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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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연
과거로 돌아오기 전.
수수료로 먹고사는 에이전트들은 이안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안 프라이스? 걔는 완전 하얀 코끼리(white elephant)지”
비용은 많이 들면서 쓸모없는 존재를 뜻하는 말.
애물단지, 계륵 여러 표현으로 바꿀 수 있지만 의미는 하나였다. 계약할 가치가 없는 배우.
“무슨 걔랑 계약이야. 말라 죽고 싶냐? 작품에 들어가야 돈을 벌지. 백날 뛰어봐라. 제대로 된 작품을 따올 수 있나. 그냥 비용만 든다니까?”
“힘들게 작품을 따오면 뭐해. 얼굴 핑계를 대면서 몸값은 뭉텅이로 깎는다니깐. 힘들게 일해봤자 푼돈만 건진다고.”
아델리아를 만나 그럴듯한 조연 경력을 쌓았어도 에이전트에겐 이런 평가를 들을 뿐이다.
기껏 다가온 에이전트들은 학교도 제대로 못 나온 노숙자 출신이라는 말에 머저리 취급하며 다가온 사기꾼과 배우 취급도 안 하고 이상한 광대 역할을 맡길 생각인 쓰레기뿐.
‘그래서 실망했냐고? 그럴 리가.’
그동안 겪은 실패와 절망이 얼마나 많았는데 어설픈 기대 따위를 품고 살겠는가.
그와 처음 만났을 때도 이번엔 얼마나 참신한 계약서를 가져왔나 호기심뿐이었다.
“하하하,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프라이스 씨.”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얀 사람.
‘볼링핀인가.’
뚱뚱한 배 때문에 더 그렇게 보였다.
어울리지 않는 하얀 정장을 입은 남성은 익히 들어본 적 있는 사람이었다. 하긴 저렇게 입고 다니는데 소문이 안 나는 게 더 이상하겠지만.
“닉 윌슨 씨?”
“오! 저를 아시는군요. 역시 같은 괴짜끼리는 통하는 게 있는 거 같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하하하하.”
“괴짜요?”
흉측한 외모로 배우를 한다고 미친놈 취급은 많이 당했는데 괴짜 취급은 처음이었다.
마주하면 혐오감이 드는 외모에도 그는 태연하게 명함을 내밀었다.
“이것도 인연이니 두 괴짜가 힘을 모아서 한 번 크게 사고 쳐봅시다. 오스카 어떻습니까? 그걸 노려보는 거죠.”
어쩐지 옷도 흰색이더니. 정신병자가 확실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명함을 받은 이유는 모르겠지만.
‘가장 잘한 선택 중 하나였지. 계속 같은 괴짜로 묶는 건 싫었어도 합이 잘 맞긴 했고.’
모두가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한 목표를 정말로 이룬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확실한 건 단순히 비즈니스를 넘어선 관계였다.
‘과거로 돌아오는 기적이 없이 그대로 죽었더라도 원망하지 않았을 정도로.’
정말 그렇게 생각했는데.
“…거짓말쟁이.”
“거짓말쟁이가 아닙니다! 정말 아니에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학창 시절부터 흰 정장을 입고 다녔다고 당당하게 말했으면서 지금 꼴을 봐라.
‘흰 정장은 무슨. 완전 검둥이인데.’
이안은 배신감을 느꼈고 닉은 당혹감을 느꼈다.
인턴에 불과한 닉은 중요한 계약이 파투나는 원흉으로 찍힐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식은땀을 흘렸고, 사수인 오스틴은 입 모양으로 물었다.
-아는 사이야?
닉은 거칠게 고개를 흔들었다.
인기 많다는 한국식 콘도그도 먹으러 간 적 없는데 접점이 있을 리가 없다.
“후우…”
오스틴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계획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데이비스 감독이 튀어나오고 어린애 입에서 스크린 쿼터제 이야기가 나온 것도 모자라서 이젠 인턴보고 거짓말쟁이란다.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는 한숨에 몸을 움찔한 닉이 물었다.
“나가 있을까요?”
오스틴은 차라리 그게 낫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나중에 생각하면 되니까.
하지만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따로 있었다.
“가긴 어딜 가요. 여기 얌전히 앉아 있어요.”
“…네?”
제 옆을 팡팡 친 이안은 살짝 미간을 좁혔고 닉은 서둘러 자리에 앉았다.
압박감에 앉긴 했는데.
‘왜 내가 여기에 앉았지?’
반대편에 앉은 회사 사람들이 보였다. 따갑게 꽂히는 시선이 ‘네가 왜 그쪽에 앉아?’라고 느껴진다면 오해일까?
숨이 턱턱 막히는 닉은 제발 살려달라고 생각했으나 이미 이안의 관심은 계약에서 멀어졌다.
“인턴이라고 했죠. 일은 얼마나 했어요?”
“…이제 삼 개월 조금 넘었습니다.”
“대학교 졸업은요? 성적은 괜찮았고요?”
“졸업은 했고, 성적도 좋았습니다.”
“어느 정도 성적이길래 괜찮다고 하는 거죠?”
뭐지. 압박 면접인가.
이안의 질문에 진땀을 빼는 닉을 보고 다들 같은 생각을 했다.
“이건 너무 사생활인가. 성적이 됐으니까 취업을 했을 테고. 그럼 우리 집 콘도그는 먹어봤어요?”
“아, 아직 안 먹어봤습니다! 시간 날 때 꼭 먹으러 갈 생각입니다.”
“어쩐지 빼빼 말랐더라니.”
닉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몸을 봤다. 이래 봬도 대학을 다니면서 운동도 열심히 했다.
마르기는커녕 건장한 체격인데, 이해할 수 없었다.
이어진 말은 더욱 그랬고.
“아빠, 집에 콘도그 재료 있죠?”
“당연히 있지.”
“몇 개 만들어주실 수 있어요? 부탁할게요.”
“그래, 뭐 힘든 일이라고.”
힘든 일은 아니다. 갑자기 이런 부탁을 왜 했는지 이해하는 게 힘들지.
고개를 갸우뚱한 딜런은 부엌에서 분주하게 움직였고 고소한 기름 냄새가 퍼질수록 닉은 안절부절못했다.
“해줄 테니까 먹고 가요. 쯧, 인턴이라도 제대로 먹고 다녀야죠.”
…꼭 사 먹을 테니 제발 살려주세요.
닉은 울상을 지었다. 인턴 생활 최대의 위기였다.
***
골치 아픈 변수 몇 가지와 닉의 품에 한 아름 안긴 콘도그를 성과로 얻은 WBE 사람들이 떠났고.
콘도그가 냄새가 진하게 남은 거실에서 클로이가 물었다.
“혹시 닉이라는 사람하고 아는 사이니? 거짓말쟁이는 뭐고.”
이안은 일을 저지르고 나니 아차 싶었다.
-수십 년 뒤에 같이 일한 사람인데 그때 거짓말했어요.
이렇게 말할 순 없는 노릇이다.
이안은 또르르 눈동자를 굴렸다. 일단 대충 둘러댈 수밖에.
“스태프들에게 들은 적이 있거든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말했나 봐요.”
“그렇구나. 혹시 나쁜 사람이라서 먹을 거로 혼내준 거니?”
“에이, 그런 거 아니에요. 아빠가 해준 콘도그가 얼마나 맛있는데 그게 어떻게 혼내는 거예요? 그죠?”
“암, 그렇고말고!”
자부심 있게 고개를 주억거리는 딜런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쉰 클로이가 물었다.
“그럼 왜 그랬니?”
“이야기를 꽤 들었더니 친근감이 느껴져서 그랬나 봐요. 그리고 남자 체격이 아빠 정도는 돼야죠.”
“그래, 보니까 비리비리하게 생겼더라. 콘도그든 뭐든 팍팍 먹어서 남자가 덩치를 키워야지!”
“그렇다니까요?”
죽이 척척 맞는 부자를 한심한 눈으로 보던 클로이는 경고했다.
“다음엔 절대 그러면 안 된다. 나무막대를 씹는 것도 모를 정도로 곤란해하더라.”
“네, 조심할게요.”
이안은 반성했다.
반가워서인지, 배신감을 느껴서인지 몰라도 평소라면 안 할 행동을 했다.
정말로 반성하는 기색을 느낀 클로이는 대화의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WBE는 어땠니? 엄마가 듣기엔 괜찮아 보였는데.”
“헛다리 짚긴 했어도 꼼꼼하게 준비해왔더라고요. 몇 번 더 만나면 WBE랑 계약하지 않을까 싶어요.”
아시아 작품을 노린다.
동양인 아역이라는 한계를 나름대로 극복하려는 자세가 좋았다.
‘광고니 뭐니 이런 걸 앞세운 것보단 훨씬 낫지.’
배우 활동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뜻이니까.
“그래도 성급하게 결정하진 말렴. 다른 곳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비교해보면 좋잖니.”
“당연하죠. 에이전시는 중요하니까요.”
좋은 에이전트와 일해본 사람일수록 중요성을 더 잘 아는 법이다.
‘닉 윌슨.’
언제부터 하얀 정장을 입었냐는 쉬운 질문을 거짓말로 답변한 나쁜 놈.
뭉글뭉글 피어나는 추억을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 한 명뿐이다.
죽어도 기억 속 그와는 만날 수 없다는 게 조금 가슴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지. 과거로 온 대가인데.’
그래, 바뀐 것들을 생각하면 배부른 투정이다. 차라리 좋게 생각하자.
둘 다 젊은 나이니 함께 할 수 있는 기간도 길다.
“음, 괜찮은데?”
고개를 끄덕이던 이안은 가장 중요한 걸 안 물어봤다는 걸 깨달았다.
‘하얀 정장을 안 물어봤네.’
다음에 꼭 물어봐야겠다. 왜 하얀 정장을 안 입냐고.
***
“다음엔 안 만나고 싶습니다.”
“안 돼.”
용기 있는 닉의 요청을 오스틴은 단칼에 거절했다.
“에이전트 생활은 원래 이래. 네가 좋다고 보는 스타 중에 이상한 사람이 한둘인 줄 알아? 그 정도면 엄청 괜찮은 거야.”
“그렇습니까?”
“그래. 욕설을 내뱉은 것도 아니잖아. 거짓말쟁이라고 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콘도그까지 챙겨준 걸 보면 분명 호감이 있다니까.”
“정말 호감이 있는 게 맞을까요?”
닉은 갓 튀겨 엄청 뜨거운 콘도그가 앞에 놓였을 때를 떠올렸다. 뜨겁다고 조심히 먹으라고 구박하지 않았다면 고문하려는 줄 알았을 거다.
‘싫어하는 건지, 좋아하는 건지 정말 모르겠어.’
거짓말쟁이라는 누명을 씌운 것만 보면 싫어하는 건데 챙겨주는 모습은 호감이 있는 듯했다.
어떻게 된 게 여자의 마음보다 아이의 마음이 더 어려운지 모르겠다.
오죽하면 돌아와서 이 주제로 회의가 열렸을까.
“그것도 다 관심이야. 애들은 좋아하는 사람을 괴롭히잖아. 비슷한 거지. 아무튼, 네가 없으면 이안 군이 찾을 테니까 빠지는 건 안 돼.”
“알겠습니다.”
닉도 혹시나 해서 한 말이다. 취업이 힘든 요즘 같은 시기에 인턴이 제 고집을 부릴 수도 없고.
둘이 대화를 나누는 방에 다른 직원이 들어왔다.
“다녀왔습니다.”
“어때? 스크린 쿼터제가 완화될 가능성이 있대?”
“대략 2, 3년 내로 이뤄지지 않을까 한답니다. 정계로 관련 로비도 활발하고요.”
“그래?”
오스틴은 손가락을 튕기며 계산을 해봤다.
아역에게 그 정도 시간은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
‘그러면 중학생인가. 더 늦어도 고등학생이고.’
선택할 수 있는 배역도 지금보다 확실히 넓어질 테니 그 전에 준비만 잘 한다면 제대로 도약할 수 있을 거다.
“좋아! 그러면 중국의 스크린 쿼터제가 완화된다고 가정하고 준비해보자고! 알겠지?”
“네!”
오스틴을 비롯한 팀원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얻을 수 있는 기대 수익부터 미래 계획까지 새로 작성해야 하는 것들이 수두룩했다.
바쁜 오스틴의 사무실에 좋지 못한 소식이 들려온 것도 이때쯤이다.
“이 기사 좀 보셔야겠는데요.”
“뭔데.”
기사를 확인한 오스틴은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데이비스 감독님과 인연이 있다는 건 우리 두 눈으로 직접 봤잖아. 아, 이건 좀 곤란한데, 진짜 차기작 계약을 벌써 한 건 아니겠지?”
“지금 그것보다 다른 기사를 보셔야 합니다.”
“다른 기사?”
다른 톱스타보다 먼저 게빈의 선택을 받은 것 같다고 호들갑 떠는 기사보다 중요한 게 있다고?
시선을 내린 오스틴은 바로 눈살을 찌푸렸다.
-이안 프라이스, 데이비스 감독의 수상한 관계.
“이건 뭔 개소리야.”
수상하긴 무슨.
조손처럼 친근한 사이라는 걸 직접 두 눈으로 봤다. 정말 말도 안 되는 헛소리였다.
“타블로이드에서 소설 쓰는 게 한두 번 일이야? 이걸 왜 나한테 보라고 해?”
“얘네가 증거로 제시한 것 때문에 동의하는 사람이 꽤 있습니다.”
“증거?”
오스틴은 기사 내용을 살폈다.
“보름 만에 데이비스 감독님이 많이 초췌해졌고 관계자 말에 따르면 이안 군과 만나기 시작한 다음부터라고 합니다. 거기 사진도 있습니다.”
“…확실히 그렇긴 하네.”
비교로 올라온 사진을 보니 게빈의 상태가 안 좋아 보였다.
“거기다가 이안 군과 샬럿이 인연이 깊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잖습니까? 지금도 여파가 계속되는 폭로전을 시작한 사람들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데이비스 감독이 사실 뒤가 구리고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협박해서 이안을 차기작에 꽂아 넣었다고?”
고소는 무서웠는지 교묘하게 오해하도록 쓴 기사였고 흔한 할리우드 활자 쓰레기였다.
코웃음이 절로 날 정도로.
“알죠. 말도 안 된다는 거. 근데 허먼 사건 때문인지 생각보다 믿는 사람이 많습니다.”
“허먼 사건은 무슨. 그냥 인종차별인 거지. 아시안 아역이 이렇게 잘 나간다고? 뒤가 구린 거 아니야? 이런 머저리 같은 생각이 훤히 보이잖아.”
“그래서 어떻게 할까요?”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 돌다리도 두들겨보는 심정으로 조금 기다려보자는 뜻이겠지.
오스틴은 기사가 뜬 창을 꺼버렸다.
“헛소리하지 말고 빨리 자료나 준비해. 다른 곳에서 너처럼 멍청한 생각을 하는 동안 한 발자국이라도 앞서야 할 거 아니야! 뭐해? 빨리 나가!”
“네, 네!”
오스틴은 입꼬리를 올렸다.
누가 멍청한 기사를 싸질렀는지 몰라도 오히려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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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스, 그 자식이 협박을 당하고 있다고?”
같은 감독인 그는 지독한 악연이다.
기사를 보는 주름진 손에는 힘이 잔뜩 들어갔다.
“아주 소설을 쓰는구만.”
그 고집불통에 싹수없는 인간이 협박을 잘도 당하겠다.
굽힐 줄 아는 인간이라면 이렇게 길게 악연이 이어지지도 않았을 테고.
꼴 보기 싫은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그 옆에 선 아이를 봤다.
“이안 프라이스라. invisible children에선 아주 인상적이긴 했지. 아무래도 한 번 만나봐야겠어.”
좀비 드라마를 훌륭하게 찍는 아역이라니. 이런 훌륭한 인재는 미리 만나둬야 했다.
게빈, 그 망할 영감탱이에게 물들기 전에 말이다.
온갖 괴물 포스터로 도배된 방에서 노인은 기대를 담아 일어났다.
또 한 명의 거장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