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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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람
바삭거리는 식감과 함께 비릿하고 짠맛이 올라왔다.
‘미래에 먹던 것보다 짜고, 기름지네. 냄새도 최대한 잡아야겠고.’
하긴 한인 팬이 밥하고 먹으라고 준 김이니 당연한 일인가.
나중엔 스낵으로 만든 김이 미국에서도 잘 팔렸는데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김을 오물거리던 이안의 귀로 샬럿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니, 내 말 듣고 있니?
“아주 잘 듣고 있죠. 이상한 기사를 쓴 타블로이드를 고소할지, 말지 이야기였죠?”
-그래!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니까?!
그녀는 파티광 시절에 파파라치와 하루 6시간씩 함께 있으며 언론과 전략적 동거를 선택했다.
어지간한 기사라면 오히려 좋다고 할 사람이 열을 내는 이유는 이안이 껴 있기 때문이었다.
‘언론에서 쓴 소설이 마음에 안 들었나 보네.’
기껏해야 공포물을 보고 힘들어하는 게빈을 시한부 정도로 쓸 줄 알았는데.
샬럿의 폭로전과 게빈의 차기작 계약까지 엮어서 소설 한 편을 뚝딱 했을 때는 상상력에 감탄했을 정도다.
아무튼, 그녀의 마음을 고맙게 여기며 대답했다.
“상관은 없는데. 하려면 빨리하셔야 해요.”
-왜?
“더 화난 사람이 있거든요.”
고개를 돌리니 얼굴이 삶은 문어처럼 변한 게빈이 보였다.
“그 자식들 고소하겠다고! 적당한 합의? 당장 사과문 안 올리면 그딴 건 기대하지도 말라고 해!”
“들었죠?”
저 정도 분노면 무서워하던 좀비의 머리통도 쪼개버릴 거 같았다.
-어머, 화끈하시네. 일단 알았어. 나는 상황 보고 움직일게.
“알겠어요. 신경 써줘서 고마워요.”
-허니 일인데 당연하지. 또 연락할게!
저 허니 소리는 남자가 생겨야 그만두려나.
비슷하게 통화를 끊은 게빈이 이안의 앞에 털썩 앉았다.
“무슨 검은 종이 같은 걸 먹고 있니? 불량식품은 되도록 먹지 말렴.”
“종이가 아니라, 해초에요. 그래서 통화는 잘 끝났어요?”
“뒤는 변호사가 알아서 하겠지. 후, 험한 꼴을 보여서 미안하구나. 너까지 엮은 걸 보니 진저리가 나서 말이야.”
솔직히 가장 큰 피해자는 게빈이다.
허먼 같은 성범죄자 취급도 모자라서 협박받아 캐스팅했다면서 감독의 자존심을 짓밟았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제쳐두고 자신을 먼저 걱정하는 모습에 이안은 고마움을 느꼈다.
“조금만 참으렴. 사과문이 올라오면 이상한 소문도 어느 정도 가라앉을 테니.”
“괜찮아요. 어차피 사과문이 올라와도 안 믿을 사람은 안 믿어요.”
온갖 증거를 들이밀어도 지구 평면설 같은 걸 믿는 사람이 수두룩하지 않나?
논리, 이성, 증거 이런 게 하나도 안 먹히는 사람들이 주절거리는 말에 관심을 두는 게 손해다.
“음, 아무튼 최대한 노력은 해보마. 그러니 이슈가 진정될 때까지 안 만나는 건 어떻니?”
“왜요?”
“밖에 파파라치가 잔뜩이잖니. 네가 힘들까 봐 그렇지.”
“갑자기 안 만나면 켕기는 게 있다고 생각할 걸요? 파파라치는 제가 알아서 해볼게요.”
회귀 전에는 파파라치와 인연이 없었다.
‘걔들도 예쁘고, 멋진 사람을 찍고 싶겠지.’
파파라치도 사람이다. 멀쩡한 스타를 두고 끔찍한 얼굴을 찍고 다닐 이유가 없다.
사진을 사줄 언론사는 더더욱 없고.
덕분에 과거로 돌아와 파파라치에게 시달릴 때는 싫고 귀찮은 마음도 있지만 신기한 느낌도 있었다.
‘어떤 관계로 지내야 할지 연구하는 재미도 있고.’
스타마다 파파라치를 대하는 자세는 다양하다. 어떤 방향을 잡을지 고민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래도 정말 힘들면 꼭 말하렴. 속으로 삭이지 말고.”
“물론이죠. 아, 밑에 부모님이 오셨나 봐요. 문자 왔네요.”
“그러고 보니 오늘 WBE와 계약한다고 했었지?”
“그렇게 됐어요.”
지금 이슈 때문에 소극적인 다른 에이전시와 달리 WBE는 적극적이었다. 한 차례 더 만났을 때는 기대 이상으로 준비해왔고.
“잘 선택했구나. 에이전시가 있는 게 아무래도 좋지. 나랑 작품 계약을 할 때도 도움을 줄 거 아니냐.”
“어라, 오디션은 안 보세요?”
“원랜 보려고 했지. 근데 널 뽑지 말라는 듯이 악을 쓰고 달려드는 걸 보니 꼭 뽑아야겠다.”
역시 세상일은 알 수가 없다. 쓸모없는 인간들이 도움이 되기도 하고.
좋아하는 이안을 보며 흐뭇하게 웃던 게빈이 손을 내밀었다.
“대신 지금 떠도는 헛소리를 일축할 정도로 잘 해야 한다?”
“물론이죠. 제가 그런 사람들에게 한 방 먹이는 게 전문이거든요.”
저딴 얼굴의 배우를 왜 쓰냐는 불만을 실력으로 버텨왔다.
실력 증명이라면 이골이 났으니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악수로 약속한 두 사람이 주차장으로 나가자 셔터 소리가 쏟아졌다.
“감독님! 이안 군! 정말로 수상한 거래가 있었습니까?”
“둘이 어딜 가시는 겁니까! 혹시 샬럿을 만나러 가는 겁니까?!”
열 명 남짓한 파파라치를 무시하고 이안은 부모님 차에 올라탔고 게빈은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내가 상대하고 있을 테니. 조심히 가야 한다.”
“고맙습니다.”
차량 이동 자체를 방해하는 악질적인 행동을 막아준다니 고마웠다.
게빈이 파파라치의 시선을 끄는 동안 무사히 주차장을 빠져나온 딜런은 유쾌하게 말했다.
“아들! 선글라스라도 하나 사줄까? 덤으로 아빠 것도 하나 사면 좋고.”
“당신 거는 왜 사요? 집에 있잖아요.”
“주방에서 기름 튈 때, 쓰면 좋지 않을까? 눈에 기름이 튀면 얼마나 아프겠어.”
“정신 나간 소리 하지 말고. 운전이나 똑바로 해요.”
티격태격하는 부모님과 웃고 떠드는 사이 차는 WBE 본사에 도착했고 회의실에는 오스틴을 비롯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잘 오셨습니다. 어서 앉으시죠.”
이안은 닉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고 그는 민망한 얼굴로 작게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이대로 가면 또다시 계약은커녕 닉에게 관심을 뺏길지도 모른다. 위기감을 느낀 오스틴은 손뼉을 치며 서둘러 말했다.
“계약서는 변호사를 통해 잘 검토하셨나요?”
“네, 문제 될 부분이 없다고 하더군요. 오히려 아역 계약치곤 좋다는 말을 들었죠.”
“하하하, 말씀드렸잖습니까. 저희가 원하는 건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맺는 거라고요.”
지금보다 나중이 더 기대되는 배우다.
오스틴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볼 정도로 배짱이 두둑하지 않았다.
사실상 계약서에 사인만 하면 되는 단계였고 딜런이 법정대리인으로 계약을 마무리 짓는 데까진 순식간이었다.
계약이 체결되자 오스틴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저희를 믿고 맡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후회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되나요?”
“지금처럼 촬영에 힘 써주시면 됩니다. 그동안 저희는 정식으로 계약을 맺었다고 기사를 내고, 들어갈 수 있는 오디션 정보를 찾아보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오디션을 바로 찾아준다니 만족해하던 이안은 깜빡했다는 듯이 물었다.
“지금 절 쫓아다니는 파파라치가 많다는 건 아시죠? 혹시 그 사람들의 간단한 신상정보를 알 수 있을까요?”
“음… 어렵진 않습니다만.”
홍보 때문에 파파라치와 어느 정도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파파라치들도 에이전시가 있으니 신상정보 구하는 건 쉽다.
‘문제는 그걸 구하는 이유지.’
무슨 일을 벌일까 걱정된 오스틴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파파라치들이 따라붙는 게 힘든 건 압니다. 다른 스타분들도 전부 같은 고통을 경험하고 있죠.”
심하면 헬기를 동원할 정도로 사생활 침해가 도를 넘을 때가 많다.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로 반발감을 가진 스타도 많고.
“그래도 스타와 파파라치는 공생 관계입니다. 친분을 다져놓으면 도움이 될 때도 많습니다. 힘드시겠지만 되도록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알고 있어요. 그래서 달라고 하는 건데요.”
보내주겠다고 하면서도 오스틴은 수상하게 봤지만 이안은 억울했다.
정말로 친하게 지낼 생각이다.
“닉, 닉은 제 말 믿죠? 정말 친하게 지내려는 거라니까요.”
“…물론이죠. 얼마나 친해지실지 너무 궁금합니다.”
이것 봐라. 닉은 믿어주지 않나.
안 되겠다. 이 억울함을 풀기 위해선 파파라치들과 엄청 친해져야지.
그날 밤. WBE에서 보내준 신상정보를 받은 이안은 열의를 불태웠다.
***
“이제 슬슬 나오겠지?”
“invisible children 촬영 스케줄도 확인했잖아. 세트장까지 가는 시간이 있으니 나오겠지.”
열 명 남짓한 파파라치들은 이안의 집 앞에서 어슬렁거렸다.
“이안, 샬럿, 데이비스 감독. 이 셋이 함께 있는 장면을 찍으면 대박일 텐데.”
“생각이 있으면 셋이 함께 있겠어? 난 이안이 찡그리는 사진만 건져도 만족한다고. 욕이라도 하면 훨씬 좋고.”
사진은 희귀할수록 가치가 높다.
교육 영상이 올라오는 위튜브와 허먼의 성범죄 사건 덕분에 착실하고 순수한 이미지를 가진 이안이 카메라를 향해 중지를 치켜들어봐라.
‘아주 대박이겠지만 이건 솔직히 너무 큰 기대고.’
항상 웃는 사진만 찍혔으니 찡그리는 사진을 건지면 만족이다.
플래시를 터트려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걸 봐선 이것도 쉽지 않았지만.
긴 시간을 기다리던 파파라치들은 문을 열고 이안이 나오자 인상을 팍 찡그렸다.
“아, 망했네.”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저러면 백날 플래시를 터트려도 의미가 없었다. 사진을 찍으면서도 망했다고 투덜거리던 파파라치들은 몸을 움찔했다.
이안이 걷는 방향이 이상했다.
“왜, 왜 다가오지?”
차에 타기는커녕 집 밖으로 나와 점점 다가왔다.
혼란스러워하는 이들 앞에 선 이안은 가장 앞에 선 파파라치에게 친근하게 말했다.
“좋은 아침이에요. 매튜 스미스 씨! 아침부터 고생이 많네요.”
어라? 내 이름이 맞는데.
혼란에 빠진 매튜는 얼떨떨하게 답했다.
“어, 어. 그렇지?”
“하긴 딸이 세 살이라던데. 아빠가 힘낼 수밖에 없긴 해요. 아, 그러고 보니 딸 생일도 얼마 안 남았죠?”
매튜는 소름이 돋았다. 자신의 이름뿐만 아니라, 딸까지 알고 있었다.
두려움에 떠는 그를 지나친 시선은 옆으로 향했다.
“아, 테일러 씨의 자녀와 둘이 동갑인 건 아세요? 집도 근처던데 같은 유치원을 다닐 수도 있겠네요.”
테일러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뒤로 물러나는 테일러를 대신해 옆에 있던 동료가 조심히 물었다.
“호, 혹시 나도 알고 있니?”
“콜튼 우드 씨는 결혼도 안 하셨잖아요. 아! 저번 주에 어머니 생신이었죠? 잘 챙겨주세요. 나중에 후회한다니까요. 다른 분도 물어보세요. 전부 알거든요!”
해맑은 아이의 미소에 누구 하나 웃지 못했다.
얼굴이 굳은 파파라치들은 카메라를 내렸고 용기를 낸 콜튼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걸 왜 외운 거니?”
무슨 당연한 걸 묻냐는 듯이 이안은 방긋 웃었다.
“친하게 지내려고 외웠죠. 우리 친하게 지낼까요?”
짧은 침묵 후, 질린 얼굴을 한 그들은 바로 사과했다.
“미안하다. 우리가 잘못 했어.”
웃는 아이의 얼굴이 무서울 수 있다는 걸 깨달은 파파라치들은 사과하면서 눈앞에서 사라졌다.
홀로 남은 이안은 황당해하는 클로이에게 어깨를 으쓱였다.
“이 방법은 파파라치에겐 안 먹히네요. 스태프분들에겐 잘 통했는데. 켕기는 게 많은 사람이라 그런가. 음, 다음엔 먹을 거라도 줘볼까요?”
“…아마 안 먹지 않을까?”
아, 쉽지 않네.
파파라치랑 친해져서 닉에게 자랑하려고 했는데.
아쉬움을 삼킨 이안은 invisible children 촬영장으로 향했고 마지막 화 대본을 펼쳤다.
주인공 집단과 갱단 집단 싸움은 파국으로 이어졌고 피난처였던 지하도로 좀비들이 몰려드는 상황이다.
피난처를 잃은 어른들은 지상으로 도망쳤고 그 과정에서 상처 입은 노아가 지하도에서 홀로 좀비를 유인하는 장면이 이번 시즌의 마지막이다.
누가 봐도 노아가 죽었다고 생각될 장면이지만.
‘그래도 죽진 않겠지. 다음 시즌 출연 계약까지 맺었는데.’
대본을 탐독하는 사이 촬영장에 도착했고 오늘따라 유독 소란스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가온 세컨 조연출에게 물었다.
“오늘 분위기가 좀 이상하네요. 슬슬 촬영이 끝나서 그래요?”
“아! 그게 아니라 귀한 손님이 왔거든. 그분 때문에 그래.”
“귀한 손님이요?”
무슨 손님이 왔길래 이러나 궁금했고 안으로 들어가자 쇼러너 케이틀린과 대화 중인 노인을 볼 수 있었다.
쇼러너는 이안이 온 걸 보곤 환하게 웃으며 손짓했다.
“이안! 마침 잘 왔구나. 마침 옆에 있는 분이 널 한번 보고 싶다고 하셨단다.”
부리부리한 눈과 날카로운 인상의 노인은 이안을 훑듯이 보곤 손을 내밀었다.
“랜든 A 미들턴이라고 한다. 감독이자, 제작자지.”
귀에 꽂히는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노인.
이름까지 들으니 촬영장 분위기가 들뜬 이유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안 프라이스에요. 공포물로 유명한 감독님 맞죠? 좀비랑 괴물 영화도 엄청 잘 만드셨고요.”
“귀찮게 설명할 필요가 없겠구나.”
크리처물을 오랫동안 다룬 감독이고 이쪽 분야에선 굉장히 존경받는 사람이었다.
좀비 드라마를 찍고 있는 스태프들에겐 슈퍼스타나 마찬가지였고.
“근데, 왜 절 보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런 사람이 왜 찾았나 의문이다.
새로 영화라도 찍나 싶었는데 돌아온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데이비스, 그 몹쓸 인간하고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들었단다.”
“그렇죠?”
“너무 마음 주지 말라고 하고 싶었단다. 나쁜 사람이거든.”
나쁘다고? 그 게빈 감독이?
이안은 눈을 동그랗게 떴고, 랜든은 인상을 팍 찡그렸다.
“영화인으로 기본이 안 된 인간이야. 기껏 초대한 시사회를 몽땅 무시한 건 이해할 수 있다. 일정이 바쁘면 그럴 수 있지. 근데.”
“그런데요?”
정말 그때를 생각하면 열이 난다는 듯이 그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보지도 않은 영화를 봤다는 듯이 내 앞에서 지껄이더군. 날 모욕하는 게 아니고 뭐겠니!”
“무슨 영화였는데요?”
“좀비 영화였지. 지금 이런 드라마를 만들 수 있게 한 기틀이 되는 작품이기도 하고.”
게빈과 좀비 영화라.
모든 상황을 이해한 이안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와, 정말 나쁜 사람이네요.”
이건 게빈이 잘못했다. 그러게 속일 거면 잘 좀 속이지.
이안은 혀를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