간이 좀 더 걸리긴 했죠.”
혹시 운이 좋게 맞춘 건 아닌가 싶어 번외도 실험해봤다.
“가짜 영상만 틀어봤는데 진짜가 없다는 것도 맞추더라고요. 재밌죠?”
미소를 짓는 이안을 보며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단순한 우연이 아니니 재밌긴 하다.
그래, 재밌…
“혹시 너 이런 영상을 잔뜩 만들 생각이니?”
“…오, 역시 로티네요.”
이안이 뭔가 일을 벌일 때는 기본적으로 재미라는 단어가 깔려 있었다.
라이의 정체를 공개하는 콘서트도, 제이 안의 정체를 밝힌 청문회 등 그 예시는 다양했다.
‘재미는 곧 이슈지.’
이렇게 가짜 영상과 똑같은 진짜 영상을 여러 개 찍어서 공개한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엄청난 관심이 쏟아질 것이다.
이안이 가진 인지도를 생각하면 범세계적인 관심을 끌 테고.
‘얘는 이슈를 제 입맛대로 활용할 능력이 있지.’
꼬맹이 시절에도 허먼이라는 할리우드의 거물을 골로 보낸 수완이 나이를 먹었다고 어디로 가겠는가.
“이슈가 되면 진짜 같은 영상을 만들어보겠다고 더 많은 사람이 달려들겠죠?”
“너는 또 영상을 찍을 테고.”
AI 역사는 인간을 뛰어넘는다는 증명과 함께했다.
인간과 AI 체스 대결, 바둑 대결 등도 여기의 연장선이다. 이런 떡밥이 던져졌을 때 어떤 움직임이 일어날까.
적어도 잔불로 끝날 일은 아니었다.
짝-
빠르게 사업가로서 앞으로 펼쳐질 상황을 계산하던 샬럿은 손뼉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천천히 생각해도 돼요. 사칭범과 함께 하는 즐거운 축제는 내년에 벌일 예정이거든요. 그때까지 비밀인 거 알죠?”
배시시 웃으며 이안은 새끼 손가락을 들었고.
“웃지 마. 정들어, 이 녀석아. 너 하곤 그만 정들어야 하거든?!”
샬럿은 이안의 양쪽 볼을 당겼다.
세상에 뭘 경험하고 자라면 취미가 이슈메이킹인지 모르겠다.
‘…내가 알기엔 그래도 곱게 자란 편이라고 알고 있는데 말이야.’
알다가도 모르겠다.
***
샬럿의 기습 방문이 끝나고.
“오랜만이야, 이안!”
“오셨어요. 감독님?”
고준혁 감독과 이안은 손을 굳게 맞잡았다.
2022년의 새해와 함께 내년을 뜨겁게 달굴 Beautiful World 제작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