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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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성기
팍팍하고 힘든 촬영장에서 적절한 유머는 가뭄의 단비와 같다.
수많은 촬영을 하며 직접 체감한 경험으론 그랬다.
“으하하하, 진짜 돌았냐고!”
“큭큭, 에미상 후보가 되려면 이쯤 되야 하는구만.”
스태프 손에 붙잡혀 간지럽힘을 당했던 이안은 뚱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배우들은 힘겹게 웃음을 참았고 벤은 숨이 넘어갈 것처럼 웃음을 터트리고 있으니까.
“농담할 수도 있지 뭘 그렇게 웃어요.”
진짜 실책이다.
폭발에 정신이 팔려서 비하인드 영상을 찍고 있는 걸 몰랐다.
-와, 우리의 소중한 촬영비가 터지고 있어요.
스태프가 준 영상을 다시 돌려보며 배우들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시 들어도 신기하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데이비스 감독님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구나.”
“투자자도 저런 말은 못 할걸.”
게빈은 특수 효과와 촬영 기술로는 알아주는 감독이고 그중 최고로 치는 건 폭발 장면이다.
그런 사람에게 저런 말을 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보통 용기로 할 수 있는 농담이 아니다.
“이안.”
대본 리딩에 일부러 늦게 왔던 데미안조차 감탄한 얼굴로 말했다.
“너에게 아기 공작새의 칭호를 내려주마.”
…필요 없어.
차에 있는 공작새 인형부터 던져버리든가 해야지.
‘그래, 신기하긴 했어.’
이안은 폐허가 된 세트장을 봤다.
소방차들은 흙먼지가 휘날리는 현장에 물을 뿌리고 있었고 폭음에 놀란 주민이 신고했는지 스태프와 대화 중인 경찰도 보였다.
블록버스터 영화 촬영에선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낯설었다.
‘상업성이 강한 블록버스터와는 얼굴부터 거리가 있었으니까.’
애초에 본격적으로 배우로 인정받는 시기에는 CG로 어지간한 장면은 다 해결했으니 더욱 이런 촬영을 볼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조금 들떴던 거 같다.
“이야, 돌아가면 딜런에게도 꼭 말해줘야겠다.”
“적당히 해요, 이 인간아.”
진짜 다른 사람도 아니고 벤에게 놀림거리를 주는 실수를 하다니 말이다.
벤과 티격태격하는 사이 무섭게 생긴 남자가 쓰윽 다가왔다.
“마커스?”
브레이커가 붙여준 경호원이었고 그는 촬영 중에 맡겨놓은 핸드폰을 내밀었다.
“닉 윌슨이라는 사람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닉이요?”
불길함을 느꼈고 핸드폰을 본 순간 한숨을 내쉬었다.
부고 문자였다.
***
가족의 죽음이 얼마나 무거운지 이안은 너무 잘 알았다.
영원한 이별을 고한 가족과 다시 만나는 행운은 보통 사람이라면 갖지 못한다는 사실도.
“준비 다 끝났니.”
“네.”
정장을 다시 확인한 이안은 차에 올라타 신문을 들었다.
누런 신문 속 부고란을 펼쳤다. 낯선 사람들 속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브루노 윌슨, 79세.
먼저 떠난 아들 찰스의 아버지이자 닉의 할아버지. 아버지이자 친구 같았던 그는 언제나 사랑으로 품어줬다. 그가 남긴 추억을 소중히 품고 영원히 사랑하고 그리워할 것이다. 닉 윌슨.
미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부고 기사 읽으며 쓴웃음이 지어졌다.
‘나보다 낫네.’
부고 기사는커녕 병원에 입원해 있어서 장례식도 제대로 못 치렀다. 어쩌면 그래서 더 가족을 잊지 못했을지도 모르고.
“이안, 닉하고 통화해봤다고 했지. 어땠니?”
“생각보다 괜찮아 보였어요. 전화로는요.”
“그나마 다행이구나.”
운전하는 딜런은 룸미러로 이안을 살피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내 밑에서 일하는 걸 봤더니 쉽게 무너질 사람은 아니더라.”
“알고 있어요. 강한 사람이죠.”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결국에는 에이전트로 성공한 사람이 어떻게 약한 사람이겠는가.
다만 잘 극복할 거라고 믿는 것과 걱정이 되는 건 다른 일이다.
조심스럽게 장례식장에 들어갔는데…
“왔어?”
안에선 경쾌한 재즈가 흘러나왔고 사람들은 벽에 걸린 사진들을 보며 웃고 떠들었다.
손을 가볍게 흔드는 닉에게 당황한 얼굴로 다가갔다.
“이게 다 뭐에요?”
“할아버지가 이렇게 해달라고 하셨거든. 특히 평소에 좋아하던 재즈를 어찌나 틀어놓으라고 하던지. 유언장에도 남겨놓으셨더라.”
못 말린다고 고개를 흔든 닉은 이안의 등을 살짝 밀었다.
“안 그래도 네가 꼭 이곳에 와줬으면 하셨거든. 한 번 둘러볼래?”
벽에는 사진을 올려봤다.
미니풀장에서 노는 어린 닉에게 환한 미소를 짓는 젊은 브루노가 보였고, 그 옆 사진에는 풀장이 터질 거 같은 닉과 휠체어를 탄 늙은 브루노가 웃고 있었다.
걸음을 옮겼다.
나무에 올라간 어린 닉과 올라간 나무가 힘들어 보이는 다 큰 닉의 사진.
어린 시절 추억의 사진과 같은 구도로 찍은 사진들이 줄지어 전시되어 있었다.
“최근에 연락 못 해서 미안해. 노래를 받고 이 사진들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거든. 어때?”
“이웃들이 이상하게 봤겠는데요.”
“선배가 에이전트는 뻔뻔해야 한다고 하더라.”
“참 좋은 것도 가르쳐주네요.”
어쩐지 미래에서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더라니.
오스틴이 괜히 기자로 전직한 게 아니었다.
“이안 군, 일찍 오셨군요.”
악마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때마침 들어오는 오스틴을 삐딱하게 바라봤다.
“오스틴, 선배가 됐으면 좋은 걸 가르쳐야죠. 닉이 이러다 고객에게도 거짓말을 하겠어요.”
“네?”
“내가 언제 그랬어?!”
미래에?
장난스럽게 티격태격하던 닉은 시계를 힐끔 봤다. 곧 추모식이 열릴 시간이고 이안에게 부탁했다.
“있다가 뷰잉도 해줄 수 있니?”
추모식 끝에 고인의 얼굴을 보며 마지막으로 인사하는 걸 뷰잉이라고 불렀다.
참여가 자유인 이걸 굳이 부탁하는 이유가 있을 거다.
“얼마든지요.”
“고마워.”
본격적으로 시작된 추모식은 일반적인 형태를 따랐다.
추모식은 목사님의 말씀으로 시작됐고 유일한 가족인 닉이 앞에 나와 성경 구절과 함께 브루노와의 추억을 이야기했다.
사람들이 찬송가가 나오길 기다릴 때 불이 꺼지고 정면에 화면이 켜졌다.
-우리를 위해 노래를 보내준 라이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주름진 노인의 손으로 쓰인 글자가 떠올랐다.
잔잔한 반주 위로 고운 미성이 흘러나왔다.
-I’m preparing to say goodbye~
화면 속에는 장례식에 걸린 사진을 찍는 두 사람의 일상이 펼쳐졌다.
미니풀장을 입으로 불다가 나가떨어지는 닉과 그걸 한심한 눈으로 보며 펌프를 던져주는 브루노의 모습 등.
행복해 보였던 둘은 영상이 흘러갈수록 달라졌다.
거칠게 기침을 토해내고 통증에 몸부림치던 브루노는 어느덧 침대에 누워 있었다.
노래가 마지막으로 접어들자 화면 속 둘은 얼굴을 맞대고 마지막 사진을 찍었다.
웃는 얼굴로.
“감사합니다. 덕분에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닉의 감사 인사와 함께 곳곳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추모식의 마지막 단계인 뷰잉이 시작되자 대부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걸 생각하면 이례적인 일이고 이안은 부모님과 관 앞에 선 닉에게 다가갔다.
“영상 잘 봤어요.”
“고마워.”
언젠가 이 둘처럼 아름답게 이별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짧게 인사한 이안은 뷰잉을 위해 까치발을 들고 관 안을 들여봤고.
“…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미소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듯이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브루노는 새하얀 정장을 입고 있었다.
미래의 닉처럼.
놀란 이안은 살짝 휘청거리며 관의 끝을 살짝 붙잡았고 새하얀 섬광이 눈을 덮었다.
이미 수차례 반복된 일에 눈을 깜빡이자 브루노의 사진이 담긴 액자가 보였다.
“할아버지, 저 다시 에이전트로 일해요.”
추억을 더듬듯 닉은 액자를 쓸어내렸다.
“제가 거짓말했던 거 모르셨죠? 이제부터 좋은 에이전트가 될 테니까 용서해주면 안 될까요?”
거짓말이 들켰다는 걸 꿈에도 모르는 닉은 애써 미소를 지었다.
“사실 또 사과할 일이 있어요. 막상 일하려니까 마땅한 옷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평소 할아버지가 좋아하던 옷 좀 빌리려고요.”
…역시 닉은 거짓말쟁이다.
오른쪽 귓불을 만지작거리는 걸 보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닉이 거울에 비쳤다.
새하얀 정장을 입은 모습. 할리우드의 괴짜 에이전트 닉의 젊은 시절이었다.
빙글 도는 시야와 함께 환상에서 벗어난 이안은 짧게 숨을 내뱉었다.
“괜찮아?”
“네, 살짝 삐끗했어요. 특이하게 하얀 정장이네요?”
“할아버지가 엄청 아끼셨던 옷이야. 어울리지?”
“네, 엄청 어울리네요.”
방긋 웃으며 대답한 이안은 살짝 아쉬움을 느꼈다.
잠잘 때도 하얀 정장을 입는다는 할리우드의 괴짜는 이젠 볼 수 없을 테니까.
그렇게 모든 추모식이 끝이 났다.
***
-으아아악! 아파아파아파!
살점을 뜯는 소리와 함께 아이의 비명이 울렸다.
한 생명을 앗아간 좀비들은 고개를 치켜들고 거칠게 울부짖었다.
-캬야아악!
숨이 막힐 듯한 적의.
위태롭게 옥상에 올라선 의사는 거칠게 소리쳤다.
“왜! 왜 날 배신했지?! 구원해주겠다고 말했잖아! 어른이 되길 벌벌 떨면서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닥쳐.”
냉소를 머금은 노아는 시체가 된 소년을 벌목도로 가리켰다.
“네가 말한 구원이 저거야. 좀비조차 되지 못하고 썩어 문드러지는 죽음 말이야.”
“아니야! 아니라고!”
격렬하게 부정하는 의사를 향해 검을 집어 던졌다.
검이 베고 지나간 다리에선 피가 터져 나왔고 바닥에 떨어진 칼은 요란한 쇳소리를 냈다.
소음과 진한 피 냄새를 맡은 좀비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고 노아는 벤자민이 놔준 나무다리에 발을 얹었다.
“구원? 너나 실컷 받아. 우리는 여길 떠날 테니.”
-으아아악!
옆 건물로 노아가 넘어가자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컷!”
감독의 선언과 함께 이안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목을 만졌고 벤자민 아역인 레오가 다가와 물었다.
“괜찮아?”
“미안, 요즘 따라 목이 이상하네. 감기에 걸린 것도 아닌데.”
“에이, 몸 상태가 안 좋은 건 누구나 있는 일인걸. 그동안 이안이 이상했던 거지.”
목 상태가 안 좋아서 몇 번이나 NG를 냈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흐뭇하게 웃었다.
“이안도 사람이긴 하네. 나는 연기하는 로봇인 줄 알았잖아.”
“로봇도 저것보단 많이 오류가 날걸.”
이런 평가를 했을 정도면 말 다 했다.
하지만 주변 반응과 달리 이안은 고민이 깊었다.
‘차라리 몸이 아픈 거면 이해를 하지. 목만 아픈 건 이상하잖아.’
조만간 병원이라도 가보는 게 나을 듯했다.
몸조리 잘 하라는 인사를 받고 차에 올라탄 이안은 돌아가는 길에 전화를 받았다.
“닉?”
-오고 있어?
“가고 있는데 굳이 올 필요 있어요? 어차피 그거 수익금은 전부 기부할 거라니까요.”
미국 장례식에선 조의금 대신 기부하는 게 기본적인 장례 문화였다.
닉이 장례식에 틀었던 영상을 위튜브에 올린다고 했을 때 수익금을 전부 기부한다고 한 이유도 이 때문이고.
-고마워서 한 번 보려는 거야. 왜 불편해?
“불편할 건 없죠.”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닉이다. 만남을 거절할 이유가 없다.
집에 도착하니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닉이 반갑게 손을 들었고 이안은 눈을 깜빡였다.
“닉, 옷이 왜 그래요?”
“이상해?”
닉이 새하얀 정장을 입고 있다. 다신 못 본다고 생각한 모습이다.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인 그는 변명하듯 말을 이었다.
“아무리 라이가 있어도 거의 초짜 에이전트잖아. 남들 기억에 확 남을 방법이 뭐가 있나 생각해봤더니 이게 떠오르더라고.”
새하얀 정장의 닉이라니.
“근본을 찾았군요.”
“…근본?”
역시 닉이라면 하얀 정장이 아니겠는가.
근본을 찾은 모습에 만족한 이안은 빠르게 다가가 닉의 배를 툭 쳤다.
“이제 배만 볼록 나오면 되겠네요. 그럼 완벽한데.”
“여기에 배가 나오면 이상하지.”
“배까지 나와야죠. 움직이는 볼링핀처럼 보이는 게 딱 맞다니까요.”
“뭐?”
진심으로 한 말인데 놀리는 거로 생각한 닉은 이안을 간지럽혔다.
“아하학! 하칵! 커어억! 끄윽…”
“이안?! 이안, 괜찮아?!”
웃음을 터트리던 이안이 목을 잡고 거친 기침을 토하자 닉은 황급히 안아 들었다.
병원. 병원을 바로 가야 했다.
***
촤르르륵
의자를 돌려 검사결과를 확인한 의사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변성기인 거 같네요.”
“변성기요?”
이안은 약간 쉰 목소리로 되물었다.
“후두 상태를 봐선 변성기일 가능성이 큽니다. 음 이탈도 나고 지금처럼 무리하면 쉰 목소리도 나죠?”
“…그랬죠?”
그러고 보니 그랬다.
오히려 변성기를 의심하지 못한 게 이상한 일이지만 그럴 만도 했다.
‘원래 이렇게 요란하게 변성기가 안 왔으니까.’
지금 목 상태는 변성기가 아니라 다른 때를 떠올리게 했다.
고운 미성이 마음에 들지 않아 목소리를 오랫동안 갈고 닦았던 그 시기를.
이 변성기가 이상하다는 건 의사도 느낀 듯했다.
“배우시죠? 저도 이렇게 예민한 변성기는 처음 봅니다. 종종 이렇게 검사를 받아야 할 거 같습니다.”
병원을 나온 이안은 닉과 부모님을 불렀다.
“…진짜 변성기면 큰일인데요.”
“왜?”
“라이요.”
라이의 목소리는 맑은 미성이다.
노력한 끝에 바꾼 목소리는 저음과 온화한 미성을 오갔고.
‘변성기가 끝날 때는 둘째치고 지금도 못 낼 거 같은데.’
살짝 헛기침한 이안은 라이의 목소리를 내봤다.
“역시 안 되는… 어라?”
“어?”
…왜 되지?
전혀 목이 아프지 않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나왔다.
당황한 이안과 닉은 서로를 보며 눈을 깜빡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