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26)
마지막 스텝(3)
고작 몇 개월 전.
할리우드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된 파업에서 이안의 역할이 컸다는 건 일반 대중에게도 잘 알려진 일이었다.
뉴스에서도 빈번하게 나왔을뿐더러 이안이 시상식에서 말한 ‘당신의 가치는 괜찮으십니까?’라는 말은 밈이 되어 인터넷에서 널리 쓰이는 중이니 말이다.
물론 누군가는.
“에이, 어차피 이안이 아니었어도 파업은 일어났을걸.”
이렇게 평가했으나 적어도 이안 프라이스라는 스타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졌는지 새삼 깨닫게 만든 사건이었다.
다만 이 사건이 이안에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적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소리 나는 바퀴에 기름 친다.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은 미움을 받기 쉽다는 속담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있으며, 이번 이안의 행동은 누가 봐도 모난 돌이었다.
특히 이번 파업으로 제작사와 관계가 틀어진 걸 두고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이 많았다.
‘자존심 때문이라도 이안을 한동안 캐스팅하진 않겠지. 이렇게 몇 년 조용히 지내다 보면 대중에 잊혀지며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도 있겠어.’
‘운영 중인 제작사로 작품 제작을 하면 된다고? 대형 배급사들이 가진 영향력을 생각해야지. 배급이 쉽지 않으면 투자자도 안 붙는 법이야.’
‘그러게 파업을 왜 주도했는지 모르겠네. 큰 이득도 안 될 일인데.’
파업의 성공과는 별개로 이안 개인에겐 득보다 실이 큰일이다.
두 달이 넘는 파업 동안 대중의 시선에서 벗어난 그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 몰랐기에 나온 평가였다.
파업을 가장 주도적으로 이끄는 인물.
제작사로서는 ‘다 저 자식 때문이야.’라며 좌표가 찍히는 평가였으나, 파업을 좋게 평가하는 배우들에겐 ‘미래를 위해 희생하는 배우.’라고 보일 따름이다.
평소라면 보기 힘든 스타들조차.
“이안이 한번 만나자고 했다고? 음, 그래. 시간 한 번 잡도록 하지.”
쉽게 약속을 잡을 수 있을 정도였다.
마구잡이로 약속을 잡은 것도 아니다. 가장 우선 목표는 긴 경력으로 언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은 연세 많은 스타였다.
긴 경력으로 영향력도 크고, 이미 누릴 만큼 누려 자신의 성공이 아닌 후배 배우의 삶에도 관심이 많을뿐더러 젊은 이안과 배역 경쟁을 할 일이 없는 스타.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면 이안에게 기본적인 호감을 느낄만한 이들인데.
“아! 그 작품 재밌게 봤어요. 집에 대본도 있고 대사도 전부 외우고 있는 걸요. 물론 다른 작품도 많이 알고 있죠!”
자기 작품을 주르륵 꿰고 있고 심지어 너덜너덜할 때까지 본 대본에 사인까지 요청한다?
옛 추억으로 살아가는 스타들이 홀라당 넘어가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와, 그 인간하고 같이 밥까지 먹고 왔다고? 나한테는 예전에 건방 떨지 말라고 한소리 했었는데?!”
“아니, 이름으로 불러?! 너 오늘 처음 만났다고 하지 않았냐.”
벤과 데미안이 ‘이건 무슨 노인 킬러도 아니고.’라며 헛웃음을 지을 정도였다.
호감을 얻은 스타를 바탕으로 새로운 사람을 소개받는 과정을 통해 이안은 단기간에 좋은 인맥을 쌓을 수 있었다.
이 정도면 한동안 제작사들과 불편한 관계가 된다고 해도 남는 장사라고 생각할 정도로.
이런 인맥 다지기는 할리우드에만 국한된 게 아니었다.
팬데믹 기간에 인연이 닿은 브로드웨이 배우들과도 다시 한번 관계를 다졌고, 아일라와 재스퍼를 통해 가요계에도 새로운 인연을 쌓았다.
절친한 관계가 되기엔 물론 짧은 기간이다.
그저 안면을 텄다고 평가해도 좋을 인연이나 이런 얕은 관계도 때에 따라서는 강력한 힘이 되기도 했다.
-딥페이크 포르노요? 연예인 중 그런 피해를 안 본 사람은 없어요. 그런 사진과 영상이 도는 건 다 알고요. 다만 이안처럼 용기 있게 나서지 못했을 뿐이죠.
세계적인 팝스타가 자신도 피해 사실을 고백했다.
-명백하게 피해를 봤는데 처벌할 법이 없다니 이게 말이 됩니까? 표현의 자유라, 좋죠. 하지만 언제부터 범죄에 자유가 생겼죠? 우리 같은 스타만 피해자가 아닙니다. 언제든 여러분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인터뷰를 피하던 배우가 오랜만에 언론 앞에서 강도 높은 비난을 내뱉었다.
평소 이안과 친분이 깊다고 알려진 사람들이 나선 거라면 이렇게 놀라지 않았을 거다.
“스태프 역할도 해주는데 지지 선언이야 놀랄 것도 없지.”
라며 가볍게 넘겼을 테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그보다 폭넓은 분야에서 다양한 이들이 한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기자들이나 업계 사람으로선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아니, 도대체 언제 이렇게 인맥을 쌓아놓은 거야?!”
“그냥 좋은 기회라서 의견을 밝힌 거 아닐까요?”
“이 바닥에서 한두 해 일해?! 이런 한 마디를 괜히 해주겠냐고! 어느 정도 인연이 있으니까 해주는 거겠지.”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동시에 의견을 내놓은 스타들이 수십 명이다.
그 숫자는 빠르게 늘어나는 중이고.
각자 가진 팬덤만 생각해도 거대한 여론을 형성하기엔 부족함이 없다.
민주당의 드레이퍼 의원이 제안한 법안이라고 시큰둥하게 있던 공화당 의원들까지 화들짝 놀라 관련 의견을 쏟아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모든 상황을 만든 이안의 사진을 보며 기자는 헛웃음을 지었다.
“이제 고작 이십대 중반이란 말이지?”
왜 정치권에서 아직도 열심히 러브콜을 보내는 줄 알겠다.
‘만약 반대 정당으로 넘어가기라도 한다면 이보다 끔찍한 재난도 없을 거다.’
배우로 만드는 사건이 이 정도인데, 권력까지 쥐면 오죽하겠는가.
‘한국에서 입양됐다고 했던가.’
도대체 뭐 하는 나라길래 이런 돌연변이를 미국으로 보냈는지 모르겠다.
***
이안은 자신의 손을 내려봤다.
아시아계라는 걸 알려주는 피부색이 보였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백인 사회다. 요즘에는 인종차별 반대를 외치는 목소리가 크나, 알고 보면 그 주요 대상은 흑인이고.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지.’
법과 사회는 소수보단 다수를 위해 움직인다.
투표를 받아야 하는 선출직만 해도 더 많은 표를 받기 위해선 누구의 눈치를 봐야 할지 뻔하지 않은가.
소수의 권리를 챙겨주는 걸 보고 괜히 소수를 위한 배려라고 표현하는 게 아니다.
다수의 배려를 받지 못하면 소수의 목소리는 닿지 않는 법이다.
‘분명 미국인으로 자랐는데 영원한 이방인 취급을 당하는 느낌이지.’
어쩌면 입양된 사람이 자신의 친부모를 찾으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일지 모른다. 그렇게라도 자신이 온전히 받아지는 곳을 찾고 싶었을 테니까.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한 집단의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피부색이 같다는 공통점이 생각보다 큰 역할을 한다는 걸 깨달을 때 느끼는 불합리함을 비슷한 처지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보는 일이고.
“그런 면에서 내 처지는 더 안 좋았지.”
화상으로 망가진 얼굴과 노숙자라는 신분.
호감을 얻기 힘든 조건을 가졌으니 인맥을 쌓기 위해선 남들보다 수십 배는 노력해야 했다.
데미안이 ‘…이 많은 스태프 이름을 같이 외우자고? 진짜로?’라며 기겁한 일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게 고작 기본일 정도로 노력한 것은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도 주변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지.’
볼링핀 몸매를 자랑한 괴짜 에이전트인 닉을 포함해도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였다.
이런 과거를 기억하기에 이안은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며 많은 사람이 나서는 모습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다.
물론 순수한 호의로 움직였다는 순진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딥페이크 포르노를 막을 좋은 기회를 놓치기 싫어서, 언론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 혹은 자신과 친분을 통해 얻을 이익을 위해서 등.
이번 일이 이득이 된다고 판단해서 나선 사람이 태반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대단한 일이다.
부족할 것이 별로 없는 유명 스타들에게까지 이익이 될만한 걸 움켜쥐고 있다는 뜻이니까.
회귀하기 전에는 간절히 바랐을 일이 분명한데.
“생각보다 그렇게 기쁘진 않네.”
“뭐가?”
옆으로 얼굴이 빼꼼 내밀어졌다.
이안은 장난스레 웃는 레이첼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쭉 밀었다.
“도대체 언제 들어왔냐.”
“방금 왔지.”
-냐아아앙
늘어지게 하품하는 크림이의 머리를 살살 긁은 그녀는 자연스럽게 이안의 옆에 앉았다.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인물이 된 느낌이 어때?”
“글쎄.”
여러 스타를 통해 거대한 여론을 만들어낼 수 있는 거물.
이번 딥페이크 고소 사건으로 언론에서 이안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이안이 여러 스타의 약점을 쥐고 있다.’, ‘내년 대선 개입을 위해 인맥을 과시한 거다.’, ‘이안은 내년 킹메이커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다.’ 등.
온갖 음모론과 과장된 반응이 뒤따르는 건 덤이고.
“별 느낌은 없는데. 그런 건 나한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이안은 앞에 놓인 대본을 들어 올렸다.
회귀 전 인맥을 가지려고 노력한 것부터 자신이 지금까지 했던 많은 일은 단 한 가지를 위해서였다.
‘배우로 활동하기 위해서.’
아직도 대본을 보면 즐겁다. 새로운 작품에서 연기할 걸 상상하면 기대가 되고.
그 외에는 곁가지일 뿐이니 큰 감흥이 안 올만 했다.
“진짜 한결같단 말이야. 그렇게 연기하는 게 좋아?”
“좋지. 너도 연기를 해보면 알게 될걸. 왜? 연기에 한 번 도전해볼래? 도와줄 게.”
눈을 반짝이며 묻자, 레이첼은 고개를 살랑살랑 저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도로시나 오드리, 다니엘 같은 친구들이 이안과 함께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 부럽다고 느낄 때가 종종 있었다.
‘아빠도 마찬가지지.’
Beautiful World의 출연 계약을 맺고 와선 이안과 함께 촬영한다고 주변에 자랑하곤 했으니까.
같은 작품에 들어가며 배우들끼리 교류하는 느낌이 궁금하곤 했다. 다만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네가 연기하는 것처럼 나는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게 좋아. 다른 무언가가 대체할 수 없는 즐거움이고.”
레이첼은 이안과 처음 만났을 때가 아직도 선명했다.
시끄러운 파티장 한쪽에서 이안의 노래와 함께 영롱하게 빛나는 색들.
어린 시절 어떻게든 잡아보겠다고 이리저리 달렸던 무지개보다 아름다운 풍경이었고, 어린 소녀에게 꿈이라는 게 생긴 순간이었다.
“아쉽네. 배우로 활동해도 잘 할 거 같은데 말이야.”
“내가 널 가수로 잡아두지 않는 거랑 비슷한 거 아니겠어?”
둘은 서로 보며 가볍게 웃었다.
“의원들이 연방법을 만들겠다고 이야기를 하던데. 그럼 이제 할 일은 끝났어?”
“응, 로티가 한동안 자길 찾지 말라면서 도망쳤거든. 나보고 이럴 거면 정치인이나 되라고 하더라.”
도망친 비즈니스 파트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영업 종료를 해야 했다.
이래서 2호가 필요했는데 아쉬울 따름이다.
“그럼 소송은 어떻게 하고?”
“기각이나 패소하겠지. 일부러 딥페이크 포르노 처벌법이 없는 주에서 소송을 진행했으니 말이야.”
오히려 범죄자가 제대로 된 처벌을 안 받는 게 더 나았다. 새로운 법이 필요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딥페이크를 만든 사람이 아무런 처벌을 안 받는 건 아니었다.
“내 얼굴을 합성한 원본 포르노 회사에서 고소할 생각이라고 하더라. 자신의 작품을 공짜로 수많은 사람이 봤다면서 말이야.”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금액이 꽤 컸으니 법안이 만들어질 때까지 한동안 딥페이크를 제작하는 사람은 확연히 줄어들 것이다.
할만큼 했고 이 이상은 손을 떠난 일이다.
“이제 남은 건 그동안 거둔 열매를 수확해야지.”
배우 파업으로 얼굴도 알리고 새로운 많은 인맥도 쌓았다.
거기에 딥페이크 소송으로 관련 연방법도 순조롭게 논의 중이고.
아무리 사건 사고가 자주 터지는 할리우드라도 해도 이만한 사건은 흔치 않았고, 이 초대형 이슈를 먹고 무럭무럭 자란 것이 있었다.
Beautiful World.
이안이 뿌려놓은 이슈를 게걸스럽게 흡수하며 덩치가 커진 할리우드의 초기대작이었다.
***
사람들은 할리우드가 영화에 왜 PC 사상을 넣는지 모르겠다고 말을 하곤 한다.
이안에게 그 이유를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것이다.
“그게 돈이 되니까.”
여성의 권리를 위한 영화라면 평소에 영화관에 오지 않았을 여성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다.
주인공을 흑인으로 만들어 흑인 인권을 내세운 영화라면 많은 흑인 관객이 찾을 것이다.
영화관에 더 다양한 계층을 불러오는 효과가 있다는 뜻이다.
할리우드 불었던 PC 바람을 비즈니스 관점에서 생각하자면 ‘보통 관객뿐만 아니라 사상에 동조하는 관객을 끌어들이는 마케팅.’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물론 그게 얼마나 단순한 생각인지 줄줄이 박살 난 흥행 결과만으로도 알 수 있지만.’
그래도 그들이 기대한 결과가 어떤 건지는 알 것 같았다.
-딥페이크 포르노의 반대를 담은 Beautiful World! 여성 관객을 끌어모아!
-인간의 가치를 담은 Beautiful World! 북미에서만 사흘 만에 1억 천 달러의 흥행 돌파! 이미 제작비를 뛰어넘은 흥행!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은 Beautiful World! 글로벌 나흘 간 3억 달러가 넘는 흥행을 달리다!
Beautiful World는 개봉과 동시에 흥행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했으니까.
에필로그
팬데믹 기간 외딴 별장에서 아이작 감독님과 나눈 대화가 선명히 떠올랐다.
은퇴작을 제외하면 평생을 소위 예술 영화라고 작품들을 만들어낸 거장은 호수에 낚싯대를 드리우며 말했다.
“네이선의 선배라는 친구가 은퇴한 나를 찾아온 적이 있단다. 정말 존경한다고 어떻게 하면 나처럼 작품을 만들 수 있냐고 물어봤지. 그래서 뭐라고 답했는지 아니?”
“뭐라고 하셨는데요?”
“혹시 집에 돈이 많냐고 물어봤단다. 없다면 돈이 될만한 작품을 만들라고 했지. 깜짝 놀라더구나.”
예술 영화의 거장이 대놓고 그렇게 말하면 안 놀랄 사람이 있겠나.
안 봐도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훤해서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영화는 산업이야. 돈 따위는 필요 없다며 예술한다는 인간은 진즉에 굶어 죽었단다. 나라고 다르겠니. 내 고집대로 촬영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버는 감독, 그게 바로 나지.”
은퇴에도 여전한 그의 이름값을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로 냉소적인 평가.
누군가는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는 말이나, 이안 본인도 이 바닥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만큼 절절히 공감하는 내용이었다.
“물론 돈이 최고란 이야기는 아니란다. 다만 돈이 되는 감독, 배우라는 이미지는 많은 문제를 간단하게 만들 수 있지. 사생활이 더럽고, 부족한 연기력으로도 주연 자리를 꿰찰 수 있고, 게빈 놈처럼 멀쩡한 집과 차를 뻥뻥 터트릴 수도 있지.”
“쯧쯧, 부러우면 할리우드로 진즉에 오면 될 거 아니냐. 제 촬영비보다 비싼 차들 좀 터트렸다고 질투하기는. 다 늙어서 질투하면 추잡한 거 모르냐.”
“하, 부럽기는 무슨. 테러범도 아니고 감독 별명이 폭발광인 게 말이 되더냐.”
여느 때처럼 티격태격하는 노인들의 대화로 끝이 난 기억이 지금 떠오르는 이유는 그걸 직접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Beautiful World가 흥행할 건 많은 사람이 예상한 바였다.
황금종려상과 관객상으로 금테를 두르고 이슈를 폭풍우처럼 몰고 다니는 이안이 주연인 영화잖는가.
-박스오피스 프로, Beautiful World 북미 1억 달러, 최종 성적을 3억 달러 언저리로 평가하다.
분명 낮게 평가한 건 아니다. 나름 전문가라는 이들이 지금까지 쌓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내린 평가니 말이다.
유명 IP를 사용한 것도 아니고, 프랜차이즈 영화도 아니며 사람들이 좋아할 법한 화려한 액션 같은 게 포함된 영화도 아니다.
‘이 정도면 정확한 계산이지.’
‘3억 달러만 나와도 흥행 성공이야. 할리우드 영화치곤 저예산인 영화잖아. 홍보비도 많이 쓰지 않았고.’
툭하면 제작비가 1억 달러가 넘어가는 할리우드에서 제작비로 4천만 달러가 든 영화는 어디 가서 돈 좀 썼다고 말 못 할 수준이다.
주요 촬영지가 이안 소유의 저택인 것과 주연 배우인 이안과 벤이 출연료에서 흥행 수익을 높인 덕분이지만, 그걸 생각해도 적은 비용.
‘거기에 이안이 이슈를 뻥뻥 터트리면서 홍보비도 많이 절약했고. 3억만 나와도 남는 돈이 얼마야.’
다만 세상에 전문가의 예측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증명하는 사례는 무수히 많았다.
전문가들에겐 애석하게도 Beautiful World가 전문가라는 이름을 비웃는 결과물을 쏟아냈다.
3억 달러? 이미 글로벌 개봉 첫 주도 안 돼서 흥행 돌파를 이뤄냈으며 그 열기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Beautiful World! 개봉 2주 만에 북미에서만 3억 달러 흥행 돌파! 글로벌 흥행 성적은 6억 5천만 달러 돌파!
-전문가들, Beautiful World가 10억 달러 흥행 돌파 영화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혀.
전 세계적인 흥행 작품의 기준점인 10억 달러 흥행 영화.
한화로는 1조가 넘는 수익이 가지는 의미는 절대 가볍지 않다. 특히 지금까지 그 기준점을 넘은 영화 중 가장 저예산으로 만든 영화가 Beautiful World이니 말이다.
“이안 프라이스에게 빨리 접촉해봐! 뭐? 지금 파업 때의 일이 중요해?! 손가락만 빨고 있을 거냐고!”
“벌써 유니버스 놈들이 움직였다고? 넋 놓고 있지 말고 무조건 Pryce’s Production하고 미팅 자리를 만들어보란 말이야. 고준혁 감독하고도 접촉해보고!”
파업 때 제작사들에게 엿 먹인 사건? 10억 달러 흥행 작품에 눈이 돌아간 이들에겐 그딴 건 사소한 일이다.
오죽하면 이번 작품을 마지막으로 은퇴하려던 필릭스가 이안에게 전화해서 ‘적당히 성공해야 할 것 아니야. 주주 놈들이 은퇴도 못 하게 막게 하면 어떡하니!’라며 한탄할 정도였다.
이안 프라이스는 확실히 돈이 되는 배우다.
Beautiful World로 증명한 사실은 파업으로 꼬였던 제작사들과의 관계를 간단하게 풀어냈다.
‘자본주의인 미국에선 감정보다 이득이 앞서는 게 당연한 일이지.’
수북하게 쌓인 명함과 연락처를 보던 이안은 회귀 전 자신을 떠올려봤다.
화상으로 뭉개진 얼굴을 가진 이안 프라이스는 상품성이 없는 배우로 분류됐다.
감탄할만한 연기? 다재다능한 능력?
이 모든 건 상품성이라는 이름 아래에선 전부 무가치한 것들이었다. 모든 배우가 간절히 바라는 오스카가 오히려 목에 걸린 올가미가 된 이유도 그 때문이다.
높아진 이름값에 맞는 출연료를 주기엔 상품성이 의심되는 배우였으니까.
물론 그때를 떠올려도 슬프거나 화가 나진 않는다.
‘그걸 모르고 배우를 도전한 게 아니니까.’
모든 수모와 고통을 감내할 수 있을 정도로 연기가 즐거웠다. 그건 회귀 전과 완전히 다른 가치를 증명한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2023년 최고 흥행작 중 하나 Beautiful World! 흥행 성적 11억 2천만 달러. 가장 적은 제작비로 10억 달러 흥행작에 포함되다!
Beautiful World가 이뤄낸 괴물 같은 결과로 세상이 떠들썩할 때, 이안은 대본을 펼쳤다.
“어휴, 그놈의 대본은.”
“냅둬. 원래 저랬잖아.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
파티장이 아닌 대본을 끼고 뒹굴뒹굴하는 모습에 주변 사람들은 그저 헛웃음을 지었다.
2024년의 새해가 밝은 순간이었다.
***
1월 7일.
골든글러브 시상식이 열렸다. 전 세계 영화와 미국의 드라마를 대상으로 하는 시상식.
-이안 프라이스,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Beautiful World의 안소니 역할로 남우주연상 수상!
이안의 남우주연상 수상 소식이 전해졌다.
드라마에선 에미상에 밀리고, 영화로는 아카데미 시상식에 밀리는 2등 시상식으로 여겨지는 골든글러브지만, 꽤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바로 오스카라고 불리는 아카데미상의 미리보기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단순한 인식이 아니라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아카데미상 투표가 시작되기 바로 전 골든글러브 시상식이 열리기 때문에 투표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안의 오스카 수상에 청신호가 켜졌다. 기자들은 앞다퉈 기사를 쏟아냈다.
-이안 프라이스 최연소, 최단기 EGOT에 등극할 수 있을 것인가! 오스카에 몰리는 시선!
-미국 대중문화계의 그랜드슬램 EGOT! 역사상 20번째 EGOT의 유력한 후보는 바로 이안 프라이스!
최연소, 최단기.
심지어 긴 미국 역사상 고작 19명만 성공한 그랜드슬램을 이안이 앞뒀다는 소식에 엄청난 관심이 쏠렸다.
그렇게 약속된 3월 10일의 날이 밝았다.
***
이제는 너무나 익숙한 레드카펫을 밟으면서도, 지정된 좌석에 앉으면서도 이안은 무의식적으로 손으로 얼굴을 훑었다.
울퉁불퉁한 화상 자국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매끈한 피부.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릴 극장에 앉아 있으니 과거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야, 긴장되냐?”
옆구리를 톡 치며 벤이 속삭였다.
긴장이 되는 건 아니다. 이전 삶에서 가장 영광스러웠으나 아이러니하게도 배우의 삶을 끊어놨던 기억이 떠올랐을 뿐.
“글쎄요. 이걸 긴장이라고 해야 할까요.”
인생의 변곡점을 만들었던 지난번처럼 이번에도 그렇지 않을까. 묘한 불안감이 치솟았다.
이안의 생각을 모르는 벤은 장난스레 웃으며 고준혁 감독을 불렀다.
“감독님, 세상에 이안이 긴장했다네요? 전 얘가 긴장하는 걸 처음 보는 거 같아요.”
“그러게 말입니다. 주변 사람 심장 떨어지게 만드는 사건은 펑펑 일으키면서 혼자만 태연해서 얄미웠는데 이제 좀 속이 시원하네요.”
“저도 딱 그 생각했는데 말이죠.”
…이 인간들이?
눈살을 찌푸리자, 둘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도 둘 덕분에 잡생각은 사라졌다. 긴장이 풀린 듯한 이안을 보고 벤은 아쉬움의 입맛을 다셨지만 말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시작됐고 수상자가 줄줄이 발표됐다.
환호하는 사람들과 실망감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들. 여러 감정이 뒤엉키는 시상식이 진행될수록 이안은 자신에게 시선이 쏠리기 시작하는 걸 느꼈고.
그게 절정에 달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와우! 이번에는 남우주연상입니다. 바로 쟁쟁한 후보들을 한 번 보고 오도록 하죠.
소개되는 후보 가운데 이안의 얼굴이 나타났다.
수상자를 발표하기 위해 숨을 들이마시는 사회자와 함께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했고.
-축하합니다. 남우주연상 수상자는 이안 프라이스!
자신을 바라보는 카메라와 쏟아지는 환호성.
자기 일처럼 좋아하며 포옹하는 벤과 준혁을 지나쳐 이안은 걸음을 옮겨 무대 위로 올라갔다.
“축하합니다.”
내민 트로피를 잠시 바라봤다.
손에 긴 칼을 들고 필름 릴 위에 선 사람의 형상. 남우조연상의 이름로 한 번 움켜쥔 적 있는 트로피를 조심히 잡았을 때.
새하얀 섬광이 시야를 가렸다.
이젠 익숙해 놀랄 것도 없는 순간이 지나고 돌아온 시야에는 넓은 교회가 보였다. 수많은 사람이 앉아 있는 공간에 익숙한 얼굴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이안.”
뚱뚱 몸매로 새하얀 정장을 고집했던 자신의 에이전트이자, 친구인 닉.
그가 초췌한 얼굴로 검은 정장을 입고 있었다.
“미안하다. 내가 너한테 수술을 권하지만 않았어도. 네가 이렇게 허망하게 떠날 일은 없었을 텐데.”
아니다.
만약 과거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대로 숨을 거뒀더라도 그를 원망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안은 불투명한 손으로 조용히 관 위에 꽃을 얹는 그의 손을 덮었다.
이제는 자신만 기억하게 될 일이고, 앞으로는 이런 기회가 없을 거라는 것을 알기에 진심을 담아 말했다.
“네가 아니었다면 꿈을 이루지도 못했을 테지. 고마웠어.”
놀란 듯 고개를 치켜든 닉의 눈동자에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이안은 앉은 사람들을 훑어봤다. 화상 입은 얼굴을 숨기지 말고 드러내는 조건으로 캐스팅한 아델리아가 보였다.
엑스트라 빈자리가 생겼다고 연락한 스태프도, 연기력만 보고 캐스팅한 영화감독도, 각본가로 살아온 아멜리아도 보였다.
배우로 살아갈 수 있었던 수많은 옛 인연이 이안 프라이스라는 배우가 떠나는 순간을 함께 하기 위해 찾아왔다.
무슨 말이라도 하기 위해 입을 뻐끔거렸던 이안은 다시 시야가 뒤틀리는 것을 느꼈다.
마치 미련 둘 것이 있냐는 것처럼.
깜빡임과 함께 뒤바뀐 풍경.
화려한 시상식 무대 위에서 이안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마이크 앞에 섰다.
수상소감을 기다리는 사람들 앞에서 첫 마디를 꺼냈다.
“감사합니다.”
이안은 활짝 미소를 지었다.
누가 봐도 행복한 미소였다.
***
-Beautiful World의 이안 프라이스 남우주연상 수상! 최연소, 최단기 20번째 EGOT 탄생.
-20대 중반의 나이에 EGOT을 달성한 이안 프라이스!
미국 대중문화 역사에 큰 획을 긋는 사건이다.
이안의 팬덤은 환호성을 터트렸다.
-경축) 이안의 EGOT 달성! 오스카까지 수상했는데 설마 아직도 이안의 본업이 가수라고 주장하는 멍청이는 없겠지?
└그래, 아웃사이더를 시즌10까지 찍어줄 이안은 배우가 맞다.
└오오오, 교주님께서 EGOT 달성을 찬양하라!
└아오, 누구야! 누가 이놈들을 EGOT 특사로 풀어줬어?!
└그래도 이안의 진짜 본업은 드루이드라고 생각해요.
└…사이비 교주보단 낫다.
평소라면 가수 팬들이 들고일어났겠으나, 이들의 관심은 거기에 없었다.
-이안 프라이스, 수상소감으로 한동안 세계를 돌아다닐 거 같다고 밝혀.
└드디어 왔구나! 월드 투어!
└얼마나 기다렸던가. 꿈은 이뤄진다!
└잠시만 전부 다 따라가려면 돈이 얼마나 들려나. 길바닥에서 자면서 호텔비를 아끼면 꽤 많이 돌아다닐 수 있을 거 같기도 하고.
└티켓팅에 성공하고 나서 생각하시죠.
└으아악! 티켓팅!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한다!
월드 투어를 암시하는 말에 모두 흥분된 상태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속보) 한국에서 이안 발견. 여행 중이라고 밝혀.
-속보) 이후 일본에서도 발견. 여행 중이라고…
-속보) 유럽에 나타난 이안 프라이…
└잠시만 멈춰 봐. 설마 아니지?
└응, 월드 투어는 그냥 세계 여행이었어.
└이안이안아, 이게 무슨 소리니. 이 자식아!
└뉴비들은 모르는군. 이게 바로 이안했다는… 아오, 염병할! 이건 됐고, 이안 당장 나와!
유럽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팬 사이트를 본 이안은 모자를 고쳐 쓰며 웃었다.
“진짜 누구 팬인지 몰라도 성질이 급하다니까.”
옆에 팬이 있었다면 ‘네가 이전에 한 행동들을 생각해보라고!’라며 억울할 말을 한 그는 닉에게 월드 투어 계획을 보냈다.
문자를 보내고 툭툭 털고 일어난 이안은 걸음을 옮겼다.
또다시 바쁜 일상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完>***
안녕하세요. 할리우드 아역부터 천재 배우를 쓴 달콤한Ice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이 글을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모전에서 몇 번이고 연중을 고민했던 작품이 우수상을 받고 지금까지 쓸 수 있던 건 모두 독자님 덕분입니다.
지금까지 이안의 이야기가 재밌으셨나요. 저는 꽤 재밌었습니다. 200화로 완결을 생각하던 작품을 지금까지 끌고 올 정도로요.
비록 이안의 나이가 20대 중반에 불과하지만 지금 나잇대로 쓸 수 있는 이야기는 전부 쓴 것 같아서 이렇게 완결을 내게 됐습니다. 이 이상 끌어봤자 사족에 불과할 것 같기도 했고요.
다만 제게도 남은 아쉬움을 완전히 털어내기 위해 외전을 조금 쓸까 합니다.
현재 계획 중인 건 중년이 된 이안과 성장한 에반과 대녀인 비비안 그리고 아직 어린 이안 2세의 이야기를 조금 담아볼까 합니다.
당연히 세월이 지난 다른 주변 인물도 나올 예정이고요. 외전도 즐겁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번 지금까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