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21)
방아쇠(2)
흔히들 제1차 세계대전은 사라예보에서 울린 총성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만약 암살 사건이 없었다면 대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아마 아니겠지. 이미 독일제국과 영국, 프랑스의 대립은 지극히 위험한 수준이었으니까.’
그저 시간문제인 상황에서 적절한 계기가 되어줬을 뿐이다.
이안의 수상소감도 마찬가지였다.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Beautiful World와 명예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안 프라이스!
-배우 수상을 위한 명예 황금종려상에 대해 입을 연 칸 영화제 운영진, ‘Beautiful World와 같은 영화가 또 나온다면 심사위원들의 선택을 존중할 것.’
Beautiful World가 황금종려상을 타는 건 예상된 일이었으나, 명예 황금종려상을 예측한 곳은 없었다.
칸 영화제 역사에 굵직한 흔적을 남기는, 전 세계 연예계가 주목할 일이었으나 언론은 그곳에 집중할 수 없었다.
-이안 프라이스의 칸 영화제 수상소감 화제. 그는 성우, 배우, 가요계에 경종을 울리는 소감을 밝혔는가.
수상소감이라고 쓰고 폭탄 발언이라고 읽는 이것 때문에.
작가 파업이 먼저 일어났을 뿐 다른 업계라고 불안감이 없겠는가.
성우들은 언제 자신들의 목소리로 학습시킨 AI가 자신들을 대체할지 몰라 걱정하고 있으며, 배우들은 이안이 적나라하게 보여준 딥페이크 기술로 걱정이 치솟는 상태였다.
가요계? 그쪽도 AI 작곡과 커버곡이 저작권 침해인지 공정이용인지를 두고 시끌벅적한 동네다.
이미 분위기는 조성되어 있었다. 다만 계기가 될 총성이 필요했을 뿐.
돌아가는 판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안은 수상소감이 아니라 방아쇠를 당겼다는 것을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미국 배우 조합, 파업 중인 작가 조합과 연계해 동시 파업을 진행하나. 심상치 않은 움직임 포착.
딥페이크 기술의 발전을 경고하는 듯한 Beautiful World와 현재 기술력이 위험 수준까지 도달했다는 걸 증명하는 듯한 딥페이크 vs 배우 영상.
이안이 지펴놓은 불길에 화들짝 놀란 배우들은 기꺼이 이안이 이끄는 대로 움직였다.
“배우 조합까지 파업이라고? 일단 최대한 막아보라고!”
“조합원들의 의지가 강해서 불가하다고 합니다!”
“제기랄!”
배우 조합의 파업은 제작사 연맹으로선 날벼락 같은 일이다. 제대로 대비할 틈도 없이 일이 너무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니 말이다.
파업을 막기 위해선 그들이 내민 제안에 도장을 찍어야 하는데.
“이딴 걸 어떻게 동의해!”
배우 스캔본 사용을 완전히 금지하는 조항이라니. 이건 제작사들이 동의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다.
1960년 이후로 처음으로 두 조합의 동시 파업이라니 상상만 해도 정신이 아찔해진다. 제작사들은 심각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머리를 싸맸다.
‘배우 조합 파업을 멈출… 아니, 최대한 미루기만 해도 숨통이 트일 것 같은데.’
시간이라도 벌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어려운 일이 가능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지금과 같은 사태를 만든 당사자, 이안 프라이스였다.
“저보고 동료 배우들을 설득해 파업을 최대한 미뤄달라고요?”
-자네도 제작사를 운영하니 파업이 얼마나 우리 업계에 큰 악영향을 주는지 잘 알고 있지 않나. 자네 말이라면 조금 진정하고 냉정하게 상황을 살필 수 있을 걸세!
‘우리가 남이가! 한솥밥 먹는 사이지!’라고 달래봤으나.
“에이, 저는 일개 배우고 조합원일 뿐이에요.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하겠어요?”
-…자네가 이번 일을 꾸미지 않았나!
“제가요? 그저 이번 영화를 찍으며 마음에 우러나는 소감을 밝혔을 뿐이에요. 설마 제가 일부러 이런 상황을 만들었을 리 없잖아요.”
…구라치지 마! 이 자식아.
정계, 심지어 브로드웨이에서조차 조심스럽게 ‘아, 이건 이안 프라이스가 깔아놓은 판 같다.’라는 확신 섞인 의견이 나오는 중이다.
왜 이렇게 큰 사건을 벌였는지에 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말이다. 그나마 가장 가능성 있는 건.
‘진짜 이놈이 정계로 진출하려고 준비 중인 건가.’
이안의 인지도와 이미지는 어지간한 정치인을 압살할 정도의 수준이다. 이번 일로 만약 정계에 진출하면 업계 동료들에게 막강한 지지를 받을 기반까지 완성될 테고.
도대체 이안이 어디까지 보고 계획을 짜고 있는 건지 상상만 해도 머리가 아플 정도였지만.
‘정계고 뭐고 갈 거면 조용히 가란 말이야!’
입으로 내뱉지 못하는 욕설을 삼키며 열심히 회유를 해봤으나 이안에겐 씨알도 안 먹혔다.
완강한 거부에 제작사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 어쩔 수 없지. 좋은 말로 회유하는 데 실패했다면 실질적인 압박을 줄 수밖에.”
이안의 주변인을 건드려볼까 잠시 고민했지만, 빠르게 포기했다. 주변에 거물이 너무 많아 자칫하면 큰 역풍이 불 수 있으니 말이다.
일단 경제적 손실을 입히도록 넷플러스에 협조 요청을 했다.
“아웃사이더 시즌2 제작으로 압박을 주라고요?”
“그렇습니다. 이대로 가면 시즌2 제작이 엎어질 수 있다고 하면 마음을 바꾸지 않겠습니까?”
시즌2 제작은 제작자 겸 배우인 이안에게 막대한 돈을 벌 기회다. 일반적으론 좋은 협상 카드가 되겠지만, 문제는 이안은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란 점이다.
다른 제작사들보다 그를 오랫동안 상대해온 넷플러스 측은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협박하면 보란 듯 포기할걸요.”
“그럴 리가. 한두 푼 받는 게 아니잖습니까.”
“딱히 돈에 목숨 거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시즌2 제작 포기를 언론에 밝히며 이번 일 때문에 압박을 받았다고 대놓고 공개하겠죠. 만약 예상처럼 진짜 정치인이 될 생각이라면 더욱 가능성이 크고요.”
동료 배우들을 위해 막대한 제작비를 포기한다? 이게 언론에 공개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안의 이름값은 또 한 번 치솟을 테고, 넷플러스는 집중포화를 받을 게 뻔했다.
물론 이렇게 되면 넷플러스와 완전히 관계가 틀어지겠지만.
‘이번 일이 끝나면 디즈너 같은 경쟁업체가 냉큼 손을 내밀겠지. 누굴 멍청이로 알고 있나.’
그의 능력을 잘 알고 있는 만큼 남 좋은 일을 할 생각이 없다.
“우리는 무조건 아웃사이더 시즌 2를 제작할 생각입니다. 다른 방법을 찾으시죠.”
“…망할. 퍼리 드라마 시즌2를 그렇게 만들어야겠습니까?”
“당연한 말을 하시네요. 돈이 될 게 뻔한데 만들어야죠.”
‘응, 우린 퍼리 좋아. 무조건 만들 거야.’라는 답변을 내놓은 넷플러스 때문에 이 방법은 쓸 수 없었다.
제작사들은 다른 수단을 떠올렸다.
“Beautiful World로 압박하죠. 스크린 개수를 팍 깎으…”
“미쳤습니까? 누구 마음대로 스크린 개수를 줄여요.”
Beautiful World의 배급사는 바로 반발했다.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입니다. 스크린 개수를 늘리면 늘렸지 줄이는 게 말이 됩니까? 그리고 우리 CEO인 필릭스 에드워즈께서도 절대 용납 안 할 겁니다.”
빌어먹을 괴식가 같으니라고.
이안의 아역 시절부터 옆에 끼고 흉흉한 음식을 먹으러 다녔다는 건 꽤 유명한 일이다. 얼마 안 되는 식사 친구로, 거의 손자처럼 생각한다는 것도 잘 알려진 일이고.
“거기다 주주들도 그걸 지켜보고 있을 거로 생각하십니까? Beautiful World의 흥행을 기대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말이죠.”
모든 제작사의 장기적 이익을 위해 손실을 감내하자는 말이 통할 리가 없다.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된다. 마치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진즉에 예상한 것처럼 철저한 대비를 해놓은 상태였다.
더 큰 문제는 시간이 더는 자신들 편이 아니란 점이다.
-성우 업계로까지 번진 파업의 불길. 배우 조합, 비디오 게임 업계에 파업 승인 투표 계획을 보낼 예정.
-AI 커버곡과 관련해 의견을 쏟아내는 가수들. 이안 프라이스, ‘미래를 위한 건전한 토론 같다.’라고 의견을 밝혀.
이미 연예계 전역에서 관련 이야기로 시끄러웠고.
-충격! 배우 조합 파업 결정! 1960년 이후 두 조합이 동시 파업을 선언하며 할리우드가 완전히 정지되다.
결국, 찾아온 파국을 막지 못했다.
따스한 6월, 할리우드는 완전히 얼어붙었다.
***
웹 GPT, 작가 파업, Beautiful World, 칸 영화제의 수상소감 그리고 배우 조합의 파업.
급박하게 돌아가는 흐름의 중심에는 이안이 있었으며 팬들은 이런 상황이 매우 익숙했다.
-뭐야, 이안이 파업이 계기가 됐다고? 이거 완전 평소 이안 아니야.
└연례행사 같은 거지. 가만히 있지를 못하니까.
└이젠 뉴스에서 얼굴을 못 보면 섭섭할 거 같아.
└정보) 할리우드를 뒤집어 놓은 허먼 폭로전도 이안이 계기가 됐고 샬럿이 밝혔었다.
└…어릴 때부터 걸어 다니는 폭탄이었네.
└음, 그게 이안이니까.
이제 와서 놀라기엔 새삼스럽다.
물론 그렇다고 팬 사이트가 조용하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으아아악! 배우 파업으로 올해 팬미팅과 콘서트는 불가능하다니. 이게 무슨 소리야! 이아아아안!
└월드 투어, 올해 열릴 월드 투어는 어디 갔어?
└응, 그런 건 없어.
└속보) 아웃사이더 시즌2 파업으로 제작 시기 불확정. Beautiful World 개봉 시기 미정.
└아, 아니야! 이럴 순 없어!
적극적으로 파업에 동참하는 이안으로 인해 연기되거나 사라진 일정에 절규했으며.
-교주께서 혁명의 불씨를 피우시니. 모든 노동자여 단결하라!
└…염병할. 이 자식들 사이비 빨갱이로 진화했다고?!
└운영자! 운영자!
└다들 이 사진을 보고 진정해. (파업 피켓을 든 피어스 그림)
└망할, 누가 우리 사이트에 독을 풀었어?
└…이안 프라이스?
└이아아아안! 역시 너였어?!
슬픔을 해학과 풍자로 즐기는 팬들이 튀어나오며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팬들의 반응을 살핀 이안은 가볍게 웃었다. 기대하던 일정이 밀려났으나 파업에 반대 의견을 내는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자신의 선택을 응원하는 것으로 볼 수 있었다.
-허니, 진짜 정치인이 될 생각은 아니지?
“전혀 아닌데요.”
-아니라면 됐고. 진짜 동료 배우를 위해 벌인 것 같다고 그렇게 설명을 해도 믿지를 않더라. 고작 그런 이유로 일을 이렇게 크게 만들 리 없다면서 말이야. 이해 못할 건 아니긴 해. 그런 이상한 사람이 흔한 게 아니니까.
“이상하다뇨. 달링, 섭섭하게 이러기 있습니까.”
-하, 아주 이럴 때만 달링이지? 아무튼, 아직 전체적인 분위기는 방관이야. 이제 막 파업이 시작됐으니까.
정치인이든 뭐든 당장 움직이기엔 상황 파악이 우선일 것이다. 정보를 캘수록 자신이 두각되는 건 어쩔 수 없고.
‘마냥 좋은 일은 아니지. 앞에서 많은 사람을 이끈다는 건 그만큼 적을 만든다는 뜻과 같으니까.’
할리우드에서 추잡한 성범죄를 폭로한 허먼 사건 때 샬럿이 감내했던 것처럼 말이다.
더는 남의 등에 숨어 있지 않고 앞으로 나섰기에 당시 그녀가 얼마나 큰 결심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몇 번 안 만난 꼬마의 말을 믿고 일을 진행할 때는 얼마나 큰 용기가 있었는지도 새삼 깨닫게 됐고.
“로티, 고마워요.”
짧은 침묵 후 콧방귀 뀌는 소리가 들렸다.
-하, 알면 됐어. 너 때문에 내가 늙는다 늙어. 변동사항이 있으면 연락할게.
후다닥 끊는 통화에 이안은 웃음을 터트렸다.
한때 할리우드 악동께선 고맙다는 말을 듣는 게 여전히 낯선 것처럼 보였다.
웃음을 멈추고 일단 상황부터 정리했다.
원래 계획은 파업을 단기간에 끝내기 위해 최대한 빠르게 일을 키우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배우들뿐만 아니라 조합에 속한 성우들도 게임 업계에 파업을 준비 중이라.”
사실 원래 역사에서도 성우 업계도 지금처럼 파업 준비에 들어갔었다. 결론은 흐지부지됐지만.
‘너무 늦은 탓이지.’
5월에 시작된 작가 파업이 마무리 단계로 들어간 9월에 파업 준비에 들어갔으니 말이다. 작가와 배우에 비해 성우의 영향력은 더 적은 탓에 만족스러운 협상 결과를 얻지도 못했고.
하지만 이번에는 성우까지 함께 파업 준비에 들어가며 덩치가 더 커졌고 관심도 함께 받는 중이다.
가요계는 파업은 아니지만, SNS 등을 통해 개인 의견이 빠르게 교류 중이다.
대중의 관심이 몰릴수록 관련 법 제정이 더 빠르게 일어날 수 있으니 이 또한 좋은 흐름이다.
“그럼 우선 무명 배우들을 위한 기부금부터 모아볼까.”
벤이나 데미안은 물론이고 다른 유명 배우 중에도 기꺼이 지갑을 열어줄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아무리 단기 결전을 노린다고 해도 두세 달은 기본으로 지나갈 테니 이 정도 준비는 필요했다.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받기에도 좋고.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관심이 시들지 않도록 계속 땔감을 넣어주는 거지.’
마침 적절한 방법도 있었다.
“나와 경쟁할 딥페이크 영상들.”
바로 Pryce’s Production 사이트에 들어갔다.
꽤 많은 영상이 지정된 장소에 올라왔다는 걸 들은 이안은 기대감을 갖…
“…잠시만.”
영상을 본 이안은 헛웃음을 지었다.
딥페이크 영상 수준이 미달이라서? 아니, 그런 게 아니었다.
“세상에 이건 상상도 못 했는데.”
영상을 재생하니 자신을 활용한 콜라 광고가 보였고, 그 옆에는 신형 핸드폰 광고가 보였다.
‘아니, 평소 광고를 맡기기 힘든 이안을 활용할 기회라고?!’ 허겁지겁 달려온 광고 콘티라고 부를 수 있는 영상과.
-제 본업은 가수죠. 그러니 2024년에는 월드 투어를 열도록 하겠습니다!
-약속합니다. 아웃사이더는 시즌2를 넘어 시즌10까지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기회에 팬심을 채우려는 사심이 가득 담긴 영상까지.
정말 규정에 딱 맞는 선에서 온갖 영상이 판을 치고 있었다.
“관심은 많이 받겠네. 관심은.”
가볍게 웃음을 터트린 이안은 땔감 준비를 위해 빠르게 영상을 훑었다.
인간과 AI의 대결.
오랫동안 회자할 영상 제작이 또다시 시작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다시 한번 관심이 쏟아졌다.
-제발, 우리 회사 제품을 선택해달라고 이야기 좀 해주시죠.
-다른 건 몰라도 다른 콜라 제품은 안 됩니다! 거기 광고는 안 돼요!
치열한 물밑 경쟁과 함께 말이다.
덫
광고계에서 이안의 위상은 어느 기업이나 군침을 흘릴 정도로 굉장히 높았다.
20대 초반에 배우와 가수로 확고한 위상을 갖고 있으며 팬데믹으로 전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졌다.
할리우드 스타라면 누구나 하나쯤 있는 스캔들이 있기는커녕 깔끔한 사생활로 어린 자녀를 둔 부모도 안심 도장을 쾅쾅 찍어준 스타였다.
‘이렇게 성공한 스타가 아시아계라는 것도 중요하지.’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는 데 이만한 인물도 없었다.
심지어 스타가 되는 과정도 한 편의 영화와 같았다.
부모의 얼굴도 모르는 어린 나이에 입양된 아이는 영화 촬영을 위해 거지꼴을 하고 다니는 벤 로버츠에게 콘도그를 양보해주며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으며.
견학 삼아 부른 영화 촬영장에서 엄청난 연기력을 선보이더니 결국 invisible children의 조연으로 캐스팅되며 승승장구하며 전 세계적인 스타로 거듭났다.
그것도 20대 초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그래, 정말 완벽한 광고 모델이다. 딱 한 가지 문제를 빼고.
“우리는 광고 모델로 이안 프라이스를 노려야 합니다.”
“이안 프라이스라. 좋지. 근데 어떻게 광고를 맡길 건가?”
이 인간이 광고 섭외 요청을 잘 안 받는다는 것.
기업이 볼 때는 진짜 속 터지는 일이다. 달러를 다발로 내밀면 뭐하나 당사자가 받지를 않는데.
섭외를 위해 그를 조사하고 내린 결론은 물욕이 없는 건 아니지만, 돈에 어느 정도 초연한 것도 사실이었다.
“돈을 벌려고 했으면 진즉에 월드 투어를 열었겠죠. 매진 행렬이 뻔한데 꿋꿋이 안 여는 것 좀 보세요. 일반적인 관점으로 접근해서 될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시간이 없다는 말도 단순한 핑계가 아닙니다. 워낙 다재다능한 사람이라 그런지 매일 밤늦게 자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하더군요.”
광고 한 편 찍는 시간에 대본 하나를 더 볼 인간.
다른 스타들과 방향만 다를 뿐이지 이쪽도 정상은 아니었다.
아역 시절부터 조기 투자에 성공해 꾸준히 광고 모델로 활용하는 언더힐을 부러워하며 방법을 찾거나, 내심 포기하고 있을 때쯤.
딥페이크 vs 배우의 영상이 올라왔다.
올린 지 얼마나 됐다고 천만 단위의 조회수를 가뿐히 넘기고 수많은 파생 영상을 만들며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끄는 사건.
세상은 또 한 번 진행되는 인간과 AI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주목했지만.
“이거야! 이거라고! 이거로 광고 영상을 만들자.”
자신으로 얼마든지 딥페이크 영상을 만들라고 하지 않나. 그럼 광고를 만들어도 되겠네?
이안의 선택만 받으면 진짜 똑같이 촬영해주기까지 한다. 장기적으로 억 단위 조회수가 나올 영상에 자기 회사 광고를 끼워 넣을 수 있다? 이걸 어떻게 포기하겠는가.
서둘러 광고 콘티를 만들기 위해 광고 제작자들을 불러모았고, 몇 다리 건너면 알만한 사이인데 다른 기업들도 이런 움직임을 모를 수 없었다.
특히 라이벌 기업들은 더 분주하게 움직였다.
‘다른 곳이면 몰라도 그쪽 광고를 하게 둬선 안 돼. 어떻게 하면 이안의 관심을 받을 만한 광고로 만들 수 있지?’
‘딥페이크 영상을 만들면서 광고 계약을 따로 맺는 건 어떨까. 어차피 TV 같은 데 광고하려면 따로 계약을 맺어야 하잖아?’
에이전트인 오스틴이 난데없이 이안에게 쏟아지는 광고 계약에 시달리게 된 이유였다.
기업뿐만 아니라 이안의 팬들도 이번이 기회라는 걸 깨달았다.
평소 이안에게 듣고 싶었던 말과 행동을 실제로 볼 기회. 이 기회를 단번에 잡아낸 팬들은 사심을 꾹꾹 담아 영상을 찍어냈다.
두터운 팬덤을 자랑하는 만큼 뛰어난 재주를 가진 팬들도 여럿 있었으니 말이다.
영상 소재는 차고 넘친다.
중요한 건 어떤 영상을 선택하는지였다. 팬들이 바라는 영상? 노력한 걸 생각해서라도 몇 개 찍는 건 어렵지 않다.
고민이 되는 건 기업 광고 영상이었다.
“일단 광고를 받아서 돈을 버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야.”
물론 파업이라고 해서 광고도 못 받는 건 아니다. 하지만 딥페이크 vs 배우 영상이 배우 파업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걸 생각해야 했다.
파업으로 생계가 힘든 무명 배우들이 광고를 받은 걸 봤을 때 어떤 생각이 들까.
‘우리는 이렇게 힘든데, 정작 파업을 시작하게 만든 인간은 오히려 떼돈을 버네.’
이런 생각을 하지 않겠는가?
노숙자로 살아봤기에 굶주렸을 때 느끼는 이 박탈감이 얼마나 강렬한 감정인지 너무나 잘 알았다.
호시탐탐 파업을 와해를 위해 기회를 노리는 제작사들도 이걸 가지고 언론 플레이를 할 테고.
“그렇다고 기업이 만든 영상을 전부 포기하는 것도 아쉬워.”
이안의 선택을 받기 위해 각 잡고 만든 광고 영상이다. 자본주의 맛이 강하게 첨가된 영상의 수준은 놀라울 정도였다.
거기에 무의미한 일반 영상보다 광고 영상이 대중의 관심을 끌기도 더 좋다.
‘물론 영상이 아쉽다고 해서 공짜로 해줄 생각도 없어.’
돈에 목매는 성격은 아니지만, 자기 몸값을 후려칠 정도로 바보 같지도 않다.
더군다나 상대는 돈이라면 넘치는 대기업들 아닌가. 공익 광고라면 몰라도 공짜로 해결해줄 생각은 없다.
어떻게 하면 이 기회를 잘 활용할 수 있을까.
이안은 머리를 팽팽 굴렸고 곧 짙은 미소를 지었다.
“덫을 깔아볼까.”
파업 와해를 위해 수작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한 방 제대로 먹일 수 있을 거 같은데.
관심이 식기 전에 빨리 영상 제작을 하고, 계획대로 진행하려면 최대한 빨리 움직일 필요가 있다.
이안은 바로 오스틴에게 전화를 걸었고.
-…안 당할 수 없긴 할 거 같군요. 알겠습니다. 그 조건을 들어줄 곳이 있는지 빠르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마워요.”
-아닙니다. 파업 덕분에 마침 할 일도 별로 없었거든요.
진심 반, 장난 반.
오스틴의 말에 웃음을 터트린 이안은 통화를 종료했다.
얼마 후 준비를 끝마치고 영상 촬영에 들어갔다.
***
작가 조합과 배우 조합의 동시 파업이 진행 중인 할리우드.
작가 조합이 파업을 결정한 지 한 달도 안 돼서 빠르게 진행된 일이고 여러 곳에서 충격이 일어났다.
-기약 없이 중지된 촬영 현장들. 영화는 물론이고 드라마도 충격을 피할 수 없어.
-CBO, 드라마 촬영 중단으로 대체 방송 편성 계획.
작가 없이는 촬영할 수 있지만, 배우 없이는 불가능하다.
줄줄이 중단되는 촬영 현장에 제작사들은 아찔함을 느꼈다. 중단은 단순히 촬영 기간을 늘리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막대한 고정 지출 비용이 매일 같이 들어가며 제작비가 무의미하게 늘어나는 중이니 말이다.
촬영이 끝나고 개봉만 앞둔 영화도 ‘아, 나는 아니구나.’라며 안도할 일이 아니었다.
-시사회에서 사진만 찍고 사라지는 할리우드 배우들. 파업이 미친 영향.
이미 제작이 끝난 작품이라도 인터뷰 및 홍보 활동은 전면 금지이다. 시사회에 참여하는 것도 마찬가지고.
배우가 가진 마케팅 가치를 생각하면 개봉을 앞둔 영화들은 날벼락을 맞은 꼴이고, 아직 개봉 일정에 여유가 있는 작품도 제발 파업이 빨리 끝나기만을 간절히 비는 상황이었다.
물론 파업을 하는 작가와 배우라고 좋은 상황인 건 아니다.
출혈 경쟁인 파업은 한쪽이 더는 버티지 못할 때까지 싸우는 일이니 당연한 일이다.
-에미상 수상 후보 발표 연기. 9월로 예정된 기존 개최도 불확실하며 연기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혀.
얼어붙은 할리우드로 인한 피해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작가와 배우들도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이번에 실패하면 다음을 기약할 수 없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으니 말이다.
여러모로 힘든 시기이다.
피켓을 들고 언론에 인터뷰하는 것도 지치는 일이고. 이 시기에 SNS 글이 하나 올라왔다.
-안녕하세요, 이안 프라이스입니다. 딥페이크 vs 배우의 다음 시즌 영상이 준비됐습니다. 내일 업로드 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파업에 큰 영향을 끼친 영상.
그 두 번째 영상이 올라온다는 것에 파업하는 이들은 물론이고 대중들도 깊은 관심을 표했다.
그럴 만도 한 게 딥페이크 vs 배우의 관심을 보고 비슷한 도전을 한 이들이 몇몇 있었는데.
-저런 영상을 갖고 오면 누가 구분을 못 하냐? 얼굴하고 목하고 피부색 다른 것 좀 봐라.
일부러 조잡한 딥페이크 영상을 가져왔다가 욕만 먹거나, 진짜 높은 수준의 딥페이크 영상을 갖고 왔다가.
-그래서 누가 진짜냐? 정답을 봐도 모르겠는데.
-포브스 선정 AI에 가장 먼저 자리를 빼앗길 배우.
오히려 조롱만 잔뜩 당하며 이안이 만든 영상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직접 증명하는 꼴이 됐다.
멋모르고 도전했다가 다른 배우들이 줄줄이 머리통이 깨지고 나서야 딥페이크 vs 배우는 범접할 수 없는 콘텐츠가 됐다.
이번에는 어떤 영상을 갖고 올까 기대하던 사람들은 영상이 업로드 시간에 맞춰 몰려갔고.
-유료 광고 포함.
영상 한쪽에 떠 있는 문구를 봤다.
PPL이라도 받았나, 가볍게 넘어간 사람들은 영상에 집중했다. 처음 나온 영상은 이안의 팬이 만든 영상이었다.
-2024년에는 월드 투어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모든 가수 팬들의 꿈.
직접 월드 투어를 입에 올리는 이안을 보며 팬들은 만세를 외쳤다.
-당장 박제시켜! 2024년은 월드 투어의 해가 될 것임을 선포한다!
└우리 이안은 거짓말 같은 건 안 해. 그렇지?
└차라리 거짓말이라고 해줬으면 하는 말을 했으면 모를까 거짓말은 안 하지.
└으으으, 머리가. 좌석이 몇 개라고?!…으윽!
└아무튼, 이걸 직접 고른 걸 보면 내년에는 월드 투어를 볼 수 있겠지?!
└???: 그냥 영상을 따라 한 것뿐인데요?
└닥쳐! 난 지금부터 내년 티켓팅 준비할 거야.
단순히 설레발로 치부할 수 없다. 아무 이유 없이 저 영상을 선택했을 리가 없으니까.
기자들은 서둘러 ‘2024년 이안 프라이스의 월드 투어?!’라는 기사를 올릴 때쯤 다음 영상이 시작됐다.
영상을 본 사람들은 바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똑같은 두 개의 영상 그리고 그걸 비교해 진짜 이안을 찾는 게 기존 방식이었다면 이번에 나오는 영상은 달랐다.
한쪽 영상에선 의자에 앉아 있는 이안이 손뼉을 치자 귀엽게 생긴 고양이가 쪼르르 달려와 품에 안겼다.
-역시 고양이가 좋지!
애교를 부리는 고양이와 함께 평화롭게 놀며 자신이 고양이파라고 선언하는 영상과 달리 반대쪽은 육중한 발걸음이 들렸다.
품에 안기다 못해 덮칠 것 같은 큰 몸집.
“…퓨마?”
고양이가 아니라, 고양잇과 맹수.
이안의 품에서 애교를 부리는 모습을 사람들은 멍하니 바라봤다. 이성적으로 보면 고양이와 노는 게 진짜 이안일 텐데.
‘왜 퓨마랑 노는 이안이 진짜 같지.’
이성과 느낌이 따로 노는 느낌. 부조화 속에서 허덕일 때 활짝 웃은 이안이 정답을 알려줬다.
-짜잔! 퓨마랑 노는 게 진짜였답니다.
…그래서 왜 퓨마랑 놀고 있는 건데.
황당하기도 하고 ‘역시 본업은 드루이드인가.’라는 생각이 떠오르며 헛웃음을 짓기를 잠시.
이후 나오는 영상은 왜 유료 광고 포함이라는 문구가 포함되었는지 알려주는 내용이었다.
빨간색 콜라를 마시며 파란색 공을 톡톡 차며 노는 이안의 모습.
누구나 알법한 회사의 신형 핸드폰을 들고 연기를 하는 모습.
기업에서 신경 써서 그런지 딥페이크 영상도 굉장히 높은 수준이었다. 마치 앞으로 광고 모델도 이렇게 대체될 수 있다는 걸 알려주기라도 하듯.
어쩌면 처음 이안이 이 영상을 만든 의도에 가장 가까운 영상이기도 했다.
‘알고는 있는데. 조금 그렇긴 하네.’
굳이 광고 영상을 받았어야 했을까. 아쉽다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문제 될 건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배우 파업 시기라는 걸 생각하면 마음속에 걸렸다.
“하, 뭐 그렇지. 이안 정도 되면 우리랑 달리 파업 때문에 고생할 것도 없을 테니까.”
“어쩌겠냐. 불만이면 무명을 탈출하면 될 일이지.”
다른 배우라면 이런 아쉬움을 표현하지 않았을 테지만, 상대는 이안이었다.
여러분의 가치를 찾을 때라고 앞장선 사람이 파업이라도 자신은 힘들지 않다고 대놓고 보여주니 사람이라면 불편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번 파업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에 대한 믿음이 살짝 흔들리는 모습이 보인다.
파업을 포기하게 하고 싶은 제작사들이 볼 때는 좋은 기회였다.
-제작사 대표인 로만 포스터, ‘무명 배우를 위해서라도 파업을 멈춰야 한다. 딥페이크 vs 배우의 두 번째 영상만 봐도 유명 스타들은 전혀 힘들지 않으니까.’
며칠도 안 돼서 여론몰이했으니 말이다.
기자들도 비슷한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안으로선 억울할 수 있는 흠집 내기를 시작했을 때쯤.
“슬슬 우리 쪽 기사도 올리죠.”
-알겠습니다.
이안의 지시와 함께 새로운 기사가 올라왔다.
-딥페이크 vs 배우 두 번째 영상 업로드 전 입금된 거액의 기부금. 기부자는 이안 프라이스?!
-파업으로 인해 생계가 힘든 이들을 위해 광고비 전액을 기부한 이안 프라이스, ‘기부에 동의하며 파업에 힘을 보태준 기업들이 고맙다.’
바로 역풍이 불었다.
***
파업을 막기 위한 추잡한 수작이라며 인터뷰를 한 제작사 대표가 욕을 먹는 중이다.
돌아가는 상황을 본 이안은 전화를 걸었다.
“수잔, 도와줘서 고마워요.”
-약간 바람만 넣었을 뿐인데 뭘요. 약속은 잊지 않았죠?
“물론이죠. 파업이 끝나는 대로 아웃사이더 시즌2 제작 계약을 검토할게요. 근데 이렇게 도와주셔도 돼요?”
-파업은 파업이고 비즈니스는 비즈니스죠.
냉정한 대답에 이안은 활짝 웃으며 물었다.
“혹시 제 두 번째 비즈니스 파트너가 될 생각은 없어요?”
샬럿의 다음을 이을 인재를 찾았다.
로티가 도망치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