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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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분
대본 리딩은 중요하다.
연출자에겐 촬영에 사용할 분위기와 연기 톤을 정리하는 시간이고 배우들은 처음으로 호흡을 맞춰보는 자리다.
이럴 때 늦다니 데미안의 첫인상은 최악이었다.
‘소문으로 듣긴 했는데 데이비스 감독님 작품에서도 저런다고? 아주 대단하네.’
‘얼마나 잘 하나 보자.’
이안을 빼곤 이곳에 모인 모든 배우는 오디션을 통과했고 그만큼 어중이떠중이는 없었다.
실력만큼 자존심이 강한 배우들의 시선은 데미안이 연기를 시작하자 바뀌었다.
“하, 팀워크? 사냥개인 우리에게 언제 그런 게 있었지? 그 잘난 매뉴얼에 있었나.”
“그래도 기본적인 협력은 해야…”
“못 믿을 것하고 협력은 무슨.”
냉소적인 시선이 이안을 훑고 갔다.
데미안이 연기하는 알렉스는 벤의 케이든과 여러모로 대척점에 선 캐릭터다. 대표적으로 이안의 루크를 대하는 태도에 있었다.
차가운 인상이 더해져서 지독한 불신이 느껴졌다.
‘좋은데?’
연기의 톤은 목소리의 질감에 달렸다.
음의 높낮이, 성량, 목소리의 느낌을 정하는 성대 접촉률. 이 셋을 얼마나 적절하게 조합하는지가 목소리 질감을 정했고.
‘아쉬움이 안 느껴질 정도로 적절해.’
잘하면 얼마나 잘하냐에서 재수 없는 자식으로 배우들의 시선이 바뀐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연기를 못하는 사람보단 성격은 개차반이라도 연기를 잘하는 사람을 고를 이안은 그에게 나쁜 감정은 없지만.
“진짜 이상한 사람이네요.”
“원래 알고 있었는데 진짜 그렇긴 하다.”
그는 연기를 끝내면 뽐내듯이 이쪽을 봤다.
한두 번도 아니고 대본 리딩 내내 저러고 있다.
“무슨 공작새도 아니고.”
“야, 그거 괜찮은 별명인데?”
벤도 화려한 깃털을 펼치고 시선을 끌려는 공작새와 비슷하게 느껴졌는지 바로 키득키득 웃었다.
둘의 속삭임을 들은 사람들도 웃음을 급하게 참는 소리를 냈다.
소란을 눈치챈 게빈은 책상을 툭툭 두들겼다.
“벤, 리딩에 집중하지?”
“왜 저만 불러요. 이안도 있잖아요.”
벤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게빈은 이안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이안, 다음은 네 장면이란다. 잘 할 수 있지?”
“물론이죠!”
“와, 이렇게 대놓고 차별하는 게 어딨어요. 나도 상냥하게 말해주세요.”
“잘 해라. 알지?”
확연한 온도 차.
과장되게 억울해하는 벤의 모습에 사람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둘의 능숙한 분위기 조절로 시작부터 삐걱거렸던 대본 리딩은 순조롭게 진행됐고 사람들은 두 가지를 확인했다.
‘데미안, 재수 없긴 한데 연기는 확실히 잘해.’
‘말이 많아도 왕성하게 작품 활동하는 이유가 있긴 하네.’
아니꼬운 데미안이 실력만큼은 인정받았다면 이안은 나이를 잊게 했다.
‘데이비스 감독님하고 친분이 깊다고 했나. 괜히 감싸고 도는 게 아니었네.’
‘난 저 나이 때 뭐 하고 있었더라.’
거의 드라마만 찍은 이안이 영화 쪽 현장에서도 잘 할지는 봐야겠지만 실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특히 어떤 배우와 호흡을 맞춰도 능숙하게 어우러지는 게 신기하게 다가왔다.
마치 경력이 많이 쌓인 배우와 함께 연기하는 것처럼.
“수고하셨습니다!”
데이비스 감독의 작품인 만큼 모든 배우가 칼을 갈고 왔고 대본 리딩도 깔끔하게 마무리됐다.
흩어지는 배우들과 인사를 나누던 게빈은 이안에게 다가왔다.
“어때? 불편한 건 없었니?”
“네! 재밌었어요.”
3시간 넘게 이어진 만큼 지칠 법도 한데 소년은 눈을 반짝였다.
표정만으로 얼마나 연기를 좋아하는지 느낀 게빈은 이런 아이가 리딩 중에 무슨 이야기 했나 더욱 궁금증이 생겼다.
“근데 아까 리딩 중에 벤과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주고받았니?”
“아, 그거요.”
어차피 엿들은 사람들도 있으니 솔직히 말했다.
“공작새 같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공작새?”
의아함을 담아 되묻는 게빈의 뒤로 사람이 다가왔다.
“감독님.”
“아, 데미안. 수고했네. 촬영 때는 차량 점검도 제대로 하고. 알지?”
리딩장과 달리 촬영장에서 시간은 말 그대로 돈이다.
이번만은 봐주겠다는 경고에 데미안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곳도 아니고 게빈의 촬영장에서 큰 말썽을 일으킬 생각은 없었다.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인사를 한 데미안의 시선이 살짝 자신을 훑고 가자 이안은 깨달았다.
‘들었네.’
눈치가 있다면 공작새가 누굴 의미하는지는 알 거다.
나중에 사과하든가 해야겠다. 밉보일 짓을 했다고 해도 뒷말을 한 꼴이니까.
***
성큼성큼 발을 옮길수록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멀어졌다.
리딩장을 벗어난 데미안은 차에 올라탔고 기다리던 비서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잘하고 오셨습니까?”
묵묵부답.
평소라면 잘난 척을 했을 그가 조용했고 비서는 초조함을 느꼈다.
‘역시 문제가 생겼나.’
그러게 빨리 좀 가자니까.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도 불똥이 튀질 않길 바라던 비서는 뜻밖의 질문을 들었다.
“공작새라고 하면 무슨 생각이 들어?”
“공작새입니까? 화려하고 멋있고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
데미안 입가엔 미소가 번졌다.
“그 꼬맹이 뭘 좀 알아. 공작새라니.”
애써 무시하려고 해도 뛰어난 연기를 보여줬으니 잘 안 됐겠지.
얼마나 연기에 감탄했으면 공작새라는 별명까지 사용했을까.
‘그 꼬맹이 연기도 나름 괜찮았어. 나만큼은 아니어도 벤 정도는 될 거야.’
어린 나이에 벤 수준이라니 장래가 기대됐다.
여러모로 마음에 드는 아이라고 생각하며 데미안은 비서에게 물었다.
“이제 중학교에 들어간 애가 좋아할 만한 걸 한 번 찾아봐.”
“알겠습니다.”
뜬금없는 요청에도 일단 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는 몰라도 기분이 좋다면 됐다.
데미안의 오해가 깊어졌다.
***
아일라의 집이 분주했다.
Boy or Girl이라고 적힌 풍선이 벽에 장식됐고 맛있는 음식이 차려졌다.
아일라와 벤의 직계 가족들과 이안의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레이첼이 설렘을 가득 담아 물었다.
“어느 성별이 나올까? 넌 알고 있어?”
“글쎄. 부모님이 나한테도 안 알려주던데.”
젠더리빌 파티.
아기의 성별을 공개하고 축하하는 파티였다. 여기서 아이의 성별을 아는 사람은 파티를 준비한 이안의 부모님밖에 없었다.
‘엄청 신나 보였지.’
어쩌면 자신들은 경험해보지 못할 일이니 대리만족을 하는 걸지도 모른다.
“성별은 아무래도 괜찮잖아.”
“맞아! 건강하다니까. 그게 제일 중요하지.”
유전자 검사 결과 저위험군으로 나왔다.
물론 어떤 아이가 태어나든 사랑으로 키울 테지만 되도록 건강한 게 좋지 않은가.
이안은 조금 긴장한 것처럼 보이는 벤을 툭 쳤다.
“벤도 성별은 상관없다면서요. 왜 이렇게 긴장했어요?”
“상관은 없어도 중요하긴 하거든. 내가 준비할 것도 달라지잖아. 가르쳐 줄 것도 다르고.”
벤이 교육?
이안은 방긋 웃었다.
“힘들게 가르칠 것도 없죠. 그냥 벤을 보면 알아서 교육이 되잖아요.”
“하긴 내가 좀…”
“훌륭한 반면교사가 이렇게 있는데 뭘 고민해요.”
여자면 벤 같은 남자를 안 만나면 되고 남자면 벤처럼 안 하면 된다.
이걸 차마 부정할 순 없는지 앓는 소리를 낸 벤은 말을 돌렸다.
“중학교 생활은 할 만해?”
“중학교라고 크게 다를 것도 없어요. 애초에 부지도 같고요.”
이안의 학교는 8학년까지 다니는 K-8 학교였고 주로 가는 건물이 달라졌을 뿐이다.
“모든 수업을 귀찮게 옮겨 다니는 거랑 예술 분야를 하나 골라서 1년 동안 듣는 것 정도만 달라졌네요.”
“예술 분야?”
“이안은 밴드를 골랐대요. 신입인데 처음부터 상급 밴드로 시작했고요.”
대신 자랑하는 레이첼의 말에 살짝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벌써 작곡으로 주목받는 그녀에게 비할 바가 아니었다.
파티에 초대받은 사람끼리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모든 준비가 끝났고 레이첼 가족은 작은 풍선 아래 섰다.
“한다?”
“응.”
아일라가 톡하고 풍선을 터트리자 파란 종이 꽃가루가 휘날렸다.
새로운 가족을 축하하듯 휘날리는 꽃가루에 레이첼은 손을 펼치며 환하게 웃었다.
“남동생이야!”
발을 동동 구르며 좋아하는 소녀의 모습은 행복해 보였고 기쁜 표정을 지은 벤은 자상하게 말했다.
“이렇게 기뻐하다니 나도 좋네. 아마 날 닮아서 귀여울 거야.”
“…네?”
눈을 동그랗게 뜬 소녀의 얼굴엔 당혹감이 빠르게 번졌다.
“아무리 그래도 널 닮은 건 좀.”
“벤, 말이 너무 심하네요.”
아일라와 이안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하다못해 벤의 부모님조차.
이안은 벤의 팔을 붙잡았다.
“기독교라고 했죠? 지금 같이 교회에 가요.”
“왜?”
“참회 기도하러 가야죠. 아니, 생각해보니 이상하네. 진짜 그렇게 살아놓고 기독교 맞아요?”
샬럿이 가톨릭 미션스쿨 출신인 것만큼 믿기지 않았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새 생명은 축하를 받았다.
***
“어떻게 촬영 일정을 빨리 끝낼 방법이 없을까?”
“그런 방법이 있으면 제작진이 먼저 썼겠죠.”
임신한 아일라를 두고 촬영을 해야 하니 신경 쓰이는 건 이해하는데.
“아일라가 말했잖아요. 자신을 신경 쓰지 말고 촬영 똑바로 하고 오라고요.”
“당연히 촬영은 제대로 할 거야. 날 못 믿어?”
“믿어요. 믿어. 그래서 임신은 언제 공개하려고요.”
폭탄 같은 비밀은 언제까지 유지할 순 없다.
아일라는 원래 날씬했던 만큼 배가 부풀면 더 티가 날 테니까.
“아마 영화 촬영이 끝나면 하지 않을까? 올해 말쯤 되겠네.”
“연말에 시끌시끌하겠네요.”
“일단 촬영을 무사히 끝내는 게 먼저지. 데미안, 그놈만 문제 안 일으키면 괜찮을 거 같은데 언제쯤 정신을 차리려나.”
분명 정신을 차리긴 했다. 지금과 달리 제법 건실한 배우로 바뀌니까.
중요한 계기는 별다른 접점이 없는 배우라서 바로 기억나지 않았다.
한참을 기억을 뒤적거리던 이안은 원하는 결과를 찾았는데…
‘맞다. 이 영화였지.’
게빈의 감독 생활을 끊어버린 재앙과도 같은 영화.
영화의 실패는 배우에게도 타격을 줬고 벤과 달리 원래 이 영화에 참여했던 데미안은 평소 행실까지 밝혀지며 치명타를 입었다.
겸손을 배울 정도로.
“이게 이렇게 되나.”
사람 하나 고치자고 멀쩡한 영화를 망칠 순 없는 노릇이니 머리를 긁적였다.
‘알아서 하겠지.’
그럴 의리도 없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차는 세트장에 도착했다.
“어서 오렴. 일찍 왔구나?”
“오늘이 첫 촬영이잖아요.”
반겨주는 게빈과 친근하게 인사를 나눈 이안은 촬영장을 봤다.
초록색 크로마키가 한가득 보였다. 관객은 CG로 채워진 화면을 보겠지만, 배우는 상상력으로 빈자리를 채워야 했다.
눈앞에 배우처럼.
“꺄아아, 읍!”
외계인에게 몸을 강탈당하는 여자를 실감 나게 연기하는 배우 앞에는 초록색 쫄쫄이 남자가 있었다.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 남자는 초록색 인형을 입에 쑤셔 넣었다.
진짜 속이 파먹히는 것처럼 여자는 고통스럽게 몸부림쳤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우스꽝스러웠다.
“벌써 쉽지가 않네.”
“잔뜩 하다 보면 익숙해지겠죠. CG가 많이 들어가는 영화잖아요.”
이게 CG가 아니라고? 놀랄 만한 장면이 있는가 하면 이것도 CG라고? 놀랄 장면도 있다.
할리우드에서 초록 크로마키는 절대 멀어질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앞선 장면이 끝나자 게빈은 둘의 어깨를 두들겼다. 한 장면 정도는 조금 당겨서 해도 괜찮을 듯했다.
“그럼 어디 콤비의 실력을 한 번 볼까?”
분장을 마치고 돌아온 둘은 긴 원형 통 안에 섰다.
영화 초반부 헌터의 싸움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장면이다.
걸을 때마다 철퍽거리는 물소리를 들으며 케이든은 목소리를 낮췄다.
“어디 있어?”
“조금만 더 가면 돼. 저기서 꺾어.”
정신에 기생하는 베타의 지시에 케이든은 방향을 틀었고 주저앉은 여성을 발견했다.
고르게 숨을 쉬는 여자를 흔들었다.
“정신 차려봐!”
“으음… 케이든하고 루크?”
“오, 다행히 괜찮구나!”
로즈는 핏물이 흘러가는 방향을 힘겹게 손으로 가리켰다.
“저, 저기. 난 괜찮은데 아리아가.”
“알겠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케이든은 검을 뽑아 발을 내디뎠다.
찰팍이는 발걸음과 함께 검이 휘둘러졌다. 촤악하고 핏물이 튀었다.
길게 베인 상처에서 피를 주르륵 흘리며 로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왜?”
“…원래 로즈는 베타를 부르지 않아. 혐오하니까.”
케이든의 선언과 함께 로즈의 얼굴이 흉측하게 벌어졌고 달려드는 외계인의 머리를 검으로 쪼갰다.
헌터의 싸움이 얼마나 참혹한지 보여주는 장면이었고 깔끔하게 마무리된 장면에 게빈은 손뼉을 쳤다.
“잘했어. 처음부터 괜찮구먼.”
“저 벤 로버츠에요. 이 정도는 힘들 것도 없죠.”
능글맞은 답변에 웃음이 터져 나왔고 이안과 벤이 다음 장면을 위해 움직일 때였다.
쿵!
이안 앞에 무거운 상자 더미가 놓였다.
처음 보는 사람이 내려놓은 상자는 수상했다. 신원이 확실한 사람만 들어올 수 있는 촬영장이 아니라면 의심했을 정도로.
“프라이스 배우님?”
“네?”
“한 번 열어보시죠.”
“내가 대신 열어봐 줄게.”
혹시 이상한 게 들었나 싶어 벤이 대신 상자를 열어줬고 안에는 예상외의 물품이 있었다.
“이건 최신형 게임기입니다. 이건 미식축구 선수들이 사인이 담긴 볼이고 다른 건 잘 팔리는 장난감들입니다.”
딱 봐도 정성 들여 준비한 티가 나는 선물을 내려놓은 남자는 한쪽을 가리켰다.
“저쪽 신사분께서 주신 겁니다.”
고개를 돌리니 차에 걸터앉은 데미안이 손을 흔들었다.
‘그냥 스타병에 걸린 줄 알았는데.’
사실 미친 거였나.
이안은 진심으로 고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