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22)
큰 승리(1)
이안은 집 내부를 둘러봤다.
이 집을 떠난 지 몇 년이 지났으나, 이젠 구형이 된 거실의 TV부터 작은 장식까지 고스란히 남은 거실의 풍경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했다.
옛집.
가족을 잃고 쫓겨나듯 떠난 낡은 아파트를 자신의 의지로 떠나 새로운 터로 삼았던 베벌리힐스의 주택을 보니 묘한 감상이 찾아왔다.
이안에게 집이란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곳이었다. 노숙자란 추억이 묻을 정도로 한곳에 오래 머물기 힘든 인생이었으니까.
‘추억이라.’
수많은 인연을 쌓은 장소는 분명 추억의 장소였다. 이것조차 낯선 느낌인데 같은 감상을 품은 사람이 여럿 있다는 것 또한 신기한 기분이었다.
“와! 진짜 고스란히 유지해놨네. 이 방석도 그대로야!”
“아, 그거 네가 방귀를…”
“대니, 네가 진짜 죽고 싶구나. 응?”
“읍! 으윽!”
방석으로 입을 막혀 발버둥 치는 다니엘과 가만히 있으라며 머리통을 두들기는 도로시가 보였다. 어린 시절과 달라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도와달라며 손짓하는 그를 위해 이안은 핸드폰을 내밀었다. 화면을 떨리는 눈으로 본 그는 결심을 굳힌 듯 손가락을 놀렸다.
-Hello, it’s me.
경쾌한 반주와 함께 흘러나오는 나지막한 미성.
라이의 정체를 처음으로 드러낸 역사적인 곡인 Two Secrets의 도입부가 시작됐고.
“꺄아아악! 너희 진짜 죽을래?! 당장 안 꺼?”
도로시는 흑역사에 고통스러워하며 이불 대신 다니엘을 걷어찼다. 이 소란은 오드리와 레이첼이 들고 온 간식거리를 내려놓으며 간신히 끝이 났다.
어릴 때부터 즐겨 먹던 과자를 집어 든 도로시는 장난스레 한숨을 내쉬었다.
“졸업하고 이제 일 좀 제대로 해보려고 했더니 백수 생활이네. 안 그래?”
“지금이라도 프로레슬링으로 전향을 하는 건 어때? 그쪽도 연기라면 연기인… 윽!”
“시끄러워. 연약한 여인에게 못하는 말이 없어.”
도로시는 TV를 켜고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한 뉴스 채널에 멈췄다.
조금 전까지 피켓 시위에 동참했던 일행의 모습이 뉴스에서 나오는 중이다.
-만약 제작사들이 방해와 시간 끌기로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실수라고 말하고 싶네요. 우리는 미래를 위해 지금의 희생을 감내할 수 있으니까요.
화면 속 이안의 경고에 따라 주변에서 가벼운 환호성이 들려왔다.
“파업이라는 피켓 내용만 지우면 선거 유세 현장인 줄 알겠어.”
“여론을 이끌어야 한다는 점에서 비슷할지도 모르겠네.”
파업은 기본적으로 노사 간의 일이지만,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가 아닌 대중의 지지도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파업은 시작부터 대중의 지지를 꽤 많이 받는 중이지.’
AI로 미래의 직업이 위태로울 수 있다. 이건 작가나 배우뿐만 아니라 대중도 느끼고 있는 위협이다. 공감되기에 응원하게 된다.
여론조사에서 파업의 지지율이 70%가 넘어가는 이유였다.
“이번에 광고 문제로 역풍이 불면서 우리 쪽을 지지해주는 여론도 더 커지는 중이고 한동안 제작사 측에서도 함부로 움직이진 못할 거야.”
멍청해서 당했는가? 그건 아니었다.
빠르게 불리해지는 상황에 생긴 초조함, 뒷거래한 넷플러스의 은근한 부추김, 광고 계약을 맺은 기업에서 일부러 흘린 가짜 정보 등.
할 수 있는 조치는 전부 취해 놓았다.
‘그러게 정보 확인이 제대로 되고 움직여야 할 거 아닙니까?! 어떻게 할 겁니까!’
‘나이에 속으면 안 된다고 했잖습니까. 노련한 정치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말로 같은 제작사 사이에서도 욕을 먹는 사람은 억울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번 일을 곱씹을 때, 레이첼이 입을 열었다.
“이안이 유도한 일이지?”
“글쎄, 어떻게 생각해?”
능글맞은 물음에 보석 같은 푸른 눈이 곱게 휘었다.
아일라의 딸이라는 커다란 그림자에서 벗어나 한 명의 가수로서 많은 팬을 끌어모으고 있는지 이해가 되는 아름다운 미소였다.
“일부러 정보를 늦게 밝힌 거잖아. 어차피 계획과 달리 제작사 측에서 움직이지 않더라도 네가 손해 볼 건 없지. 기부했다는 정보를 공개하면 여론은 언제든 바뀔 테니까. 안 그래?”
“광고로 받을 수 있는 돈을 기부했는데 손해가 없다니.”
“그건 손해라고 생각하지도 않잖아. 거기에 위튜브에 올라가는 광고 비용만 기부한 거지 나중에 따로 광고 계약을 맺을 거 아니야?”
…이상하다. 주변에 스파이가 있었나.
너무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고개를 주억거리자, 도로시가 혀를 찼다.
“진짜 내가 사기꾼으로 크지 말라고 했지?”
“어허, 사기꾼이라니 정당한 정치질이라고 해줄래.”
범죄도 아닌데 사기라니 참 섭섭한 표현이다.
그것보다.
“어떻게 알았어. 혹시 누가 알려주기라도 했어?”
“아니. 함께 지낸 세월이 얼마나 되는데 이 정도는 눈치챌 수 있지. 조금만 고민하면 알 수 있는걸.”
진짜 어려운 것도 아니란 듯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도로시는 ‘진짜 이안2는 오드리가 아니라 레이첼이었나?’라며 경악하곤 이안에게 물들지 말라고 설교를 시작했지만 말이다.
“…내가 뭐 어떻다고 그러는지 모르겠네. 할리우드에서 살아남으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야! 너만 그렇게 생각해!”
섭섭한 평가였다.
괜히 과자를 오독거리며 씹고 있자니 다니엘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파업은 언제 끝날 거 같냐.”
원래라면 거의 5개월 가까운 기간 동안 파업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운 좋게 직격타를 피한 칸과 달리 8, 9월에 열리는 베니스와 토론토 영화제는 타격을 피할 수 없었고.
‘주연 배우 없이 홍보할 수도 없으니 여러 영화가 줄줄이 개봉 연기가 되기도 했지.’
이미 잔뜩 뒤바꿔놓은 미래이기 때문에 언제 파업이 끝날지 확신할 순 없다.
“최소한 8월 안에 끝내도록 노력해봐야지. 길게 끌고 가서 좋을 것도 없고 Beautiful World 개봉도 신경 써야 하니까.”
황금종려상을 받은 작품이라고 항상 흥행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흥행 결과는 아쉬운 경우가 많았다.
작품성과 상업성을 둘 다 쥐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니까.
‘Beautiful World는 그 두 가지를 전부 움켜쥔 흔치 않은 영화고.’
이런 영화로 제대로 이익을 못 거두는 것도 바보 같은 행동이다.
“8월이라. 가능할까?”
어느 쪽이 승기를 잡았는지는 명백하다. 하지만 그게 빠른 항복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달린 이권을 생각하면 최대한 버티려고 할 테니 오드리의 걱정은 이해가 되지만.
“최대한 가능하게 만들어야지.”
이안은 과거를 돌이켜봤다.
배우로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왔다. 배우로서 떳떳하게 활동할 수 있는 선에서 발버둥이란 발버둥은 전부 쳤다고 볼 수 있다.
‘얼핏 보면 무의미하고 사소해 보이는 노력이 쌓이다 보면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내곤 하는 법이지.’
파업을 단축하기 위해 사소한 것부터 노력하면 될 일이다.
***
세상에 질 것 같은 싸움을 시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건 제작사 연맹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생각해봐도 작가 파업은 우리에게 마냥 불리한 싸움이 아니었어.’
어쩌면 자기합리화일 수 있지만, 승산이 높은 싸움이다. 시간을 질질 끌어 최대한 지칠 때 몇 가지 이권을 던져주면 알아서 무너질 거란 판단이 들었으니까.
“근데 일이 왜 이렇게 됐을까.”
명백히 일이 불리하게 돌아간다.
예상보다 훨씬 빠른 배우 파업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피해와 갈수록 안 좋아지는 여론.
시간이 지날수록 부담이 쌓였다.
“가장 큰 원인은 이안 프라이스죠.”
이제는 톱스타 반열에 올랐다고 할 수 있는 인물.
물론 대단하긴 하지만, 그래 봐야 배우 한 명에 불과하다. 파업이라는 거대한 사건에는 기껏해야 톱니바퀴 하나의 역할일 뿐이다.
‘그래, 그게 보통이긴 하지.’
근데 이 톱니바퀴가 혼자 맹렬히 돌아가는 게 아닌가. 자연스럽게 다른 부품들도 덩달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Beautiful World와 딥페이크 vs 배우로 파업에 관한 관심을 끌더니 배우 파업까지 선동했다. 그 뒤로는 교묘하게 광고를 받으며 역으로 자신들의 손발을 묶었고.
“정치인을 상대하는 건지 배우를 상대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안 그렇습니까?”
“차라리 정치인이 낫죠. 최대한 로비스트로 협상이라도 가능할 테니까요.”
뇌물도 안 먹혀, 협박도 안 먹혀.
상대하는 처지에선 뭐 이런 인간이 다 있나 싶었다.
“…정계에서 피해가 더 커지기 전에 최대한 빨리 파업을 마무리 짓는 게 낫지 않냐는 말이 슬슬 나오더군요.”
“들었습니다. 드레이퍼 의원을 중심으로 그런 목소리가 나오더군요.”
드레이퍼.
이 성씨만 들어도 누가 바람을 넣었는지 알 수 있다.
‘망할, 이안 프라이스 같으니라고.’
역시 다른 유명 여배우들을 두고 레아 드레이퍼를 고른 이유가 있었다. 착하고 성실하다는 대중의 이미지와 달리 속이 얼마나 시커먼 인간인지 알 수 있다.
마음 같아선 얼마나 이안이 겉과 속이 다른 인간인지 밝히고 싶지만 씨알도 안 먹힐 게 뻔했다. 오히려 치졸하게 무슨 소리냐는 말을 듣겠지.
“이건 당장 큰 문제가 안 됩니다. 우리가 정치인에게 준 후원금이 한두 푼도 아니고요.”
“맞습니다. 당장은 괜찮겠죠.”
배우나 작가들이 후원금을 많이 주겠나 사업적 편의를 받아야 하는 제작사들이 많이 하겠나. 그건 고민할 여지도 없으나.
“드레이퍼 의원 측이 묘한 말을 전하더군요. 이대로 장기화 되면 내년 대선에 이안이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의사를 밝힐 수도 있다고요.”
“…돌아버리겠군.”
배우 한 명이 지지 선언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게 할리우드 스타들이 적극적으로 반대를 했건만 결국 그랜트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사례도 있지 않은가.
이 사례를 보면 오히려 상대 측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근데 제이 안의 탈을 썼던 이안이라면 다르지.’
제이 안이 누구인가. 어느 쪽 후보에 더 많은 후원금을 보내야 할지 대기업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게 대선판인데, 거기서 두 번이나 정답을 맞춘 사람이다.
이제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이안의 예측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만약 이안이 지금까지처럼 그럴듯한 이유와 함께 한쪽에 유리한 발언을 하면 사람들은 그 후보가 승리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겠지.’
막대한 배팅 금액이 그 후보로 쏟아질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자본주의의 나라에서 정치자금이 대선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는 말할 것도 없고.
이안의 한 마디로 선거자금이 두둑해질 수 있는데 정치인들이 이 기회를 놓칠까?
심지어 여론도 작가와 배우들의 손을 들어주고 있지 않은가. 정치적 부담까지 적으니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었다.
“하하하, 진짜 무슨 이런 인간이 다 있나 싶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수단도 있다고 일부러 알려준 거겠죠?”
“협박이죠.”
문제는 협박 수단을 알아도 딱히 막을 방법이 없다. 이미 한 번 호되게 당한 만큼 섣불리 여론전을 펼칠 자신도 없고.
‘애초에 SNS 팔로워만 수천 만인 인간에게 여론전을 펼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
친하게 지내는 지인들까지 생각하면 더 감당이 안 되는 수준이다.
“젊은 건지. 겁이 없는 건지.”
보통 배우라면 이렇게까지 제작사들과 대립각을 세우긴 힘들다. 배우 활동에 미련이 없는 이상 말이다.
진짜 마음 같아선 파업이 끝나고 커리어에 타격을 줄 만한 수작을 부리고 싶지만.
‘아니야. 그냥 배우로 남는 게 훨씬 낫지.’
‘이런 인간이 진짜 정치인이 된다고 하면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게 뻔해.’
열렬히 러브콜을 보내는 워싱턴으로 쪼르르 달려가 정치인으로 흑화하면 무슨 일을 벌일지 상상이 안 갔다. 배우이며 연륜도 안 쌓인 지금도 이렇지 않은가.
보복하자는 이야기가 안 나오는 이유였다.
이안에 대해 떠올리면 머리만 아프다. 한숨을 쉬며 제작사들을 대신해 협상을 벌이고 있는 제작사 연맹측 인사에게 물었다.
“협상은 어떻게 되고 있죠?”
“임금과 재상영배분금에 대해 양보를 했는데도 동의할 수 없다고 합니다. AI는 자신들을 대체할 도구가 아니라 그저 창작에 사용할 수 있는 도구에 불과하다고요.”
AI를 사용해도 임금을 줄일 수 없다는 뜻이다.
기존 계획과는 전혀 다르다.
“우리의 협상 조건을 언론에 흘리도록 하죠. 분명 이 정도로 만족하자는 의견이 나올 겁니다.”
“동의합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수단은 이 정도겠어요.”
일단 반응을 살피며 조건을 조절…
“잠시만요!”
회의를 끝내려는 말을 끊은 한 사람이 다급히 말했다.
“…지금 이안의 SNS를 한 번 보시죠.”
이 인간이 또 뭘 했길래 SNS를 보라고 하는 걸까.
되묻지 말고 직접 보라는 손짓에 서둘러 이안의 SNS에 들어갔고.
-안녕하세요. 이안 프라이스입니다. 파업을 응원하는 의미에서 레이첼 그레이스와 함께 신곡을 내려고 합니다. 이번 곡은 디스곡이 아닌 우리의 가치에 대한 곡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번은 아니다.
‘그럼 다음은?’
제작사 직원들은 서로 같은 생각을 했다. 진짜 이상한 인간에게 잘못 걸렸다.
얼마 후 협상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