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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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만이 아니다
쓰나미 전에는 해안의 물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큰 사건에는 전조 현상이 있다.
할리우드에 흐르는 불순한 분위기를 가장 먼저 느낀 건 기자들이었다.
“파티광 샬럿 언더힐이 파티에 안 나온다고? 뭔가 이상하지 않냐.”
“글쎄다. 소문으로는 초대 자체를 못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샬럿이 블랙리스트라고? 드디어 언더힐 가문에서 망아지처럼 구는 걸 못 참은 거 아니야? 파보면 재밌을 거 같은데.”
금융위기로 파티를 열 분위기가 아닐 때는 자선 파티를 여는 사람이다.
약쟁이가 마약을 끊는 것보다 샬럿이 파티를 끊는 게 더 힘들다는 말이 떠돌 정도인데 근래 파티장에서 코빼기도 안 보였다.
‘결혼할 상대가 생긴 거다.’ ‘사업이 쫄딱 망했다.’ ‘가문에서 제명될 위기라서 그렇다.’
뜬소문이 무성할 때 다른 소문도 번져나갔다.
“편집장님, 허먼 골드슈미트의 이상한 소문이 돌던데요.”
“더럽게 논다는 거? 그게 무슨 대단한 소문이라고 가져왔냐. 할리우드의 기자 중에 그거 모르는 인간이 있는 줄 알아?”
“알죠. 어설프게 건드렸다가 목이 날아간 사람이 많다는 것도요. 근데 조만간 고소가 들어갈 거란 소문이 돌더라고요.”
이 말에 편집장은 혀를 끌끌 찼다.
제 버릇 남 못 주고 또 사고 친 게 뻔했다.
“관심 꺼. 한두 번 있던 일도 아니고 결국엔 입막음 당해서 아무 일도 없을 테니까.”
그럴 가능성이 크긴 했다. 기자도 혹시나 해서 찾아왔을 뿐이고.
기자가 돌아가려고 할 때 편집장실 문이 벌컥 열렸다.
“편집장님! 사건 터졌습니다! 샤, 샬럿이…”
“오, 샬럿이 뭐?”
요즘 도통 안 보여서 궁금하긴 했다. 밑에 기자들을 닦달해도 건져오는 정보는 없었고.
무슨 일 때문에 말괄량이가 요즘 조용했나 귀를 기울였는데.
“허, 허먼 골드슈미트의 성범죄를 폭로했습니다.”
툭!
펜을 떨어뜨린 편집장은 귀를 의심했다. 누가 뭘 했다고?
허먼, 그 정신 나간 노인네가 샬럿을 건드렸나.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언더힐 가문이면 미국 내에서 진짜 상류층이다.
벌통을 건드리는 수준이 아니라 머리통이 깨질 일이란 걸 모를 정도로 허먼이 분별력 없는 인간은 아닌데.
“진짜 샬럿이 폭로한 게 맞아? 설마 그 인간한테 당한 거야?”
“아닙니다. 모델과 배우 48명을 대신해서 폭로한 겁니다.”
샬럿이 피해자가 아니라고 안심할 게 아니다. 한두 명도 아니고 수십 명이 엮인 사건이다.
폭로전이 이어지면 그 숫자도 더 불어날 테니 반짝하고 끝날 이슈가 아니었다.
“다, 당장 움직여! 빨리 샬럿에게 달려가서 한마디라도 듣고 오라고!”
할리우드의 대형 폭탄이 떨어졌다.
***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 허먼 골드슈미트. 그의 추악한 그림자.
유명 주간지 타임리스에 실린 기사는 허먼에게 당한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샬럿이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어떤 추잡한 행동을 했는지, 무슨 방법으로 협박을 했는지가 고스란히 나왔다.
-우엑, 진짜 역겹다.
└난 행동보다 저 짓을 수십 년 동안 했다는 게 더 놀라운데?
└허먼이 거물이긴 했잖아. 폭로하려다 묻힌 사람도 수두룩하다고 하고.
└타임리스도 압력이 들어와서 실패한 적이 있다고 하잖아.
-자신이 알게 된 사람만 48명이라는데 그럼 더 불어나겠지?
└못해도 백 명은 되지 않을까? 끝까지 침묵할 사람들을 생각하면 더 많고.
└진짜 말도 안 된다. 할리우드에서 샬럿이 나설 때까지 다 입 다물고 있던 게 맞냐?
└척지는 게 무서우니까 눈 감고 있었겠지. 뻔해.
-그보다 이게 내가 알던 샬럿이 맞나? 이럴 사람이 아닌데.
└놀랍게도 샬럿은 명문가에 가톨릭 미션스쿨 출신이야.
└도대체 거기서 뭘 하면 샬럿이 튀어나오는 거냐. 가스펠로 폴댄스라도 췄대?
└주님, 봉 타고 오늘 한 명 더 천국으로 올라갑니다.
고작 몇 시간 만에 여론은 불탔고 샬럿은 바로 기자 회견을 열었다.
평소 화려한 복장과 달리 검은색의 단정한 정장을 입고 나선 그녀는 평소 이미지를 떠올리기 힘들 정도로 지적으로 보였다.
쏟아지던 셔터 소리가 멈추고 시작된 기자 회견은 예정된 질문으로 사건을 되짚는 형식이었다.
“폭로된 내용이 전부 사실입니까?”
“제가 피해자들에게 직접 들은 내용으로 거짓은 없습니다.”
“하먼 골드슈미트는 이 폭로가 거짓이라면서 타임리스와 언더힐 양을 고소한다고 했습니다.”
“범죄자의 협박이 무서웠으면 앞으로 나서지도 않았겠죠. 얼마든지 하라고 하세요. 어차피 우리도 고소할 예정이니까요.”
치열한 법정공방전을 예고하는 발언에 회장의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할리우드의 거물과 언더힐 가문과 여론을 등에 업은 샬럿 언더힐의 싸움이니 빅매치였다.
한 시간가량 이어진 기자 회견은 어느덧 끝물이고 마지막 질문을 배정받은 기자가 손을 들었다.
“법정 싸움까지 예고된 만큼 쉽지 않은 결정일 텐데 이런 폭로를 하게 되신 계기가 있을까요?”
기자들은 전부 눈을 빛냈다.
동기.
할리우드의 파란을 일으키고 제삼자인 그녀가 법정 싸움까지 각오하게 만든 이유.
그게 아직도 안 나왔고 이번 회견의 핵심이었다.
“계기요? 물론 있죠. 저에겐 소중한 꼬마 친구가 있답니다.”
뜬금없는 말이지만 부드럽게 맺힌 미소를 본 기자들은 정말로 그 아이를 소중하게 여긴다고 느꼈다.
잠시 뜸을 들여 시선을 끌어모은 샬럿은 말을 이었다.
“근데 어느 날 제게 찾아와서 몹쓸 짓을 하는 사람이 할리우드에 버젓이 돌아다닌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죠. 왜 범죄자를 아무도 안 잡냐고요. 이 말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사회를 모르는 아이의 치기 어린 말이라고 비꼬기엔 제 몸에 묻은 더러움만 부각 될 뿐이다.
“그래서 뜬소문이 아니라 진짜인지 확인을 했고 이 순간까지 온 겁니다.”
“혹시 그 아이가 누군지 알 수 있을까요?”
정말 오늘 이 질문만을 기다려왔다.
샬럿은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준비해온 답변을 내뱉었다.
“이안 프라이스. 제 소중한 친구죠.”
그녀는 속으로 웃었다.
이 깜짝 선물을 받은 친구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너무 궁금했다.
***
이안은 원하던 반응을 해줬다.
“우리 절교하죠.”
-어머? 이제 로티라고 안 불러준다니 섭섭한데. 혹시 선물이 마음에 안 들었어? 아기천사랑 합성까지 되고 있잖니.
인상을 바로 구겼다.
“그 미친 사진 이야기는 하지 말죠. 그래서 싫은 거니까요.”
진짜 세상은 넓고 또라이는 많다. 허먼에게 드롭킥을 갈기는 아기 천사 합성사진을 보고 확신하게 됐다.
-봐봐 허먼에게 드롭킥을 갈기는 아기 천사 이안이야!
└오, WWE! 우리 친구에게 어울리는 별명이 생겼어! Killer Angel 어때?
└아주 좋아. 바로 선수 등록부터 해야겠네! 🙂 WWE 공식 계정
└그래! 그 기세야! 당장 도장까지 찍어 와!
-사진이 심심한 거 같아서 GIF 파일로 회전을 줘봤어.
└으아악, 허먼이 갈리고 있어!
└그래, 우리 롤링 드롭킥 엔젤이라면 이 정돈 해줘야지!
이러다가 롤링 드롭킥은 평생 갈 거 같다.
끔찍한 사진을 떠올리며 진저리를 치자 샬럿의 명랑한 웃음이 들려왔다.
-왜 귀엽던데. 그리고 책임 없는 쾌락은 네가 좋아하는 거잖아. 최대한 네 취향으로 맞춰봤는걸.
“맞긴 한데. 누가 들으면 오해할만한 말은 하지 마요.”
인과응보라고 했나.
이번 폭로를 그녀에게 떠넘긴 걸 마음에 꾹 담아놓은 게 확실했다. 기어코 이렇게 엮은 걸 보면.
-아무튼, 나쁠 건 없잖아. 유명해지고 이미지에도 좋고.
“틀린 말은 아니네요.”
‘네가 순수하다고?’ 벤은 코웃음을 치며 안 믿었지만.
아이의 순수함이 이번 폭로의 계기라고 잘 포장한 덕분에 민감한 이슈엔 얽히지 않고 과실만 따 먹을 수 있게 됐다.
샬럿이 최대한 피해 안 가게 세심하게 포장해서 스포트라이트를 나눠준 거니 선물이 맞았다.
“생각해줘서 고마워요, 로티. 됐죠?”
-그래, 됐어. 바쁘니까 나중에 전화할게, 허니.
허니는 무슨.
끊긴 전화를 보며 이안은 작게 웃었다.
‘재밌네. 이렇게 바뀌고.’
파티광에서 사회 운동가 취급받는 그녀의 미래는 명백히 달라졌다.
이번 사건으로 빠르게 확산 중인 SNS 태그도 TellMe였다. 샬럿처럼 우리에게 말해주면 외면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안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재밌긴 했지만 그뿐이다. 앞으로 이 일에 관해서 관여할 생각은 없었다.
‘새로운 폭로가 나오든, 사회 운동이 벌어지든 상관없어.’
이슈에 몸을 던질 시간에 대본 하나라도 더 읽는 것. 그게 원래 그가 살아온 방식이었다.
마음을 정리하고 촬영장으로 돌아가려는 이안을 누군가 불렀다.
“이안, 통화는 끝났어?”
“다니엘?”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다니엘이라니 의외였다.
본인도 어색한지 머뭇거렸고.
“무슨 일이야?”
“혹시 중년 남자가 갑자기 우는 이유를 알아? 아니다, 그냥 솔직히 말할 게 어젯밤에 우리 아빠가 펑펑 우셨거든. 난 그런 모습을 처음 봤어.”
“그래?”
자신 때문에 자식의 앞날이 막힐 수 있다.
다니엘이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을 때부터 속이 썩어 문드러졌겠지.
독한 마음으로 혹독하게 가르치는데도 꿋꿋하게 따라오는 아들을 보며 더 절망했을 테고.
이제라도 그 짐을 내려놨다니 다행이다.
“갱년기가 아닐까? 그 나잇대 남자들은 눈물이 늘어나거든. 근데 그걸 왜 나한테 말해?”
“왜 우냐고 물어보니까 네 덕분이라고 했거든. 그리고 이 편지를 전해주라고 하시던데.”
이안은 본능적으로 단단하게 밀봉된 편지를 잡았고.
새하얀 섬광이 세상을 뒤덮었다.
“미, 미안해요. 저 때문이에요.”
한 여성이 무릎을 꿇고 펑펑 울음을 터트렸다.
분노와 슬픔으로 잔뜩 일그러진 얼굴에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으드득, 내 탓이야. 내 탓이 맞아.”
살면서 수백, 수천 번을 후회했다. 남들처럼 잠깐 눈을 감았으면 어땠을까?
조금 얻은 인기가 무슨 대단한 거라고 겁도 없이 그 남자를 비난했을까.
잔뜩 구겨진 신문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성범죄를 저지른 허먼 골드슈미트가 수십 년의 징역형을 받았다는 기사.
정말 오랫동안 기다려온 기사였지만 이젠 의미가 없었다. 먼지 쌓인 4층 연습실에는 더는 소중한 아들이 없으니까.
아들을 잃은 것도 모자라서 상처받은 여인이 죄책감까지 느끼게 했다. 남성은 바보 같은 자신의 과거 행동에 심장이 찢어질 거 같았다.
초췌한 여성이 떠나가고 연습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시원한 바람이 들어왔다.
“정말 미안해.”
먼저 떠난 아들에게 한 말인가, 아들뿐만 아니라 남편까지 잃을 아내에게 한 말인가. 아니면 또 다른 죄책감을 품게 될 여자에게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의문을 품으며 남성은 창틀을 움켜쥐었다.
칙칙했던 세상이 밝은 빛으로 뭉개졌다.
이안은 정신을 차리고 거칠게 숨을 내뱉었다.
“흐읍!”
“이안? 갑자기 왜 그래?”
편지에 손을 떼고 손을 휘저었다.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그것보다 이 편지는 내가 받을 필요가 없을 거 같아..”
“주라고 했는데?”
“내 말을 전하면 알아들으실 거야. 그리고 아버지에게 그 편지를 읽어봐도 괜찮냐고 물어봐도 될 거 같아. 사실 궁금하지?”
다니엘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평생 엄하셨던 아버지가 한 번 만난 아이에게 울면서 편지를 건넸으니 궁금할 법도 하다.
“그러니 가서 한 번 물어봐. 알겠지?”
“응!”
편지를 소중히 챙기고 떠나는 다니엘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봤다.
이스턴이 아들에게 모든 걸 솔직히 말할지 아니면 숨길지 모르겠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자신이 봤던 미래보단 더 나을 거란 점이다.
이안은 홀가분하게 촬영장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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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유독 컨디션이 좋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몸이 가볍고 생기가 가득 도는 그런 날.
마치 오늘 무슨 일을 하든 잘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는데.
퍼어억!
“으아아악!”
비명과 함께 풋볼을 하던 덩치 좋은 백인 남자애가 데굴데굴 굴러갔다.
“…어라?”
이제야 깨달았다.
느낌만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