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23)
큰 승리(2)
오래된 이안의 팬들은 새삼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걸 느꼈다.
2009년 invisible children의 아역으로 처음 데뷔를 했던 이안은 어느새 훤칠한 미남이 됐다.
바뀐 외모만으로 세월의 흐름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건만.
-오늘 빌보드 1위에 처음 보는 RA-I 가수가 있길래 노래를 재생해봤더니 이안이랑 목소리 엄청 비슷하던데? 신기하더라.
└여자 목소리는 레이첼 그레이스랑 같던데 설마 AI 커버곡은 아니지?
└…오, 너흰 배우 팬이겠지?
└응? 가수 팬인데.
└닥쳐! 이 배우 간첩 자식들아!
어떻게 가수 팬이라면서 라이를 모른단 말인가. 우리 때는 콘서트에서 라이의 정체가 밝혀졌을 때 기절할 뻔했단 말이야.
‘실제로 콘서트 중에 정체를 보고 너무 기뻐 기절한 여성 팬도 있었지.’
아무리 이젠 추억이 됐다지만 ‘이안이 신곡을 냈다고 하는데, 왜 없나요?’ 이딴 질문이 수두룩하게 올라오는 현실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라이 시절 곡을 전부 리메이크하며 가수 명이 전부 바뀐 탓이라지만, ‘이안랑 똑같은 곡을 라이라는 가수가 예전에 발매했던데. 이안이 표절이나 커버한 건가요?’라는 말까지 나오는 현실은 어지러웠다.
그렇기에 이안과 레이첼이 오랜만에 각자의 이름이 아니라 RA-I라는 이름으로 곡을 발매했다는 건 오래된 팬들에겐 특별한 선물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오래된 팬들일수록 The Importance of Being 노래를 들었을 때 남들보다 더욱 큰 기쁨을 느꼈다.
-난 왜 부모님과 다를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나에게 부모님은 답하셨지. 그건 네가 특별하기 때문이란다.
라이 특유의 맑은 가성.
경쾌한 노래가 흘러나오는 뮤직비디오에는 백인 남녀의 손을 잡은 이안의 어린 시절이 보였다.
어쩌면 특별함이 좋은 의미로만 쓰이지 않는다는 걸 아이가 처음 깨닫게 된 순간일지도 몰랐다.
-빛나는 무대 위에서 조명 꺼진 객석을 향해 엄마는 말씀하셨지. 우리 모두는 인생의 주인공이라고.
이어진 레이첼의 노래에 맞춰 어둠에 잠긴 객석이 보였다.
거짓말은 아니다. 다만, 대다수는 켜켜이 먼지만 쌓이는 인기 없는 소설 속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숨겼을 뿐.
나이를 먹으며 마냥 크게 보였던 부모님이 평범하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처럼 나 또한 특별할 것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
나 하나 결석한다고 수업이 멈추는 것도 아니고, 내가 퇴직해도 다른 사람이 빈자리를 채울 뿐인 것처럼.
정말 내가 중요한 존재인지, 노래는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고민을 끄집어냈다.
-의심하지 마. 우리는 의미가 있어. 작은 행동 하나가 무수한 걸 바꿀 수 있지.
거지 분장을 한 벤에게 콘도그를 내미는 이안의 사진이 보였다. 고작 2달러도 안 될 음식을 내밀었을 뿐이건만.
노래와 함께 이어지는 영상은 이 작은 행동이 바꾼 무수한 것들을 보여줬다.
파티장에서 한 소심한 소녀를 옆에 두고 노래를 부르는 소년이 보였다. 레이첼 그레이스라는 가수가 탄생하게 된 계기였다.
옥상으로 뛰어 올라간 소년이 추락하는 아역을 끌어안고 그물망에 떨어지는 장면이 보였다. 한 아이와 invisible children이라는 인기 드라마의 운명을 바꿔낸 순간이었다.
한층 젊은 샬럿이 한 소년의 말에 허먼이라는 거물과 대적했다는 인터뷰 장면이 나왔다. 수많은 피해자의 인생과 한 파티광의 인생이 달라졌다.
허먼 폭로에서 이어진 TellMe 프로젝트의 다큐 장면이 흘러나왔다. 괴롭힘을 당하던 소년이 가해자가 되는 걸 막았고 수많은 생명이 죽음을 피했다.
인생의 변곡점으로 인해 바뀐 수많은 것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누군가는 이건 네가 특별하니 그런 거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반박을 미리 알기라도 하듯 반복되는 노래와 함께 다른 장면이 나왔다.
충동적으로 한 기부금 덕분에 살아난 누군가, 당신이 건넨 팁으로 학업을 이어가는 학생, 투표로 바뀌는 나라의 운명.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한 사람의 삶에 영향을 받은 수많은 것이 조명됐다.
-의심하지 마. 당신은 존재하는 것만으로 소중하니까.
이안의 특별한 목소리는 마지막 가사를 사람들의 마음속에 새겨놓듯 여운을 남겼다.
지친 사람에게 위안을 주는 듯한 노래는 응당 이 자리에 올라가야 하는 것처럼 빌보드 1위에 자리매김했다.
이안이 가진 화제성, 레이첼의 작곡 능력, 좋은 노래 등.
다양한 원인이 모여 1위가 된 신곡을 들으며 많은 사람이 축하할 때.
“…또 빌보드 1위라고?”
제작사들은 식은땀을 흘렸다.
디스곡을 예고한 상태였으니 말이다. 에이, 설마 진짜 디스곡을 내놓겠냐는 의심이 들었지만.
‘이안이라면 하고도 남지.’
‘절대 정상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상대하면 안 돼.’
상대해보니 알겠다. 이안은 진짜 파면 팔수록 괴담만 나오는 인간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대중의 이미지처럼 순진하고 마냥 착한 인간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물을 쳐놓듯 깔아놓는 사방에 뻗어놓은 것들이 발견할 때마다 이런 확신이 들었다.
“적당히 타협보고 끝을 내죠.”
항복 선언이나 다름 없는 말이 나왔다.
물론 단순히 이안 한 명 때문에 내린 결정은 아니다. 다만, 계속 싸워서 이길 가능성은 없으니 피해라도 줄이자는 것으로 의견이 모이는 데는 톡톡한 역할을 했다.
얼마 후 작가 조합과 제작사 연맹이 합의에 성공하며 파업이 종료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
-작가 조합의 환상적인 승리! 최저 원고료 인상, OTT 작품도 재방료 제도 포함, AI를 활용한 각본 집필 규제 등. 다양한 조항이 들어가.
-작가 파업이 큰 승리로 평가받는 이유! AI를 활용해도 작가들의 이익은 보존돼.
파업 전 이미 현장에선 AI가 만든 대본 초안을 작가들이 수정하는 지시하는 상황이었다. 이럴 땐 각색 업무라는 이유로 임금을 낮게 책정했고.
하지만 이번 파업으로 인해 AI는 어디까지나 보조 수단으로 정리됐고, 사용하더라도 작가의 이익을 침해할 수 없도록 합의가 되었다.
그저 작가 업무에 한해서 이뤄진 결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이번 파업은 AI의 업무 침범에 맞선 첫 파업인 만큼 이 승리는 앞으로도 큰 의미가 있겠죠. 제작사에게도 마냥 나쁜 결과는 아니에요.”
“음, 그러니?”
게빈의 되물음에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작가 비용을 못 줄이는 건 아쉽겠지만, 아무리 AI 기술을 사용해도 작가들의 손해 볼 건 없잖아요? 그럼 AI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작품을 만들어내겠죠.”
AI는 인간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기에 경계하고 있으나, 분명 좋은 도구다. 작가들이 적극적으로 이 도구를 활용할수록 작품의 수준이 높아질 수 있다.
‘만약 이번 같은 합의가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의심할 것도 없이 작가들은 AI 활용을 최대한 줄이려고 했을 거다. 쓸수록 손해라고 생각할 텐데 당연하지 않나.
이번 합의로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환경이 완성됐다는 점에서 좋은 방향성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배우 조합 쪽은 어떻게 되고 있니?”
“거긴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거 같아요. 아마 무명 배우를 스캔에 배경으로 활용하는 걸 완전히 막긴 힘들 거에요. 다만, 무작정 사용되는 걸 막기 위한 제약을 걸겠죠.”
사용할 때마다 배우에게 사용 허가와 출연료를 줘야 한다는 조건 같은 거 말이다.
‘스캔본도 쓸 때마다 돈이 들어가면 무작정 사용하진 않겠지.’
조금 더 돈이 들더라도 생동감 있게 진짜 배우를 사용하는 사람이 있을 테니까. 이건 미래를 몰라도 확신할 수 있다.
당장 옆에 앉은 폭발광 게빈을 생각하면 쉽다.“
“감독님만 해도 CG로 해결할 수 있는 장면을 굳이 돈을 더 들여서 진짜로 폭발시키잖아요.”
“음. 그게 바로 예술이니까.”
“이놈도 정상은 아니라니까.”
랜든 감독이 옆에서 혀를 끌끌 찼으나.
“그러는 감독님도 CG가 아니라 최대한 특수분장으로 해결하려고 하잖아요.”
“느낌이 다르니 어쩔 수 없잖니.”
“폭발도 마찬가지야. CG로 만들 수 없는 진짜만의 맛이 있다고.”
이안이 볼 때는 두 감독 다 똑같아 보였다.
진짜 폭발이 가진 예술성에 대해 가볍게 떠들던 게빈은 파업 종료와 관련된 뉴스를 보면서 말했다.
“살다 보면 세상이 참 빠르게 변한다 싶다가도 별로 안 변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내가 어렸을 때는 2020년쯤 되면 자동차는 전부 날아다닐 줄 알았단다. 근데 지금은 전기자동차로 바꾸느니 마느니 하고 있지.”
“하하하, 맞아. 나도 달나라에 거주지를 세우고 그럴 줄 알았다고.”
이안은 여기에 동감했다.
세상은 엄청 빠르게 변하는 것처럼 보여도 막상 사람의 삶은 크게 안 변했다. 이안이 살던 미래만 해도 많은 미국인이 지금과 비슷하게 목재로 된 집에서 살고 있었으니 말이다.
상상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세월이 흘러도 카메라 앞에 연기하는 배우는 여전히 존재했던 것처럼. 깊은 노인의 눈동자는 부드럽게 휘었다.
“너무 바뀔 미래를 걱정할 필요는 없지. 지금처럼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 될 일이니까.”
“알고 있어요.”
“그래, 알고 있다면 됐다.”
게빈은 이안의 머리를 가볍게 쓸어줬다. 아역 시절 함께 있던 때처럼.
자상한 온기를 남긴 둘은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필릭스에게 이야기는 들었단다. Beautiful World 개봉이 11월로 잡혔다지? 그때까지는 얌전히 있을 생각이니?”
TV에선 AI에 대항한 큰 승리라고 떠들고 있다. 배우 조합 파업의 결과물까지 나온다면 한동안 AI 관련된 이야기는 수그러들겠지.
이젠 Beautiful World로 과실만 먹으면 될 일이다. 하지만 이안은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지 않았다.
이대로 끝을 맺어도 좋다.
분명 이번 일은 자신의 인생에서 거둔 또 하나의 승리로 기록될 테니 말이다.
‘여기서 과연 한 발자국을 더 걷는 게 좋을까.’
예상보다 더 원활하게 일이 끝났다. 그렇기에 더욱 고민이 됐다. 생각보다 여력이 남았는데 멈추는 게 옳은 건지.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이안을 보며 랜든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이것만 두 가지만 고민해. 진짜로 해도 후회를 안 할 수 있는지,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아닌지. 어때, 두 가지에 걸리는 게 있니?”
“…아뇨, 없는 거 같네요.”
“그럼 하면 되지. 일단 나는 그렇게 살아왔단다.”
명쾌한 대답.
그렇기에 삶의 지혜가 담긴 말이다.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주변에 얼마든지 부탁하고. 알겠지?”
둘을 배웅한 이안은 전화를 걸었다.
-허니, 무슨 일이야?
“방금 게빈 감독님이 이런 말을 하고 가셨어요.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주변에 얼마든지 부탁하라고요.”
…또 뭔데 불길하게 이런 말을 꺼낼까.
샬럿은 최대한 상냥하게 말했다.
-이안, 이제 쉴 때가 되지 않았니?
“달링, 걱정 안 해도 돼요. 별로 큰일은 아니거든요.”
달링이라고?
샬럿은 확신할 수 있었다. 분명 저 말은 거짓말이다.
***
“아아아악!”
“엄살 부리지 마, 이 녀석아.”
양쪽 볼을 꼬집은 샬럿은 눈을 치켜떴다. 그녀에게 이안을 한 마디로 평가하자면 말 안 듣는 늦둥이 동생과 같은 느낌이다.
‘내가 미쳤지. 예전에 왜 남동생 같은 걸 갖고 싶다고 했을까.’
혈연보다 더 질긴 인연이 얼마나 무서운지 새삼 깨닫게 되는 느낌이다.
“나도 나이가 있거든? 올해 너무 피곤했다고.”
“걱정 마요. 이번 일이 끝나면 한동안은 비즈니스 파트너로 만날 일은 없을 테니까요.”
이걸 믿어, 말아.
사고는 쳐도 거짓말은 안 하니 한 번 들어나 보자는 심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마지막 일이 뭔데.”
“딥페이크요. Beautiful World에서 나오는 조연 캐릭터 중 하나는 딥페이크 포르노로 자녀가 죽은 캐릭터에요.”
딥페이크 포르노는 익숙한 일이다. 유명 스타라면 한 번쯤 당해본 일이고.
다만, 여기서 그 이야기가 왜 나오나 싶었다.
“문제는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제대로 된 법 조항이 없다는 게 문제죠. 그동안 피해자는 계속 생기고 있고요. 저는 관련 법이 빨리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동의는 한다. 그녀도 비슷한 피해를 보고 있으니까.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의원들에게 직접 부탁이라도 하려고?”
“제가 말한다고 마냥 입법이 쉽게 이뤄지진 않겠죠.”
어느 나라나 그렇든 입법부는 게으르다. 그리고 이 게으른 사람들이 일하게 만드는 방법은 한 가지였다.
“우선 대중의 관심을 받아야죠.”
간단하면서도 힘든 문제였다. 단순히 SNS 딥페이크 포르노에 대한 글을 쓴다고 원하는 만큼 대중의 관심이 모이지도 않을 테고.
그걸 어떻게 해결할 생각이냐는 듯한 시선에 이안이 물었다.
“혹시 스트라이샌드 효과라고 알고 있나요?”
“알고 있지. 어떤 정보를 인위적으로 삭제나 검열하려고 할 때 오히려 정보가 퍼지는 현상을 말하… 야, 너 혹시.”
눈을 동그랗게 뜬 샬럿을 향해 이안은 방긋 웃었다.
“제 행동이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있나 봐요. 절 가지고 딥페이크 포르노를 만든 사람이 있더라고요?”
다른 딥페이크에 비하면 조잡하다. 포르노보단 그냥 이안을 조롱하기 위해서 올린 영상에 가까우니까.
일부 안티나 보고 SNS에서 낄낄거리는 정도지 별다른 관심도 못 받는 상태였고.
가만히 내버려 두면 묻힐 수준의 영상. 그렇기에 적당했다.
“고소할까 해요. 어차피 기각되겠지만, 관심은 많이 받겠죠. 우리 한 번 진짜 큰 승리를 위해 조금 더 뛰어보자고요.”
…진짜 제정신이 아니다.
샬럿은 머리가 멍해지는 걸 느꼈다.
자신을 대신할 제2의 비즈니스 파트너가 간절히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