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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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
이안은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타인을 꾸준히 연구했다.
오랜 노력 끝에 타인의 성향과 생각을 빠르게 파악한다고 자부했는데 과거로 돌아오니 부족한 점을 깨달았다.
‘…도저히 애들 생각은 모르겠어.’
노숙자로 살면서 온갖 인간군상을 만났지만 아이와 인연은 없었다.
끔찍했던 과거의 얼굴로 아이 옆에서 얼쩡거린다? 바로 철창신세였으니까.
몸만 어려진 이안에게 애들은 미지의 영역이었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을 때가 많았다.
지금처럼.
“뭐라고?”
“아무리 예뻐도 아줌마는 안 된다고. 이건 범죄야. 설마 첫 키스 상대도 그 아줌마였어?!”
얘가 큰일 날 소리를 하네?
이안은 아득해지는 정신을 부여잡았다.
“설마 나랑 로티, 아니 샬럿이 그런 관계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허니라고 불렀잖아. 쪽 소리도 냈고.”
“애한테 그 정도 애칭은 쓸 수도 있지. 쪽 소리는 비쥬랑 비슷한 거고.”
“아니야. 분명 사랑의 감정이 느껴졌어.”
아니긴 뭐가 아니야.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빛을 지우지 않는 도로시를 보며 이안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너희 어머니는 어디 계시니?”
“…우리 엄마는 왜?”
“너 요즘 이상한 거 보지? 헛소리하는 걸 보니 확실하네.”
눈을 깜빡인 도로시는 머리를 거칠게 내저었다.
“아, 아닌데?!”
“그건 너희 어머니와 진지하게 상담하고 나서 판단해보자. 드라마나, 로맨스 소설이라면서 이상한 거 보는 거 같거든.”
사춘기가 시작될 나이니 한창 그런 거에 관심이 많을 때긴 했다.
정곡을 찔렀는지 보호자 있는 곳으로 가려는 이안의 팔을 도로시가 붙잡았다.
“미안! 이상한 소리 안 할 게. 안 한다니까?”
간절한 도로시의 바람을 들어준 걸까? 감독이 웃는 낯으로 다가왔다.
“둘이서 벌써 감정을 잡고 있었니? 열의가 아주 대단한데.”
“그렇죠?! 이번 장면은 실수 없이 찍어야 하잖아요.”
“왜? NG 나도 다시 찍으면 되지.”
짓궂은 농담에 도로시는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흔들었고 감독은 귀엽다는 듯이 웃었다.
“아무튼, 이제 곧 촬영이란다. 빨리 오렴.”
“알겠습니다. 바로 갈게요.”
이안이 대신 답하자 도로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엔 그냥 넘어가 준다는 뜻인 걸 눈치챘으니까. 촬영장소로 걸어가면서 소녀는 투덜거렸다.
“라이라면 이렇게 안 했을 텐데.”
“했을걸.”
“아니야. 얼마나 스윗한 사람인데. 여인을 곤란하게 하는 행동은 절대 안 할 거야.”
추측을 넘어 확신에 가까운 말.
도대체 저걸 나중에 어떻게 감당할지 걱정됐다.
이안이 안타깝게 보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도로시는 카메라 앞에 서서 주변을 둘러봤다.
몇 달 동안 촬영장으로 쓴 베벌리힐스의 주택은 모든 가구가 빠져 허전함을 느끼게 했고 정말 끝이라는 걸 실감 나게 했다.
‘아쉽다.’
이사를 위해 비워놓은 집을 보니 정말 촬영이 끝물이라는 게 확 와닿았다. 여느 작품보다 아쉬움이 훨씬 큰 이유는 그만큼 즐거웠기 때문일 거다.
핀잔을 듣고도 언제나 유쾌한 래리와 잘난 척하는 만큼 연기에는 진심인 다니엘 그리고…
‘신기하고, 이상한 이안.’
대본리딩 때부터 또래라는 게 믿기지 않는 연기력을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온갖 소란의 중심지였다.
촬영 중에 풀어버린 SSAT 시험지를 본 하버드 웨스트레이크 스쿨 관계자가 꼭 입학시험을 보라고 뛰어온 적도 있을 정도로.
매몰차게 거절해서 촬영장을 뒤집어놨지만.
촬영이 끝나면 지금처럼 친구들을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니 슬픔이 차올랐다.
“…언젠가 이번처럼 다 같이 촬영할 날이 올까?”
“우리가 배우로 계속 활동하다 보면 그런 날이 올 수도 있겠지만 쉽진 않을 거야.”
기왕이면 그렇다고 말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뾰로통한 표정을 짓는 도로시에게 이안은 부드럽게 말했다.
“친구를 꼭 촬영장에서만 만날 필요는 없잖아? 내가 놀러 가도 좋고, 너희가 놀러 와도 좋지. 안 그래?”
“…그냥 노는 것하곤 기분이 다르잖아, 바보야.”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도로시의 얼굴에선 슬픔이 사라졌다.
이별의 아쉬움과 끝이 아니라는 희망.
두 감정이 오묘하게 섞인 소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내며 촬영이 시작됐다.
“유진, 나에게 할 말이 없어?”
“이사 간 곳에서도 잘 지내.”
“그게 아니야.”
에스더는 유진에게 성큼 다가섰다.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
부끄러움을 느끼는 자신과 달리 유진에겐 작은 흔들림도 느껴지지 않았다.
스치는 바람처럼 가볍게 여기는 느낌이지만 그녀는 상처받지 않았다. 이런 아이인 걸 알고도 좋아했으니까.
“꼭 다시 만나자, 라고 해야지. 우린 반드시 다시 만날 테니까.”
“그래, 다시 만나자.”
“좋아!”
꽃처럼 화사하게 미소를 지은 에스더는 한 발자국 내디뎠다.
살포시 닿는 촉감에 유진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처음으로 보여준 감정의 동요에 소녀는 배시시 웃었다. 첫 키스는 자신에게만 특별하지 않았다.
“꼭 기다리고 있어!”
소녀는 도망치듯 집 밖으로 뛰어나갔고 홀로 남은 유진은 짧게 온기를 나눈 입술을 매만졌다.
침묵에 빠진 공간.
문이 다시 열리며 소녀가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괜찮았어요?”
“물론이지! 원하는 느낌으로 됐어. 아주 풋풋하고 좋은걸?”
감독은 엄지를 치켜들며 도로시를 칭찬했고 소녀는 얼굴을 붉혔다.
긴장할 때는 잘 몰랐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장소에서 첫 키스를 했다니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이안은 숙인 고개를 들지 못하는 소녀에게 농담을 던졌다.
“다음 장면이 장례식에서 만나는 거였나. 시체 연기를 잘 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내 해피엔딩을 망치지 말라고!”
9학년에 하버드 웨스트레이크 학교로 편입한 에스더와 재회하는 게 마지막 장면이다.
저런 끔찍한 비극이 아니라.
“아무튼, NG를 안 내고 끝내서 다행이다. 또 찍으라고 하면 끔찍했을 텐데.”
“응? 무슨 소리야.”
이안은 가까이 다가오는 카메라를 가리키며 말했다.
“인서트도 찍어야지.”
이번엔 카메라 바로 앞에서 해야 한다.
잔인한 현실에 도로시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
-아하하, 너랑 날 그런 사이로 오해했다고?
“좋아할 게 아니라니까요. 잡혀갈 뻔했어요.”
-내가 그렇게 젊게 보인다는데 그 정도는 괜찮아. 정말 귀여운 꼬마네.
유쾌한 듯 웃는 샬럿을 위해 이안은 침묵을 선택했다.
사실 올드 레이디라고 불렸다는 걸 알면 저렇게 웃지 못할 테니까.
-나중에 기회가 되면 얼굴이나 한번 봐야겠다.
“그건 알아서 하세요. 그것보다 모델로 추천해줘서 고마워요.”
-추천도 아니야. 그냥 모델로 사용해도 괜찮을지 물어봤을 뿐이니까. 모델이 문제 일으키면 곤란하잖아. 그래서 나처럼 사고 치는 애는 아니라고 했지.
“비교 대상이 좀 그렇긴 하네요.”
더 불안해졌을 거 같은데.
이안의 농담에 샬럿은 웃음을 터트렸다. 자신이 생각해도 좋은 답변은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 미팅하려고 가는 중이야?
“네, 생각보다 빨리 연락이 왔네요.”
-최대한 빨리 계약하고 싶다고 하긴 했거든. 그래서 그럴 거야.
“왜요?”
-그건 직접 들어. 그쪽 문제라기보단 네 탓이거든.
장난스럽게 웃는 걸 봐선 심각한 문제는 아닐 테고 어차피 말해주지 않을 걸 아는 이안은 굳기 캐묻지 않았다.
어차피 직접 만나면 이유를 알 수 있을 테니까.
미팅 장소로 가니 WBE의 에이전시와 럭셔리 브랜드 관계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자 오스틴은 살짝 눈인사했고, 오늘의 미팅 상대가 다가왔다.
브랜드 특유의 체크무늬가 들어간 옷을 단정하게 소화한 여성이었다.
“프로섬 키즈의 수석 디자이너인 렉시 노리스라고 합니다. 갑작스러운 요청을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안 프라이스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명함을 챙긴 이안은 궁금했던 걸 물었다.
“급하게 약속을 잡은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음, 사실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 프라이스 군을 주목한 지 조금 됐습니다. 근데 최근에 문제가 생겼더군요.”
“문제요?”
렉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마음에 둔 모델의 유명세가 커지는 건 좋은데 다른 것도 같이 커진 게 문제다.
“요즘 따라 키가 부쩍 크셨죠? 그걸 확인하고 모두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릅니다. 이대로는 아동복 모델로 사용할 수 없으니까요.”
“아.”
다니엘을 도와주고 몸의 변화가 생겼다. 그 탓인지 키가 부쩍 자랐고.
invisible children도 이 문제 때문에 엄청 당황했는데 다른 피해자가 여기 있었다.
“천천히 커달라고 부탁할 순 없으니 어쩔 수 없죠. 저희가 서두를 수밖에요.”
잠시 어려움을 토로한 렉시는 이안을 살폈다.
키가 단번에 큰 만큼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왔는데 오길 잘한 거 같았다.
“처음 TV에 나올 때보다 비율이 더 좋아진 거 같네요. 다리가 비율이 확 늘어났어요.”
“그런가요?”
“키가 크면서 바짓단이 많이 짧아졌을걸요.”
그냥 키가 크면서 짧아졌다고 생각했지 비율이 좋아졌다는 생각은 못 했다.
대략적인 비율을 메모한 그녀는 이안의 머리카락을 살폈다.
“작품 활동도 있는데 머리카락을 잘라도 괜찮나요?”
“언제쯤 촬영할 예정인데요?”
“지금 계획은 5월로 잡고 있어요.”
5월이면 공백기라 상관없다.
Beverly Hills Moms 촬영은 끝났고 invisible children 시즌2 촬영도 한 달 정도 남았을 때니까.
“그때면 괜찮을 거 같네요.”
“다행이네요. 사실 그것도 계약 조건에 있었거든요.”
질문을 마친 렉시는 뒤로 물러났다. 디자이너로서 꼭 확인해야 할 건 전부 확인했다. 제대로 된 계약은 전문가들의 영역이다.
두툼한 계약 서류를 두고, WBE와 프로섬 관계자들이 치열하게 조건을 따졌다.
‘모델 계약이라니 신기하네.’
인정받는 배우가 됐더라도 화상 입은 얼굴을 모델로 쓰려는 정신 나간 인간은 미래에도 없었다.
주고받는 조건부터 브랜드에 관해 설명하는 모든 게 신기하고 재밌게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뒤늦게 알았다.
한 명이 안 보인다는 걸.
“오늘은 이 정도로 하죠. 대략적인 조건은 서로 확인했으니까요.”
“좋습니다.”
빨리 모델로 발탁하고 싶은 프로섬에서 조건을 괜찮게 줬는지 WBE 사람들의 표정이 밝았다.
어떤 조건을 받았는지 빨리 설명해주고 싶은 기색이 역력했지만 이안의 관심은 다른 곳으로 향한 상태였다.
상대측을 보내고 돌아온 오스틴에게 바로 물었다.
“오늘 닉이 안 보이네요. 다른 일을 처리하러 갔나요?”
“…닉 말입니까?”
닉의 이름이 나오자 오스틴은 멈칫했다.
분위기만 봐도 다른 일이나, 휴가 같은 걸 간 게 아니었다.
이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불길한 느낌이 가슴을 쿡쿡 찔렀다.
“다시 한번 물어볼게요. 닉이 왜 안 보여요?”
“닉은 이제 회사에 나오지 않습니다.”
“왜요? 인턴에서 정직원으로 고용됐다고 알려준 게 얼마 되지도 않았어요. 혹시 에이전트 일이 힘들다고 그만뒀나요?”
오스틴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계속 숨길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사실 닉은 해고당했습니다.”
“해고당했다고요?”
미국은 고용과 해고가 자유로운 나라긴 했지만.
‘그래도 나랑 친분이 깊다는 걸 알면서도 해고를 했다고?’
둘 중 하나다.
이안을 WBE에서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거나…
“내부 정보를 외부로 유출해서 회사에 타격을 준 게 발각돼서 해고당했습니다.”
크게 사고를 쳤거나.
오스틴의 답변을 들은 이안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실이에요?”
“네, 본인이 자백까지 했습니다. 고소까진 들어가지 않았지만 다시는 이쪽 일을 하긴 힘들 겁니다.”
내부 정보를 유출한 전적이 있는 에이전트를 누가 써주겠는가.
미련을 버리라는 오스틴의 말을 들으니 더 이해가 안 갔다.
“그럴 리가 없어요.”
할리우드의 괴짜 에이전트, 닉 윌슨.
그는 수십 년 뒤에도 현역으로 활동했던 에이전트였다.
이안은 핸드폰을 들었다.
진실을 알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