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12)
Beautiful World(1)
고준혁 감독은 새삼 신기한 표정으로 이안을 바라봤다.
긴 시간 이쪽 일을 하다 보면 함께 촬영했던 아역이 어느새 훌쩍 커서 만나는 경우는 흔하다.
‘더 크긴 했는데, 그림자 가족 촬영 때와 큰 차이가 있는 건 아니니 낯설진 않아.’
외적인 변화 때문에 놀라는 게 아니란 뜻이다.
“세트장 구성은 얼마나 진행됐죠? 이 부분은 사전에 이야기 나눈 컨셉하고 조금 다른 것 같은데요.”
막힘 없이 회의를 진행하는 모습만 봐도 제작자로서 업무 지시가 굉장히 능숙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배우를 넘어 제작자로 활약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고, 미국으로 넘어오기 전 화상 회의도 자주 했으나 실제로 이렇게 사람을 다루는 모습을 보는 건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배우보단 경력 많은 제작자와 함께 일하는 느낌이다.
‘처음 봤을 때도 대단한 아이긴 했지. 특히 연기력이.’
괜히 원로 배우인 남수가 애지중지하며 아이를 끼고 다닌 게 아니다.
할리우드 상황을 잘 모르는 한국 연예계에선 이안은 거의 얼굴마담이고 제작자 업무는 올리버 워커가 도맡아서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지금 모습은 그게 완전 오해라는 걸 잘 보여줬다.
그랜드라인 촬영 때만 해도 조연 역할에 만족하던 아이가 어느새 주연을 넘어 자기 제작사까지 운영하니 기특하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하다.
“감독님, 문제 될 거 있어요?”
“아니, 전혀 없어. 괜히 한국에서 할 일을 마무리하고 오라고 한 게 아니구나.”
그랜드라인 때도 할리우드 제작사와 협업을 했지만, 지금처럼 원활하게 굴러가진 않았다.
당연한 이야기다. 원만한 영화 촬영을 위해선 수백 명의 스태프가 잘 맞는 톱니바퀴처럼 굴러가야 했다.
‘그러니 감독들이 손발이 잘 맞는 스태프와 사단을 꾸려 여러 작품을 함께하는 거지.’
그런 면에서 한국과 미국 스태프는 서로 규격이 다른 부품이나 마찬가지다.
애초에 2.54cm가 1인치, 1인치가 12개 모이면 1피트, 피트 3개가 모이면 1야드, 1야드 22개가 모이면 1체인 같은 끔찍한 야드파운드법을 이를 꽉 깨물고 쓰는 괴인이 미국인 아닌가.
촬영할 때.
“다음 장소까지 80마일 떨어져 있다고? 80마일이 얼마나 떨어진 건데. 뭐? 1마일이 5280피트라고? 염병할.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들어!”
술에 취해 주사위를 굴려 정한 것 같은 단위 때문에 고생하는 걸 시작으로 불협화음이 꾸준히 일어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Beautiful World 제작은 굉장히 부드럽게 굴러갔다.
한국 촬영 현장까지 경험한 적 있는 이안이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하며 작품 제작을 진행하고 있는 탓이다.
“와, 이안 진짜 오랜만이다. 그동안 잘 지냈지? 아, 괜한 질문인가. 네 소식은 한국에서도 심심하면 들을 수 있거든.”
“잘 지내고 있죠. 여러분도 잘 지내신 거 같네요.”
“이 녀석은 얼마 전에 결혼까지 했다고.”
준혁과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온 스태프들이 이미 이안과 친분이 있기도 하고.
급하게 느껴질 정도로 빠르게 제작이 진행 중이지만, 분위기 자체는 굉장히 좋았다.
스태프들과 중간 점검을 마무리한 두 사람을 마주 앉았다.
“가장 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건 캐스팅이에요.”
3월 초로 잡혀 있는 예정일에 맞추려면 슬슬 캐스팅을 마무리 지을 시기였다.
캐스팅 디렉터인 아델리아의 도움을 받아 명단은 얼추 추린 상태였고, 이제 준혁이 선택하면 하면 됐다.
선택권을 준 준혁을 오디션 영상과 프로필을 떠올려 봤다.
“그러고 보니 브로드웨이 출신 배우들이 꽤 되는 거 같더라?”
“저번에 연극배우 출신을 좋아하신다고 했잖아요. 스크린으로 옮겼을 때 더 좋은 연기력을 선보일 때가 많다고요.”
이전 촬영을 하면서 여러 잡담 중에 그런 말을 한 적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걸 기억하고 맞춰줬을 줄을 꿈에도 몰랐다.
놀란 시선에 이안은 어깨를 으쓱였다.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어요. 이래 봬도 브로드웨이도 인맥이 꽤 탄탄하거든요.”
말은 저렇게 해도 마냥 쉬운 일은 아니다. 믿고 새로운 도전을 해볼 정도로 여러 배우에게 신뢰를 받고 있다는 뜻이니까.
한국에서도 아역이 성인 배우로 살아남는 건 쉬운 일이 아닌데, 동양인 아역이 할리우드에서 살아남는 건 오죽할까.
여차하면 한국에서 활동할 수 있게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무색하게 승승장구한 소년은 어느덧 살아남는 걸 넘어 굳건하게 뿌리를 내렸다.
얼마나 노력하고, 고심했을까.
책상 한쪽에 벌써 너덜너덜해진 Beautiful World 대본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준혁은 마른세수하며 정신을 차리곤 말했다.
“최대한 빠르게 오디션 일정을 잡아줘.”
“좋죠.”
의욕이 넘치는 준혁을 보며 이안은 활짝 웃었다.
제작의 두 축이 발 벗고 움직이기 시작하자 제작은 급물살을 탔다.
물론 유능하고, 열정 넘치는 상사를 둘이나 갖게 된 스태프들은 밀려드는 업무에 정신을 못 차렸지만.
겨울이 서서히 지나가고 있었다.
***
빈 배역의 캐스팅이 진행되며 촬영은 점점 가시권에 들어왔고.
-이안 프라이스 주역의 Beautiful World. 3월 초 촬영 예정.
-고준혁 감독, 이안의 도움을 받아 순조롭게 제작이 진행 중. 오랫동안 준비한 작품이니 실망하게 하지 않겠다. 자신감을 보여.
제작 진행을 알리는 기사가 툭툭 튀어나왔다.
알맹이는 별로 없는 기사였어도 한국에선 큰 주목을 받았다.
한국계이며 한국 작품에도 몇 번 나온 적이 있는 이안은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은데, 믿고 보는 감독인 준혁과 3번째 작품이라니 단번에 기대작으로 오를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이번 작품은 기존 작과 달리 국내를 노리는 작품이 아니다. 배경도 미국이고, 언어도 전부 영어였다.
할리우드를 노리고 제작되는 작품인 만큼 성공을 바라는 사람이 많았다. 할리우드에서도 이안이 참여한 작품이기에 주목을 받는 중이고.
어떤 파급력을 가진 작품인지 아는 사람을 몇 없기에 그래도 분위기는 잠잠한 편이었다.
이후 벌어질 일을 정확히 예측하는 이안만 물밑에서 조용히 움직였다.
“일단 내 딥페이크 영상은 지금 주목받으면 안 돼.”
딥페이크가 먹히지 않는 배우라는 게 미리 관심을 받으면 정작 필요할 때는 화력이 제대로 안 나올 수 있다.
최소한 1년 정도는 묻어놓을 필요가 있고, 몇 가지 조처를 취해놨다.
-딥페이크와 관련된 게시물은 금지해달란 말이죠?
“네, 우리가 반응해주면 사칭범들은 오히려 좋아할 테니까요.”
-아, 그렇겠네요. 게시물을 막도록 하겠습니다.
팬 사이트 운영자인 클라크에게 부탁해 관련 게시물을 막는 게 첫 번째였다.
지금은 팬들이 큰 관심이 안 뒀지만, ‘야, 이거 이안 딥 페이크 영상이라는데 전혀 이안 같지 않은데?’ 같은 떡밥이 도는 순간 순식간에 불이 붙을 수 있다.
온갖 이슈를 몰고 다니는 이안 때문에 팬 사이트는 다른 곳보다 끓는 점이 낮았으니 말이다.
이상한 인간들까지 잔뜩 추가돼서 어디로 튈지도 모르겠고.
언론 통제도 부족해서 새로운 땔감을 찾기 위해 팬들이 돌아다니지 않도록 땔감도 미리 던져줬다.
-안녕하세요. 이안 프라이스입니다. 조금 이르긴 하지만, 작년에 팬데믹으로 인해서 하지 못했던 팬미팅와 콘서트를 올해는 열 예정입니다. 9월에 팬미팅, 10월에는 콘서트가 진행될 예정이며, 자세한 일정은 추후 결정되면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팬미팅과 콘서트.
이안의 팬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팬미팅과 가수 팬이 그렇게 바란 콘서트 떡밥이 던져졌다.
연초를 맞아 느긋하게 있던 Fianist들이 메뚜기 떼처럼 우르르 몰려들 일이었다.
-드디어 공지가 올라왔다!
└잠시만. 10월이라고? 월드 투어를 돌기엔 너무 촉박하지 않아?!
└응, 그런 거 없다니까.
└왜 월드 투어를 안 도는데?! 영국이 멀어?!
└아, 11월에 아웃사이더가 나와서 그러네. 제작자니 그쪽 업무로 바쁠걸.
└빌어먹을 퍼리 자식들! 이게 다 너희 때문이야!
-지금 콘서트 일정을 보고 웃고 있지? 팬미팅도 방심하지 마. 상대는 이안이라고. 몇 번이나 열어줄 거 같냐.
└아니야, 우리 이안이 그럴 리가 없어!
└???: 콘서트 준비 때문에 팬미팅 일정은 최소화하겠습니다.
└멈춰! 우리 저번에는 좋았잖아. 왜 퇴보를 하려고 하는 건데?!
└그건 아웃사이더 촬영을 하면서 짐승이 되었기 때문이지.
└또 퍼리야?!
└이 정도면 일루미나티와 퍼리는 동급으로 쳐주는 게 맞다.
역시 역사와 전통이 있는 떡밥답게 공지를 올린 지 얼마나 됐다고 팬 사이트가 떠들썩해졌다.
간간이 지금처럼 관심을 돌려주면 딥페이크 일은 원할 때 터트릴 수 있을 거 같았다.
순조롭게 일을 진행하는 중 한 가지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싱어송라이터 레이첼 그레이스의 Big Wave 앨범 발매 첫 주부터 빌보드 1위 달성. 단독 곡으론 최초.
레이첼의 1위 소식이었다.
연말에도 얼굴을 보기 힘들 정도로 바쁘게 앨범 준비를 하더니 결국 좋은 성과를 거뒀다.
“축하해!”
-고마워!
배시시 웃는 그녀의 얼굴는 피로가 묻어나왔으나, 푸른 눈동자는 맑게 빛났다.
앨범 홍보로도 바빴을 텐데 이렇게 성공했으니 정말 쉴 틈이 없을 거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젓는 건 어느 업계나 비슷하니까.
-사실 그래미 때 널 보고 많은 생각을 했거든.
그녀는 이안이 가수보단 배우 일에 진심이라는 걸 잘 알았다. 잠시나마 가수 활동을 미련 없이 접을 정도로.
‘배우 활동이라면 절대 그렇게 못 했겠지.’
변성기 때 2년간 작품 활동을 못 했을 때 엄청나게 답답해하는 모습을 직접 봤으니 확실했다.
가수에 몰두한 것도 아닌데 그래미 2관왕에 올랐다. 보통 가수라면 질투하고 부러워했을 일이지만, 그녀는 오히려 부끄러웠다.
과연 이안처럼 음악을 사랑해서 했을까. 그만큼 노력했을까에 대해 의문이 들었으니까.
-그래서 정말 죽을 힘을 다해서 노력해봤어. 그러니 되더라. 네 덕분이지.
…그게 됐구나.
보통은 온 힘을 다해 노력한다고 해서 빌보드 1위에 턱하니 올라올 수 있는 게 아닐 텐데.
‘그 와중에 실력은 더 발전한 거 같고.’
원래도 음악적 능력은 차고 넘쳤는데 이번엔 앨범은 대다수 전문가가 극찬할 정도로 그 수준이 달랐다.
음악적 완성도와 대중성을 함께 잡는 건 보통 실력으로 될 일이 아니니까.
남들이 볼 때는 이안이 말도 안 되는 성장세를 보인다고 감탄하지만, 회귀라는 치트키의 역할이 컸다.
하지만 레이첼은 아니었다. 소심해서 남들과 대화도 제대로 못 하고 큰 음악적 소양도 없던 소녀가 이 정도로 성장할 줄은 처음 그녀를 만났던 때에도 짐작할 수 없었다.
“그냥 네가 대단한 거 아닐까?”
-아하하하, 나도 노력을 많이 하긴 했지.
장난스레 우쭐거린 그녀는 자신을 부르는 스태프의 목소리에 알겠다는 듯이 가볍게 손짓을 했다.
-이번에 영화 촬영을 한다며? 혹시 따로 OST 같은 게 필요하거나 하면 부담 없이 말해. 알겠지? 이번 앨범 활동이 끝나면 한동안 쉴 예정이니까.
이번 앨범 성공으로 몸값 자체가 달라진 그녀다. 다른 사람이면 돈을 줘도 얻기 힘든 기회인데 사양할 이유가 있나.
“나중에 발뺌하면 에반한테 이른다?”
-…걔는 진짜 누구 동생인지 모르겠다니까. 너나 잊지 말고 이야기해.
원조 이안 껌딱지.
에반을 떠올리며 가볍게 웃음을 터트린 둘은 가볍게 아쉬움을 털어내고 통화를 종료했다.
“OST라.”
요즘엔 너무 바쁜 터라 차마 부탁하지 못했는데 먼저 말을 해주니 마음이 편했다. 아마 그녀도 그걸 눈치채고 먼저 말을 했을 테지만.
도움을 주던 그녀에게 이젠 배려를 받다니. 묘한 느낌이 들었다.
이안은 대본을 펼쳤다.
Beautiful World의 주인공은 안소니다. 성공한 배우였지만, 무명 시절 생활고에 AI 스캔을 찍었고, 스캔본을 소유한 회사가 이걸로 오히려 그의 일자리를 빼앗으며 고생하는 처지였다.
‘그것뿐만 아니지. 외부로 유출된 스캔본이 범죄에 악용되면서 그야말로 몰락한 스타가 돼.’
자신이 찍지도 않은 영상이 인터넷을 돌아다니고, 거기선 자신이 혐오와 비웃음의 대상으로 전락해 있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
당장 작가와 배우가 파업을 벌일 때, 무명 배우는 300달러를 벌기 위해 AI 학습 업무에 지원했다.
그가 멍청해서 그랬을까?
‘어쩔 수 없던 거지. 몇 달 동안 이어진 파업에 생활이 어려워졌을 테니까.’
파업 당시 유명 배우들이 무명 배우를 지원할 돈을 괜히 모았던 게 아니다.
여기에 대한 것도 미리 준비해두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외부와 단절된 별장에 틀어박힌 안소니에게 AI로 피해를 본 사람들이 찾아오는 거로 영화는 시작되었다.
“팬데믹 때 매입한 별장을 방치하기 아까웠는데 잘 됐지.”
주변에는 숲과 호수밖에 없는 외딴 별장이니 작품에 딱 맞기도 하다. 이미 촬영 준비할 스태프들을 별장으로 보내놓은 상태였다.
슬슬 관리인과 만났을 때가 됐다 싶었는데, 양반은 아닌지 관리인에게 전화가 왔다.
-프라이스 씨.
“아, 스태프들은 잘 도착했나요?”
-네, 도착은 했는데 말이죠…
묘하게 말꼬리를 늘인 관리인은 통화를 영상 통화로 바꿨고.
-여기 미국이라며! 무슨 고라니도 아니고 왜 이래?!
-고라니가 아니라 사슴이잖아. 좀 비켜봐, 이 자식들아! 내가 이안인 줄 알아?!
길을 막은 사슴무리가 차를 수색하는 장면이 보였다.
…이래서 눈치 빠른 사슴은 싫다니까.
이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래도 꽤 떠들썩한 촬영이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