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62)
2년 동안
게빈의 사무실은 오랜만이다.
비밀친구 관계가 아이작에게 들킨 이후로 딱히 찾아올 이유가 없었다.
시간이 흐른 만큼 어색하게 느껴질 만도 했지만, 여전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번에 찍으면서 아쉽게 느껴진 부분을 좀 채워봤네. 이것처럼 눈동자가 굴러다니면 더 무섭지 않겠나? 2에서 쓰면 좋겠는데.”
“안 찍어. 안 찍는다고!”
끔찍한 외계인 그림에 질색하는 게빈의 모습을 보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역시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 법이다.
“오랜만이네요. 미들턴 감독님.”
“오, 이안! 잘 지냈니?!”
정식으로 영화 제작에 합류했지만, 랜든이 맡은 일은 굳이 촬영장에 올 이유가 없었다.
덕분에 오랜만에 만난 그는 게빈에게 들이밀던 스케치를 내밀었다.
“어때? 2에 쓰면 좋겠다고 생각한 괴물이란다.”
“좋은데요? 입에서 눈동자가 굴러다니는 것도 괜찮을 거 같기도 하고요.”
“역시! 뭘 좀 아는구나. 꼭 참고하마.”
오자마자 죽이 잘 맞는 둘을 보며 게빈은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괜히 불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런 인간하고 놀지 말고 이리 오렴.”
“그래서 진짜 밝히실 거에요?”
이게 궁금해서 여기까지 찾아왔다.
“그래, 그럴 생각이다.”
“왜요? 아직 흥행 결과도 안 나왔잖아요. 내부 시사회 반응과 달리 흥행이 잘 안 될 수도 있어요.”
예상보다 안 좋은 결과가 나오면 어차피 백지가 될 계획 때문에 밝힐 필요는 없었다.
“꽤 고민하고 내린 결정이란다. 네가 나에게 말하지 않았니. 그저 잠시 놀림당할 뿐이고 오히려 친근감을 느낄 사람도 있다고.”
“그랬죠.”
“고작 놀림 받는 게 무서워서 숨길 필요가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단다. 생각보다 별거 아니더구나.”
말은 쉽다.
보통 사람도 자신의 흠결을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데 게빈 같은 유명인이라면 오죽할까.
감탄하며 바라보자 그는 시선을 살짝 피했다.
“후속편을 찍기 싫다는 마음도 크고.”
이번 영화를 준비하면서 얼마나 랜든에게 시달렸으면 저럴까 싶은데.
‘그걸 밝힌다고 후속편을 안 찍긴 힘들 텐데.’
돈의 힘은 위대하다. 함께 일하는 식구들도 있으니 막상 돈을 들이밀면 거절하기 힘들 거다.
훤히 보이는 미래를 애써 외면하는 게빈에게 마침 궁금했던 걸 물었다.
“영화 등급은 어떻게 됐어요?”
이건 아주 중요하다.
아이작에게 걸려서 invisible children은 시즌1도 끝까지 못 봤다.
“R등급을 받았단다.”
“오! R등급!”
R등급은 17세 이하는 관람할 수 없는 등급이지만 보호자가 동반하면 볼 수 있는 등급이다.
기뻐하는 이안의 머리를 게빈은 자상하게 쓰다듬어줬다.
“근데 넌 못 볼 거란다.”
이안은 돌처럼 굳었다.
삐걱거리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눈으로 이유를 묻자 답변을 해줬다.
“등급 심사를 하는 MPAA에서 요청하더구나.”
“MPAA에서요?”
“널 좋아하는 아이들이 많은 만큼 모범을 보였으면 좋겠다고 하던데.”
…말도 안 돼.
“요청을 거절하는 건요?”
“학부모와 척지는 건 여러모로 피곤한 일이란다.”
이 세상은 글렀다.
***
다른 배우들과 달리 이안의 홍보 일정은 여유로웠다.
목이 안 좋은 아역에게 무리시켰다가 혹사 논란이라도 뜨면 뒷감당이 안 됐으니.
그래도 중요한 일정에는 참여했고 오랜만에 다른 배우들도 만났는데.
쿵!
“…이게 다 뭐에요?”
묵직한 상자가 앞에 놓이자 데자뷔가 느껴졌다.
“목에 좋다는 것들이지. 알로에가 좋다는 건 이미 알 테고 오미자차라고 이것도 목에 좋다더라.”
“여기 주의사항이 있습니다.”
비서가 내민 종이에는 빽빽하게 각 음식의 효능과 부작용 그리고 용량이 적혀 있었다.
이 정도면 고소를 막기 위해 황당한 경고 문구가 붙는 미국 제품 수준이다.
“너무 감격할 필요는 없어. 이 정도 배려는 나에게 쉬운 일이니까.”
뽐내듯 말하는 데미안에게 이안은 활짝 웃었다.
“고마워요. 하긴 데미안은 배려심이 넘치죠.”
“그럼!”
“데미안의 좋은 점을 사람들이 잘 모른다니까요. 아, 제가 공작새처럼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알릴 방법을 알려줄까요? 제가 쓰는 방법이거든요.”
“네가 쓰는 방법이라고?”
데미안은 솔깃한 표정을 지었다.
이안은 촬영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배우였다. 그 비법을 알려준다니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간단해요. 모든 스태프의 이름을 전부 외우면 돼요. 그러면 사람들이 엄청 감탄하면서 대단하다고 하거든요!”
뭘 들었나 싶어 눈을 깜빡였다.
“…전부?”
“네! 한 삼백 명 정도만 외우면 될걸요.”
…당연히 대단하다고 하겠지.
영화면 기껏 두세 달 만나는 사람의 이름을 몽땅 외운다는 뜻인데.
“쉽죠?”
“어…? 쉽네. 응.”
“데미안이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니까요. 사람들은 그걸 어떻게 하냐고 어찌나 불평하던지. 역시 대단해요!”
초롱초롱한 눈에 데미안은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그럼 데미안도 앞으로 이렇게 하기에요. 자, 약속!”
“약속…?”
얼떨결에 새끼손가락까지 걸어버린 그는 살짝 넋이 나간 상태로 돌아갔고 벤은 이안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야, 공작새가 너한테 무슨 큰 잘못이라도 저질렀냐?”
“에이, 저한테 얼마나 잘 해주는데요. 정말 도움이 되는 방법을 알려준 거예요.”
그동안 쌓아온 업보를 덮으려면 저 정도 노력은 해야 했다.
이 큰 뜻을 모르는 데미안은 홍보 내내 반쯤 얼이 나가 있는 듯했지만.
홍보 일정은 순탄하게 흘렀고 초청받은 기자가 이안에게 물었다.
“혹시 이번 영화에서 바라는 게 있으십니까?”
상투적인 질문이다.
기껏해야 많은 사람이 즐겼으면 좋겠다 정도의 답변이 돌아오는 그런 질문.
하지만 이안은 예상을 뛰어넘는 답변을 했다.
“이번 영화가 엄청 잘 돼서 후속편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쿨럭!”
마른기침하는 게빈을 보며 활짝 웃었다.
“감독님도 그걸 바라시는 거 같아요!”
“오오!”
배신감 가득한 게빈의 표정을 외면했다.
‘잘 하면 후속편은 영화관에서 볼 수도 있잖아요.’
작은 소망을 위해 희생해줬으면 좋겠다.
물론 홍보 일정이 끝나고 배신감에 물든 한탄을 들어야 했지만.
***
누군가가 적당한 성공을 간절히 바랐던 에일리언 헌터의 결과가 나왔다.
-역시 데이비스 감독! 에일리언 헌터 흥행 성공!
-전문가들 전 세계 5억 달러 이상 수익 예상!
-두 거장의 만남. 화려한 액션과 끔찍한 괴물의 아름다운 조화.
큰 성공을 거뒀다.
후속편이 안 나오는 게 이상할 정도로.
흥행기록을 써가는 상황에서 게빈은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나는 겁쟁이였다.’ 데이비스 감독의 고백.
기사에는 겁쟁이라는 사실과 이번 영화 제작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솔직하게 말한 내용이 담겼다.
비밀을 숨겨주기 위해 노력했던 이들을 언급하며 유려한 말솜씨로 풀어낸 고백은 큰 반응을 불러왔다.
-와, 오랫동안 숨겨온 비밀을 밝히기 힘들었을 텐데.
└솔직히 동감하긴 힘들었지만 얼마나 노력해서 만든 영화인 줄은 알겠더라.
└나도 무서운 거 하나도 못 보는데 이 영화는 보러 가려고.
-푸훕, 진짜 쫄보였네. 어떻게 애한테 도움을 받았냐.
└이안은 좀비랑 겸상할 정도로 강심장이거든?
└으아아, 노아! 제발 돌아와!
└선생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난 이번 영화의 성공이 감독님의 약점 덕분이라고 생각해.
└맞아. 어떻게 연출하면 더 무서울지 알고 있다는 뜻이잖아.
└경험까지 쌓여서 후속편을 만들면 어떤 작품이 나올까 엄청 기대된다.
돌아온 반응은 게빈이 원하던 반응이 절대 아니었지만.
결국, 에일리언 헌터는 5억 달러 이상의 흥행을 거뒀고 투자자들은 후속작을 위해 게빈을 쫓아다녔다.
영화 홍보를 마지막으로 이안은 배우로서 일정이 사라졌고 대신 두 가지 일이 생겼다.
“어때. 노래 괜찮아?”
“언제나 말했잖아. 네 노래는 좋다고.”
“그래도 네가 만든 Say Goodbye처럼 빌보드에 오른 곡은 없는걸.”
메인 차트도 아니고 기껏해야 기타 차트에 올랐을 뿐이다.
거기다가 단순히 노래 완성도로 비교할 수도 없었다.
“그건 영상 덕분이 크잖아.”
영원한 이별을 준비하는 닉과 브루노의 영상은 노래 이상의 가치를 가졌다.
노래를 들은 많은 사람이 브루노의 무덤에 참배하러 간 걸 보면 알 수 있었다.
“왜? 노래도 호평이었잖아.”
“…호평?”
그래, 전문가가 직접 호평을 남기기도 했다.
-평소와 달리 투박한 작곡은 목소리의 호소력을 강조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아주 영리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불완전함이 오히려 완벽함을 이끌었다고 생각한다.
연락을 주고받는 도로시도 오랫동안 칭찬을 남겼다.
-와! 어떻게 일부러 못 만들 생각을 했을까. 대단하지 않아? 나라면 어떻게든 완벽하게 만들려고 노력했을 텐데.
…못 만들어서 참 미안하다.
착각에 빠진 호평을 볼 때마다 내상을 입는 기분이었다.
“녹음이나 하자. 2집이라며.”
“응! 근데 목소리는 괜찮아?”
“얼마든지 부를 수 있어.”
변성기도 일 년 남짓 지났다. 슬슬 변한 목소리가 체감되기 시작했는데 라이의 목소리를 내는 건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브루노 할아버지가 준 선물인가.’
Say Goodbye가 무척 마음에 든 그가 라이의 목소리를 남겨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가끔씩 들었다.
첫 번째 일이 시간 여유를 살려 레이첼과 음악 작업을 하는 일이라면 두 번째는 이안도 처음 해보는 일이었다.
“꺄핫! 부우우우…”
손을 꼼지락거리는 에반이 활짝 웃었다.
“…제발 싸면서 웃지 좀 말자.”
묵직해진 기저귀에 한숨을 내쉬었다.
할 일 없으면 베이비시터나 하라는 벤의 강압에 종종 에반을 봐줬고 경험에 따르면 소변이 확실했다.
익숙하게 기저귀를 갈아준 이안은 베시시 웃는 에반을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미워할 수도 없고.’
부모의 외모가 있다 보니 엄청 귀엽게 생겼을뿐더러 자신만 오면 엄청 좋아한다.
뭘 해도 밉지가 않다는 건 얘를 보고 하는 말 같았다.
“아우! 부부부!”
“그래, 그래.”
여러 언어를 익혔지만 옹알이를 해석하는 능력까진 없었다.
설렁설렁 반응하는 이안을 뒤에서 아일라가 불렀다.
“이안, 힘들지 않니? 이것 좀 마실래?”
“감사하…”
감사를 말하던 이안은 에반 입에서 터져 나온 말에 말꼬리를 흐렸다.
“이앙…이앙!”
땡그랑!
마마보다 빨리 나온 이름에 아일라는 음료를 떨어뜨렸고 이안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나 부른 거 아니지?”
“이안! 아부부부!”
…그래, 제대로 부른 거구나.
에반의 처음을 가져간 죄로 한동안 접근 금지령이 내려졌다.
***
2012년 2월.
할리우드가 뜨겁게 달아오를 소식이 전해졌다.
-중국, 스크린쿼터 확대 조약에 상호동의!
-할리우드 중국 공략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중국의 규제 완화는 할리우드에선 엄청 중요한 일이다.
매년 20편에 불과했던 제한이 34편으로 늘어났고 수익 배분율도 13%에서 25%로 훌쩍 뛰었다.
중국이란 거대한 시장이 황금의 땅으로 떠오른 순간이다.
-이안 군! 들으셨습니까?! 정말 중국이 규제를 완화했습니다!
“네, 저도 확인했어요.”
-제가 업계 소식을 확인했는데 벌써 중국을 노릴 영화를 만들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더군요. 이안 군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질 겁니다.
오스틴과 계약을 맺을 때 이미 나눈 대화였다.
중국 시장을 노리는 할리우드에서 동양인 배우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시기가 찾아왔다.
‘물론 이건 양날의 검이긴 해.’
너무 중국 흥행만 따지다가 영화 자체가 망가지는 본말전도의 상황도 많이 벌어졌다.
이런 지뢰를 피해 작품을 고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
‘난 괜찮아.’
개똥 같은 스토리로 말아먹는 영화들을 이미 알고 있으니까.
이안에겐 오로지 기회의 창만 열린 꼴이다.
-이제 작품 구상을 위해 움직이는 상황이니 급할 건 없습니다. 지금은 일단 목을 신경 써주기 바랍니다.
“알겠어요.”
이안은 목을 만지작거렸다.
그렇지 않아도 천방지축 날뛰던 목 상태가 점점 안정되고 있었다. 적어도 기다림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중국의 규제 완화가 모두가 알법한 거대한 변화라면 아직 가능성을 주목받지 못한 변화도 생겨났다.
-OTT 기업 넷플러스, 오리지널 드라마에 도전한다.
-자체제작에 도전하는 넷플러스.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DVD 대여점으로 시작한 넷플러스가 스트리밍을 넘어 자체제작에 도전한다고 선언했지만 아직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기껏해야 성공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는 눈초리였고.
‘하지만 엄청나게 성공할 테지.’
이게 얼마나 파급력이 강한 소식인지 이안은 잘 알았다.
자국에 갇혀 있던 한국을 비롯한 국가에겐 세계로 나갈 징검다리였고 막대한 자본이 자체제작을 위해 퍼져나가는 시작점이기도 했다.
거대한 변화가 생기는 2012년 말.
“아아! 아아아!”
부드럽게 나오는 목소리에 이안은 활짝 웃었다.
드디어 변성기가 끝났다.
2년이란 시간이 흐른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