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33)
────────────────────────────────────
────────────────────────────────────
내일
이안은 책상 위에 놓인 공책을 힐끔 봤다.
최대한 또박또박하게 적기 위해 노력한 티가 역력 글씨가 보였다.
-Black gospel. 기독교 음악을 넘어서 대중음악으로 여겨진다. 흑인 음악의 정수로 특유의 억양과 재능이 없으면 구현하기 힘들다.
가스펠에 대한 정보를 줄줄이 적은 곳 옆에는 포스트잇들이 붙어 있었다.
-이안은 무교였나? 궁금하다. 나중에 물어봐야지.
-억양? 아무리 이안이라도 이건 따라 하지 못하겠지? 아쉽다.
흑인 억양? 당연히 따라는 할 수 있다. 그걸 노래로 느낌 있게 살리는 건 자신 없지만.
이안은 공책에서 눈을 뗐다. 봤다는 걸 들키면 부끄러워하면서 화낼 게 뻔했으니까.
음료를 가지고 온다는 레이첼이 돌아오기 전까지 그녀의 방을 훑어봤다.
음악 관련 서적이 빼곡하게 꽂혀 있고 아이가 치기 좋은 미니 기타와 피아노가 침대 옆에 놓여 있었다.
“자다가 깨서 작곡하기도 하나 보네.”
침대 옆에 놓인 작은 테이블에는 이것저것 끄적여 놓은 수첩이 펜과 함께 굴러다녔다.
‘그 인간들이 생각나네.’
작곡을 가르쳐준 노숙자들이 생각났다.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났다면서 새벽에 갑자기 깨서 꽥꽥 노래를 불러대곤 하는 인간들이었다.
아마 따로 다녔으면 분명 밤에 총 맞아 죽었을 거다.
노숙자 시절을 떠올리며 무슨 곡을 준비하나 구경하던 이안은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고 눈살을 찌푸렸다.
“레이는 어디 가고 벤이 올라왔어요?”
“너무 싫어하는 거 아니야? 여자들끼리 대화 나눌 시간을 주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켜줬지.”
“쫓겨난 거겠죠.”
“이래서 눈치 빠른 남자는 싫다니깐.”
실실거리며 웃으며 다가온 벤은 의자에 털썩 앉았다.
좁은 아이용 의자에 덩치 좋은 성인 남자가 구겨 앉은 꼴은 솔직히 웃겼다.
“넌 도대체 언더힐하고 무슨 말을 나눈 거야? 도대체 뭘 하면 걔 입에서 미친 친구라는 말이 나와?”
“로티가 친구라고 부르는 사람은 남들이 보면 미친 사람들이잖아요.”
“그건 맞는 말이긴 한데. 아니, 잠깐만. 둘이 뭘 했길래 애칭까지 불러?”
애칭이 무슨 대수라고.
이안은 놓여 있던 기타를 들어 줄을 튕겼다.
얇은 줄이 굳은살이 없는 여린 손가락을 파고들었고 통통 튀는 리듬이 들려왔다.
단조로운 코드로 표현하는 셔플 리듬.
“오.”
셔플 리듬이 만드는 블루스를 들으며 벤은 짧게 감탄했다.
잘 치는가? 그렇지도 않았다. 기타를 많이 잡아보지 않은 것처럼 손가락은 어색해 보였고 손이 마음대로 안 움직이는지 이안은 인상을 찌푸렸다.
근데도 이상하게 시선이 갔다.
‘노래를 잘 할 필요도, 기타를 잘 칠 필요도 없지만, 무심한 행인을 노래로 붙잡지 못하면 블루스 가수가 아니라고 했나.’
왜 그런 말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짧게 연주를 끝낸 이안은 벤에게 물었다.
“정말 혹시나 해서 묻는 말인데 여자들 만나고 다니면서 문제 일으킨 적은 없죠? 성추행이나 그런 거요.”
“하? 나 벤 로버츠야. 그런 짓 안 해도 여자는 충분했거든?!”
정말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거다. 심한 여성 편력과 달리 선만큼은 확실하게 지키는 사람이니까.
이안은 짓궂게 벤을 놀렸다.
“그럼 뭐해요. 아일라하곤 큰 진전이 없는데요.”
“…닥쳐.”
격한 반응에 가볍게 웃음을 터트린 이안은 그에게 경고했다.
“웬만하면 한동안 조심하세요. 소문 나쁜 사람하고 괜히 얽히지 말고요. 알겠죠?”
“뭔가 말이 의미심장하다?”
“그런 게 있어요. 그냥 혼자만 알고 계세요.”
벤은 더 묻고 싶은 눈치였지만 통통거리는 발걸음 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경쾌한 발걸음과 함께 문이 열렸고 방주인이 들어왔다.
“이안! 뭐 하고 있었어?!”
“잠시 벤이랑 이야기 좀 나눴지. 너는 밑에서 뭘 했길래 늦었어?”
“으응? 아, 아무것도 아니야.”
도대체 밑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몰라도 얼굴이 살짝 상기된 레이첼은 손을 휘휘 저었고 방해꾼을 향해 말했다.
“엄마가 내려오라고 하셔요.”
“아, 그래? 재밌게들 놀아라.”
일말의 미련도 없이 벤이 내려가는 꼴을 보며 이안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아일라에게 푹 빠져 있어서 곧 다가올 파도에 휩쓸릴 거 같진 않았다.
“작곡은 열심히 하나 봐?”
“응, 엄마가 라이의 다음 곡을 원하는 사람이 엄청 많다고 하셨어. 그래서 노력하고 있지.”
“그래? 다음은 어떤 곡으로 하려고?”
잠시 머뭇거린 레이첼은 마음을 굳힌 듯이 말했다.
“어차피 위튜브에 올리는 거겠지만 다음은 앨범 형식으로 만들고 싶어.”
앨범?
생각보다 큰 꿈에 이안은 놀랐다.
“왜 갑자기?”
“노래로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데 한 곡으론 부족할 거 같아서.”
콘셉트 앨범.
앨범이 수록된 곡들이 하나의 주제로 통일된 앨범이다. 이걸 만들고 싶다는 뜻이다.
“도대체 뭘 말하고 싶은데?”
“음… 지금은 비밀이야. 나중에 다 완성되면 알려줄게.”
소녀는 수줍게 웃었다.
***
겨울만큼 길게 느껴졌던 휴방기가 끝이 났고 다시 시청률 경쟁의 시즌이 시작됐다.
1월부터 새로 시작한 미드 시즌 드라마들과 살아남은 기존 드라마 간의 각축전이 시작됐다는 뜻이다.
-2010년! 주목해야 하는 미드 시즌 드라마!
-휴방기가 끝나도 시청률이 굳건한 invisible children!
-실망스러운 시작을 한 드라마들 Top 5!
정규 시즌도 끝을 향해 달려가니 Beverly Hills Moms가 방영되는 여름 시즌도 훌쩍 다가왔다.
오늘도 베벌리힐스의 주택가에는 카메라를 든 스태프들이 잔뜩 모였다.
“오늘 풀어야 할 위치까지 전부 표시해 놨단다.”
유진의 엄마인 안나는 문제집 더미를 유진의 앞에 올려놨다.
펄럭이는 엄마의 옷자락에서 시원한 향이 느껴졌다. 얼마 전부터 강하게 맡아진 향수였다.
“이것 좀 풀고 있으렴. 엄마는 잠시 나갔다 올 테니까. 알겠지?”
마치 데이트를 나가는 처녀처럼 밝은 표정으로 안나가 나갔고 홀로 남은 유진은 연습장을 꺼내 펜을 놀렸다.
-차 소리가 안 들린다. 도보로 움직일 수 있는 가까운 거리.
-이웃에게 들킬 걱정을 안 하는 게 이상하다. 조심성이 없는 건가?
-낮에 집에 있을 정도로 출근 시간이 자유로운 사람. 이웃에 그런 사람은 여섯이다.
-그중에서 이 시간에 아내가 없는 사람은 둘.
사각거리는 연필 소리가 멈추고 유진은 차갑게 굳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둘 중 누구지?”
싸늘한 정적이 흘렀고 잠시 후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컷! 좋았어!”
감독의 외침과 함께 이안은 눈에 준 힘을 풀었다.
얼핏 보면 유진의 사이코패스 같은 일면을 통해 서늘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장면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웃긴 장면이지. 안나의 불륜 상대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니까.’
마치 모든 걸 꿰뚫어 보는 듯하지만 알고 보니 완벽한 헛다리였다.
이 오해는 드라마에서 주요하게 다룰 웃음 코드 중 하나였다.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늘 촬영이 끝났고 스태프들과 친근하게 인사한 이안은 클로이와 함께 차에 올라탔다.
“다니엘의 연기 학원으로 바로 가면 되지?”
“네! 바로 가면 돼요. 벌써 래리가 언제 오냐고 난리네요.”
이안은 수북하게 쌓인 문자를 질린 얼굴로 봤다.
평소 래리 성격을 몰랐다면 스토커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네가 놀러 온다고 하니까. 다니엘의 엄마가 엄청 좋아하더라. 너무 고맙대.”
“놀러 가는 게 무슨 대수라고요. 솔직히 연기 학원이 어떤 곳인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많은 배우가 연기 학원을 거친 것과 달리 이안은 연기를 밑바닥부터 홀로 익혀야 했다.
어딜 가든 얼굴만 보고 쫓아냈기 때문이다.
‘돈독 오른 연기 학원조차 학생이 떨어져 나간다고 쫓아낼 정도면 말 다 했지.’
돈을 줄 테니 이름만이라도 올려달라는 요청이 쏟아지는 지금과 딴판이었다.
잠시 떠오른 씁쓸한 과거를 털어내고 이안은 인터넷에 들어갔다.
‘슬슬 시동을 거는 거 같네.’
쏟아지는 할리우드 기사 중에서 묘한 뉘앙스를 풍기는 기사들이 눈에 밟혔다.
-오랫동안 할리우드를 떠도는 은밀한 소문 Top 10!
-최대 주간지 타임리스의 입을 막은 할리우드 거물이 있다?
-할리우드의 악동! 샬럿 언더힐이 여성만 초대해서 은밀한 파티를 열었다?
따로 떼어놓고 보면 흔한 할리우드의 가십거리지만 이안의 눈에는 물밑에서 치열하게 움직이는 게 보였다.
“처음에는 그렇게 내빼더니.”
누가 사업가 아니랄까 봐 이득이 된다고 판단되니 위장 파티를 열 정도로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게 보였다.
핸드폰으로 기사를 살피는 사이 베벌리힐스에서 30분가량 움직인 차량은 산타모니카의 한 건물에 도착했다.
“다 왔다.”
고개를 드니 4층짜리 건물에 Brown‘s Acting Class라는 간판이 걸린 게 보였다.
작지만 깔끔하게 꾸며진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학원의 강사진과 이곳을 거쳐 간 배우들의 사진이 로비에 걸려 있었다.
“이안! 드디어 왔구나!”
도대체 언제부터 기다렸는지 쪼르르 달려온 래리가 덥석 안겼다.
휘청거리는 몸을 지탱하니 한심하단 표정을 지은 도로시가 래리의 목덜미를 잡았다.
“멍청아, 그러다가 다치면 어떡하려고 그래?”
“미안! 많이 아팠어?!”
“아니, 뭐 이 정도로.”
땅바닥에서 뒹구는 게 삶이었는데 그대로 넘어져도 크게 안 다칠 자신이 있다.
걱정하는 래리를 밀어내고 물어봤다.
“다니엘은 어디에 있어?”
“위에서 아직 수업받고 있어. 같이 올라가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가니 희미하게 호통이 들려왔다.
-연기를 하면서 카메라 위치를 확인하는 건 좋아. 근데 그걸 왜 해야 하는데?! 어떻게 카메라에 잡힐지를 항상 생각하라고 했잖아. 다시 해봐!
이 소리를 따라 걸으니 불이 환히 켜진 방이 보였고 래리는 거침없이 문을 열었다.
열린 문을 통해 땀 냄새 섞인 열기가 훅하고 느껴졌다.
“선생님, 이안이 왔어요!”
래리의 밝은 목소리를 들은 중년 남성이 고개를 돌렸다.
유전자 검사를 해볼 필요도 없이 다니엘이 그대로 늙은 듯한 얼굴이 보였다.
“이스턴 브라운이라고 한단다. 이안 프라이스 맞지? 드라마는 재밌게 보고 있단다.”
“저는 못 봤지만 재밌다고 하시니 다행이네요. 이안 프라이스입니다.”
진짜 언제쯤 볼 수 있으려나.
이대론 드라마를 보는 것보다 모든 시즌이 끝나고 종영되는 게 더 빠를 것 같다.
이안과 악수를 하려던 이스턴은 땀이 흥건한 제 손을 보곤 멈칫했다.
“손이 너무 더럽네. 같이 놀고 있으렴. 손만 씻고 간식거리를 금방 가져다줄 테니.”
배려심이 느껴지는 말과 어투.
방금 크게 꾸짖은 사람과 같은 사람인지 의심될 정도였고 이안은 클로이에게 말했다.
“저도 손 좀 씻고 올게요.”
복도 끝 화장실로 들어가는 이스턴을 뒤따라 들어갔다.
비누로 손을 깨끗하게 씻고 있는 그에게 다가간 이안이 말문을 열었다.
“너무 열심히 가르치시던데요. 그러다가 다니엘이 포기하면 어떡해요?”
“…그럼 어쩔 수 없지. 그 정도로 정신력으로 배우 생활을 하긴 힘들 테니까.”
제 아들을 두고 하는 말이라기엔 냉정하게 들렸다.
손을 다 닦고 몸을 돌린 그에게 물었다.
“진짜 연기를 포기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그렇게 가르치는 거예요?”
“…뭐?”
이스턴과 눈을 마주친 이안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 마음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구나.’
더러운 인간 때문에 자신뿐만 아니라 아들의 꿈까지 짓밟히는 모습을 보기 싫었던 걸까. 아니면 그 와중에 상처받을 아들이 걱정된 걸까.
이안은 세면대 물을 틀었다.
“조금 전 다니엘 얼굴을 보셨어요? 그렇게 혼났는데도 포기하는 기색이 없더라고요. 그렇죠?”
연기를 향한 집념은 이 나잇대 아이가 가질만한 게 아니었다.
‘그러니 더 크게 절망했겠지. 아무리 훌륭한 연기를 선보여도 캐스팅되지 못했을 때는.’
끔찍한 얼굴 때문에 무수히 많이 절망했기에 더욱 그 마음에 공감할 수 있었다.
쓴웃음을 지은 이안은 손에 묻은 물기를 거칠게 털어냈다.
“그러니 너무 몰아세우지 마세요. 다니엘은 그렇게 안 해도 좋은 배우로 성공할 수 있을 테니까요. 걱정하시는 일도 안 일어날 거고요.”
의미심장한 말과 함께 이안이 떠났음에도 이스턴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대화를 곱씹던 그는 문득 다니엘이 이안에 대해 평가한 말이 떠올랐다.
‘이안? 특이하달까. 아니다, 이상한 거에 가까운 애야.’
너무 적절한 평가였다.
“정말 이상한 애네. 그리고 나도 이상하고.”
마치 예언을 받은 것처럼 진짜 저렇게 될 거 같다는 이상한 기대가 들었다.
허먼 골드슈미트, 그 악당이 사라질 리가 없는데도.
***
-귀여운 꼬마 친구, 할리우드가 뒤집히는 날이 내일로 다가왔단다.
파티광에서 미친년이 될지, 혁명가가 될지. 샬럿의 운명을 결정짓는 날이 다가왔다.
어떤 결말로 이어질까 생각하던 이안은 뒤이어 온 문자에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 꼬마 친구를 위한 작은 선물도 준비했단다. 내일 직접 확인해 봐!
“야, 잠시만. 뭔데 말은 해줘야지”
당장 전화 받아, 이 인간아!
핸드폰이 꺼져있다는 알림만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