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64)
홀리는 기분
Moonlight
여인은 몽환적인 달빛이 내려앉은 학교의 쪽문을 밀었다. 은은한 빛이 감도는 손에 닿은 문은 부드럽게 열렸다.
낮과 달리 묘한 느낌을 풍기는 학교에 발을 디디자 바람이 불었다.
눈을 깜빡이자 목에 서늘한 감촉이 느껴졌다.
“엠마, 네가 여길 어떻게 들어왔지?”
좋아하던 남자의 싸늘한 시선이 여인의 머리를 헤집어놨다.
어떡하지. 학교에 남아 있는 게 신경 쓰여서 그랬다고 솔직하게 대답할까?
“에, 에릭. 난…”
“대답부터 해라, 인간.”
붉게 물드는 눈과 목을 감싼 서늘한 손.
여인은 그제야 상대가 인간이 아니란 걸 깨달았고 빳빳하게 경직됐다.
-크르르
재차 다그치려던 남성은 낮은 울음소리가 들리자 여인을 품에 안았다.
갑자기 안겨 상기된 여인과 눈을 마주친 남성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쉿.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듣지.”
두 남녀의 모습이 바람처럼 흩어지고 화면은 학교의 전경을 보여주며 끝이 났다.
기숙사에서 홀린 듯 드라마를 보고 있던 여성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꺄아악. 너무 좋아. 어떡해?!”
“딱 이대로만 가자. 응?”
Moonlight에서 학교는 인간이 아닌 존재를 가둬놓는 감옥이다.
특이체질을 가진 여주는 이들에게 자유를 줄 수 있는 열쇠였고 방금은 여주의 특별함과 남주의 정체를 알게 되는 중요한 장면이었다.
만족하며 보는 드라마에 불안한 점이 하나 있었다.
“루의 캐스팅만 잘 되면 될 텐데.”
“그거 때문에 불안해 죽겠다니까. 왜 아직도 캐스팅 정보가 안 떴냐고.”
구미호 루.
동양 콘텐츠에서 자주 나오는 만큼 구미호는 미국에서 인지도는 있지만 대체로 매력적으로 느끼는 캐릭터는 아니다.
루에게 애정을 갖고 글을 쓴 작가에게 편집자가 구미호의 분량을 줄여달라는 요청을 했을 정도로.
‘비중은 적어졌어도 애정은 묻어나는 법이지.’
루가 독자들에게도 인기를 얻은 걸 생각하면 말이다. 오죽하면 작가가 가장 후회되는 게 루의 비중을 줄인 거라고 말했을까.
그런 만큼 팬들은 루를 두고 기대와 불안이 공존할 수밖에 없었다.
“원작을 그대로 살리기가 너무 어렵다고. 소년 같은 외모로 어른스러워야 하잖아. 다른 사람에겐 전부 차가운데 엠마에게만 따뜻한 모습도 보여줘야 하고.”
“…그럼 소년을 포기하고 잘 생긴 배우라도 괜찮아.”
시간이 지날수록 타협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팬들의 반응이 올라오는 SNS를 보던 여성은 친구를 툭툭 두들겼다.
“야, 큰일 난 거 같은데.”
“왜?”
“이것 봐봐.”
도로시 브루스 이름으로 올라온 게시글이었다.
Moonlight의 포스터와 함께 ‘신은 죽었다.’라는 의미심장한 글귀가 적혀 있었다.
“도로시면 걔 아니야? 드라마에서 아역으로 활동하는 애.”
“맞아. 근데 이거 루에 관한 이야기 같은데.”
게시글을 쭉쭉 올리자 루에 대한 팬심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글들이 보였다.
그런 사람이 이렇게 좌절하니 연예인의 인맥으로 뭔가 들었나 싶을 수밖에.
다른 사람들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벌써 댓글은 아비규환 상태였다.
“아니야. 아닐 거야. 공식 입장도 아니잖아?”
불안과 초조함을 안고 시간이 흘렀고 제작진은 공식으로 캐스팅 확정을 알렸다.
-Moonlight의 구미호, 루는 이안 프라이스가 캐스팅됐습니다.
-에미상 후보, 이안 프라이스 복귀작으로 Moonlight를 골라.
-이안 프라이스 “너무 오래 참아왔다. 최선을 다해 연기하겠다.”
에미상 후보가 우리 드라마에? 그것도 비중 적은 역할로?
감지덕지할 상황이지만 처음 알려졌을 때는 반응이 썩 안 좋았다.
“이안이면 꼬맹이잖아.”
“망할 제작진들아. 소년이라고 꼬맹이가 아니라!”
대부분이 invisible children과 에일리언 헌터에서 나온 어린 모습을 기억하니 어쩔 수 없다.
2년의 세월을 생각하지 않고 뿔난 팬들에게 제작진은 루의 포스터를 공개했고.
“와… 미친.”
감탄했다.
정장을 입고 내려보는 시선에는 무심함과 쓸쓸함이 감돌았다.
소년 같은 외모와 비교되어 더욱 독특한 분위기를 풍겼다. 하지만 진짜 사람들을 홀린 건 다음 사진이었다.
부드럽게 휜 입가와 검은 눈동자에는 온기가 감돌았고 아홉 개의 꼬리가 요망하게 흔들렸다.
폭하고 안기고 싶은 마음과 이런 생각을 소년에게 하고 있다는 배덕감에 팬들을 허우적거리게 했다.
“…진짜 여우를 데려왔나.”
이 이상 완벽한 캐스팅은 없고 제작진은 신이다.
고민할 여지도 없이 합격 통보를 날린 Moonlight의 팬들은 당당하게 커뮤니티를 돌아다녔다.
-뭐야! 우리 노아가 왜 저기에 가 있어?!
└우리 루를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생 함께하겠습니다.
└닥쳐! 빨리 우리 노아를 데려오라고!
└:)
-분량도 적다며? 노아는 저렇게 누추한 곳에 있을 사람이 아니라고.
└누추? 저 얼굴을 꼬질꼬질하게 썼으면서 누추?
└이번 시즌을 보라고 이제 우리 애들도 사람답게 산단 말이야!
└응, 그러다 또 좀비에게 쫓기겠지.
-근데 도로시는 왜 그렇게 반응한 거야?
└이안이랑 친분이 있잖아. 그래서 싫다던데.
└아무리 그래도 진짜 이해가 안 되네.
└오빠나 남동생이 좋아하는 배역으로 캐스팅됐다고 생각하래.
└우웩! 도로시 너의 희생은 잊지 않을게.
글을 보며 도로시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진짜 이건 말도 안 돼. 왜 나만 행복해질 수 없지?”
“네가 운이 없는 게 아닐까?”
“난 운이 좋은 편이거든?! 이건 네 탓이야. 너라면 더 좋은 배역도 얼마든지 할 수 있었잖아. 왜 하필 루야!”
운이 좋다고?
라이의 정체를 알고도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이미 정신적으로 한계인 그녀를 위해 이 궁금증은 미래로 미뤄뒀다.
“그래서 팬들이 루를 좋아하는 이유가 뭐냐고?”
“응, 연기에 참고하면 좋을 거 같아서.”
투덜거리는 걸 멈추고 도로시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같은 배우로서 허투루 도움을 줄 순 없으니까.
“가장 큰 이유는 갭이지. 나에게만 친절하고 따뜻한 캐릭터잖아. 마지막에 여주를 돕기 위해 감시자의 직책을 던져버리는 모습도 좋고.”
“그런가?”
“그래, 이성을 홀린다는 설정답게 은근히 엠마를 꼬시는 모습도 중요해.”
“…어렵네.”
연기는 물론이고 현실에서도 여자를 꼬셔본 경험이 없었다.
“벤에게 물어볼까?”
“돌았니? 내 루는 그렇게 음탕하지 않아!”
“하긴 그래. 벤을 모티브로 삼기엔 문제가 좀 있지.”
고개를 주억거리는 둘의 머리 위로 큼지막한 손이 올라왔다.
“이 꼬맹이들이 지금 남의 집에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퉁명스러운 벤의 말에 이안은 어깨를 으쓱였다.
“나중에 수위 높은 하이틴 드라마를 찍게 되면 도움을 구하겠다는 말이었죠.”
“그런 곳에선 로버츠 씨가 딱 맞긴 하지.”
“…이 녀석들이.”
과거가 있으니 부정할 수도 없다.
“내가 아일라를 좋아했을 때를 참고하면 되잖아.”
“그때는 너무 찌질해서 참고가 안 돼요. 보는 사람이 답답할 정도였잖아요.”
괜히 나섰다가 한 방 맞게 된 벤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진짜 너무 많은 걸 알고 있는 녀석이다.
“여자를 꼬시는 건 몰라도 애는 잘 꼬시잖아. 에반에게 하는 것처럼 해보던가.”
“에반에게요? 특별히 뭘 한 건 없는데요. 원래 벤보다 절 더 좋아했고요.”
“…그래도 내가 아빠거든? 후, 그냥 참고나 해봐. 도움이 될 테니까.”
잘 생긴 외모 덕분에 로맨스 연기를 많이 했던 그의 조언이니 괜히 한 말은 아닐 거다.
“한 번 해볼게요.”
그나저나 보통 에반하고 뭘 하더라.
***
“오늘이지?”
“응, 스케줄 보니까 맞아.”
Moonlight의 에릭의 헨리와 엠마인 이사벨라뿐만 아니라 며칠 전부터 모든 촬영진의 입에 이안이 오르내렸다.
난항을 겪던 자리를 단번에 낚아챈 사람이 변성기를 이유로 2년간 휴식을 취한 아역이니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왔다.”
낯선 차에서 사진으로만 봤던 소년이 내렸다.
인원을 파악하는 세컨 조연출이 다가가자 소년은 활짝 웃었다.
“댄 씨죠? 앞으로 잘 부탁할게요.”
“어라, 날 아니?”
“앞으로 같이 촬영할 사람이니까 미리 익혀뒀죠.”
깜짝 놀라는 조연출을 지나친 소년은 만나는 스태프들의 이름을 전부 부르며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헨리는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소문이 진짜였네.”
“소문?”
“촬영 스태프의 이름을 전부 외운다고 들었거든. 아, 파파라치는 이름뿐만 아니라 신상정보까지 전부 외운다고 했던가.”
“…그건 좀 무서운데?”
전설처럼 내려오는 파파라치 퇴치 이야기를 내뱉은 헨리는 이안을 흥미롭게 봤다.
“그건 그렇고 보통이 아니긴 하네. 벌써 스태프들이 홀린 것 좀 봐라.”
배우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촬영장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건 스태프다.
고작 이름을 부르며 친하게 굴었을 뿐인데 촬영장 분위기부터 달라졌다.
스태프들과 인사를 나눈 이안은 두 주연 앞에 섰다.
“앞선 드라마 잘 봤어요.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나도 잘 부탁할게.”
이사벨라는 이안을 보며 미묘한 얼굴을 했다.
자신보다 키가 살짝 작고 앳된 티가 확실히 났다. 과연 괜찮은 그림이 나올까 걱정이 됐다.
무슨 걱정을 하는지 아는 것처럼 은은한 미소를 지은 이안은 그녀에게 가볍게 손짓을 했다.
“이따가 촬영 때 애드리브 좀 해도 상관없죠? 쇼러너에겐 이미 허락받았어요.”
“허락받았다면 상관없긴 하지.”
숨이 턱턱 막힌 캐스팅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이안인데 컷 하나 정도는 얼마든지 내줬을 거다.
“뭘 하려고?”
“서프라이즈랍니다. 그냥 당황하지 말라고 미리 말해준 거예요.”
장난스럽게 웃는 소년을 보며 이사벨라는 귀엽다는 듯이 웃었다.
당황하면 얼마나 하겠는가.
촬영팀과 인사를 끝낸 이안은 가볍게 분장을 하고 촬영에 들어갔다.
Moonlight에서 루는 이종족들이 허튼수작을 부리지 않는지 감시하는 직책을 맡았다.
짐승으로 변한 늑대인간을 꾹 짓밟았다.
-크르릉!
“누린내가 나는구나.”
우드득!
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늑대인간은 크게 비명을 내질렀지만 루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고통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 기절하자 루는 발을 뗐다.
“독방에 가둬라.”
질질 끌려가는 늑대인간에겐 시선도 주지 않은 루는 에릭과 멀어지는 엠마를 멍하니 바라봤다.
그녀를 통해 누군가를 떠올리는 듯한 눈에는 그리움이 차올랐다.
냉혹한 모습과 인간다움을 함께 보여준 루는 다음날 밤 엠마의 방을 찾아갔다.
“어딜 나가는 게냐.”
둥근 달이 뜬 밤에 몰래 방에서 빠져나가려던 엠마는 낯선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창틀에 앉은 소년의 뒤에는 아홉 개의 꼬리가 은은하게 빛나며 살랑거렸다.
“누, 누구?”
“가지 마라.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이는 법이지. 너만은 그렇게 되질 않길 바란단다.”
“…날 막을 건가요?”
인간이 아니다.
겁을 먹은 엠마는 긴장한 얼굴로 물었고 소년은 살포시 창틀에서 내려왔다.
루가 문을 가로막는 걸 기다리던 이사벨라는 이안이 부드럽게 손을 잡자 흠칫 놀랐다. 이게 조금 전에 말한 애드리브라는 걸 깨달았다.
루는 쉽게 깨지는 보물처럼 조심스럽게 잡은 손을 가볍게 끌었다.
“…어?”
침대에 걸터앉은 소년은 엠마의 머리를 무릎 위에 얹었다.
무릎베개에 당황하며 눈을 깜빡이는 그녀에게 소년은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밤이 늦었다. 어린 소녀는 꿈나라로 갈 시간이란다. 함께 자자.”
“…으응?”
얼떨결에 얼굴을 스치는 손에 눈을 감았다.
따뜻한 체온과 묘한 체향이 코를 간지럽혔다. 편안해지는 느낌에 문뜩 잠들뻔한 이사벨라는 눈을 번쩍 떴다.
“…컷. 진짜 잠들면 어떡해요?”
“아니! 잠든 거 아니었다니까요?! 그렇지?”
당황한 이사벨라가 손을 휘저으며 부정했고 동의해달라며 이안을 봤지만 소년은 장난스럽게 눈꼬리를 휘었다.
“전 잘 모르겠는데요.”
“아으…”
요망한 얼굴이다.
이사벨라는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너 이런 거 한두 번 아니지?”
“많이 재워봤죠. 제가 낮잠 담당이거든요.”
능글맞은 대답에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구미호에게 홀리는 기분이었다.
영상을 확인한 쇼러너는 애드리브 장면을 채택했고 원작과 다른 장면들이 추가되기 시작했다.
***
Moonlight의 촬영은 순조롭게 이뤄졌다.
곧 루가 처음 나오는 편이 방영될 예정이고 도로시는 모자이크를 해서 보겠다고 씩씩거리는 그런 날.
게빈에게 연락이 왔다.
-이안, 곧 복귀작이 방영이라며 축하한단다.
“감사합니다.”
대답하면서도 의아함을 느꼈다.
굳이 그가 연락할 만큼 대단할 일은 아니었다. 방영되고 엄청 좋은 반응이 나온 후라면 모를까.
‘그리고 목소리는 또 왜 이러시지.’
힘이 없이 축 늘어진 목소리였다.
“어디 아프세요?”
-아플 예정이란다.
아플 예정?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혹시?”
-그래, 2를 찍어야겠구나. 네가 복귀를 했으니 더 미룰 것도 없다고 얼마나 괴롭히던지.
게빈은 우울한 목소리로 준비하라는 말을 남겼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사람에게 연락이 왔다.
-오랜만이야, 아기 공작새.
그놈의 아기 공작새타령은.
-이야기 들었지? 또 한 번 같이 촬영하게 생겼네.
“그러게요.”
-사진을 보니 많이 컸던데. 공작새 세컨드는 어떻니?
이안은 방긋 웃었다.
“필요 없어요.”
이상한 사람들과 또 촬영하게 생겼다.