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32)
모르는 게 약(2)
리오는 소리로 이뤄진 형상의 정체는 정확히 몰랐다.
깊게 파고들수록 부모님과 자신이 바라는 평범과는 거리가 멀어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똑똑한 머리만큼 호기심도 많았던 아이가 궁금증을 완전히 덮어 놓을 수는 없었다.
마침 주변에 잘난 어른들이 많지 않은가.
“아빠, 다른 사람들은 못 듣는 소리가 들리는 데 문제가 있는 건가요?”
“아, 리오 같이 어린아이는 어른보다 더 많은 소리를 들을 수 있단다. 특히 고주파라고 불리는 높은 소리를 어른과 달리 잘 들을 수 있지. 10대 이하만 듣는 소음이라고 해서 틴 버즈라고 부르는데…”
도로시가 레이첼을 끌어당기며 ‘뭐야, 이과야?’라며 질색하는 설명을 잔뜩 들을 수 있었다.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설명을 들은 리오는 새로운 지식을 얻었으나 원하는 답은 아니란 걸 깨달았고.
혼자 조사한 결과 귀신 같은 것과 비슷하다는 걸 깨달았다. 놀랍게도 근처에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귀신? 누가 너에게 그런 몹쓸 걸 벌써 알려줬을까. 애들은 그런 걸 일찍 알아서 좋을 게 하나도 없는데 말이야. 근데 그건 왜 갑자기 물어봤니?”
“얼마 전에 방에 혼자 있는 앞을 지나가는 검은 형체…”
“당장 가자!”
제대로 답변을 듣기는커녕 엑소시즘을 벌이는 게빈의 모습만 구경하게 됐다. 혹시 나중에 또 그런 게 보인다면 뿌려버리라면서 만날 때마다 성수를 꼬박꼬박 챙겨줬고.
‘…그런 성수보다 아빠 물건이 더 효과가 있다고?’
게빈이 알았다면 ‘아니, 성수보다 이안의 양말을 더 싫어한다고? 말도 안 돼!’라며 뒷목 잡을 사실이었다.
아빠를 무서워하니까 물건도 싫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렇게 효과가 좋을 줄은 몰랐고, 어디서 함부로 말 못 할 비밀이 생겼다.
아무튼, 새로운 사실을 깨달은 것과 무관하게 자신 눈에 보이는 형체를 이안에게 말해야 하나 고민을 거듭하던 리오는 결정을 더 뒤로 미뤄야 했다.
“우리 손주들! 할애비가 왔단다!”
“할아버지! 할머니!”
“오셨어요?”
거구인 딜런은 두 아이를 끌어안고 연신 머리에 뽀뽀하며 반가움을 표현했고, 뒤따라 들어온 클로이는 못 말린다며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누가 보면 몇 달은 못 본 줄 알겠어. 안 그러니?”
“엄마도 저런 면 때문에 좋아하시는 거잖아요.”
아무리 깊은 사랑이라도 익숙함에 무뎌지기 마련이다. 아무리 귀한 물건이라도 싫증이 나는 것처럼 말이다.
권태에 빠지지 않고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을 언제나 즐겁게 여길 수 있는 사람, 그게 딜런이다.
“네 할머니가 떠나고 더 그런 거 같지만 말이야.”
“…그런가요?”
소피아에 대한 그리움은 이안보다 둘이 더 클 수밖에 없고, 심경의 변화를 일으킬 만큼 깊은 상처를 남긴 사건이었을 것이다.
쓴웃음을 짓는 이안의 등을 위로하듯 토닥이며 클로이는 미소 지었다.
“그래서 네가 할머니를 위해 하는 노력이 너무 고맙단다.”
메인 각본가에 소피아 프라이스라는 이름을 올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잘 알기에 더욱 그런 감정이 들었다.
“저에게도 소중한 가족이니까. 그런 말은 하실 필요 없어요.”
“그렇니.”
딜런, 소피아 부부와 인사를 나누곤 뒤이어 들어온 아일라와 데미안의 부인인 미아하고도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가뜩이나 북적거리는 저택이 한층 더 소란스러워졌다.
이렇게 모이니 팬데믹 시절이 떠오르지 않냐면서 추억에 잠기기도 했고 오랜만에 요리사 실력을 보여주겠다며 딜런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기도 했다.
이안은 먹고 마시며 즐겁게 떠드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다들 여전하네.’
소중한 인연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는 바람은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지켜졌다.
이안은 자신이 가진 것들을 떠올려 봤다.
누구나 감탄할 만한 화려한 경력과 크나큰 사랑을 주는 팬덤 그리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감까지.
‘혼자였다면 절대 얻지 못했겠지.’
연기에 매몰되어 배우로 살기 위해 발버둥 치던 노숙자 이안의 삶은 행복하다고 평가하기 힘들었으니 말이다.
부드러운 미소로 풍경을 보던 그의 어깨를 누군가 장난스레 두들겼다.
“무슨 다 산 늙은이처럼 보고 있어? 수염만 깎으면 대학교에 입학해도 이상하지 않게 생겨놓고 말이야.”
“에이, 전 학생보단 역시 교수가 더 맞더라고요.”
“학생의 의견은 들어본 거 맞지?”
‘이안은 좋아도 대학원생은 안 되겠다고 하던데 말이야.’라며 장난스럽게 말한 딜런은 이안이 쥐고 있는 대본을 봤다.
놀고먹는 분위기에서도 대본을 놓지 않는 걸 이안답다고 표현해야 할까.
‘아니면 대본을 든 모습이 이젠 너무 당연하게 느껴지는 내가 이상한 걸까.’
이 아이에게 우리도 참 많이 물들었다며 웃음이 나왔다.
“그게 네가 말한 작품 대본이구나?”
“맞아요. 한 번 보실래요?”
“됐다. 네 할머니를 따라서 나도 읽어볼까 했는데 나는 도저히 안 되겠더라. 그냥 완성된 작품으로 보는 게 더 재밌거든. 스포일러를 당하기도 싫고.”
굳이 따지자면 대본을 좋아하는 이안이 별종이다.
“이안아, 다른 사람에게 들었다. 네 할머니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물어봤다며.”
“네, 함께 살았는데 제가 모르는 부분이 너무 많더라고요.”
너무 소홀했던 건 아닐까 미안함이 들 정도로.
딜런은 어린 이안에게 하였던 것처럼 어깨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마치 깨지기 쉬운 유리 공예품을 다루듯 조심스러웠다.
“나는 유명 스타의 부모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작품에 대해서도, 연예계에 대해서도 잘 모른단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달리 대본을 보고 해줄 말은 없단다. 그런 능력이 없거든.”
딜런의 눈에는 이안의 어깨를 덮은 큼지막한 자신의 손에는 남은 기름에 덴 화상 자국과 칼에 베인 흉터가 보였다.
지금은 번듯한 요식업체의 CEO로 활동 중이나 좁은 주방에서 일하던 시절은 아직도 이렇게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다만 널 위해 해줄 수 있는 말은 있지. 우리 가족이 작은 다이너에서 힘겹게 살아가던 시절을 기억하니? 너는 평범하게 학교에 다녔고, 나는 낡은 아파트 렌트비도 걱정하던 시절 말이야.”
“당연히 기억하죠.”
한국식 콘도그를 그가 처음 튀겨줬던 그때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솔직히 말하자면 힘든 시기였단다. 가게를 유지하는 것도, 널 학교에 보내는 것도 버거웠거든. 우리 똑똑한 아들도 눈치챘을 거야. 그러니 아빠를 대신해 열심히 해결방법을 찾아봤겠지.”
딜런은 이안이 콘도그를 떠올리기 전까지 노트에 끄적였던 글을 봤었다. 조그마한 손으로 어떻게든 도움이 되겠다고 펜을 놀렸을 걸 생각하면 지금도 고마움과 미안함이 들었고.
“아무리 힘든 시기였다고 해도 네게 들어가는 돈이 아깝지 않았어. 오히려 부족한 부모를 만나서 풍족하게 지내지 못하는 너에게 미안할 따름이었지.”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제게는 최고의 부모였어요.”
“글쎄. 정작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 힘들었나 보다. 사실 네가 한국의 친부모를 찾지 않는다고 밝혔을 때 못 나게도 안도했거든.”
혹시 자신들을 떠나지 않을까. 혹은 이전과 달리 부모로 생각하지 않을까 봐.
고작 피부색이 다르고, 핏줄이 연결되지 않은 게 뭐라고 두려워했었다.
한 번도 이안에게 하지 않았던 속마음을 처음으로 말한 딜런은 이안을 보며 짙은 미소를 지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란다. 너는 우리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였어. 만약 네가 평범한 아이였다고 해도 그건 변치 않아. 우리가 네게 미안함을 느끼면 느꼈지, 네가 미안함을 느낄 일은 하나도 없단다. 그건 네 할머니도 같은 생각일 거야.”
여기까지 말한 딜런은 장난스레 팔을 쓸어내렸다.
“사람이 안 하던 말을 하니까 민망하구나. 내려가서 술이라도 조금 마셔야겠어.”
벤과 데미안에게 합류하는 딜런을 물끄러미 보던 이안은 대본을 내려봤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도, 아이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것도… 주인공이 하는 모든 행동의 근원에는 자식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겠네.’
눈을 슬그머니 감아 작품을 그려봤다.
누군가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이안이 머릿속으로 매번 그려온 작품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품에 안은 아이가 울음을 터트릴 때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아이를 노리는 사람들을 보며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을지.
디테일이라고 표현할 작은 변화는 흑백 영화에 색감을 칠한 듯 차이를 만들어냈다.
이안은 감았던 눈을 떴다.
“다 됐네.”
마지막 퍼즐이 제 자리를 찾은 것처럼 확신했다.
이제는 촬영을 준비하는 것만 남았다고 판단한 이안은 대본을 Pryce’s Production에 보냈고.
“여러분, 드디어 올 게 왔습니다.”
올해 안에 제작을 끝내겠다는 포부를 밝힌 작품.
다른 프로듀서라면 ‘선생님, 약주 한 잔 걸치셨습니까?’라며 정중하게 물었을 텐데 하필 이 계획을 낸 인물이 이안이다.
-합의, 설득 불가.
이미 각오를 다진 제작사 직원들은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익숙한 일이었다.
***
제작비를 투자받을 시간조차 아끼기 위해 사비까지 털어서 작품 제작 준비에 들어갔다.
할리우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중 하나라면 넷플러스가 빠른 작품 제작을 위해 도입했던 협업을 위한 제작 표준화와 체계화 그리고 디지털화를 빼놓을 수 없다.
이제는 한 기업이 아니라 업계 전반적으로 빠른 협업이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이 됐다.
물론 뛰어난 업체는 콧대가 높아 아무 작품에 들어가지 않았다. 돈을 넉넉히 챙겨준다고 해도 번호표를 받고 기다리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고.
하지만 이안이 제작하는 작품은 이 경쟁에서 예외였다.
손을 댄 작품마다 대박을 터트리는 건 아니었다. 이안도 사람이니 제작한 작품이 기대 이하의 성적은 거둔 경우는 분명 있다.
“근데 뭐가 대단하냐고? 아무리 못해도 보통은 가잖아. 작품 투자를 하면서 최소한 손해는 안 본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 줄 몰라?”
흥행 성적은 조금 부실할 수 있어도 작품성은 인정받아 작품을 말아먹진 않는다.
이안의 작품이 기본적으로 기대를 받는 이유였는데.
“뭐? 사실상 이안이 직접 각본을 쓴 작품이라고? 말이라고 해. 어떻게든 한 발 걸쳐야지!”
직접 각본을 쓴 작품이라는 소문에 진즉에 손을 내민 협력 업체들이 많았고 제작 준비는 순풍을 받은 것처럼 빠르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제작 준비 과정을 검토하며 시간을 보내던 이안의 옆으로 리오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아빠.”
“응? 무슨 일이니.”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돼요?”
궁금한 거라.
또 뭐에 호기심이 돋아서 이런 말을 할까. 웃으며 아이를 무릎에 앉히곤 물었다.
“그래서 뭐가 궁금한데.”
“아빠는 귀신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하세요?”
귀신이라. 아무래도 게빈 때문에 호기심이 생긴 듯했다.
“본적은 없지만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
회귀부터 드루이드니 뭐니 온갖 특이한 일은 다 경험했는데 귀신이 있다고 해서 놀랄 것도 없다.
자신만 보면 기겁하는 무당을 봤을 때 뭔가가 있지 않나 생각하기도 했고.
이안의 말에 리오는 눈은 반짝이며 물었다.
“그럼 만약 귀신을 볼 수 있다면 아빠는 어떻게 할 거예요?”
“흠, 일단 나한테 해가 될지 안 될지부터 평가하겠지. 만약 해를 끼칠 수 있다면 어떻게든 막아낼 방법을 찾을 거야.”
리오는 잠시 고민했다. 지금까지 본 형상이 해를 끼쳤던가.
소리가 뭉친 시커먼 그림자라 무섭기는커녕 성별 구별도 안 되고, 이안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기겁하는데 그런 걱정은 전혀 없었다.
“만약 해가 안 된다면요?”
흥분했는지 볼을 발그레하며 묻는 리오가 귀엽다는 듯이 이안은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어줬다.
‘산타가 없다는 걸 유치원 때부터 깨달을 때는 걱정했는데, 역시 애는 애야.’
귀신 이야기 같은 걸 이렇게 흥미롭게 듣는 걸 보니 말이다. 이안은 아이를 생각해서 최대한 진지하게 답변을 내놨다.
“해가 안 되면 도움이 될 부분을 생각하겠지? 상상을 해보자. 귀신과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스파이로 쓸 수 있지 않을까? 만약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싫어하는 사람을 무섭게 할 수도 있겠지.”
“그렇겠네요?!”
“그렇지? 문제는 어떻게 요청을 듣게 하느냐지. 그렇다고 괜히 거래 같은 걸 하면 안 될 거야. 이건 공포 영화 같은 데서 나오는 클리셰거든.”
계약을 잘못 맺어서 문제가 생길 위험을 생각하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이안의 설명을 들은 리오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거래가 안 된다면 협박은 상관없지 않을까.’
샬럿이 알았다면 ‘…세상에, 리오까지 이안을 닮았었다고?!’ 경악했을 생각을 하면서.
***
“무슨 일로 전화를 했죠?”
-그냥 아무 일 없나 해서 말이야.
샬럿은 전화하며 두런두런 이야기 중인 이안과 리오를 힐끔 봤다.
“아무 일도 없어요. 평화롭네요.”
-그렇다면 다행이네. 요즘 프라이스가 새로 작품을 만든다고 이쪽도 조금 시끄럽거든.
친한 의원의 말에 그녀는 어깨를 으쓱였다.
“괜한 걱정이라니까요.”
-대선 기간이잖아. 괜히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어. 거기에 우리보다 특히 반대쪽이 더 신경 쓰는 거 같거든. 우리가 괜한 걱정이라고 말해도 의미 없는 건 알잖아?
…하긴 그렇겠지.
오히려 혹시 무슨 수작을 벌이려고 준비 중인 건 아닌가 괜한 경계만 더 살 것이다.
-혹시 수작을 부려올 수도 있으니까, 자네라도 미리 알고 있으라고 전화한 거라네.
“알려줘서 고마워요.”
통화를 끝낸 샬럿은 이안에게 말할까 고민했으나 침묵을 선택했다.
‘전형적인 반골이라서 오히려 이 사실을 알면 대형 사건을 만들겠지.’
이건 확실히 모르는 게 약이었다.
결정을 내린 그녀는 조용히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