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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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그림자
열 번 넘게 이어진 통화음이 끊겼고 모바일 보이스 메일을 녹음하겠냐는 안내가 나왔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엔 달라졌다.
두세 번 통화음이 이어지고 안내 멘트가 나왔다.
‘…이 인간이 내 전화를 씹어?’
핸드폰을 껐거나, 차단했거나. 둘 중 하나였다.
만나면 기필코 감자 콘도그 다섯 개를 한 번에 물려주겠다고 다짐한 이안은 고개를 휙 들었다.
살벌한 눈빛에 오스틴은 몸을 움찔했다.
“안 받네요?”
“미안하니까 그렇겠죠.”
“미안할 짓은 처음부터 안 했어야죠. 후우, 일단 무슨 일이었는지 알려주세요.”
오스틴은 살짝 고민했다.
아무리 소속 배우라도 회사 내부 사정이다. 함부로 떠들고 다닐 사항이 아닌데.
‘숨겨도 소용없겠네.’
고집스럽게 다문 입술만 봐도 어떻게든 알아낼 의지가 엿보였다.
진짜 닉은 나가서도 문제를 일으킨다고 한숨을 내쉬곤 솔직하게 말했다.
“이건 절대 밖에서 말하고 다니시면 안 됩니다?”
“당연하죠.”
“이번에 브로큰 타워라는 재난 영화가 제작에 들어갑니다. 두 여배우가 여주인공 자리를 두고 경쟁하게 됐고요.”
배우가 캐스팅을 두고 경쟁하는 건 평범한 일이다. 둘의 관계가 평범하지 않았을 뿐.
“하필 그 둘이 사이가 안 좋기로 유명하다는 게 문제였죠.”
“자존심 싸움이 됐겠네요?”
“그렇습니다. 살벌했죠.”
인기만큼 자존심이 강한 배우들이 외나무다리에서 만났으면 이후 일은 볼 것도 없다.
에이전트까지 전력을 다해야 하는 전쟁이다.
“솔직히 저희가 유리했고 자신도 있었습니다. 근데 정작 계약을 맺은 건 상대였죠. 이해할 수 없어서 조사해봤더니 누군가 우리 계약 조건을 상대에게 알려줬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게 닉인가요?”
“그렇습니다. 본인도 자백했죠.”
닉이 왜 해고됐는지 이해가 됐다. 아니, 오히려 이해가 안 되는 게 생겼다.
“왜 고소를 안 했죠? 이 정도 일을 저질렀으면 고소하는 게 정상이잖아요.”
회사와 배우에게 심각한 피해를 줬다. 이걸 그냥 넘어가 준다면 미국의 소송의 나라라고 불리지도 않았을 거다.
오스틴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자신을 부모처럼 키워준 할아버지의 병원비가 필요해서 그랬다고 합니다. 회사에서도 넘어가 주자는 의견이 나왔고 피해를 본 여배우도 용서해줬죠.”
“…진짜 아픈 가족이 있었어요?”
“네, 암환자랍니다. 그래서 큰돈이 필요했고요.”
미국인 파산 이유 중 60%가 의료비 때문이라고 할 정도로 미국에선 병원비가 엄청났다.
건강보험? 보험회사가 온갖 수단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탓에 보험이 있는데도 파산하는 사람이 수두룩했고.
‘…도움이 필요하면 나한테 말이라도 꺼내보지.’
안다. 아무리 유명인이라도 초등학생에게 도움을 구하는 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
아쉬운 마음을 애써 삼켰다.
“솔직하게 말해주셔 고맙습니다.”
“너무 상처 안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도 닉이 그런 행동을 할 줄은 몰랐으니까요.”
이안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건 과거로 돌아온 자신 때문에 미래가 바뀌었는지 판단하는 거다.
‘암환자 때문에 벌인 일이잖아. 내가 아니었어도 일어날 일이야.’
오히려 다행이다. 이런 큰 사건과 엮이고도 다시 에이전트로 활동했다는 이야기는 지금 알려지지 않은 뒷사정이 있다는 이야기니까.
온갖 추측이 떠올랐지만 확실한 사정은 알아보면 된다.
“그럼 닉의 집이나 환자가 입원한 병원이 어딨는지 알 수 있을까요? 보다시피 전화는 안 받아서요.”
“죄송합니다. 개인정보를 마음대로 알려주는 건 문제가 될 수 있어서요.”
잠시 뜸을 들인 오스틴은 살짝 고개를 숙여 속삭였다.
“대신 그런 걸 잘 알아오는 친구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제 이름을 대면 처음은 공짜로 해줄 겁니다.”
한쪽 눈을 찡긋거리는 그를 보며 이안은 웃었다.
책임은 피하면서 정보를 넘겨주는 솜씨가 제법이었다.
“고마워요.”
“별말씀을. 그럼 프로섬의 계약 조건도 들어보시겠습니까? 저도 제 일을 해야죠.”
“물론이죠.”
이안은 계약 조건을 들으며 닉, 이 인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했다.
일단 콘도그부터 튀겨가야겠다.
***
마음 같아선 닉을 바로 찾아가고 싶었지만 일단 꾹 참았다.
‘어차피 지금 찾아가도 물어보는 말에 진실을 술술 내뱉진 않을 거야.’
그럴 거였으면 회사에 자백하지도 않았을 거고 지금처럼 전화를 무시하지도 않았을 거다.
그에겐 시간이 필요했다. 환자를 보살피는 데 익숙해지고 솔직하게 자신을 털어놓을 수 있는 시간이.
달력은 어느덧 5월로 넘어갔고 이안의 몸은 거칠게 흔들렸다.
“이안! 그동안 잘 지냈어?!”
“요즘 촬영은 어떤 걸 하고 있어? 얼마 전에 엑스트라로 나오는 걸 봤거든. 또 어디서 나와?!”
“…누가 보면 안 만난 지 반년은 된 줄 알겠다. 고작 2개월 지났거든?”
invisible children 시즌2를 위해 모인 자리였다.
시즌1 촬영이 끝난 지 고작 2개월이 지났는데 이렇게 빨리 모인 이유가 있었다.
“어이쿠, 애들 크는 것 좀 봐라. 우리 제목부터 바꿔야 하는 거 아니야?”
“어쩌겠냐. 애들보고 크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스태프들은 애들의 키를 확인하면서 헛웃음을 지었다.
작품 내에선 시간이 얼마 안 흘렀는데 애들은 부쩍 큰 이상한 드라마가 찍힐 판이다.
스태프 옆으로 쇼러너가 쓱 다가왔다.
“그래서 이렇게 빨리 촬영에 들어가는 거잖아. 안 그래?”
“그렇긴 하죠.”
케이틀린은 이안을 중심으로 수다를 떨고 있는 아이들을 봤다.
목표는 올해 안에 시즌 2까지 촬영을 하는 거였다. 그래야 시청자들이 위화감을 적게 느낄 테니까.
‘시즌3에선 애들이 큰 상태라도 괜찮아.’
시즌2에서 라스베이거스에서 탈출한다면 시즌3에선 시간이 꽤 흘렀다고 설정을 잡고 시작하면 된다.
결국, 지금 위기만 잘 넘기면 됐다.
케이틀린은 가볍게 손뼉을 쳐서 시선을 모았다.
“사정은 모두 들었지? 이번 시즌은 6월부터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란다. 이번에도 최대한 세트장에서 찍겠지만 라스베이거스에서 촬영하는 일정도 있단다.”
“라스베이거스래. 가본 적 있어?”
“아니, 근데 엄청 화려한 도시 아니야? 영상으로 본 적은 있어.”
환락의 도시, 라스베이거스.
유명한 관광지지만 애들을 데리고 놀러 가기엔 적합한 곳이 아니다. 길거리만 봐도 헐벗은 여자들이 돌아다니는 곳이니까.
좀비물인데, 당연히 그런 배경을 찍기 위해 가는 건 아니다.
“낮에는 너희가 생각하는 그런 분위기가 전혀 아닐걸. 그리고 중심지를 벗어나면 너희가 사는 곳과 다르지 않아.”
아쉬워하는 아이들을 보며 살짝 웃은 케이틀린은 대본을 아이들에게 나눠줬다.
3화 분량의 대본을 받은 이안은 바로 펼쳐봤다.
‘역시 안 죽긴 하네.’
지하도에서 좀비에게 쫓기던 노아를 의사를 중심으로 뭉친 생존자 집단이 구했다.
이들은 아이들이 좀비에게 감염되지 않고 관심을 덜 받는지 이유를 알아내는 게 목표였다.
‘좀비물에서 종종 나오는 미친 과학자 같은 역할이네.’
실험을 위해서 많은 아이가 필요했고 노아는 미끼였다. 주인공 일행을 잡는데 사용하는 미끼.
당연히 노아는 협력하는 척하면서 이들의 계획을 방해하는 역할을 하고.
“재밌겠네요.”
“그 재미를 살리기 위해선 네 역할이 중요해. 네가 나오는 짧은 시간에 많은 걸 보여줘야 하니까.”
초반의 위기감과 이걸 극복하면서 얻는 카타르시스는 노아에게 달렸다.
‘괜한 걱정이겠지만.’
못 할 거 같다면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맡기지도 않았을 거다. 지난 시즌처럼만 해달라고 바라던 케이틀린은 이안을 따로 불러 마음에 걸리던 것을 물어봤다.
“이야기는 들었단다. 데이비스 감독님의 차기작 촬영에 들어간다면서?”
“네, 10월 정도부터 들어갈 거 같아요.”
“…음, 역시 촬영 기간이 겹치긴 하네.”
할리우드 영화 촬영 기간은 생각보다 짧다.
촬영 날짜가 전부 돈이나 마찬가지니 길어봤자 3개월 내로 촬영을 마무리 짓는다.
이안은 들었던 촬영일정을 떠올려봤다.
‘이번 영화는 2개월 정도 걸릴 거 같다고 했던가.’
게빈 감독에게 들은 바로는 그렇다. 이건 케이틀린도 전해 들었을 테고.
“일단 알았단다. 최대한 그쪽하고 시간을 맞춰보마. 대신 네가 힘든 건 어쩔 수 없어.”
“걱정하지 마세요. 촬영하는 건 하나도 안 힘들거든요.”
다니엘을 도와준 이후로 몸 상태가 좋아져서 체력 회복도 굉장히 빨라졌고.
자신 있게 대답하는 이안의 어깨를 토닥인 케이틀린은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겼다.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자 벤자민 역할의 아역이 다가왔다.
“이안, 오늘 다른 일정 있어? 애들이 같이 놀자고 했는데.”
애들하고 논다고? 없던 일정도 만들어야 할 수준인데 다행히도 정해진 일정이 있다.
“미안, 오늘은 해야 할 일이 있거든.”
“해야 할 일?”
“거짓말쟁이를 잡아야 해.”
처음 만날 때는 그렇게 거짓말쟁이가 아니라고 하더니만 어떤 변명을 하나 들어나 보자.
***
패티가 튀겨지는 냄새와 시끄러운 사람들 목소리가 뒤엉켰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주문을 받던 닉은 시계를 확인했다. 곧 퇴근 시간이다.
끝날 시간만 기다리던 그에게 모자를 꾹 눌러쓴 소년이 다가왔다.
“콘도그 하나 주세요.”
닉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끔 이런 사람들이 있다. 없는 메뉴를 주문하는 사람이.
“미안하지만, 콘도그는 없어. 메뉴판을 보고 주문해줄래?”
“콘도그도 없다니. 아주 기본이 안 된 가게네요. 안 그래요?”
불평을 내뱉은 소년은 모자를 쓱 올렸고 드러난 얼굴은 본 닉은 깜짝 놀랐다.
여기서 볼 거라 생각 못 한 얼굴이 보였다.
“이, 이안?”
“오랜만이네요, 닉. 제 전화는 차단된 거 같아서 직접 찾아와 봤어요.”
장난스러운 미소를 본 닉은 고개를 푹 숙였다.
정말 만나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마지막으로 보여준 얼굴은 부끄럽지 않았으면 했으니까.
“…왜 찾아왔어? 난 네가 생각한 것처럼 좋은 사람이 아닌 걸 알았잖아.”
“전 처음부터 좋은 사람이라고 말 안 했는데요. 거짓말쟁이라고 말했지. 이상한 자백을 한 걸 보니깐 제 말이 맞았네요.”
이 대답을 들은 닉은 입술을 씹었다.
자백까지 했는데 여전히 자신을 믿어줬다. 이 사실에 기쁨과 미안함이 치솟은 닉은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줄래? 이제 곧 끝나니까 그때 이야기하자.”
“바로 나와요. 벌써 부탁해놨거든요. 마침 다음 근무자분이 마침 제 팬이라고 하더라고요.”
뒤를 보니 평소 지각을 엄청나게 하던 다음 근무자가 환하게 손을 흔드는 꼴이 보였다.
치밀한 계획에 헛웃음을 지은 닉은 교대하고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보호자로 따라온 클로이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넨 닉은 이안과 나란히 걸음을 옮겼다.
“이야기는 들었어요. 할아버지 상태는 많이 안 좋으세요?”
“응, 너무 늦게 알았어. 아픈 걸 계속 숨기고 계셨거든. 그깟 병원비가 뭐라고.”
닉은 씁쓸하게 웃었다.
진통제로 버텨왔을 걸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
“지금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고 있는 건 알고 계시고요?”
“아니, 어떻게 말하겠어. 정직원이 됐을 때 그렇게 좋아했는데. 계속 WBE에 다니는 줄 아셔.”
정보 유출로 해고됐다고 어떻게 말하겠는가. 그것도 병원비를 위해서인데.
“그럼 제가 한 번 만나 봬도 괜찮죠? 거짓말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죠.”
“…그래, 널 보시면 엄청 좋아하실 거야.”
닉은 TV에 나오는 이안을 보고 자신과 친분이 있는 배우라고 자랑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양심이 있다면 거절해야겠지만 좋아할 모습이 상상되니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허름한 집 앞에 선 닉은 문을 붙잡고 이안에게 물었다.
“왜 다른 건 안 물어봐? 묻고 싶은 건 따로 있잖아.”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분명히 말해줄 거라고 믿거든요.”
강한 믿음이 느껴지는 말에 닉은 아무 말 없이 집 안을 열었다.
집에선 환자에게서 나는 꿉꿉한 냄새가 났고 닉은 하나뿐인 방의 문을 열었다.
“…닉?”
“손님 왔어요. 제가 맡은 배우인데, 이안 프라이스라고 알고 계시죠?”
“알다마다. 정말 반갑구나.”
침대에 기대앉아 있던 노인은 환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고 이안은 그 손을 맞잡았다.
주름진 손과 마주 잡은 이안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검은 그림자가 세상을 뒤덮었다.
깜깜한 어둠 속으로 밀어 넣어진 이안은 거친 숨과 함께 정신을 차렸다.
노인이 겪었을 미래가 보였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다 알고 있죠?”
닉이 해고된 것도, 자신이 곧 죽는다는 것도.
노인의 입가에는 씁쓸한 미소가 차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