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6)
────────────────────────────────────
────────────────────────────────────
────────────────────────────────────
영웅 만들기
미국에서 파티는 생활문화다.
초등학생 때부터 매년 학교에서 댄스파티를 열 정도고 집에서 여는 하우스 파티는 특별한 일이 없어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파티를 자주 여는 사람은 거실에 가구가 없을 정도다.
‘우리 집 거실은 그래서 비워놓은 게 아니지만.’
새로운 드라마인 Beverly Hills Moms 캐스팅이 확정된 기념으로 이안의 가족도 파티를 열었다.
그래 봤자 아일라 모녀, 쇼러너인 조슈아에게 좋은 말은 해준 게빈, 그런 게빈과 통화를 연결해준 벤이 끝이었지만.
‘다들 레드카펫에서나 볼법한 사람들이니 파티는 파티지.’
파티광인 샬럿도 한 자리에 초대하기 힘들 정도로 이름값 높은 사람들이다.
그렇게 파티 날이 됐는데.
“누가 호스트인 줄 모르겠네요. 그냥 파티 장소도 바꿀까요?”
타박하는 이안에게 벤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여덟 명이 먹기엔 너무 많은 음식이 과하게 차려졌다. 전부 벤이 파티 전문 업체에 주문한 음식이다.
“미안, 데이비스 감독님이 오신다고 하니까 내 퍼블리시스트가 꼭 이렇게 하라고 해서 말이야.”
“하긴 벤은 퍼블리시스트의 말을 잘 따르긴 해야죠.”
다른 건 몰라도 독과점이라면 용서 못 하는 미국답게 스타의 매니지먼트도 법으로 제한이 되어 있다.
작품 출연 계약을 돕는 에이전시와 홍보를 담당하는 PR 회사가 따로 있는 이유였다.
홍보를 담당하는 퍼블리시스트는 온갖 일을 다 하는데.
같이 일한 감독과 프로듀서에서 안부, 축하 편지를 보내고, 유명 토크쇼의 쇼 호스트, 기자 등과 관계를 다져주는 일은 기본이다.
심지어 레드카펫을 밟을 때 언제 어떤 차를 타고 도착할지부터 무슨 매체와 인터뷰를 하고 뭘 말해야 할지까지 전부 정해준다.
‘괜히 많이 받으면 배우 수익의 절반까지 받는 게 아니지.’
돈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하는 일이 많았다.
특히 벤 같은 경우라면 더욱.
“여자 만나고 다니는 일도 관리해주고 아역 배우를 과하게 대하는 일도 잘 포장해줬죠?”
“…틀린 말은 아니잖아.”
“아역도 동등한 배우로 여기기에 깐깐하게 구는 거다. 그리고 조언을 아끼지도 않는다. 그 증거로 함께 한 아역은 전부 잘되지 않았느냐. 이거요?”
벤이 눈을 피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냥 성질만 내면 인간말종이겠지만 뭐가 부족했는지 핵심만 콕콕 집어서 가르쳐 주긴 했으니까.
괜히 벤 때문에 고생했던 아역들이 나중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앞으로는 말도 예쁘게 하세요.”
“알았다고. 그리고 막무가내로 한 건 아니다? 미리 딜런에게 허락받아뒀어.”
“그래서 넘어가는 줄 알아요.”
이안은 차려진 음식을 보고 안도하는 부모님을 봤다.
명성 높은 데이비스 감독을 초대하고 음식 차리는 걸 부담스러워했으니까.
‘유명하다고 무슨 미슐랭만 먹고사는 것도 아닌데.’
유명세로 따지면 비슷한 벤과 아일라는 그냥 동네 친구로 여기는 걸 생각하면 더 이해가 안 갔다.
잠시 벤과 티격태격하는 동안 마지막 사람이 도착했다.
“제가 너무 늦은 거 같군요.”
점잖게 사과한 게빈은 이안의 가족들과 반갑게 인사를 하곤 이안에게 다가왔다.
“새로운 드라마에 캐스팅됐다고 들었다. 축하한다.”
“덕분에 잘 됐어요. 감사합니다.”
훈훈한 대화 속에서 벤이 끼어들었다.
“감독님 못 본 사이에 퍼블리시스트로 활동하신다고 하던데. 저랑도 계약 맺을까요? 넉넉히 챙겨드릴게요.”
“자네가 사고 치는 걸 생각하면 한 명으론 부족하긴 하지. 근데 새로운 도전을 하기엔 내 나이가 너무 많다고 생각하지 않나?”
“요즘 파티장에서 이안 이야기를 그렇게 하신다고 들어서 전 다른 일자리를 찾아보시나 했죠.”
관계자들끼리 좋은 배우 이야기를 하는 건 흔한 일이지만 벤이 농담할 정도로 같이 일하지 않은 배우를 칭찬하는 일은 드물었다.
“그래서 어쩐 일로 홍보를 그렇게 하셨어요?”
“어쩐 일은. 그냥 어떤 연기를 하나 제대로 보려고 했을 뿐이지.”
이 말에 이안은 살짝 웃었다.
카메라에 어떻게 담기는지 궁금하긴 한데 도저히 좀비 드라마는 못 보겠고.
한참을 끙끙거리다가 그냥 다른 작품에 출연시켜 버리자는 결론을 내렸을 생각을 하니까 웃겼다.
이안의 웃음을 본 게빈은 헛기침을 했다.
“아무튼, 내가 말하고 다녀도 안 될 놈들은 안 돼. 에이전시에 속한 것도 아니고.”
제대로 된 배역일수록 에이전시가 없으면 오디션 기회도 받지 못한다.
큰 제작사 대부분은 공고를 공개적으로 하지 않고 에이전시에 공지하니까.
지금까지 이안이 캐스팅된 경로가 특이했던 것뿐이다.
“아무튼, 하게 됐으면 잘 하렴. 나이 먹고서 눈이 침침해졌다는 말을 듣긴 싫으니까.”
“돋보기안경도 필요 없다는 말을 듣게 해드릴게요.”
능청스러운 대답에 가볍게 웃은 게빈은 음식을 퍼서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다.
이안을 입양하게 된 이야기부터 최근 생활 이야기까지 폭넓게 진행되던 이야기는 가장 최근 소식까지 도달하게 됐다.
“이번에 캐스팅된 게 조슈아가 쇼러너로 있는 Beverly Hills Moms이라고 했지? 거기서 무슨 역할이니.”
“쉽게 요약하면 공부 잘하는 사이코패스요.”
“애매하구나. 너무 정형화된 캐릭터라서 자칫하면 밋밋하겠어.”
똑똑한 사이코패스는 사이코패스면 전부 똑똑하다는 잘못된 편견을 심어줄 정도로 흔했다.
게빈의 평가에 클로이가 변명하듯 말했다.
“그래서 연애를 넣는다고 하더라고요.”
“호오. 연애라. 그나마 다채로운 장면이 가능하겠군요.”
“네, 키스 장면도 넣는다고…”
달그락!
접시에 포크가 크게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고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로 모였다.
“어, 음. 계속 말하세요.”
동그랗게 커진 눈과 더 하얗게 변해버린 피부.
‘나 충격받았어요.’를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레이첼을 보며 소녀의 연정을 알고 있던 어른들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벤이 좋은 곳에서 주문해준 덕분에 음식이 맛있네요. 더 가져다 먹어야겠어요. 다들 많이 드세요.”
딜런이 도망을 선택하자 몇몇이 그 뒤를 따랐다.
그 뒤를 따르려던 벤은 옷이 당겨지자 몸을 움찔했다. 고개를 돌리니 옷을 붙잡은 작은 손이 보였다.
“레이첼?”
제대로 대화도 못 해본 그녀가 처음으로 관심을 가져줬는데 기뻐하기엔 붙잡은 이유가 뻔해서 식은땀이 흘렀다.
“잠시 대화 좀 해요.”
“…그럴까?”
벤은 주변을 훑다가 이안과 눈이 마주쳤다.
소리 없이 입 모양으로 말하는 게 보였다.
-허튼소리 하지 마요.
벤은 고개를 끄덕였다.
꼬마에게 이성을 침대로 자빠뜨리는 방법 같은 걸 설명해주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근데 초등학생한테 어디까지 말해줘야 하는 거지.’
경험에서 우러난 이야기를 해주자니 수위가 너무 높고, 수위를 낮추자니 딱히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
초등학생 연애의 어려움을 깨달으며 벤은 레이첼에게 끌려갔다.
***
“후후, 반질반질한 얼굴이 반쪽이 됐구먼. 꼬마 숙녀와 대화는 즐거웠나.”
“…너무 즐거웠죠.”
어떻게 하면 이안의 첫 키스를 빼앗기지 않을 수 있는지 답을 내놓으라는 레이첼의 압박에 진땀을 흘리고 돌아왔더니.
아일라와 이안의 청문회가 기다렸다.
다른 건 몰라도 이성 문제에선 신뢰를 얻을 수 없는 사람이니 어쩔 수 없었다.
“감독님도 딸이 있잖아요. 이런 경험 있지 않았어요?”
“글쎄. 우리 딸은 4학년부터 나랑 댄스파티도 안 가려고 했거든. 첫사랑을 언제 했는지도 몰라.”
“저런.”
“사춘기가 좀 빨리 와서 그렇지 요즘엔 잘 지낸다네. 그래서 대답은 잘 해줬나?”
벤은 어깨를 으쓱였다.
사실 레이첼에게 무슨 말을 하든 별로 의미 없었다.
“레이첼이 문제가 아니라 어차피 다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있는 이안이 문제거든요.”
“뭐 그런 거 같긴 하더군. 함께 있는 걸 보면 싫어하는 건 아니고, 음…”
게빈은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둘의 분위기가 특이해서 기억에 확실히 남았다.
“아빠나 나이 차이 크게 나는 오빠 느낌이 났지. 그냥 귀엽게 여긴달까. 둘이 동갑이라고 하지 않았나?”
“워낙 애 같지 않은 녀석이라서요.”
벤의 평가에 게빈은 동의했다.
그렇게 강렬한 첫인상을 남긴 사람은 긴 삶에서 몇 안 됐으니까.
“그것보다 감독님은 무슨 생각입니까?”
“내가 뭘?”
여상스럽게 되묻는 게빈을 향해 벤은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냥 연기가 궁금하다고 그렇게 하실 리는 없고. 요즘 재밌는 소문이 조금 들리더라고요.”
“소문?”
“네, 차기작을 준비하신다는 소문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말없이 벤과 눈을 마주치던 게빈은 몸을 돌리며 대수롭지 말했다.
“내가 아직 은퇴할 나이가 아니지 않나. 그게 무슨 특별한 소식이라고.”
할리우드에 파문을 일으킬만한 말이 밤하늘에 흩어졌다.
***
겨울 휴방기는 드라마 제작자에게 낭비할 수 없는 시간이다.
휴방기를 잘못 보내면 방영 일정에 쫓기게 된다. 마감이 얼마나 피 말리는지 아는 만큼 농땡이를 상상도 못 했다.
특히 이 시기에 반드시 완성해야 하는 건 후반기 에피소드였다.
“역시 갱 집단을 무너뜨리는 게 맞겠죠?”
“그래. 시즌 1은 생존, 갱과 다툼을 중심으로 다루고 시즌 2에는 라스베이거스에서 탈출하는 내용을 담을 생각이니까.”
작가 방(writer’s room)
적게는 여섯에서 많게는 열다섯이 넘는 작가들로 구성된 작가 방은 드라마 에피소드 대본을 제작하는 곳이고, 이곳을 지휘하는 게 쇼러너의 핵심 업무 중 하나다.
답을 준 케이틀린은 작가들과 이후 에피소드의 큰 틀을 다듬었다.
‘지금 상승세가 계속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절대 안 되지.’
일주일이란 시간이 지나도 시청자들을 붙잡아두는 건 에피소드의 힘이고 특히 한 화의 마지막에 적절한 위기를 안겨주는 게 중요했다.
각 에피소드를 담당하는 메인 작가들과 깊게 대화를 나누던 케이틀린을 마지막 화 담당 작가가 불렀다.
“이번 시즌 마지막 장면 말입니다. 메인은 노아로 가는 거 맞죠?”
“그래.”
각화의 마지막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역시 시즌의 마지막 장면이다.
다음 시즌의 흥행을 결정하는 첫 화의 시청률이 거기에 달려 있으니까.
“라스베이거스를 제집처럼 활보하던 노아에게 죽을 위기를 주면서 더는 라스베이거스가 안전한 보금자리가 못 된다는 걸 확실히 느끼게 해줘야 해.”
그래야 다음 시즌에 라스베이거스에서 떠나려는 아이들에게 당위성을 부여할 수 있다.
케이틀린의 대답에 한 작가가 농담을 던졌다.
“전 노아를 이대로 죽이려나 싶었죠.”
“내가 미쳤다고 노아를 죽이겠니.”
에피소드를 진행하면서 죽는 아이도 있지만, 노아는 절대 죽일 수 없었다.
노아의 인기가 좋아서 욕먹는 정도가 아니라 시청률에 큰 타격을 줄 정도니까.
“노아 배우에게 새로운 드라마도 연결해주셨다면서요. 시즌 2에 제대로 못 나오는 대신 그렇게 해줬나 했죠.”
“하, 내가 아니었어도 이안을 캐스팅하러 갔을걸.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과 달리 고집이 보통 아닌 쇼러너거든.”
케이틀린은 살포시 웃었다.
낙하산 인맥 때문에 쫓겨날 뻔했던 그 날 고집부려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자신은 없었을 테니까.
“그리고 이안이 더 잘 되면 좋겠다고 노래를 부르던 게 누구인데 나한테 그런 말을 해?”
케이틀린의 핀잔에 작가들은 웃었다.
“뭐랄까. 잘 되면 좋겠는데 우리 드라마를 벗어날 정도로 잘 되진 않았으면 하거든요.”
“우리가 나쁜 게 아니에요. 스윗하게 꼬인 이안의 잘못이지. 처음 촬영장에 갔을 때 제 이름을 알고 인사해서 얼마나 놀랐는데요.”
“맞아. 우리뿐만 아니라 스태프 이름도 다 외우고 있고.”
작가들은 골방에 박혀 글만 쓰는 게 아니다.
촬영장에 직접 가서 대본대로 촬영이 제대로 되고 있나 확인하고 가끔 요청이 들어오면 즉석에서 대사를 바꾸기도 했다.
덕분에 이안을 실제로 만난 작가들은 여느 스태프들처럼 큰 호감을 느꼈다.
각자 겪거나 들은 일을 이야기하며 잠시 쉼을 가질 때 케이틀린의 전화가 울렸다.
프로듀서의 전화였다.
-큰일 났어.
“…무슨 일인데.”
심장을 서늘하게 하는 말에 케이틀린의 표정이 굳자 작가들도 입을 전부 다물었다.
-우리 촬영장에서 사고가 날뻔한 일이 기사로 났어!
올 것이 왔다.
영원한 비밀은 없으니 일어날 일이 지금 일어났을 뿐이다.
케이틀린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지시를 내렸다.
“계획한 대로 움직이자고. 일단 촬영 당시 찍은 영상 준비됐지?”
사고가 나서 스턴트맨뿐만 아니라 아역 배우가 죽을뻔했다. 이 비난을 최대한 막을 방법은 하나였다.
이슈는 이슈로 덮는다.
“우리 배우를 영웅으로 한번 만들어 보자고.”
영웅 만들기.
이 계획의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