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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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
완전 사전 제작 드라마인 Beverly Hills Moms는 여름 시즌을 앞두고 막바지 촬영에 들어갔다.
범인을 직접 만난 유진 덕분에 범인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안나는 가짜 알리바이를 만들도록 한 클로에와 오해를 풀었고, 범인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클로에와 컨설턴트의 불륜 관계를 눈치챌 수 있으면서 유진과 안나를 알고 있는 사람.
좁혀져 가는 수사망과 함께 범인의 정체도 드러났다.
“우리 삼촌이 범인일 리 없어.”
다니엘이 연기하는 제임스는 고개를 거칠게 흔들었다.
격한 부정에도 유진은 한 발자국 나섰다.
“네 삼촌이 맞아. 에스더의 과외 선생이니 컨설턴트도 알겠지.”
과외로 집을 오가며 불륜을 눈치챘을 가능성이 크고.
유진은 진실을 외면하는 아이에게 차갑게 말했다.
“그리고 살해당한 학부모들은 전부 우리 반이었어. 네가 말했지? 종종 삼촌에게 상담을 받는다고.”
“…나 때문이라고?”
삼촌이 범인인 것도 모자라서 범행을 도왔다는 사실에 제임스는 공허한 눈빛으로 물었다.
제발 아니라고 해달라는 간절한 시선은 감정이 메마른 유진에게 닿지 않았다.
“그래, 네가 도와준 거야.”
차가운 선고.
시청자조차 제임스에게 동정심을 갖기 힘들 정도로 단호한 말에 아이는 털썩 주저앉았다.
마치 엄동설한에 던져진 사람처럼 벌벌 떠는 모습을 무심하게 유진은 차갑게 바라봤다.
“죄책감을 느낀다면 네 삼촌을 신고해.”
죄책감은커녕 일반적인 감정조차 거의 없는 유진이 하기엔 아이러니한 말.
묘한 분위기를 풍기며 유진이 떠나자, 촬영이 잠시 끊겼다.
“이안, 좋았어! 다니엘, 다음 장면은 잘 알고 있지? 갈등하다가 삼촌에게 물어보기로 하는 내용이야.”
“네! 맡겨 주세요.”
감정 변화가 없어 자칫하면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는 사이코패스의 연기를 이안은 독특한 분위기를 풍겨 살려냈다.
도로시는 이안의 연기를 몇 번이나 봤지만 여전히 신기했다.
‘촬영 중에 SSAT 시험을 진짜 풀어버렸을 때 더 놀랐지만.’
진짜 사립 중학교에 들어갈 법한 성적이 나올 줄은 누가 알았겠냐고.
그날 정말로 촬영장이 뒤집혔다.
황당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태연하게 대본을 보고 있는 이안 옆으로 그녀는 슬쩍 다가가 물었다.
“…너무 편해 보이는데. 내일 있을 촬영 걱정은 안 돼?”
“긴장할 게 뭐 있어. 한두 번 촬영하는 것도 아니고.”
도로시는 심통 난 얼굴을 했다. 아무렇지도 않다고? 내일 촬영에 키스신이 있는데 말도 안 됐다.
혹시나 하고 물었다.
“내일 키스신이 있는 거 알지?”
“당연히 알고 있지. 근데 입술만 살짝 닿는 거잖아. 그 정도면 뽀뽀지.”
그건 그렇지만 이렇게 넘어가려니 자존심이 상했다. 최소한 수줍은 모습이라도 보여줘야 할 거 아닌가.
섬세하지 못한 답변에 부끄러움을 참고 말했다.
“난 처음이란 말이야. 너도잖아.”
“나? 난 처음이 아닌데.”
“…처음이 아니라고?”
도로시는 머리가 띵했다. 분명 쇼러너에겐 이안도 처음이라고 들었는데?
쇼러너가 거짓말을 했나? 아니면 그사이에 했을지도 모른다.
‘억울해.’
이안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자신만 손해 보는 느낌이다. 절대 첫 키스를 이안에게 넘기지 않겠다고 다짐한 도로시는 핸드폰을 꺼냈다.
자신이 좋아하는 라이의 채널에 들어가자 검은 실루엣으로 이뤄진 앨범 표지가 보였다.
쪽쪽쪽
“…뭐해?”
갑자기 핸드폰 화면에 뽀뽀한 도로시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이제 나도 첫 키스가 아니야. 내 처음 상대는 라이거든!”
“…그렇구나.”
“왜! 아쉬워?!”
아쉽긴, 안타까워서 그렇지.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 언젠가 레이첼과 이안, 이 둘이 라이라는 게 밝혀질 텐데 그때 도로시가 어떻게 반응할지 걱정됐다.
‘이불이 남아나질 않을 텐데.’
차라리 지금이라도 알려줄까? 잠시 고민했던 이안은 그 생각을 접었다.
이미 일은 벌어졌고, 진실이 늦게 밝혀지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다.
입을 꾹 다문 이안과 달리 자신의 촬영을 마치고 돌아온 다니엘은 비웃음을 흘렸다.
“그게 무슨 키스야. 애도 아니고. 그리고 그놈의 라이, 라이 지겹지도 않냐.”
“지금 라이를 무시한 거야? 이안도 좋다고 했다고!”
다니엘은 어깨를 으쓱였다.
“네가 호들갑 떠니까 동의해준 거겠지. 여자애들이나 꺅꺅거리며 좋아할 목소리잖아. 실제로 보면 엄청 못생긴 얼굴일… 아악!”
정강이를 맞은 다니엘은 다리를 부여잡았고 도로시는 움켜쥔 주먹을 내밀었다.
“라이는 잘 생겼을 거야.”
“아니, 그걸 어떻게 알아.”
“잘 생겼을 거라고. 그렇지? 이안!”
“…잘 생겼겠지.”
지금 누굴 칭찬하는지도 모르는 그녀는 이안의 인정을 받았다는 게 기쁜지 환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라이 팬들끼리 목소리를 가지고 얼굴을 추측해봤거든? 나이는 스물 정도에 호리호리한 미청년일 거래. 섬세한 감성을 봐선 누나가 있을 거 같고.”
아니야, 다 틀렸어.
도대체 무슨 근거로 나온 추측인지 모르겠다.
“스물이면 열 살 정도 차이니까. 나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아마 힘들걸?”
“왜?!”
진실을 알면 수치심 때문에 죽을 테니까?
빨리 이유를 말하라고 몸을 흔드는 도로시에게 무슨 변명을 해야 할지 고민하던 이안은 핸드폰 진동을 느꼈다.
“잠시만! 전화 왔어. 전화.”
전화 핑계로 도로시를 떼어낸 이안은 상대가 벤이라는 걸 알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 시간이면 촬영하는 걸 아는 만큼 웬만해선 전화를 걸지 않는 상대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 전화를 받았다.
“벤, 무슨 일이에요?”
-우리가 무슨 일이 있어야지 전화를 하는 사이냐. 혹시 지금 촬영 중이니?
“아뇨, 아직 대기 중이에요.”
-오, 괜찮은 타이밍에 전화했구나. 재밌는 소식을 전하려고 전화했지.
“재밌는 소식요? 뭔데요.”
무슨 소식이길래 몸이 달아올라 이렇게 불쑥 전화했는지 궁금했고 벤은 거들먹거리며 답했다.
-데이비스 감독님의 차기작에 나도 캐스팅됐다. 어때?
“어? 정말요?”
올해 말 촬영이니 지금 캐스팅이 진행된다고 해서 이상할 게 없지만 벤이 될 줄은 몰랐다.
-의외인 것처럼 말할 건 또 뭐야. 나 정도면 충분히 들어가고도 남지. 그리고 감독님하고 같은 에이전시기도 하고.
“그래도요. 아무튼, 축하해요.”
-고맙다. Sucker punch 때부터 한 번쯤은 너랑 찍고 싶었는데 잘 됐지.
하긴 종종 투정 부리긴 했다. 먼저 가능성을 알아본 건 자신인데 정작 손발을 맞춰본 적은 없다고.
평소 아역을 피하던 벤이 이런 소리를 한다는 걸 알면 깜짝 놀랄 사람이 많겠지만.
“그래서 무슨 역할인데요.”
-케이든 루카스라고 하던데.
케이든?
스토리보드 일부를 받은 거라 모든 캐릭터를 아는 건 아니지만 그 캐릭터는 알고 있었다.
근데 그 캐릭터를 알면 이렇게 좋아할 수가 없을 텐데.
“무슨 역할인지 알고 있어요?”
-자세히는 몰라. 전사라는 점과 너랑 캐미가 좋은 역할이라는 것만 알려주던데.
“음, 계약서는 찍었죠?”
-당연하지! 계약서에 서명하자마자 너한테 자랑하려고 전화한 거야.
저런. 계약서까지 썼으면 도망칠 방법도 없다.
아직 자신이 맡은 캐릭터도 잘 모르는 그를 위해서 진실을 알려줬다.
“케이든은 저랑 캐미가 좋은 캐릭터가 맞긴 해요. 전사지만, 아이에겐 약하다는 게 특징이죠.”
강강약약.
바람직한 전사의 태도에도 벤은 불길함을 감지했다. 뭔가 잘못됐다.
“그래서 저한테 맞거나 구박받는 장면도 많은 거로 알아요.”
-…농담이지?
“감독님에게 직접 물어보세요. 계약서까지 썼으니까 솔직하게 말해주지 않을까요?”
-기다려봐!
게빈도 근처에 있었는지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다음 장면 들어갈게요. 아역분들도 전부 모여주세요!”
스태프의 말에 이안은 통화를 종료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핸드폰이 재차 울렸지만, 깔끔하게 전원을 껐다.
‘그러게 잘 알아보고 계약을 했어야지.’
이안은 히죽 웃으며 촬영에 들어갔다.
***
“이건 잘못됐어! 전사가 어떻게 애한테 맞을 수가 있어?”
집까지 쳐들어와 투정을 부리는 벤을 한심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럼 제대로 알아보고 하셨어야죠.”
“감독 이름값만 보고 배역 선택하는 게 드문 일이냐? 나 정도면 많이 알아본 거거든. 퍼블리시스트까지 이걸 숨겼을 줄은 몰랐지만.”
배우의 이미지를 관리하는 퍼블리시스트는 영화 선정에도 관여한다. 작품이 끝나고 바뀔 이미지를 계산해야 다음 작품을 선정할 수 있으니까.
벤의 투정에 이안은 어깨를 으쓱였다.
“역시 일을 잘 하네요. 그러게 아역에게 잘하지 그랬어요. 이미지를 바꾸려면 이 정돈 해야 하잖아요.”
“…나도 알고 있거든.”
아역을 싫어하는 거로 너무 유명하다 보니 어지간한 역할로는 이 이미지를 벗기 힘들었다.
업보려니 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후우… 살살 때릴 거지?”
“해봐야 알겠죠? 어설프게 때렸다가 NG가 나면 서로 피곤하잖아요.”
“난 네 연기 실력을 믿고 있단다. 내 마음 알지?”
아직 촬영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약한 소리를 하는 벤을 보며 이안은 웃음을 터트렸다.
저렇게 말해도 막상 촬영에 들어가면 앓는 소리도 안 낼 사람이다.
“레이첼하곤 요즘 어때요?”
“예전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지. 얼마 전에는 자기가 작곡한 곡들이라고 수줍게 들려주더라. 들려주고 바로 도망쳤지만. 무슨 고양이를 상대하는 기분이야.”
“그래서 싫다고요?”
“싫기는! 너무 귀엽다는 뜻이지. 어디서 헛소리하면 혼날 줄 알아.”
벤은 핸드폰을 꺼내더니 라이의 채널에 들어갔다.
“근데 이 채널 반응이 심상치 않더라. 팬을 자처하는 사람도 많고 라디오에서 음원을 사용해도 되냐고 묻기도 했다던데.”
“라디오에서요?”
라디오라는 말에 살짝 놀랐다.
라디오에 음악이 나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의아해할 수 있는데, 미국에서 라디오는 음원의 필수 홍보 매체면서 게이트키퍼기도 하다.
라디오 선곡 이후에 인지도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날 정도고.
“그래 봤자 주류 라디오 방송은 아니야.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큰 효과는 없을걸?”
“그래도 라디오잖아요. 레이첼이 좋아했겠네요.”
“방방 뛰면서 좋아하더라. 방송 날짜가 정해지면 꼭 듣겠다면서.”
자신의 곡이 라디오에 나온다.
어떤 기분일지는 모르겠지만 초등학생 나이에 작곡한 곡이 라디오에 나온다는 건 대단한 일이었다.
흐뭇한 미소를 짓던 이안을 벤이 툭 쳤다.
“조만간 레이블에서 접근할 수도 있어. 돈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는 녀석들이니까. 어떻게 할래?”
“글쎄요. 레이첼의 의견에 따라야죠.”
계약을 맺자고 하면 맺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다.
정체를 드러내진 않을 테니 계약을 하려는 곳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에이전시 문제는 없고?”
“에이, 괜찮아요. 위튜브와 더빙곡 때문에 음악 활동에는 어느 정도 예외 조항을 뒀거든요. 굳이 에이전시에 알릴 필요는 없어요.”
“…전생에 무슨 변호사였냐.”
생각 이상으로 철저한 이안을 보며 벤은 고개를 내저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아이답지 않았던 소년은 어느덧 나이 차를 뛰어넘어 친구처럼 여겨졌다.
벤은 이안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무튼, 영화 촬영 때는 잘 해보자.”
“물론이죠.”
둘은 환하게 웃었다.
***
Beverly Hills Moms의 제작진과 배우 할 것 없이 가장 흥미롭게 생각한 날이 찾아왔다.
“자! 너무 긴장할 거 없어요. 알고 있죠?”
“네, 네!”
도로시는 감독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신의 첫 키스 상대는 라이라고 아무리 되새겨도 막상 촬영 날이 오니까 너무 떨렸다.
그녀는 대본을 펼쳤다.
오늘 촬영 장면은 모든 사건이 정리된 후였다. 살인범은 잡혔지만, 여러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 후였다.
불륜 사실을 무사히 숨긴 클로에는 이사하기로 했고, 에스더와 유진은 훗날 만날 걸 기약하며 짧게 키스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후우, 잘 할 수 있어.”
재차 다짐한 도로시는 통화를 하는 이안에게 다가갔다.
평소처럼 잡담이라도 나누면 긴장이 풀릴 거 같았으니까.
“네네, 로티 잘 말해줘서 고마워요.”
로티?
애칭이 확실했다. 어떤 이름을 줄여서 만든 애칭인지 고민하던 도로시는 어렴풋이 들리는 상대방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내가 한 게 뭐 있다고. 그냥 있는 그대로 너에 대해 말해준 것뿐인데.
“그래도요.”
샬럿 언더힐. 워낙 매체에 많이 나오는 유명인이니 목소리를 못 알아들을 리가 없다.
-허니에게 도움이 됐다니 나야 기쁘지.
도로시는 숨을 헉하고 들이마셨다.
‘허, 허니?’
달콤한 애칭에 머리가 어질어질해진 그녀는 마지막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그럼 나중에 직접 보자. 쪽!
선명한 뽀뽀 소리.
도로시는 이안에게 다가가 단호하게 말했다.
“이안, 아무리 예뻐도 아줌마는 안 돼!”
“…어?”
오해가 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