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31)
모르는 게 약(1)
작은 충격이라도 갈까 손가락을 까닥이는 것도 조심하는 아이 손 위에 놓인 새하얀 알.
조류 학자도 아니고 진짜 독수리 알인지 알 턱이 없다.
‘어쩌면 조류가 아닐지도 모르고.’
그래도 가장 가능성이 큰 건 독수리 알이다. 만약 그렇다면 왜 이걸 조이에게 줬을까.
‘나 대신 차라리 얘를 키워라.’라며 주고 갔을 리는 없지 않은가. 새끼에게 애정이 없는 동물도 아니고.
둥지에 문제가 생겼거나 알을 노리는 포식자가 나타났을 수도 있다. 직접 물어볼 수도 없으니 그저 짐작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지금 중요한 건 이 알을 어떻게 하느냐였다.
“데미안에게 연락해서 부화기를 가져와달라고 부탁해야겠네. 빨리 오기 힘들면 먼저 보내달라고 하던가.”
전화를 받은 데미안이 어떻게 반응할지 눈에 훤했다.
아마 ‘이안, 네가 드디어 조류의 아름다움을 깨달았구나! 이렇게 된 거 참한 공작새 한 마리도 키워보는 건 어떻겠니?!’ 이렇게 호들갑을 떨겠지.
‘이래서 다른 동물은 몰라도 조류는 안 키운 건데.’
어쩌겠는가. 자타공인 공작새 덕후와 수의사 부부의 도움을 받으려면 감내해야 할 부분이다.
이안의 결정을 들은 조이는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물었다.
“이 알을 키워도 돼요?”
이안은 야생동물을 데려와 키우는 데는 부정적이다. 드루이드라는 별명이 생겼던 시절에 결정 내린 생각이고 이건 지금도 변치 않았다.
항상 조이에게도 그렇게 교육해왔고.
‘미리 교육을 안 했으면 집이 동물농장이 됐을지도 모르겠네.’
마당에선 새끼 고양인 줄 알고 데려온 퓨마가 뛰어놀고 지붕 위에선 온갖 새들이 지저귀는 풍경이 현실이 됐을 수도 있다.
아무튼, 괜한 예외를 두고 싶진 않지만.
“이번에는 어쩔 수 없잖니. 네가 둥지에서 가져왔다면 크게 혼냈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고 돌려줄 방법도 없으니 말이야. 최대한 보살필 수밖에.”
“와아!”
허락을 받고 좋아하는 조이에게 다가간 비비안이 조언을 해주는 게 보였다. 독특한 취미를 가진 아빠와 함께 살면서 쌓인 지식이 한둘이 아닐 테니 꽤 든든한 모습이다.
비비안과 함께 알을 소중히 옮기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레이첼이 옆으로 다가와 웃음을 터트렸다.
“누가 진짜 부녀 아니랄까 봐 이런 것까지 닮네?”
“응?”
“레오와 크림이 때도 비슷했잖아.”
아…
구조되고 지독한 인간 불신에 빠져있던 레오가 자기 새끼처럼 품고 있던 크림이를 맡겼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때? 비슷하지.”
“진짜 부정할 수가 없네.”
크림이가 노환으로 세상을 떠난 뒤 마치 뒤따라가듯 세상을 떠난 레오. 꽤 갑작스러운 이별 탓에 조이는 둘이 묻힌 곳에서 온종일 펑펑 울음을 터트렸었다.
이때 슬픔이 얼마나 컸는지 이후로 동물을 키우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을 정도인데, 그랬던 아이가 새로운 가족이 생길 것에 기뻐하는 중이다.
‘이젠 괜찮아졌나 보네.’
아직도 둘의 무덤이 있는 언덕에서 종종 시간을 보내는 걸 보면 둘을 잊은 것이 아니다. 그저 이별의 아픔보단 함께한 즐거운 추억을 떠올릴 수 있게 된 거지.
겉으로 보이는 해맑고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이 조이의 전부가 아니었다.
“여기는 여전히 떠들썩하네.”
“아이 있는 집이 보통 그렇지.”
다니엘의 말을 웃어넘긴 이안은 테이블에 놓인 대본을 내려봤다.
조이가 무덤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자신도 이별을 위한 준비를 거듭해야 할 때였다.
***
부화기를 위해 데미안에게 전화를 걸었다.
만약 늦는다고 하면 따로 주문할 생각이었는데.
“이안, 드디어 네가 조류에 관심이 생겼구나. 그래,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거라 믿고 있었단다.”
-꾸에엑!
…이렇게 쏜살같이 찾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것도 옆에 공작새 한 마리를 끼고서 말이다.
웨딩드레스처럼 우아하게 하얀 깃털을 펼친 공작새를 보여주는 데미안을 바라봤다.
‘진짜 여전하단 말이야.’
한때 벤과 함께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미남 배우로 활동하던 얼굴이 어디로 가는 건 아닌지 세월이 만든 흔적은 그를 미중년으로 만들었다.
다만 외모와 달리 행동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그런 그의 등을 툭 치며 볼멘 목소리를 한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당장 가야 한다고 얼마나 보채던지. 이 녀석 때문에 진짜 귀찮아 죽겠다니까.”
“그렇게 불평할 거면 여성들이랑 나중에 오지 그랬냐.”
“같이 와주니까 딴소리하네. 여긴 우리 사위 집이야, 이 녀석아.”
사위라는 단어를 힘 있게 말한 벤은 이안을 향해 시원한 미소를 지었다. 아역 시절부터 친한 친구처럼, 때로는 조카처럼 대하던 시절과 똑같은 미소였다.
“다른 분들은요?”
“이 녀석 때문에 우리 둘만 먼저 왔어. 딜런은 세 여성분을 데리고 나중에 올 예정이야. 아마 지금쯤 오랜만에 요리사 시절로 돌아가 있을걸.”
어깨를 으쓱인 그는 안에 있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는 리오를 번쩍 안아 들었다.
“아이고, 우리 손자. 그동안 잘 지냈니?”
“네, 잘 지내고 있어요.”
“진짜 우리 레이첼을 닮아서 참 순하다니까.”
배시시 웃는 아이의 등을 토닥인 그는 부화기를 설치하는 데미안과 함께 조이와도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고작 둘이 추가됐을 뿐인데 저택 내부가 두 배는 북적거리는 느낌이다.
“이게 지금 쓰고 있는 대본이란 거지?”
아직 보강과 수정을 거듭하는 중이나, 어느 정도 대본의 얼개는 완성된 상태였다.
순식간에 몰입해서 대본을 해부하듯 꼼꼼하게 읽은 두 사람은 감상평을 내놓았다.
“아멜리아에게 보여주면 엄청 불평하겠는데? 이런 대본을 쓸 줄 알면서 그렇게 자신을 쥐어짜냐면서 말이야.”
“재밌는데? 고작 몇 줄 남겨놓은 글로 만든 각본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인데.”
소피아가 남긴 수첩 속 내용을 이미 진즉에 들어서 알고 있는 둘이기에 그 놀라움은 더 컸다.
아직 보강 중이라고 하지만 당장 작품을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고.
“작품 제작은 언제쯤 하려고?”
“할머니의 내년 기일까지는 완성하고 싶으니 올해 안에 최대한 제작을 마무리해야겠죠.”
지금은 3월이다. 제작 준비부터 촬영, 거기에 편집까지 올해 안에 끝낸다는 말도 안 되게 빠른 일정에 둘은 놀라기는커녕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마음만 먹으면 작품을 빠르게 완성할 수 있다.
배우들이 연기하는 촬영 기간은 단축하기 힘들어도 세트장 구성을 비롯한 프리프로덕션 과정과 편집은 과거보다 훨씬 빠르게 끝낼 수 있으니까.
‘다만 그렇게 하려면 진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야겠지만 말이야.’
올해는 콘서트니, 월드 투어니 하는 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러니 슬슬 공지를 올리고 양해를 구해야 할 거 같았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작품이니 이해해줄 것이다.
“그건 네가 알아서 할 일이고. 음, 소피아에 대해 우리가 따로 해줄 말은 없을 거 같은데. 우리가 해줄 만한 말은 이미 다 들은 거 같거든.”
“너랑 있었던 일을 자주 묻곤 했다는 것 빼곤 없었지.”
“하긴 나한테도 많이 물어보곤 했어. 이안, 네가 밖에서 있던 일을 잘 말해주는 성격은 아니었잖아?”
확실히 자신이 활동하며 생긴 일들을 가족들에게 잘 이야기하진 않았다. 숨겼다기보단 묻지 않으면 나서서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굳이 변명하자면.
‘그런 게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지. 노숙자 시절 그런 이야기를 함께 나눌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나마 에이전트인 닉이 있었지만, 대화는 업무적인 것 위주일 수밖에 없었다. 한 명은 그저 연기에 미쳐 사는 배우였고, 다른 한 명은 업계에서 잘 나가는 에이전트지 않은가.
둘 다 소소하게 이야기 나눌 여유는 많지 않았다.
인제 와서 변명을 해봐야 의미가 전혀 없었고, 그저 쓴웃음을 지었다.
“진즉에 알았으면 궁금해하셨을 법한 이야기를 해줬을 텐데 미안하네요.”
“글쎄.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잖아. 네가 터트리는 일은 노인에겐 너무 자극적이지 않았을까? 샬럿, 어떻게 생각해.”
“숨기는 게 나은 일이 많긴 하지.”
“내가 뭐요?”
“내가 굳이 하나하나 짚어줘야겠니?”
최초의 사건이었던 허먼 폭로만 해도 그걸 어른들이 들었다면 기겁했을 것이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이제 아역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아이가 할리우드 거물을 냅다 고꾸라뜨리려고 계획을 짰으니 경악하는 게 정상이다.
‘그리고 이건 계속 비밀로 해야 할 사건이야.’
그때 이안을 대신해 얻은 명예가 아까워서 그런 게 아니다.
‘어릴 때부터 인간 폭탄이었다는 걸 깨달은 정계의 반응이 걱정되니까 그렇지.’
아마 지금보다 위험도가 더 높게 측정되지 않을까. 귀찮은 일에 엮이게 될 가능성도 더 크고.
양심에 찔리는 점이 많은 이안은 눈을 흘기는 샬럿의 시선을 슬쩍 피했고,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트린 벤이 어깨를 두들겼다.
“널 대신해 우리가 여러 이야기를 해줬으니까 걱정할 거 없어. 덕분에 이야기할 거리도 많고 오히려 좋았지, 뭐.”
“그래, 이제부터라도 잘 이야기하면 되는 거 아니겠어? 이야기를 안 하면 오해가 쌓이는 법이라고. 가족끼리 숨기는 게 너무 많아서 좋을 건 없고 말이야.”
가족이라도 모든 걸 드러내란 뜻은 아니다. 다만 비밀이 많을수록 오해가 생기기 쉽다는 걸 말하는 것이다.
“아무튼, 이 이야기는 이쯤 하자고. 소피아 씨도 이런 이야기를 이어가는 걸 별로 좋아하진 않았을 테니까.”
고개를 끄덕인 이안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벤이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뭐야, 어디 가?”
“숨는 게 많아서 좋을 건 없다면서요. 제 팬들에게 미리 이야기해주려고요.”
“네 팬은 또 한동안 떠들썩하겠구만.”
이런 것도 20년이 훌쩍 넘었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긴 하다.
잠시 후 이안은 손가락을 놀려 팬들에게 공지 사항을 올렸다.
***
연예인도 분명 전성기가 있다.
젊은 시절 외모도 세월에 빛을 바라기 마련이고 빠르게 바뀌는 최신 트렌드에 따라가며 인기를 유지하는 것도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반짝인기를 얻는 건 쉬우나 그걸 오랫동안 유지하는 건 극도로 어렵다.
그런 면에서 이안은 다른 연예인의 롤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안의 팬덤인 Fianist는 세월이 지나도 그 성세가 여전했으니 말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는가.
많은 사람이 이유를 찾기 위해 노력했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미래의 팬이라고 할 수 있는 어린 팬들이 꾸준히 생기는 탓이지.”
어린아이들이 좋아하는 건 회귀와 함께 처음에 생긴 변화였다.
학창 시절엔 친구들에게 너무 시달려 ‘이안과 친해지려면 양자역학을 공부해야 했다.’라는 전설을 탄생시키기까지 했고.
아이와 촬영할 때 도움이 되는 능력.
그 정도로 치부했던 게 지금 와서는 원활한 팬들의 세대교체를 만드는 일을 할 줄은 이안도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다만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다. 꾸준한 팬이 유입되는 건 분명 좋은 일이지만.
-하, 라이의 정체가 처음으로 공개된 콘서트는 지금 봐도 대단하다니까.
└라이가 뭔데요? 할배요.
└아니, 라이를 모른다고? 2010년대 그 전설 같은 콘서트도 모르고?
└저 2023년생인데요.
└…오우.
어느덧 노년이 되어버린 팬부터 이제 사춘기를 겪고 있는 팬까지.
퍼리 팬덤과 수상한 사이비에 이어서 이제는 세대갈등이 팬덤의 문제로 떠오르는 처지였다. 그래도 변치 않는 것이 있다면.
-안녕하세요, 이안 프라이스입니다. 가수 팬 여러분께 양해를 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올해는 새로운 작품 준비로 인해서 여러분이 바라는 콘서트는 진행하지 못할 거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대신 준비 중인 작품에 대한 건 다른 공지를 통해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올해는 콘서트가 없다고?
-속보) 월드 투어는커녕 올해는 콘서트도 없어.
└아니, 이안 교수님. 이게 무슨 말입니까. 올해는 세미나 대신 콘서트를 열기로 하셨잖습니까.
└이건 전부 노ㅇ… 아니, 대학원생이 없어서 교수님이 화가 나셔서 그래!
└…그치만 교수님 방은 나갈 때도 비밀번호가 필요하다는 걸.
└오히려 좋아.
콘서트와 월드 투어는 가수 팬들이 간절히 기대하는 이벤트라는 점이다.
난장판이 된 팬 사이트에는 가수 팬의 하소연이 가득했다.
-그깟 작품이 중요해? 도대체 얼마나 중요한 작품이길래 우리를 버려?!
└맞아. 매년 꾸준히 만드는 작품 아니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이안이 잘못한 거 같다.
└가수 팬도 사람이야. 사람!
-이안에게 강하게 항의를 하면 콘서트를 열어주지 않을까?
└혹시 뉴비니? 그런 게 통할 상대가 아니란다.
└맞아. 상처받아서 한동안 가수 활동을 쉰다고 선언할 수도 있다고.
└아니야. 옛날과는 많이 다르잖아. 통할 수 있다고.
└그래, 고작 작품 하나 때문에 우리를 버린다는 건 용납할 수 없어.
열심히 불평을 늘어놓던 가수 팬들은 문득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배우 팬들은 왜 조용하냐?
평소 같으면 놀리기 위해 배우 팬들이 달려들었을 텐데 아무런 말도 없었다. 불길함이 드는 침묵에 가수 팬들은 글을 쓰는 걸 멈췄고.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뭐야, 이제 눈치챘나 본데?
└응, 그래도 이미 늦었어.
└…뭔데 이 자식들아.
└다른 공지로 내놓은 작품 정보에서 각본가 이름은 못 봤구나?
…각본가?
재빨리 글을 본 가수 팬들은 소피아 프라이스라는 이름에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걸 느꼈다.
-이안의 할머니 유작에 그깟 작품?
└그렇게 심한 말을 하다니. 이안이 엄청 상처 입었겠는데.
└아니아니, 잠시만…
└설마 퍼리랑 사이비보다 가수 팬들이 먼저 사라질 줄은 몰랐는데. 후, 그동안 즐거웠다. 멀리 배웅은 안 한다.
└R.I.P.
└끼야아아악!
…이안, 이놈아.
그렇게 중요한 정보가 있으면 먼저 말을 해야지!
가수 팬들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
리오는 어두운 방 안에서 고개를 돌렸다.
알이 든 부화기를 보다가 잠든 조이를 잠시 물끄러미보다 고민에 빠졌다.
“가족끼리 숨기는 건 최대한 적을수록 좋다.”
…오늘 어른들끼리 나눈 대화가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부모님이 바라는 대로 평범한 아이처럼 여겨지고 싶었다. 그랬기에 지금까지 자신의 눈에 보이는 걸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고.
“말을 해야 하는 걸까.”
하지만 그게 잘못된 생각일지도 모른다는 걸 알게 됐다.
고민하는 아이 옆으로 검은 형체가 떠올랐다.
-안 돼. 제발 말하면 안 된다. 다시 한번 생각, 끼아아악! 이안의 양말?!
…성수보다 효과가 좋은 거 같은데?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