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34)
사고뭉치(2)
사람은 무언가를 이해하기 위해 일반화를 하곤 한다.
MBTI로 사람의 성격 유형을 분류하는 것이 타인을 쉽게 이해하기 위한 행동인 것처럼 말이다.
살면서 누구나 듣게 되는 닮았다는 말도 이런 일반화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눈코입이 어쩌고 하며 기억하는 것보다 ‘아, 그 코미디언 닮은 사람?’으로 기억하는 게 나중에 더 떠올리기 편하니 말이다.
특히 대상이 어린아이라면 부모와 비교되는 경우가 흔했고, 유명 스타의 자녀인 조이와 리오는 말할 것도 없었다.
자주 그런 말을 들은 만큼 리오는 확신하고 있었다.
‘나보다 조이가 아빠를 더 많이 닮았어.’
처음 이런 생각을 하며 시무룩해 있자, 엄마인 레이첼은 ‘…우리 리오도 이안을 꽤 많이 닮았단다. 응, 정말로.’라고 말해줬으나 그게 위로라는 건 너무 잘 알았다.
조이는 그만큼 아빠를 많이 닮았다. 단순히 외모 같은 걸 말하는 게 아니다.
‘대중 앞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아빠처럼 사람을 끌어모으는 매력이 있지.’
학교든 어디든 무리의 중심이 되곤 했고 짧은 아역 시기만으로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의 우두머리가 되곤 하는 사소한 문제가 있긴 했지만.
아무튼, 리오는 너무 잘 알았다. 아빠처럼 무리의 중심이 되는 데 익숙한 조이는 사람을 제 뜻대로 이끌고 가는 힘이 있고, 여기서 자신도 자유롭지 않다는 걸.
“리오리오! 방금 누구랑 이야기한 거야?”
…근데 왜 하필 조이에게 자신의 비밀이 들켰을까.
아니다. 늦지 않았다. 일단 혼잣말을 했다고 얼버무리기를 하면…
“혹시 예전에 크림이가 아무도 없는 곳을 보며 울었던 거랑 같은 이유야? 맞지? 그 귀신 같은 거 말이야.”
“그게…”
“그러고 보니 게빈 할아버지한테 성수도 꼬박꼬박 선물로 받곤 했었잖아. 근데 아빠 양말은 옆에 왜 둔 거야?”
이건 글렀네.
와다다 말을 쏟아내는 걸 들어보니 이미 어설픈 변명이나 말로 도망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리오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어. 말해줄 테니까. 일단 얌전히 있어 봐. 거기에 주먹 휘두르지 말고.”
-끄어어억!
밤이 늦도록 두 아이는 어른들 모르는 비밀을 주고받았다.
***
이안은 촬영 준비 중인 스태프들을 바라봤다.
AI니, 로봇이니 하는 이야기가 이젠 지겨울 정도로 일상 속에 깊숙이 침투한 시대라도 막상 현장의 일 대부분은 사람이 직접 소화했다.
언제 다양한 변수가 튀어나올지도 모르고 로봇이 맡기엔 복잡한 잡다한 일이 많으니 당연한 말이겠지만.
물론 변화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CG를 위해 초록색 크로마키 앞에서 연기할 필요 없이 완성된 그래픽이 나오는 화면 앞에서 연기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기존의 많은 것들이 보완, 발전됐으니 말이다.
‘하지만 배우가 하는 일은 여전하지.’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한다. 이건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았다.
촬영 때마다 느끼는 기분 좋은 설렘을 곱씹는 이안의 옆으로 네이선이 다가왔다.
“촬영 준비는 끝났어.”
“그래?”
바쁜 와중에도 수없이 반복해서 본 대본을 내려놓고는 카메라 앞에 섰다.
이안 프라이스라는 인간을 잠시 내려놓고 For The Future의 주인공, 콜튼의 색채를 입기 시작했다.
탁!
슬레이트 소리와 함께 현장을 보는 사람은 모두 느꼈다. 카메라 앞에선 사람은 더는 이안이 아닌 콜튼이라는 사실을.
작은 기침조차 목이 찢어질 듯 아픈 작품 속 사람들처럼 그는 무의식적으로 목을 매만졌다.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건 수많은 권력층을 무너뜨린 입소문을 낼 수 없다는 뜻이며, 소리 높여 저항할 수 없다는 뜻이다.
고작 필담, 혹은 기득권자들의 목소리를 빌린 음성 장치로는 사람들은 뜻을 모아 저항할 수 없으니까. 그렇기에 이 작품 속 사람들은 순종을 선택했다.
권력자들에 순종하는 하수인, 사이비 교주를 신으로 모이는 광신도, 좋아하는 연예인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과격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 광팬까지.
자신들을 대신해 목소리를 내줄 수 있는 이들에게 순응하는 사람들 속에서 저항을 선택한 과학자는 추레한 외견과 달리 강한 의지가 묻어나는 눈빛을 흘렸다.
‘고작 사소한 행동과 눈빛만으로 어떤 캐릭터인지 느껴지네.’
오직 감탄만 끌어내는 연기.
“큽.”
실험 결과를 살피던 콜튼은 입을 막았다.
텁텁한 공기에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기침도 두려워하는 게 입을 틀어막는 떨리는 손에서 느껴졌다.
단순히 말을 못 한다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게 고통일 수 있는 세상.
과학자가 왜 편하게 기득권에 붙지 않고 모진 길을 걸어가는지 기침 한 번으로 그 당위성을 느끼게 했다.
다만 삶이 고통스럽기만 했던 건 아니었다. 만삭의 아내는 곧 태어날 자녀가 행복한 세상에 살기를 바라며 그를 지지해줬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그는 밤낮을 잊고 더욱 연구에 몰두했다. 우리의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백신을 완성해야 했으니까.
그런 남편과 아이를 위해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하루라도 더 아이를 뱃속에 품고 있는 것이었다.
‘제발 조금이라도 늦게 태어나게 해주세요.’
그녀 혹시 진통이 올까 두려워하며 매일 간절히 기도했으며, 몸이 축나더라도 어떻게든 아이를 뱃속에서 품고 있으려 했다.
이런 희생 덕분에 늦지 않게 콜튼은 백신을 완성했지만 잔인한 선택지를 쥘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출산은 위험한 일인데, 무리한 산모는 목숨을 장담할 수 없는 상태였으니까.
병원에 가야 아내를 살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 다만 그렇다면 백신을 들킬 수밖에 없다.
꿈꾸던 미래인가, 아내인가. 고민 끝에 아내를 옮기려던 그를 막는 손길이 있었다.
“하…끄읍…마.”
목이 찢어질 듯한 고통에도 꾸역꾸역 내뱉은 아내의 말.
처음으로 들은 사랑하는 아내의 목소리는 자신을 포기하라는 잔인한 말이었다. 목에서 울리는 고통도 잊고 흐느껴 우는 그의 손을 부드럽게 붙잡았다.
완성된 백신으로 바뀐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아이의 미래에 대해 필담을 나눴던 그때처럼.
“으아아앙, 으아앙!”
부부가 이별을 각오한 장소에서 백신을 맞은 아이는 우렁차게 울음을 터트렸다.
희생 위에 희망이 꽃을 피운 순간이었다.
“컷!”
For The Future의 초반부 촬영을 끝낸 네이선은 이안을 반겼다.
“독백을 넣지 않아도 될 정도인데?”
설정상 주인공은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렇다고 대사가 없냐? 그건 당연히 아니다. 후시 녹음으로 독백을 넣어 속마음을 말하는 형식으로 대사를 대신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네이선이 볼 때는 이안의 표정과 행동 그리고 눈빛으로 하는 연기만으로도 작품을 이해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만큼 감정 전달을 말도 안 될 정도로 훌륭하게 연기로 보여주고 있다는 뜻이지.’
왜 자신이 수많은 할리우드 배우들을 제치고 연기력으로 손에 꼽는지 증명하는 연기였다.
네이선의 말에 이안은 가볍게 웃었다.
“왜 무성 영화라도 찍으려고?”
“진짜 독백을 넣으면 오히려 네 연기가 묻힐 거라니까. 목소리에 집중하느라 네가 한 연기를 제대로 느끼진 못할 테니까.”
“이 친구야, 정신 차리세요. 네가 찍는 건 예술 영화가 아니라 상업 영화거든?”
감독으로서 욕심은 이해하지만, 흥행에 어느 쪽이 도움이 될지는 명백하다.
아쉬움을 숨기지 못하는 네이선의 어깨를 톡톡 두들겨 주며 말했다.
“네가 말한 건 감독판으로 내보던가. 두 번째 영화를 관람하는 사람에겐 아마 색다르게 다가올 테니까.”
“오, 그것도 괜찮을 거 같은데.”
언제 실망했는지 냉큼 제안을 받아들이는 그를 보며 이안은 웃음을 터트렸다.
감독판을 따로 내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고 자신이 봐도 영화인으로서 괜찮은 아이디어로 생각했으니 기대감도 꽤 들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앞으로 촬영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던 이안은 울리는 전화를 받았다.
“오스틴?”
얼마 전 이젠 편하게 살겠다며 은퇴를 선언한 에이전트의 연락에 이안은 반가움을 느꼈다.
“오스틴! 무슨 일이에요? 은퇴하니 적적해서 복귀하시려고요?”
-됐거든. 은퇴하니 아주 편하더라. 연예계에서 나는 사건 사고도 편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고.
은퇴 후 한층 친근해진 말투로 단박에 거절한 그는 말을 이었다.
-사실 연락할까 말까 고민하긴 했는데. 아무래도 들려오는 소문이 있어서 말하긴 해야 할 거 같아.
“뭔데 그렇게 뜸을 들여요?”
-이상한 소문이 나한테 들리는 중이거든. 네가 이번 대선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수작을 부리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이야.
…올해 대선?
촬영하기도 바쁜데 정계와 엮이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무슨 소린가 싶었다.
‘근데 마냥 헛소문으로 넘기기엔 좀 그런데.’
은퇴한 후에 이쪽 업계에서 한발 뒤로 물러난 오스틴이 자신보다 먼저 그런 소문을 듣는 건 명백히 이상하다.
아무리 촬영 중이라 바쁘더라도 먼저 들을 가능성이 크니까. 의심해볼 수 있는 건 누군가 일부러 오스틴에게 정보를 흘렸다는 것이다. 이런 의심은 그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그래, 나도 일부러 나한테 소문을 흘린 거 같았어. 알다시피 8년 전 대선 때는 나도 한 손 거들었잖아?
“그랬죠.”
‘고객님 때문에 수명이 줄어드는 기분이다.’라고 한숨을 내쉬면서도 에이전트 이상으로 도와줬었다.
“그 수작을 부리는 사람들이 일부러 흘렸겠네요.”
-경고의 의미라면 숨기는 것보다 눈치채게 하는 게 맞으니까.
일단 8년 전 리턴 매치를 하자는 뜻이 아니라 진짜 개입을 막고 싶다는 뜻은 알겠다. 그러니 아직 뭘 맞았는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정보를 슬슬 풀었겠지.
…그건 알겠는데.
“아니, 진짜 정계에 관여할 생각이 없는데 어이가 없네요.”
진짜 훼방을 놓으려고 했으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얌전히 촬영만 하는 사람에게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황당하다는 듯이 헛웃음을 지으니.
-글쎄. 그때 워낙 지독하게 괴롭혔어야지. 나는 걱정할 만하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단순히 지독한 거면 모르겠는데, 생각지도 못한 참신한 방법으로 상대 속을 벅벅 긁어놓는 일이 수두룩했다.
괜히 당시 사람들이 이안이라면 학을 떼는 게 아니다.
“아무튼, 알려줘서 고마워요. 저도 한 번 알아보도록 할게요.”
-도움이 됐다니 됐다. 아무튼, 너무 일을 키우지 말고 최대한 얌전히 있어.
“알고 있거든요?”
오스틴의 조언에 이안은 웃어넘겼다.
일단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
“로티, 그냥 이번에도 뒤집어엎어 놓을까요?”
-…하아, 내가 이래서 조용히 있었던 건데.
샬럿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에 공장에 로봇을 추가로 도입하는 거로 시끄럽던데 어디 파업이라도 일으키면 한 방 먹을 수 있지 않을까요?”
공화당에 엿 먹이겠다고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를 외치려는 이안을 보며 그녀는 아찔함을 느꼈다.
공화당의 빨간색을 공산당의 빨강으로 바꾸려는 레드 이안의 폭주는 막아야 했다.
-이안, 괜한 사고치고 얌전히 있어. 의원으로 지내면서 정치적 공세를 한두 번 당해보는 줄 알아?
민주주의는 상대하고도 타협을 통해 돌아가는 법이다. 그런 와중에 정치적으로 괴롭히는 건 꽤 까다로운 일이지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물론 자신을 위해 화를 내준다는 걸 알기에 그녀는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이것도 한때야. 그리고 일을 키웠다간 아이들도 힘들 수 있잖아. 그러니 조심해야지.
조이와 리오.
둘을 생각해서라도 얌전히 있으라는 조언에 이안은 마음을 가라앉혔다.
“알겠어요. 일단 도를 넘진 않은 거 같으니까 지켜보도록 할게요.”
-그래, 그쪽도 생각이 있으면 괜히 일을 키우지는 않겠지. 내 걱정은 하지 말고, 혹시 모르니까 레이첼에게도 이야기는 해둬.
부부 사이니 알아둘 건 알아둬야 했다. 정말 만약의 경우지만 일이 커질 때를 대비해서 마음의 준비라도 해둘 수 있을 테니까.
샬럿에게 거듭 주의를 들은 이안은 레이첼에게도 상황을 알렸다.
***
-…라는 이야기를 나눴다.
“라고 말하는 데?”
부모님의 통화 내용을 전해 들은 조이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쁜 놈들이 대모를 괴롭힌다고?”
조이는 샬럿을 너무너무 좋아했다. 그녀가 진짜 친자식처럼 자신을 아껴준다는 걸 잘 아니까.
“안 되겠어. 리오, 우리 로티에게 가자.”
“…응?”
“너와 내 힘이면 로티를 도와줄 수 있을 거야!”
동료가 되어라, 라며 내민 손을 리오는 맞잡았다.
어차피 거부권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