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24)
마지막 스텝(1)
미국은 50개의 주가 모인 연방공화국이다.
세계 역사상 가장 연방정부와 주정부 간에 균형이 맞춰진 국가로 하나의 주는 하나의 국가처럼 활동한다.
각자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가 따로 있어 알아서 행정 조치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주마다 법도 다르지. 당장 적용되는 최저임금만 해도 다르니까.’
공공장소에서 수영복 차림으로 노래 부르는 게 불법인 곳도 있고, 주류 판매가 새벽 1시까지만 가능한 곳도 있고.
같은 미국인이라도 멋모르고 행동했다가 경찰과 대면할 수도 있다.
여기서 좋다 나쁘다 평가할 생각은 없다. 그냥 미국이란 나라는 이런 곳이고, 뭐든 장단점은 있는 법이니까.
‘아무튼, 중요한 건 입법이란 게 가뜩이나 쉽지 않은데 각자 따로 논다는 점이야.’
딥페이크 포르노에 관련된 법만 해도 그렇다.
이안은 자신이 조사한 내용을 빠르게 떠올려봤다.
딥페이크 포르노로 인한 피해는 꽤 오래전부터 이야기가 된 일이건만 처벌 규정이 입법된 곳은 열 곳 남짓이다.
‘도대체 입법부는 일을 안 하냐?’ 싶은 생각이 드는 건 만국 공통이란 뜻이다.
그럼 처벌 규정이 없는 곳에선 어떻게 하는가.
‘대충 기존에 있는 법 조항으로 처벌할 부분을 찾는 거지..’
당연한 말이겠지만, 기존 법으로 제대로 처벌이 됐으면 다른 곳에서 새로 입법을 했겠는가.
“아니, 내 얼굴을 마음대로 가져다 붙였다니까요?”
라고 고소를 하려고 하면.
“오, 합성된 몸뚱이는 당신 것이 아니잖습니까. 명예훼손은 쉽지 않겠네요. 초상권이요? 음, 영상제작으로 재산상 손해와 상대의 이익을 일단 평가해보죠.”
이런 대답이 돌아올 따름이다. 승리가 확실한 것도 아닌데 소송에 들어가는 비용이 한두 푼이 아니니 쉽게 실행에 옮길 수 있겠는가.
그럼 금전적인 여유가 있는 유명인들은 왜 꾹 참고 있느냐?
‘긁어 부스럼이라고 스트라이샌드 효과를 걱정하는 걸지도 모르지.’
한 놈 잡는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만약 소송을 진행해봐라 ‘아니, 그 사람 얼굴로 만든 포르노가 있다고? 한 번 찾아볼까.’라며 더 많은 사람이 볼 게 뻔했다.
마치 불법 사이트를 막으려고 했더니 오히려 그 일로 대중에게 알려지며 더 많은 이용자가 생기는 사례처럼 말이다.
피해를 막으려 할수록 더 큰 피해가 생기는 끔찍한 상황. 이게 피해를 공론화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러니까 네 행동이 더 정상이 아닌 거야. 남들과 달리 그걸 역이용하려고 하는 게 보통 사람이 떠올릴 발상이니?”
파티광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나름 막 나갔던 샬럿이지만, 이안을 볼 때마다 ‘그래도 나 정도면 정상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대충 계획은 알겠다. 이안이 이안 했구나 싶은 계획.
도와주는 건 문제가 안 됐다. 다만 앞서서 한 번 더 확인할 게 있었다.
“그래서 넌 그런 영상을 대중이 봐도 괜찮겠어?”
남자라고 수치심이 없겠는가. 비록 계획한 일이라도 기분 나쁠 수도, 생각보다 충격받을 수도 있다.
걱정을 담은 물음에 잠시 고민하던 이안은 해맑게 웃으며 손뼉을 쳤다.
“수위 높은 작품에 들어갔다고 생각하면 괜찮아요. 오, 그러고 보니 이거 약간 바디 더블을 쓰는 느낌이네요. 얼굴 안 나오는 대역이요. 얼굴은 저지만, 고수위 장면은 남의 몸인 걸 보니 딱 그 느낌 아닌가요?”
…그래, 무슨 걱정을 하겠니.
설마 거기서 바디 더블을 떠올릴 줄은 몰랐다. 저것도 직업병이라고 봐야 하냐.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래서 이번 일의 목표가 뭔데.”
“딥페이크와 관련된 연방법을 제정하게 하는 거요.”
미국은 주법이고 있고 연방법이 있는데, 연방법은 미국 전역에 통용되는 법이다.
물론 두 법이 충돌하는 경우도 있고 항상 연방법을 우선시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주민에게 더 많은 권리와 이익을 연방법이 보장한다면 주법보다 우선시될 수 있다.
“남은 수십 개 주에 일일이 법을 만들도록 압박하는 것보다 연방법 하나를 만드는 게 더 쉽지 않겠어요?”
…보통 사람이라면 새로운 법을 위해서 여론을 만들지도 않는단다.
“어휴, 또 한동안 시끄럽겠네.”
“심심하진 않겠…읍?”
“얄미운 소리를 하는 게 이 입이지? 어휴, 허니만 아니면 진짜.”
감정을 한 스푼 담아 입술을 꼬집으며 복수한 샬럿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 일 끝나면 한동안 귀찮게 하기 없기다?”
“걱정 마요. 저도 이번 일이 끝나면 한동안 조용히 있을 생각이거든요.”
그래, 사고는 쳐도 거짓말은 안 하지.
‘기왕이면 사고도 안 쳤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어쩌겠는가. 자신만 해도 이런 사고로 도움을 받은 사람 중 하나인 것을.
그래도 나중에 이안 2세가 태어난다면 이안을 닮지 않았으면 하는 소소한 바람은 있었다.
***
이안은 파업이 최대한 빨리 마무리되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그 노력이 통했다는 건 주변에서 들리는 소식만 봐도 알 수 있다.
-프라임타임 에미상 후보 발표! 운영진, 기존 예정대로 9월 중순에 시상식이 열릴 것이라 밝혀.
파업으로 내년 1월로 미뤄졌을 에미상 시상식이 부랴부랴 후보를 발표하며 정상적으로 열린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협상이 순조롭게 이뤄지며 조만간 배우 조합 파업이 끝이 난다는 소문이 업계에 돌고 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아웃사이더 작품상, 남우조연상, 각본상 등 총 13개 부문에서 에미상 후보에 올라!
작년 넷플러스에서 화제작인 아웃사이더도 여러 부문에서 후보에 올랐다.
물론 무려 27개 부문에 후보를 엄청난 대작부터 경쟁이 치열한 만큼 수상은 불투명했다. 그나마 가능성 크다고 평가받는 건 악역인 태너 역할로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이안이었다.
-에미상 관계자 사이에서 나오는 소문 중 하나. 사실 이안을 남우주연상 후보로 고민하기도 했다고 한다.
└잠시만 주연상이면 설마 피어스? 세상에 어떻게 퍼리가 남우주연상 후보…?
└작품 내 이안의 얼굴이 한 번도 안 나와서 후보에서 탈락했다고 하더라.
└이거 퍼리 혐오야! 남우주연상 후보로 늑대 머리가 나오는 게 뭐 어때서!
└이안은 퍼리의 신이야!
└…대의를 위해선 아웃사이더가 망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치만 드라마는 재밌는걸.
퍼리 팬덤의 바람과 달리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합리적인 선에서 후보가 발표됐다.
8월 중순에서 말로 넘어갈 때쯤 기다리던 소식이 전해졌다.
-배우 조합과 제작사 연맹 협상 타결. 파업 종료 선언과 함께 정상화가 되는 할리우드!
파업이 빨리 진행됐다는 걸 생각하더라도 원래 역사보다 3개월가량 빨리 파업이 마무리된 건 고생했을 무명 배우들과 업계 전체적으로 좋은 결과였다.
-이안으로 시작된 동시 파업. 그는 어떻게 파업에 영향을 미쳤는가.
결과를 정리하며 이번 파업에서 이안이 관여한 부분을 사람들은 크게 놀랐다. ‘진짜 끔찍한 상대.’라는 극찬을 제작사들에게 받을 정도로 활약한 부분이 컸으니 말이다.
물론.
-이안 프라이스는 정계로 나갈 것을 준비하는가. 수상한 그의 행적들!
이런 오해도 따라붙긴 했으나 이안은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신경 쓰지 않았다.
같은 배우들에게 고맙다는 인사와 나중에 한 번 만나자는 연락을 소화해내는 것으로 정신이 없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파업이 막을 내리고 크게 안도한 곳이 있으니 다름 아닌 바다 건너 열리는 베니스 국제 영화제였다.
할리우드 파업으로 규모를 축소하는 피눈물 나는 선택을 고민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세상에 파업이 끝났다고?!”
“네! 할리우드 작품과 배우들도 전부 정상 참여한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죽다 살아난 기분이었고.
이 영화제에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Beautiful World는 비경쟁 부문으로 초청받았다.
파업의 계기가 되며 가슴 졸이게 한 과거를 떠올리면 얄미운데 정작 영화제를 구해준 것도 이안이었다.
애증의 영화가 된 Beautiful World는 베니스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으며 9월 초에 열리는 토론토 영화제 연달아 참여했고.
-화제의 작품 Beautiful World! 토론토 국제 영화제에서 관객상 수상!
토론토 국제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했다.
영화제 대상에 해당하는 상으로 관객들이 직접 투표하는 만큼 굉장히 의미가 있는 상이었다.
관객들이 좋다고 뽑은 영화인만큼 관객상을 받은 작품 대부분은 크게 흥행을 하기 때문이다. AI 관련된 일로 홍보 효과를 톡톡히 본 Beautiful World가 다시 한번 흥행력을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거기에 관객상을 받은 작품들은 오스카와 골든글로브 같은 각종 시상식에서도 후보로 지명되어 수상할 가능성이 큰 편이지.’
이미 황금종려상으로 꽃단장까지 한 차례 했던 Beautiful World는 관객상을 통해 명백한 최고 관심작으로 등극할 수 있었다.
당장 이걸 알 수 있는 것이.
-이안, 예정보다 더 많은 스크린에서 개봉할 것 같다.
“정말요?”
-그래, 스크린을 더 달라고 할 때는 시큰둥하던 인간들이 관객상을 받았다니까 바로 반응이 바뀌더구나.
배급사 역할을 하는 필릭스의 연락이었다.
전체 흥행에서 개봉 첫 주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만큼 스크린을 많이 배당받았다는 건 확실한 호재였다.
아무리 황금종려상을 받았고, 이슈가 크게 된 작품이라도 낯선 한국인 감독과 할리우드 흥행 공식에서 먼 아시아계 주인공 그리고 뒤끝 남은 제작사의 텃세 등.
의심의 눈초리로 볼 수밖에 없던 것을 관객상이 한 번에 날려주며 흥행 청신호가 커졌다.
통화를 끊은 이안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정말 정신없는 한 달이었다. 배우로서 영화 홍보를 하는 것도 바쁜 일인데, 제작자 역할까지 같이 수행하지 않았나.
단순한 주연 배우보다 일거리가 많을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Beautiful World는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화제가 되는 중이고.’
할리우드에서 일어난 파업을 다른 나라들이 남의 나라 일처럼 가볍게 넘길 순 없잖은가. 그저 시간문제일 뿐이지 비슷한 과정을 밟는 건 피할 수 없을 테니까.
그래, 여기 일까지만 해도 바쁠 텐데.
“슬슬 시작해야겠네.”
“진짜 하긴 하는구나.”
레이첼의 물음에 이안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열심히 그동안 밑 준비를 해놨잖아. 딥페이크 포르노 고소를 진행해야지.”
계획하자마자 바로 일을 진행하지 않고 일부러 기간을 둔 이유가 있었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고 해도 너무 연달아 일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피로감을 느낄 테니까.’
좋은 조언도 계속 들으면 잔소리처럼 들리지 않나. 그거랑 비슷한 거다.
파업이 막 끝나고 이제 일이 끝나나 싶을 때 또 사건을 일으켜 봐라. 응원보단 짜증이나 불편한 시선이 돌아왔을 가능성이 크다.
‘딱 지금쯤이 적절해.’
파업으로 인한 잔불이 아직 어느 정도 남아 있으며, 대중들은 다른 이슈로 숨 고르기를 한 시기.
새로운 일을 저지르기엔 딱 좋았다.
거기에 그저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린 것도 아니었다.
“다른 유명 스타들에게 양해도 어느 정도 구해놨어.”
음지에 있는 딥페이크 포르노를 양지로 끄집어내는 데 불편함을 느낄 스타들이 일부 있을 것이다.
가요계에는 아일라와 재스퍼, 배우는 벤과 데미안을 비롯한 동료 배우를 통해, 심지어 브로드웨이까지 손이 닿는 선에서 양해를 구한 상태였다.
‘다행히 다들 흔쾌히 동의해줬고.’
내버려 둬도 피해가 계속 생길 텐데 이안이 총대를 메고 나서준다면 굳이 말릴 이유가 없는 탓이다.
거기에 브로드웨이는 팬데믹으로, 할리우드는 이번 일로 이안에게 도움을 받은 상태다. 방해는커녕 일이 진행되면 든든한 지지자로 움직여줄 것이다.
“진짜 일을 만드는 데는 선수라니까. 못 말려.”
레이첼은 턱을 괴며 이안을 바라봤다.
사건은 많이 일으켜도 온전히 자신의 이득만을 생각해서 움직이는 건 아니다. 아마 그렇기에 많은 사람이 발 벗고 도와주는 거겠지.
“왜 그래서 싫어?”
장난스러운 물음에 그녀는 푸른 눈을 곱게 휘었다.
“아니, 전혀. 물론 조금 쉬었으면 하는 생각이 있긴 하지만 말이야.”
“이번 일만 하고 쉬어야지.”
마지막 스텝이다.
생각을 정리한 이안은 문자를 보냈다.
-시작하죠.
한동안 미국을 시끄럽게 만들 사건의 시작이라기엔 너무나 짧은 문자였다.
***
모든 일에는 조짐이란 게 있다.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거 같은데 말이야.”
“너도 그런 거 같지?”
연예계 기자로 살려면 분위기를 읽을 줄 알아야 했다.
그런 면에서 지금 연예계의 분위기는 묘했다.
“별다른 사건도 없이 굉장히 조용하긴 한데, 연예인들이 뭘 숨기는 것 같긴 하단 말이야. 특히 유명 스타들이.”
파업 이후로 할리우드는 정상화 됐고, 독특한 사건 같은 건 하나도 없다.
근데 그런 것치곤 스타라는 이들의 분위기가 평소와 달랐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하기도 하고 기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둘이 수군거리고 있을 때, 동료 기자가 헛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뭔 소리를 하나 했네. 야, 진짜 무슨 일이 있으면 어디선가 이야기가 흘러나왔겠지. 언제 이 바닥이 제대로 비밀이 지켜졌냐? 세상에 그런 스타들의 입을 잠시라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냐. 대통령도 힘들걸.”
“그건 그렇긴 하지.”
촉이 온 기자들이 대다수 망상이려니 하고 그냥 넘기는 이유였다.
새로운 기삿거리나 찾자고 생각할 때쯤 편집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 뭐?! 또 이안 프라이스야?! 포르노 고소?!”
이안 프라이스, 포르노, 고소.
세 키워드에 기자들은 황급히 움직여 다른 곳에 올라온 기사들을 살폈고.
-충격! 이안 프라이스, 자신의 얼굴이 있는 포르노를 SNS에 올린 사람을 고소하기로 하다!
어그로가 잔뜩 끌릴 기사.
제목을 보자마자 기자들은 소리쳤다.
“당장 움직여! 이안이 포르노라고?! 무슨 SNS인지 당장 찾아봐!”
“이거, 딥페이크…”
“딥페이크고 뭐고 고소라잖아! 야, 지금 영상 조회수 늘어나는 거 봐! 이대로 손가락 빨고 있을 거야?!”
평화로웠던 사무실이 전쟁터가 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