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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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뭐야?
이안은 대본에서 읽은 잭이라는 아이를 떠올렸다.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으며 커온 아이는 자살을 떠올릴 정도로 극한으로 몰려 있었다.
그러다 만나게 된 게 주인공.
벤은 잭이 주인공을 이상적인 아버지로 그린다 말했지만, PTSD에 시달리는 전직 군인에게 이상적인 아버지를 투영한다는 건 말이 안 됐다.
‘정확히는 이상적인 아버지가 됐으면 하는 거지. 살고 싶으니까.’
피 냄새 물씬 풍기는 주인공이 자신을 이 늪에서 꺼내주길 바란 거다.
그러니 잭이 보여줄 망설임은 아버지와 같은 성인 남성에 대한 두려움 탓이 아니다.
헛된 희망이라는 걸 알게 될까 두려운 거지.
“…아저씨, 이것 좀 드실래요?”
주머니에서 꺼낸 사탕을 내미는 이안은 침을 꿀꺽 삼키며 벤의 발치를 내려봤다.
자신이 가진 가장 가치 있는 걸 내민 행동에선 끊어질지 모르는 줄을 붙잡은 듯한 위태로움이 느껴졌다.
“저리 치워. 사탕이라면 질색이야.”
보급품으로 나온 사탕을 갖고 있으면 재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는 미군의 징크스를 직접 경험한 주인공은 사탕을 혐오스럽게 여겼고 매몰차게 거절했다.
이안은 뒷걸음질 쳤다.
얼핏 보면 거절한 주인공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안의 시선은 다른 방향을 향해 있었다.
바닥을 나뒹구는 술병.
친아버지를 상징하는 물건이었고 본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두려움이 느껴졌다.
아이 손에서 포장지가 구겨진 사탕이 덧없이 떨어졌다.
허망하게 돌아가려는 아이의 귓가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후… 진짜 이깟 사탕이 뭐라고 그런 표정을 지어? 자, 먹었다. 됐냐?”
퉁명스러운 대답에 보는 사람도 따뜻하게 느껴질 정도로 화사한 미소가 피었다.
슬쩍 보폭을 맞춰 걸으며 재잘거리던 이안은 대사를 멈추고 멍하니 바라보는 눈동자들을 향해 어깨를 으쓱였다.
“이 정도면 됐죠?”
예상을 뛰어넘는 연기에 스태프들은 휘파람과 함께 손뼉을 쳤다.
-휘이익! 제법인데? 로버츠 씨가 안 보였을 정도야.
-차라리 로버츠 대신 주연으로 쓰는 게 어떨까?
“주연을 바꾸자고 한 사람은 누구야? 방금 먹은 간식값이 누구에게서 나온 줄 알고!”
벤의 장난스러운 외침에 사방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안은 연기를 홀린 듯 바라본 아역에게 다가갔다.
“난 한 번만 보여준다고 했는데 도움이 좀 됐어?”
“어, 어. 고마워.”
진짜 자신이 따라 할 수 있을까 주저하는 기색이 역력한 아역의 어깨를 이안은 친근하게 두들겼다.
“할 수 있을지 의심하지 마. 자신의 연기에 망설임이 생기면 관객은 그걸 귀신같이 알아보거든. 이왕이면 잘하고 싶잖아?”
“응!”
“본인 잘난 맛에 사는 인간에게 한 방 먹여준다고 생각하고 해봐.”
이안의 머리 위로 큼지막한 손이 턱하고 올라왔다.
“방금 그거 나한테 한 말이야?”
“그렇게 들렸다면 그런 거겠죠.”
“진짜 건방진 녀석이라니까.”
벤이 툴툴거렸지만 이안은 신경도 안 썼다.
이 인간에겐 클로이만 없었으면 사탕 대신 중지를 내밀었을 거다.
‘저러니까 진짜 좋아하게 된 사람에게 그렇게 오랫동안 거절당했지.’
그러고 보니 옛날에 인터뷰를 본 대로라면 아마 이맘때쯤부터 좋아했던 거 같은데.
뭐, 결국 잘 됐으니까 어련히 잘할 거다.
이안과 벤이 티격태격하는 사이 다가온 올리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안, 방금 그 장면 찍긴 했는데.”
“잘됐네요. 필요하면 얘한테 보여줘도 돼요.”
이안은 아역의 눈치를 살피며 자신을 보는 올리버의 얼굴에서 욕심을 느꼈다.
지금까지 많이 본 얼굴이다. 연기하는 걸 보고 탐을 내는 한편 걸리는 점이 있는 모습.
차이라면 망설임의 이유가 과거에는 화상 입은 얼굴이었다면 지금은 캐스팅된 아역이라는 것뿐.
이안은 능청스럽게 말했다.
“제 연기 봤죠? 혹시 주변에서 괜찮은 아역을 찾고 있으면 추천이나 해주세요. 기왕이면 부잣집 역할이면 더 좋고요. 제가 나름 귀티나게 생겼잖아요?”
“하, 하하하, 그래. 주변에서 그런 사람이 생기면 꼭 말해주마.”
유쾌하게 대답하면서도 올리버는 혀를 내둘렀다.
왜 벤이 관심을 가진지 알 것 같았다. 완곡하게 거절하는 것만 봐도 저 나잇대 애처럼 안 보였다.
“이안.”
클로이는 씁쓸한 감정을 느끼며 이안을 불렀다.
비록 피로 이어진 건 아니지만 정말 사랑으로 키워왔다고 생각했는데 방금 그 자신감이 흔들렸다.
배우를 꿈꿨는지도 저런 연기를 할 수 있는 것도 몰랐다. 생계를 위해서라는 핑계로 너무 무관심했던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클로이의 표정을 본 이안은 등에서 땀이 흘렀다.
판이 깔렸다고 너무 흥분했는지 뒷일 생각 안 하고 저질러버렸다.
“엄마가 아무것도 몰라서 미안해. 설마 네가 꿈을 위해 그렇게 노력하고 있을 줄 몰랐단다.”
“아니에요. 모르는 게 당연해요. 그냥 집에서 혼자 연습했을 뿐인걸요! 아무도 몰랐어요!”
벤을 비롯한 사람은 지금 뭘 들은 건지, 귀를 의심했다.
‘혼자 연습했다고?’
연기가 입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독학한다고 될 게 아니다.
지금 무슨 미친 소리를 들은 건지 놀라는 사람들과 달리 클로이가 꽂힌 부분은 다른 곳이었다.
“혼자? 네가 혼자 있는 시간이 어디 있다고?”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나서 연습했어요.”
“이른 아침에 연습했다고?”
클로이의 머릿속에 순간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일주일도 안 된 일이기에 아직도 기억에 선명한 일이다.
“…너 혹시 그 날도 연습했었니?”
이안은 흠칫 놀랐다.
경찰이 찾아온 학대 사건의 경위를 들켜버렸다.
“사랑해요, 엄마.”
그러니 살려주시죠.
***
소파에 눈치 보며 앉아 있는 이안을 향해 클로이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얌전한 거 같으면서 한 번씩 이렇게 큰 사고를 친다니깐.”
“푸흐흐흐, 뭐 재밌잖아. 도대체 얼마나 실감 나게 잘 했으면 경찰이 찾아왔겠어.”
딜런은 웃음을 터트리며 캔맥주를 들이켰다.
화가 났던 그때 일은 이유를 알게 되니 그저 웃음만 나왔다.
“어휴, 옆집 사람들한테 상황을 설명하는데 얼마나 민망하던지. 그쪽도 그냥 좋게 넘어가니 다행이지.”
“나중에 먹을 거나 좀 챙겨주자고. 그보다 그렇게 우리 아들이 촬영장에서 연기를 잘 했어?”
“나는 잘 모르겠는데 호들갑 떠는 걸 봐선 그런가 봐.”
진짜 독학이 맞냐고 말도 안 된다며 의심과 감탄을 터트리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클로이는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들이 인정받았는데 싫어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아쉽네. 나도 봤어야 했는데.”
“감독님이 찍은 걸 나중에 보내준다고 했으니 그때 보면 되지. 나도 주변 사람들 때문에 확실하게 못 봤거든.”
“그래? 기왕이면 빨리 보내줬으면 좋겠는데. 곧 있을 어머니 생신 때 같이 보고 싶거든.”
미국의 고아는 대체로 보육원이 아닌 위탁가정으로 보내지는데 고아였던 클로이가 위탁가정으로 맡겨진 곳이 딜런의 집이었다.
그러니 딜런의 부모님은 클로이에게도 부모님이었고 매번 생일 때마다 가게를 쉬고 찾아뵙는 게 연례행사였다.
둘의 대화를 듣던 이안은 손에 땀이 차는 걸 느꼈다.
‘벌써 그날이 왔어.’
매일 밤 끔찍하게 괴롭혔던 악몽이 되살아났다.
찢어질 듯한 부모님의 비명이 갑자기 들리는 이명과 뒤엉켰고 존재하지 않는 열기가 얼굴을 짓뭉개는 듯했다.
평범한 아이가 절대 바꿀 수 없는 결론이란 걸 알면서도 후회의 눈물로 썩어 문드러진 세월이 되살아났다.
“…안, 이안! 아들! 정신 좀 차려봐!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야!”
줄줄 흐르는 식은땀을 훑어내는 손길에 이안은 정신을 차렸다.
걱정 가득한 얼굴이 보였다. 악몽으로나마 볼 수 있던 얼굴이다.
이안의 작은 손바닥이 두 사람 얼굴에 닿았다.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는 절대 거짓이 아니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조금 피곤했나 봐요.”
딜런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혹시 할머니 집에 가기 싫은 거면 올해는 집에 있을래?”
순간 나약한 생각이 들었다. 꾀병을 부려서라도 그날 안 가는 게 최선이 아닐까?
그럼 적어도 부모님은 살릴 수 있을 테고…
부모님의 얼굴을 올려본 이안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래 봤자, 후회하는 사람이 바뀔 뿐이다.
마음을 다잡은 이안은 방긋 웃었다.
“아뇨, 꼭 같이 가요.”
“괜찮겠니?”
“좋은 날이잖아요. 그런 날 제가 빠질 수 있나요.”
그래, 좋은 날이 될 수 있도록 뭐든지 할 생각이다.
이안의 검은 눈동자는 서슬 퍼렇게 빛났다.
***
팔랑거리며 프로필이 넘어갔다.
신경 써서 찍은 사진과 알차게 채워진 내용에는 간절함이 묻어났지만 그걸 넘기는 손길은 무심했다.
매몰차게 프로필을 넘기는 여인의 방에 노크가 울렸다.
“들어오지 마.”
여인의 말을 청개구리가 들었는지 방문이 벌컥 열렸다.
“에디.”
애칭을 부르며 들어오는 동생을 보고 아델리나는 얼굴을 구겼다. 동생이긴 하지만 역시 여러모로 마음에 안 들었다.
한숨을 내쉰 아델리나는 몸을 돌렸다.
“내가 일 할 때는 들어오지 말라고 했지? 그리고 너. 일은 똑바로 하고 있어?”
“당연하지. 시키는 일은 잘 하고 있다고.”
“아버지가 꽂아줬는데 그때처럼 개판 치고 쫓겨나기만 해봐. 창밖으로 던져버릴 거야.”
예쁜 외모에 어울리지 않은 험악한 말에 동생은 질린 얼굴을 했다.
벌써 괜히 들어왔나 싶지만 도저히 안 보여주고 배길 수 없는 걸 갖고 왔기에 당당하게 말했다.
“하, 내가 네 일에 도움 될 만한 걸 갖고 왔는데 이딴 식으로 나올 거야?”
“너는 방해만 안 되면 다행이지. 후우, 그래서 뭔데? 시답지 않은 거면 혼날 줄 알아.”
까딱이는 손 위에 핸드폰을 올려놓은 동생은 겨우 가져온 영상을 틀었다.
작은 화면에는 어떤 촬영 현장이 나왔다.
“여기 이 애 보이지. 얘가 어떤 애냐면.”
“쉿.”
입을 막은 아델리나는 나오는 영상을 뚫어지게 봤다.
길지 않은 영상이고 어떤 상황을 연기하고 있는지 앞뒤 상황도 몰랐다.
‘복장도 이상하고.’
주변 분위기와 맞지 않은 깔끔한 옷차림은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였다. 하지만 아델리아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벤 로버츠와 어우러지네? 그것도 아역이 말이야.”
캐스팅 디렉터로 일하는 그녀이기에 벤 로버츠가 아역과 얼마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인지 잘 알았다.
아역도 자신과 같은 배우로 생각하고 비슷한 수준을 요구하는 탓이다.
그 괴팍한 성격에 합을 맞출 수 있는 아역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인데 갑자기 새로운 존재가 튀어나왔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어느 작품에 나왔던 애야?”
“관심이 생겼나 봐? 응?”
아델리아는 거들먹거리는 동생의 입을 열기 위해 전통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아악!”
“좋은 말로 할 때 아는 대로 불어.”
“좋은 말로 한다며! 왜 때리는데?!”
“말은 좋게 하고 있잖아.”
진짜 악마도 울고 갈 인성이다.
속으로 투덜거린 남성은 아는 사실만 뱉어냈다.
“얘는 배우가 아니야. 그냥 우연히 로버츠 씨랑 인연이 생겨서 촬영에 구경 온 애지.”
“그냥 구경 온 애라고? 이런 연기를 하는데?”
“그래, 그리고 정식으로 연기를 배운 것도 아니래. 독학이라던데?”
“무슨 미친 소리를 하고 있어? 그냥 하는 말이겠지.”
애가 할 법한 연기가 아닌데 독학은 무슨.
신빙성 없는 독학 타령은 솔직히 상관없었다. 독학이든, 잘난 선생에게 배웠든 중요한 건 하나였다.
연기를 잘 한다는 것.
“얘 이름이 뭐야?”
“이름이 뭐더라.”
잠시 고민하던 그는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이안 프라이스. 그런 이름이었어.”
이안이 할리우드에 발을 내디딘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