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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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함
이안은 자신을 가수라고 주장하는 노숙자와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내가 왜 가수냐고? 음, 재밌는 질문이네. 그럼 넌 어째서 배우냐.”
“그거로 돈을 버니까?”
“엑스트라로 버는 푼돈? 나도 노래로 그 정도는 벌어, 인마. 중요한 건 욕심이야. 넌 좋은 배역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냐?”
“내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나도 똑같아. 좋은 노래를 들으면 욕심이 나거든. 노래에 욕심이 나면 가수, 배역에 욕심이 나면 배우. 쉽지?”
긴 세월에도 바래지지 않는 인상 깊은 대화였다.
열 꼬마 인디언, 더빙곡인 Let’s jump, 라이 이름으로 낸 Any time까지 좋은 성과를 냈지만, 가수라고 생각하지 않은 이유기도 하고.
‘아무리 좋은 곡을 들어도 욕심이 나지 않으니까.’
보통 사람처럼 그저 좋은 곡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지금 나오는 곡을 듣기 전까진 그랬다.
“…좋다.”
욕심이 난다. 부르고 싶다.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않은 낯선 감정이 밀려왔다.
“난 겁쟁이야. 칭찬, 관심, 기대까지. 모든 것이 무섭거든. 난 거리에서 친구를 보면 피해. 전화로 주문? 당연히 못 하지. 넌 아니니?”
I’m a coward로 시작된 노래는 정갈한 피아노 연주 위로 아름다운 아일라의 미성이 부드럽게 어우러졌다.
수줍게 겁쟁이란 걸 고백한 노래는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봤을 두려움을 공감하고 위로해줬고, 상처로 얼룩진 가슴을 따뜻하게 울렸다.
“이안, 울어?”
“…내가 운다고?”
얼굴을 손으로 만지니 정말 물기가 느껴졌다. 눈물을 흘린 사람보다 더 당황한 레이첼은 서둘러 노래를 껐다.
“혹시 노래가 별로라서 그래?”
“아니, 정말 좋아. 꼭 불러보고 싶을 정도로.”
이안의 말에 기뻐하던 그녀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마음 가는 대로 가사를 썼더니 문제가 생겼다.
“라이는 우리 둘인데, 너무 내 이야기만 담은 거 같아. 나랑 달리 이안은 다른 사람 앞에도 잘 나서잖아.”
이안은 쓴웃음을 지었다.
남들 앞에 잘 나선다고? 과거의 자신은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화상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어떻게 그렇게 살겠는가.
그래서 좀비 역할이 좋았다. 모두가 흉측한 얼굴을 하게 되니까.
배우 생활 대부분이 얼굴을 숨기기에만 급급했던 나날이었다.
‘아델리아가 얼굴을 드러내지 않겠냐고 제안하지 않았다면 평생 그렇게 살았겠지.’
눈물이 난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안은 레이첼보다 자신이 겁쟁이 같은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다.
이 노래의 가사는 분명 자신의 삶과 맞닿아 있었다.
“난 이 가사가 마음에 들어. 우리 둘의 이야기를 잘 담았다고 생각하고.”
“정말이야?”
“거짓말을 해서 뭐하겠어. 그럼 다음 곡도 들려줄래? 들을 곡이 많이 남았잖아.”
단둘이 있는 연습실에는 다시 노랫소리가 울렸고 레이첼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안이 노래를 따라서 흥얼거리자, 연습실에는 별 바다가 펼쳐졌다.
***
열 곡을 전부 들었고 만족한 만큼 무거운 숙제를 받은 기분이다.
천재라도 노력 없이 결과를 만들어낼 순 없다. 이 곡들을 작곡하느라 얼마나 노력했을지 가늠이 되는 만큼 소홀히 녹음할 순 없다.
학교, 촬영장, 연습실, 게빈의 사무실.
이 네 곳을 쳇바퀴처럼 돌던 순간 예상외의 방문객이 찾아왔다.
“이안! 그동안 잘 지냈어?!”
“네이선? 그리고 아이작 감독님?”
Sucker punch에서 만난 아역과 그의 할아버지인 아이작이 게빈의 사무실에서 튀어나왔다.
이안 앞에 선 네이선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깜빡였다.
“뭐야, 왜 이렇게 컸어? 나보다 더 커지면 어떡해?”
“키가 많이 컸다고?”
그러고 보니 그런 말을 종종 듣긴 했다.
-이안 좀 봐요. 애들이 더 크기 전에 빨리 다음 시즌을 찍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나마 이안은 얼굴이 앳되잖아. 다른 애들이 더 문제지. 그렇지 않아도 다음 시즌 촬영을 앞당긴다는 이야기가 있더라.
부쩍 성숙해지는 애들 때문에 아역이 사라질 위기에 놓인 invisible children 스태프들이 긴급회의를 여는 것도 봤고.
우연히 만난 팬들에게 드라마로 볼 때보다 크다는 말도 듣곤 했다. 촬영과 방영 사이에 차이가 있는 탓이다.
‘하긴 성장이 빠른 애들하고 비교해도 키 차이가 크게 안 나긴 해.’
가끔 애들 사이에 낀 어른처럼 우뚝 솟은 예외를 제외하면 작은 키가 아니었다.
또래보다 항상 작았던 과거랑은 달랐다. 그때보다 더 잘 먹어서 그런지, 다니엘을 돕고 나서 생긴 몸의 변화 탓인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너도 많이 컸거든? 그리고 축하해. Sucker Punch는 잘 나가더라.”
“그러더라. 나는 못 보는데 말이야.”
그 고통 알지.
시무룩한 네이선을 위로해준 이안은 아이작 감독을 봤고 흠칫 놀랐다.
뉴욕에선 자상했던 그는 화난 얼굴로 서 있었고 이유를 예상하는 건 쉬웠다.
‘저기 구석에 박혀 있는 게빈 감독이 원인이겠지.’
은밀한 프로젝트가 들킨 게 확실하다.
침을 꿀꺽 삼킨 이안은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감독님! 보고 싶었어요.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오셨어요?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이안.”
“네?”
“우리 할 이야기가 있지?”
…이게 안 통하네.
건물을 구경하고 오라며 네이선을 직원과 함께 내보낸 아이작은 싸늘하게 말했다.
“뉴욕에서 둘이 붙어 다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그냥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와서 보니 어처구니가 없더군. 게빈.”
“왜 부르나.”
“내가 자네에게 NC-17과 TV-MA의 개념부터 설명해줘야 하나?”
18세 미만은 보호자가 있어도 관람할 수 없는 등급.
영상물 등급이 선명하게 적힌 DVD를 탁하고 내려놓은 아이작은 시선을 피하는 게빈을 노려봤다.
“아무리 자네보다 겁이 없다고 해도 애랑 같이 이런 걸 보고 있다니. 정신이 있는 건가, 없는 건가!”
“…그런 등급만 본 건 아니야.”
“보긴 봤다는 게 중요하지. 이안의 부모님 앞에서도 그런 말을 할 수 있겠어?”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게빈을 아이작은 몰아세웠다.
“겁쟁이인 걸 숨기는 건 자네 개인 사정이니 신경 쓰지 않았지만,이건 잘못된 거야. 이럴 거면 그냥 공개하지.”
“그건 안 돼, 알잖는가.”
“후우… 그럼 이제 이안의 도움은 받지 말게나. 차라리 내가 도와줄 테니까.”
“…자네가?”
어차피 겁쟁이인 게 알려지기 싫어서 영화를 제작한다는 것까지 들켰다. 아이작에게 도움받아도 상관없다는 뜻이다.
솔깃한 게빈과 달리 이안은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마지막 화도 아직 못 봤는데.’
invisible children의 마지막만 보면 안 되냐고 할 정도로 눈치가 없진 않았다.
물론 게빈에게 희소식만 있던 건 아니었다.
“대신 미들턴 감독에겐 솔직하게 고백하는 게 조건이야.”
“왜!”
“왜긴 왜야. 자네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이고 작품 제작을 돕고 있다면서. 그가 찾아올 때마다 매번 벌벌 떠는 것보단 딱 한 번 용기를 내는 게 낫지.”
반박할 수 없는 말에 게빈은 앓는 소리로 동의했다.
아이작은 이번엔 이안에게 시선을 돌렸다.
“들었지? 이제 게빈의 작품에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단다. 연출자의 부담까지 짊어지기엔 넌 너무 어려.”
연출자와 배우가 짊어지는 무게는 달랐다. 혹여 작품이 실패한다면 아직 어린 이안이 책임을 느끼지 않을까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렇게 된 거 아이작은 품고 있던 말을 전부 하기로 마음먹었다.
“난 솔직히 지금까지 네가 맡은 역할들도 걱정이 된단다. 지금까지 맡은 배역이 뭐였지?”
“좀비 세계의 생존자랑 부촌의 초등학생이요.”
“정확히는 사이코패스에 가까운 초등학생이겠지. 이번에 게빈 영화에 나오는 배역도 평범한 아이는 아닐 테고.”
내정된 캐릭터는 외계인 사냥꾼 중 한 명이다. 설정상 정상인이 아닌 것도 맞고.
이미 모든 걸 알고 묻는 말에 이안은 그저 고개를 주억거렸다.
“성인 배우도 배역에 영향을 받는데 어린 너라면 오죽하겠니.”
“전 괜찮아요. 지금까지 문제도 없었고요.”
“지금은 괜찮겠지. 그런데 나중에도 괜찮을까?”
겉은 초등학생이지만 속은 먹을 만큼 먹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할 수도 없다.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에게 괜한 걱정이라고 일축할 수도 없고.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하길 바라시나요?”
“난 네가 순수하고 평범한 아이 역할도 해봤으면 좋겠단다. 엑스트라를 맡더라도 말이야.”
이안은 시작부터가 비범했다. 평범한 아역들이 경험할 것들을 전부 건너뛰었으니까.
“네 눈에는 안 찰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이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역할이란다. 생각보다 나이 먹는 건 빠르거든.”
“하긴 금방 늙긴 하죠.”
동의하듯 이안이 고개를 주억거리자 게빈은 격한 웃음을 토해냈다.
“으하하, 11살짜리 애가 무슨 늙는 타령을 하고 있어. 네가 그걸 알긴 하니?”
“감독님을 보고 한 말인데요. 너무 빨리 늙으셔서 무서운 것도 못 보시잖아요.”
“끄응, 봤지? 순수한 역할은 절대 안 돼. 쟤 성격부터가 저렇다니까.”
괜히 끼어들었다가 한 방 맞고 투걸거리는 게빈을 아이작은 한심하게 바라봤다.
밖에서처럼 점잔 떠는 모습을 좀 보여줬으면 좋겠다. 어디서 친구라고 말하고 다니 부끄러울 정도니까.
잠시 고민한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감독님 말대로 할게요.”
“그래 주겠니?”
“네!”
이안은 반성했다.
아역 이미지 남을까, 이미지 소모가 생길까. 보통 사람처럼 고민하는 건 자신답지 않았다.
현실적인 문제를 따졌다면 화상 입은 얼굴로 배우를 하겠다고 노력하지도 않았을 거다.
‘어차피 그런 건 앞으로 내가 어떤 연기를 하냐에 따라 충분히 바꿀 수 있어.’
흉측한 얼굴로 살 때와 달리 질리도록 연기를 하고 싶다.
과거로 돌아와 품은 소망을 다시 한번 되새긴 이안은 몸을 일으켰다.
“그럼 이만 일어나볼게요. 지금부터 배역을 찾아봐야겠어요. 네이선에겐 나중에 우리 집으로 놀러 오라고 해주실 수 있나요?”
“물론이지. 손자 녀석도 좋아할 거란다.”
아이작은 흐뭇하게 웃었다.
이안의 보여줄 평범함이 기대됐다.
***
“이안 군, 배역을 찾으러 왔다고요?”
아델리아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제가 듣기론 WBE에 들어갔다고 들었는데요. 에이전시에 이야기를 안 하고, 왜 여기까지 왔어요?”
“당연히 에이전시에는 이야기했죠. 근데 얌전히 기다리는 건 제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아델리아는 턱을 괴고 이안을 바라봤다.
진짜 독특한 아역이다. 일이 바쁜 와중에도 간간이 소식을 찾아볼 정도로 이상하게 관심이 가는 아역이기도 했고.
‘처음 만났을 때부터 친근하게 군 탓인가.’
인상이 차가운 탓인지, 아역에겐 부담되는 캐스팅 디렉터라는 직책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아역들은 항상 자신을 무섭게 여겼다.
이안만이 예외였고.
그러니 되도록 좋은 소식을 전하고 싶었는데.
“어떡하지 네가 출연할 만한 배역이 없어. 괜찮은 배역이 나오면 꼭 알려줄게.”
“엑스트라 자리도 없어요?”
“엑스트라?”
시작부터 회당 3만 달러에 시작한 아역이다. 지금은 몸값이 배로 뛴 상태고.
근데 엑스트라를 찾는다고?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이안을 모니터 앞으로 불렀다.
“얼굴을 간단하게 비추는 엑스트라 자리야 꽤 많지. 잠시만 기다려봐.”
캐스팅 요청이 들어온 것 중에서 아역이 필요한 작품을 쭉 나열했다.
영화, 드라마 할 것 없이 작품명이 쭉 이어졌다.
“너무 많지? 괜찮은 걸 골라줄까?”
“아뇨, 괜찮아요. 이미 정했거든요.”
비싼 아역을 엑스트라로 쓰는 호사를 어디가 누리나 아델리아는 관심 있게 봤고.
이안은 맨 위를 쿡 찍었다.
“골든아워? 의학 드라마로 괜찮긴 하… 어?”
손가락을 주르륵 내렸다.
모니터에 길게 손가락 자국을 남긴 이안이 활짝 웃었다.
“여기서 여기까지 전부 주세요.”
아델리아는 눈을 깜빡거렸다.
아무래도 너무 피곤한 거 같다.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