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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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아닌데
거짓말이 무조건 나쁜지 아니면 필요한 경우엔 해야 하는지 논쟁이 있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할 거면 잘 해야지.’
지금처럼 상처받는 사람이 최대한 안 생기게.
이안이 게빈을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자 랜든은 눈을 끔뻑였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비슷했다.
-에이, 바쁘게 살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지. 뭘 그 정도로 그러냐.
-얼마 전에 물어보니까 너보고 좋은 감독이라고 하더라. 험담은 안 하는 게 낫지 않아?
-요즘 많이 예민한 거 같다. 괜찮은 심리상담가를 소개해줄까?
어찌나 이미지 관리를 잘 해놨는지 걱정하거나, 자격지심에 빠진 한심한 인간 취급이 돌아올 뿐이었다.
기껏해야 잘 보이려는 속물들만 동의했는데 이안에겐 진심이 느껴졌다.
“정말로 내 말을 믿어주는 거니?”
“제게 거짓말하실 이유가 없잖아요. 안 그래요?”
“당연하단다! 내가 그놈도 아니고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지!”
“그럼 나쁜 사람이 맞네요.”
미사여구가 없는 단호한 인정.
랜든은 주책맞게 뛰는 심장 덕분에 저 한 문장이 얼마나 듣고 싶었는지 알게 됐다.
“그럼 제가 게빈 감독님하고 안 만났으면 좋겠어요?”
이안의 질문에 랜든은 솔직히 그렇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래선 안 되겠지. 얼마나 좋은 기회인데.’
인정하긴 싫지만 게빈은 좋은 인간은 아니라도 좋은 감독이긴 했다.
그와 친분을 쌓는 게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잘 아니 자신의 욕심을 내세울 순 없는 노릇이다.
랜든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차라리 아주 친하게 지내렴. 분명 네게 도움이 될 테니까. 다만, 과하게 믿진 않았으면 좋겠구나. 결국에 상처받는 건 네가 될 테니까.”
“그런가요? 조언 감사합니다.”
이안은 활짝 웃었다.
짧은 대화지만 상대를 파악하기엔 충분했다.
‘자기 작품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외골수 같은 성격도 있어.’
보통 사람 같으면 아는 척 좀 했다고 처음 보는 아역에게 험담을 늘어놓진 않는다.
주변에선 당연히 말렸을 텐데 듣지도 않은 걸 보면 확실히 고집불통인 성격이다.
‘그런데 성격이 나쁜 건 아니야.’
제 생각을 강요하기보단 진심으로 상대에게 도움이 될 조언을 했다.
안 좋은 것 같으면서도 좋은. 참 묘한 성격이다.
둘의 대화를 옆에서 조용히 듣던 케이틀린은 안절부절못하는 조연출을 확인하곤 입을 뗐다.
“죄송하지만 이제 슬슬 분장해야 합니다. 나중에 더 대화하시는 게 어떠십니까?”
“죄송할 일이 아니야. 당연히 촬영이 먼저지. 잘 하고 오렴.”
“네! 대화 재밌었어요.”
분장을 위해 이안이 떠나자 케이틀린은 랜든에게 물었다.
“어떠셨습니까?”
“촬영장에서 가장 인기가 많다고 했지? 그럴 만하더군. 참 괜찮은 아이야.”
고맙게 생각하는 아역이 마음에 든다니 기쁘지만 성격만 보고 만족하기엔 너무 성급했다.
케이틀린은 카메라가 돌아가는 촬영장을 보며 자신 있게 말했다.
“아마 촬영하시는 걸 보면 더 마음에 드실 겁니다.”
“그래? 그것참 기대되는군.”
잠시 후 분장을 끝낸 이안이 걸어 나왔다.
노아가 되어.
***
철퍽거리는 지하도의 물에는 진한 핏물이 섞여 있었고 좀비들을 막은 바리케이드는 충격으로 들썩거렸다.
“제, 제발 빨리 좀 올라가요.”
횃불을 든 아이들은 지상으로 올라가는 어른들을 재촉했다. 언제 뚫릴지 모르는데 어른들은 구더기처럼 느렸다.
“오, 올라가면 죽을 거야. 죽는다고.”
“여기 있으면 살 줄 알아요? 닥치고 올라가요. 개 같은 소리 하지 말고요.”
겁에 질려 벌벌 떠는 어른을 윽박지른 벤자민은 콱 막힌 맨홀 구멍을 올려봤다.
만삭으로 배가 부른 임산부가 위로 올라가기 위해 버둥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통과가 안 돼?!”
“좀만! 좀만 더하면 올라갈 수 있을 거 같아. 너무 세게 밀지 마요! 그러다가 잘못될 수도 있다고요.”
“씨발, 지금 배 속에 있는 애가 중요해? 이러다가 다 죽게 생겼는데.”
억지로 밀어 올리는 우악스러운 손길에 임산부는 고통 섞인 신음을 애써 참아냈다. 비명이라도 지르는 순간 지상의 좀비들이 몰려들 테니까.
벤자민은 상황을 살피고 입술을 씹었다.
당장이라도 바리케이드를 뚫고 밀려들 거 같은 좀비들과 살기 위해 발악하는 어른들이 똑같이 보였다.
이기적이고 도움이 안 됐다.
초조한 마음을 애써 삼키던 소년에게 바리케이드 쪽에서 달려온 아이가 안 좋은 소식을 전했다.
“리더, 더는 못 버텨. 곧 뚫릴 거 같다고. 이쪽 바리케이드는 아직이야?!”
“…만들어도 저곳보단 부실할 거야. 얼마 못 버티겠지.”
남는 자재로 열심히 2차 방어선을 만들고 있지만 부실했다. 모두가 도망칠 때까지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머리가 터질 것 같았고 리더라는 무게감에 짓뭉개지는 벤자민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좀비 일부를 유인한다면 버틸 수 있을 거 같아? 될 거 같다면 내가 나설게.”
“노아!”
중간에 갈림길이 있다. 그걸 이용해 좀비들을 유인하겠다는 무모한 작전에 놀란 벤자민에게 노아는 어깨를 으쓱였다.
“나만큼 빠른 사람은 없잖아.”
“아무리 빨라도 죽는다고. 알잖아!”
“시끄러워. 난 목소리가 울리는 지하가 낯선 사람이라고. 머리가 아프잖아.”
불평을 늘어놓은 노아는 자신의 팔을 가리켰다.
더러운 천으로 대충 감은 상처에선 피가 줄줄 흘렀다.
“너도 알잖아. 이 정도 상처면 어차피 감염 때문에 죽을걸?”
“약, 약을 찾으면 돼. 항생제라도 찾으면 된다고.”
“벌써 같이 도시를 돌아다녔던 때를 까먹은 거야? 약 같은 건 털린 지 오래잖아. 어떻게 구하려고.”
벤자민은 이를 꽉 깨물었다. 알고 있다. 그래도 대신 죽어달라는 말은 도저히 나오지 않았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벤자민에게 노아는 항상 들고 다니던 봉을 줬다.
“선물이야.”
“노아.”
“그리고 내 말 명심해.”
노아의 증오와 혐오를 담아 위로 올라가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어른들을 바라봤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희생되는 건 언제나 우리 같은 아이였어. 그건 세상이 멀쩡했을 때도 그랬지. 그러니 어른을 너무 믿지 마. 알겠지?”
“…알겠어.”
“그래, 난 가본다.”
빈손에 횃불을 받아든 노아는 휘적휘적 바리케이드로 걸어갔다.
당장이라도 좀비들이 뚫을 것 같은 바리케이드를 몸으로 막고 있는 아이들에게 노아가 말했다.
“야, 리더의 지시야. 당장 돌아오래.”
“그, 그래?! 알겠어!”
무너질 것 같은 바리케이드를 붙잡던 아이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언제 좀비가 쏟아져 나올지 모른다는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으니까.
서둘러 돌아가려는 아이들은 움직이지 않는 노아를 돌아봤다.
“노아! 왜 거기에 있어?!”
“이것도 작전이야. 말단들은 빨리 돌아가. 머뭇거릴 시간이 어디 있어? 당장 안 달려?!”
-캬아아아악!
노아의 호통에 호응하듯 좀비들은 거친 울음을 토해냈고 아이들은 황급히 도망쳤다.
홀로 남은 노아는 바리케이드를 몸으로 막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미쳤지. 그냥 혼자 잘 살 걸 왜 이러고 있냐.”
입 밖으로 내뱉는 후회와 달리 얼굴엔 결연한 의지가 가득했다.
후드득! 쌓아놨던 물건이 무너져내리고 빈틈으로 좀비가 머리를 들이밀었다.
-캬아악!
“캬아아악!”
-캬악?
“뭐, 인마!”
좀비의 이마 한 대를 때린 노아는 앞으로 뛰어갔다. 우르르 바리케이드 무너지며 좀비들이 쏟아져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쪽이라고! 이 탈모 걸린 자식들아!”
-캬악?! 캬아아아악!
지하도에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가 아련하게 흩어졌다.
점점 목소리가 멀어지는 걸 들으며 벤자민은 흐르는 눈물을 거칠게 닦았다.
“…살자. 꼭 살아남자. 알겠지?”
친구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벤자민의 마지막 독백과 함께 침묵이 흘렀고 곧 박수와 휘파람 소리가 쏟아졌다.
“이안! 그동안 수고 많았어!”
“너랑 함께 촬영한 시간은 잊지 못할 거야! 너무 즐거웠어!”
스태프들의 목소리를 들은 이안은 황당하다는 얼굴을 했다.
“이 분위기 뭐에요? 저 이대로 죽어요? 다음 시즌 계약서까지 사인 했는데!”
“야, 이안! 너 아까 내 머리 일부러 때렸지? 대본에도 없던 거잖아.”
“마일즈, 비켜봐요. 지금 좀비 머리를 때리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니까요? 지금 나 심각하다고요.”
“나도 심각해, 이놈아!”
이마를 맞은 좀비, 마일즈는 복수라는 듯이 이안을 옆구리에 끼고 빙빙 돌았다.
역시 롤링 보이라면서 왁자지껄 웃음이 터져 나왔고 겨우 풀려나 어지럼증을 느끼던 이안을 누군가 붙잡아줬다.
“어, 랜든 감독님?”
“연기를 아주 잘 하더구나. 인상적이었단다.”
이번 촬영만 봐도 쇼러너가 자신 있게 말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감정 표현도 좋았지만 그보다 대단한 건 장악력이다. 촬영장의 중심축이 아역이 되어 움직이는 건 경력이 긴 랜든조차 처음 봤다.
“정말요?”
“내가 준비하는 작품이 없다는 게 너무 아쉬울 정도라면 믿겠니?”
“감독님과 함께할 수 있는 작품이 없다니, 그건 저도 아쉽네요.”
진짜 아쉽다. 회귀 전에 좀비 역할을 많이 해본 만큼 랜든의 작품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아쉬움을 삼키며 이안은 운을 떼봤다. 한 가지 확인해볼 게 있다.
“그러고 보니 데이비스 감독님이 이번에 준비하는 영화가 크리처물인 건 아세요? 랜든 감독님처럼 제대로 된 크리처물이라곤 할 수 없지만요.”
“그 인간이 크리처물을 만든다고? 날 그렇게 무시해놓고?”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터트린 랜든은 차라리 잘됐다는 듯이 웃었다.
“잘 됐구나. 어디 한번 내보라고 해라. 아주 제대로 비평을 해줄 테니까.”
와, 이거 망했네.
혹시나 해서 물어봤는데, 역시였다.
‘랜든이 비평을 하면 진짜 곤란한데.’
세상에 완벽한 영화는 없다. 마음먹고 지적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지적하는 사람이 크리처물의 대부 격이라면 여론을 부정적으로 몰고 갈 수 있고.
“좋은 소식 알려줘서 고맙구나. 그 인간 영화가 나오는 날까지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면 되겠어!”
어깨를 자상하게 토닥인 랜든이 떠났고 이안 곁으론 함께 촬영한 아역들이 몰려왔다.
“이안, 이제 촬영장은 안 나오지? 그럼 한동안 못 보는 거야?”
“마지막 촬영 날에는 놀러 올 게. ADR 녹음 때문에 만날 수도 있고.”
“정말이지? 약속이다!”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아이들과 대화를 하던 이안에게 한 아이가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방금 그 할아버지랑 무슨 말을 했어? 엄청 무섭게 웃으면서 가던데.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 같았어.”
“맞아. 마피아 영화에 나올 거 같은 얼굴이야!”
“뭐, 비슷한 얼굴이긴 했지.”
사람 한 명 담그려는 표정.
이안은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보냈다.
-우리 만나요.
당장.
***
“미들턴, 그 자식을 만났다고?”
갑자기 만나자고 해서 무슨 일인가 했는데 기분 나쁜 이야기를 들은 게빈은 얼굴을 구겼다.
“들어보니까 감독님이 잘못하셨던데요. 그러게 솔직하게 못 봤다고 하면 될 걸 아는 척은 왜 하셨어요?”
“그건 나도 잘못했지만, 괜히 아는 척 한 줄 아니?”
랜든 A 미들턴. 그 인간은 이름만 들어도 정말 치가 떨렸다.
게빈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놈은 지겨울 정도로 시사회 초대장을 보냈단다. 몇 번 거절당하면 안 보내는 게 정상인데 눈치도 없는지 계속 보냈지.”
“그렇게 많이 보냈나요?”
“그래! 오죽하면 에이전시에도 한 번 가봐야 할 거 같다는 말을 했겠냐고.”
이건 무슨 창과 방패의 싸움도 아니고.
백 번 넘게 찍는 랜든과 넘어가면 죽는 게빈의 치열한 싸움을 생각하니 웃음이 터져 나왔다.
거절해도 계속 오는 공포물 초대장은 그 자체로 공포였을 거다.
“아무튼, 그렇게 초대장을 보내고 영화는 봤냐고 계속 물어보는데 어떡하니. 봤다고 했지.”
“그렇게 된 거군요.”
양쪽 이야기를 들으니 둘 다 이해가 갔다.
“이번에 감독님 작품 이야기를 살짝 흘리니까, 제대로 비평하시겠다고 하던데요.”
“하, 비평하든 비판을 하든 알아서 하라고 해라. 내가 고작 그런 거로 겁먹을 줄 알아?”
이안은 잠시 고민했다. 이대로 가면 아무리 생각해도 파국이다.
양쪽 다 상처를 입을 테고 평생 서로를 원망하며 날을 세우겠지.
‘좀 싫은데.’
두 감독과 친하게 지내고 싶은 이안은 양쪽에서 눈치 보기 싫었다. 참여가 확실한 게빈 감독 영화의 흥행도 걱정되고.
“단순한 오해 때문에 그렇게 된 거잖아요. 화해하시는 게 어떠세요?”
“화해? 화해를 어떻게 하겠니. 무서워서 못 봤다고 고백이라도 하련?”
“그렇게까지 할 거 있나요. 저랑 같이 미들턴 감독님 작품들을 보고 잘 봤다고 하면 되죠. 어차피 하던 일이잖아요.”
잠시 입을 꾹 다물던 게빈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그렇게 하마. 됐니?”
“네! 좋아요! 그럼 뭐부터 볼까요? 역시 좀비 영화겠죠.”
“…약한 것부터. 약한 것부터 보자꾸나. 응?”
약한 거?
랜든 감독 작품엔 그딴 나약한 건 존재하지 않는다.
***
“오! 내 영화를 그렇게 재밌게 봤을 줄이야. 고맙네. 그동안 내가 오해한 것 같아.”
“크흠, 나도 그땐 미안했네.”
어렵게 이뤄진 두 감독의 만남.
여기까지 들었을 때는 이대로 순조롭게 끝날 줄 알았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크리처물을 만든다고 했던가. 잘 됐군. 화해의 의미로 내가 도와주겠네! 큰 도움이 될 걸세.”
랜든이 이 말을 하기 전까진.
게빈은 입을 떡 벌렸고, 이안은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이게 아닌데.’
역시 인생은 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