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61)
결정
모르는 일이 생겼을 때는 고집을 부리지 않고 전문가를 찾아가는 편이 낫다.
인생의 지혜였고 이안은 진지하게 물었다.
“닥터, 어떻게 생각하시죠?”
“아하하, 닥터는 무슨. 내가 의사도 아니고.”
유쾌하게 웃은 아일라는 살짝 부른 배를 가볍게 쓸어내렸다.
“너무 심각하게 고민할 거 있니. 발성에 따라 목에 무리가 안 가는 경우가 있잖아. 그거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그렇긴 하네요. 목이 잘 쉬는 사람에게 성대를 붙여 말하라고 하니까요.”
라이의 발성이 목에 무리가 안 가서 이렇게 잘 나온다고? 이해가 가는 설명이긴 했다.
‘단순히 그런 이유는 아니겠지만.’
장례식과 변성기가 온 날이 맞아떨어졌다. 닉과 관련된 환상을 마지막으로 본 날이고.
언제나 환상의 끝에는 변화가 찾아왔으니 이번에도 그랬을 가능성이 크다.
고민하는 이안의 머리 위로 거친 손길이 얹어졌다.
“처음 봤을 때는 완전히 꼬맹이였는데 이제 변성기 이야기도 하고 시간이 많이 흐르긴 했다?”
“사춘기 소년처럼 굴던 사람이 아빠가 되는 것만큼 신기할까요.”
“뭐 그건 나도 신기하긴 해.”
아일라의 부푼 배를 보며 벤은 자상한 미소를 지었다.
한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건 매일 봐도 신기했다.
“그렇게 본다고 빨리 태어나는 건 아닌데요.”
“…나도 알거든. 분위기를 깨야겠냐.”
투덜거린 벤은 몸을 이안에게 돌렸다.
“그래서 연기는 어떻게 하려고? 오늘만 해도 NG를 몇 번 냈다며.”
“어떡하긴요. 일단 조심히 해봐야죠.”
이미 온 변성기에게 기다려달라고 할 순 없는 노릇이잖는가.
그나마 이유를 알아서 다행이다. 제작진들하고 상의해서 촬영을 진행하면 되니까.
“뭐, 너라면 알아서 잘 하겠지. 그럼 촬영이 끝나면 본다는 오디션들은?”
“힘들겠죠. 변성기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요.”
거미줄이 쳐진 것처럼 답답한 목을 만지작거렸다.
짧게 3개월이면 끝나기도 하지만 심한 경우 4년 넘게 이어지기도 한다.
‘그 정도까진 아니겠지만 짧게 걸릴 거 같지도 않아.’
공들여 목소리를 바꿨던 때와 느낌이 확실히 비슷했다.
그때의 기억을 천천히 되살리는 이안을 레이첼이 불렀다.
“라이의 목소리가 괜찮다면 그거로 연기하면 되잖아.”
“정말?”
“응, 난 괜찮아. 내 신경 쓸 필요는 없어.”
결연한 표정을 짓는 소녀를 보며 작게 웃었다.
라이의 정체가 밝혀져도 좋으니 마음껏 연기하라는 말은 정말 고마웠지만.
“애초에 난 라이의 목소리로 연기할 생각이 없어.”
그녀를 생각해서 한 결정이 아니다.
맑은 미성? 끔찍한 얼굴과 엮여 좋은 소리를 들은 적이 한 번도 없다. 하지만 갈고 닦은 목소리는 달랐다.
이안은 캐스팅 디렉터이자 짧고 깊은 아델리아와 추억을 떠올렸다.
-네가 뭐가 마음에 들어서 함께 있냐고? 말했잖아. 연기라고.
-연기 말고.
-흐음, 그럼 목소리? 대사를 말하는 네 목소리가 마음에 들었어.
살면서 처음으로 목소리에 대한 칭찬을 들었던 날이니 잊을 수 없다.
‘경력을 제대로 쌓게 된 것도 목소리가 바뀌고 난 뒤고.’
다시 그 목소리로 연기할 수 있다면 변성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
그 시간이 비록 생각보다 길더라도.
생각을 정리한 이안은 결정을 내렸다.
“변성기가 끝날 때까지 배우 일을 쉴 겁니다.”
이날 일찍 잠자리에 들기 위해 누웠던 케이틀린은 연락을 받고 침대에서 굴러떨어졌다.
“하, 하차한다고?”
진짜 날벼락이 떨어졌다.
***
invisible children은 시즌 2도 호평을 받으며 훌륭한 시청률을 기록하는 중이다.
아역의 성장 때문에 일찍 시작한 시즌2 촬영도 막바지를 향해 가는 중이니 방송국도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빨리 시즌3을 준비하세요.”
시즌2까지 성공하니 방송국을 먹여 살릴 새로운 프랜차이즈가 될 거란 확신이 생겼다.
다음 시즌을 위해 출연 계약서를 준비하던 케이틀린은 악몽 같은 소식에 급하게 회의를 열었다.
“이안이 하차한다고요?”
“그래, 변성기가 심하게 와서 조심하고 싶다더군.”
“의료 서비스를 계약 조건으로 내거는 건 어떻습니까?”
“나도 말해봤지. 근데 의지가 확고하더라.”
차라리 출연료를 대폭 올려달라는 조건이라면 이렇게 골머리가 아프지 않을 거다.
앞으로 배우 생활이 달린 목 때문이라는데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케이틀린은 책상을 두들겨 끙끙거리는 스태프들의 시선을 모았다.
“이안이 하차한다면 생길 문제부터 생각해보지.”
“일단 시청률에도 악영향을 줄 겁니다. 노아는 팬층이 두꺼운 캐릭터니까요.”
“그리고 촬영장 분위기에도 안 좋습니다. 아역들이 얼마나 이안을 따르는지 아시잖습니까?”
이 두 가지만 해도 큰 타격인데.
“…그리고 저희 근로 의욕도 사라집니다.”
“안돼. 이안이 없는 촬영장이라니.”
불평을 내뱉는 스태프들의 모습에 케이틀린은 고개를 내저었다.
“시나리오 수정도 해야겠지?”
“수정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어떻게 하차할지가 중요하죠.”
노아를 죽일 건가, 살릴 건가.
각각 손익을 계산하던 케이틀린은 시계를 봤다. 이안이 찾아온다는 시간이 됐다.
“그건 직접 대화를 나누고 결정하자고.”
노아의 빈자리를 어떻게 채울지 회의를 이어가는 사이 노크와 함께 이안이 들어왔다.
스태프들은 소년을 적극적으로 반겼다.
“우릴 버리고 가지 마!”
“앞으로도 잘 할게. 응? 병원까지 업고 다녀줄까?”
호들갑스러운 반응에 이안은 미안한 표정으로 답했다.
“죄송해요.”
살짝 쉰 목소리.
정말 목이 안 좋아 보이자 스태프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연기를 그렇게 좋아하던 이안이 오죽하면 하차를 결정했나 싶었다.
“목은 괜찮니?”
“조심하면 괜찮아요. 남은 촬영까진 잘 해결할게요.”
“후우… 알겠다.”
눈만 봐도 알겠다. 결정을 번복할 생각이 없다는 걸.
하차를 막을 수 없다면 차선책을 선택하는 수밖에 없다.
“혹시 나중에 우리 드라마에 다시 나올 수 있겠니?”
“나중에요?”
“그래. 우리는 계속 시즌을 이어가며 널 기다리마.”
확신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해 논하는 건 안 좋아하는데 정이 들긴 했나 보다.
입 밖으로 긍정적인 답변이 나오는 걸 보면.
“좋아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불러주세요.”
“그때 가서 거절하지나 말렴.”
빈 약속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희망이 생긴 작가가 손을 들었다.
“혹시 다음에 나오면 원하는 게 있어? 바뀐 노아의 설정이라던가.”
“음…”
잠시 고민하던 이안은 방긋 웃으며 답했다.
“적이 되면 재밌겠네요.”
***
사춘기 소녀처럼 변덕을 부리는 목을 어르고 달래며 연기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고함이라도 잘못 지르면 바로 쉰 목소리가 나왔고 대사가 많은 날에는 언제 목이 갈지 몰라 노심초사했다.
꾸역꾸역 촬영일정을 소화한 끝에 invisible children에서 마지막 촬영이 시작됐다.
거대한 울타리처럼 라스베이거스를 둘러싼 좀비 무리가 보였다.
암담한 풍경에 벤자민 일행은 넋을 잃었다.
“왜 이렇게 죽상이야. 별것도 아니구만.”
“별것도 아니라고?”
벤자민의 물음에 노아는 어깨를 으쓱였다.
“시원하게 불꽃놀이를 하면 자리를 비워주지 않겠어?”
좀비를 유인할 때 썼던 폭죽 더미를 툭툭 쳤다.
저걸 다 터트리면 좀비의 시선을 확 끌어모으긴 할 거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우린 폭죽을 적절한 시간에 터트릴 기술이 없어. 너무 도박이야.”
“한 명이 남아서 하면 되잖아. 난 어차피 이곳을 별로 벗어나고 싶지 않았거든.”
“노아!”
벤자민의 외침을 무시하고 노아는 난간에 걸터앉았다. 도시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끔찍하지만 내가 태어난 이 도시에 미운 정이라도 들었나 봐. 떠나야 한다니 막상 발이 안 떨어지는 걸 보면 말이야.”
시원한 미소를 지은 노아는 벤자민에게 손을 뻗었다.
“넌 너의 낙원을 찾아가. 난 이곳을 낙원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테니.”
잠시 뒤 화려한 폭죽이 라스베이거스의 밤을 밝혔다.
새로운 출발을 하는 이들을 축복하듯.
지친 얼굴로 앉아 있으니 좀비들이 달려들었다.
-크아아악!
“그렇게 해도 안 놀라요. 저랑 한두 번 촬영해요?”
“거봐 안 된다니까?”
“마지막이니까 예의상 놀라는 척이라도 할 줄 알았지.”
구시렁거리는 좀비들 사이에서 나온 마일즈는 아쉬움을 담아 어깨를 툭툭 쳤다.
“이제 실업자라며 종종 연락해.”
“마일즈가 일을 안 하면 실업자죠. 전 학생이고요. 스턴트맨이 목표라면서요. 열심히 해요.”
“당연하지.”
죄책감을 품고 다리를 쩔뚝이던 노숙자는 어느새 스턴트맨을 꿈꿨다.
그와 인사를 나누는 사이 아역들이 달려와 와글와글 떠들었다.
“그냥 우리랑 계속 촬영하면 안 돼?”
“나중에 나올 수 있다잖아.”
“그때까지 우리가 살아 있을 수 있을까? 좀비한테 죽을 거 같은데.”
“…그렇네? 안 되겠다. 우리랑 계속 촬영하자.”
아쉬움을 담아 질척거리던 것도 잠시였다.
어쩔 수 없는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아역들은 성숙했으니까.
“그동안 재밌었어요. 다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같이 촬영해요.”
이안은 환한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아역 배우로 첫발을 내딛게 해준 드라마와 이별했다.
***
-저번 촬영 중 사고가 유출된 것처럼 드라마에서 하차했다는 이야기는 퍼질 겁니다.
“이미 쇼러너에게 들었어요. 하차를 두고 별의별 이야기가 나올 거라고요.”
에미상 후보까지 올라서 콧대가 높아졌다느니 제작진과 출연료로 불화가 생겼다는 등
온갖 이상한 말이 나올 법했다.
-그런 말이 떠돌게 하는 것보단 솔직하게 공개하는 게 좋습니다. 물론 이것도 이상한 말이 나오겠지만요.
“벌써 제 목 상태에 대해 눈치챈 사람들이 생긴 거 같던데요.”
의사도 평범한 변성기가 아니라고 할 정도로 목이 안 좋으니 소설을 쓰기도 좋지 않을까?
-괜찮습니까?
“네, 괜찮아요. 별로 신경 안 쓰거든요.”
목이 아픈 거? 솔직히 전혀 스트레스를 안 받는다. 오히려 기대되면 됐지.
오랫동안 노력해서 가꿔나간 목소리가 가만히 있어도 빠르게 완성된다니. 이게 기대가 안 되면 이상한 거다.
-그럼 공식 입장을 준비하겠습니다.
“부탁할게요.”
통화를 마친 이안 옆으로 벤이 털썩 주저앉았다.
“언제 기사로 낼 거야?”
“그건 왜요?”
“마침 나도 기사로 알릴 일이 있거든.”
아일라의 임신 소식.
변성기로 휴식기를 갖는 것 따위는 그대로 파묻힐 정도로 파급력이 강한 사건이다.
“그렇게 볼 거 없어. 어차피 공개할 일이니 기왕이면 유용하게 써먹으려는 거지.”
“그래도 고마워요.”
“고마우면 나중에 보답하면 되지. 안 그래?”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엔 참 좋은 사람이 많았다. 새삼 그걸 깨달았다.
***
촬영 없이 연습으로만 만족해야 하는 아쉬운 상황에도 시간은 흘러갔다.
-아일라 올슨의 임신 공개! 상대는 벤 로버츠!
-익명의 관계자. “벤은 아일라 앞에선 사춘기 소년 같아.”
-벤과 아일라, 둘의 결혼식은 출산 후 소박하게 이뤄질 것.
할리우드를 뒤집어 놓는 소식 덕분에 예상대로 이안은 관심에서 멀어졌다.
이대로 조용히 시간이 흘러가나 싶었지만…
-라스베이거스에 홀로 남은 노아. invisible children 팬들은 좌절.
-뒤늦게 이안의 하차를 알게 된 시청자들. “노아를 돌려달라.”
-invisible children 제작진. 노아의 재등장 가능성은 열려 있어. 기다려달라.
마지막 화와 함께 쏟아지는 팬들의 항의에 쇼러너가 전화로 한탄을 했을 정도였다.
노아의 아쉬움을 잊도록 다음 시즌을 확실하게 준비하는 건 제작진의 일이니 그저 웃어넘겼다.
평온한 일상이 이어지나 싶었던 5월.
기다리던 날이 찾아왔다.
“으아아앙!”
우렁찬 울음과 함께 태어난 아이는 에반 로버츠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부모를 닮아 금발에 푸른 눈동자를 갖고 태어난 아이는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아기 사진을 찍겠다고 저택 위로 파파라치가 탄 헬기가 날아다닐 정도로.
“진짜 지긋지긋하네. 그냥 찍혀줄까?”
요란한 프로펠러 소리가 여간 짜증 나는 게 아니었다.
오죽하면 벤이 저런 말을 할까.
“뭐하러 그래요? 이렇게 된 거 에반의 사진을 우리가 팔아서 기부하죠.”
“그럴까?”
헬기를 날리는 것도 돈이다.
첫 사진이라는 프리미엄이 빠지면 헬기를 띄울 이유가 없다.
아일라와 상의한 벤은 바로 행동력 있게 움직였고 400만 달러라는 거금을 뜯어냈다.
“어휴, 진즉에 이럴 걸 그랬어. 그렇지?”
곤히 잠든 에반을 보던 벤은 진지하게 말했다.
“영화 홍보하러 가지 말까?”
“미쳤어요?”
에일리언 헌터의 개봉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목 때문에 쉬고 있는 사람도 홍보 일정이 잡혔는데 어딜 도망친단 말인가.
“역시 안 되겠지?”
“좋아요. 게빈 감독님에게 직접 물어볼게요.”
“그래 줄래?!”
묻는 게 뭐가 어렵겠나. 안 될 게 뻔한 일인데.
-이안? 마침 잘 됐군. 나누고 싶은 이야기도 있었는데.
“이야기요?”
특별히 할 이야기가 있나 싶었는데.
-이번 영화를 준비하면서 많이 고민해봤는데 역시 더는 숨기지 않는 게 나을 거 같아.
“그럼?”
-내가 겁쟁이라고 솔직하게 밝힐 생각이네. 이번 영화도 겁쟁이인 걸 숨기기 위해 만들었다는 사실도.
굳은 결의가 느껴지는 말에 이안은 고개를 휙 돌렸다.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벤의 얼굴이 보였다.
‘들었으면 어쩔 수 없지. 어차피 공개한다고 했으니 상관없고.’
근데 솔직히 놀랐다. 이렇게 용기 있는 결정을 내렸다니.
“갑자기 왜 그런 대단한 결정을 내리셨어요?”
진심으로 감탄하며 묻자 게빈은 지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말했다.
-투자자를 포함해서 자체 시사회를 했는데 2를 만들지 않겠냐는 말을 들었어. 랜든, 이 인간은 벌써 2에 사용할 괴물을 들이밀고 있다고.
…이게 용기 있는 결정?
이안은 혼란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