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33)
사고뭉치(1)
이안은 완성된 대본이 든 여행 가방을 조심히 들었다.
저택을 채웠던 반가운 얼굴들도 몇몇은 이미 바쁘게 떠나갔다. 숨 쉴 틈 없이 해결해야 할 일거리를 각오하고 겨우 시간을 냈던 샬럿은.
“올해는 비즈니스 파트너로 일하기엔 선거 때문에 바쁘니까. 최대한 얌전히 있자. 알겠지?”
사고뭉치를 보는 듯한 시선으로 경고를 하더니 조이를 한동안 부둥켜안고는 똑같은 말을 했다.
이안이 사고를 칠 때마다 ‘너 닮은 애를 낳아서 너도 꼭 고생을 해봐라.’라며 투덜거렸던 것을 속으로 후회하면서 말이다.
도로시와 다니엘 부부도 예상보다 빨리 돌아가야 했다.
“콘서트가 없다니까 우리 애가 엄청 울적해 한다잖아. 하아, 어쩌다가 네 팬, 그것도 가수 팬이 돼서 이렇게 사서 고생하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어쩌겠어. 이게 다 엄마를 닮았… 아악!”
“시끄러.”
‘올해 가수 이안은 영업 종료입니다.’ 이 소식에 여느 가수 팬처럼 큰 충격에 빠진 딸을 챙기기 위해 서둘러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이안과 친해지면 지금처럼 좋아할 수 없을 거라는 도로시의 말에 팬심을 유지하려고 일부러 이안과 만남을 꾹 참을 정도이니 어쩌겠는가.
그저 사인을 받은 이안의 굿즈들로 마음이 풀리기를 바랄 수밖에.
물론 저택을 떠나야 하는 건 이안도 마찬가지였다.
기술의 발전이 거리라는 장애물을 극복해왔다고 해도 직접 현장에서 관리하는 게 원활한 작품 제작에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
이건 기술 이전에 사람 문제이니 말이다. 원래라면 가족들도 함께 돌아갈 예정이었으나.
“그럼 먼저 돌아갈게.”
-뺙뺙뺙!
“뺙뺙!”
이안은 빽빽 울어대는 회색 털뭉치와 그걸 따라 하는 조이를 보며 가볍게 웃었다.
보송보송한 털을 가진 새끼 독수리가 귀여워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아이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고는 데미안을 바라봤다.
“보살피는 것도 좀 부탁할게요.”
“걱정 마. 여기에 전문가가 둘이나 있는데 무슨 걱정을 해?”
비행기는커녕 외출도 조심해야 하는 새끼 독수리 때문에 홀로 먼저 돌아가기로 한 이안은 남아 있는 이들에게 인사하고 차에 올랐다.
이젠 할리우드로 돌아갈 때였다.
***
Pryce’s Production.
한 스타의 이름을 따서 만든 제작사는 세월이 지나 이젠 이쪽 업계에선 모르는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로 유명한 이름이 됐다.
세계 영상산업에 최강자인 할리우드는 마치 가지가 많은 나무처럼 바람 잘 날 없는 곳이다.
OTT의 등장으로 산업 구조가 스트리밍 서비스로 변하고, AI를 업무에 도입하며 생기는 사람과 AI의 갈등도 가장 먼저 경험할 정도로.
OTT 때처럼 이런 시대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올라탄 PP는 할리우드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제작사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이런 기업의 본사가 오랜만에 분주한 움직임을 보였다.
“오셨다.”
앞에 정차한 두 대의 차량에서 험상궂은 얼굴의 사람들이 주변을 경계했다.
얼핏 봐선 마피아나 갱단인가 싶은 이들이었으나 그들의 정체를 아는 사람들은 크게 무서워하지 않았다.
“오셨습니까?”
“직접 얼굴을 보는 건 오랜만이네요. 그리고 밖에 나와서 기다릴 필요 없다니까요.”
“비서가 앞까지 나올 정도로 일거리가 쌓였다는 뜻입니다.”
마지막에 차에서 나온 이안의 경호원들이었으니까.
단정한 정장과 입가에 머금은 희미한 미소.
일부러 수염을 기르지 않았다면 갓 입사한 신입사원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젊은 외모를 갖고 있으나 마주한 사람들은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와는 별개로 쉽게 대하기 힘든 분위기를 풍긴 탓이다.
그동안 그가 제작사를 운영하면서 이룬 업적 탓일 수도 있고, 한때 할리우드에서 고혈을 빨아먹던 허먼보다 더한 영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확실한 건 존경을 표하며 인사하는 이들에게 이안은 단순한 배우가 아니란 점이다.
오랜만에 사무실로 돌아온 이안은 가장 먼저 쌓인 사무 업무부터 해결해야 했다.
“여기 진행 중인 작품들 현황입니다.”
“고마워.”
예전과는 명백히 덩치가 달라진 제작사다.
작품 두 개를 동시에 진행하면 죽는소리가 났던 시절과 달리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수행해도 괜찮을 정도였고, 이안이 모든 부분에 관여할 규모를 넘어섰다.
‘최대한 하려고 하면 어떻게든 될지 모르겠지만, 제작사 업무에만 열중해야겠지.’
자신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의 관심과 노력으로 지금까지 성장한 제작사가 소중하긴 해도 반대쪽 추에 연기를 올린다면 이건 고민할 여지가 없다.
아직도 자신을 소개할 때 배우라는 직업을 가장 먼저 말하니 말이다.
그러니 이안의 가장 큰 관심사는 역시 For The Future의 제작 현황이었다.
“기본적인 세트장은 준비는 거의 마무리 단계네. 캐스팅만 마무리된다면 한 달 뒤에는 촬영에 들어갈 수 있을 거 같고.”
일사천리라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로 빠른 준비였다.
“제작이 늦어지면 Fianist의 가수 팬들에게 엄청 욕을 먹을 게 뻔하잖습니까. 그러게 콘서트도 하면서 제작 기간을 넉넉히 잡는 게 좋았을 겁니다.”
비서보단 다른 직원이 가진 생각일 것이다. 갑자기 프로젝트 하나가 뿅하고 생겼는데 누가 좋아하겠는가.
‘당장 빨리 안 만들어?!’라며 가수 팬들이 채찍질하는 상황이라면 더욱.
물론 이안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예전처럼 짧게 콘서트를 열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요즘엔 VR 기술이 꽤 대중화되면서 직접 가는 보러 가는 것보다 집에서 보는 게 더 낫다는 사람도 많다지만.
‘현장은 또 현장만의 맛이 있는 법이지.’
망원경을 써야 좋아하는 연예인이 보이는 커다란 콘서트에 꾸역꾸역 그 많은 사람이 비싼 돈을 주고 모이는 이유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직접 참여할 때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있으니까.
거기에 회귀 후 생긴 여러 능력 탓인지 가수 팬 사이에서 실제 콘서트를 본 사람은 다시는 영상으로 만족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는 이안은 더욱 그랬다.
괜히 올해 콘서트가 없다는 말에 가수 팬들이 절망에 빠진 게 아니고, 이런 상황은 비서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괜히 짧은 일정 때문에 피 터지는 티켓팅하고 암표 값이 치솟을 걸 생각하면 차라리 안 하는 편이 낫지 않겠어?”
…이건 가수 팬의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가뜩이나 순탄하게 제작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이안까지 직접 현장을 뛰어다니며 관여하자 준비는 더 빠르게 이뤄졌다.
이안의 도움으로 한숨 돌리게 된 사람 중에는 굉장히 익숙한 사람도 있었다.
“네이선, 어때 준비는 할 만해?”
아이작 감독님의 손자이자, 회귀 전과 달리 할아버지와 같은 감독이 되겠다는 꿈을 이룬 그는 반가움 반, 얄미움 반으로 이안의 어깨를 툭 쳤다.
“믿고 맡긴다면서 누가 작품 하나를 맡겼는데, 그게 하필 굉장히 중요한 작품이네? 그것도 준비할 시간도 짧고 말이야. 할 만하겠어?”
친구 할머니의 유작.
뭐 따지고 보면 각본가라는 이름을 넣기도 민망할 정도의 역할이었으나, 그 무게감이 줄어드는 건 아니었다.
그뿐이면 모르겠는데.
“할리우드 첫 작품으로 이런 중요한 작품이라니, 내가 망치면 어떡하려고 그러냐.”
네이선은 이안을 친구로서 굉장히 좋아하긴 한다. 벤과 이안이 처음 만난 Sucker punch의 아역 시절부터 친구이자, 팬으로 응원해왔으니 말이다.
자신이 감독이라는 꿈을 이룬 데는 그의 영향도 절대로 적지 않았고.
다만, 이렇게 쉽지 않은 작품을 맡기니 얄밉게 느껴졌다.
정말 이 작품을 잘 완성할 수 있을까. 불안감이 짙게 숨어 있는 말에 이안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쉽진 않겠지. 아이작 감독님도 I’m okay 촬영 때, 꽤 힘들어하셨거든. 항상 제작비가 넉넉했으면 좋겠다고 입에 달고 살았는데 막상 큰 제작비를 쥐니 쉽지 않다면서 말이야.”
평생 독립 영화를 만들던 아이작 감독님이 은퇴작으로 처음이자, 마지막 할리우드 작품을 만들었다.
긴 감독 인생의 마지막을 도전으로 분명 쉽지 않은 일이고 불안한 일이다.
‘어쩌면 I’m okay라는 제목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일지도 모르지. 제작 과정에서 제목은 지겹게 많이 볼 테니까.’
난 괜찮다. 마지막을 실패로 장식하지 않을 것이다. 자기 암시를 걸듯이 말이다.
“네이선, 이건 만큼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 네가 내 친구라서 너에게 이 작품을 맞긴 게 아니야. 내 생각에 맞게 촬영해줄 수 있는 감독이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거든.”
“…그럼?”
“네 작품을 보고 결정한 거야.”
네이선은 그동안 뉴욕에서 작은 자본으로 영화를 찍어왔다. 이제는 독립 영화에서 제법 이름을 날리는 감독이 된 그의 작품을 꾸준히 봐왔다.
그렇기에 이안은 차갑다 느껴질 정도로 냉정하게 평가했다.
“물론 가장 최근의 작품이 아니었다면 네게 이 작품을 맡기진 않았을 거야. 이유는 알고 있지?”
“…응, 알고 있어.”
네이선은 쓴웃음을 지었다.
모를 리가 없다. 그가 아이작 감독님의 손자라는 게 알려진 초기부터 꾸준히 지적받던 사실인데.
-네이선 그린버그는 아이작이라는 거장의 그림자를 쫓는 짝퉁이다.
심장을 헤집어놓는 듯한 아픔을 안겨준 평론가의 날 선 평가는 아직도 선명히 남아 있었다.
“존경하는 할아버지와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 그건 잘못된 게 아니야. 당연히 그럴 수 있지. 마치 배우가 존경하는 선배의 역할을 따라 하며 연습을 하듯 말이야.”
그 마음을 어떻게 이해 못 하겠는가. 동경이라는 감정은 쉬이 버릴 수 있는 게 아닌데.
“다만 고스란히 따라 해서는 성대모사밖에 되지 않지. 중요한 건 너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거였고.”
“그걸 쉽게 늘어놓는 사람들이 얼마나 얄미웠는지 모를걸.”
수렁에 빠진 것 같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는 진저리를 쳤다.
이 과정을 버티지 못하고 꿈을 포기하는 사람이 수두룩한 걸 생각하면 그는 분명 훌륭한 감독이었다.
“그렇게 힘든 과정을 성공적으로 극복해낸 너라면 분명 훌륭한 작품으로 만들어줄 거라 믿어.”
“후우… 그래, 친구가 믿는다는데 최대한 좋은 작품을 만들어 봐야지.”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상태니 어차피 도망갈 방법은 없지만 말이야.”
짓궂게 웃는 이안을 향해 네이선은 장난스레 주먹을 휘둘렀고, 둘은 어린 시절 때처럼 유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한참을 웃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이작 감독님은 요즘 어떠셔?”
“평소랑 비슷하셔. 게빈 감독님이 너랑 만났다고 자랑했다며 툴툴거리시더라. 겁도 많으면서 늙어서도 몸은 쓸데없이 튼튼하다면서 말이야.”
최근에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몸 상태가 나빠지신 상태였다.
그런데도 간간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전화를 주시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최대한 빨리 이 작품을 만들려고 하는 건 아이작 감독님 때문이기도 하지.’
손자인 네이선이 자신처럼 훌륭한 감독이 됐다는 걸 확실히 느끼게 해주고 싶었으니까.
“우리 이번 작품은 정말 잘 만들어보자.”
“그래.”
마음을 다잡은 둘은 작품 제작을 위한 회의에 들어갔다.
촬영이 임박했다.
***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미국.
4년마다 돌아오는 일이라고 해도 전 세계에 영향을 주는 일이니 벌써 미국 정계는 뜨거운 상태였다.
자금을 모으고 지지자들을 만나러 다니며 선거로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정계는 할리우드에서 들려온 소식을 예의주시했다.
“이안 프라이스라.”
고작 연예인 하나라고 평가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8년 전 대선을 생각하면 더욱.
한 표가 아까운 시기에 엄청난 인기를 끄는 스타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확실하게 느끼게 한 사건이었다.
그나마 기본적으로 할리우드에서 지지를 받아왔고 샬럿을 통해 ‘이번에는 얌전히 있는답니다.’라는 말을 들은 민주당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으나.
8년 전 대선에서 악연을 쌓은 공화당은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하필 이 시기에 부패 정치인이 나오는 작품을 만든다니.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 아닐까요?”
“그것도 최대한 빨리 제작하려는 걸 보면 가볍게 넘길 사항은 아니죠.”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이안이 들었다면 이건 또 무슨 헛소리냐며 눈살을 찌푸렸겠으나, 그들도 괜히 과민반응을 하는 게 아니다.
“…이번 대선 후보가 하필 프라이스하고 악연을 쌓은 인물이니까요.”
어떤 대통령이 되더라도 모든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순 없다. 그게 됐다면 민주주의가 아닐 테니까.
그러니 지금 대통령에게 불만이 있는 사람들은 ‘저놈이 아니고 다른 후보가 됐으면 어땠을까.’라는 슈뢰딩거의 대통령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이번 후보는 그런 분위기의 혜택을 받고 대선 후보가 된 인물이다. 그런 만큼 이안과 안 좋은 인연으로 묶여 있는 상태였고.
지난 경험을 떠올리며 공화당 인사들은 조심히 의견을 내놨다.
“이렇게 된 거 우리가 먼저 나서는 게 어떻겠습니까?”
“작품 제작에 훼방을 놓을 방법을 찾던가. 아니면 주변인을…”
…주변인을 건든다고?
“당신 미쳤어? 진짜 그 인간하고 또 한 번 개싸움 해볼 거야?!”
차라리 본인을 건드리면 몰라도 주변인은 안 된다. 그때부터 이안이 미친개가 된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으니까.
다른 의원들에게 욕을 먹고 처음 의견을 낸 사람이 몸을 움츠렸을 때, 다른 사람이 말을 꺼냈다.
“전 괜찮을 거 같습니다.”
“…뭐?”
“다른 사람들은 힘들지만, 우리가 공격해도 괜찮은 사람이 있잖습니까. 우리와 같은 필드에 있는 사람이요.”
“샬럿 언더힐.”
“네, 그녀요.”
상대 정당 의원을 정치적으로 공격하는 것까지 이안이 막는 건 말이 안 된다. 대중의 지지를 받기도 힘들 테고.
“그것 외에도 방법은 여럿 있습니다. 적당히 긁어서 합의를 끌어내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번 대선에는 얌전히 있기로 말이죠.”
한 번 제대로 붙는 건 부담스러워도 대선에 영향을 주지 않겠다고 합의를 보는 수준이라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획을 짜보도록 하죠.”
샬럿이 옆에 있었다면 ‘왜 가만히 있는 미친놈을 건드려!’라며 위장약을 찾을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
리오는 어두운 방 안에서 몸을 반쯤 일으켰다.
“어떻게 하면 협박이 통할까요.”
-…그걸 나한테 묻는 거냐.
…미친 건가.
검은 형체가 거칠게 일렁였다.
“뭘 싫어하는지만 알려주시면 돼요. 아저씨한테는 안 할게요. 아버지한테도 아저씨를 봤단 얘기도 안 할 거고요.”
따로 배울 필요가 없어 보이는데?
황당한 건지 고민을 하는 건지 형체가 잠잠히 일렁거릴 때.
“…리오, 누구랑 이야기하는 거야?”
뒤에서 들려온 조이의 목소리에 리오는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가장 들켜선 안 될 사람에게 들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