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52)
────────────────────────────────────
────────────────────────────────────
예상 밖의 보상
미국은 세계 대중문화의 요람이다.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문학, 음악, 영화, 게임, TV쇼 할 것 없이 압도적인 소프트파워를 가졌다.
그런 만큼 미국에선 유명한 시상식이 많이 열리는데 EGOT로 불리는 각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4개의 시상식에는 특별했다.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를 가진 에미상 후보가 공개되자 기사가 쏟아졌다.
-올해로 62회를 맞이하는 에미상 후보 공개!
-에미상, 유력 후보와 예상치 못한 후보는 누가 있을까?!
-이번 에미상에서 주목할 남우조연상 후보, 11세 이안 프라이스!
쏟아지는 기사와 축하 연락을 받으며 이안은 자신의 착각을 깨달았다.
‘맞다. 아직 2010년이지.’
화상 입은 얼굴로 배우가 되기 위해 노력할 때만 해도 TV는 저무는 매체였고 에미상의 위상이 흔들리는 시기였다.
죽기 전 기준으로 생각하면 옛 영광을 되찾기 위해 바동거리는 초라한 모습만 남았고.
물론 아직 에미상이 영광스러운 자리에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천만 명이 넘는 사람이 시청하는 시기의 위력을 간과했다.
“이야, 파티 초대장이 몇 장이야. 나보다 많이 받는 거 같네. 이걸 다 가려고?”
“미쳤어요? 내가 무슨 로티도 아니고 이걸 어떻게 가요.”
벤에게 핀잔을 주며 간단한 하우스 파티부터 자선 파티까지 종류도 다양한 초대장을 쓱 밀어버렸다.
파티광인 샬럿이 아니면 소화 못 할 수준이다.
“전부 안 갈 거예요.”
“왜? 괜찮은 곳은 몇 개 있던데. 인맥도 넓히고 좋잖아?”
인맥?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서 이런 결정을 내린 게 아니다.
“이상한 기사를 쓰려고 안달 난 기자들이 수두룩한데 괜한 먹잇감을 던져줄 필요는 없잖아요.”
“혹시 후보로 선정된 거로 떠들어대니 상처받은 건 아니지? 신경 쓰지 마. 그런 이슈 없는 시상식이 어디 있냐.”
“상처받긴 누가 받아요.”
이안이 남우조연상 후보로 뽑힌 건 파격적인 결정이고 그만큼 안 좋은 말을 내뱉는 사람도 많았다.
invisible children이 화제의 작품이라도 해도 긴 시간 방영되며 엄청난 사랑을 받는 드라마 팬들이 보기엔 우리 배우는? 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내가 오스카 후보로 선정됐을 때보다 낫지.’
장애인 우대냐는 말을 대놓고 들었을 정도였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닐뿐더러.
-invisible children의 쇼러너 “이안의 후보 선정? 연기력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론.”
-이안의 연기를 직접 본 사람이면 그런 말 못 해. 논란을 일축한 게빈 데이비스 감독.
-이안의 후보 선정에 도움을 줬냐는 기자를 안과로 데려간 샬럿 언더힐.
전직 할리우드의 악동 아니랄까 봐 기행을 벌인 샬럿부터 기꺼이 나서서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많았다.
기사를 보고 밤잠을 설쳤을 정도로 후보로 선정된 것보다 기뻤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안은 부드럽게 웃었다.
“신경 써서 인터뷰해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칠 순 없잖아요. 아, 그러고 보니 아역 배우가 아니라 배우라고 불러야 한다고 한 사람도 있던 거 같은데.”
“…누군지 몰라도 참 잘생긴 사람일 거야. 그렇지?”
“귀가 빨간 사람이던가요.”
짓궂은 놀림에 민망한 표정을 지은 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시끄러워. 빨리 이어서 연습이나 하자고. 대본리딩까지 생각하면 오래 남지도 않았잖아.”
“뭐 좋죠.”
항상 혼자 하던 연기 연습을 같이할 기회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벤과 마주한 이안은 게빈의 신작 에일리언 헌터에서 자신이 맡은 루크를 떠올렸다.
정신 기생형 외계인이 붙어 있는 루크는 이중인격을 연기하는 것과 같았다.
본래 인격인 알파는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외계인에게 바친 부모님 때문에 인간과 외계인 둘 다 극단적으로 혐오했다. 눈을 뜨면 모든 걸 파괴할 정도로.
‘알파가 배신당한 존재라면 베타는 배신할까 걱정되는 존재지.’
외계인을 죽이는 에일리언 헌터에게 루크 몸에 묶여 있는 외계인인 베타는 순수하게 믿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다른 팀원들에게 의심받고 배척당하는 베타를 진심으로 믿는 건 벤이 맡은 케이든뿐이다.
이안은 스케치로 본 괴물의 형태를 현실에 그려냈다.
뻥 뚫린 눈구멍을 대신해 입에서 튀어나온 눈동자가 뒤룩뒤룩 시선을 돌렸다. 자신의 요람에 발을 디딘 침입자를 찾는 모습이다.
위대한 의지에게 세뇌된 사람들이 뛰어다니는 소리를 들으며 케이든은 목소리를 낮췄다.
“베타, 의견은?”
“그냥 다 죽이면 되잖아.”
세뇌돼서 제 몸이 부서질 정도로 힘을 쓸 수 있는 인간이라고 해도 그뿐이다.
외계에서 온 사냥꾼과도 맞상대할 수 있는 케이든이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그들은 세뇌됐을 뿐이야.”
“그렇다고 지은 죄가 사라져? 그리고 분명히 저항할 수 있었다고. 저들이 무죄라면 굶주림을 참지 못해 인간을 먹은 외계인도 용서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들은 괴물… 미안하다.”
말실수를 깨닫고 입을 다물었지만 이미 늦었다.
배신감과 혐오로 얼룩진 표정이 케이든의 심장을 쿡 찔렀다. 입을 꾹 다문 그에게 베타는 차갑게 말했다.
“너희들에게 난 괴물이란 걸 알고 있어. 하지만 너희는 다른 줄 알아? 평범한 인간이 보면 너희도 괴물이야.”
케이든뿐만 아니라 모든 헌터들이 가진 두려움을 헤집는 말이었다.
평범한 사람들과 어우러질 수 없는 인간. 이건 그가 말한 괴물과 다르지 않았다.
고개를 푹 숙인 케이든은 이어지는 말에 고개를 치켜들 수밖에 없었다.
“좋아. 괴물은 괴물끼리 놀아야지. 내겐 인간이라곤 알파만 있으면 되거든.”
…알파라고?
알파 이야기만 들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질색하는 게 베타다. 저렇게 말할 상대가 아니란 뜻이다.
베타의 눈이 파랗게 빛났고 머릿속을 쿡쿡 찌르는 통증이 느껴졌다.
“너도 알파처럼 삼키기 전에 당장 꺼져.”
시끄럽게 울리는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베타의 격한 분노를 위대한 의지가 느꼈다는 뜻이고 케이든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반드시 돌아올게.”
“네가 좋아하는 인간들 생각이나 하시지. 다음에 만나면 적일 테니까.”
사람들을 구할 방법을 찾아봐라.
이 뜻을 눈치챈 케이든은 떠났고 홀로 베타는 자신에게 몰려드는 발소리를 들으며 중얼거렸다.
“역시 난 인간들이 싫어.”
알파는 무섭고.
연기를 마치고 깊게 숨을 내뱉는 이안의 머리를 벤이 거칠게 헤집었다.
“역시 혼자 하는 것보다 너랑 하는 게 훨씬 집중된다니까. 이 정도면 초록 크로마키 앞에서도 열연을 펼칠 수 있을 거 같아.”
“얼마나 잘하나 보자고요.”
CG로 채워질 크로마키 앞에서 몇 주 동안 연기하고도 저런 자신감이 이어질지 궁금했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열심히 해요? 원래 이 정도는 아니었잖아요.”
촬영까지 2달 넘게 남았다. 준비할 시간은 맞지만 마치 내일 당장 촬영이 있는 것처럼 열성적으로 하는 건 그답지 않았다.
이 지적에 벤은 대본을 툭 하고 내려놨다.
“이번 촬영에 좀 재수 없는 인간이 껴 있거든.”
“재수 없는 인간이요?”
“대본리딩 날 보면 알아. 콧대 높은 인간이 하나 있어.”
이안에게 벤이 진지하게 말했다.
“너도 제대로 준비해 와. 너라면 한 방 제대로 먹여줄 수 있을 거 같으니까.”
함께 캐스팅된 배우들을 떠올려보니 대충 누굴 말하는지 알겠다. 왜 저렇게 말하는지도.
‘그 사람이 질풍노도의 시기긴 하지.’
둘 다 모난 구석이 있는 사람이라 벤이 싫어할 만했다.
으르렁거리는 벤과 그 사람을 생각하니 촬영할 날이 제법 기대가 됐다.
“또 그건 제 전문이죠.”
“아주 좋은 자세야. 이 정돈 돼야 에미상 후보지.”
그놈의 에미상은.
고개를 내젓던 이안은 시계를 봤다. 약속 시각이 됐고 핸드폰을 보니 마침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제 에이전트가 도착했다네요.”
“그래? 나 혼자 하고 있을 테니까 신경 쓰지 말고 여유롭게 있다가 와라.”
설렁설렁 손을 흔들곤 대본을 보는 벤을 두고 이안은 현관문을 열었다.
저번보다 표정이 밝아진 오스틴이 보였다.
“잘 왔어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연습실로 사용하기엔 너무 좋은 집이군요. 제가 사는 집보다 좋은 거 같습니다.”
“그럼 연습실 하나 내줄 테니까 들어와 사실래요?”
“하하하, 자칫하면 그래야 할 뻔했죠.”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는 오스틴과 이안은 벤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위층 방으로 들어갔다.
레이첼과 이안을 위한 간식이 마련된 휴식 장소였고 자리에 앉은 오스틴이 먼저 용건을 꺼냈다.
“이번 에미상 사회자인 제리 페레스가 invisible children의 아역들과 특별한 이벤트를 열어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제리 페레스가요?”
미국에서 유명한 코미디언이자 유명 토크쇼 의 진행자였다.
에미상의 사회자가 될 정도니 그 인기는 더 말할 필요도 없고.
“뭘 하고 싶다는데요?”
“그건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결정할 생각이랍니다.”
뭘 할지 모르겠지만 다른 아역들에게 좋은 추억이 될 거 같았다.
“이건 당연히 해야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고민할 필요도 없는 주제였고 이 정도는 굳이 만나서 할 필요도 없었다.
진짜 본론은 이제부터였고 오스틴은 정중하게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늦기 전에 카터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됐죠?”
“아마 징계 조치를 밟고 퇴사하게 될 겁니다. 회사에 손해 끼친 것까지 포함해서 고생 좀 해야 할 테고요.”
“닉은요?”
“물론 닉의 오명도 벗었습니다. 닉을 고소하지 말자고 주장했던 사람이 그라서 많은 사람이 놀랐죠.”
정말 닉을 위해서 그런 주장을 한 게 아니다.
고소를 당한 닉이 모든 사실을 밝힐까 봐 최대한 지켜준 것뿐이지.
오스틴은 카터를 조사하면서 알게 된 사실들을 떠올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런 수작을 부린 게 저뿐만이 아니더군요. 심지어 이미 퇴사한 사람 중에도 있었습니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잖아요.”
“덕분에 찾느라 고생했죠. 만약 사설탐정을 통해 힌트를 주지 않았다면 그를 의심하는 데까진 꽤 걸렸을 겁니다.”
정보를 잘 받아먹는 것도 능력이다.
오스틴이 얼마나 뛰어난 사람인지 경험할 수 있던 것도 이득이고.
“음, 이건 조심스러운 질문이지만 그에게 이상한 기업을 소개해준 것도 혹시 이안 군입니까?”
“어떨 거 같은데요?”
묘한 미소를 머금은 이안을 보고 오스틴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부턴 조심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더러운 일에 엮이실 필요는 없습니다.”
“알고 있어요. 저도 괜히 입방아에 오르내리긴 싫거든요.”
과거로 돌아오기 전이라면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근데 지금은 아니야. 내 일을 자기 일처럼 나서주는 사람이 많으니까.’
되도록 그 사람들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았다.
이안의 대답에 오스틴은 안도했다.
“그러니 다행입니다. 아무튼, 그 일도 감사합니다. 덕분에 생각보다 쉽게 그를 끌어내릴 수 있었습니다.”
“아니요. 그것도 오스틴이 잘한 덕분이에요.”
카터는 멍청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아주 영리한 사람이지.
적어도 지금처럼 대놓고 움직이다가 꼬리 밟힐 행동을 하지 않을 사람이다.
‘우연을 가장해 소개하는 등으로 얼마든지 연예인들을 꾀어낼 수 있었어.’
그가 이런 방식을 사용 못 한 이유는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스틴이 꼬리를 잡고 그를 몰아붙였으니 최대한 빨리 투자를 받았어야 했겠죠.”
원래 계획은 투자도 받고 에이전트 자리도 유지하는 거였겠지만 시작부터 단추가 잘못 꼈다.
이안이 깔아놓은 판이었으니까.
“그렇게 말씀해주면 감사하죠.”
“투자한 연예인들은 어때요?”
“다행히 벤처 기업에 투자하는 거니 부담될 정도로 투자한 사람은 없더군요.”
그럴 거 같긴 했다. 위험한 투자에 거금을 내놓는 야수의 심장은 흔치 않았다.
물론 잘 나가는 스타들에겐 적은 돈이라도 카터를 나락으로 보내기엔 충분한 금액이다.
“쫓아내는 것만 잘 해주세요. 아마 재밌는 일이 더 벌어질 거거든요.”
오스틴은 고개를 내저었다.
닉을 건드렸다는 이유로 이렇게 집요하게 하다니. 그에게 잘해준 과거의 자신을 칭찬할 수밖에 없었다.
대화를 마치고 일어난 그는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 꺼내긴 힘든 주제니 마지막으로 말하겠습니다. 정말 고마웠습니다.”
“별 말씀으…”
오스틴이 내민 손을 맞잡은 이안의 눈을 섬광이 가렸다.
뒤틀린 시야가 돌아오고 TV 화면에는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 카터의 모습이 보였다.
화면에서 시선을 돌리자 초췌한 안색의 닉이 보였다.
“고맙습니다, 선배. 아니, 오스틴 기자님.”
기자? 오스틴이?
이안은 놀랐다.
“저놈을 잡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어.”
오스틴의 목소리를 들은 이안은 마음속에 품고 있던 의문 하나가 떠올랐다.
과연 이전 삶에서 카터를 무너뜨리고 닉의 오명을 벗겨준 사람이 누굴까.
이 궁금증이 이제야 풀렸다.
‘그래, 카터에게 쫓겨난 오스틴이 그를 파헤쳤던 거야.’
품에서 낡은 수첩을 꺼낸 그는 그걸 천천히 넘겼다. 그동안 기자 생활을 하며 적은 수많은 것들이 담겨 있었다.
지난 세월을 더듬듯이 수첩 내용을 훑어보는 그에게 닉이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다시 에이전트로 돌아오실 생각입니까?”
“아니. 앞으로도 나와 너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이 일을 계속할 생각이야.”
입가에 미소가 맺히는 게 보였다.
“그러니 넌 날 대신해 좋은 에이전트가 돼줬으면 좋겠다.”
이 말과 함께 이안은 튕겨 나오듯 현실로 돌아왔다.
“왜 그러십니까?”
“…아무것도 아니에요.”
대답과 달리 심장은 쿵쾅거렸다.
이안은 오스틴이 넘겼던 수첩 내용을 떠올려봤다. 카터와 연관된 범죄뿐만 아니라 많은 정보가 담겨 있었다.
예상 밖의 보상을 얻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