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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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을 위해
오스틴의 수첩을 떠올려봤다.
할리우드에 떠도는 소문들이 빠르게 머릿속을 스쳤다.
‘이상한 소문은 없는데.’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봐도 추잡한 소문과 엮인 건 없었다.
스타병? 이건 어느 정도 이해해줄 여지가 있다. 일반인도 얼굴값 한다는 소리를 듣는데 인기 많은 스타라면 오죽할까.
‘그래, 이 정도면 곱게 미쳤지.’
산타도 아니고 잘 모르는 사이인데 선물을 주는 이유는 도통 모르겠지만.
선물이 의외인 건 벤도 마찬가지였는지 상자를 들여다보며 짧게 휘파람을 불었다.
“이게 다 뭐야? 게임도 종류별로 있고 장난감도 수두룩하네. 들고 가는 것도 일이겠다.”
벤이 상자를 뒤적거리자 데미안은 인상을 팍 찡그리며 다가왔다.
“여전히 매너가 없구나. 주인도 손을 안 댔는데 네가 그걸 왜 만져?”
“틀린 말은 아니네요.”
“야, 넌 누구 편이야.”
여기서 편을 왜 따지나. 누가 애인 줄 모르겠다.
퉁명스러운 표정을 지은 벤은 이안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네가 얠 몰라서 그러는데 이런 거 하나도 안 좋아하는 애야. 크리스마스에도 선물 살 돈으로 기부나 하라고 했다고.”
“…정말이니?”
이안의 시선은 데미안 뒤쪽으로 향했다.
비서라고 밝힌 사람이 간절하게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나도 그렇고 진짜 정상적인 사람이 고생하네.’
벤이 들었으면 ‘네가?’라는 말이 나왔을 생각을 하며 이안은 아이처럼 활짝 웃었다.
“선물 고마워요! 마음에 쏙 들어요!”
“역시 그렇지? 하, 알지도 못하면서.”
비웃음에 울컥한 벤이 한마디 하기 전에 툭 쳤다. 눈치 챙기라며 경고한 이안은 궁금한 걸 물었다.
“근데 갑자기 웬 선물이에요?”
“함께 촬영할 사이니까. 조금 친해질까 해서 가져와 봤지. 별로 부담가질 건 없어 나한테 이건 진짜 별거 아니거든. 근데…”
살짝 머뭇거린 데미안은 말을 이었다.
“저번에 공작새라는 건 날 부른 말이니?”
역시 들었구나.
이안은 변명을 늘어놓기보단 깔끔하게 사과했다.
“죄송해요. 기분 나쁘셨죠?”
쓴소리를 각오했는데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아니, 난 괜찮아. 역시 날 보고 한 말이었구나. 음음.”
혼자 고개를 주억거린 데미안은 촬영 잘 하라면서 떠났고 이안은 눈을 깜빡였다.
인간말종부터 다가가기 부담될 정도로 착한 사람까지 온갖 사람을 봤다. 덕분에 사람 보는 눈은 부족하다고 느낀 적이 없는데.
“와, 진짜 모르겠네.”
지난 경험을 무색하게 만드는 난적을 만났다.
***
에일리언 헌터의 촬영이 본격적으로 들어가자 정신없는 일정이 펼쳐졌다.
올해 말 모든 촬영을 끝내려는 invisible children과 비용 절감을 위해 두 달 동안 밀도 높은 촬영을 하는 영화까지.
두 촬영장을 오가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닌데 학업을 소홀히 할 수도 없다.
“정말 괜찮은 거 맞니? 힘들면 숨기지 말고 말해야 한단다.”
“안 힘들다고? 말하기 힘든 거면 내가 대신 감독님에게 말해줄게. 그러다 쓰러지는 게 더 민폐거든.”
아역이 소화하기 힘든 일정에 주변에선 걱정이 쏟아졌지만.
‘정말 괜찮은데?’
좋아하는 연기를 하는데 버거울 리가 없다. 오히려 나이 때문에 촬영장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 게 아쉬울 따름이지.
괜한 걱정이란 건 일정을 가뿐하게 소화하며 몸으로 증명했고 주변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순조롭게 촬영이 이어지는 동안 정규 시즌을 맞은 드라마들이 하나둘씩 방영됐고 invisible children도 10월 중순에 첫 회가 방영됐다.
-invisible children 시즌2, 378만 시청자로 순조로운 출발!
-호평과 함께 다시 시작된 invisible children. 주목할 점은?
-죽지 않은 노아와 새로운 적의 숨 막히는 동거!
드라마를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니고 시즌 피날레에서 좀비를 유인한 노아가 진짜 죽는다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다만 직접 확인하고 싶은 시청자를 끌어모으긴 충분했고 invisible children은 기대 이상을 보여주며 호평을 받았다.
-노아! 역시 살아있었구나?!
└에미상 후보를 죽였다면 더 놀랐을걸?
└최소한 불구는 될 줄 알았지.
└닥쳐! 노아는 멀쩡하다고!
-제작진이 말했는데 벌써 후반부 촬영 중이래!
└그럼 뭐해? 우리는 매주 한 편만 볼 텐데.
└휴방기와 결방도 있을 거고. 드라마 한두 번 보냐?
└좋아, 나랑 같이 HMO를 털러 갈 사람?
└신고는 나에게 맡겨줘, 브로!
invisible children은 지난 시즌 돌풍을 이어갔고 두 개의 촬영을 소화하는 것도 문제없다.
모든 게 순탄하게 흐르는 상황에서 골머리를 앓게 만드는 문제는 하나였다.
상자를 들고 있는 이안을 보며 벤은 질렸다는 듯이 물었다.
“또? 이번엔 뭔데.”
“야구 카드요. 저번에 우리 둘이 야구 이야기하는 걸 들었나 봐요.”
아들과 함께하기 좋은 운동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걸 들은 듯했다.
다른 배우들도 대화에 참여해서 꽤 떠들썩했던 만큼 일부러 엿들은 건 아닐 거다.
“이번엔 뭐라면서 줬는데?”
“어느 팀을 좋아하는지 몰라서 다 준비했대요.”
“푸하하하, 정성이다. 정성이야.”
이 인간이 지금 웃어?
벤을 노려본 이안은 시선을 돌려 촬영장을 봤다.
“죽을 거면 혼자 죽어. 구출? 자살이겠지.”
냉소적이며 카리스마 있는 알렉스의 말이 무겁게 울렸다.
지적할 부분이 없는 연기였고 촬영장에서 이안과 더불어 NG가 가장 안 나는 사람이다.
‘연기할 때는 확실히 멀쩡한데.’
은혜 갚는 고양이도 아니고 뭘 이렇게 가져다주는지 모르겠다.
웃음을 멈춘 벤은 농담을 던졌다.
“사실 널 엿 먹이려고 선물을 주는 게 아닐까? 사람들이 네가 데미안의 약점을 잡은 거 아니냐고 묻던데.”
“그건 우스갯소리잖아요. 애초에 그 정도로 음험한 성격도 아니고 줄 때마다 얼마나 뿌듯한 표정을 짓는 줄 알아요?”
진짜 그 표정만 아니었어도 진즉에 거절했을 텐데.
“흐음, 공작새 타령은 여전하지?”
“여전하죠. 이젠 차에 공작새 인형도 놨던데요.”
“공작새. 사실 그게 힌트 아닐까?”
뭔 소리를 하나 들어나 보자는 생각이었는데 벤은 제법 그럴듯한 말을 늘어놨다.
“이런 선물 공세가 평범한 건 아니잖아. 분명 너한테 호감을 얻으려고 하는 거라고.”
“그건 보면 알죠.”
처음엔 놀린 게 마음에 안 들어서 선물로 혼내주는 건가 의심도 했지만 몇 번 받아 보니 그건 확실히 아니었다.
“근데 걔가 너에게 잘 보일 이유가 없잖아. 데이비스 감독님 때문에? 캐스팅되기 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아니지.”
“그럼요?”
“공작새면 수컷이잖아. 너랑 친한 여자 때문에 친해지려는 거 아닐까?”
친한 여자?
“아일라?”
“미쳤냐!”
“으어어, 농담. 농담이에요.”
머리를 쥐고 흔드는 벤에게 겨우 벗어났다.
아일라는 확실히 아니다. 임신까진 안 알려졌어도 둘이 좋은 관계라는 건 파파라치를 통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니까.
고민하는 이안에게 벤이 정답을 알려줬다.
“샬럿이 있잖아.”
“아, 로티. 로티요?!”
뜻밖의 이름에 이안은 깜짝 놀랐다.
샬럿이 예쁘게 생기긴 했다. 집안도 좋고 직접 사업을 할 정도로 능력자고.
‘진짜 로티 때문인가?’
조건을 늘어놓으니 확실히 남자가 좋아할 법한 조건은 다 갖췄다. 할리우드 악동이라는 과거만 지운다면.
“어때? 괜찮은 추리지.”
“그럴듯하긴 하네요.”
데미안이 모르는 사이 이상한 오해가 생겼다.
촬영을 기다리며 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이안은 핸드폰이 울리자 자리를 옮겼다.
“닉? 어쩐 일이에요.”
-미안, 촬영 중이었지?
“대기 중이라서 괜찮아요. 무슨 일이에요.”
살짝 머뭇거린 그는 전화를 건 용건을 꺼냈다.
-이런 말 해서 미안한데. 집에 한 번만 더 와줄 수 있을까? 할아버지가 뵙고 싶다네.
죽는 순간에도 손자만을 생각하던 노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가슴을 시큰거리게 만든 환상이 다시 한번 펼쳐지는 듯했고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알았어요. 뵈러 갈게요.”
-정말 고맙다.
약속을 정한 이안은 통화를 종료했다.
‘이별이라.’
자신이 바꾼 미래가 둘의 이별에도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확인할 시간이다.
***
두 번째 찾아온 집 안으로 들어갔다.
좁은 집을 눈으로 훑은 이안은 변화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저번엔 없던 사진이네요.”
“남는 건 사진이잖아. 최대한 많이 찍으려고 노력했지.”
벽에 걸린 액자엔 두 조손이 활짝 웃고 있었다.
병상에 걸터앉은 초췌한 환자의 모습이 무색할 정도로 행복해 보였다.
“좋네요.”
“그렇지?”
환상으로 봤던 기억을 더듬어 봤다. 삭막하고 절망이 흐르던 그때의 기억과는 분위기부터 달랐다.
따뜻함이 감도는 집 풍경을 살피며 방 안으로 들어가자 밝은 미소가 반겨줬다.
“어서 오렴. 바쁜데 무리한 게 아닐까 걱정되는구나.”
“괜한 걱정은 하지 마세요. 몸은 좀 괜찮으세요?”
“나쁘지 않단다.”
이안은 쓴웃음을 지었다.
대답과 달리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 정돈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런 표정 지을 거 없다. 의사도 기적이라고 말할 정도로 잘 버티고 있으니.”
주름진 눈가가 곱게 휘었다.
‘맞는 말이긴 해.’
환상으로 본 노인의 마지막은 여름이었다. 벌써 10월이 넘어가니 기적이란 표현이 과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적은 영원히 이어지는 게 아니다.
말하기 버거운 듯 가쁜 숨과 탁한 눈동자가 이별이 머지않았다는 걸 알려줬다.
“이야기는 들었단다. 전부 네 덕분이라지?”
“미안, 할아버지는 알고 계셔야 할 거 같아서.”
미안할 일은 아니다. 걱정을 덜어낼 수 있다면 얼마든지 이야기해도 좋다.
이안은 방긋 웃었다.
“저에게 고마워하실 필요 없어요. 닉이 그만큼 일을 잘해서 제가 욕심낸 거거든요.”
“그래도 고맙구나. 이 말은 꼭 하고 싶었단다.”
말을 마친 노인은 힘겹게 눈을 깜빡였다.
피곤해 보이는 모습에 둘은 방을 빠져나왔다.
“의사가 뭐래요?”
“길어도 한 달이래.”
한 달.
정해진 끝을 기다리는 마음은 솔직히 모르겠다.
한순간에 가족을 잃은 일부터 자신의 죽음까지. 이안의 이별은 언제나 갑작스럽게 이뤄졌으니까.
‘그래도 똑같이 슬프겠지.’
행복한 이별은 없다. 덜 불행한 이별만 있을 뿐이지.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환상으로 봤을 때보다 둘은 더 나은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도 고맙다는 말은 꼭 하고 싶었어. 네 도움이 아니었다면 마지막까지 거짓말로 할아버지를 속였을 테니까. 죄책감에 웃는 얼굴도 못 보여줬을 거야.”
“그거 알아요? 닉은 거짓말하면 티가 확 나요.”
“내가?”
“네. 아마 할아버지도 안 속았을걸요.”
그저 속앓이했을 뿐이지.
이안은 천천히 집을 눈에 담다가 몸을 돌렸다.
“이만 가볼게요.”
“벌써?”
“급하게 해야 할 일이 생각났거든요.”
그래, 정말 해야 할 일이 생겼다.
***
평소 음악 활동을 하던 지하에서 이안은 소녀에게 사과했다.
“미안, 레이.”
“미안하다고? 뭐가?”
“곡 하나만 내 마음대로 쓸게.”
작곡은 레이첼이, 노래는 자신이.
이안은 이 암묵적인 규칙을 깨버릴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딱 한 번.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예상외의 말을 들은 레이첼은 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안이 작곡을 한다고?”
“응. 해야 할 일이 생겼어.”
작곡을 배웠을 때 기억이 떠올랐다.
-노래는 멀쩡한 거 같은데 왜 이렇게 느낌이 이렇게 없냐.
-소울이 없잖냐! 잘 돌아가는 톱니바퀴가 예술이냐? 네 감정을 담아보라고.
고작 용돈벌이에 불과한 작곡을 두고 시끄럽게 떠들었다.
감정을 담으라고?
‘그걸 어떻게 담아.’
화상보다 더 깊게 남은 이별의 아픔은 도저히 곡에 담을 수 없었다. 지독한 응어리는 세월이 지나도 풀어지지 않았으니까.
아이러니하게도 이 아픔을 받아들인 건 과거로 돌아와 이별의 싹을 잘라낸 후였다.
그러니 지금은 곡을 쓸 수 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 곡을 써볼 거야. 네가 보기엔 부족할지도 몰라. 라이의 팬들에겐 실망감을 안겨줄 수도 있고. 그래서 미리 사과하는 거야.”
평론가들에게도 호평을 받는 레이첼의 곡과 비교하면 투박하고 볼품없을 거다.
겉핥기식으로 배운 수준은 고작 그뿐이니까.
‘그런 곡이라도 둘에게 들려주고 싶어.’
부족한 실력이라도 둘의 이별에 작은 도움을 주고 싶었다.
사과를 들은 레이첼은 은은한 미소를 머금었다.
“우리 둘이 라이잖아. 난 신경 쓰지 마. 어떤 곡이 나와도 행복하게 들을 테니까. 대신 옆에서 듣는 건 괜찮지?”
“물론이지.”
레이첼은 방해되지 않게 한쪽에 앉았고 이안은 기타를 들었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이 되살아났다. 얼기설기 꿰맨 마음으로 살아간 세월이 여섯 개의 현을 타고 흘러나왔다.
쓸쓸하면서도 아련한 연주 위로 부드러운 허밍이 울려 퍼졌다.
투박한 멜로디 위에 얹어진 진한 감정은 부족한 작곡 실력을 덮어냈다.
아픈 세월을 완전히 털어내고 한 발자국 내딛는 소년의 목소리를 들으며 소녀는 두 눈을 감았다.
처음으로 남들처럼 귀에 의지해 음악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