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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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인생은 도박과 같다.
삶은 성공과 실패의 반복이고 인생의 차이는 얼마나 크게 성공하고 최대한 작게 실패하는지에 따라 달렸다.
코인으로 전 재산을 날린 노숙자가 입에 달고 산 말이다.
눈앞의 거장은 한 번의 실수로 전 재산을 날린 사람과 같았다.
“…망할 거 같다고?”
같이 작업하고 싶다는 말은 질리게 들었지만 망할 거 같다는 말을 들은 적은 처음이다.
그것도 아역 배우에게.
게빈은 감정을 최대한 추스르고 물었다.
“왜 그런 말을 했니? 제대로 확인도 안 해보고 말이야.”
이안은 손에 든 종이를 휘리릭 넘겼다.
영화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앞으로 촬영할 장면을 만화 형식으로 그려놓은 스토리보드가 보였다.
밖으로 유출되면 안 되는 귀한 정보였고 생일 선물이라기엔 과했다. 고마운 마음을 담아 솔직히 말했다.
“만약 찍는 영화가 단순한 액션 영화라면 무조건 찍고 싶다고 했을 거예요. 근데 이 영화의 적은 사람이 아니라 외계 생명체라면서요.”
“그렇지?”
“그럼 괴물이 나오는 일종의 크리처물이죠.”
크리처물은 호러물의 하위분류에 속하고.
‘세상에 좀비물도 못 보는 겁쟁이가 호러물을 찍는다고?’
시작부터 글러 먹었다고 볼 수 있다.
“음, 나는 인간에 가까운 외계인을 그리려고 했다만.”
“그럼 적이 외계 생명체일 필요가 있어요? 비인간적인 행동 때문에요? 알라의 요술봉을 휘두르는 중동의 테러범을 적으로 삼으면 되죠. 그쪽도 인간답지 않던데요.”
창작자는 왜라는 질문을 아껴선 안 된다.
적을 외계 생명체로 삼았다면 존재 자체로 사냥꾼이 활동하는 이유를 보여줘야 했다.
“인간과 공생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위협적이고, 무섭게 느껴져야죠. 근데 감독님은… 무섭게 느끼는 기준이 너무 낮잖아요.”
이안이 겁쟁이라는 말을 돌려 말하자 움찔한 게빈은 변명하듯 말했다.
“영화는 혼자 만드는 게 아니야.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다른 사람이 지적하겠지.”
“하긴 하겠죠. 감독님이 이 정도면 괜찮다고 말하면 모두 입을 다물겠지만요.”
감독 겸 제작자면서 압도적인 명성을 가진 게빈 앞에서 끝까지 제 의견을 굽히지 않을 인재는 드물 거다.
이안은 입을 다문 게빈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사실 감독님도 제가 한 말을 전부 알고 계시죠?”
거장이라고 불리는 감독이 지금까지 한 말을 모르고 있었을까? 그럴 리가 없다.
그저 불리한 사실을 외면했을 뿐이고 그답지 않게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따로 있을 거다.
마침 예상되는 부분이 있다.
“혹시 감독님이 겁쟁이라고 눈치챈 곳이 생겼나요?”
“…어떻게 알았니?”
주 전공도 아닌 크리처물에 도전할 이유는 그것뿐이다.
이안은 손에 든 종이를 게빈에게 조심히 돌려줬다. 망할 거라고 말했지만 거장은 거장이다.
스토리보드만 봐도 액션 장면은 괜찮았다.
‘특히 폭발장면이.’
누가 폭발광 아니랄까 봐 가장 스토리보드에도 가장 공들인 티가 났다.
아무튼, 자신이 알던 미래처럼 뒷방 늙은이로 전락할 정도로 실력이 녹슨 건 아니었다.
“겁쟁이라는 게 밝혀져도 그저 놀림을 받을 뿐이에요. 오히려 친근감을 느끼고 좋아하는 사람도 생기겠죠. 하지만.”
“하지만?”
“겁쟁이라서 영화를 망친다면 사람들은 조롱하고 비난할 겁니다.”
알던 미래처럼.
단순한 가십거리에 불과했다면 겁쟁이라는 사실이 그렇게 널리 알려지진 않았을 거다.
전혀 무섭지 않은 외계인과 그 때문에 빛바랜 액션 장면.
아동용이냐고 조롱당하며 영화가 실패하자 기자들은 원인을 찾았고 게빈이 숨기고 있던 비밀까지 도달했다.
‘거장이 영화를 망친 이유가 겁쟁이라서라니. 얼마나 자극적이야.’
단 한 번의 실수가 그의 대부분을 앗아갔다. 감독의 생명까지도.
“감독님에겐 용기가 필요해요. 알고 있죠?”
겁쟁이라는 걸 밝힐 용기 혹은 공포를 이겨낼 용기.
선택은 게빈 본인에게 달렸다.
이안은 진지한 태도로 조언을 듣는 그에게 밝은 미소로 지었다.
“제 생일에 시간 내주셔서 너무 고마웠습니다. 주신 선물도 사실 엄청 기뻤고요.”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구나. 나야말로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단다. 좋은 생일을 보내렴.”
생각이 많아 보이는 게빈을 배웅하고 집 안으로 돌아가자 애들이 몰려왔다.
“데이비스 감독님하고 무슨 이야기를 한 거야? 응?”
“혹시 캐스팅 관련된 이야기였어? 뭘 주고받는 것 같기도 했는데 아무것도 들고 있는 게 없네.”
“그냥 별거 아니야. 용돈을 준다고 했는데 괜찮다고 한 거거든.”
“진짜야?”
이렇게 변명을 했는데도 의심의 눈초리가 사라지지 않았고 최후의 방법을 사용했다.
뭔가 아는 듯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는 벤을 가리켰다.
“응, 진짜야. 저기 벤 로버츠의 명예를 걸 수도 있어.”
“야, 내 명예를 네가 걸어?!”
“글쎄요. 있으나 마나 해서?”
언제부터 그렇게 명예롭게 살아왔다고 비싸게 구는지 모르겠다.
심통 난 벤에게 귓속말했다.
“오늘 애들이랑 레이첼은 우리 집에서 자고 간다던데요. 그럼 아일라는 혼자 집으로 돌아가겠죠?”
불평하려던 벤은 멈칫하더니 밝은 미소를 지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너라면 얼마든지 내 명예를 맡길 수 있지.”
“잘 해봐요. 저번엔 손잡는 게 끝이었다면서요.”
“걱정하지 마. 내가 누군데.”
벤 로버츠? 풋풋한 청소년도 아니고 손잡았다고 좋아하는 안타까운 사람 아닌가.
이번엔 잘 해보라고 혀를 끌끌 찬 이안은 래리가 구석에 잘 숨겨놨다고 생각한 상자를 끌고 오자 얼굴이 굳었다.
“와, 놀 게 엄청 많네! 우리 뭐부터 하고 놀까?”
미국 초등학생 생일 파티의 핵심은 먹을 게 아니라 놀 거리다.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음식을 차리는 게 아니라 애들 팔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질릴 때까지 놀아주는 것.
이게 생일 파티 호스트가 각오해야 할 일이다.
이안은 상자에서 큰 물총을 꺼내며 비장하게 말했다.
“좋아. 다 덤벼.”
누가 먼저 죽을지 오늘 한 번 결판을 내보자.
***
“…죽겠다.”
정말 몸이 좋아진 게 맞을까? 고작 4명하고 놀아줬다고 녹다운이 될 정도면 그냥 착각일지도 모른다.
이불 편 거실에서 애들과 널브러져 있던 이안을 누군가 작은 목소리로 불렀다.
“이안, 안 자고 있어?”
“레이첼?”
고개를 위로 들자 가장 먼저 잠든 줄 알았던 레이첼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도 안 잤어? 혹시 잠자리가 낯설어서 그래?”
“그건 아니야. 하나도 안 불편한걸? 그보다 잠시 위에서 이야기 좀 해도 될까?”
“그러자.”
저 부탁을 위해 애들이 잠들 때까지 기다린 거 같으니 이안은 기꺼이 몸을 일으켰다.
옥상 테라스로 올라가자 시원한 바람과 함께 잠이 달아나는 게 느껴졌다.
“좋다.”
다들 잠든 늦은 시간. 오늘따라 유독 잘 보이는 별을 올려다보며 레이첼은 흥얼거렸다.
R&B의 흥겨운 그루브가 느껴지는 리듬 위로 그녀는 난간을 악기처럼 두들겼다.
훌륭한 곡이 탄생하는 짧은 시간.
밤하늘 아래서 이뤄진 공연은 평범한 사람조차 그녀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게 만들었다.
잠시 음악에 빠져 있던 레이첼은 이안에게 고개를 돌렸다.
“오늘 엄청 즐거웠어. 또래랑 이렇게 신나게 논 적은 별로 없었거든.”
“앞으로 이런 날이 많을 거야.”
다짐에 가까운 말이었다.
친구들과 물총 싸움하며 티격태격하는 시간은 가족과 얼굴을 잃었던 이안이 그렇게 바라던 평범한 일상이니까.
“근데 즐거운 만큼 불안하기도 했어. 나 말고도 이안의 좋은 점을 아는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내가 없는 곳에서 많은 추억을 쌓았구나. 싶더라. 못났지?”
“질투하는 건 평범한 일이잖아. 못날 게 뭐가 있어.”
“네 첫 키스 상대가 도로시인 게 싫은 것도 평범한 일일까?”
첫 키스.
이안의 삶에선 가치 없는 이름이었다.
‘내 첫 키스가 언제였더라. 아마 그때였나.’
여자 노숙자들에게 저 끔찍한 얼굴에 키스하면 돈을 주겠다고 누군가 말했을 때였다.
내일 굶어도 싫다는 사람들 속에서 용기 있게 나선 사람이 첫 키스 상대였다. 진저리를 치며 입술을 벅벅 닦던 뒷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고.
솔직히 첫 키스가 무슨 대수냐는 생각은 아직도 있지만.
“왜? 이대로 멀어지게 될까 봐 두려워?”
미약한 끄덕거림.
저 작은 움직임에 얼마나 많은 용기와 고뇌가 섞여 있을까. 질끈 감은 두 눈만 봐도 알 수 있다.
‘레이첼에게 나는 어떤 사람일까?’
첫 친구, 동경하는 사람 아니면 좋아하는 사람.
어떤 감정인지 확신할 순 없었다. 다만 지금 힘겹게 낸 용기를 무시했을 때 어떻게 될지는 알았다.
‘얘 성격이면 숨겠지. 어쩌면 다시 만나기 힘들지도 모르고.’
이성적 호감까진 아니다. 기껏해야 귀여운 동생을 보는 느낌 정도지.
하지만 인연이 끊긴다고 아무렇지도 않을 정도로 가벼운 관계도 아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이안은 가볍게 웃었다.
‘내가 지금 뭘 고민하고 있냐.’
첫 키스라니 말은 그럴듯하지만 기껏해야 초등학생끼리 하는 뽀뽀다. 여자랑 잠자리도 가졌는데 이게 무슨 어려운 일이라고.
이안은 고개를 숙였다.
짧게 살이 맞부딪히는 감촉.
소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어. 어?!”
“괜찮아? 망가진 건 아니지?”
“고, 괜찮거든!”
미소와 함께 묻자 얼굴이 붉어진 소녀는 계단을 후다닥 뛰어 내려갔다.
다행히 안 다치고 내려가는 걸 확인한 이안은 온기를 나눈 입술을 만졌다.
“역시 크게 두근거리거나 하진 않네.”
조금 아쉬웠다. 첫 키스의 풋풋한 감정을 느꼈다면 연기에 도움이 됐을지도 모르는데.
‘아니다. 못 느껴서 다행인 건가.’
정신연령을 생각하면 설레는 게 더 위험한 일이다.
“그래도 확실히 이번이 낫다.”
지독한 알코올 향이 난 그 날보다 딸기맛 치약 향이 훨씬 낫다.
새삼스러운 감상을 남긴 이안은 2층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1층에선 부끄러움에 발을 동동 구르는 소리가 들렸으니까.
***
게빈은 테이블 위에 올라온 종이를 천천히 넘겼다.
시나리오와 제작 중인 스토리보드, 예산과 배급 계약에 관한 문서 등. 제작 단계 전에 이뤄지는 프리 프로덕션 작업물이다.
“망할 거 같다고?”
그는 들은 말을 입에 되뇌었다.
작업물을 본 누구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지금 고민을 알면 고작 아역 한 명이 한 말에 휘둘리냐고 놀렸을 테고.
가장 큰 난관인 투자도 이미 받은 상태이니 그냥 무시하면 그만인데.
“나도 알고 있다고. 이대로 하면 안 된다는 걸.”
그래, 그저 작품 시작 전 으레 느끼는 불안감으로 치부하며 덮어놨던 진심이 이안의 말과 함께 드러났다.
‘망하진 않을 수도 있어.’
낯선 도전이라고 준비를 소홀히 한 건 아니었다. 여느 때처럼 최선을 다했고 놓인 건 그 결과였다.
아무리 그래도 망하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만족할만한 작품이 나올 거 같지도 않았다.
“그냥 접을까.”
이조차 쉬운 결정이 아니다. 투자는 받았고 손발을 맞춰본 스태프들도 기꺼이 합류했다.
그냥 접는 것도 이대로 제작하는 것도 무엇 하나 쉽지 않았다.
고민을 거듭하던 게빈은 전화기를 들었다.
-어라, 데이비스 감독님? 어쩐 일이십니까.
“벤, 지금 통화가 가능한가.”
-물론이죠. 혹시 다음 작품 때문에 연락하신 겁니까?
“그건 맞는데 자네 캐스팅 때문에 연락한 건 아니야.”
벤 로버츠는 오디션 대상에 포함되어 있지만 지금 배우 캐스팅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럼 무슨 일입니까?
“이안 프라이스와 친하다고 했지? 자네가 본 그 아이는 어떤 아이였나.”
-이안이라.
가볍게 대답하면 안 될 느낌에 잠시 고민하던 벤은 답을 내뱉었다.
-아이답지 않고 성숙하죠. 그냥 어른을 상대한다고 생각하면 편합니다. 아, 그리고 감도 좋은 거 같습니다.
“감?”
-아시잖아요. 강도를 잡았다느니, 아이를 구했다느니. 뉴스로도 시끄럽게 떠들었으니까요. 이번에 허먼의 성범죄 폭로에도 한 발 걸쳐 있고요.
나열된 사건만 생각하니 확실히 비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그 아이에게 도움을 받는 건 어떻게 생각하나?”
-도움이요?
벤은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받을 수 있다면 받는 게 좋죠. 저도 도움받곤 하니까요.
“그래? 고맙네.”
감사 인사를 한 게빈은 서둘러 통화를 끊었다.
무슨 도움을 받을 생각이냐고 캐물으면 곤란했다.
잠시 할 말을 머릿속으로 정리한 게빈은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안 군?”
***
-크아아아악!
달려든 좀비가 생존자의 팔을 물어뜯었다.
튀기는 피와 으적거리는 생생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 방 안에서 앳된 목소리가 들렸다.
“저 장면을 저렇게 편집했구나.”
콰드드득!
“으아아아악!”
목이 기괴한 각도로 꺾이며 죽는 생존자의 모습에 비명이 울렸다.
“오, 비명도 생생하네.”
아닌가. 이건 게빈의 비명이었나.
이안과 게빈.
둘의 은밀한 프로젝트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