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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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만 보여준다
화상 입은 추악한 외모와 동양인이라는 피부색 그리고 노숙자라는 신분.
이안은 명백한 혐오의 대상이었고 이는 선택 받은 자들의 영역을 넘볼수록 심해졌다.
-촬영장에 거지가 들어왔던데. 뭐? 배우요? 농담하지 마요. 비위 상하게 어떻게 같이 촬영을 해요?!
-나 진짜로 저 사람 분장은 도저히 못 하겠어. 저 얼굴을 어떻게 만져?
-이건 원숭이도 아니고 그냥 괴물인데?
약쟁이 노숙자들과 뒹굴며 살아온 세월이 있는데 저딴 말에 상처받은 건 아니었다.
다만 상처받지 않는다고 끝날 문제도 아니었다.
‘내가 있으면 촬영장에 분란이 생긴다는 뜻이니까.’
이럴 때마다 책임자는 가장 쉬운 방법을 선택했다. 문제를 일으킨 사람보다 이안을 내쫓는 거로.
이런 경험이 쌓일수록 이안은 사람을 파악하고 연기해야 했다.
미약하게나마 호감을 쌓고 분란을 피하고자.
배우로 살아남기 위해 바둥거렸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이안은 웃음을 쉽게 멈추지 못하는 벤을 봤다.
솔직히 말해 성격이 좋은 배우는 아니다.
자신의 능력만큼 타인에게 엄격했고 여자는 밝혔으며 아이에겐 친절하지 않았다.
배우를 동경하게 만든 사람치곤 완벽하고 거리가 먼 인물이지만.
‘굳이 꾸민 성격을 보여줄 필요 없는 사람은 흔치 않지.’
애답지 않은 모습에 불쾌함을 느끼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준다는 점에서 상대하기 편한 상대였다.
겨우 웃음을 그친 벤은 팔짱을 끼며 물었다.
“연기하는 사람끼리라고 말했으니 평범한 꼬맹이처럼 굴고 있는 연기를 말하는 건 아닐 테고. 배우가 되려고?”
“네, 그러려고요.”
“쉽진 않을 텐데… 아니다, 넌 알아서 잘 하겠지.”
단시간에 상황을 파악하고 이용할 줄 아는 영악한 놈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할리우드 꼰대들의 뒤통수를 때려서라도 제 밥그릇은 알아서 챙겨 먹을 놈이니까.
“아무튼, 재밌는 꼬맹이라니까. 평소에도 여기에 있냐?”
“보통은요? 심심하면 찾아와요. 4달러만 내면 이야기 상대를 해줄 테니까요.”
메뉴판에 적힌 콘도그를 콕콕 찌르며 말하는 이안과 시시덕거리던 벤에게 올리버가 다가왔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밌게 해?”
“별거 아니야. 이야기는 잘 끝났어?”
“아니.”
“아니라고?”
벤이 의외라는 듯 말하자 올리버는 어깨를 으쓱였다.
“아이의 얼굴이 나가야 한다니까 곤란해하네. 별문제 없을 거라고 했지만 부모 마음이 원래 그렇잖아. 아, 넌 애가 없어서 모르나.”
“애는 없어도, 나도 부모님은 있거든?”
핀잔을 준 벤은 이안을 보며 실실 웃었다.
“보호자가 거절하면 어쩔 수 없지. 그냥 포기하는 게 어때? 나중에 괜히 잡음 나오는 것보단 낫… 악!”
“아, 죄송해요! 거기에 다리가 있는 줄 몰랐어요. 많이 아프죠?”
사과하는 말과는 달리 ‘알 거 다 아는 인간이 지금 방해하고 있냐?’라고 눈으로 욕하는 이안을 보며 벤은 실실 웃었다.
제발 많이 아팠으면 좋겠다는 생각하며 이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제가 잘 설득하고 올 테니까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요.”
카운터에 있는 부모를 향해 쪼르르 달려가는 이안의 뒷모습을 보던 벤은 올리버를 향해 물었다.
“우리 아역하고 촬영하는 날이 언제였지?”
“예정대로 진행하면 나흘 뒤야. 그건 왜?”
“그때 저 애 좀 초대하자고. 홍보할 때 훈훈한 일화 하나 추가하면 좋잖아? 스태프들 간식으로 여기 콘도그도 주문하고.”
벤의 말에 올리버는 눈살을 찌푸렸다.
고작 콘도그를 돌리는 비용이 비싼 것도 아니고 촬영장에 초대하는 건 오히려 좋은 계획이지만.
이 계획을 세운 사람이 벤이라는 게 꺼림칙했다.
“무슨 꿍꿍이야. 아역도 질색하는 놈이 촬영장에 애를 초대한다는 소리를 하고.”
이야기가 잘 됐는지 환한 미소를 짓는 이안을 힐끔 본 벤은 능청스럽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꿍꿍이는 무슨. 그냥 여기 콘도그가 맛있었거든. 그럼 그렇게 진행하는 거로 안다?”
올리버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한데 주연 배우가 그렇게 하자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해달라는 대로 해줄 수밖에.
***
이안은 의자에 앉아 경쾌하게 발을 흔들었다.
물론 과거로 돌아와 보내는 모든 시간이 행복했지만 지금 느끼는 기쁨은 그 결이 달랐다.
평소보다 콘도그 냄새가 더 진하게 찬 가게에서 클로이는 걱정된다는 듯이 말했다.
“촬영 현장에선 엄마 옆을 벗어나면 안 된다. 뛰는 건 당연히 안 되고.”
“걱정하지 마세요. 위험한 행동은 절대 안 할 테니까요.”
이안은 콩닥거리는 심정을 느꼈다.
경찰이 다녀간 이후로 제대로 된 연기 연습도 못 하고 있었는데 기대하지도 않았던 현장에 가볼 기회가 생겼다.
‘지금의 현장은 미래랑 얼마나 다르려나. 전에 보니까 카메라도 구식이던데.’
배우로 가는 게 아니라서 아쉽긴 해도 이게 어디인가.
오랜만에 현장 냄새를 맡는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차곡차곡 쌓인 콘도그 포장을 보는 사이 딸랑거리며 두 명의 건장한 남성이 들어왔다.
“촬영팀에서 왔습니다. 이게 주문한 건가요?”
“네, 그거 맞아요.”
주문한 개수를 확인한 스태프들은 재빨리 짐을 옮기고 말했다.
“준비 다 끝나셨으면 이동하죠. 출입 허가를 따로 받으면 번거로우니 그냥 우리 차를 타고 가는 게 나을 겁니다.”
“가죠.”
“다녀올게요, 아빠.”
수북하게 콘도그를 튀겨 진이 빠진 딜런은 잘 다녀오라는 듯이 손을 휘저었고 둘은 스태프가 끌고 온 차에 올라탔다.
창밖을 구경하고 있자 앞에 앉은 스태프들이 작게 대화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간단한 일을 조연출인 나한테 시킬 필요가 있냐?”
“감독님이 중요한 손님이라고 하셨잖아요. 신경 쓰신 거겠죠.”
위로하는 말과 달리 귀찮음과 무시가 살짝 묻어나는 어투에 이안은 바로 조연출이 어떤 사람인지 알았다.
‘딱 봐도 political hire(정치적 고용)이네.’
굴러가는 자본금만큼 온갖 이해관계가 뒤엉킨 할리우드는 정치적 요소가 많이 개입되는 편이다.
그중에는 거절할 수 없는 청탁들도 있다 보니 그렇게 고용된 사람들을 political hire라고 불렀다.
인맥으로 뽑힌 만큼 경력이 아예 없는 경우도 많고 불성실한 태도로 문제도 많이 일으키는 편이었다.
한 마디로 신경 써서 좋을 거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둘이 무슨 대화를 나누든지 무시하는 사이 차는 촬영장으로 진입했다.
골목은 LA에서 가장 노숙자가 많다는 스키드 로우(Skid Row)와 비슷하게 꾸며졌다.
바닥에 널브러진 쓰레기 더미와 보도를 점령한 텐트 그리고 벽에 너저분하게 그려진 그래피티까지.
분주하게 움직이는 스태프들과 크레인에 올라가 촬영 중인 모습이 없었다면 촬영 현장으로 안 보일 정도였다.
‘이 정도면 거의 고향 풍경인데.’
전직 노숙자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찬사였다.
촬영 현장을 익숙한 눈으로 훑은 이안과 달리 클로이는 낯선 풍경에 긴장된 기색이 역력했다.
그걸 눈치챈 이안은 클로이의 손을 꽉 붙잡았다.
“사람 엄청 많네요. 가져온 콘도그가 부족한 거 아니에요? 아빠가 힘들까 봐 적게 주문했나 봐요.”
“…그랬을 수도 있겠네. 아빠한테 더 튀기라고 할까?”
“이제 곧 저녁 장사도 있는데요? 살려달라고 할걸요.”
속닥거리며 농담을 주고받자 그녀의 긴장이 풀린 게 보였고 만족한 이안은 손을 끌었다.
“촬영하는 곳에 빨리 가봐요.”
오늘 어떤 장면을 찍고 있을지 기대가 됐다.
스태프 무리를 뚫고 촬영장을 본 이안의 안색이 살짝 굳었다.
“하아, 몇 번째냐.”
“몰라.”
최대한 안 들리게 쑥덕거리는 스태프들의 목소리가 없더라도 무거운 현장의 분위기가 몸을 짓눌렀다.
숨 막힐 것 같은 공기의 중심에 발을 디디자 싸늘한 목소리가 귀를 관통했다.
“대본을 제대로 읽은 건 맞니? 잭은 아버지한테 학대를 당하던 애야. 아무리 주인공을 이상적인 아버지로 본다고 해도 이렇게 거리낌 없이 다가오는 건 말이 안 되잖아.”
“저, 그게…”
더럽게 분장한 아역 앞에서 매서운 말을 토해내는 사람은 벤이었다.
상대가 아이라는 걸 전혀 고려하지 않은 독한 혹평.
저번 만남에서 보인 유쾌한 웃음을 상상할 수 없는 얼굴이 배우로서 그의 본모습이었다.
제대로 답도 못하고 고개만 푹 숙이는 아역을 보며 곤란한 표정을 짓던 올리버는 이안을 발견하고 환하게 웃었다.
짝!
“간식도 왔겠다. 잠시 쉬었다가 하자고! 다들 그렇게 먹어보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잖아.”
올리버의 선언에 곳곳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가져온 콘도그를 먹기 위해 스태프들이 흩어지자 올리버는 민망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죄송합니다. 안 좋은 꼴을 보여줬네요.”
“뭐가 안 좋은 꼴이야. 할 말을 하는 거지. 아, 왔냐.”
방금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가볍게 인사한 벤은 의자에 털썩 앉더니 대본을 쓱 내밀었다.
“촬영을 재개하기 전까지 할 것도 없을 텐데 이거나 좀 읽어볼래? 올리버, 상관없지?”
“어차피 오늘 촬영분이니 상관없어.”
진짜 오늘 분량뿐인지 얇은 종이 더미를 쓱쓱 넘겨봤다.
기억하고 완전 똑같진 않지만 그 차이를 비교하는 맛이 있었다.
얼마나 대본에 집중하고 있었을까? 휴식 시간이 끝났는지 주변에서 부산스러움이 느껴졌고 이안은 고개를 들었다.
확실히 입에 음식이 들어가니 전체적인 분위기가 제법 풀린 게 느껴졌고 올리버와 대화를 나누는 아역의 표정도 비교적 밝아졌다.
“너무 어렵게 생각할 거 없어. 아까보다 조금만 더 주저하는 연기를 해보자.”
“네!”
이번에는 잘 해보겠다는 듯이 굳은 얼굴로 대답하는 아역의 머리 위로 검은 그림자가 졌다.
“고작 우물쭈물하는 것 정도로는 안 될 텐데. 그러지 말고 다른 애의 연기를 보는 건 어때?”
“벤! 갑자기 무슨 헛소리야! 지금 아역을 어떻게 바꿔?”
올리버는 짜증스럽게 일갈했다.
지금 아역을 새로 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고 그렇게 구한 아역이 깐깐한 벤의 입맛에 맞을 리가 없다.
그의 분노에 벤은 뒤쪽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쟤한테 맡겨보는 건 어때? 아역을 완전히 바꾸자는 건 아니고 연기나 한 번 보자고.”
벤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긴 올리버는 머리를 거칠게 긁적였다.
갑자기 아역 연기하는 날에 애 하나를 데려오자고 했을 때부터 의심했어야 했다.
“너 진짜 미쳤냐?”
“한 번 기회 주는 게 뭐 어때서? 꿈이 배우라고 했으니 못 볼 꼴을 보여주진 않을걸. 기본이 얼마나 됐나 궁금도 하고.”
“배우가 꿈이라고?”
벤의 말에 올리버보다 놀란 사람은 따로 있었다.
“꿈이 배우였니?”
“어라, 부모님도 모르셨구나.”
설마 부모님에게도 말을 안 했을 줄 몰랐던 벤은 살짝 놀란 듯했지만, 곧 상관없다는 듯이 이안을 향해 말했다.
“어때 한 번 해볼래? 얼마나 좋은 기회인지 너라면 잘 알고 있지? 잘 하면 영화 아역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벤을 향해 이안은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는 벤을 향해 발을 들어 올렸다.
“악!”
정강이를 부여잡고 고개 숙인 벤을 향해 이안은 싸늘하게 말했다.
“개소리하지 말죠? 날 어떻게 봤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남의 기회를 빼앗는 사람으로 보여요?”
연기한 경력이 있는데 당연히 방금 아역이 보여준 연기보다 잘 할 자신이 있다.
벤이라면 그걸 보고 아역을 바꾸자는 말을 하겠지만.
‘싫어. 내가 지겹게 당한 일을 저 애한테 똑같이 하라고?’
흉측한 얼굴 때문에 배역을 뺏기기 일쑤였다. 촬영장에서 쫓겨난 적도 수두룩하고.
그 끔찍한 경험을 아직 싹도 제대로 못 핀 아역이 경험하게 하라고? 절대 그럴 수 없다.
이안은 눈치만 살피는 아역 앞에 서서 말했다.
“야, 딱 한 번만이다.”
“무, 뭘 말이야?”
“딱 한 번만 보여준다고. 잘 보고 따라 해.”
주변의 시선을 오롯이 받으며 앞으로 나선 이안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오랜만에 느끼는 몸을 휘감는 희열.
돌아오고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연기를 한다.
묶인 족쇄가 풀리는 듯한 자유를 느끼며 이안은 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